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여

동부여

[ 東夫餘 ]

요약 고대 두만강 유역에 있던 나라.

부여의 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기도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의 이름을 금와(金蛙)로 지었다. 금와가 성장하자 그를 태자로 삼았다. 그 후 상신(相臣) 아란불(阿蘭弗)의 권고로 동부여로 천도하였으며,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비(妃)로 삼았다. 금와왕에게는 전비(前妃) 소생의 왕자 7명이 있었는데, 그 중 맏이인 대소(帶素)는 금와왕의 뒤를 이어 동부여의 왕이 되었다.

유화 소생인 주몽(朱蒙)은 전비의 아들들에게 쫓겨 졸본부여(卒本夫餘)로 도망쳤으며, 후에 거기에서 고구려의 시조가 되었다.

대소왕은 고구려의 제2대 왕인 유리왕 때 고구려를 침범했으나, 고구려 제3대 왕인 대무신왕 때는 도리어 고구려군에게 패하여 동부여는 망하고 그 땅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동부여의 부흥운동이 있었으나, 고구려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 때 완전히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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