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김광현

[ 金光炫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전서 · 해서를 잘 썼다. 문집에《수북유고》, 작품에 글씨《홍양청난비》,《민기신도비》,《영상이탁묘비》등이 있다.
출생-사망 1584 ~ 1647
본관 안동
회여
수북
주요작품 《홍양청난비》 《민기신도비》 《영상이탁묘비》 등

본관 안동. 자 회여(晦汝). 호 수북(水北). 우의정 상용(尙容)의 아들. 1625년(인조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관정자(正字) ·수찬 등을 지냈다. 정묘호란 때 이조판서 심열(沈悅)의 종사관이 되었다. 1632년 부제학(副提學) 때, 사친추숭(私親追崇)을 하려는 인조에게 아부하는 대사간 유백증(兪伯曾)을 탄핵하였다가 함경도 삼수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재변(災變)으로 풀려났으며, 병자호란 때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갔다. 이때 강화 함락으로 아버지가 분신자하여 그 복상으로 홍주(洪州: 충남 홍성)에 내려갔으며, 호종(扈從)의 공으로 사간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뒤에 청주목사로 있으면서 청나라 연호가 적힌 문서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1646년 민회빈(愍懷嬪) 강씨가 사사(賜死)되자, 그녀의 오빠 강문명(姜文明)이 그의 사위인 관계로 이조참판에서 순천부사로 좌천되었으며, 이듬해 그곳에서 죽었다. 전서 ·해서를 잘 썼다. 문집에 《수북유고》, 작품에 글씨 《홍양청난비(洪陽淸難碑)》 《민기신도비(閔箕神道碑)》 《영상이탁묘비(領相李鐸墓碑)》 등이 있다.

역참조항목

미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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