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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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05.26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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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역사좀 가르켜 주세요

5학년 좀 간추려서 최대한 짧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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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蔚山廣域市]

 

〔정 의〕: 경상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광역시. 동쪽은 동해, 서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경상북도청도군, 남쪽은 부산광역시 기장군과 경상남도 양산시, 북쪽은 경상북도 경주시와 접하고 있다.

 

〔위 치〕: 동경 128°58′∼ 129°27′, 북위 35°19′∼35°43′에 위치한다.

 

〔면 적〕: 면적은 1,056.74㎢이다.

 

〔인 구〕: 인구는 109만5,105명(200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 4개 구, 1개 군, 2개 읍, 72개 동, 46개 면, 8개 리가 있다.

 

〔시청 소재지〕: 광역시청은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동에 소재한다.

 

〔지형〕: 지형은 전체적으로 북·서·남의 삼면이 태백산맥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동남쪽으로 동해를 향해 트여 있다. 산지의 지세는 영남 동부 태백산지의 단층지괴와 관련되며, 대체로 남북방향으로 발달해 있다. 지괴는 양산시 물금읍에서 양산천 하곡을 따라 발달한 양산구조선, 수영강·회야강·동천강(東川江)의 골짜기를 따라 달리는 동래∼경주간 구조선, 울산∼포항간의 형산강구조선 등에 의해 크게 4개로 나뉜다.

 

양산구조선 서쪽 지괴는 밀양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가지산(加智山, 1,240m)·천황산(天皇山, 1,189m)·재약산(載藥山, 1,108m)·간월산(肝月山, 1,083m)·신불산(神佛山, 1,209m)·취서산(鷲棲山, 1,059m)·고헌산(高獻山, 1,033m) 등 고도 1,000m 이상의 고산지로 이어진다.

 

양산구조선 동쪽 지괴는 부산광역시의 백양산(白陽山, 642m)·금정산(金井山, 807m), 양산시의 원효산(元曉山, 922m)을 거쳐 이 지역에서 정족산(鼎足山, 700m)·남암산(南巖山, 543m)·문수산(文殊山, 600m)·연화산(蓮花山, 531m)·국수봉(菊秀峰, 590m)으로 이어져 고도 500m 이상의 산들이 상당한 준령을 이룬다.

 

또한 이 지괴의 동쪽에는 부산광역시의 장산(長山, 634m)에서 이어지는 지괴가 본 지역의 대운산(大雲山, 742m)·은곡봉(銀谷峰, 717m)으로 연결되며, 이 지괴의 동사면은 남동방향으로 뻗은 고도 150m 내외의 지맥들이 해안구릉지를 이루며 동해로 이어진다.

 

한편, 울산∼포항간 형산강구조곡의 동쪽은 북쪽으로부터 울산만∼영일만의 동부지괴가 이어져 울산만 동북부에서 남쪽 끝을 이루며, 동대산(東大山, 444m)·무룡산(無龍山, 453m) 외에는 저산성 산지를 이룬다.

 

지질은 대체로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양산구조선을 경계로 서부와 동부로 구분된다. 서부지역은 경상계 신라통의 상층부인 안산암류와 이를 관입한 화강암류로 이루어져 대부분 화성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부지역은 이암·사암 등의 누층으로 이루어진 경상계 신라통의 울산층이 전역을 덮고 있다.

 

〔해 안〕: 울산만은 동해안의 대표적인 만으로, 해안선 길이 42㎞, 어귀 넓이 7.5㎞, 폭 3.2㎞, 만입 길이 8.3㎞, 만내 수심 3.6∼9.1m이다. 또한 간만의 차이가 0.65m로 매우 작고, 주위의 지형이 방파제 구실을 하는 등 항구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 기후는 동쪽은 동해에 직접 면해 있어 난류의 영향을 받으며, 또한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겨울의 찬 북서계절풍을 막아 주어 온화한 편이다. 연평균기온 13℃~14.3℃, 1월 평균기온은 -1~4℃, 7월 평균기온은 25.5℃이며, 연강수량은 900∼1,500㎜로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온다. 풍향은 겨울철에는 대체로 북북서 방향이 주를 이루나, 나머지 계절에는 일정한 풍향이 나타나지 않는다.

 

〔고 대〕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되어 우리의 선인들이 아득한 석기시대부터 육로 또는 해로로 이곳에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루어 살았던 곳이다.

 

서생면 신암리, 병영동 병영성지, 장현동 황방산의 신석기 유적이 있고 석검이 출토된 화봉동과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의 청동기 유적이 있다. 이 밖에 북구 중산동, 온산면 산암리, 언양읍 동부리, 삼동면 둔기리, 온양면 삼광리, 상북면 덕현리, 동구 일산동, 중구 다운동, 삼남면 방기리 등지에서 각종 유적과 유물이 관계 연구기관과 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또한 사연댐 상류에 위치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암각화에는 고래·거북·사슴·멧돼지 등의 각종 동물그림이 있고, 두동면 천전리의 각석에는 원·삼각형·마름모 등의 각종 기하학적 무늬들이 있어 울산지방이 고대 인간사회의 유력한 생활터전이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보여 준다.

 

울산은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소속으로 중구 다운동(茶雲洞)을 중심으로 굴아벌촌(屈阿火村)이라는 읍락을 형성했는데, 신라 파사왕 때 이곳을 취해 굴아화현(屈阿火縣)을 두고, 남쪽에는 생서랑군(生西良郡), 동쪽에는 동진현(東津縣), 언양지방에는 거지화현(居知火縣)을 두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하곡현(河曲縣, 일명 河西縣)으로 이름을 고치고 월성군(月城郡) 외동읍(外東邑) 모화(毛火) 지방에 있던 임관군(臨關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언양지방은 본래 거지화현인데, 경덕왕 때 헌양현(헌陽縣)으로 개칭해 양주의 영현으로 하였다. 신라시대에 울산지방은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파급되어 태화사 등의 불사(佛事)가 성행하였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우시산국(于尸山國)도 울산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의 울주군 웅촌면이 그 위치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신라시대를 통해 울산지방에는 하곡현과 동진현이 임관군의 영현이란 격을 띠고 있었고 남쪽에는 동안군(東安郡)이, 서남쪽에는 우풍현(虞風縣)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 태조 때 개지변(皆知邊)을 지배하고 있던 호족 박윤웅(朴允雄)이 930년(태조 13)에 최환(崔奐)을 보내 항복을 청해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의 공이 컸으므로 하곡(河曲)·동진(東津)·우풍(虞風)의 3현을 합해 흥례부(興禮府, 또는 興麗府)로 승격함에 따라 임관군의 영현에서 벗어나 비로소 한 고을로서 발전해 오늘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983년(성종 2)에는 고려왕조가 지방제도를 강화해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면서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995년(성종 14) 다시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해 전국을 449현으로 분할, 흥례부를 공화현(恭化縣)으로 낮추고 별호를 ‘학성(鶴聲)’이라 했다가, 1018년(현종 9)에 이르러 공화현·헌양현·기장현·동래현를 합해 울주로 개편하고 방어사(防禦使)·지울주사(知蔚州事)를 두었다.

 

1143년(인종 21)에 헌양현을 분립시켜 감무(監務)를 두었고, 동래도 현령(縣令)을 두어 분립시켰다. 울산은 바다와 접해 있고,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고려 후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가 막심하였다.

 

〔조선시대〕

 

1397년(태조 6) 울주에 진(鎭)을 두어 병마사(兵馬使)가 지주사(知州事)를 겸하게 하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행정 개편에 따라 진을 폐지하고 울산군으로 개칭해 비로소 울산(蔚山)이라는 칭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1417년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慶尙左道兵馬節制使營)을 경주에서 울산 병영동(兵營洞)으로 옮기고, 1418년 염포(염浦)를 개항해 왜관을 설치했으며, 1426년(세종 8)에는 병마절도사영을 폐지하고 다시 진을 두어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가 지군사를 겸하다가 1437년 병영을 다시 설치하였다.

 

같은 해 1월에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시키고, 판관을 더 두었다가 8월에 다시 군으로 강등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때 울산군의 호구는 1,058호에 4,161명이었다.

 

1459년(세조 5)에는 동래에 있던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을 개운포(開雲浦)로 옮겼으며, 1510(중종 5)에 삼포왜란으로 염포가 폐쇄되고, 1592년(선조 25)에 개운포에 있던 경상좌수영이 다시 동래군으로 옮겨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울산 의병이 경주·울산을 수복하고 멀리 대구·창녕·동래까지 나아가 적을 무찌르는 등 큰 전공을 올렸다. 그 공훈으로 당시 좌의정 이덕형(李德馨)의 건의로 1598년 울산도호부로 승격하고 병마절도사 겸 부사를 두었으며, 이듬해인 1599년에 임진왜란의 피해로 자립할 수 없는 언양현을 울산도호부에 합쳤다가 1612년(광해군 4)에 다시 현으로 복구시켰다.

 

1616년에는 병마절도가 겸직하던 도호부사직을 전임의 도호부사를 두어 맡도록 하였다. 1681년(숙종 7)에는 하미면(下未面)을 기장현에 이관하고 받기를 되풀이하다가 1861년(철종 12)에 거의 다 되돌려주었다. 1771년(영조 47) 울산의 호구는 8,670호에 3만2,973명이었다.

 

〔근 대〕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를 개정해, 도제도를 폐지하고 23개의 부를 새로이 두었는데, 이 때 울산은 도호부를 군으로 개칭하고 언양·양산·동래·기장·거제·경주·영일·홍해군 등과 함께 동래부의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1906년에는 칙령 제49호의 시행으로 지방행정을 정리해 온남면의 일부와 외남·웅상면을 양산군으로 이속하였다. 1914년 부·군을 정리·폐합하는 지방제도 개편시 언양군을 울산군에 병합했는데, 이 때 태화강 이남의 삼산·달동·신정·옥동지방을 합해 울산면, 하부면과 내상면을 하상면으로 하고 현남면과 현북면을 합해 대현면이라 개칭하였다.

 

1931년 11월 1일 울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4년 동면을 읍으로 승격시켜 방어진읍(方魚津邑)으로 하고, 1944년 대현면을 울산읍에 편입해 출장소를 두었다가 1946년 다시 대현면으로 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병영의 비밀청년회조직이 주도해 일본경찰과 충돌하는 격렬한 시위로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언양·남창·웅촌·온산까지 만세운동이 파급되어 4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냈다.

 

〔현 대〕

 

해방 이후 울산은 경제개발정책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1962년 2월 1일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전 지역과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다운리, 농소면 송정·화봉리를 합해 울산특정공업지구로 지정, 공포하고 같은 해 6월 1일 울산시로 승격시키는 한편, 울산군을 울주군으로 개편하였다.

 

1963년 3월 12일 울주군 서생면이 동래군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양산군의 관할이 되었으나 1983년 2월 15일 다시 울주군으로 복귀하였다. 또 1973년 3월 12일 삼남면의 구수리를 언양면으로 편입시키고, 1973년 7월 1일 두서면에 속했던 소호리를 상북면으로 이속시켰으며, 1975년 10월 1일 온양면의 덕신리와 청량면의 용암·학남리가 온산면으로 편입되었다.

 

1985년 7월 15일 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중·남구가 설치되었고, 1988년 1월 1일 방어진출장소가 동구청으로 승격되어 3구 40개 동이 되었다. 1991년 1월 1일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울산시와 울산군이 통합되고, 1996년 12월 31일 〈울산광역시설치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로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 북구가 신설되고 울주군이 울주군으로 복군되어 4구 1군 체제가 되었다.

 

이후 1998년 3월 1일 동구 염포동 일부가 북구로 편입되었고, 2002년 남구 무거동 일부를 울주군 범서읍으로, 울주군 범서읍 일부를 남구 무거동으로 각각 편입하였다.

 

〔천연기념물〕

 

남구 신정동의 동쪽 바다는 울산극경(쇠고래)회유해면(蔚山克鯨廻遊海面, 천연기념물 제126호)이다.

 

〔민속놀이〕

 

이 고장의 중요한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와 연날리기를 들 수 있다. 줄다리기는 마두희(馬頭戱)라고도 부르는데, 동대산(東大山)이 말머리 모양을 하고 동해로 들어가려는 형국을 하고 있어, 산머리를 서쪽으로 돌려야 풍수지리적으로 좋으므로 서편이 이기도록 해야 한다는 속설에서 기인한 명칭이라고 한다.

 

정초부터 각 마을에서 작은 규모의 골목줄을 당기다가, 정월 보름에 이르면 고을 단위의 큰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시내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큰길을 기준으로 동편이 수줄을, 서편이 암줄을 마련해 대동놀이를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큰줄다리기는 1936년경 일제의 금지로 중단된 채 전승되지 않고 있다.

 

연날리기는 섣달부터 정월 보름까지 성행하는 놀이이나, 큰 연싸움은 대개 정월 보름경에 한다. 이 고장은 바닷가이기 때문에 항상 바람이 적당히 불고 연이 걸릴 곳이 적어 연날리기에 적합한 곳이다. 주로 방패연을 띄우고 탕건이라 해 연줄을 퉁겨 연을 곤두박질시키고 상하좌우로 날게 하는 재주부리기를 즐기는데, 연줄끊어먹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연줄끊어먹기는 사기나 유리 가루를 밥풀이나 부레풀을 이용해 연줄에 묻혀 상대의 연줄을 끊는 시합이다. 이 밖에 지신밟기·윷놀이·널뛰기·달맞이·다리밟기·씨름 등의 세시적 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민 요〕

 

울산시가 공업도시로 변해 전통적 생활공동체가 많이 붕괴되었음에도 노년층에서는 아직도 민요가 상당 부분 전승되고 있다. 이 고장을 대표하는 민요로는 〈담바귀타령〉·〈장타령〉·〈멸치후릿뱃노래〉 등이 전해지고 있다. 〈담바귀타령〉은 조선조 광해군 때 처음 우리나라에 유입된 담배가 동래와 울산에서 경작된 것을 서두로 해 부른다.

 

“담바귀야 담바귀야 동래울산의 담바귀야/너의나라 어디길래 대한나라 나왔느냐/우리나라 좋거니와 대한나라 더욱좋다/……소상반죽 동래반죽 열두마디 길게맞춰/담배한대 피고나니 목구멍에 안개끼고/또한대를 피고나니 배꼽밑에 요분난다.” 이 노래는 경상남도 일대에서 널리 불려지는데 다른 지방으로도 전파되어 전국적으로 채록되고 있다.

 

〈장타령〉은 각설이의 숫자타령과는 다른 유형으로 “……아가리크다 대구장(大邱場) 너무 넓어서 못보고/이산저산 양산장(梁山場) 산이 많아서 못보고/우루루갔다 울산장 하도바빠 못보고……”처럼 인근 지방의 시장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민요로, 역시 지방적 특성을 보여 준다.

 

〈멸치후릿배노래〉는 울산만에서 후리질을 해 멸치를 잡을 때 부르는 어업노동요이다. 앞소리꾼이 1음보를 노래하면 어부들이 후렴을 부르는 형식인데 노를 저을 때, 그물을 당길 때, 고기를 퍼 올릴 때 등 작업에 따라 후렴을 바꾸면서 노동의 동작에 따라 리듬을 맞추어 공동 작업을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 정초에 농악대가 각 가정에 가서 축원해 주는 〈지신밟기노래〉, 대장간에서 풀무질할 때 부르던 것이 아기를 어를 때 부르는 노래로 변한 〈불매노래〉, 골무를 만들어 파는 처녀와 그것을 사는 사람과의 대화로 된 〈골무노래〉, 주머니를 곱게 깁는 과정을 노래한 〈줌치노래〉, 여럿이 놀 때 선후창으로 부르는 〈쾌지나칭칭나네〉 등이 있다.

 

〔관광자원〕

 

예로부터 울산팔경으로 불릴 정도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석기시대 이후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도 많으며,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중화학공업도시로서 산업관광지의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가지산 사계, 간절곶 일출, 강동·주전해안 자갈밭, 대왕암 송림, 대운산 내원암 계곡, 무룡산에서 본 울산공단 야경, 울산체육공원, 반구대, 신불산 억새평원, 작괘천, 태화강 선바위와 십리대밭, 파래소폭포를 울산 12경으로 관광상품화 하여 국내·외 널리 알리고 있다.

 

서부 외곽의 산지지역은 가지산과 신불산을 중심으로 7개의 산이 모여 이루는 수려한 산세와 풍광이 유럽의 알프스에 비견되어 ‘영남의 알프스’라 불린다. 가지산도립공원·신불산군립공원 등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이들 산지는 울창한 활엽수림과 심산유곡이 조화를 이루며, 가을철에는 능선을 따라 단풍과 억새밭이 절경을 이룬다.

 

이들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태화강의 중류부에는 깊은 계곡과 우거진 숲으로 뒤덮인 맑은 호수 사연호와 대암호가 있으며, 또한 배냇골(梨川谷)의 파래소 폭포와 홍류계곡의 홍류폭포 등이 유명하다.

 

상북면 덕현리의 가지산 계곡에 자리잡은 석남사는 왜적을 물리친 호국불교 정신의 산실이며 여승들의 수도장이다. 삼남면 교동리의 작천정(酌川亭)은 작괘천변에 세워진 정자이며, 봄에는 1㎞가 넘는 진입로 주변에 수령이 50년 이상 된 벚나무가 벚꽃터널을 이룬다.

상북면 등억리와 삼남면 가천리 일원에 조성된 한국자수정산업관광지는 자수정 폐광을 이용한 동굴관광지로, 수영장·눈썰매장·인공폭포·놀이공원 등을 갖춘 종합관광휴양단지이다.

온양면의 울산온천은 라돈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단순천으로 대중탕·실내수영장을 비롯해 숙박·휴양시설을 갖추고 있다. 상북면 등억리의 등억온천은 알칼리성 중조천으로, 약 22만 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온천단지로 개발 중에 있다.

 

상북면 이천리에 이천자연휴양림, 삼남면 교동리의 작천정 인근에 간월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웅촌면에 있는 정족산 기슭의 무제치늪은 청정지역으로 자연생태의 보고이며, 청량면의 문수사, 온양면 운화리의 대운산계곡과 내원암, 범서면 입압리의 선바위(立巖) 등도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해안관광휴양지로 동구 일산동의 일산해수욕장은 반달형의 백사장이 1㎞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동해에서 가장 돌출한 울기등대를 중심으로 500년 묵은 해송이 울창한 울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주위에는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대왕의 해중릉인 대왕암을 비롯해 관일대(觀日臺)·어풍대(御風臺) 등의 기암절벽, 고늘물탕이라 부르는 약수터, 천연석굴인 용굴(龍窟) 등이 있다.

 

중구 학성동의 학성공원은 시민들의 도심지 내 휴식처이며, 북구 강동동에는 정자 회센터와 정자해수욕장이 있다. 서생면 진하리의 진하해수욕장은 길이 1㎞의 모래사장과 울창한 송림이 조화를 이루며, 서생면 대송리 간절갑에는 대송등대가 있다. 온산읍에는 동해 용왕의 일곱 왕자 중 처용이 나왔다고 알려진 처용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목도상록수림 등이 있다.

 

산업관광자원으로는 태화강을 따라 울산만 우안에 현대자동차 계열 공장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이로부터 동쪽의 해안에는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소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조선공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장생포를 중심으로 울산만 좌안에서 외황강에 이르는 지역에는 대규모 석유화학공업단지가, 온산항 중심의 남부해안지역에는 비철금속 및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온산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산업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문화유적으로는 특히 선사시대의 유적, 신라시대 이후의 불교문화 유적지, 왜적을 방어한 성터 등이 많다. 국보로는 두동면 천전리의 천전리각석과 언양읍 대곡리의 대곡리반구대암각화가 있고, 보물로는 청량면 율리의 망해사지석조부도와 청송사지삼층석탑, 상북면 덕현리의 석남사부도, 상북면 등억리의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 중구 학성동의 태화사지12상부도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언양읍의 언양읍성, 중구 서동의 울산병영성, 중구 교동의 울산향교 등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울산극경회유해면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울산 연해에는 매년 11월에서 다음 해 3월까지 쇠고래가 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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