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직물

마직물

[ bast fiber fabric , 麻織物 ]

요약 마사(麻絲)로 짠 직물이며 여기에 이용되는 마사의 종류에는 아마(亞麻)·저마(紵麻)·대마(大麻)·황마(黃麻) 등 초피(草皮) 섬유가 있다.
마직물

마직물

마포라고도 한다. 가장 오래된 마직물은 BC 3000년경의 것으로 짐작되는 고대 이집트의 고분에서 발굴된 미라가 입은 옷으로 아마포로 짜여 있다. 또한 그곳에서 발굴된 벽화에는 아마의 재배·방적·제직에 이르는 모든 기술적 절차방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시대(BC 2133~BC 1786)와 신왕국시대(BC 1567~BC 1080)의 유물을 살펴보면, 마직 바탕에 염색한 양모사를 꿰어 엮어서 화려한 무늬의 벽걸이나 깔개를 이미 그때 만들어 썼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이집트의 전통적인 마직기술이 점차 지중해 문화권으로 건너가 섬세하고 양질의 것으로 발달하였고, 18세기 말 면직물이 공업화되기까지 오랫동안 서구 가내공업의 주축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고조선시대부터 마포로 옷을 지어 입은 것 같으며, 기록이나 벽화에 의하면 부여 때 마포를 짰음이 확실하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저마포와 대마포를 따로 짰으며, 실의 밀도가 얼마인가에 따라 마포의 등급을 매겼는데, 왕족이나 귀족은 등급이 높은 저마포(모시), 서민은 등급이 낮은 대마포(삼베)로 옷을 지어 입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마직기술이 매우 발달하여 주의료(主衣料)로서의 마포는 쌀과 함께 세공(稅貢)의 대상이 되었으며, 화폐 기능으로도 행세하였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 때 면포로 세공이 바뀐 이후에도 마포는 면포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초기 직물공업이 근대화될 때까지 양대 의료로 계속 사용했으며, 특히 저마포는 청나라와의 교역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저마포에 대한 한국의 고래어로, 생모시는 아직 누이지 아니한 누런 것이고, 눈모시는 뉘어서 빛깔이 하얗게 된 모시인데, 특히 '한산모시'는 품질이 좋아 한국 모시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는 나라를 빼앗기자 망국의 설움을 안고 누런 삼베로 된 누더기옷을 입은 채 개골산(皆骨山:현재의 금강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상(喪)을 당했을 때 삼베옷을 입어 망자(亡者)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상복(喪服)의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직물은 평직의 것이 대부분이고 염색이 곤란해서 거의 희거나 누런 천의 바탕색 그대로 사용된다. 경질섬유이기 때문에 구김살이 잘 가는 대신, 내구·내수성이 커서 옷감으로 보다 자재용으로서 많이 쓰인다. 그러나 가슬가슬하고 시원한 마섬유의 특성 때문에 여름옷감으로 좋으며, 최근에는 폴리에스터와 같은 합성섬유와의 혼방 또는 교직물이 많이 나와서 옷감으로서의 용도를 넓히고 있다. 아마포는 여름옷감·양복심감·범포 등에, 저마포는 여름옷감·어망·의료용 거즈와 붕대 등에, 대마포는 여름옷감·이불감 등에, 황마포는 포대 등에 쓰인다.

참조항목

강포, 모시, 북포, 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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