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령구

겁령구

[ 怯怜口 ]

요약 고려 후기에 고려 국왕의 왕비가 된 원나라의 공주를 따라온 사속인(私屬人).

‘집안 아이’라는 뜻의 몽골어 게링구(Ke-ling-k’ou)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274년(충렬왕 즉위) 원나라 황실과 처음으로 혼인관계를 맺은 충렬왕이 왕비인 제국공주(齊國公主)와 함께 귀국했을 때에 공주를 따라온 데서 비롯된 원나라 제도이다. 이 때 수행한 인물은 인후(印侯)·장순룡(張舜龍)·차신(車信)·노영(盧英)·정공(鄭公) 등이었다. 1298년 충선왕이 보탑실린(寶塔實憐) 공주를 데려왔을 때에도 활활불화(闊闊不花)·활활대(闊闊歹) ·철리(徹里) 등의 겁령구가 따라왔다.

이들은 공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고려·원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고위 관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관직에 상관없이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고 사전(賜田)을 지급받거나 토지를 탈점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특히 충렬왕 때 겁령구들은 국왕 측근세력이 되어 충선왕과 대립할 정도로 정치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원나라가 몰락하는 공민왕 때까지 원나라 공주가 고려왕비가 되어 올 때마다 겁령구들이 수행했지만 충렬왕 때처럼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역참조항목

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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