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비가

금은비가

[ value ratio between gold and silver , 金銀比價 ]

요약 동일중량의 순금 및 순은의 가격 비율.

상품시장에서 성립한 가격의 비율을 시장비가(市場比價)라 하고, 법률로 정하여진 일정한 교환 비율을 법정비가라고 한다.

《신성화폐》의 저자 B.라움에 의하면, 금은비가는 고대로부터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 1:13.33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수급관계에서 설명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며, 태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의 금과, 달을 나타내는 것으로서의 은이라는 사상에서 금은비가는 이 두 천체(天體)의 회전시수(回轉時數)의 비율에 기인하고 있다는 레만 하우프트(Lehmann Haupt)의 설명이 옳다고 하였다.

금은이 아직 하나의 상품으로 생산되어 시장에 유통되고 있지 않았던 시대에는 가격비율이 극히 자의적(恣意的)이어서, 엄밀히 계산된 생산비를 기초로 하여 시장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금은비가가 언제나 획일적으로 1:13.33이었던 것은 아니고, 나라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즉, 로마제국(帝國)시대에 1:12의 비가(比價)가 유지되고 있었을 때, 스칸디나비아 ·발트해 제국에서는 1:8, 인도 ·아라비아 ·에스파냐 ·아시아 등지에서는 대개 1:6 내지 1:6.5의 저위(低位)에 있었다.

이와 같은 비가의 차이를 틈타서 금은이 국제적으로 이동되었다. 유럽 제국에서는 1250년부터 1600년까지의 기간 동안 피렌체에서는 최소 1:9.33으로부터 최대 1:13.62까지, 베네치아에서는 1:10.84로부터 1:14.44까지, 영국에서는 1:9.29로부터 1:12.59까지 변동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1545년 볼리비아 포토시의 은광 발견 이후의 은의 증산으로 인하여 유럽의 금은비가는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되어, 1500년대에 대체적으로 1:11.30 내지 1:11.80의 비가이던 것이 1660년대에 들어 와서는 1:15의 비가로 안정되었고, 그후의 70년간은 금은복본위제의 유지로 1:15.5의 비가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1870년 이후 세계적인 금본위제로의 이행으로 금은비가는 급속히 차이가 벌어져 1870년대에는 최대시 1:18.39, 80년대에는 1:22.10, 1890년대에는 1:35.03, 1900년대에는 1:39.74, 1910년대에는 1:40.48, 1920년대에는 1:53.74라는 식으로 은가격이 점차 하락되어 갔다.

역참조항목

포토시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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