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전

동경대전

[ 東經大全 ]

요약 조선후기 동학(東學)의 창시자인 최제우(崔濟愚)가 순한문체로 지은 동학의 경전.
구분 경전
저자 최제우
시대 1880년(고종 17)

1책.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경전(經典)이다. 1863년(철종 14)에 최제우가 최시형(崔時亨)과 함께 이를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1864년 최제우의 죽음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제2대 교주인 최시형이 1880년(고종 17) 5월 9일 경전인간소(經典印刊所)를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남면 갑둔리에 설치‚ 6월 14일에 완간하였다. 〈포덕문(布德文)〉,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네 편이 중심이며, 뒤에는 여러가지 형식의 글 15편과 포덕식(布德式)‚ 입도식(入道式)‚ 치제식(致祭式)‚ 제유식(祭需式) 등의 형식을 보여주는 글이 실려 있다.

경전의 첫째 편인 〈포덕문〉은 최제우가 1861년(철종 12) 전라북도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 안에 있는 선국사(善國寺, 일명 龍泉寺)에 들어가 한 암자를 빌려 은적암(隱寂庵)이라 이름 짓고 수도하면서 지은 것으로 525자의 한문으로 되어 있다. 서학(西學)이 아닌 동학의 각도(覺道)를 알리는 최제우 자신의 선언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포덕문(布德文)〉의 뜻은 천도(天道)인 하늘의 조화로 밝은 덕을 널리 온 천하에 베풀어 보국안민(輔國安民)하고 광제창생(廣濟蒼生)하는 경문이라는 뜻이다. 오제(五帝) 이후로 성인이 나서 일동일정(一動一靜)과 일성일패(一成一敗)를 천명에 맡겨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를 순종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인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하여 천명을 돌보지 않고 천리를 순종하지 않는다고 개탄하면서‚ 당시 천주교의 유입과 서세동점(西勢東漸)을 간파하였다. 따라서 여기에는 서학에 대항해 동학을 선포하는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의 정신과 이 도를 천하에 널리 전파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잘 나타나 있다.

〈논학문(論學文)〉은 《동경대전》의 둘째 편으로 최제우가 1861년 은적암에서 집필한 총 1‚338자의 한문으로 동학을 논한 경문이라는 뜻이다. 천지조화의 무궁한 운수와 천도의 무극한 이치를 설명하였다. 서학에 대치하여 동학을 창도하게 된 연유와 각도 경위‚ 포덕을 위하여 마련하게 된 주문(呪文) 21자를 말한 다음, 어진 사람과의 문답 형식을 빌려 서학에 대비한 동학의 교리와 사상 전반을 밝혀준다.

〈수덕문(修德文)〉은 최제우가 1862년 은적암에서 새해를 맞아 각지의 문도들에게 수덕에 힘쓸 것을 당부한 경문이다. 1‚060자의 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학의 극의(極意)는 〈수심정기(守心正氣)〉의 4자에 있으므로‚ 하늘 조화의 참된 마음을 고이 지켜 공경하고 믿을 것을 말하고 있다.

〈불연기연(不然其然)〉은 524자의 한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제우가 처형되기 전 해인 1863년  10월 28일 그의 생일을 전후하여 〈흥비가(興比歌)〉와 〈8절(八節)〉,〈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 등의 글과 함께 지어 반포하였다. 이는 사상적으로 가장 원숙하고 심오하였던 만년의 저작으로 천도의 인식론적 근거를 통찰‚ 개진한 것이다. 4편의 글 다음에 실린 15편의 단문에는 선생축문(先生祝文), 강령축문(降靈祝文) 등의 여러가지 축문과 입춘시(立春詩)‚ 좌잠(座箴)‚ 화결시(和訣詩)‚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 제서(題書)‚ 통문(通文)‚ 통유(通諭) 등이 들어 있다.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