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병

남계병

[ 南啓炳 ]

요약 대한협회, 광복회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의병을 지원하고 군자금 모금에 힘썼다. 후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모집했다.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기관을 파괴하여 체포되었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77 ~ 1963
별칭 별명 세혁(世赫)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경북 영덕(盈德)
주요수상 건국포장(1977)

별명 세혁(世赫). 경북 영덕(盈德) 출생.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 대한협회에 가담하였고 박경종(朴慶鍾)·이상룡(李相龍) 등과 의병동원을 협의하여 신돌석(申乭石) 의진(義陣)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으며 100여 두락의 토지를 가난한 집에 나누어 주었다. 1908년 이상룡과 사재(私財) 20여 두락을 매각하여 차온표(車穩杓)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군자금을 전담하여 일본군과 교전하게 하였다.

1909년 협창학교를 설립하여 항일사상을 고취하였고, 1910년 이후 만주로 망명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광복회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 김동삼(金東三)·김원봉(金源鳳)과 독립군 모집에 헌신하였다. 1919년 9월 3일 경북 영해(寧海)에서 군중 2,000여 명을 모아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우편국·주재소·면사무소를 습격·파괴한 일로 체포되어 1921년 10월 1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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