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성

김극성

[ 金克成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수찬 · 의정부 사인을 거쳐,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 4등으로 책록되고, 광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경상도 관찰사 · 공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정조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이 되었다.
수현사

수현사

출생-사망 1474 ~ 1540
본관 광산
성지
청라 ·우정
시호 충정
별칭 광성부원군
주요저서 《우정집》

본관 광산(光山). 자 성지(成之). 호 청라(靑蘿)·우정(憂亭). 시호 충정(忠貞). 1496년(연산군 2) 사마시에 장원, 1498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에 올랐다.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 명나라에 다녀와서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 수찬(修撰)·의정부 사인(舍人)을 거쳐,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책록되고, 광성부원군(光成府院君)에 봉해졌다. 경상도관찰사·공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521년(중종 16)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大司憲)이 되었다.

1523년 예조판서·이조판서·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찬성(贊成)이 되고, 김안로(金安老)의 모함으로 정광필(鄭光弼)과 함께 흥덕(興德: 전북 고창)으로 유배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다시 기용되어, 우의정·영의정에 이르렀다. 문집에 《우정집》이 있다.

역참조항목

광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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