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신무왕(神武王)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민애왕(悶哀王)을 축출하고 839년 왕위에 오른 뒤 장보고에게 이제까지 신라에서는
없었던 감의군사라는 관직을 내리고 식읍(食邑) 2,000호(戶)를 주어, 그에 대한
논공행상을 하였다. 신무왕이 죽고 문성왕(文聖王)이 즉위한 뒤 장보고에게는 다시
진해장군(鎭海將軍)이라는 칭호가 내리는데, 감의군사나 진해장군과 같은 호칭은
골품체계상(骨品體系上) 신분적 제약을 받던 장보고에 대한 특별한 배려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