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족부인

구족부인

[ 具足夫人 ]

요약 신라 제37대 선덕왕의 왕비.
출생-사망 ? ~ ?
별칭 구족왕후(具足王后)
국적 신라
활동분야 선덕왕의 비
시대 남북국시대

신라의 제37대 선덕왕(宣德王, 재위 780∼785)의 왕비로 구족왕후(具足王后)라고도 한다. 성(姓)은 전해지지 않으며 구족(具足)이 존호(尊號)인지 시호(諡號)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삼국사기》의 선덕왕 조에는 ‘구족부인(具足夫人)’이라는 명칭으로 전해지며, 각간(角干) 양품(良品)의 딸로 아찬(阿湌) 의공(義恭)의 딸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원성왕 조에는 ‘구족왕후(具足王后)’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왕력’ 편에도 각간 낭품(狼品)의 딸인 구족왕후라는 명칭으로 전해진다.

일찍이 선덕왕과 결혼하였으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780년(혜공왕 16) 이찬 김지정(金志貞)의 반란이 진압되는 과정에서 혜공왕(惠恭王, 재위 765∼780)이 죽고 선덕왕이 왕위에 오른 뒤에 왕비로 봉해졌다. 그리고 785년(선덕왕 6) 정월에 선덕왕이 죽고 상대등 김경신(金敬信)이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으로 왕위에 오른 뒤에는 그 해 음력 3월에 외궁(外宮)으로 나가 생활하였다. 《삼국사기》에는 당시 원성왕이 구족부인에게 3만4천석의 조(租)를 지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참조항목

선덕왕, 원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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