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정음

대학정음

[ 大學正音 ]

요약 1735년(영조 11) 간행된 것으로,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 원문에 당시 중국의 정음(正音)인 북방음과 속음(俗音)인 남방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책.
구분 활자본
시대 조선시대
소장 규장각

활자본이며 1책(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에는 정음, 오른쪽에는 속음을 달았는데, 토나 언해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정음류를 편찬한 역사적 배경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한자가 너무 자의(字義)에 충실한 나머지 중국 원래의 독음과는 상통하지 않는 다른 음으로 변질되어 문자로는 상통한데, 어음(語音)으로는 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어(漢語)에 능통한 문관이 거의 없을 지경이 되었고, 국가의 중요한 외교활동은 역관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현실에서 문자를 중국음으로 습득하게 하면 언어는 비록 틀려도 발음이 상통하므로 경서(經書) 등을 위주로 중국 원음을 읽히는 방안책으로 이 책을 간행하게 되었다.

세종훈민정음 창제 동기의 하나로 지적되어 온 중국 한자음 표기의 노력은 이 책이 간행된 영조 때까지 계속되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데, 그것은 이 책에 나타난 주음에 사용된 훈민정음의 문자체계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부터 우리말을 표기하는 데 불필요하였던 문자인 ‘ㆆ’과 ‘ㅱ’이 중국 한자음 표기를 위하여 이 책이 간행된 18세기에도 쓰였다. ‘ㆁ’은 초성 표기에만 쓰이고 종성에는 모두 ‘ㆁ’이 쓰였고 ‘ㄲ, ㄸ, ㅆ, ㅉ’ 등과 같이 각자 병서도 사용하였다. 각자 병서는 된소리 표기를 위한 문자로 추정되는데, 정음(북방음) 표기에만 나타나고, 속음(남방음) 표기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자음 표기에서 일관되어온 태도이다.

한편 북방음에서 종성이 ‘ㅱ’으로 표기된 예들은 모두 남방음에서 ‘ㅗ’ 또는 ‘ㅜ’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음운론적  관점에서 진경음 ‘ㅱ’과 원진모음 ‘ㅗ’, ‘ㅜ’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이 당시  중국 한자음에서  북방음과 남방음이 대립된 채 계(界)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ㅱ’이 초성으로 쓰인 경우에도 같다. 그리고 ‘넘'이 종성으로 사용된 예도 남방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과 ‘ㆆ’도 정음의 표기와 속음의 표기에 차이를 보여준다. ‘ㆆ’은 초성으로도 종성으로도 속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ㆆ’이 초성 또는 종성으로 사용된 것은 모두  북방음인 정음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는 중국 한자음 전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체계가 아니라 정음의 표기를 위한 것임을 추측하게 한다. ‘△’의 경우는 초성으로는 북방음과 남방음에 모두 사용되고 있으나, 종성으로는 북방음에만 나타나고 남방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ㆁ’이 초성으로 나타나는 것도 북방음의 경우뿐이고 남방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의 사실들은 당시 중국 한자음의 북방음과 남방음의 음운체계가 상당히 다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방점의 표기가 생략된 것은 당시 국어의 표기체계에 이미 방점 표기가 사라진 데 기인한다. 여기에 나타난 한자음이 이 책의 간행 당시의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18세기 중국 한자음 연구를 위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참조항목

대학, 맹자정음, 사서

역참조항목

경서정음

카테고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