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유적 발견?!배달국 존재했을까?

홍산유적 발견?!배달국 존재했을까?

작성일 2008.06.04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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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의 결정판 ‘요하문명론 (遼河文明論)’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양학부 교수, 사회사상, 한국문화사)


1. ‘동북공정’의 후속으로 ‘요하문명’을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에서는 그 후속 논리로 요동과 요서를 포함한 만주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하문명권’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그 요하문명권 내의 모든 고대 민족들은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결국,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들의 최종 목표는 세계 최고(最古)의 ‘요하문명’을 바탕으로 ‘대중화주의’를 완료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모든 공정이 완료되는 순간 고구려, 발해는 물론이거니와 이 지역에서 발원한 고조선까지도 완벽하게 중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이제까지 중국은 중국 역사의 근원을 북경원인의 출토지인 북경 인근의 구석기시대와 황하 중류의 신석기시대 앙소문화(仰韶文化)를 포함하는 ‘황하문명권’으로 잡고 있었다. 앙소문화는 기원전 3000년까지 올라가는 농경 신석기문화로, 유목을 바탕으로 한 북방문화와는 구별된다. 예로부터 중화민족은 만리장성을 ‘북방한계선’으로 하여 북방 민족들과는 분명한 경계를 두었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이후 장성 밖 동북 만주지역에서 중원문화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더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됐다. 이 지역 신석기문화인 소하연(小河西)문화는 기원전 5500년, 사해(査海)문화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간다. 특히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가고 대규모 적석총과 제단이 확인된 요하(遼河) 일대의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발견은 중국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요하 일대의 각 유적에서는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많이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내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었던 것이다. 한반도는 이 ‘요하문명권’을 바탕으로 중원문명을 흡수하며 역사를 형성해 왔고, 중국은 이러한 요하문명권과 한반도의 연계성을 단절하고,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만드는 작업을 국가의 전략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80년 초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하려는 중국은, 황하문명권보다 이르고 발달된 ‘요하문명권’을 중화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재정립하고 있다. 곧, ‘중국의 요하문명권’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보다 이른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05년 7월 24-31일까지 적봉에서는 홍산문화 명명 50주년을 기념한 <홍산문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학자 100여명과 외국의 학자 15명을 초대하여 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중국 학자들도 홍산문화의 주인공을 예맥족의 문화로 본다. 그러나 이런 학술대회를 통해 중국의 홍산문화를 주도한 예맥족들이 남하하여 고구려 등을 세운다는 논리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6년 6월부터 9월까지 심양 요녕성박물관에서 <요하문명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의 핵심 주제인 ‘화하일통(華夏一統)’은 중국(華夏)이 요하문명권을 통일(一統)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론한다.

이런 요하문명권을 확립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9차 5개년 계획인 ‘9.5계획(1996-2000)’에서는 ‘하상주단대공정’이 진행되었다. 대대적인 발굴, 연대 측정, 일식·월식 기록의 비교 연구 등을 통해서 하?상?주의 존속 연대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하(夏)나라 존속연대( B.C. 2070 - B.C. 1600)의 공식화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 올린 것이다.

‘하상주단대공정’의 후속 작업으로 ‘10.5계획(2001-2005)’의 일환인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시행하고 있다.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은, (1)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3황 5제’의 시대까지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 황제이 손자인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과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 두 씨족 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지역에서 살면서 모든 북방 민족들의 시조가 되었으며,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의 핵심인 홍산문화는 고양씨 전욱 계통에 의한 문명이며, (3)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임을 밝히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요하문명권’을 통해 21세기 ‘대 중화주의’의 청사진을 그려가려는 중국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역사적으로 한민족과 경계를 다투던 만주지역을 확실하게 중국사로 편입해서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논란이 일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대 한국(혹은 한반도) 전략’의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인 전략이 동북공정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인다.


3. <요하문명전> 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적인 내용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할 것은, (1) 제1전시실에서 보듯이 ‘중화문명의 첫 번째 서광이 요하 유역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과, (2) 제2전시실에서 보듯이 이 지역이 ‘상·주 시대부터’ 중원왕조에 속해 있었고, 이 시기에 소수민족들은 이미 ‘다원일체(多元一體)’의 관계로 중화민족 안에 들어왔다는 시각, (3) .제3전시실에서 보듯이 진(秦)·한(漢) 시대를 기점으로 이 지역이 중원왕조의 판도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고구려를 포함한 각 소수민족들이 ‘중국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민족 대융합’을 통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는 시각이다.

이런 요하문명권 논리를 바탕으로 동북공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경철화(耿鐵華: 통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는 “요서 지방에서 발생한 홍산문화가 서쪽으로 가서 은나라를 세우고, 동쪽으로 옮겨와 고구려와 부여 같은 나라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에서는 아즈텍문명, 마야문명을 일으킨 이들도 상나라의 후예들이라는 논리도 개발하고 있다.


4.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하상주단대공정 → 중화문명탐원공정 → 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역사관련 공정들은 거대한 ‘대(大) 중화주의’ 건설 전략의 일부이다. 동북공정은 ‘대 중화주의’의 청사진인 ‘요하문명권’밑그림을 그려 가는데 방해가 되는 동북지역의 논란거리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망라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들이 정리되면, ‘중국’의 ‘요하문명권’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를 제치고 1만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하상주단대공정을 건의했다는 청화(靑華)대학 송건(宋建) 교수의 꿈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었을 해야 할 것인가? 새롭게 출범할 동북아역사재단은 요하문명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동북공정을 제대로 다시 되 짚어보자......

 

최근 ‘백두산공정’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또 다시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의 열기가 높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동북공정을 중국의 21세기 대중화주의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다. 중국이 말하는 ‘동북’이란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을 모두 지칭한다. 동북공정은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를 중국 민족과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고구려사뿐만이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도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동북’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들이 신화적 인물인 황제(黃帝)의 손자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과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두 씨족 부락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며,따라서 당연히 중화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고구려,발해는 물론 고조선의 역사와 민족까지도 중국의 역사와 중화민족에 속한다는 게 중국의 주장이다.

둘째,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 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 관련 공정은,중국이 21세기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국가적 전략이다.

9·5계획(1996∼2000년)의 일환으로 시작된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대대적인 유적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고대 왕조인 하(夏),상(商),주(周)의 존속 연대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하(夏)나라 존속연대(BC 2070∼BC 1600년)의 공식화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 올린 것이었다. 10·5계획(2001∼2005년)의 일환으로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전설적인 ‘3황 5제’의 시대까지 중국의 ‘역사시대’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년 전으로 끌어 올리려는 것이다.

이런 역사 관련 공정들의 최종적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랴오허(遼河) 일대를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서는 1만년 역사의 새로운 문명권으로 부각시키려는 ‘랴오허문명론’이 그것이다. 사실 동북공정은 이러한 거대한 국가전략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셋째,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양한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먼저 1992년 한·중 수교와 동시에 ‘치우(蚩尤)’를 중화민족 3명의 조상 가운데 하나로 끌어안았다. 그것이 1992년부터 1997년까지 허베이성 탁록현(?鹿縣)에 건설한 귀근원(歸根苑)과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다. 현재 중화삼조당 안에는 5.5m 높이의 치우,황제,염제의 상이 있고,이들은 모두 중화민족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다.

또한 단군역사의 웅녀(熊女)는 2001년 9월18일 연변 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국가삼림공원(滿天星國家森林公園) 안에 ‘백의신녀(白衣神女)’라는 이름으로 높이 18m,무게 520t의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든 백의신녀는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변신한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거대한 국가전략을 바탕으로 대한반도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출범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관료와 역사학자들로 구성된단다. 우리에게는 큰 틀에서 구체적인 것을 깊이있게 볼 수 있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필요하다. 동북공정이 아직도 ‘고구려공정’쯤으로 보이는가?



 

<사진 : 길림성의 웅녀 조각상>

 


중국의 동북공정이 단순한 역사왜곡이 아니라 정치적 침략행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이북, 만주지방에서는 중국의 한족과는 관계가 없고 오히려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원전 3500년전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곰토템을 가진 모계사회이며 놀라운 것은 3, 9, 81등 천부경의 원리로 만들어진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최고의 문명을 "홍산문명(紅山文明)"이라고 하는데 중국은 이 문명을 한족의 문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홍산문명이 그들의 의도처럼 한족의 문명이 되어버리면 환웅,단군,웅족의 모든 뿌리가 중국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한민족은 한족의 아류로 전락하게 됩니다.

 

<출처>국학원 

 

(필자의 의견)고조선은 신석기 이전의 문명이 아니라 청동기 문명입니다.그래서 홍산유적은 환웅이 지배하던 환국(배달국)의 유적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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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홍산문화(紅山文化)는 만주지역의 신석기문화를 말합니다.

1935년경에 발견되었으며 채도(彩陶)와 세석기(細石器)가 공존했던 신석기시대문화입니다. 1954년 경에 "홍산문화"로 명명되었습니다.

 

지리적인 위치는 현재 내몽고 적봉시를 북단으로, 요녕성 조양시, 하북성 북부지역을 남단으로, 요녕성 통료시, 금주시를 동단으로 하는 지역입니다. 지금의 요하 서쪽, 북경의 북쪽지방이 됩니다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紅山(홍산)이라는 산이 있다. 몽골사람들이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 이 붉은 바위산 인근에서 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과 신전()`적석총() 등 거대한 후기 신석기 문화가 발견됐다. 100년 전의 일이다. 중국 요녕성과 내몽골, 하북성 경계의 燕山(연산) 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 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홍산문화라고 부른다

 

 

홍산문화 발견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는데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각국 언론들은 ‘5천 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일대는 현재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기원전 3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가면과 玉()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국내 학자들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고조선(청동기 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신석기 시대)이 자리했던 곳이라고 주장한다. 즉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이다.

 

발견의 위치와 그 파장

황하문명보다 고대국가를 먼저 형성시킨 문명이 요녕에서 발견되었는데 발해만 북쪽에서 신석기문명 중 가장 주목할 문명이 홍산문명입니다.

이 문명의 발견으로 중국은 황하중심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게 되었으며 '다중심문화론'을 인정하고 산동에서 발견되는 북신문화,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가 바로 이 홍산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홍산문명이 바로 한()민족의 나라인 고조선의 중심지로 인정되는 요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한국학계의 일부에서도 홍산문명을 보고 고조선이 실제로 BC. 2333년에 건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부근에서 발원한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또한 고대 황화중심의 한()족이 아닌 환()..즉 한()민족에 가깝다는것이 중국 사학계의 터부시 되는 고민입니다. 이 문명은 또한 강단 사학계를 '반도중심의 식민사관'이라 비판했던 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한 유적으로 성곽과 왕궁터가 발견되므로 고조선의 건국전에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나오는 환국이 바로 홍산문명(BC.4500~BC.2500)이고 홍산문명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BC.6000~BC.5000)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매도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홍산문명은 요녕지역과 내몽고 동부지역에 넓게 전개된 BC.4,000년의 신석기-중기에 해당하는 2단계 신석기문화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해문화와 연속고선문계 토기와 세석기등을 융합하여 한 단계 발전하여 전개 되었고 그 후에 하가점-하층문화에 연결되며 중국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동이족(東夷族)의 활동영역을 문헌으로 보면 하북성 동북부와 산동지역 그리고 양자강 하류지역인데 산동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신석기유적은 북신문화이고 북신문화는 BC.5000년전까지 소급되며 황하의 자산- 배리강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BC.4500년경에 이 지역에 있었던 대문구문화와도 직접적인 연원관계에 있습니다. 대문구문화는 하남성서쪽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동이계(東夷系)문화로 추정되고 있고 이후의 용산문화에 연결됩니다.

 

 

문명의 특징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은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홍산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인데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돌널무덤)가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화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였고 주()나라시대에 들어서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역사에서 홍산문명과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며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이용해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백제에도 계속해서 계승되는 한()민족 고유의 풍습이기도 합니다

이 곳 홍산문명은 중국의 사서에 나오는 헌원과 전쟁을 했던 치우의 근거지로 지적이 되는 곳 입니다. 헌원과 결전을 벌이며 하남, 산서와 산동일대를 개척하여 청구국을 세웠다는 기록은 사마천의<사기>에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홍산문명 이후 하가점-하층문화(BC.2000~BC.1300)가 그 지역에 광범하게 확산되는데 홍산문명은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졌고 하가점-하층문화는 고조선의 문화입니다.

홍산문명은 소하연문화를 거쳐 하가점-하층문화로 연결되는 것은 중국학계에서 공식화 되었습니다. 더구나 소하연문화에 이어지는 하가점-하층문화, 구체적으로 풍하문화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앞서는 BC.2400년경으로 보이는 청동기유적이 발굴되는데 출토된 유물을 보면 화살촉, , 창 등도 발굴되어 BC. 2333년에 고조선의 건국이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 요동, 요서일대에서 발굴된 청동기유물은 황하유역에서 발굴되는 청동 유물보다 연대가 앞서며 중국 동부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명의 의미

홍산문명의 발견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파장이 큽니다.

중국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중국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로 보았는데 홍산문명을 발견한 후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주인공으로 홍산문명을 듭니다. 즉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므로 한()민족의 선조들이 중국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하북, 산동의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됩니다.

또한 북신문화, 대문구-용산문화, 악석문화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 홍산문명,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요령문화]의 주인공이 한()민족 입니다.

그래서 중국학자들도 산동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동북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민족인지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전백찬 같은 중국학자의 일부가 개인적으로 고조선(古朝鮮-辰國)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가 일으킨 문명이고 그 당시에 화하족은 하북성과 산동성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중국학계도 인정하고 있고 그 동이족이 고조선입니다.

현재 한국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에서 요서,요동의 요녕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한()민족의 기원도 요녕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중국문화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홍산문명이고 그 주인공은 동이족이 됩니다.

이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런역사를  중국이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2007년 110일자 고조선과 고인돌이란  칼럼을 추천 합니다

모든 네티즌들이 이런 주요한 사료를 보지 않고 우리역사가  특히 고조선이 족장사회였다고 합니다 홍산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있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이미 학계도 인정하는 분위기였죠,, 몇년전에 환단고기 열풍으로 역사적인 사료가치가 90%이상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반응이 없는걸보면 역시 국사편찬위원회는 아직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병도라고 서울대 교수이자 조선사편수회(일제가 민족역사를 말살하기위하여 만든 기관)간부였죠,, 그런 친일파도 작고하기 전에 인정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현학계가 받아들이지 않는것을 보면 자기들의 자리의 위험과 새로 배워야한다는 그런 혼란스러움때문에 주저하는것일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역사스폐셜에서 환단고기 방송을 했는데 거기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환단고기는 사료와는 관계없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사람들이 찾는것이다라고 했는데요.. 이건 솔직히 터무니가없죠.. 그리고 환단고기뿐만아니라 지금 남아있는 삼국사기라도 제대로 해석했다면 중국에 백제의 영토와 세력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수있을텐데 말이죠.. 우리나라는 아직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것같습니다. 중마한이라고 한반도의 남삼한말고 단군조선에서 또다른 삼한이 뻗어져 토번지역에서 나라를 세워 부강하게 살았었습니다. 어쨌든 배달국도 존재했고요.. 중국사료측에서는 자기 중심으로 썼기에 그당시 배달국이 있어도 그게 배달국이라고 하겠습니까?? 오랑캐라고 부르지..어쨌든 존재하는것만은 확실합니다. 환국도 있긴있는것같은데,, 환국은 아직 잘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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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의 주역은 동이족이었다”
은나라 갑골문, 만주지방 옥도에서도 발견
학자들 “문화적 주체는 동일민족일 가능성”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는 갑골문자(사진)라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1899년 갑골문자의 발견으로 인류 문자의 역사는 은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를 통해 전설상의 왕조였다고 치부되던 은나라가 실재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은나라의 수도로 추정되던 은허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 1928년부터 갑골문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중일전쟁 등으로 중단된 시기를 포함해 1986년까지 발굴은 지속됐다.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갑골이 15만점, 왕릉으로 확인된 고분이 13기였다. 출토 유물의 양과 질로 볼 때 은허는 상왕조 후기 수도였다는 게 입증됐다. 중국에서는 갑골문자와 은허의 발굴을 기념하는 학회가 이달 29일부터 사흘간 열린다.

    은허 유적은 단순히 중국 유적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점을 치는 데 주로 사용한 갑골만 해도 한반도 각지에서 출토됐으며, 충남 부여에서도 소 발굽을 지져 점을 쳤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한반도 고대문화와도 밀접하다”고 밝히고 있다.

    은나라를 세웠던 문화 주체가 동이족이었다는 주장이 넘치는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학술대회 ‘홍산문화와 갑골문자’가 열렸다.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10일 열린 행사에서 정건재 전남과학대학 동북아문화연구소 소장은 ‘홍산문화(紅山文化) 명문 옥도(玉刀)에서 발견한 천부경 갑골문자’라는 발표문을 내놓았다. 그는 “은나라의 갑골문으로 쓰인 고조선 천부경과 동일한 문자가 홍산문화 옥도에서 발견됐다”며 현대어로 표시한 종(終)자 등 모두 3종의 문자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꿰이준이 중국 화동사범대학 교수는 “홍산문화(요하문명)→고조선 천부경→갑골문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주체는 동일 민족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홍산문화 옥도에서 발견된 문자들을 통해서 이를 입증할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종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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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08.10.13 (월) 17:55, 최종수정 2008.10.13 (월)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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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떻게 설명하실련지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양학부 교수, 사회사상, 한국문화사)


1. ‘동북공정’의 후속으로 ‘요하문명’을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에서는 그 후속 논리로 요동과 요서를 포함한 만주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하문명권’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그 요하문명권 내의 모든 고대 민족들은 모두 중화민족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결국,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들의 최종 목표는 세계 최고(最古)의 ‘요하문명’을 바탕으로 ‘대중화주의’를 완료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모든 공정이 완료되는 순간 고구려, 발해는 물론이거니와 이 지역에서 발원한 고조선까지도 완벽하게 중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이제까지 중국은 중국 역사의 근원을 북경원인의 출토지인 북경 인근의 구석기시대와 황하 중류의 신석기시대 앙소문화(仰韶文化)를 포함하는 ‘황하문명권’으로 잡고 있었다. 앙소문화는 기원전 3000년까지 올라가는 농경 신석기문화로, 유목을 바탕으로 한 북방문화와는 구별된다. 예로부터 중화민족은 만리장성을 ‘북방한계선’으로 하여 북방 민족들과는 분명한 경계를 두었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이후 장성 밖 동북 만주지역에서 중원문화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더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됐다. 이 지역 신석기문화인 소하연(小河西)문화는 기원전 5500년, 사해(査海)문화는 기원전 5000년까지 올라간다. 특히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가고 대규모 적석총과 제단이 확인된 요하(遼河) 일대의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발견은 중국으로서는 충격이었다.

요하 일대의 각 유적에서는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많이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내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었던 것이다. 한반도는 이 ‘요하문명권’을 바탕으로 중원문명을 흡수하며 역사를 형성해 왔고, 중국은 이러한 요하문명권과 한반도의 연계성을 단절하고,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만드는 작업을 국가의 전략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80년 초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하려는 중국은, 황하문명권보다 이르고 발달된 ‘요하문명권’을 중화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재정립하고 있다. 곧, ‘중국의 요하문명권’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보다 이른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05년 7월 24-31일까지 적봉에서는 홍산문화 명명 50주년을 기념한 <홍산문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학자 100여명과 외국의 학자 15명을 초대하여 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중국 학자들도 홍산문화의 주인공을 예맥족의 문화로 본다. 그러나 이런 학술대회를 통해 중국의 홍산문화를 주도한 예맥족들이 남하하여 고구려 등을 세운다는 논리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6년 6월부터 9월까지 심양 요녕성박물관에서 <요하문명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의 핵심 주제인 ‘화하일통(華夏一統)’은 중국(華夏)이 요하문명권을 통일(一統)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론한다.

이런 요하문명권을 확립하기 위한 선행 작업으로, 9차 5개년 계획인 ‘9.5계획(1996-2000)’에서는 ‘하상주단대공정’이 진행되었다. 대대적인 발굴, 연대 측정, 일식·월식 기록의 비교 연구 등을 통해서 하?상?주의 존속 연대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하(夏)나라 존속연대( B.C. 2070 - B.C. 1600)의 공식화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 올린 것이다.

‘하상주단대공정’의 후속 작업으로 ‘10.5계획(2001-2005)’의 일환인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시행하고 있다.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은, (1)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3황 5제’의 시대까지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 황제이 손자인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과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 두 씨족 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지역에서 살면서 모든 북방 민족들의 시조가 되었으며,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의 핵심인 홍산문화는 고양씨 전욱 계통에 의한 문명이며, (3)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임을 밝히려는 거대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요하문명권’을 통해 21세기 ‘대 중화주의’의 청사진을 그려가려는 중국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역사적으로 한민족과 경계를 다투던 만주지역을 확실하게 중국사로 편입해서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논란이 일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대 한국(혹은 한반도) 전략’의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인 전략이 동북공정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인다.


3. <요하문명전> 각 전시실의 주제 및 핵심적인 내용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할 것은, (1) 제1전시실에서 보듯이 ‘중화문명의 첫 번째 서광이 요하 유역에서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과, (2) 제2전시실에서 보듯이 이 지역이 ‘상·주 시대부터’ 중원왕조에 속해 있었고, 이 시기에 소수민족들은 이미 ‘다원일체(多元一體)’의 관계로 중화민족 안에 들어왔다는 시각, (3) .제3전시실에서 보듯이 진(秦)·한(漢) 시대를 기점으로 이 지역이 중원왕조의 판도에 들어왔고, 이 시기에 고구려를 포함한 각 소수민족들이 ‘중국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민족 대융합’을 통해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었다는 시각이다.

이런 요하문명권 논리를 바탕으로 동북공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학자 가운데 하나인 경철화(耿鐵華: 통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는 “요서 지방에서 발생한 홍산문화가 서쪽으로 가서 은나라를 세우고, 동쪽으로 옮겨와 고구려와 부여 같은 나라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에서는 아즈텍문명, 마야문명을 일으킨 이들도 상나라의 후예들이라는 논리도 개발하고 있다.


4.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하상주단대공정 → 중화문명탐원공정 → 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역사관련 공정들은 거대한 ‘대(大) 중화주의’ 건설 전략의 일부이다. 동북공정은 ‘대 중화주의’의 청사진인 ‘요하문명권’밑그림을 그려 가는데 방해가 되는 동북지역의 논란거리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망라한 종합적인 국가 전략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들이 정리되면, ‘중국’의 ‘요하문명권’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를 제치고 1만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하상주단대공정을 건의했다는 청화(靑華)대학 송건(宋建) 교수의 꿈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었을 해야 할 것인가? 새롭게 출범할 동북아역사재단은 요하문명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동북공정을 제대로 다시 되 짚어보자......

 

최근 ‘백두산공정’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또 다시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의 열기가 높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동북공정을 중국의 21세기 대중화주의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다. 중국이 말하는 ‘동북’이란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을 모두 지칭한다. 동북공정은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를 중국 민족과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고구려사뿐만이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도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동북’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들이 신화적 인물인 황제(黃帝)의 손자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과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두 씨족 부락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며,따라서 당연히 중화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고구려,발해는 물론 고조선의 역사와 민족까지도 중국의 역사와 중화민족에 속한다는 게 중국의 주장이다.

둘째,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 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 관련 공정은,중국이 21세기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국가적 전략이다.

9·5계획(1996∼2000년)의 일환으로 시작된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대대적인 유적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고대 왕조인 하(夏),상(商),주(周)의 존속 연대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하(夏)나라 존속연대(BC 2070∼BC 1600년)의 공식화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 올린 것이었다. 10·5계획(2001∼2005년)의 일환으로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전설적인 ‘3황 5제’의 시대까지 중국의 ‘역사시대’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년 전으로 끌어 올리려는 것이다.

이런 역사 관련 공정들의 최종적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랴오허(遼河) 일대를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서는 1만년 역사의 새로운 문명권으로 부각시키려는 ‘랴오허문명론’이 그것이다. 사실 동북공정은 이러한 거대한 국가전략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셋째,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양한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먼저 1992년 한·중 수교와 동시에 ‘치우(蚩尤)’를 중화민족 3명의 조상 가운데 하나로 끌어안았다. 그것이 1992년부터 1997년까지 허베이성 탁록현(?鹿縣)에 건설한 귀근원(歸根苑)과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다. 현재 중화삼조당 안에는 5.5m 높이의 치우,황제,염제의 상이 있고,이들은 모두 중화민족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다.

또한 단군역사의 웅녀(熊女)는 2001년 9월18일 연변 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국가삼림공원(滿天星國家森林公園) 안에 ‘백의신녀(白衣神女)’라는 이름으로 높이 18m,무게 520t의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든 백의신녀는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변신한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거대한 국가전략을 바탕으로 대한반도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출범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관료와 역사학자들로 구성된단다. 우리에게는 큰 틀에서 구체적인 것을 깊이있게 볼 수 있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필요하다. 동북공정이 아직도 ‘고구려공정’쯤으로 보이는가?



 

<사진 : 길림성의 웅녀 조각상>

 


중국의 동북공정이 단순한 역사왜곡이 아니라 정치적 침략행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이북, 만주지방에서는 중국의 한족과는 관계가 없고 오히려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원전 3500년전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곰토템을 가진 모계사회이며 놀라운 것은 3, 9, 81등 천부경의 원리로 만들어진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최고의 문명을 "홍산문명(紅山文明)"이라고 하는데 중국은 이 문명을 한족의 문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홍산문명이 그들의 의도처럼 한족의 문명이 되어버리면 환웅,단군,웅족의 모든 뿌리가 중국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한민족은 한족의 아류로 전락하게 됩니다.

 

<출처>국학원 

 

(필자의 의견)고조선은 신석기 이전의 문명이 아니라 청동기 문명입니다.그래서 홍산유적은 환웅이 지배하던 환국(배달국)의 유적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이 문화는 우주의 전 역사를 참고적으로 알아야 겠지만 먼저 환국시대부터 문화를 알아야하고 배달국이 열릴때,

거발환 환웅께서 3000명의 제세핵랑군과 도권을 상징하는 천부와 인3개와 神市를 여셨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제세핵랑군은 누구인가를 알아야하고요. 神市가 무엇인가도 알아야 해요. 그리고 천부와 인3개도 물론 알아야 요하문명을 알수있습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아는 수준으로 악플도 달고 해서 모두 지우고 싶어요. 하지만 진정으로 아직도 아시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천부경은 알고 보면 굉장히 쉽거든요. 구전으로 전한 내용이거든요. 그리고 천부경의  숫자는 그냥 숫자가 아님니다. 천부경에는 우주의 전 역사가 이법으로 담긴글이므로 述술의 세계가 아니라 道도의 세계로 해석해야하고 왜 구전되어 왔는가등 역사적 진실을 알아야 하거든요. 어디에도 현혹되지 마시고 자신 스스로 판단하고 모든책임도 본인스스로에게 있거든요. 눈을 크게 틔워 우주를 보시는 안목으로 큰 틀을 보아야합니다.

        天符經천부경 八十一字

                                  天符經 講解師: 虔道건도


無始一이요

析三極하여도 無盡本이니라.

이요

이요

이니

一積十鉅라도 无匱化三이니라.

이요

이요

이니

大三 合六生하여 七八九하고

運三四하여 成環五七이니라.

摺衍하여 萬往萬來라도

用變不動本이니라.

  이니 本太陽하여 昻明하고 

中天地하여 이니, 

이나 無終一이니라.

 

大韓의 精神을 잇는 天符經 講解

                                               天符經 講解師: 虔道건도


無始一이요.(우주역사의 시작)

宇宙歷史의 시작은 一太極에서 시작이나 無極에서 시작한 一太極이요.


析三極하여도 無盡本이니라.(우주의 근원처 律呂, 宇宙의 本性)

宇宙의 根源處 律呂, 構成틀인 天地人 三極으로 나누어도 無極의 根源은 다함이 없이 영원무궁하여라!

 

이하는 강해를 통해서 ......

 

제목: 천부경天符經 강해講解및 세미나

일시: 2008 10 10日  금요일 오후7시~10

장소: 진주 시청 옆 세종한의원 4층 우주변화원리연구소

講解師 : 虔道(대한의 뿌리문화 천부경 카페운영자)

참석자: 진정한 대한의 자손으로써 天符經의 오묘한 가르침을 알고자하시는 분.

(참석하실분은 연락주세요. 장소관계상 15분만 모십니다.질문도 준비하세요.)

天符經은 모든 문화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河圖와 洛書보다 앞선 뿌리문화이며, 佛仙儒의 근원문화이다. 

天符經에는 우주의 본성과 우주의 순환이치와 우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天符經에는 無極, 太極, 皇極을 인식할 수 있다.

天符經에는 천지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찾고자하시는 분은 講解에 참석하시면 충분한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天符經에는 氣와 神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天符經에는 역사의 큰 틀과 대한의 국통과 중국의 역사와

기독교의 아담과 화와의 계보를 알 수 있다.

天符經에는 인생의 해답에 자신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天符經에는 우주의 틀이 있으며, 그 틀, 조직이 발전하는 근원이 있다.

天符經에는 앞으로의 문화가 내재되어있다.

天符經에는 무궁한 지혜의 싹을 틔울 수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모든 문제에 해결 방안을 추출해 낼 수 있는 우주 本音의 소리를 듣고

평화와 화평의 마음으로 얼굴에는 환희의 미소를 짓을 것이다. 

참가비:1만원(자료 비 포함)

연락처: 대한의 뿌리문화 천부경 카페 010-7759-8755, 

        우주변화원리연구소 055-762-1692 

E-mail : [email protected]

E-mail : [email protected]

후원: 우주변화원리 연구회. 천부경天符經에 幸運행운이 있다.(카페)

대한의 뿌리문화 천부경. 태양의전사 (다음 카페) 

 

천부경은 저가 홍보를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부경의 근본 정신도 모른체

대한의 천부경을 중국사람들에게 해석을 바라는 혼빠진 사람들과 자신들의 지식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 놓는 천부경의 강의자들을 지극히 경계를 합니다.

이 천부경은 정말 자신 마음되로 전달되어서는 안되거든요.

왜 우리 배달민족이 神市를 여셨는가?

3000명의 제세핵량군은 九夷족에서 왔는지

도권을 상징하는 천부인 세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천부경을 해석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천부경 강해를 합니다. 한번 들어보시면 대한의 사람으로써 가슴 부뜻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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