모스크바 예술극장

모스크바 예술극장

[ Moscow Academic Art Theatre ]

요약 러시아의 대표적 극단 및 그 극장.
구분 공연시설
설립일 1898년
설립목적 무대예술 공연
주요활동/업무 체호프·고리키의 희곡 공연
소재지 러시아 모스크바

정식 명칭은 '고리키기념 국립 모스크바 예술 아카데미'로서 그 대문자를 따서 므하트(MKhAT)로 약칭한다. 1890년 모스크바를 순방한 마이닝겐극단의 영향을 받아 1898년 아마추어 배우이자 연출가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y)와 극작가인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단첸코(Vladimirovich-Danchenko)에 의해 설립되었다. 초창기 극단의 주체는 창립자 두 사람에게 지도받은 예술문학협회와 필하모닉 음악연극학교를 졸업한 아마추어들이었다.

두 창립자는, 새로운 극장은 누구든지 입장할 수 있고 누구나 알 수 있는 민중의 극장이 되어야 하며, 또 무대약속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연극의 이상에 반대되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한다는 의도 아래 극장을 열었으며,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무대에 올린 첫 작품은 알렉세이 톨스토이(Aleksey Tolstoy)의 《표도르 요안노비치 황제》였다.

새로운 극장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연작품이 필요했는데, 이 극장의 큰 수확은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와 막심 고리키(Maxim Kor'kii) 두 극작가를 얻은 일이다. 체호프의 《갈매기:The Seagull》 공연이 성공함으로써 극장은 획기적인 발전을 했으며, 뒤를 이어 《바냐 아저씨》《세 자매》《벚꽃동산》 등이 공연되었다. 1905년 혁명으로 이어진 당시 사회의 격동은 고리키의 《밑바닥》에 잘 반영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V.I.레닌(Lenin)과 A.V.루나차르스키(Lunacharsky)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1920년대에 유럽과 미국을 순회공연했고, 1941년까지 러시아 고전극과 소비에트 창작극을 공연했다. 이 극장은 1932년 고리키의 문학생활 40년을 기념하여 '고리키 기념극장'이라고 명명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1950년대 이후는 잠시 정체상태에 빠지기도 했으나,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런던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1970년에 I.A.예프레모프를 주임연출가로 맞아들였고, 1987년에는 구관 및 부속극장, 1975년에 개관한 신관, 소무대까지 갖춘 총인원 400여 명의 대무대로 확장하고, 신관을 제(諸)민족우호극장으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