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경

김방경

[ 金方慶 ]

요약 고려시대의 명장.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고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때 참전했으나 두 번 다 태풍과 전염병으로 실패하고 돌아왔다.
출생-사망 1212 ~ 1300
본관 안동
본연
시호 충렬

본관 안동(安東). 자 본연(本然). 시호 충렬(忠烈).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며, 음보(蔭補)로 16세에 산원(散員)이 되어 식목녹사(式目錄事)를 겸하고,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거쳐 1248년(고종 35) 서북면병마판관(西北面兵馬判官)으로 있을 때, 몽골의 침입으로 주민들과 위도(葦島)에 들어가 저수지를 만들고 농토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 하였다. 1263년(원종 4) 어사대지사(御史臺知事)에 승진되고 후에 상장군(上將軍)으로 있다가 남경유수(南京留守)로 좌천되었으나 곧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형부상서(刑部尙書)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1269년(원종 10)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을 때, 임연(林衍)이 원종(元宗)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창(淐)을 세우자 원나라 세조(世祖)가 보낸 맹격도(孟格圖)의 2,000명의 군사와 협력하여 임연을 치려고 동경(東京)에 이르렀으나 왕이 복위된 것을 알고 베이징[北京]으로 돌아갔다. 1270년(원종 11) 장군 배중손(裵仲孫) 등이 승화후(承化侯)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삼별초(三別抄)의 항쟁을 일으켜 진도(珍島)로 들어가 연안을 침범하자, 이듬해 몽골의 장군 흔도(忻都) ·홍다구(洪茶丘) 등과 함께 진도를 함락시키고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守太尉中書侍郞平章事)가 되었다.

김통정(金通精) 등이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탐라(耽羅)에 들어가서 항전하자 1273년(원종 14) 행영중군병마원수(行營中軍兵馬元帥)로서 흔도 ·홍다구와 함께 또다시 삼별초를 쳐서 완전히 평정하였다. 1274년 충렬왕(忠烈王)이 즉위하자, 원나라에서 합포(合浦:馬山)에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을 두고 일본을 정벌할 때, 중군장(中軍將)으로 출정하여 2만 5000여 명의 여 ·원연합군(麗元聯合軍)과 함께 쓰시마섬[對馬島]을 공략하고 일본 본토로 향하던 도중 규슈[九州]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실패하고 돌아왔다.

1281년(충렬왕 7) 원나라가 다시 일본을 정벌할 때 고려군 도원수로서 종군하여 이키섬[壹岐島]을 공략하고 하카타[博多]에 이르러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번에도 태풍과 전염병으로 실패하고 돌아와 벼슬을 사양하고,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에 삼중대광 ·첨의중찬 ·전리사판사 ·세자사로서 물러나고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에 봉해졌다. 충직하고 근검하였으나 부하 장병들의 민폐를 막지 못하고 일본 정벌 후의 불공평한 논공행상 등으로 상하 민심을 잃어, 89세로 병사하였을 때 예장(禮葬)을 치르지 못하고 고향 안동(安東)에서 장례를 지냈다. 충선왕(忠宣王) 때 다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이 추증되었다.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