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통 인형 마뜨료쉬까는 러시아를 대표할만한 장식품 단순히 목각 인형을 벗어나 러시아의 어머니,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상징하는 마뜨료쉬까는 러시아인들의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있는 러시아 전통 기념품
러시아 시대의 보석 공예가 페테르 카를 파베르제(1846~1920)가 만든 러시아황실의 부활절 달걀을 비롯, 9천만달러(약 1천80억원)에 달하는 공예품
서양 BC 5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금과 구리가 알려져 있었고, 그때 이미 비즈나 핀이 구리로 만들어졌다 청동은 BC 3000년대 후반, 서아시아에서 쓰였으며 제12왕조 무렵부터는 이집트에도 들어와 널리 보급되었다. 이 청동은 기물이나 무기, 그리고 조상(彫像)의 소재로 많이 이용되었다. 청동조상은 주로 납형주조방법에 의존하였으며 제18왕조인 투탕카멘왕 분묘에서 현란한 금속공예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철은 히타이트족이 처음 사용하였다고 하며 그들 문명이 꽃핀 것은 BC 2000년에서 BC 1200년 사이였다. 그리스·에트루리아·로마에서는 금은으로는 작은 기구를 만들고, 큰 그릇이나 거울은 주로 청동으로 만들었다. 그것에는 예술적인 디자인이 가미되어 항아리·거울·화장상자 등에 선각문(線刻紋)이나 조소적 장식이 들어 있다. 7세기 전반 이후의 이슬람 시대에는 사산조 양식의 금은공예가 발달하였으나 이슬람의 금속공예에는 청동·황동·철과 같은 재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거기에는 주조·타출(打出)과 같은 단조·선조·상감·부식 등 다채로운 기법이 쓰였으며, 에마유·클루아조네 등의 칠보기술도 쓰였다 청동은 동물형 물그릇이나, 각종 향로·거울·노커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황동도 기물의 재료가 되었으며, 표면에는 아라베스크·문자명(文字銘)·꽃·인물이나 동물모양이 정교하게 조각되고 곳곳에 은이나 동을 상감하여 장식효과를 높이고 있다.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서는, 유럽 대륙에서 우선 켈트인이 곡선적 디자인을 가진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냈으며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더불어, 금속공예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메로빙거·카롤링거 왕조 때에는 보석을 상감한 귀금속품에 켈트나 로마의 전통을 살린 호화로운 작품이 만들어졌다. 청동과 은을 재료로 하는 크고 작은 주조가 행해지고,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청동품의 주조가 성행하였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즐겨 쓰인 금속재료는 청동이었으며, 조각 작품이나 교회용구와 일용잡기들도 역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바로크·로코코기에 프랑스 예술은 유럽에서 우위를 차지하였으며, 유럽의 금속공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는 생산수단 및 조형수단으로서 기계의 가치가 확인되고, 기계생산 공예품이 제작되어 수공품과는 별개의 아름다움을 갖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계가 만들어내는 생산공예품 때문에 단철세공(鍛鐵細工)과 같은 공인(工人)의 특수기능을 필요로 하는 금속공예를 제외한 일반적 금속수공예는 많이 쇠퇴하였다. 이집트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28article_id=0000065561
중국고대 은(殷)·주(周)시대의 청동기 문화-BC 1500년경이었으며, 이 시기의 청동기는 주조기술이 우수하고 형태와 문양이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최성기에는 놀라울 만큼 정교한 청동기 제품이 만들어졌다. 종류는 주로 천지(天地)나 종묘제사에 쓰는 제기·무기·악기·수레 등이 정교한 주동기술로 만들어졌다. 그것들의 표면을 꾸미는 장식 문양에는 도철문(文)이라는 수면문양(獸面紋樣)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옥석(玉石)을 박아서 그 장식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BC 1000년 이전에 이와 같은 고도의 금속문화가 발달한 것은, 중국인의 조형적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대(周代) 말기에 오면, 의례적인 기물보다는 실생활적인 기물이 많아진다. 전국∼진한(秦漢)시대에는 금은을 상감하거나 도금하여 색조가 풍부한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예전과 같은 수면문이 없어지고, 무늬 없는 동기로 바뀌어 실용적으로 되었다. 한편 철기나 은기도 많이 만들어지고, 동경도 훌륭한 것이 나타났다. 한대(漢代)의 인장(印章)도 역시 고대 중국의 훌륭한 주조금(鑄彫金) 기술을 보인다. 이 무렵에는 금은기도 많이 만들어졌고, 금은상감이나 감옥(嵌玉) 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법과 누금세공과 같은 세밀하고 정교한 기법을 살린 장신구도 많이 만들어졌다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시대에 들어와서는 서역(西域)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호병(胡甁)이라든지, 팔곡배(八曲杯)·각배(脚杯)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금은기가 나타나고, 무늬도 포도무늬와 같은 새로운 것으로 꾸며졌다 송(宋)나라 때의 금은기는 당나라 때의 풍려한 아름다움에 비해 이지적이다. 무늬보다는 형태미를 추구하며 간결한 것이 많고, 문양도 번잡스러운 것을 피하고 있다. 원(元)나라 때 이후의 것에는, 대식(帶飾) 등에 부조(浮彫)한 것이 보이며, 이것은 명(明)나라 때 이후의 복잡하고 세밀한 중국 금속공예의 작풍으로 이어진다
호피족 [ Hopi ]미국 애리조나주(州)북동부에 사는 푸에블로인디언의 일족 호피족 인형
혹소모양 용기-기원전 1500~800 이란 북부지역. 인도가 원산종인 혹소는 어깨에 근육질의 혹이 있다. 이러한 형태의 모양은 이란의 예술품에서 발견된다
동물모양의 용기-기원전 1350~800년. 이란 북부지역.
혹소모양 용기
피토스 그리스의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도기(陶器)이다. 최초의 도기는 BC 10세기경의 초기 기하학 양식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하학양식의 전형(典型)은 아테네의 디필론 묘지에서 출토된 BC 8세기경의 한 무리의 거대한 항아리이다. 뒤이어 BC 8세기부터 BC 6세기 초에 걸쳐 그리스 각지에 동방(東方)의 유익수(有翼獸) 나 물새, 동물이나 인물을 실루엣으로 그린 여러 형태의 다채로운 항아리가 나타났는데, 동방양식에서 코린트 양식의 항아리이다.
원시공예의 주체는 석기·토기, 이어서 목기가 있고 간혹 철기도 출토되고 있으며, 편물(編物)·피혁품·수피가공품(樹皮加工品) 등도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공예품으로는 금속기(金屬器)·직물·염직물·유리 등이 있으며, 녹로() 기타 공구가 학문의 발달과 함께 다양하게 나타나고, 정주생활(定住生活)에 따라 기물(器物)의 종류가 풍부해진다
중세-종교의식에 속하는 제기(祭器) 근세-귀족적 공예=도자기·금속공예·목공·피혁 등 현대-중근동의 도자기·염직물, 동·북유럽이나 러시아의 목공품, 서유럽의 금속공예품, 남유럽의 피혁제품 등에서 뿌리깊은 민속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ㅎ 이거 많이썻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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