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중
[ 姜弘重 ]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회답부사(回答副使)로 일본에 다녀와 화포술(火砲術)을 전하였다. 강원도관찰사, 동지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강홍중묘
출생-사망 | 1577 ~ 1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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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진주 |
자 | 임보 |
호 | 도촌 |
활동분야 | 정치 |
본관 진주(晋州), 자 임보(任甫), 호 도촌(道村). l603년(선조 36) 사마시를 거쳐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조랑(曹郞) ·통례(通禮)를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문사랑(問事郞)으로서 광해군 때 횡포를 자행하던 대북파(大北派)를 다스렸다.
승문원판교로 있다가 회답부사(回答副使)로 일본에 다녀온 후 군자감정이 되었다. 이때 일본의 화포술(火砲術)을 전하였다. 그 후 강원도관찰사 ·동지의금부사 등을 거쳐 성천부사가 되었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