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존

김인존

[ 金仁存 ]

요약 고려시대의 문신 ·학자. 선종 ·헌종 ·숙종의 세 임금을 섬겼으며,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당대의 석학으로, 중요한 국사마다 반드시 왕의 자문을 받았다. 1106년 최선 등과 《해동비록》을 산정했으며, 박승중 등과 《시정책요》, 《정관정요주》를 찬진하였다.
출생-사망 ? ~ 1127
처후(處厚)
시호 문성(文成)
별칭 초명 연(緣)
주요수상 익성동덕공신(翊聖同德功臣)
주요저서 《해동비록》 《시정책요》 《정관정요주》

자 처후(處厚). 시호 문성(文成). 초명 연(緣).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을 거쳐 내시(內侍)로서 선종 ·헌종 ·숙종의 세 임금을 섬겼다. 개성부사 ·상서예부원외랑(尙書禮部員外郞) ·기거사인(起居舍人) ·기거랑(起居郞)을 역임하고, 왕의 뜻에 거슬려 한때 좌천되었다. 1105년 숙종이 죽자, 고부사(告訃使)로 요(遼)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종 때 여진(女眞)이 9성(城)의 반환을 요구하자, 국방상의 난점과 북방백성의 희생을 들어 그 환부(還附)를 주장하여 이를 반환하게 하였다.

뒤에 비서감(秘書監)으로 송(宋)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상주국(上柱國)에 올랐다. 그 때 요(遼) ·금(金)의 싸움으로 국경이 소란해지자 판서북면병마사(判西北面兵馬使)로 부임하여 변방의 안전을 기하였다. 인종 때 척신 이자겸(李資謙)이 권세를 잡자 사의를 표명하고, 스스로 한직에 취임하였다. 뒤에 익성동덕공신(翊聖同德功臣) ·수태부(守太博) ·문하시중(門下侍中) ·이부판사(吏部判事)가 되었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당대의 석학(碩學)으로, 중요한 국사(國事)마다 반드시 왕의 자문을 받았으며, 앞서 1106년(예종 1) 왕명으로 최선(崔璿) ·이재(李載) 등과 《해동비록(海東秘錄)》을 산정(刪定)했으며, 박승중(朴昇中) 등과 《시정책요(時政策要)》 《정관정요주(貞觀政要註)》를 찬진(撰進)하였다. 예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역참조항목

김영석, 강릉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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