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상재

마상재

[ 馬上才 ]

요약 달리는 말 위에서 기마수 ·마상재인이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기예.

고려시대에 성행한 격구(擊毬)가 조선시대에 와서 마상재로 변화하였거나, 고려시대에 있었던 희마(戱馬)가 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상재는 임진왜란 이후 기록이 보인다. 한때는 훈련도감 관장 아래 관무재(觀武才)에서 봄 ·가을로 마상재인을 선발하여 마군에 속하게 한 마상재군이 편성된 적도 있다. 마상재는 원래 무예로 발생하여 실전에도 활용되었는데, 류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에는 마상재의 재주로써 적을 무찔렀다는 기록이 있고, 효종(孝宗) 때 북벌계획을 세워 무예를 권장할 때 마상재 기술을 가르친 일도 있다. 이 밖에는 실제 전쟁에 이용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대개 구경거리, 재주부리기 곡마(曲馬)로서 행하였다. 인조(仁祖) 때 일본에서 사신이 와서 마상재인을 보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있어 조선 통신사가 일본으로 갈 때는 마상재인 2명을 따라가게 하여 마상재 기술을 일본에 자랑하기도 하였다. 《학산록(學山錄)》이라는 일본의 기록을 보면 “조선국에는 마희(馬戱)라는 기예가 있는데 참으로 절묘하고도 기이한 재주이다. 와기(臥騎) ·도기(倒騎) ·전기(顚騎) 같은 기술은 말하자면 잡희산악(雜戱散樂) 중의 일종이다. 나는 박경행(朴敬行)이라는 제술관을 만나 글로서 대화하였는데, 그는 붓으로 써서 말하기를 ‘적진 속으로 달려들어가는 기술을 조선에서는 무예로 꼽는다. 봄 ·가을로 이 재주를 고시하여 그 우열을 가려 상을 내린다. 이와 같은 마상재인이 400∼500명 있는데, 이 기예가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유래는 이미 오래 된 것이다. 창검이 빽빽하고 깃발과 북소리 요란한 적진 속을, 이 기예로써 몸을 감추고 달려 들어가 적군의 깃발을 빼앗고 그 장수를 베어버리면 감히 대적하는 자가 없게 된다. 이런 무예는 중국에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기예는 절박한 싸움터에서 일대 장관을 이루는 무예가 아니겠는가” 하는 기록이 있다.

정조(正祖) 때 간행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마상재 부분을 보면 “말 위에서 재주 부리는 것을 원기(猿騎)라고 한다. 이것이 마상재의 시초이다. 고려 때 성행하였던 격구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상재의 재주 종목으로는, ① 주마입마상(走馬立馬上):달리는 말 위에 서서 총쏘기, ② 우초마(右超馬):우칠보(右七步)라고도 하며, 말 오른쪽에 매달려서 달리기, ③ 좌초마(左超馬):좌칠보(左七步)라고도 하며, 말 왼쪽에 매달려서 달리기, ④ 마상도립(馬上倒立):말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달리기, ⑤ 횡와양사(橫臥佯死):말 잔등에 누워서 죽은 듯이 달리기, ⑥ 우등리장신(右鐙裏藏身):속칭 우장니리(右障泥裏), 말 오른쪽에 엎드려 숨어서 달리기, ⑦ 좌등리장신(左鐙裏藏身):속칭 좌장니리(左障泥裏), 말 왼쪽에 엎드려 몸을 숨겨 달리기, ⑧ 종와침마미(縱臥枕馬尾):말꼬리를 베고 자빠져서 달리기 등의 8종목이 있다. 처음 출발할 때 말 한 마리를 타기도 하고, 쌍마(雙馬)를 몰고 나가기도 한다. 마상재인의 옷차림은 전립(戰笠)을 쓰고 더그레와 누런 베바지를 입으며, 가죽신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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