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연

김유연

[ 金有淵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헌종 ·고종 때 여러 관직을 지냈다. 42년에 걸친 관직 생활 중 2차례에 걸쳐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면서, 러시아와의 국경문제와 통상사무 등의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등 관북지방의 통치에 큰 업적을 남겼다.
출생-사망 1819 ~ 1887
본관 연안
원약
약산
시호 정익
활동분야 행정, 외교

본관 연안(延安). 자 원약(元若). 호 약산(藥山). 시호 정익(貞翼). 영의정 재찬(載瓚)의 손자. 헌(김유연 본문 이미지 1)의 아들. 목사(牧使) 영의 양자. 1844년(헌종 1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조참의 ·승지 ·이조참판 ·함경도관찰사 등을 거쳐, 1868년(고종 5)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1869년 정사(正使)로 청(淸)나라에 다녀왔다. 1871년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어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뒤, 관북지방의 안무사(安撫使)로 나가 많은 폐단을 바로잡는 데 공을 세웠다.

1880년 다시 함경도관찰사로 나갔고 이어 호조판서 ·변리통리내무아문사무(辨理統理內務衙門事務) ·독판군국사무(督辦軍國事務) ·의금부판사, 공조 및 이조판서 등을 거치고, 1886년 우의정에 올랐으며 이듬해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로 죽었다. 42년에 걸친 관직 생활 중 2차례에 걸쳐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면서, 러시아와의 국경문제와 통상사무 등의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등 관북지방의 통치에 큰 업적을 남겼다.

참조항목

김재찬, 증광시

역참조항목

김만수, 연안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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