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경주정씨인데요? 무슨파 몇대손인지궁금해요?
아버지는 정영희씨고
저는 딸이라 돌림자를 안쓰고 남동생만 돌림자를써서 정세호 거든요 .
이걸로 알수있을까요.?
답변 : 님은 경주 정씨 이시군요.
경주 정씨 각파 항렬표를 찾아본 결과로는,
부친님 영자 희자 님의 동생 세자 호자로 이어지는 항렬표 돌림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항렬표 돌림자로 성함을 지으신 것이 아닌것입니다. 이런 때는 좀더 웃대로 올라가셔서 증조부님 고조부님도 같이 한번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부님 : ?세 ?자 돌림이라 하셨고,
부친님 : ?세 영(영)자 희(희)자 돌림이라 하셨으며,
님동생 : ?세손 세(세)자 호(호)자 돌림이라 하셨습니다.
님은 경주 정씨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이시니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한글과 한문을 병용합니다. 이유는 한문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점 양해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래 항렬표를 올려드릴테니 님도 한번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경주 정씨에 대한 정보 입니다.
경주 정씨(慶州 鄭氏)에 대(對)하여
1. 경주 정씨(慶州 鄭氏) 시조(始祖) : 지백호(智伯虎)
2. 경주 정씨(慶州 鄭氏) 유래(由來) :
시조(始祖) 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三韓時代)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村長)으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王)으로 추대하고 신라(新羅) 건국(建國)에 큰 공(功)을 세웠다. 그 공(功)으로 개국(開國)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改稱)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封)해지면서 정씨(鄭氏)라는 성(姓)을 하사(下賜)받았다고 한다. 또한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658년(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追封)되었다. 경주 정씨(慶州 鄭氏)의 시조(始祖)는 그의 5세손(世孫) 정동충(鄭東沖)이 정씨(鄭氏)로 사성(賜姓)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경주정씨족보(慶州鄭氏族譜)》는 모두가 지백호(智伯虎)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중시조(中始祖) 문정공(文正公) 정진후(鄭珍厚)는 고려(高麗) 때 문과(文科)에 합격(合格)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상서(兵部尙書) 겸(兼)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歷任)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封)해지면서 경주(慶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3. 경주 정씨(慶州 鄭氏) 시조(始祖) : 정진후(鄭珍厚)
경주 정씨(慶州 鄭氏)는 신라(新羅) 초기(初期)의 6촌(六村) 가운데 취산진지촌장(聚散珍支村長)의 지백호(智伯虎)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그는 다른 5촌장(村長)과 함께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王)으로 추대(推戴)하고 좌명공신으로 낙랑후(樂浪候)에 봉(封)해졌으며, 제3대 유리왕(儒理王) 때 정씨(鄭氏)로 사성(賜姓)되었다.
그 후(後) 그의 42세손(世孫) 정진후(鄭珍厚), 시호(諡號) 문정(文正)가 고려(高麗)조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정당문학(政堂文學)·호부상서(戶部尙書) 겸(兼) 판군기시윤(判軍器寺尹)·평장사(平章事) 등(等)을 지내고 월성군(月城郡은 지금의 경주)에 봉(封)해졌다.
그래서 후손(後孫)들이 그를 득관 중조로 하고, 본관(本貫)을 경주(慶州)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여 오고 있다.
이렇게 경주 정씨(慶州 鄭氏)는 옛 본피부(本彼部) 사람들의 정통(正統) 후손(後孫)이요, 이른바 모든 정씨(鄭氏)의 '큰집' 격으로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 동남안에 자리 잡고 살았던 선주민의 후예(後裔)이다.
그러나 신라(新羅) 시대(時代)의 명벌(名閥)로서 신라(新羅)에서 고려(高麗)에 이르는 천년(千年)동안 장상의 세가(世家)였다고 하지만 문헌(文獻)의 실전(失傳)으로 자세(仔細)한 것은 알 수 없다.
중시조(中始祖) 정진후(鄭珍厚)의 묘소(墓所)는 경북(慶北) 월성군(月城郡) 내남면 노곡리에 있고, 매년 음력(陰曆) 10월 10일에 향사(享祀)한다.
4. 경주 정씨(慶州 鄭氏) 본관(本貫) 연혁(沿革)
경주(慶州)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位置)한 지명(地名)으로 기원전(紀元前)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聯合)하여 고대(古代)국가(國家)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始祖)가 탄생(誕生)하여 국호(國號)를 계림(鷄林)으로 칭(稱)하기도 하였으나, 별칭(別稱)으로 사용(使用)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新羅)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이 왕건(王建)에 항복(降伏)하자 경주(慶州)로 개칭(改稱)하고 식읍(食邑)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慶州)라는 명칭(名稱)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屬)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別稱)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設置)하고 충렬왕(忠烈王)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改編)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慶州) 야별초의 반란(反亂)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降等)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還元)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鷄林府)를 경주부(慶州府)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蔚山)으로 이전(移轉)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屬縣)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獨立)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慶州郡)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慶州邑)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一部)가 통합(統合)되어 경주시(慶州市)로 승격(昇格)했으며, 경주군(慶州郡)은 월성군(月城君)으로 개칭(改稱)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月城君)이 경주군(慶州郡)으로 개칭(改稱)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慶州郡)과 통합(統合)하여 시(市)로 승격(昇格)하였다.
5. 경주 정씨(慶州 鄭氏) 계파(系派) 및 분파(分派)
경주 정씨(慶州 鄭氏)의 후손(後孫)들은 연일(延日)·동래(東萊)·온양(溫陽)·초계(草溪)·하동(河東)·진양(晉陽)·진주(晉州) 등 120여 성씨로 분관(分貫)되었고, 경주 정씨(慶州 鄭氏) 본종(本宗)은 계림(鷄林)·월성(月城) 등(等)으로 쓰여지다가 고려(高麗) 때 문정공 정진후(鄭珍厚)가 월성군에 봉(封)해지면서 경주(慶州)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그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있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문헌공파(文獻公派)·양경공파(良景公派)·월성위파(月城尉派)·평장공파(平章公派) 등으로 분파(分派)되었고 2,060여년 동안 78세의 대종(大宗)을 이루었다.
경주 정씨(慶州 鄭氏)는 크게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파(月城尉派),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나뉘게 되며 이는 후손(後孫)들로 내려오면서 30여개 세파(世派)로 분파(分派)돼 명맥(命脈)을 이어오고 있다.
이중 문헌공파(文獻公派)는 경주 정씨(慶州 鄭氏) 내에서 큰집으로 ,
진후(珍厚)의 5대손(代孫) 현영(玄英)은 호부상서(戶部尙書)와 태학사를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종1품관직)의 벼슬까지 오르게 된다. 이어 현영(玄英)은 문헌(文獻)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아 문헌공파(文獻公派)의 파조(派祖)가 된다.
문헌공(文獻公派)은 종철(宗哲)과 종보 두 아들을 두셨는데 그중 장자(長子) 종철(宗哲)은 월성군(月城郡)으로 문헌공파(文獻公派)내 큰집이 된다.
양경공파(良景公派)은 교리공파, 문간공파, 문천공파, 별제공파, 석성공파, 세마공파, 참찬공파 등으로 분파하였다.
월성군(月城君)의 차자(次子) 인조(仁祚)는 공양왕(恭讓王)때 병부시랑(정4품벼슬)을 맡는등 장수로 이름을 날렸고 이성계(李成桂)와 함께 일본(日本)군 격퇴(擊退)시키는 업적(業績)을 남겼다.
월성군(月城君)의 후손(後孫)들은 이후(以後) 순흥공파, 추파공파, 우후공파, 장흥공파, 죽산공파, 동래공파, 별제공파, 교수공파, 고산공파로 나뉘게 된다.
문헌공(文獻公派)의 차자(次子) 종보(宗譜)는 안숙공으로 문헌공파(文獻公派)내 작은집이 된다.
안숙공의 후손(後孫)들은 이후(以後) 상서공파, 팔송공파, 좌윤공파, 노송정공파, 추만공파로 나뉘게 되며 이중 노송정공파는 다시 판서공파, 제안공파, 참의공파, 감사공파로 나뉘게 된다.
6. 경주 정씨(慶州 鄭氏) 참의공파(叅議公派)내 세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