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택 한옥의 발달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전통주택 한옥의 발달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작성일 2021.11.21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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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전통주택 한옥의 발달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간단하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 전통주택 한옥의 발달된 배경에는 : 차츰 시대가 바뀌어 요즘은 고도화된 기술로 정말 잘 짓습니다. 사람이 좀더 쉽고 편리하게 살기위한 것이 배경입니다. 이런 것이 발달한 과정이며 배경입니다.

한옥의 장점

1.한옥은 공해가 없다.

2.한옥은 짓는 터전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3.한옥 짓는 천연 건축 자재는 공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4.자연을 잘 느낄수 있다.

5.더위를 대비해 시원하게 집 구조를 만들었다.

한옥의 단점

1. 한 건물내에서 모든 시설이 다 들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어 생활하기가 불편하다.

2. 우풍이 세다.

3. 구들장은 열배분이 고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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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종류

초가 : 볏짚이나 밀짚으로 엮어 지붕을 만든 집으로, 가을 추수 후에 지붕을 새로 엮어 갈아 얹었다고 한다.

기와집 : 찰흙이나 시멘트를 구어 만든 기와로 지붕을 덮은 집이다. 지붕선의 아름다움에서 조상들의 멋을 엿볼 수 있다.

한옥의 특징

한옥은 집의 구조에서부터 만드는 재료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기단 등은 돌을 사용하고 기둥과 서까래, 문, 마루바닥 등은 나무를, 벽은 짚과 흙을 섞은 흙벽으로 만들었으며 창에는 역시 천연 나무로 만든 한지를 발랐다. 바닥에는 한지를 깐 뒤 콩기름 등을 발라 윤기있게 하였고 물이 바닥에서 스며들지 않게 하는 방수의 역할도 했다. 옛날에는 마을공동체 단위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방은 개인을 위한 공간으로, 대청은 모두를 위한 열린공간으로 마당은 마당대로 큰일을 치루는 공간으로 쓰였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가옥은 '개방적인' 공간구조를 지닌다

※ 우리나라 전통 문화 한옥의 변모 과정을 살펴 본다면,

아래서 부터 사진대로 온 것입니다.

북부형 겹집과 제주도 민가

같은 겹집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제주도는 한랭지의 겹집형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온난다습한 기후적 특성으로 상방마루라는 공간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공간은 기후적 스트레스로 인해 옥내생활을 많이 하게 되는 지역에서 발달한 겹집구조에 있어서 내부공간들 사이의 행랑공간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전용공간으로서 여름의 양실로서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며 겹집의 폐쇄적인 성격을 완화시켜주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제주도 민가가 겹집구조의 형태를 띠는 이유는 공간의 기능분화과정에 있을 수도 있고 유난히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의 태풍과 같은 기후적 스트레스에 연유할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단동일체형 주가가 아닌 다동분립형 주가의 배치를 이루게 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제주도 전통민가에서 보여지는 건축의 지역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한랭지에서 보이는 겹집형태의 구조이며 다동분립형의 주가구성이 주를 이룬다. 남부지방의 온도가 높은 지역에는

一자형의 민가가 대다수인데, 제주도 민가의 경우에는 건물 자체는

一자형이긴 하지만 별동 배치를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비교적 폐

쇄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겹집구조와 다동분립 배치로 인한 폐쇄성과 상방마루라는 공간의 개방성을 동시에 지닌다. 상방마루가 중앙에 위치하며 육지의 온돌방에 비해 발달이 덜 된 구들이 좌우에 있다. 제주도와 중부의 몇몇 도서를 제외하고는 다른 도서지역의 민가들은 홑집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서해중부 북단의 백령도와 남단의 제주도의 경우는 겹집이 민가의 일반형으로 분포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장 격리된 두 도서에서 겹집구조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홑집의 분포를 보이는 도서는 모두 연안도서로서 이는 상대적으로 비바람, 눈의 기후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일반적으로 홑집은 가옥의 내부의 각 공간이 간벽에 의해 서로 차단되어 폐쇄적 성격을 띠나 외부적으로는 개구율을 높여 개방성을 갖는다. 겹집에 있어서는 이와는 반대로 가옥 외부의 개구율은 낮추어져 폐쇄적 성격이 강하고 내부에 있어서의 각 공간간의 간벽은 개구부를 두어 내적 개방성을 갖게 된다. 이것 역시 민가에 주는 기후요소의 영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전통 한옥

우리 나라 전통 한옥 39평형

우리 나라 전통 한옥 12평형

우리 나라 전통 한옥 25평형

우리 나라 전통 한옥의 구조 및 명칭

1). 우리 나라 전통 주택 기와집

중국에서는 기와를 춘추 전국시대에 사용하였다고 하나 우리 나라에서 언제부터 쓰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마니 사금 11년 조"에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꺾이고 기왓장이 날렸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 전후한 시기에 궁궐이나 큰 건물에 기와를 덮엇던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 서기"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 건물이라고 하는 법륭사를 지을 때, 백제에서 기와 박사 네 사람이 일본에 건너 가서 기와를 구어 주었다고 하므로 7세기 경에는 기와를 굽는 기술이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었던 듯하다.

정읍 김동수가옥의 사랑채 기와집

기와를 기와장이가 얹는다. 예전에는 기와를 만들 때, 큰 틀 안에 모래와 흙 그리고 물을 붓고 나서 소로 하여금 이리저리 밟고 다니도록 해서 잘 이긴 뒤에, 이 흙을 기틀에 넣어 꼴을 잡아 말리고 잿물을 발라 가마에 넣어 구었다. 따라서 큰집을 지을 때에는 돈을 미리 주고 필요한 수량의 기와를 맞추어 두어야 하였다.

서민 가옥의 기와 일은 먼저 암기와를 나란히 깔고 사이사이에 숫기와를 덮고 나서, 숫기와 앞에 흙과 백토로 빚은 아귀토로 막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잘 짓는 집에서는 암막새를 먼저 놓고, 암키와를 서너 겹으로 겹쳐 깔아서 한두 장이 깨져도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 수키와도 역시 숫막새를 먼저 놓고 홍두깨흙을 얹은 뒤에 덮어 나간다. 지붕 마루에는 적새라 하여 암기와를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숫기와를 덮는다. 따라서 암기와를 많이 덮을수록 지붕 마루가 높아져서 집 자체가 커 보인다.

어떤 기와집에서는 복문이라고 하여 적새 위에 숫기와를 얹을 때, 한가운데의 두 장을 서로 어스러지게 팔자(八字) 모양으로 마주 세워 두는 일이 있다. 이를 세울 때 주인은 기와장이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므로 상량을 올리는 날이 목수의 생일이라고 하듯이 이날을 기와장이의 생일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문으로 복이 들어 온다고 하나 까치구멍처럼 원래는 채광이나 배연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팔작 지붕의 경우에는 지붕 마루마다 망와라 하여 도깨비 모양의 암막새를 얹는다. 망와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귀면에 가까우나 뒤에 점차 약화되어 왔으며, 곳에 따라서는 태극이나 주역무늬가 새겨진 것을 쓰기도 한다. 근래에는 사람 얼굴모양의 것을 많이 얹으며 단지 꽃잎을 양각한 것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망와는 잡귀를 물리쳐 준다는 속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우리 나라 전통 주택 초가집

볏짚을 언제부터 지붕에 덮기 시작하였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벼농사가 시작된 삼국 시대에 이미 이것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볏짚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에는 내리 쬐는 햇볕을 감소시키고, 겨울철에는 집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준 다. 그리고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빗물이 잘 흘러 내리므로 두껍게 덮 지 않아도 스미지 않으며 누구든지 이를 쉽게 덮을 수 있어 편리하다. 또 초가 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한 해에 한 번씩 덧덮어 주므로 집에 각별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거의 언제나 밝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붕의 물에는 매우 완만하기 때문에 농가의 마당이 좁을 때에는 고추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며, 천둥 호박이나 바가지의 덩굴을 올려서 지붕을 밭의 일부로 사용하 기도 한다. 짚으로 지붕을 잇는 방법에는, 비늘 이엉법과 사슬 이엉법의 두가지가 있다.

앞의 이름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데에서 온 것으로 짚 의 수냉이를 한 뼌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다. 길게 엮은 날개 두 장을 이엉 꼬챙이로 꿰어 올린 다음, 지붕의 앞뒤를 덮고 남은 부분으로 좌우 양쪽의 벽을 가릴 수 있다. 수명은 사슬 이엉보다 오래 간다.

초가집

한국민속촌에는 약 270여 동에 이르는 전통 가옥이 지방별로 특색을 갖추고 있으며 당시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사슬 이엉은 수냉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일정한 크기로 엮은 날개 수십 장을 둥글게 말아서 지붕 위로 올린 뒤에, 멍석을 펴듯이 펴 나가면 서 지붕을 덮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수냉이가 처마 밑으로 오도록 깔고, 다음에는 이와 반대로 하여 덮어 나간다. 사슬 이엉으로 이으면 지붕의 표면이 매끈하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새끼를 늘여 서까래 끝에 잡아 맨다.

우리나라의 서북지방에서는 주로 비늘 이엉으로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사슬 이엉으로 덮는다. 이렇게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뒤에는 용마루에 용구새를 얹어서 마무리 짓는다. 이것은 빗물이 잘 흘러 내리게 좌우양쪽으로 비탈이 지도록 솜씨 있게 엮어야 한다. 또 바람이 심한 데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 해 새끼를 그물처럼 엮어서 덮는다.

충청도에서는 가로로 길게 매는 것을 '장매', 세로로 짧게 매는 것을 '가르매' 라고 하며 서까래 끝이 썩지 않도 록 이엉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지스레미'라고 한다. 초가지붕은 대체로 모임 지붕의 형태를 이루나 겹집인 경우 이른바 까치 구멍이라고 하여 용마루를 짧게 하고 좌우 양끝의 짚을 안으로 욱여 넣어 서 까치가 드나들 만한 구멍을 내어 두는 일이 있다. 이 구멍으로 집안에 햇볕이 들어 오고 연기가 빠져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멍은 초 가집뿐만 아니라 너와집이나 굴피집에서도 볼 수 있다.

또 기와집에는 양 합각에 작은 구멍을 내거나 창을 달며 구멍에 덮개를 장치하고 집안에서 여닫기도 한다. 전남의 장흥, 강진, 보성 등지의 초가 지붕 위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유지기라는 것이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초가 지붕의 용마루에 굵은 통대나무나 통나무를 가로 지르고 이 위에 용구새를 덮는데, 나무와 나무 의 이음새나 좌우 양측에, 볏짚 한 단 가량을 단단히 묶어 매고 수냉이쪽 을 낫으로 잘라서 가즈런히 한 다음, 이것을 거꾸로 용마루에 잡아 매어 서 마치 상투를 틀어 올린 모양을 이룬다. 유지기는 한 지붕에 하나만 세 우기도 하나 두세 개를 올린 집도 있다.

3). 우리 나라 전통 주택 너와집

너와를 강원도에서는 느에, 또는 능애라고도 한다.

이것은 2백 년 이상 자란 소나무 토막을 길이로 세워 놓고 도끼로 쪼갠 작은 널판이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보통 가로 20~30 센티미터, 세로 40~60센티미터이며 두께는 5센티미터 내외이다. 지붕의 용마루 쪽으로부터 끝을 조금씩 물리면서 덮어 나가며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에 돌을 얹어 둔다.

강원 삼척 신리 너와집

너와는 70장을 한 동이라고 하며 한 간 넓이의 지붕에는 보통 한 동 반에서 두동쯤이 들어간다. 너와 한 장의 수명은 5년 내외이며 기와 지붕을 수리할 때처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썩은 것을 갈아 내고 새것으로 바꾸어 끼운다. 이것으로 지붕을 덮을 때, 방 천장에는 느리개를 30센티미터쯤의 너비로 가로 놓고, 이를 중심으로 해서 잔나무를 촘촘하게 붙여 천장으로 삼으나 정지나 마구 등에는 천장 시설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에는 굴뚝으로 빠지지 못한 연기가 너와 사이로 뿜어져 나오므로, 지붕이 불에 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4). 우리 나라 전통 주택 굴피집

굴피는 상수리나무의 껍질로, 산간 지대에서는 이것을 벗겨서 지붕을 덮기도 한다. 이십여년 이상 자란 나무의 껍질이지만 크기를 일정하게 벗겨 낼 수는 없으므로, 이를 덮은 지붕을 보면 마치 누더기를 걸친 것처럼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굴피는 대기가 건조해지면 바짝 오므라 들어서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정도가 되지만 비가 내리든지 하여 습도가 높아지면, 이내 늘어나서 틈을 메운다. 이음새에는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돌로 지질러 둔다. 굴피 지붕의 수명은 매우 긴 편이어서 '기와 만 년에 굴피 천년'이라는 말이 전한다.

굴피껍질로 이은 지붕

5). 우리 나라 전통 주택 귀틀집

귀틀집은 목재가 풍부한 산간 지대의 주민들이 짖고 살던 원시 주기의 한 가지이다. 둥굴이 나무를 가로 세로 우물 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서 벽체를 삼으므로 이를 방틀집, 또는 말집이라고도 한다.

양끝을 우묵하게 쪼아 낸 자리에 나무를 얹어서 움직이지 않도록 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벌어진 틈에는 진흙을 발라 막는다. 벽체가 완성되면 느리개를 놓고 이에 산자를 깐 뒤에 흙을 발라 천장을 삼으며 이 위에 지붕틀을 덧씌운다. 따라서 귀틀집의 지붕은 맞배 지붕을 이루며 기둥이라고는 천장에서 마룻대를 받치는 동자 기둥 하나를 세울뿐이다. 지붕틀과 천장 사이의 합각은 수장 공간으로 이용된다.

백두산 일대의 귀틀집

지붕에는 너와를 덮으며 이것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에 돌을 얹거나 통나무를 띄엄띄엄 걸쳐둔다.다른 나라에서는 서너 간의 집을 모두 귀틀로 만드나 우리 나라에서는 두 가늬 방만을 귀틀로 하고 부엌이나 마구 등의 공간은 일반 가옥처럼 널벽을 쳐서 벽을 삼고 나머지 공간은 기둥, 도리, 들보 등을 짜맞추는 가구식으로 꾸민다.

고구려에서는 부경이라 하여 창고를 귀틀로 짜서 만들었으며 이러한 것은 최근에까지 강원도와 경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귀틀집에 대해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나무를 옆으로 뉘어 쌓아 올려서 마치 감옥처럼짓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집의 역사가 매우 오래됨을 알 수 있다. 귀틀집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만주, 시베리아, 미국의 록기 산맥,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에도 퍼져 있었다.

6). 까치구멍집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봉당 등이 한 채에 딸려 있고, 앞뒤 양쪽 으로 통하는 양통집의 속칭.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구멍을 낸 모양이 까 치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주택을 평면구성으로 볼 때 외통집 ·양통집 ·곱은자집 ·겹집으로 나 눌 수 있다.

양통집은 처음에는 대개 6칸 집인 것이 8칸 ·10칸 또는 그 이상으로 발전하였다.

양통형 집은 안동지방뿐 아니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해안 산간 지방에서 아직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구조가 한국집의 고대양식이 라는 점에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증거로서 낙동강 유역에서 출토 된 가야(伽倻)시대의 가형토기(家形土器)가 6칸 양통집과 외형이 같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으나, 근래에 발굴된 대부분의 선사시대 주거지가 모두 통간이기는 하지만 평면구성이 양통형이라는 점이 다. 고대사회에 하부계층 사람들의 집이 반구덩식[半竪穴式]이었던 점으로 보아 양통집은 부유한 계층 사람들의 집이었을 것으로 본다.

7). 우리 나라 전통 주택 움집

움집의 바닥은 대부분 장방형을 이루나 방형의 것도 있으며 기둥을 두 줄로 세워서 벽과 지붕이 나뉘어지고 지붕은 맞배 지붕이나 모임 지붕의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집자리는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그리고 한강 유역에 많으며 앞의 움막이 빗살문 토기 시대의 주거임에 반해, 이것은 농경이 발달된 무문 토기 시대에 들어와 발생하였다. 이 집은 무엇보다 벽과 지붕이 분화되어 움막처럼 땅을 깊이 파고 지을 필요가 없어졌으며 이에 따라 벽이 땅으로 반쯤 들어가는, 이른바 '반움집'이었다가,

초기 철기 시대에 들어 와서는 모두 땅 위에 세워진다. 지붕에는 용마루가 생겨나며 이를 의지하여 원시적인 서까래를 걸고 짚 따위를 덮은 뒤에 흙을 얹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붕면에 채광 시설을 마련하고 맞배 지붕의 좌우 양측에는 배연을 위한 구멍을 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벽은 수직으로 세운 기둥과 기둥 사이에, 통나무나 널판을 가로 질러 대어서 꾸몄을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 세웠던 집자리에서 벽에 판자를 대었던 흔적과 불에 탄 널판이 나왔고 기둥 자리가 촘촘하지 않고 띄엄띄엄 있던 접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영암선사시대유적지에서 재현한 움집

움집은 규모 또한 커서 장방형의 한 면이 4~7미터이고, 넓이는 50~60입방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서기 7세기쯤의 것으로 추측되는 경기도 파주군 덕은면의 집자리 중에는 깊이가 40~90센티미터, 동서 15.7미터, 남북은 3.7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움집의 기둥 구멍은 모두 수직을 이루며 기둥이 주저앉는 것을 막기 위해 주추를 놓은 집도 있고, 어떤 집자리에서는 간을 막은 흔적이 나타나기도 하여 공간 분화의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움막에서는 중앙부에 있던 화덕이 어느 한 쪽으로 밀려 나며 두 개의 화덕을 갖춘 집도 있고 출입을 위한 층계나 비탈이 없는 경우도 많다.

움집은 서너 집 내지 백여 호가 모여 마을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며 앞에서 말한 파주의 어떤 집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연장들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공동 작업장으로 이용되었던 모양이다. 이 때에 공동 작업장이나 공동 집회소가 있었을 것은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같은 움집 안에서도 안쪽을 상청, 가운데를 중청, 문간 쪽을 하청이라 하여, 노인들은 상청에 그리고 젊은이들은 하청에 모여 앉아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짚신 등을 삼는 작업을 하였다.

8). 우리 나라 전통 주택 토담집

움집이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자 인류는 지상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최초의 지상 건물이 어떤 유형이었다는 정설이 없다.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포괄해서 어떤 모습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남쪽에서는 오두막집이 이미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움집의 지상 노출은 지역적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북방에서도 구들 시설이 필수였다면 벽체도 든든하고 두툼해야 겨울을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남 나주 쳘야마을 토담집 전경

토담집벽면

고구려 터전에서 발굴되는 구들 시설이 있는 건물 벽체가 상당히 완고한 것으로 보아 지상에 노출된 최초의 집은 벽이 두꺼웠으리라 생각된다. 시골에 남아 있는 벽이 두꺼운 원초적인 토담집이 이런 유형의 초기 흔적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단히 완고하게 생겼고 개중에는 마루가 없는 원초형 토담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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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전통주택한옥의 발달된배경은 무엇인가요? 한옥의 발달된배경이뭔지 알려주세요 첫째 : 전통 주택한옥의 발달된 배경에 대한 과학적 구조입니다. 못을 안 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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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이 외부의 충격에 잘 버티는 게...

도와주세요 ㅠㅠ 이유가 무엇인가요?? 님의 질문에 답변을... 광장을 배경으로 평탄하게 잘 닦인 길 양쪽으로 곳곳에... 우리나라 전통 한옥 기술과 주택의 특성과 장점 전통...

전통 한옥 구조

... 광장을 배경으로 평탄하게 잘 닦인 길 양쪽으로 곳곳에... 우리나라 전통 한옥 기술과 주택의 특성과 장점 전통... 그런 만큼 젖갈류를 비롯한 발효음식이 매우 잘 발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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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란 무엇인가요?(내공40)^^

... 한옥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 1)지붕: 지붕의 면이 몇... 구조가 발달했습니다 또한 한옥은 상류주택과 민가에 따라서도 구조를 달리합니다...

전통한옥 짓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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