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수학

그리스수학

[ Greek mathematics ]

요약 고대 그리스에서 과학적 수학으로서 형성된 수학이다.

그리스철학의 한 부문으로서 탈레스와 더불어 발생한 그리스수학은 자연과학·철학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약 2000년 후에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으로 발전하였다. 그 발전과정은 물리학의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의 발전과 유사하다.

바빌로니아 수학의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고대 그리스의 수학적 지식은 고대 오리엔트 제국에 근원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과학으로서의 수학'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볼 때, 수학사에서의 그리스인의 지위는 확고부동하다.

그리스수학의 특징 중 하나는 수학의 추상화이다. 오리엔트 제국으로부터 그리스인이 획득한 수학적 사실은 산술의 계산, 기하학적 측정, 작도와 같은 실용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당시 노예제도를 실시하던 그리스에서는 계산술(計算術:logistike)과 같은 실용적인 기술은 노예들만이 하는 일이라고 경멸하고, 자연철학자·수학자들은 수론(數論:arithmetike) 같은 추상적인 문제만을 연구하였다.

시작과 발전

그리스의 수학은 여러 학파가 발전시킨 자연철학의 요람 속에서 육성되었으나, 그 단서를 준 수학자는 이오니아학파의 탈레스였다. 이어서 피타고라스학파는 수론을 발전시켜 산술평균·기하평균·조화평균·비례 등을 연구하였고, 기하학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그리스의 3문제(원의 넓이의 제곱화 문제, 임의의 각의 3등분 문제, 정육면체의 倍積問題) 등을 연구하면서 서서히 기하학적 논증을 완성해 갔다.

그러나 피타고라스학파의 수학은 무리수의 발견으로 타격을 입어, 계량적인 기하학이나 닮은꼴의 이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리수론은 19세기 전반의 K.T.바이어슈트라스, E.카르탄, J.W.R.데데킨트의 연구에 힘입어 현대수학으로 이어졌지만, 그리스인은 무리수가 발견된 후, 선분과 같은 기하학적 양이 유리수보다 훨씬 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하학적 대수'를 발전시켰다.

기호가 결여된 그리스 대수학은 기하학적 대수, 이를테면 두 수의 곱을 두 변의 길이의 곱, 즉 직사각형의 넓이로 나타내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나, 그것은 2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다. BC 480년경부터 아테네가 문화의 중심지가 되자, 여기에 소피스트 일파가 등장하였다. 소피스트의 연구 초점은 '그리스의 3문제'였는데,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푸는 이 문제에 많은 수학자들이 지식을 동원하였다. 이 문제의 연구에서 초월곡선이 발견되었으며, 이것을 사용하여 각의 3등분법을 발견한 히피아스, 배적문제에서 달 모양의 넓이의 제곱화에 성공한 키오스의 히포크라테스가 등장하였고 안티폰은 원의 넓이의 제곱화 연구에서 거진법(去盡法:method of exhaustion)을 창시하였다. 또 위와 같은 연구의 철학적 측면에서 제논의 역설이 탄생하였다.

체계화

아테네학파의 최후를 장식하는 플라톤학파는 의식적으로 엄밀한 정의·공준(公準)·공리에서 출발하여 논증을 하는 해석법을 연구하여 그 후의 수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 자극은 마침내 입체기하의 연구를 재촉하게 되어, 메나이크모스는 원뿔곡선을 발견하였다.

플라톤은 자와 컴퍼스 이외의 방법에 의한 연구는 '기하학의 장점을 버리는 파괴행위'라 하여 기하학에서는 직선(자)과 원(컴퍼스) 이외의 선을 축출해 버렸는데, 이 플라톤학파의 사상에 따라 수학을 체계화한 것이 알렉산드리아학파의 유클리드가 완성한 《기하학원본 Stoicheia》 13권이다.

이 그리스 수학의 황금시대 이후, 2명의 수학자가 그리스수학의 최후를 장식하였다. 한 사람은 고대 최대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로서, 그는 원의 구적에 무한소(無限小)에 의한 적분합(積分合)의 방법을 창시하였으며, 또 한 수학자는 원뿔곡선의 성질을 연구한 아폴로니오스이다. 이 밖에도 삼각법을 창안한 히파르쿠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