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체가

경기체가

[ 景幾體歌 ]

요약 고려 중엽 이후에 발생한 장가(長歌).

또 ‘경기하여가(景幾何如歌)’라고도 한다. 노래 말미에 반드시 “경(景) 긔 엇더경기체가 폰트 이미지 1니잇고” 또는 “景幾何如”라는 구(句)를 붙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고려 중엽 이후로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주로 한학자들에 의하여 읊어졌는데, 고려시대의 것으로는 고종 때의 제유(諸儒)의 작으로 알려진 《한림별곡(翰林別曲)》과 고려 말의 안축(安軸)이 지은 《관동별곡(關東別曲)》 《죽계별곡(竹溪別曲)》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것으로는 권근(權近)의 《상대별곡(霜臺別曲)》, 변계량(卞季良)의 《화산별곡(華山別曲)》, 정극인(丁克仁)의 《불우헌곡(不憂軒曲)》과 작자 미상의 《오륜가(五倫歌)》 《유림가(儒林歌)》 《연형제곡(宴兄弟曲)》, 이 밖에도 김구(金絿)의 《화전별곡(花田別曲)》, 권호문(權好文)의 《독락곡(獨樂曲)》 등이 있다.

처음 발생시에는 무신들에 의하여 초야로 쫓겨난 문신들이 향락적 ·유흥적인 생활과 그들 심상(心像)을 읊었는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그 형식을 본떠 조선 건국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기도 하였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는 한글을 약간 섞어 짓기도 하였으나, 그 이전에는 한학자들이 순전히 한문으로 지었다. 따라서 일반대중과는 유리된 일종의 기형적인 문학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와 같은 점에서 《청산별곡(靑山別曲)》 《가시리》 등 고려의 속요와 대조를 이룬다. 이들 속요는 일반대중 가운데에서 발달하여 구전되었기 때문에 보통 그 작자를 알 수 없으나 경기체가는 한학자라는 특수층이 한자만으로 지었기 때문에 대개 작자가 알려져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경기체가는 사물이나 경치를 나열 ·서술하는 것이 특징인 데 대하여, 속요는 사랑의 노래가 흔하며 사랑도 육감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경기체가와 속요가 그 형태상 특질이 일치한다 하여 이를 통틀어 ‘고려별곡(高麗別曲)’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형태상으로 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음수율(音數律)은 주로 3음절이 우세하다. 둘째, 음보율(音步律)은 일반적으로 3음보이다. 셋째, 구수율(句數律)은 6구를 기준으로 하여 다소의 가감을 보인다. 넷째, 대체로 전후 양절(兩節)로 구분된다. 다섯째, 일률적으로 수련(數聯)이 중첩되어 하나의 가요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별곡은 신라의 향가가 발원적(發願的)인 기능을 잃고, 나례(儺禮) ·잡희(雜戱) ·백희(百戱) 등 무대 위에서 불리는 무악곡(舞樂曲)이 요청됨에 따라서 생겨난 형식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