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철학 입문 책

불교 철학 입문 책

작성일 2023.07.18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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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종교에 대한 설명보다
불교가 가진 철학에 대해 알고 싶은데
혹시 입문자가 읽을만한 책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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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법륜경을 추천합니다

저서로는 Buddha 수행법 buddhapala 저 입니다

Paṭhama Dhamma Cakka Sutta(初轉法輪經)

제1권 깨달음 이야기

1. 깨달음 이야기(Bodhikathā)

1) 보리수 아래

1. 어느 때 Buddha(佛陀, 覺者) Bhagava(薄伽梵, 世尊)는 Urūvela Nerañjayā( 尼連禪河) 강변 보리수 아래(Bodhirūkkhamūla, 菩提樹下)에 계셨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스승없이 스스로 최상깨달음[abhisambuddha, 圓滿自覺, 圓覺]을 성취한 Bhagava(世尊)는 7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좌념(pallaṅka nisīdati, 平坐, 結跏趺坐)하면서 해탈락(vimutti sukha, 解脫樂)을 누렸다.

그러던 중 밤이 시작될 무렵 연기(paṭicca samupāda, 緣起)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관찰했다.

① 편견[avijja, 無明]에 기초해 의도[saṅkhāra, 有爲, 行]가 발생하고,

② 의도에 기초해 분별(viññāṇa, 識, 分別)이 발생하고,

③ 분별에 기초해 개념[nāmarūpa, 名色]이 발생한다.

④ 개념에 기초해 감각기관[salāyatana, 六處]이 발생하고,

⑤ 감각기관에 기초해 접촉[phassa, 觸]이 발생하고,

⑥ 접촉에 기초해 느낌[vedanā, 受]이 발생하고,

⑦ 느낌에 기초해 갈애[taṇha, 愛]가 발생하고,

⑧ 갈애에 기초해 집착[upādāna, 取]이 발생하고,

⑨ 집착에 기초해 삶의 토대[bhava, 有]가 발생한다.

⑩ 삶의 토대에 기초해 새로운 삶[jāti, 生]이 발생하고,

⑪ 새로운 삶에 기초해 삶의 펼침[jarā, 老; maraṇa, 死]이 발생하고,

⑫ 삶이 전개하는 과정에서 슬픔[soka, 愁], 비통[parideva, 悲], 괴로움 [dukkha, 苦], 근심[domanassa, 憂], 고뇌[upāyāsa, 惱] 등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모든 괴로움 덩어리[dukkha kkhadha, 苦蘊]가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진실로 모든 탐욕을 제거하면,

① 편견[無明]을 남김없이 소멸하면 의도[有爲, 行]가 사라지고,

② 의도가 소멸하며 분별(識, 分別)이 사라지고,

③ 분별이 소멸하면 개념[名色]이 사라진다.

④ 개념이 소멸하면 감각기관[六處]이 사라지고,

⑤ 감각기관이 소멸하면 접촉[觸]이 사라지고,

⑥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受]이 사라지고,

⑦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渴愛]가 사라지고,

⑧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取]이 사라지고,

⑨ 집착이 소멸하면 삶의 토대[有]가 사라진다.

⑩ 삶의 토대가 소멸하면 새로운 삶[生]도 사라지고,

⑪ 새로운 삶이 소멸하면 삶의 펼침[老死]도 사라지고,

⑫ 삶이 전개하는 과정에서 슬픔[愁], 비통[悲], 괴로움[苦], 근심[憂], 고뇌 [惱] 등이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모든 괴로움 덩어리[苦蘊]가 소멸한다. 그때 Bhagava(世尊)은 감흥(udāna, 感興, 自說)을 다음과 같이 마음속으로 읊었다.

「 열심히 정진(jhāyati, 精進, 修行)한 수행자에게

진실로 법칙이 드러나고 모든 의심[kaṅkhati, 疑]이 사라졌다.

그것은 (괴로움) 원인이 일어나는 Dhamma[sahetu dhamma, 有因法]을 분명히 깨달았기[pajānāti, 了知] 때문이다.」

2. 그때 Bhagava(世尊)는는 밤이 깊어 한밤중이 되었을 때 다시 연기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관찰했다.

① 편견[無明]에 기초해 의도[有爲, 行]가 발생하고,

② 의도에 기초해 분별(識, 分別)이 발생하고,

③ 분별에 기초해 개념[名色]이 발생한다.

④ 개념에 기초해 감각기관[六處]이 발생하고,

⑤ 감각기관에 기초해 접촉[觸]이 발생하고,

⑥ 접촉에 기초해 느낌[受]이 발생하고,

⑦ 느낌에 기초해 갈애[愛]가 발생하고,

⑧ 갈애에 기초해 집착[取]이 발생하고,

⑨ 집착에 기초해 삶의 토대[有]가 발생하고,

⑩ 삶의 토대에 기초해 새로운 삶[生]이 발생한다.

⑪ 새로운 삶에 기초해 삶의 펼침[老死]이 일어나고 ,

⑫ 삶이 전개하는 과정에서 슬픔[愁], 비통[悲], 괴로움[苦], 근심[憂], 고뇌 [惱] 등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모든 괴로움 덩어리[苦蘊]가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진실로 모든 탐욕을 제거하면,

① 편견[無明]을 남김없이 소멸하면 의도[有爲, 行]가 사라지고,

② 의도가 소멸하며 분별(識, 分別)이 사라지고,

③ 분별이 소멸하면 개념[名色]이 사라진다.

④ 개념이 소멸하면 감각기관[六處]이 사라지고,

⑤ 감각기관이 소멸하면 접촉[觸]이 사라지고,

⑥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受]이 사라지고,

⑦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渴愛)가 사라지고,

⑧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取]이 사라지고,

⑨ 집착이 소멸하면 삶의 토대[有]가 사라진다.

⑩ 삶의 토대가 소멸하면 새로운 삶[生]이 사라지고,

⑪ 새로운 삶이 사라지면 삶의 펼침[老死]도 사라지고,

⑫ 삶이 전개하는 과정에서 슬픔[愁], 비통[悲], 괴로움[苦], 근심[憂], 고뇌 [惱] 등이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모든 괴로움 덩어리[苦蘊]가 소멸한다. 그때 Bhagava(世尊)는 감흥(感興, 自說)을 다음과 같이 마음속으로 읊었다.

「열심히 정진(精進, 修行)한 수행자에게

진실로 법칙이 드러나고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그것은 (괴로움) 원인이 소멸하는 Dhamma[paccaya khaya, 緣滅法]를 분명히 깨달았기[了知] 때문이다.」

3. 그때 Bhagava(世尊)는 밤이 끝나갈 무렵 이 되었을 때 다시 연기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관찰했다.

① 편견[無明]에 기초해 의도[有爲, 行]가 발생하고,

② 의도에 기초해 분별(識, 分別)이 발생하고,

③ 분별에 기초해 개념[名色]이 발생한다.

④ 개념에 기초해 감각기관[六處]이 발생하고,

⑤ 감각기관에 기초해 접촉[觸]이 발생하고,

⑥ 접촉에 기초해 느낌[受]이 발생하고,

⑦ 느낌에 기초해 갈애[愛]가 발생하고,

⑧ 갈애에 기초해 집착[取]이 발생하고,

⑨ 집착에 기초해 삶의 토대[有]가 발생하고,

⑩ 삶의 토대에 기초해 새로운 삶[生]이 발생한다.

⑪ 새로운 삶에 기초해 삶의 펼침[老死]이 발생하고,

⑫ 삶이 전개하는 과정에서 슬픔[愁], 비통[悲], 괴로움[苦], 근심[憂], 고뇌 [惱] 등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모든 괴로움 덩어리[苦蘊]가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진실로 모든 탐욕을 제거하면,

① 편견[無明]을 남김없이 소멸하면 의도[有爲, 行]가 사라지고,

② 의도가 소멸하며 분별(識, 分別)이 사라지고,

③ 분별이 소멸하면 개념[名色]이 사라진다.

④ 개념이 소멸하면 감각기관[六處]이 사라지고,

⑤ 감각기관이 소멸하면 접촉[觸]이 사라지고,

⑥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受]이 사라지고,

⑦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渴愛)가 사라지고,

⑧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取]이 사라지고,

⑨ 집착이 소멸하면 삶의 토대[有]가 사라진다.

⑩ 삶의 토대가 소멸하면 새로운 삶[生]이 사라지고,

⑪ 새로운 삶이 소멸하면 삶의 펼침[老死]이 사라지고,

⑫ 삶이 전개하는 과정에서 슬픔[愁], 비통[悲], 괴로움[苦], 근심[憂], 고뇌 [惱] 등이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모든 괴로움 덩어리[苦蘊]가 소멸한다. 그때 Bhagava(世尊)은 감흥(感興, 自說)을 다음과 같이 마음속으로 읊었다.

「열심히 정진(精進, 修行)한 수행자에게

진실로 법칙이 드러나고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suriya, 太陽)처럼

악마군대(mārasena, 惡魔軍隊)를 파괴(vidhupaya, 破壞)했다.」

2) ajapālanigrodha 나무 아래

4. 그때 Bhagava(世尊)는 보리수 아래서 7일이 지난 후 samādhi(三昧, 止, 定)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ajapālanigrodha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자세로 7일 동안 좌선하면서 해탈의 즐거움[解脫樂]을 누렸다.

그때 교만한 완나(vaṇṇa, 容顔, caste)로 알려진 한 Brāhmaṇa(婆羅門)가 Bhagava(世尊)에게 다가와 친절히 인사한 후 한 옆에 서서 이렇게 물었다.

「Gotama(瞿曇, 最牛)여!

그대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Brāhmaṇa(婆羅門)가 있는 줄 아는가?

어떤 Dhamma(達磨, 法)를 실천해야 Brāhmaṇa(婆羅門)가 되는 줄 아는가?」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감흥을 읊었다.

「Brāhmaṇa나(婆羅門)는 나쁜 행위[pāpadhamma, 惡行]를 제거하기 위해

교만(huhuṅka, 驕慢)하지 않고

마음오염[kāsāva, 染]를 제거해

자제(yata, 自制)할 줄 알고

웨다(veda, 吠陀)에 통달하고

범행(brahma cariya, 梵行을 완성한다.

그는 Dhamma(法)에 기초해 청정한 말을 하며,

그러한 Brāhmaṇa(婆羅門)에게는 그 어디에도 지옥(ussada, 地獄)은 없다.」

3) mucalinda 나무 아래

5. 그때 Bhagava(世尊)는 ajapālanigrodha 나무 아래서 7일이 지나 samādhi(三昧)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mucalinda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자세로 7일 동안 좌선하면서 해탈의 즐거움[解脫樂]을 누렸다.

그때 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큰 구름이 일고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불고 날씨가 음산했고 7일 동안 비가 내렸다. 그러자 킹코브라[nāgarājā, 龍王]가 자기 거주처에서 나와 Bhagava(世尊) 몸을 7곱번 감고 머리 날갯죽지를 펼쳐 Bhagava(世尊) 머리를 덮었다. 이것은 추위나 더위가 Bhagava(世尊)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파리, 모기, 바람, 열기, 전갈 등이 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킹코브라는 7일이 지난 뒤 비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깬 것을 알고 Bhagava(世尊)를 감고 있던 똬리를 풀었다. 그리고 자기모습을 젊은이로 변신해 Bhagava(世尊) 앞에 나타나 합장(añjali, 合掌)하고 예배(abhivādeti, 禮拜)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킹코브라 마음을 알고[vidahati, 理解] 다음과 같은 감흥을 읊었다.

「 먼저 Dhamma(達磨, 法)를 듣고[suṇāti, 聞] 실천해 스스로 이해하고[passati, 見]

홀로 있으면서 만족함[tuṭṭḥā, 滿足]은 즐거움[sukha, 樂]이다.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abyāpajja, 不害]도 즐거움이다.

애욕(kāma, 愛慾)을 제거하고 세상살이에 집착하지 않는 것[saṁyamati, 自制]도 즐거움이다.

자신에 대한 아만심[asmimāna, 我慢心]을 자제(yata, 自制)할 줄 아는 것은

진실로 최상의 즐거움이다.」

4) Rājāyatana 나무 아래

6. 그때 Bhagava(世尊)는 mucalinda 나무 아래서 7일이 지난 뒤 samādhi(三昧) 깨어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rājāyatana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자세로 7일 동안 좌선하면서 해탈의 즐거움[解脫樂]을 누렸다.

그때 Tapussa와 Bhallika라는 2명의 상인이 Ukkala로부터 와서 그들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들이 Bhagava(世尊)가 수행하고 있던 rājāyatana 나무 부근을 지났다. 그때 전생에 두 상인의 친척이었던 데봐(deva, 天神)가 그들 앞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벗이여! 처음으로 스승없이 스스로 올바른 깨달음(圓滿自覺)을 이룬 Bhagava(世尊)가 rājāyatana 나무 아래에 있습니다. Bhagava(世尊)께 Mantha와 Madhupiṇḍika를 공양올리십시오. 그러면 긴 밤 동안 즐거움과 행복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2명의 상인은 Mantha와 Madhupiṇḍika를 준비해 공양올리기 위해 Bhagava(世尊)를 찾아뵙고 절하고 한 옆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bhante(師, 尊者)시여! ㅂBhagava(世尊)시여! 저희가 공양올리는 Mantha와 Madhupiṇḍika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긴 밤 동안 즐거움과 행복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 Tathāgata(如來)가 직접 손으로 그 공양받을 수 없다. 어떻게 Mantha와 Madhupiṇḍika를 받을 수 있을까?」

그때 Cattāro Mahārājā(四大王)가 Bhagava(世尊) 마음을 자기마음으로 알고[cetoparivitakka maññati, 推論思量] 사방에서 다가와 4개의 돌로 만든 Patta(鉢盂)를 공양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Bhan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이 Patta에 Mantha와 Madhupiṇḍika를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Bhagava(世尊)는 그 Patta를 받아 공양했다. 그때 2상인은 Bhagava(世尊)가 Patta에서 손을 거두는 것을 보고 Bhagava(世尊) 발에 머리 숙여 절하며 말했다.

「오, Bhante, 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Bhagava(世尊)와 Dhamma(達磨, 法)에 귀의(saraṇa gacchāmi, 歸依) 합니다. Bhagava(世尊)는 저희를 Upāsaka(優婆塞)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2상인 Tapussa와 Bhallika는 Bhagava(世尊)와 Dhamma(法)를 믿는 최초의 불교도가 됐다.

5) Brahma(梵天)의 청

7. 그때 Bhagava(世尊)는 rājāyatana 나무 아래서 7일이 지난 뒤 samādhi(三昧)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Ajapālanigrodha 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자세로 7일 동안 좌선하면서 해탈의 즐거움[解脫樂]을 누렸다.

그곳에서 홀로 앉아 좌선할 때 마음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parivitakketi, 遍尋) 떠올랐다.

「 내가 성취한 이 Dhamma(達磨, 法)는 깊고[gambhīra, 深], 만나기 어렵고[duddasa, 難見], 이해하기 어렵고[duranubujjhati, 難覺], 고요하고[santa, 寂靜], 뛰어나고[paṇīta, 勝妙, 極妙], 심오(atakkāvacara, 深奧)하고, 미묘(nipuṇa, 微妙)하고, 지혜로운 사람[paṇḍita, 智者]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집착(ālaya, 執着)하기 좋아하고[rāma, 喜悅], 집착을 즐기고[rata, 熱中], 집착을 탐닉(sammudita, 眈溺)한다. 집착하기 좋아하고,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탐닉하는 사람이 어떤 것이라도 「이것에 의지해 저것이 있다, idappaccaya, 此緣]는 연기법(paṭiccasamupāda, 緣起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의도가 고요해지고[sabbasaṅkhāra samatha, 諸行寂滅], 모든 바램이 소멸되고[sabbaupadhi paṭinissagga, 諸願捨離], 모든 갈애가 사라지고[sabbataṇha khaya, 諸渴愛壞], 모든 탐욕에서 벗어나고[virāga, 離貪], 모든 괴로움이 제거되고[dukkha nirodha, 苦滅], Nibbāna(涅槃, 寂滅)에 이르는 도리를 아는 것도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만일 내가 Dhamma(法)를 설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나만 피곤하고 힘들뿐이다.」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은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Gāthā(偈頌)가 떠올랐다.

「 나는 매우 어렵게 성취했다.

그러나 지금 보여줄 수 없다.

탐욕[rāga, 貪]과 분노[dosa, 嗔]에 뒤덮인 사람은

이 Dhamma(法)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Dhamma(法)는 흐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paṭisota, 逆流]

미묘(微妙)하고, 깊고[gambhīra, 深], 보기 어렵고(難見), 섬세하고[aṇu, 細],

탐욕에 물들고[rāgaaratta, 染貪], 어둠으로 뒤덮인[tamakhandha, 暗蘊] 사람은

이 Dhamma마(法)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깊이 생각한 Bhagava(世尊)는 Dhamma(法)를 설하지 않기로 했다.

8. 그때 Sahampati라는 Brahma(梵天)이 Bhagava(世尊) 마음을 자기마음으로 알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 아! 세상은 진실로 멸망하는구나.

아! 세상은 정말로 소멸하는구나.

Tathāgata(如來), Arahant(阿羅漢, 應供), Sammāsambuddha(正自覺)가 Dhamma(法)를 설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Brahma Sahampati는 마치 신통술을 부리는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펼치고, 펼쳤던 팔을 다시 거둬들이는 것처럼 Brahma(梵天) 세계로부터 Bhagava(世尊)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ㅂBrahma Sahampati는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ekaṁsa uttarāsaṅga karati, 偏袒右肩],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dakkhiṇa jāṇumaṇḍala rāgaratta, 右膝着地l, 두 손을 모아 합장[añjali paṇāmeti, 合掌供敬]하고 ㅂBhagava(世尊)에게 다음과 같이 간청했다.

「 오, Bhante, 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Sugata, 善逝)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평화롭고(寂靜), 먼지[raja, 塵]가 적은 중생(satta, 有情, 衆生)도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Dhamma(法)를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이지만 Dhamma(法)를 들으면 이해[ājānāti, 開悟]할 것 입니다.』

Brahma Sahampati는 다시 다음과 같이 간청했다.

『( Bhagava) 이전 Magadha(摩揭陀)에

오염된 Dhamma [asuṅa dhamma, 不淨法]가 나타나 있었으니,

때묻은 사람[samala, 垢人]이 사유(cinteti, 思惟)한 것이었다.

이제 ( Bhagava가) 감로문(amata dvāra, 甘路門)을 열었으니,

때를 여윈[vimala, 離垢] Buddha Dhamma를 들으소서.

지극히 현명한 분[Sumedha, 善慧]이여!

넓은 눈을 가진 분[samanta cakkhu, 一切眼者, 普眼者]이여!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같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Dhamma(法)로 이뤄진 누각 위에 올라

비탄(soka, 悲嘆)에 빠져 있고, 어둠[tama, 暗]과 죽음[peta, 死]에 빠져있고,

태어남[jāti, 生]과 늙음[jara, 老]에 정복된 사람을 내려다보소서.

일어나소서!

영웅[vīra, 雄]이시여!

전쟁의 승리자[vijitasaṅgāma, 戰勝者]시여!

마차의 기수[satthavāha, 騎手] 처럼

빚 없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세상을 돌아다니소서.

Bhagava(世尊)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Bhagava(世尊)는 Brahma Sahampati 청을 들은 뒤 그에게 재차 다음과 같이 말했다. Brahma 아,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 내가 성취한 이 Dhamma(法)는 깊고[深], 만나기 어렵고[難見] 이해하기 어렵고[難覺], 고요하고[寂靜], 뛰어나고[勝妙], 심오(深奧)하고, 교묘(巧妙)하고, 지혜로운 사람[智者]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집착하기 좋아하고[喜悅], 집착을 즐기고[熱中], 집착을 탐닉한다[眈溺]. 집착하기 좋아하고,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탐닉하는 사람이 어떤 것이라도 「이것에 의지해 저것이 있다[此緣彼有]」 는 연기법(緣起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모든 의도가 고요해지고[諸行寂滅], 모든 바램이 소멸되고[諸願捨離], 모든 갈애가 사라지고[諸渴愛壞], 모든 탐욕에서 벗어나고[離貪], 모든 괴로움이 제거되고[苦滅], Nibbāna(涅槃)에 이르는 도리를 안다는 것도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만일 내가 Dhamma(法)를 설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나만 피곤하고 힘들뿐이다.」

Brahma 아. 그때 나에게 이런 Gāthā(偈頌)가 떠올랐다.

「 나는 매우 어렵게 성취했다.

그러나 지금 보여줄 수 없다.

탐욕[貪]과 분노[嗔]에 뒤덮인 사람이

이 Dhamma(法)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Dhamma(法)는 흐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逆流]

미묘하고(微妙), 깊고[深], 보기 어렵고[難見], 섬세하고[細],

탐욕에 물들고[染貪], 어둠으로 뒤덮인(暗蘊] 사람은

이 Dhamma(法)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Brahma 아. 나는 이와 같은 깊은 생각 끝에 Dhamma(法)를 설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자 Brahma Sahampati는 재차 Bhagava(世尊)에게 간청했다.

「 오, Bhan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Sugata(善逝)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평화롭고[寂靜], 먼지[塵]가 적은 중생도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Dhamma(法)를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이지만 Dhamma(法)를 들으면 이해할(開悟) 것입니다.」

Brahma Sahampati는 재차 Gāthā(偈頌)로서 다음과 같이 간청했다.

「 (Bhagava) 이전 Magadha에(摩揭陀)

오염된 Dhamma[不淨法]가 나타나 있었으니,

때묻은 사람[垢人]이 사유(思惟)한 것이었네.

이제 (Bhagava가) 감로문(甘路門)을 열었으니,

때를 여윈[離垢] Buddha Dhamma(法)를 들으소서.

지극히 현명한 분[善慧]이여!

넓은 눈[一切眼者, 普眼者]을 가진 분이여!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같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Dhamma(法)로 이루어진 누각 위에 올라

비탄(悲嘆)에 빠져 있고, 어둠[暗]과 죽음[死]에 빠져있고,

태어남[生]과 늙음[老]에 정복된 사람을 내려다보소서.

일어나소서!

영웅[雄]이시여!

전쟁의 승리자[戰勝者]시여!

마차의 기수[騎手]처럼

빚없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세상을 돌아다니소서.

Bhagava(世尊)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Bhagava(世尊)는 세 번째로 Brahma Sahampati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성취한 이 Dhamma(法)는 깊고[深], 만나기 어렵고[難見], 이해하기 어렵고[難覺], 고요하고[寂靜], 뛰어나고[勝妙], 심오(深奧)하고, 교묘(巧妙)하고, 지혜로운 사람[智者]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집착하기 좋아하고[喜悅], 집착을 즐기고[熱中], 집착을 탐닉한다[眈溺]. 집착하기 좋아하고, 집착을 즐기고, 집착을 탐닉하는 사람이 어떤 것이라도 「이것에 의지해 저것이 있다(此緣彼有)」 는 연기법(緣起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모든 의도가 고요해지고[諸行寂滅], 모든 바램이 소멸되고[諸願捨離], 모든 갈애가 사라지고[諸渴愛壞], 탐욕에서 벗어나고[離貪], 모든 괴로움이 제거되고[苦滅], 닙바-나(涅槃, 寂滅)에 이르는 도리를 아는 것도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만일 내가 Dhamma(法)를 설해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나만 피곤하고 힘들뿐이다.」

Brahma 아 그때 나에게 이런 Gāthā(偈頌)가 떠올랐다.

「 나는 매우 어렵게 성취했다.

그러나 지금 보여줄 수 없다.

탐욕[貪]과 분노[嗔]에 뒤덮인 사람이

이 Dhamma(法)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Dhamma마(法)는 흐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逆流]

미묘(微妙)하고, 깊고[深], 보기 어렵고[難見], 섬세하고[細],

탐욕에 물들고[染貪], 어둠으로 뒤덮인[暗蘊] 사람은

이 Dhamma(法)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깊이 생각한 Bhagava(世尊)는 Dhamma(法)를 설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자 Brahma Sahampati는 세 번째로 Bhagava(世尊)에게 간청했다.

「오, Bhan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쑤가따[善逝]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평화롭고[寂靜], 먼지[塵]가 적은 중생도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Dhamma(法)를 듣지 못하면 쇠퇴할 것이지만 Dhamma(法)를 들으면 이해할[開悟] 것입니다.」

Brahma Sahampati는 세 번째 Gāthā(偈頌)로서 다음과 같이 간청했다.

「 (Bhagava) 이전 Magadha(摩揭陀 )에

오염된 Dhamma[不淨法]가 나타나 있었으니,

때묻은 사람[垢人]이 사유(思惟)한 것이었네.

이제 (Bhagava가) 감로문(甘路門)을 열었으니,

때를 여윈[離垢] Buddha Dhamma를 들으소서.

지극히 현명한 분[善慧]이여!

넓은 눈[一切眼者, 普眼者]을 가진 분이여!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같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Dhamma(法)로 이뤄진 누각 위에 올라

비탄(悲嘆)에 빠져있고, 어둠[暗]과 죽음[死]에 빠져있고,

태어남[生]과 늙음[老]에 정복당한 사람을 내려다보소서.

일어나소서!

영웅[雄]이여!

전쟁의 승리자[戰勝者]시여!

마차의 기수[騎手]처럼

빚없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세상을 돌아다니소서.

Bhagava(世尊)시여!

Dhamma(法)를 설하소서.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9. 그때 Bhagava(世尊)는 Brahma Sahampati 청이 지극함을 알고 자비심( kāruññatā, 慈悲心)을 일으켜 Buddha 눈[buddhacakkhu, 佛眼]으로 모든 중생을 살펴보았다[voloketi, 照見]. 그리고 Bhagava(世尊)는 Buddha 눈[佛眼]으로 세상을 살펴보고[ dakkhati, 見] 알았다.

「 먼지[rajakkha, 塵]가 적은 중생, 먼지가 많은 중생, 감각(indriya, 感覺, 根)이 예리한 중생, 감각이 무딘 중생, 성격(ākāra, 性格)이 좋은 중생, 성격이 나쁜 중생, 가르치기[viññāpeti, 敎] 좋은 중생, 가르치기 어려운 중생이 있음을 보았다. 또 어떤 중생은 저 세상에서 피해야할 두려움[bhaya, 怖畏]을 의식하며 지내고, 어떤 중생은 저 세상에서의 피해야할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보았다.

마치 푸른 연꽃[uppala, 靑蓮], 붉은 연꽃[paduma, 紅蓮], 하얀 연꽃[puṇḍarīka, 白蓮]이 있는 연못의 연꽃 같이, 어떤 연꽃은 물속에서 태어나 물 밑바닥으로 내려가면서 자라고, 어떤 연꽃은 물속에서 태어나 수면과 같은 높이로 자라고, 어떤 연꽃은 물 속에서 태어나 수면 위로 자라나 물에 닫지 않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Bhagava(世尊)가 Buddha 눈[佛眼]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먼지가 적은 중생, 먼지가 많은 중생, 감각이 예리한 중생, 감각이 무딘 중생, 성격이 좋은 중생, 성격이 나쁜 중생, 가르치기 좋은 중생, 가르치기 어려운 중생이 있음을 보았다. 또 어떤 중생은 저 세상에서 피해져야할 두려움을 의식하며 지내고, 어떤 중생은 저 세상에서 피해야할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Bhagava(世尊)는 Brahma Sahampati에게 다음과 같이 Gāthā(偈頌)로 말했다.

『 감로문(甘路門)은 활짝 열려있다.

귀 있는 사람은 듣고

(이미 가지고 있던 잘못된) 믿음(saddha, 敎)을 버려라.

ㅂ라 ㅎ만 이여!

사람에게 이 지혜롭고 숭고한 Dhamma(paguṇa dhamma, 最上法)를 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나만 피곤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Brahma Sahampati는 자기 청이 이뤄져 Bhagava(世尊)가 설법을 허락한 줄 알고 Bhagava(世尊)를 오른 쪽으로 돌아서 예배(abhivādeti, 禮拜)한 후 그곳에서 사라졌다.

6) 5bhikkhu(pañcavaggiya)

10.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bhavati,有]. 누구에게 처음으로 나의 Dhamma(法)를 설[deseti, 示敎]할까? 누가 이 Dhamma(法)를 빠르게 이해할까[ājānāti, 開悟]?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Ālāra kālāma가 있다. 이 사람은 뛰어나고 배움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마음에 때가 적은 수행자였다. 나는 Ālāra kālāma에게 처음으로 Dhamma(法)를 설해야겠다. 그라면 이 Dhamma(法)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한 Deva(天神)가 모습을 감춘 채 Bhagava(世尊)에게 다가와서

「Bhante(師)시여! Ālāra kālāma는 7일 전에 죽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Bhagava(世尊) 역시 7일 전에 Ālāra kālāma가 죽은 것을 아는 지혜가 일어났다[uppajjati, 起].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Ālāra kālāma는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만일 그가 이 Dhamma(世尊)를 들었다면 틀림없이 매우 빠르게 이해했을 텐데.」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누구에게 처음으로 나의 Dhamma(法)를 설할까? 누가 이 DhammaDhamma(法)를 빠르게 이해할까?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Uddaka rāmaputta가 있다. 이 사람은 뛰어나고 배움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마음에 때가 적은 수행자였다. Uddaka rāmaputta에게 처음으로 Dhamma(法)를 설해야겠다. 그라면 이 Dhamma(法)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한 Deva(天神)가 모습을 감춘 채 Bhagava(世尊)에게 다가와서

「Bhante(師)시여! Uddaka rāmaputta는 전날 밤에 죽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Bhagava(世尊) 역시 전날 밤에 Uddaka rāmaputta가 죽은 것을 아는 지혜가 일어났다.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Uddaka rāmaputta는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만일 그가 이 Dhamma(法)를 들었다면 틀림없이 매우 빠르게 이해했을 텐데.」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누구에게 처음으로 나의 Dhamma(法)를 설할까? 누가 이 Dhamma(法)를 빠르게 이해할까?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그렇다 5bhikkhu(pañca vaggiyā bhikkhu, 五比丘)가 있다. 그들은 내가 열심히 수행할 때 나를 보살펴 주었고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정말로 이 5bhikkhu 에게 나의 첫 번째 Dhamma(法)를 설해야겠다.」

그때 Bhagava(世尊)는 5bhikkhu 가 지금 어디에서 머물고 있는지를 살피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청정한 하늘눈[dibba cakkhu, 天眼]으로 5bhikkhu 가 Bārāṇasi Isipatana Migadāya(鹿野園)에 머물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하여 Bhagava(世尊)는 Urūvela에서 좋을 만큼 머문 뒤 Bārāṇasi로 길을 떠났다.

11. 그때 Bhagava(世尊)는 Bodhi(菩提樹)와 Gaya(伽耶) 사이에 있는 긴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그때 Ājīvaka 교도인 Upaka가 Bhagava(世尊)를 보고 물었다.

「오! 벗[āvuso, 友]이여! 그대의 감관(indriya, 感官)은 매우 맑고, 피부는 매우 하얗게 빛납니다. 그리고 모습은 아주 행복해 보입니다. 누구를 따라 출가(pabbaja, 出家)했고, 누구를 스승[satthar, 師]으로 모시며, 어떤 Dhamma(法)를 배우고 있습니까?」

그때 Bhagava(世尊)는 Ājīvaka 교도인 Upaka에게 Gāthā로써 대답했다.

「나는 모든 것을 정복했고[sabba abhibhū, 一切勝者], 모든 것을 알았고[sabba vidū, 一切智者], 모든 Dhamma(法)에 오염되지 않았고[anūpalitta, 無染法], 모든 것을 버렸고[jaha, 捨離], 갈애를 다한[taṇha khaya, 盡渴愛] 해탈( vimutti, 解脫)을 성취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saya abhijānāti, 圓滿自覺], 누구를 스승[uddisati, 戒師]으로 하겠는가? 나에게는 스승(ācariya, 阿闍梨, 師)이 없다. Deva(天神)을 포함해 세상에는 나와 동등한 사람도 없으며[na sadisa, 無等], 나와 비교할 사람도 없다[na pāṭi puggala, 無比]. 나는 진실로 세상의 보배[araha loka, 世寶], 내가 최고스승[sattha anuttara, 無上師]이다. 나는 스스로 올바르게 깨달았으며(正自覺), 아주 상쾌한(sītibhūta, 爽快, 淸凉), Nibbāna(涅槃)를 성취했다. 나는 법륜(dhamma cakka, 法輪)을 굴리기 위해 Kāsi로 간다. 어둔 세상에 감로의 북(amata dundubhi, 甘路鼓, 不死鼓)을 울리기 위해!」

Upaka가 다시 물었다.

「벗이여! 그대 주장대로라면 그대는 최상의 승리자[anata jina, 最上勝者]이겠군요!」

다시 Bhagava(世尊)가 Gāthā(偈頌)로 대답했다.

「 (나와 같은 사람 있다면)

그는 참으로 승리자다.

왜냐하면 āsava(流漏)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Upaka여!

나는 사악한 dhamma(papaka dhamma, 邪法)를 정복했으니

나는 진실로 승리자(jina, 勝者)다!」

그러자 Upaka는

「벗이여! 당신이 말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흔들면서 옆길로 가버렸다.

12. 그때 Bhagava(世尊)는 여행을 계속해 머지않아 Bārāṇasi Isipatana Migadāya(鹿野園)에 도착했다. 그리하여 5bhikkhu 가 머물고 있는 곳에 나타났다. 5bhikkhu 는 멀리서 Bhagava(世尊)가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약속(katheti, 約束)을 했다.

「오, 벗이여! Samaṇa Gotama(沙門 瞿曇)가 온다. 그는 이미 타락(vibbhamati, 墮落)해 수행(padhāna, 修行)을 버리고 사치스런 생활[bāhullika, 奢侈]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그에게 예를 갖추어도 안 되고, 자리에서 일어날[paccuṭṭḥāti 起] 필요도 없다. 그의 Patta(鉢盂)와 Cīvara(大袈裟)를 받아주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가 앉을 자리[āsana, 坐具]는 만들어 두어 그가 원하면 앉을 수 있도록 하자.」

그렇지만 Bhagava(世尊)가 5bhikkhu 에게 오자 그들은 일어서서 영접하지 않겠다던 그들의 약속을 깨고 한 사람은 Bhagava(世尊)의 Patta(鉢盂)와 Cīvara(大袈裟)를 받고, 한 사람은 자리[坐具]를 준비하고, 한 사람은 발씻을 물[pāda odaka, 洗足水]을 가져오고, 한 사람은 발수건[pāda pīṭha, 足巾]을 가져오고, 한 사람은 발의 때를 벗기는 때 문지르게[pāda kaṭhala, 足石]를 가져왔다. Bhagava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앉아서 발을 씻었다. 그러나 그들은 Bhagava(世尊)를 이름[nāma, 名]을 부르거나 벗[avuso, 友]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Bhagava(世尊)는 5bhikkhu 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ikkhu여! Tathāgata(如來)를 이름[名]이나 벗[友]이라고 불러지 마라. bhikkhu! 나는 Arahant(阿羅漢)고, Tathāgata(如來)고, Sammāsambuddha(正自覺)다. bhikkhu여! 귀[sota, 耳]를 기울여라. 나는 감로(amata, 甘露)의 경지를 성취[adhigacchati, 證得]했다. 내가 지금 설명[anusāsati, 說敎] 하겠다. 내가 Dhamma(法)를 보여주겠다[deseti, 示敎]. 설명한대로 따라 실천(paṭipajjati, 實踐)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을 떠나 출가(pabbaja, 出家)할 때 가지고 있던 범행(brahmacariya, 梵行)의 최상목표[pariyosāna, 完善]인 Dhamma(法)를 스스로 볼[diḍḍha, 自見] 수 있고, 스스로 경험할 수 있고[abhijānāti, 自證], 스스로 이해[sacchikaroti, 證得]할 수 있고, 스스로 성취[upasampajjati, 自得]할 수 있다.」

그러자 5bhikkhu 가 Bhagava(世尊)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벗, Gotama여! 이전에 그렇게 열심히 한 수행법(paṭipadā, 修行法)으로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uttari manussa, 超越人間), 뛰어나고[alaṁ, 嚴, 足], 성스러운 지견(ñāṇa dassana, 智見)의 Dhamma(法)를 성취하기 어려웠는데[dukkakārikā, 難行), 하물며 수행하는데 타락(bāhulika, 墮落)해 사치스런(bāhulya, 奢侈) 생활로 되돌아(āvatta, 還俗) 간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뛰어나고 성스러운 지견의 Dhamma(法)를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자 두 번째도 Bhagava(世尊)는 5bhikkhu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ikkhu 여! 나 Tathāgata(如來)는 타락하지도 않았고, 수행을 버리지도 않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가지도 않았다. bhikkhu여! 나는 Arahant(阿羅漢)고, Tathāgata(如來)고, Sammāsambuddha (正自覺)다. bhikkhu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감로(甘露)의 경지를 성취했다. 내가 지금 설명하겠다. 내가 Dhamma(法)를 설하겠다(示顯). 설한대로 따라 실천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을 떠나 출가할 때 가지고 있던 범행(梵行)의 최상목표인 Dhamma(法)를 스스로 볼 수 있고(自見), 스스로 경험할 수 있고(自證),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作證), 스스로 성취할(自得) 수 있다.」

그러자 두 번째도 5bhikkhu 가 Bhagava(世尊)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벗, Gotama여! 이전에 그렇게 열심히 한 수행법(修行法)으로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뛰어나고, 성스러운 지견(智見)의 Dhamma(法)를 성취하기 어려웠는데(難行), 하물며 타락해 수행을 버리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뛰어나고 성스러운 지견의 Dhamma(法)를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자 세 번째도 Bhagava(世尊)는 5bhikkhu 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ikkhu여! Tathāgata(如來)는 타락하지도 않았고, 수행을 버리지도 않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가지도 않았다. bhikkhu여! 나는 Arahant(阿羅漢)고, Tathāgata(如來)고, Sammāsambuddha (正自覺)다. bhikkhu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감로(甘露)의 경지를 성취했다. 내가 지금 설명하겠다. 내가Dhamma(法)를 설하겠다(示顯). 설한대로 따라 실천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을 떠나 출가할 때 가지고 있던 범행(梵行)의 최상목표인 Dhamma(法)를 스스로 볼 수 있고(自見), 스스로 경험할 수 있고(自證),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作證), 스스로 성취할(自得) 수 있다.」

그러자 세 번째도 5bhikkhu 가 Bhagava(世尊)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벗, Gotama여! 이전에 그렇게 열심히 한 수행법(修行法)으로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뛰어나고, 성스러운 지견(智見)의 Dhamma(法)를 성취하기 어려웠는데(難行), 하물며 타락해 수행을 버리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뛰어나고 성스러운 지견의 Dhamma(法)를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 Bhagava(世尊)는 5bhikkhu 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bhikkhu 여! 나에 대해서 잘 기억[abhijānāti, 自證]해 보아라. 이전에 내가 이와 같이 말한 적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그러자 5bhikkhu 가 말했다.

「Bhante(師)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Bhagava(世尊)는 5bhikkhu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Arahant(阿羅漢)고, Tathāgata(如來)고, Sammāsambuddha (正自覺)다. bhikkhu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감로(甘露)의 경지를 성취했다. 내가 지금 설명[說敎]하겠다. 내가 Dhamma(世尊)를 설하겠다(示顯). 설한대로 따라 실천하는 사람은 머지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집을 떠나 출가할 때 가지고 있던 범행(梵行)의 최상목표인 Dhamma(法)를 스스로 볼 수 있고(自見), 스스로 경험할 수 있고(自證),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作證), 스스로 성취할(自得) 수 있다.」

결국 Bhagava(世尊)는 5bhikkhu 를 설득(saññāpeti, 說得)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5bhikkhu 는 Bhagava(世尊) 가르침에게 귀를 기울려 잘 들으려[sussūsati, 善聞] 했고, 최상지혜[aññā, 究境智, 完全智]를 얻고자 하는 마음[citta, 心]을 일으켰다.

7) 법륜(dhammacakka, 法輪)을 굴림

13. 그때 Bhagava(世尊)는 5bhikkhu 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했다.

「bhikkhu여! 2가지 극단[dve anta, 兩極端]이 있다. 이것을 출가한 사람[pabbajita, 出家人]은 가까이해서는[sevita, 追求) 안 된다. 무엇이 2가지 극단인가? 하나는 감각적 쾌락(kāma, 愛慾)이다. 감각적 쾌락에서 발생하는 즐거움에 몰두하는[kāma sukha lika anuyoga, 沒頭愛欲樂] 것이다. 그것은 열등(hīna, 劣等)하고, 세속(gamma, 世俗)적이고, 범부행(pothujjanika, 凡夫行)이고, 성스럽지[ariya, 聖] 못하고, 유익(atthasaṁhita, 有益)하지 못하다. 다른 하나는 자기[atta, sk. ātman, 我] 몸에 스스로 고통(kilamatha, 苦通)을 가해 발생하는 괴로움에 몰두[anuyoga dukkha, 沒頭苦] 하는 것이다. 그것 또한 성스럽지 못하고 유익하지 못하다.

bhikkhu여! 나는 이와 같은 2가지 극단을 버렸다. 그리고 Tathāgata(如來)에 의해 새로운 실천방법[majjhima paṭipada, 中道]이 분명히 깨달아졌고[abhisambuddha,圓滿自覺, 圓覺], 눈을 뜨게 하고[cakkhu karaṇī, 開眼], 알게 하고[ñāṇa karaṇi, 敎], 고요하고[upasama, 寂靜], 원만한 지혜[abhiññā, 圓滿智, 殊勝智, 勝智), 올바른 깨달음[sambodhi, 正覺, 自覺], Nibbāna(涅槃)로 인도(saṁvattati, 引導) 한다.

bhikkhu 여! 무엇이 Tathāgata(如來)에 의해 분명히 깨달아졌고[圓滿自覺], 눈을 뜨게 하고[開眼], 알게 하고[敎], 고요하고[寂靜], 원만한 지혜[圓滿智, 殊勝智, 勝智], 올바른 깨달음[正覺, 自覺], Nibbāna(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새로운 실천방법[中道]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8가지 길[ariya aṭṭhṅgika magga, 聖八支道]다. 예를 들면,

① 올바른 가치관[sammā diṭṭhi, 正見]

② 올바른 의도[sammā saṅkappa, 正思]

③ 올바른 말[sammā vācā, 正語]

④ 올바른 행위[sammā kammanta, 正業]

⑤ 올바른 직업[sammā ājīva, 正命]

⑥ 올바른 노력[sammā vāyāma, 正精進]

⑦ 올바른 알아차림[sammā sati, 正念]

⑧ 올바른 마음집중[sammā samādhi, 正定]

bhikkhu여! 이것이 Tathāgata(如來)에 의해 분명히 깨달아졌고[圓滿自覺], 눈을 뜨게 하고[開眼], 알게 하고[敎], 고요하고[寂靜], 원만한 지혜[圓滿智, 殊勝智, 勝智], 올바른 깨달음[正覺, 自覺], 그리고 Nibbāna(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새로운 실천방법[中道]이다.

14.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의 실제진리[dukkha ariyasacca, 苦聖諦]다. 태어남도 Dukkha[jāti dukkha, 生苦], 늙음도 Dukkha[jarā dukkha, 老苦], 병듦도 Dukkha[byādhi dukkha, 病苦], 죽음도 Dukkha[maraṇa dukkha, 死苦]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Dukkha[appiya sampayoga dukkha, 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Dukkha[piya vippayoga dukkha, 愛別離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Dukkha[piccha nalabhati dukkha, 求不得苦], 요약하면 5온(pañca khandha, 五蘊)에 대한 집착 그 자체가 Dukkha(pañca khandha upādāna dukkha, 五陰盛苦]다.

bhikkhu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를 일으키는 실제진리(dukkha samudaya ariya sacca, 苦集聖諦)다. 새로운 삶의 조건[puna bhava, 再生]을 형성하고, 기쁨[nandi, 歡喜, 悅喜]과 탐욕(rāga, 貪欲)을 동반하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즐기려고 하는 욕락갈애(abhīnandanī taṇha, 欲樂渴愛)가 그것이다. 애욕갈애(kāma taṇha, 愛欲渴愛), 존재갈애[bhava taṇha, 有渴愛], 부갈애[vibhava taṇha, 富渴愛]가 그것이다.

bhikkhu여! 이것이 진실로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실제진리[dukkha nirodha ariya sacca, 苦滅聖諦]다. 곧 갈애에 대한 탐욕을 완전히 없애고[virāga taṇha, 離貪渴愛], 갈애를 소멸하고[taṇha nirodha, 滅渴愛], 갈애를 단념하고[cāga taṇha, 斷渴愛], 갈애를 버리고[paṭinissagga taṇha, 捨渴愛], 갈애로부터 벗어나고[mutti taṇha, 解脫渴愛], 갈애에 집착하지 않는 것[anālaya taṇha, 無着渴愛]이다.

bhikkhu여! 이것이 진실로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제진리[dukkha nirodha gāminī paṭipadā ariya sacca, 苦滅引道聖諦]다. 이것이 8정도[ariya aṭṭhaṅgiko maggo, 聖八支道]다.

① 올바른 가치관[sammā diṭṭhi, 正見]

② 올바른 의도[sammā saṅkappa, 正思]

③ 올바른 말[sammā vācā, 正語]

④ 올바른 행위[sammā kammanta, 正業]

⑤ 올바른 직업[sammā ājīva, 正命]

⑥ 올바른 노력[sammā vāyāma, 正精進]

⑦ 올바른 알아차림[sammā sati, 正念]

⑧ 올바른 마음집중[sammā samādhi, 正定]

15. bhikkhu 여! 나는 이것이 Dukkha(苦)의 실제진리[dukkha ariyasacca, 苦聖諦]라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cakkhu uppjjati, 眼生], 앎이 생겼고[ñāṅa udapādi, 智生], 혜가 생겼고[paññā udapādi, 慧生], 밝음이 생겼고[vijja udapādi, 明生], 빛이 생겼다[āloka udapādi, 光生].

bhikkhu 여! 나는 이 Dukkha(苦)의 실제진리[苦聖諦]를 정확히 이해[pari jānāti, 遍知]해야 한다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나는 이 Dukkha(苦)의 실제진리[苦聖諦]를 이미 정확히 이해[遍知]했다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를 일으키는 실제진리[dukkha samudaya ariya sacca, 苦集聖諦]다라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를 일으키는 실제진리[苦集聖諦]는 당연히 끊어버려야 한다[pajahati, 斷]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를 일으키는 실제진리[苦集聖諦]는 이미 끊어버렸다[斷]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를 소멸시키는 실제진리[dukkha nirodha ariya sacca, 苦滅聖諦]라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를 소멸시키는 실제진리[苦滅聖諦]는 당연히 증득(sacchakaroti, 證得)해야 한다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를 소멸시키는 실제진리[苦滅聖諦]는 이미 증득(證得)했다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의 소멸로 이끄는 실제진리[dukkha nirodha gāminī paṭipadā ariya sacca, 苦滅引道聖諦]라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의 소멸로 이끄는 실제진리[苦滅引道聖諦]는 당연히 수행(bhāvanā, 修行)해야 한다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bhikkhu 여! 이것이 진실로 Dukkha(苦)의 소멸로 이끄는 실제진리[苦滅引道聖諦]는 이미 수행해 마쳤다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Dhamma(法)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眼生], 앎이 생겼고[智生], 혜가 생겼고[慧生], 밝음이 생겼고[明生], 빛이 생겼다[光生].

16. bhikkhu 여! 만약 내가 4가지 실제진리[catū ariya sacca, 四聖諦]를 이와 같이 3번씩 12단계로 아주 분명히[suvisududdha, 善淸淨], 있는 그대로[yathā bhūta, 如實] 알아보지[ñāṅa dassana, 智見] 못했다면, bhikkhu 여! 나는 Deva(天神), Samāra(惡魔), Brahma (梵天), Samaṇa(沙門), Brahmaṇa(婆羅門), 인간(manussa, 人間)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이고[anuttara, 無上師], 스스로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고[sammā sambuddha, 正自覺], 혼자 힘으로 원만히 깨달음을 성취[abhisambuddha, 圓滿自覺, 圓覺]했다고 스스로 선언(paṭijānāti, 宣言)할 수 없는 것이다.

bhikkhu 여! 만약 내가 4가지 실제진리[四聖諦]를 이와 같이 3번씩 12단계로 아주 분명히 있는 그대로 알아보았기[如實智見] 때문에, bhikkhu 여! 나는 Deva(天神), Samāra(惡魔), Brahma(梵天), Samaṇa(沙門), Brahmaṇa(婆羅門), 인간(人間)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無上師), 스스로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고(正自覺), 혼자 힘으로 원만히 깨달음을 성취(圓滿自覺, 圓覺)했다고 스스로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지견(智見)을 갖추었다. 나의 마음해탈[cetovimutti, 心解脫]은 흔들림이 없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삶의 조건[有]이니 지금부터 다시는 새로운 삶의 토대를 갖추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Bhagava(世尊)가 설법하자 5bhikkhu 는 매우 기뻐했고[attamana歡喜], Bhagava(世尊)가 한 법문[abhinadati, 法門]을 받아들였다. 이와 같이 설법(veyyākaraṇa bhaññati, 說法, 問答, 記說, 授記)이 행해지고 있을 때 Koṇḍāñña(憍陳如) 존자(āysmato, 尊者)가 먼지가 없고[viraja, 無塵], 때가 없는[vitamala, ,無垢] 법안(dhamma cakkhu, 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samudaya dhamma, 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nirodha dhamma, 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17. Bhagava(世尊)가 진리의 수레바퀴[dhamma cakka, 法輪]을 굴리자 땅의 신[ bhumma deva, 地神]이 소리쳤다.

「Bhagava(世尊)가, 지금 Bārāṇasi Isipatana Migadāya(鹿野園)에서 최상법륜(anuttara dhammacakka, 最上法輪, 無上法輪)을 굴렸다. 이것은 Samaṇa(沙門), Brahma (梵天), Deva(天神), Samāra(惡魔), Brahmaṇa(婆羅門) 등 세상의 어느 누구도 굴리지 못한 것이다.」

땅의 신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 Cātu mahā rājika deva(四大王神)이 외쳤다. Tāvatiṁsa deva(三十三天神)도, Yāma deva(夜摩神)도, Tusita(兜率天神)도, Nimmāna ratī(化樂天神)도, Para nimmita vasavattī(他化自在天神)도 외쳤다. 그 외침을 듣고서 Brahma kāyika(梵身天)도 외쳤다.

「Bhagava(世尊)가, 지금 Bārāṇasi Isipatana Migadāya(鹿野園)에서 최상법륜(最上法輪, 無上法輪)을 굴렸다. 이것은 Samaṇa(沙門), Brahma (梵天), Deva(天神), Samāra(惡魔), Brahmaṇa(婆羅門) 나 등 세상의 어느 누구도 굴리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외침은 순시간에 Brahma (梵天)까지 그 소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때 일천세계(dasa sahassi lika dhātu, 一千世界)가 격렬하게 진동(saṁkampi, 振動)하고 Deva(天神)의 위엄(anubhāva, 威嚴)을 능가하는 한없이 장엄한 빛[uḷāra obhasa, 莊嚴光明]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때 Bhagava(世尊)는

「오 나의 벗이여! 참으로 Koṇḍañña(憍陳如)가 깨달았다[aññāsi, 阿若, 開悟)]. 참으로 Koṇḍañña가 깨달았다.」

라고 감흥을 읊었다. 그때부터 Koṇḍañña 존자는 Aññā Koṇḍañña(阿若憍陳如)로 불리어졌다.

18. 진실로 Aññā Koṇḍañña 존자는 Dhamma(法)를 보았고[diṭṭha dhamma, 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patta dhamma, 得法], Dhamma(法)를 알았고[vidita, dhamma, 知法], Dhamma(法)를 꿰뚫었다[pariyogāḷha dhamma, 通法]. 의심을 극복했고[tiṇṇa vicikicchā, 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vigata kathaṅkhatha, 離惑], 완전히 자기확신에 도달해 두려움이 없고[vesārajja patta, 得無畏], Buddha 가르침[satthusāsana, 師敎] 이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aparappaccaya, 無依存]. Aññā Koṇḍañña 존자가 Bhagava(世尊)에게 다음과 같이 청했다.

「Bhan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저는 Bhagava(世尊)에게 출가(pabbajja, 出家)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고 싶습니다.」

Bhagava(世尊)가 말했다.

「오라 Bhikkhu 여[ehi bhikkhu, 善來比丘])! Dhamma(法)는 이미 잘 설해 놓았다[svākkhato dhamma, 善說法]. 올바르게 Dukkha(苦)를 소멸시키고자 하면 청정한 수행[brahmacariya, 梵行]을 하라.」

Aññā Koṇḍañña 존자는 이렇게 해서 Upasampadā(具足戒)를 받고 최초의 Bhikkhu 가 됐다.

19. 그때 Bhagava(世尊)는 나머지 Bhikkhu에게도 Dhamma(法)를 설했다. 그때 Vappa 존자와 Bhaddiya 존자가 먼지가 없고, 때가 없는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고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진실로 두 존자는 Dhamma(法)를 보았고[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得法], Dhamma(法)를 알았고[知法], Dhamma(法)를 꿰뚫었다[通法]. 의심을 극복했고[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離惑], 완전히 자기 확신에 도달해 두려움 없게 되고[得無畏], Buddha 가르침[師敎] 이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 그들은 Bhagava(世尊)에게 다음과 같이 청했다.

「Bhan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저는 Bhagava(世尊)에게 출가(出家)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고 싶습니다.」

Bhagava(世尊)가 말했다.

「오라 Bhikkhu 여! Dhamma(法)는 이미 잘 설해 놓았다[善說法]. 올바르게 Dukkha(苦)를 소멸시키고자 하면 청정한 수행(梵行)을 하라.」

두 존자는 이렇게 해서 Upasampadā를 받았다.

Bhagava(世尊)는 탁발(piṇḍā, 托鉢) 해 온 음식을 먹고 난 뒤, 다시 나머지 Bhikkhu 에게 Dhamma(法)를 설했다. 이렇게 Bhagava(世尊)와 Bhikkhu는 3명이 탁발해 온 것으로 6명이 생활했다. 그리하여 Mahānāma 존자, Assaji 존자가 먼지가 없고, 때가 없는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이다.」

라고 깨달았다.

진실로 두 존자는 Dhamma(法)를 보았고[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得法], Dhamma(法)를 알았고[知法], Dhamma(法)를 깊이 꿰뚫었다[通法]. 의심을 극복했고[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離惑], 완전히 자기 확신에 도달해 두려움 없게 되고[得無畏], Buddha 가르침[師敎] 이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 그들은 Bhagava(世尊)에게 다음과 같이 청했다.

「Bhan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저는 Bhagava(世尊)에게 출가(出家)해 Upasampadā( 具足戒)를 받고 싶습니다.」

Bhagava(世尊)가 말했다.

「오라 Bhikkhu 여! Dhamma(法)는 이미 잘 설해 놓았다[善說法]. 올바르게 Dukkha(苦)를 소멸시키고자 하면 청정한 수행[梵行)을 하라.」

두 존자는 이렇게 해서 구족계를 받았다.

8) 무아법문(anttaparyyāyo, 無我法門)

20. 그때 Bhagava(世尊)는 5Bhikkhu 를 불러 말했다.

Bhikkhu여! rūpa(色)는 anatta(無我)다. 만일 Rūpa가 atta(我)라면 Rūpa에 병(ābādha, 病)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Rūpa(色)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어야[labbhati, 可能] 한다. 그러나 Bhikkhu 여! 어떤 것이라도 Rūpa(色)는 Anatta(無我)다. 그래서 Rūpa(色)에 병이 생기고, Rūpa(色)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Bhikkhu 여! Vedanā(受)는 Anatta(無我)다. 만일 Vedanā(受)가 Atta(我)라면 Vedanā-(受)에 병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Vedanā(受)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Bhikkhu 여! 어떤 것이라도 Vedanā(受)는 Anatta(無我)다. 그래서 Vedanā(受)에 병이 생기고, Vedanā(受)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Bhikkhu 여! Saññā(想)는 Anatta(無我)다. 만일 Saññā(想)가 Atta(我)라면 Saññā(想)에 병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Saññā(想)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ㅂ힉 쿠 여! 어떤 것이라도 Saññā(想)는 Anatta(無我)다. 그래서 Saññā(想)에 병이 생기고, Saññā(想)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Bhikkhu 여! Saṅkhāra(行)는 Anatta(無我)다. 만일 Saṅkhāra(行)가 Atta(我)라면 Saṅkhāra(行)에 병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Saṅkhāra(行)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Bhikkhu 여! 어떤 것이라도 Saṅkhāra(行)라는 Anatta(無我)다. 그래서 Saṅkhāra(行)에 병이 생기고, Saṅkhāra(行)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Bhikkhu 여! Viññāṇa(識)는 Anatta(無我)다. 만일 Viññāṇa(識)가 Atta(我)라면 Viññāṇa(識)에 병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Viññāṇa(識)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Bhikkhu 여! 어떤 것이라도 Viññāṇa는 Anatta(無我)다. 그래서 Viññāṇa(識)에 병이 생기고, Viññāṇa(識)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21. Bhkkhu 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Rūpa(色)는 Anicca(無常)인가?

Bhante(師)시여! Anicca(無常)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라면 그것은 Dukkha(苦)인가 Sukha(樂)인가?

Bhnate(師)시여! Dukkha(苦)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하고, Dukkha(苦)하고, 변하는 Dhamma[vipariṇāma dhamma, 變法]를 이것은 나[eso aha asmi, 我]이고, 나의 것[etaṁ mama, 我所]이고, 나의 Atta[eso me atta, 我我]라고 볼[samanupassati, 看做] 수 있겠는가?

Bhnate(師)시여!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Bhikkhu 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Vedanā-(受)는 Anicca(無常)인가?

Bhnate(師)시여! Anicca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라면 그것은 Dukkha(苦)인가 Sukha(樂)인가?

Bhnate(師)시여! Dukkha(苦)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하고 Dukkha(苦)하고, 변하는 것[變法]을 이것은 나(我)이며, 나의 것[我所]이며, 나의 Atta[我我]라고 볼 수 있겠는가?

Bhnate(師)시여!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Bhikkhu 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Saññā(想)는 Anicca(無常)인가?

Bhante(師)시여! Anicca(無常)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라면 그것은 Dukkha(苦)인가 Sukha(樂)인가?

Bhante(師)시여! Dukkha(苦)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하고, Dukkha(苦)하고 변하는 것[變法]을 이것은 나[我]이고, 나의 것[我所]이고, 나의 Atta[我我]라고 볼 수 있겠는가?

Bhnate(師)시여! 그렇게 불 수 없습니다.

Bhikkhu 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Saṅkhāra(行)는 Anicca(無常)인가?

Bhnate(師)시여! Anicca(無常)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라면 그것은 Dukkha(苦)인가 Sukha(樂)인가?

Bhnate(師)시여! Dukkha(苦)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하고, Dukkha(苦)하고, 변하는 것[變法]을 이것은 나[我[이고, 나의 것[我所]이고, 나의 Atta[我我]라고 볼 수 있겠는가?

Bhnate(師)시여!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ㅂ힉 쿠 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Viññāṇa(識)는 Anicca(無常)인가?

Bhnate(師)시여! Anicca(無常)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라면 그것은 Dukkha(苦)인가 Sukha(樂)인가?

Bhnate(師)시여! Dukkha(苦)입니다.

그러면 만일 어떤 것이든지 Anicca(無常)하고, Dukkha(苦)하고, 변하는 것[變法]을 이것은 나[我]이고, 나의 것[我所]이고, 나의 Atta[我我]라고 볼 수 있겠는가?

Bhnate(師)시여!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22. Bhikkhu 여! 그러므로 어떤 Rūpa(色)에 대해서도 과거(atīta, 過去)의 것이든, 현재(paccuppanna, 現在)의 것이든, 미래(anāgata, 未來)의 것이든, 내적인 것[ ajjjhatta, 內的]이든, 외적인 것[ bahiddha, 外的]이든, 거친 것[oḷārika, 麤]이든, 섬세한 것[sukhuka,(細]이든, 열등한 것[hīna, 劣]이든, 뛰어난 것[māha, 優]이든, 멀리 있는 것[dūre, 遠]이든, 가까이 있는 것[santika, 近]이든, 모든 Rūpa(色)는 내[我]가 아니고, 나의 것[我所]이 아니고, 나의 Atta[我我]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yathābhūta, 如實) 올바른 지혜[sammā paññā, 正慧]로 보아야 한다.

Bhikkhu 여! 그러므로 어떤 Vedanā-(受)에 대해서도 과거의 것[過去]이든, 현재의 것[現在]이든, 미래의 것[未來]이든, 내적인 것[內的]이든, 외적인 것[外的]이든, 거친 것[麤]이든, 섬세한 것[細]이든, 열등한 것[劣]이든, 뛰어난 것[優]이든, 멀리 있는 것[遠]이든, 가까이 있는 것[近]이든, 그 모든 Rūpa(色)는 내[我]가 아니고, 나의 것[我所]이 아니고, 나의 Atta[我我]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如實] 올바른 지혜[正慧]로 보아야 한다.

Bhikkhu 여! 그러므로 어떤 Saññā(想)에 대해서도 과거의 것[過去]이든, 현재의 것[現在]이든, 미래의 것[未來]이든, 내적인 것[內的]이든, 외적인 것[外的]이든, 거친 것[麤]이든, 섬세한 것[細]이든, 열등한 것[劣]이든, 뛰어난 것[優]이든, 멀리 있는 것[遠]이든, 가까이 있는 것[近]이든, 그 모든 Rūpa(色)는 내[我]가 아니고, 나의 것[我所]이 아니고, 나의 Atta[我我]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如實] 올바른 지혜[正慧]로 보아야 한다.

Bhikkhu 여! 그러므로 어떤 Saṅkhāra(行)에 대해서도 과거의 것[過去]이든, 현재의 것[現在]이든, 미래의 것[未來]이든, 내적인 것[內的]이든, 외적인 것[外的]이든, 거친 것[麤]이든, 섬세한 것[細]이든, 열등한 것[劣]이든, 뛰어난 것[優]이든, 멀리 있는 것[遠]이든, 가까이 있는 것[近]이든, 그 모든 Rūpa는 내[我]가 아니고, 나의 것[我所]이 아니고, 나의 Atta[我我]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如實] 올바른 지혜[正慧]로 보아야 한다.

Bhikkhu 여! 그러므로 어떤 Viññāṇa(識)에 대해서도 과거의 것[過去]이든, 현재의 것[現在]이든, 미래의 것[未來]이든, 내적인 것[內的]이든, 외적인 것[外的]이든, 거친 것[麤]이든, 섬세한 것[細]이든, 열등한 것[劣]이든, 뛰어난 것[優]이든, 멀리 있는 것[遠]이든, 가까이 있는 것[近]이든, 그 모든 Rūpa는 내[我]가 아니고, 나의 것[我所]이 아니고, 나의 Atta[我我]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如實] 올바른 지혜[正慧]로 보아야 한다.

23. Bhikkhu여! 이와 같이 들은 것이 많은 나의 성스러운 제자[suta ariya sāvaka, 聲聞聖第子]라면, 그들은 Rūpa(色)에 대해서 싫어하고[nibbindati, 厭離], Vedanā-(受)에 대해서 싫어하고, Saññā(想)에 대해서 싫어하고, Saṅkhāra(行)에 대해서 싫어하고, Viññāṇa(識)에 대해서 싫어한다. 그것[存在]에 대해서 싫어하게 됨으로써 그것[存在]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벗어났다[virajjati, 離貪]. 그것[存在]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것[存在]의 구속으로부터 해탈(vimuccati, 解脫)했다. 그것의 구속으로부터 해탈했기 때문에 해탈해있음[[vimuttamhī, 解脫]을 스스로 알고[ñāṇa, 智] 선언하는 것[bhavati, 有]이다.

「나의 태어남은 끝났다[jāti khīṇa, 生滅].

청정한 수행은 완성되었다[brahmacariya vusita, 梵行終].

해야할 것을 모두 실천했다.

지금 이 삶[itthatta] 이외의 다른 삶[apara]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pajānāti, (了知].」

24. Bhagava(世尊)가 이와 같이 설하자, 기쁨으로 충만된 5Bhikkhu 는 그 기쁨[歡喜]을 Bhagava(世尊)에게 말했다. 그렇게 법문이 설해지자 5Bhikkhu는 집착(upādiyati, 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citta vimuccati, 心解脫]. 그때 이 세상에는 Arahant가 6명이 되었다.

제2권 교단형성

6. 출가이야기

1) Yasa 출가

25. 그때 Bārāṇasi(波羅奈)에 Yasa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세련됐고 큰 부호[seṭṭhana,長者] 아들이었다. 그는 겨울[hemanti, 冬], 여름[gimhi, 夏], 우기(vassa, 雨期)를 보내기 위해 3채의 별장(pāsāda, 別莊)을 가지고 있었다. 우기가 되면 그는 4달 동안 여악사( nippurisa turiya, 女樂師) 시중을 받으며 별장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Yasa는 5욕락(pañca kāmaguṇa, 五慾樂)을 즐기면서 그가 먼저 잠들면 시중드는 사람은 나중에 잠들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기름등불이 타고 있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Yasa는 시중들던 여약사를 보았다. 어떤 사람은 비파(vīṇa, 琵琶)를 겨드랑이에 끼고 자고, 어떤 사람은 작은 북[mudiṅga, 小鼓]을 목 위에 올리고 자고, 어떤 사람은 큰 북[āḷambara, 大鼓]을 겨드랑이에 끼고 자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vikesika, 散髮] 자고, 어떤 사람은 침을 흘리고[vikkheḷika, 唾漏] 자고, 어떤 사람은 코를 골고[vippalapati] 자는 모습이 마치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곳[susāna, 火葬場]과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5욕락(五慾樂)이 불행(ādīnava, 不幸)이라는 마음이 일고 5욕락(五慾樂)을 혐오(nibbidā, 嫌惡)하게 됐다. 그리하여 Yasa는 감흥을 읊었다.

「아! 진실로 괴로움[upadduta, 苦]이구나. 아! 참으로 재난(upassaṭṭha, 災難)이구나.」

그리하여 Yasa는 황금 신[suvaṇṇa pādukā, 金]을 신고 문으로 갔다. 집을 지키는 신[amanussā, 非人]이 문을 열어주면서 말했다.

「 Yasa가 집을 떠나 출가하는 것[anagāriya pabbajjā, 出家]을 어느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Yasa가 성문(nagara, 城門)으로 갔다. 그러자 성을 지키는 신이 문을 열어주면서 말했다.

「Yasa가 집을 떠나 출가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드디어 Yasa는 Isipatana Migadāya(鹿野苑)에 도착했다.

26. 그때 Bhagava(世尊)는 이른 새벽 자리(坐念)에서 일어나 행념(caṅkamati, 行念禪)을 하고 있었다. Bhagava(世尊)는 멀리서 Yasa가 오는 것을 보았다. Bhagava(世尊)는 행념을 멈추고 정해진 자리[paññata āsana 定席]로 돌아가 앉았다. Yasa는 Bhagava(世尊)가 있는 근처에 다가와 감흥을 읊었다.

「아! 진실로 괴로움[苦]이구나. 아! 참으로 재난(災難)이구나.」

그러자 Bhagava(世尊)가 Yasa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 Yasa여! 여기에는 괴로움이 없다[anupadduta, 無苦]. 여기에는 재난이 없다[anupassaṭṭha, 無難]. Yasa여! 이리와 여기에 앉아라. 내가 그대를 위해 Dhamma(dhamma, 達磨, 法)를 설하겠다.」

그때 Yasa는

「여기에는 진실로 괴로움이 없다[無苦]. 여기에는 참으로 재난이 없다[無難.」

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황금신을 벗고 Bhagava(世尊)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Bhagava(世尊)에게 절(禮拜)한 후 옆에 앉았다.

Yasa가 옆에 앉자 Bhagava(世尊)는 Yasa에게 차제설법(anupubba katha, 次第說法)을 했다. 예를 들면 Dāna(布施), Sīla(戒), Sagga(天上)에 관해 설법했다. 욕망(愛慾)에서 발생하는 불행(ādīnava, 不幸), 무익(okāra, 無益), 불결함(saṅkilesa, 汚染)에 대해 설법했다.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나면 큰 이익(ānisaṁsa, 利益)이 있음을 설법( pakāseti, 說法)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Yasa가 Bhagava(世尊)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상태[kalla citta, 順從心]가 돼있고, 잘 받아들이려는 마음상태[mudu citta, 柔軟心]가 돼있고, 장애없는 마음상태[vinīvaraṇa citta, 無障碍心]가 돼있고, 신명난 마음상태[udagga citta, 歡喜心]가 돼있고, 밝고 청청한 마음상태[pasanna citta, 明淨心]가 돼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Buddha 최상설법(Buddha sāmukkaṁsika dhamma desana, 佛最上說法)인 Dukkha(苦), Samudaya(集), Nirodha(滅), Magga(道)의 4성제(catū ariya sacca, 四聖諦)에 대한 Dhamma(達磨, 法)를 설법했다.

Yasa는 마치 때 없는 하얀 천이 매우 잘 물들 듯 먼지가 없고(無塵), 때가 없는(無垢)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27. 그때 Yasa 어머니[mātā, 母]가 별장으로 올라가 보니 Yasa가 보이지 않았다. Yasa 어머니는 장자(長者)에게 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Yasa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장자는 하인에게 말을 태워 사방으로 보내고 그 자신은 Isipatana Migadāya(鹿野苑)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황금신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신발자국을 따라 갔다. Bhagava(世尊)는 장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내가 신통술(iddha abhisaṅkha, 神通述)로 장자가 여기에 앉아있어도, 이곳에 앉아있는 아들을 보지 못하게 해야겠다.」

그때 장자는 Bhagava(世尊)에게 다가와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Bhna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제 아들 Yasa를 보지 못했습니까?」

그때 Bhagava(世尊)가 장자에게 말했다.

「장자여! 여기에 앉아라. 그러면 그대 아들 Yasa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장자는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Bhagava(世尊)께 절하고 한 옆에 앉았다. 장자가 옆에 앉자 Bhagava(世尊)는 장자에게 차제설법(次第說法)을 했다. 예를 들면 Dāna(布施), Sī라(戒), Sagga(天上)에 관해 설법했다. 욕망(愛慾)에서 발생하는 불행(不幸), 무익(無益), 불결함[汚染]에 대해 설법했고, 욕망에서 벗어나면 큰 이익(利益)이 있음을 설법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Yasa 아버지가 Bhagava(世尊)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상태[順從心]가 돼있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상태[柔軟心]가 돼있고, 장애없는 마음상태[無障碍心]가 돼있고, 신명난 마음상태[歡喜心]가 돼있고, 밝고 청청한 마음상태[明淨心]가 돼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Buddha 최상설법(佛最上說法)인 Dukkha(苦), Samudaya(集), Nirodha(滅), Magga(道)의 4성제(四聖諦)에 대한 Dhamma(法)를 설법했다.

장자는 마치 때 없는 하얀 천이 매우 잘 물들듯, 먼지가 없고[無塵], 때가 없는[無垢]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진실로 장자는 Dhamma(法)를 보았고[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得法], Dhamma(法)를 알았고[知法], Dhamma(法)를 깊이 꿰뚫었다[通法]. 의심을 극복했고[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離惑], 완전한 자기확신에 도달해 두려움 없게되고[得無畏], Buddha 가르침[師敎] 이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

장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Bhnate(師)시여! 훌륭하십니다[abhikkamati, 勝].

Bhnate(師)시여! 뛰어나십니다.

Bhnate(師)시여! 뒤집어진 것을 바로 세우는 것(nikkujjeti ukkujjeti, 顚覆正立]과 같이, 덮인 것을 벗겨주고[paṭicchādeti vivarati, 覆開], 어리석은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주고[ muḷha magga ācikkhati, 愚人道告], 어둠 속에서 등불[tela pajjota, 燈]을 가지고 눈있는 사람[cakkhu manta, 慧眼者]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dakkhati, 見]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Bhagava(世尊)는 여러 가지 방법[ aneka pariya, 多方便]으로 Dhamma(法)를 설했습니다.

Bhnate(師)시여! 지금 Bhagava(bhagava, 薄伽梵, 世尊)께 귀의(saraṇaṁ gacchāmi, 歸依)합니다. Dhamma(dhamma, 達磨, 法)에 귀의(saraṇaṁ gacchāmi, 歸依)합니다. Bhikkhu Saṅgha(比丘僧伽)에 귀의(saraṇaṁ gacchāmi, 歸依)합니다. 저를 Upāsaka(優婆塞)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제 목숨이 다할 때[pāṇa upeta, 終命]까지 귀의(歸依)하겠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3귀의(ti saraṇa gamana, 三歸依)를 맹세(dhāreti, 盟誓)한 최초의 Upāsaka(優婆塞)가 됐다.

28. 그때 Bhagava(世尊)가 Yasa 아버지[pitu, 父]인 장자에게 Dhamma(世尊)를 설하는 동안 Yasa는 마음에 반영되는 현상을 보이는 대로[yathā diṭṭha, 如所見], Bhagava(世尊)로부터 가르침 받은 대로[yathā viṭita, 如所得], 자기 수행수준[bhūmi, 地)에서 관찰(paccavekkhati, 觀察)했다. 그리하여 집착(upādāya, 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心解脫]. 그때 Bhagava(世尊)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Yasa 아버지에게 Dhamma(法)를 설하는 동안 Yasa는 마음에 반영되는 현상을 보이는 대로[如所見], Bhagava(世尊)로부터 가르침 받은 대로[如所得], 자기 수행수준[地]에서 관찰했다. 그리하여 집착(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心解脫]. 그가 이제 세속으로 돌아가더라도[hīnāya āvattati, 還俗], 이전에 세속에 있을 때처럼 그렇게 애욕을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신통을 멈추도록 하자.」

그때 Bhagava(世尊)가 신통을 멈추자 Yasa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Yasa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Yasa야! 너의 어머니가 비탄(parideva, 悲嘆)과 근심[soka, 憂]에 빠져있다. 제발 어머니를 죽게 하지 마라.」

그때 Yasa는 Bhagava(世尊)를 올려다보았다[ulloketi, 仰見]. Bhagava(世尊)는 장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자여! 그대 아들 Yas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Yasa는 유학(sekha, 有學)의 지견(ñāṇa dassati, 智見)으로 Dhamma(法)를 보고[dassati, 見], 알았으니[vindati, 知) 그대의 경지와 같은가[seyyatthāpi tayā, 如爾]? Yasa는 마음에 반영되는 현상을 보이는 대로[如所見], Bhagava(世尊)로부터 가르침 받은 대로[如所得], 자기 수행수준[地]에서 관찰했다. 그리하여 집착(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心解脫]. 장자여! 그가 이제 세속으로 돌아가더라도[還俗], 이전에 세속에 있을 때처럼 그렇게 애욕을 즐기겠느냐? 장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Bhnate(師)시여!

Bhagava(世尊)가 말했다.

「Yasa는 유학(有學)의 지견(智見)으로 Dhamma(法)를 보고[見], 알았으니[知] 이미 그대의 경지와 같다[如爾]. Yasa는 마음에 반영되는 현상을 보이는 대로[如所見], Bhagava(世尊)로부터 가르침 받은 대로[如所得], 자기 수행수준[地]에서 관찰했다. 그리하여 집착(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心解脫]. 장자여! 그가 이제 세속으로 돌아가더라도 그전에 세속에 있을 때처럼 그렇게 애욕을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장자가 말했다.

「Bhnate(師)시여! 이와 같이 Yasa가 집착(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心解脫]한 것은 Yasa에게 큰 이익(lābhā, 利益)입니다. Buddha시여! 그것은 Yasa에게 축복(suladdha, 祝福)입니다. Buddha시여! Bhagava(世尊)시여! 오늘 제가 공양(bhatta, 供養) 올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 Yasa를 시중드는 Samaṇa[pacchā samaṇa, 隨從沙門]로 삼으십시오.」

Bhagava(世尊)는 침묵으로 허락했다[ tuṇhī bhāva, 黙然同意]. 장자는 Bhagava(世尊)가 허락(adhivāsana, 許諾)했음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절한 후, Bhagava(世尊)를 오른 쪽으로 3번 돌고[padakkhiṇa, 右遙三匝], 그곳을 떠났다. 그리하여 Yasa는 아버지인 장자가 떠난 후 이와 같이 말했다.

「Bhna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저는 Bhagava(世尊)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고 싶습니다.」

Bhagava(世尊)가 말했다.

「오라 bhikkhu 여[ehi bhikkhu, 善來比丘]! Dhamma(法)는 잘 설해 놓았다. 올바르게 Dukkha[苦]를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

Yasa 존자(āyasmant, 尊者)는 이렇게 해서 Upasampadā(具足戒)를 받았다. 그때 세상에는 7명의 Arahant가 있었다.

2) 4명의 Yasa 재가친구 출가

29. 그때 Bhagava(世尊)는 오전에 옷을 입고[nivāseti, 着衣]을 입고, Cīvara(僧伽梨)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Patta(鉢盂)를 손에 들고 시중드는 Samaṇa[隨從沙彌]인 Yasa 함께 Yasa 아버지인 장자 집으로 갔다. 가서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그때 Yasa 존자 어머니와 이전 부인(purāṇa dutiyaka, 前婦人)이 Bhagava(世尊)에게 와 절하고 한 옆에 앉았다.

Bhagava(世尊)는 그들에게 차제설법(次第說法)을 했다. 예를 들면 Dāna(布施), Sīla(戒), Sagga(天上)에 관해 설법했다. 욕망(愛慾)으로부터 발생하는 불행(不幸), 무익(無益), 불결함[汚染]에 대해 설법했다.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나면 큰 이익(利益)이 있음을 설법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Yasa 존자 어머니와 이전 부인이 Bhagava(世尊)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상태[順從心]가 돼있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상태[柔軟心]가 돼있고, 장애없는 마음상태[無障碍心]가 돼있고, 신명난 마음상태[歡喜心]가 돼있고, 밝고 청청한 마음상태[明淨心]가 돼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Buddha 최상설법(佛最上說法)인 Dukkha(苦), Samudaya(集), Nirodha(滅), Magga(道)의 4성제(四聖諦)에 대한 Dhamma(法)를 설했다. 그들은 마치 때 없는 하얀 천이 매우 잘 물들듯, 먼지가 없고[無塵], 때가 없는[無垢]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진실로 Yasa 존자 어머니와 이전 부인이 Dhamma(法)를 보았고[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得法], Dhamma(法)를 알았고[知法], Dhamma(法)를 깊이 꿰뚫었다[通法]. 의심을 극복했고[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離惑], 완전히 자기확신에 도달해 두려움 없게 됐고[得無畏], Buddha 가르침[師敎] 이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 Yasa 존자 어머니와 이전 부인은 이와 같이 말했다.

「Bhnate(師)시여! 훌륭하십니다.

Bhnate(師)시여! 뛰어나십니다.

Bhnate(師)시여! 뒤집어진 것을 바로 세우는 것[顚覆正立]과 같이, 덮인 것을 벗겨주고[覆開], 어리석은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주고[愚人道告], 어둠 속에서 등불[燈]을 가지고 눈있는 사람[慧眼者]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見]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Bhagava(世尊)는 여러 가지 방편[方便]으로 Dhamma를 설했습니다. Bhnate(師)시여! 지금 Bhagava(世尊)께 귀의합니다(歸依). Dhamma(法)에 귀의합니다(歸依). Bhikkhu Saṅgha (比丘僧伽)에 귀의합니다(歸依). 저를 Upasīka(優婆夷)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제 목숨이 다할 때[終命]까지 귀의(歸依)하겠습니다.」

그들은 3귀의를 맹세한 최초의 Upasīka(優婆夷)가 됐다. Yasa 존자 부모와 이전 부인은 Bhagava(世尊)와 Yasa 존자를 위해 정식(bhojaniya, 正食)과 여러 가지 맛있는 과자(paṇīta, 菓子)를 준비해 손수 시중들었다. Bhagava(世尊)가 공양을 다하고 Patta로부터 손을 거두자 그들은 한 옆에 앉았다. Bhagava(世尊)는 Yasa 존자 부모와 이전 부인을 위해 Dhamma(法)에 관한 이야기[ katha, 法門]를 자세히 설명(sandasseti, 說明)하고 그들을 격려(samādapeti, 激勵)하고, 고무(samuttejeti, 鼓舞)하고, 기쁘게 하고[ sampahaṁseti, 歡喜] 일어서 되돌아갔다.

30. Yasa 존자는 4명의 재가친구[cattaro gihi sahāyaka, 四在家友]가 Bārāṇasi(波羅奈)에 살았다. 그들은 크고 작은 부호[seṭṭhi ānuseṭṭhī 大小富豪] 아들로 이름이 Vimala, Subāhu, Puṇṇaji, Gavampati다. 그들은 Yasa 존자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Kāsāya(袈裟, 染衣)를 입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Yasa가 머리[kesa, 髮]와 수염[massu, 鬚]을 깎고[ohāreti, 削], Kāsāya(袈裟, 染衣)를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 것은 참으로 낮은[oraka, 低級] Dhamma(達磨, 法)와 Vinaya(戒律)이 아니다. 그의 출가는 예사로운 출가가 아니다.」

4명은 Yasa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Yasa 존자에게 절하고 한 옆에 섰다. 그리하여 Yasa 존자는 그 4명의 재가친구를 데리고 Bhagava(世尊)에게 가서 절한 후 한 옆에 앉았다. 그리고 Yasa 존자는 Bhagava(世尊)에게 이와 같이 아뢰었다.

「Bhnate(師)시여! 이 4명은 저의 재가친구인데 Bārāṇasi(波羅奈)에 살고있습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부호의 아들로 이름이 Vimala, Subāhu, Puṇṇaji, Gavampati입니다. Bhagava(世尊)께서 이 4명을 위해 가르침을 설해주십시오.」

Bhagava(世尊)는 그들에게 차제설법(次第說法)을 했다. 예를 들면 Dāna(布施), Sīla(戒), Sagga(天上)에 관해 설법했다. 욕망(愛慾)으로부터 발생하는 불행(不幸), 무익(無益), 불결함[汚染]에 대해 설법했다.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나면 큰 이익(利益)이 있음을 설법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이들이 Bhagava(世尊)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상태[順從心]가 되었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상태[柔軟心]가 되었고, 장애없는 마음상태[無障碍心]가 되었고, 신명난 마음상태[歡喜心]가 되었고, 밝고 청청한 마음상태[明淨心]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Buddha 최상설법(佛最上說法)인 Dukkha(苦), Samudaya(集), Nirodha(滅), Magga(道)의 4성제(四聖諦)에 대한 Dhamma(法)를 설법했다. 그들은 마치 때 없는 하얀 천이 매우 잘 물들듯, 먼지가 없고[無塵], 때가 없는[無垢]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진실로 이들은 Dhamma(法)를 보았고[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得法], Dhamma(法)를 알았고[知法], Dhamma(法)를 깊이 꿰뚫었다[通法]. 의심을 극복했고[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離惑], 완전히 자기확신에 도달해 두려움 없게 되고[得無畏], Buddha 가르침[師敎] 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na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저는 Bhagava(世尊)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고 싶습니다.」

Bhagava(世尊)가 말했다.

「오라 Bhikkhu 여(善來比丘)! Dhamma(法)는 잘 설해 놓았다. 올바르게 Dukkha(苦)를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

그들 존자는 이렇게 해서 Upasampadā(具足戒)를 받았다. 그때 Bhagava(世尊)는 그 Bhikkhu를 위해 Dhamma(法)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ovadati, 說明)해주었다. 그들에게 Bhagava(世尊)가 Dhamma(法)에 관해 설명하고 어떻게 하라고 지시해주자, 집착(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心解脫). 이리하여 세상에는 Arahant가 11명이 됐다.

3) 50명의 Yasa 존자 재가친구의 출가

31. Yasa 존자는 50명의 재가친구[paññāsamatta gihi sahāyaka, 五十在家友]가 있었다. 그들은 그 나라에서 오래됐거나 다음으로 오래된 가문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Yasa 존자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Kāsāya(袈裟)를 입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Yasa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Kāsāya(袈裟)를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 것은 참으로 낮은 Dhamma(法)와 Vinaya(戒律)가 아니다. 그의 출가는 예사로운 출가가 아니다.」

50명의 재가친구는 Yasa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Yasa 존자에게 절하고 한 옆에 섰다. 그리하여 Yasa 존자는 50명의 재가친구를 데리고 Bhagava(世尊)에게 가서 절한 후 한 옆에 앉았다. 그리고 Yasa 존자는 Bhagava(世尊)에게 이와 같이 아뢰었다.

「Bhante(師)시여! 이 50명은 저의 재가친구로써 이 나라에서 오래되었거나 다음으로 오래된 가문의 아들입니다. Bhagava(世尊)께서는 이들을 위해 가르침을 설해주십시오.」

Bhagava(世尊)는 그들에게 차제설법(次第說法)을 했다. 예를 들면 Dāna(布施), Sīla(戒), Sagga(天上)에 관해 설법했다. 욕망(愛慾)으로부터 발생하는 불행(不幸), 무익(無益), 불결함[汚染]에 관해 설법했다.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나면 큰 이익(利益)이 있음을 설법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이들이 Bhagava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상태[順從心]가 되었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상태[柔軟心]가 되었고, 장애없는 마음상태[無障碍心]가 되었고, 신명난 마음상태[歡喜心]가 되었고, 밝고 청청한 마음상태[明淨心]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Buddha 최상설법(佛最上說法)인 Dukkha(苦), Samudaya(集), Nirodha(滅), Magga(道)의 4성제(四聖諦)에 대한 Dhamma(法)를 설법했다. 그들은 마치 때 없는 하얀 천이 매우 잘 물들듯, 먼지가 없고[無塵], 때가 없는[無垢]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진실로 이들은 Dhamma(法)를 보았고[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得法], Dhamma(法)를 알았고[知法], Dhamma(法)를 깊이 꿰뚫었다[通法]. 의심을 극복했고[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離惑], 완전히 자기 확신에 도달해 두려움 없게 되고[得無畏], Buddha 가르침[師敎] 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na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저는 Bhagava(世尊)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고 싶습니다.」

Bhagava(世尊)가 말했다.

「오라 Bhikkhu 여(善來比丘)! Dhamma(法)는 잘 설해 놓았다. 올바르게 Dukkha(苦)를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

그들 존자는 이렇게 해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때 Bhagava(世尊)는 그 Bhikkhu 를 위해 Dhamma(法)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들에게 Bhagava(世尊)가 Dhamma(法)에 관해서 설명해주고 어떻게 하라고 지시해주자, 집착(執着)이 사라지고 Āsava(流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心解脫]. 이리하여 세상에는 Arahant가 61명이 됐다.

10. Māra에 관한 이야기

1) 전법선언

32. 그때 Bhagava(世尊)는 Bhikkhu (比 丘) 를 불러 말했다.

「Bhikkhu (比 丘)여! 나는 하늘[dibba, 天]과 인간(人間)의 모든 그물[pāsa, 網]로부터 해탈(muñcati, 解脫)했다. Bhikkhu 여! 그대들도 하늘과 인간의 모든 그물로부터 해탈했다. Bhikkhu(比 丘) 여! 여행(carati, 旅行)을 떠나라. 많은 사람[nahu jana, 衆人]의 이익(hita, 利益)을 위해. 많은 사람의 행복(sukha, 幸福)을 위해. 세상을 동정하고(anukampā, 同情), 인간과 천신의 안락(attha, 安樂), 이익, 행복을 위해[傳法旅行을 떠나라]. 두 사람[dve, 二人]이 함께 가지마라. Bhikkhu (比 丘)여! 처음도 좋고[ādi kalyāṇa, 初善], 중간도 좋고[majjha kalyāṇa, 中善], 마지막도 좋게(pariyosāna kalyāṇa, 終善], 의미를 갖추고[sāttha, 具意], 유용하게[sabyñjana, 有用] Dhamma(法)를 전(deseti, 傳)하라. 아주 원만하고[ kevala pair puṇṇa, 圓滿], 매우 청정한[pari suddha, 遍淨] 범행(梵行)을 가리켜 주어라. 세상에는 평화로운[寂靜] 중생도 있고, 먼지와 때[raja kkha(垢, 塵垢]가 적은 사람[jātika, 人]도 있다. 그들이 Dhamma(法)를 듣지 못하면[ asavana, 不聞] 쇠퇴(parihāyati, 衰退)할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Dhamma(法)를 들으면 매우 잘 알게 될[ājānāti, 開悟] 것이다. Bhikkhu (比 丘)여! 나 역시 Dhamma(法)를 전하기[dhamma deseti, 傳法] 위해 Urūvera Senāni(將軍) 마을로 갈 것이다.」

2) Māra의 유혹

33. 그때 Māra Pāpima가 Bhagava(世尊)에게 와서 Gāthā(偈頌)를 읊었다.

Māra Pāpima Gāthā(偈頌)

「나는 그대를 여러 가지 그물[pāsa, 網]로 묶을[bandhati, 束縛] 것이다.

인간의 그물,

하늘의 그물,

큰 그물[mahā bandha, 大網]로

그대를 묶을 것이니

Samaṇa(沙門)!

그대는 벗어날[muñcati, 解脫] 수 없다.」

Bhagava(世尊) Gāthā(偈頌)

「나는 모든 그물로부터 해탈했다.

인간의 그물,

하늘의 그물로부터.

나는 이미 큰 그물로부터 해탈했으니

죽음의 신[ antaka, 死神]이여!

그대는 이미 파괴[nihanti, 壞]됐다).」

Māra Pāpima Gāthā(偈頌)

「허공을 다니는[antalikkha carati, 飛空] 그물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의 마음[carati, 行].

나는 그것으로 그대를 묶을[束縛] 것이니

Samaṇa(沙門)여! 그대는 벗어날 수 없다.」

Bhagava(世尊) Gāthā(偈頌)

「Rūpa(色), Sadda(聲), Gandha(香), Rasa(味), Phassa(觸)가 Mano(意)를 사로잡아도

나는 그것에 대한 욕망(chanda, 慾望)으로부터 벗어났으니[vigacchati,捨離)

죽음의 신이여!

그대는 이미 파괴됐다.」

그때 Māra Pāpim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agava(世尊)가 나를 알아보았다. Sugata(善逝)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괴롭고[苦] 비통한(dummana, 悲痛) 마음으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11. 출가수계 이야기

(Samaṇa나 계와 Upasampadā(具足戒) 이야기)

34. 그때 Bhikkhu(比丘)는 여러 방향[+disa, 向] 여러 도시[janapada, 國]부터 출가(pabbajā, 出家)를 원(pekkhati, 願)하고, Upasampadā(具足戒)를 받아 Bhikkhu(比丘)가 되려는 사람을 데리고 와 Bhagava(世尊)께 요청해 출가해 구족계를 받게 했다[āneti, 受]. 그 때문에 Bhikkhu (比丘)도 피로(kilamati, 疲勞)했고,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으려는 사람도 피곤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한적한 장소[raho, 閑定處]에서 홀로 앉아 수행[paṭisallīna, 獨坐靜觀]할 때, 마음[ceto, 心]에 한 생각[pari vitakka, 偏尋]이 일어났다[uppajjati, 起].

「지금 Bhikkhu(比丘)는 여러 방향 여러 도시로부터 출가해 구족계를 받아 Bhikkhu(比丘) 가 되려는 사람을 데리고 와 Bhagava(世尊)께 요청해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게 한다. 그 때문에 Bhikkhu(比丘)도 피로하고,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으려는 사람도 피곤하다. 나는 마땅히 여러 방향 여러 지방에서도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을 수 있도록 지금 Bhikkhu(比丘)에게 허락(anujānati, 許諾)해야겠다.」

그때 Bhagava(世尊)는 저녁에 좌선에서 일어나[vuṭṭhāti, 出定] 그 연유(nidāna, 緣由)를 설명(pakaraṇa, 說明)해주기 위해 Bhikkhu Saṅgha(比丘僧伽)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먼저 Dhamma(法)를 설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ikkhu (比丘)여! 홀로 좌선할 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Bhikkhu(比丘) 는 여러 방향 여러 도시로부터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아 Bhikkhu(比丘) 가 되려는 사람을 데리고 와 Bhagava(世尊)께 요청해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게 한다. 그 때문에 Bhikkhu(比丘) 도 피로하고,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으려는 사람도 피곤하다. 나는 마땅히 여러 방향 여러 지방에서도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을 수 있도록 지금 Bhikkhu(比丘) 에게 허락해야겠다. 따라서 Bhikkhu(比丘)여! 지금부터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아 Bhikkhu(比丘)가 되려는 사람은 그 지방에서 출가시키고 Upasampadā(具足戒)를 주도록 하라. 나는 그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Bhikkhu(比丘)여! 출가시키고 Upasampadā(具足戒) 의식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① 머리털[髮]과 수염[鬚]을 깎는다.

② Kāsāya(袈裟)를 입는다.

③ 한쪽 어깨[ekaṁsa, 肩]에 Uttrāsaṅgā(鬱他羅僧, 上衣)를 걸친다.

④ Bhikkhu(比丘) 발[pāda, 足]에 절[vandati, 禮拜]한다.

⑤ 웅끄리고[ukkuṭika, 蹲踞] 앉는다.

⑥ 합장(añjali paggaṇhāti, 合掌)한다.

⑦ 다음과 같이 말[vadeti, 告]한다.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歸依佛)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歸依法)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歸依僧)

Dutiyaṁ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Dutiyaṁ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Dutiyaṁ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Tatiyaṁ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Tatiyaṁ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Ttatiyaṁ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Bhikkhu(比丘)여! 이와 같이 3귀의(ti saraṇa gamana, 三歸依)를 함으로써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은 것으로 한다.

12. 두 번째 Māra 이야기

35. 그때 Bhagava(世尊)는 Vassa(雨期, 安居)를 지낸 뒤 Bhikkhu(比丘) 를 불렀다.

「Bhikkhu(比丘)여! 나는 논리[yoniso, 如理]로 사유[manasikaroti, 作意]하고, 논리[如理]로 올바르게 노력[sammā padhāna, 正勤]해 최상해탈에 도달[ anupāpūṇāti, 獲得]했고, 최상해탈을 증득(證得)했다. Bhikkhu(比丘) 여! 너희도 논리로 사유하고, 논리로 올바르게 노력해 최상해탈에 도달하고 최상해탈을 증득하도록 하라.」

그때 Māra Pāpima가 Bhagava(世尊)에게 와 Gāthā(偈頌)를 읊었다.

Māra Pāpima Gāthā(偈頌)

「나는 그대를 여러 가지 그물[網]로 묶을[束縛] 것이다.

인간의 그물,

하늘의 그물,

큰 그물[大網]로 그대를 묶을 것이니

Samaṇa여(沙門)!

그대는 벗어날 수 없다.」

Bhagava(世尊) Gāthā(偈頌)

「나는 모든 그물로부터 해탈했다.

인간의 그물,

하늘의 그물로부터.

나는 이미 큰 그물[大網]로부터 해탈했으니

죽음의 신[死神]이여!

그대는 이미 파괴[壞]됐다].」

그때 Māra Pāpim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agava(世尊)가 나의 알아봤다. 쑤가따(善逝)가 나를 알아봤다.」

그리고 괴롭고[苦] 비통한[悲痛] 마음으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13. 점잖은 사람의 모임 이야기

36. 그때 Bhagava(世尊)는 Bārāṇasi(波羅奈)에서 좋을 만큼[yathā bhiranna, 如願] 머문 뒤, Urūvela로 갔다. Bhagava(世尊)는 길을 벗어나 어떤 숲[vana saṇḍa, 叢林] 속으로 들어갔다. 길에서 약간 멀리 들어가 나무 밑[rukkha mūla, 樹下] 앉았다. 그때 33명의 점잖은[bhadda, 賢善] 사람이 부인(sapajāpatika, 婦人)의 시중을 받으며 친구(sahāya, 親舊)와 함께 무리지어 놀고[paricāreti, 遊]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부인이 없어서 유녀(vesī, 遊女)를 데리고 왔다.

그때 유녀는 그 사람이 논다고 부주의[pamatta, 怠慢] 틈을 타서 그 사람 소유물[bhaṇḍa, 財貨]을 가지고 달아났다. 그리하여 다른 친구는 서로 걱정[vyyāvacca, 事] 그 유녀를 찾아 다녔다. 그들은 숲을 돌아다니다 어떤 나무 밑에 Bhagava(世尊)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Bhagava(世尊)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Bhan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어떤 유녀를 보지 못했습니까?」

Bhagava(世尊)가 물었다.

「젊은이[kumāra, 靑年]이여! 그대들은 유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들이 대답했다.

「Bhante(師)시여! 저희는 부인의 시중을 받으면서 친구와 함께 무리지어 놀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은 부인이 없어 유녀를 데리고 왔는데 그 유녀가 그 사람이 술에 취해 부주의한 틈을 타서 그 사람 소유물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Bhante(師)시여! 저희는 재물을 잃어버린 친구를 위해 서로 걱정하며 그 유녀를 찾아 숲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Bhagava(世尊)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느 것이 더 중요[vara, 貴重]한가. 유녀를 찾는 것인가 아니면 Atta(atta, 我)찾는 것인가?」

그들이 대답했다.

「Bhante(師)시여! 우리는 Atta(我)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젊은이이여! 앉아라. 그대를 위해 Dhamma(法)를 설하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Bhante(師)시여! 하고 젊잖은 무리는 Bhagava(世尊)께 절하고 한 옆에 앉았다.

Bhagava(世尊)는 그들에게 차제설법(次第說法)을 했다. 예를 들면 Dāna(布施), Sīla(戒), Sagga(天上)에 관해 설법했다. 욕망(愛慾)으로부터 발생하는 불행(不幸), 무익(無益), 불결함[汚染]에 대해 설법했다.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나면 큰 이익(利益)이 있음을 설법했다.

그때 Bhagava(世尊)는 그들이 Bhagava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상태[順從心]가 돼있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상태[柔軟心]가 돼있고, 장애없는 마음상태[無障碍心]가 돼있고, 신명난 마음상태[歡喜心]가 돼있고, 밝고 청청한 마음상태[明淨心]가 돼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Buddha 최상설법佛最上說法)인 Dukkha(苦), Samudaya(集), Nirodha(滅), Magga(道)의 4성제(四聖諦)에 대한 Dhamma(法)를 설법했다.

그들은 마치 때 없는 하얀 천이 매우 잘 물들 듯, 먼지가 없고[無塵], 때가 없는[無垢]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Dhamma[生法]는 무엇이나 모두 소멸하는 Dhamma[滅法]다.」

라고 깨달았다.

진실로 그들은 Dhamma(法)를 보았고[見法], Dhamma(法)를 성취했고[得法], Dhamma(法)를 알았고[知法], Dhamma(法)를 깊이 꿰뚫었다[通法]. 의심을 극복했고[度疑], 불확실함을 제거했고[離惑], 완전히 자기확신에 도달해 두려움없게 되고[得無畏], Buddha 가르침[師敎] 이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됐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Bhnate(師)시여! Bhagava(世尊)시여! 저희는 Bhagava(世尊)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해 Upasampadā(具足戒)를 받고 싶습니다.」

Bhagava(世尊)가 말했다.

「오라 Bhikkhu [善來比丘]! Dhamma(法)는 잘 설해 놓았다. 올바르게 Dukkha(苦)를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

그들 존자는 이렇게 해서 Upasampadā(具足戒)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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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어록 중에서>

​마음이 움직임을 멈출 때 그것은 열반으로 들어간다.

열반은 바로 텅 빈 마음이다.

이 무심(無心)을 아는 것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은 피안(彼岸)에 다다른 것이다.

그대의 내면에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 바깥 세계도 생겨나지 않는다.

바깥 세계와 마음이 둘 다 사라질 때 그것이야말로 참된 견해이다.

그대의 마음은 본래부터 텅 비어 있다. 모든 형상들은 환상일 뿐이니 그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대는 모든 장벽을 넘어갈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깨달음에 이르고자 결심했다면 그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가장 본질적인 방법은 다른 모든 방법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은 곧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깨달음에 이른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수행을 하더라도 헛된 것이다.

열반의 영원한 축복이 마음이 쉬는 데서 나온다.

삼계에 태어나는 윤회도 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은 모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마음 없음이 곧 모든 것이고, 적멸(寂滅)이 곧 마음 없음임을 알아라.

​이 마음(=무심)은 불법의 본성으로 불린다.또한 이 마음은 해탈로 불린다.

그것은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신성한 자아이며,불멸이고 위대한 성자다.

인연의 조건에서 벗어난 그대 본성의 실체가 바로 마음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다.

그대가 마음을 벗어나 부처나 깨달음을 찾는다면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전에 이르기를 "사람은 항상 자신 속에 부처의 본성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마하가섭도 오직 자신의 본성을 깨달은 것이다.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대는 모든 장벽을 넘어갈 것이다.

머뭇거리는 순간 그대는 마귀의 수하에 떨어질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십대 제자 중에서 아난다(Ananda)는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기억하는데 있어서 제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처를 알지 못했다. 그가 한 것은 단지 공부하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모든 고통은 부처의 씨앗이다.고통으로 인해 지혜를 찾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

그대의 마음과 육체는 하나의 밭이다.고통은 씨앗이다.지혜는 그 싹이고 불성은 그 열매이다.

삼 아승지겁은 바로 삼독심에 물든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범어로 아승지겁이란 말은 그대가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이다.

부처가 삼 아승지겁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무수히 많은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육바라밀은 여섯 가지 감각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우리가 바라밀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대는 '피안에 이르는 방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여섯 가지 감각에 낀 때를 벗겨 냄으로 해서 육바라밀은 그대를 집착의 강을 건너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해 줄 것이다.

계(戒), 정(定), 혜(慧), 삼학을 지키는 것은 삼독심을 물리치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것이었다.

마음은 모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또한 마음은 피안에 닿아 있는 여울이다.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는 그것에 어떻게 이르는 지 걱정하지 않는다.

​​

heal4us.tistory.com

(깨달음과 해탈과 명상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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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철학에 대한 입문 책은 많이 있습니다. 아래는 몇 가지 추천 도서입니다:

1. 《불교의 이해》 - 다이난 커쿠보: 불교에 대한 개요와 철학적인 측면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기본 입문서입니다.

2. 《샘 소사이어의 일주 불교 대화록》 - 샘 소사이어: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불교의 중요한 개념과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3. 《불교의 통찰력》 - 아노 일하로: 불교의 핵심 개념들을 다루면서 불교적인 사고 방식을 설명하는 입문서입니다.

4. 《입문자를 위한 불교 철학》 - 스티븐 J. 로트: 불교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를 위해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이 책들은 불교의 철학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으며, 입문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책을 선택해서 읽어보시면 불교 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공추가] 이해하기 쉬운 철학책 좀...

... 유교철학입문 불교철학입문 도교철학입문 논리학 서양/동양 철학입문 위의 내용... (제가 전공자는 아닙니다.) 많은 철학인들의 추천 부탁드립니다!! < 정의란...

불교 철학 배울점이 많나요?

불교 철학 배울점이 많나요? 근본불교 저자 이중표 출판 민족사 발매 2013.04.01.... 중관사상-불교입문총서10 저자 미등록 출판 미등록 발매 2006.09.12. 선의...

불교 입문방법(불자분들 환영)

지금 23살이고 불교철학이나 가치관이 제 마음에들고 힘들때 스님말씀이나 법문구절 들으면 그렇게 좋더라구요.앞으로 불교입문해 살고싶은데어떻게 시작해야할까요?지금...

중학생 불교 입문하려고 해요

... 예를 들면 천수경 반야심경 이런거 읽어야하나 싶어요! 중학생 불교입문... 초기 불교철학적 색체가 강합니다. 태국쪽 소승불교가 초기 불교에 가까워...

고등학생 불교 입문 책 추천

... 최근에 철학책을 읽다가 짧게나마 석가모니의 일생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석가모니의 일생에 관한 책이나 불교 입문자를 위한 있을까요? 입시 때문에 너무...

불교 철학서적 추천해주세요...

... ㅎㅎ 불교철학의 역사 D. J. 칼루파하나 | 김종욱 옮김 운주사 2014.04.01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불교철학입문하는데 참 좋은 책입니다.

불교입문하고 싶습니다.

... 학사이상이시면 불교철학은 어렵지 않으나 평소에 철학에 관심이 없으셧다면 어려우실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붓다는 없다]를 읽으시거나 [불교심리학입문]< 오카노 모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