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의 금
[ 黨錮─禁 ]
- 요약
중국 후한(後漢) 말기에 관료와 환관(宦官)이 충돌하여, 환관세력이 관료를 금고(禁錮)에 처한 탄압사건.
언제 | 중국 후한(後漢) 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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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 환관세력 |
무엇을 | 이응, 범방 등의 관료 |
어떻게 | 금고(禁錮)에 처해 탄압 |
왜 | 국정 문란 |
당고(黨錮)의 옥(獄), 당고의 화(禍)라고도 한다. 후한 10대 황제 환제(桓帝:재위 147∼167)는 외척 양기(梁冀)를 쓰러뜨리기 위하여 환관의 힘을 빌어 살해하게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관은 내정에 간섭하고 자기들의 일족을 지방으로 파견시켜 토지겸병(土地兼倂)을 행하는 등 횡포를 자행하였다. 한편 당시의 호족이나 관료 사이에는 유교주의가 성행하여 환관의 진출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세하에 지방관과 태학(太學)의 학생들은 진번(陳蕃:?∼168) ·이응(李膺:?∼169) 등을 옹립하고 시정(時政)을 비판하여 환관세력에 대항하였다. 때마침 이응이 환관과 친히 지내던 장성(張成)의 아들을 살인죄로 처형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장성은 환관과 결탁하여 이응을 무고(誣告)하였다.
166년 환제는 국정을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이응 ·범방(范滂) 등 반대파 관료 200여 명을 체포하고 이어 종신금고(終身禁錮)에 처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청절(淸節)의 선비로서 존경하였다.
환제가 죽고 외척 두무(竇武:?∼168)가 영제(靈帝)를 옹립하여 세력을 잡자 그는 진번 ·이응 등을 중임(重任)하였으며, 168년 환관세력을 일거에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환관세력에게 역습을 당하여 진번이 살해되고 두무는 자살하였다.
이와 같은 관료파 당인에 대한 대탄압으로 이응 ·두밀(杜密) 등 100여 명이 살해되고, 600∼700명의 관료파 당인들이 금고형(禁錮刑)에 처해졌다. 금고란 관리의 신분을 빼앗아 서인(庶人) 이하의 신분으로 내리는 것이었다.
두 차례의 탄압으로 관료층이 동요한 데다가 환관들이 정치를 농락하여 부패가 극심하여, 184년 지방에서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당고령은 해제되었지만, 결국 후한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