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진

김복진

[ 金復鎭 ]

요약 한국의 근대 조각가.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화단에 도입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죄로 투옥되었고, 출옥 후 불상 조각을 하며 학교의 주문으로 초상조각 제작에 특히 정열을 쏟았다.
조각가 김복진 전시터

조각가 김복진 전시터

출생-사망 1901 ~ 1940.8.18
정관(井觀)
국적 한국
활동분야 예술-조각
출생지 충청북도 청원
주요작품 《나상(裸像)》 《목》(1936) 《불상습작(佛像習作)》(1936) 《나부(裸婦)》(1937)

문인(文人)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은 그의 동생이다.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화단에 도입하였다.

1920년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도일(渡日),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 박승희(朴勝喜) ·이서구(李瑞求) ·김기진 등과 연극단체인 토월회(土月會)를 창립, 방학을 이용하여 고국공연을 하는 등 예술적 ·지적인 내면 세계를 다져나갔다. 1924년 일본의 제국미술원전람회(제전)에서 작품 《나상(裸像)》이 입선하였고, 1925년 조각가가 되어 귀국하여 곳곳의 학교에서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통하여 《3년 전》(1925) 《여(女)》(1926) 등을 발표하였다. 1928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죄로 투옥되었고, 옥중에서는 목조불상(木彫佛像) 제작에 전념하던 끝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출옥 후 제2의 인생을 맞은 그는 ‘선전’에 《목》(1936) 《불상습작(佛像習作)》(1936) 《나부(裸婦)》(1937) 등을 출품하였으며, 학교의 주문으로 초상조각 제작에 특히 정열을 쏟았다.

1939년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그의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하여 법주사의 대불 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인 1940년 선전 출품작인 《소년》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대불은 미완성인 채 요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