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 왕국

말라카 왕국

[ Sultanate of Malacca ]

요약 1402년부터 1511년까지 말라카를 중심으로 번영한 왕국.

말라카 왕국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쟁 중에 있으나 그 중 가장 유력한 건국설은 다음과 같다. 팔렘방(Palembang)의 왕자인 파라메스와라(Pawameswara)가 1400년 경에 말라카 왕국을 건설했다고 하지만 그가 스리비자야왕실 가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1377년 마자파히트(Majapahit)왕국의 공격으로 팔렘방이 패하자 파라메스와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해상으로 탈출하여 말레이 반도 방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처음 정착한 곳이 떼마섹(Temasek)섬이었다. 거기서 파라메스와라 왕자는 사자를 보았다고 하여 이 지역을 싱가뿌라(Singapura)라고 불렀는데, 싱가뿌라는 말레이어로 ‘사자’를 의미하며 현재의 싱가포르이다.

파라메스와라 왕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1402년 경 현재의 말라카로 이동하게 되었다. 말라카라는 국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두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파라메스와라 왕자가 강 주변에서 쉬고 나무 그늘에서 있을 때 그의 개가 사슴을 궁지에 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궁지에 몰린 사슴은 개를 밀어 강에 빠지게 함으로써 위험한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왕자는 사슴의 처지가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확신하고 새로운 국가를 세울 것을 결단한다. 자신이 앉았던 나무 그늘 아래를 왕도로 정하고 말라카(Melaka)라고 불렀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말라카(Malacca)라는 국명은 타밀어로 거꾸로(upside down)이라는 의미인 말라카(mallakka)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1414년 파라메스와라 왕자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자신의 이름을 라자 이스깐다르 샤(Raja Iskandar Shah)로 개명했다. 말라카 왕국은 해상 국가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지배자들이 해상 무역을 정책적으로 지원한 결과였다. 우선 오랑 라웃(ornag laut)이라는 해상민들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여 말라카를 국제무역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파레메스와라 왕 재위시 대규모의 중국 무역상들이 유입되어 “중국인언덕”이라는 부킷 차이나(Bukit China)를 조성하기도 했다. 파레메스와라 왕은 1424년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술탄 모함마드 샤(Sultan Muhammad Shah)가 왕위를 세습했다.

1446년과 1456년 태국의 공격을 받았으나 뚠뻬락(Tun Perak)이 이끄는 말라카 군대가 격퇴시켰는데 중국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말라카 왕국은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러한 전통은 스리비자야시기부터 시작됐다. 파라메스와라 왕은 중국과 사신을 교환했고, 명나라 정화(鄭和)가 남해원정을 실시할 당시 말라카 왕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명나라 한리포(Hang Li Po) 공주가 말라카 만슈 샤(Manshur Shah, 1456-1477)왕과 결혼하기 위해 500명의 사신들과 말라카를 방문했다.

말라카 왕국은 1470년경에 전성기를 맞았고 점차로 제국(帝國)형태로 발전되어 나갔는데 그 장본인은 뚠뻬락(Tun Perak)이었다. 뚠 뻬락은 거대한 재산가이자 빈틈없는 정략가이며 성실한 무슬림이었다. 그는 3대에 걸친 술탄 친정(親政)의 치세기간 중 뛰어난 수완을 바탕으로 4명의 술탄을 모셨다. 뚠 뻬락은 자주 정략결혼을 주선하였고, 그 자신도 정략결혼을 통해서 말라카의 술탄이 되었다. 뚠 뻬락의 치세 기간 중 말라카 왕국은 태국 남부 빧따니(Pattani)와 끄다(Keda), 끌란딴(Kelatan), 뜨렝가누(Terengganu), 뻬락(Perak), 슬랑오(Selangor), 빠항(Pahang), 말라카(Malaka), 조호르(Johor)를 포함하는 전 말레이 반도와, 리아우(Riau), 링가(Lingga), 빈땅(Bintang), 만달링(Mandaling), 로깐(Rokan), 시악(Siak), 깜빠르(Kampar), 잠비(Jambi), 인드라기리(Indragiri) 등 말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말라카와 마주 보는 수마트라 중동부 대부분의 지역을 완벽하게 왕국의 영향하에 두었다.

말라카 왕국을 구성한 종족은 믈라유족으로 이들은 이미 수세기 이전부터 동남아 각지와 멀리 아프리카 남동부의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섬까지 분포지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순종적이고 적응력이 강하여 어느 지역에서나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진 왕국과의 교섭도 잘 소화해 내었다. 믈라유 종족들의 주된 문화권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Mindanao)와 북부 보르네오(Borneo), 자바의 수마트라 그리고 말레이 반도 전역이었으나, 말라카 왕국이 번성함에 따라 보다 많은 수의 이들 믈라유인들이 말라카를 중심으로 말라카해협 양안(兩岸)의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의 중동부 지역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말라카 왕국은 이슬람교를 수용함에 따라 말레이반도와 자바섬을 아우르는 범 이슬람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시기 자바섬의 마자파히트왕국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말라카 왕국의 세력 확장은 북쪽으로 아유타야왕국을 위협할 정도였다. 따라서 말라카 왕국은 말레이 반도와 해협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은 1510년 인도의 고아(Goa)를 점령해 아시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당시 말라카 왕실도 내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1511년 말라카왕실과 포르투갈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말라카는 포르투갈의 공격에 맞서 두달 가량 버티다가 결국 멸망하고 만다. 이후 유럽 열강의 동남아 진출이 시작된다.

말라카 왕국 본문 이미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