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여호수아에서 아간의 죄 라는 대목에서 이해가 안갑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에서 아간의 죄 라는 대목에서 이해가 안갑니다.

작성일 2009.06.26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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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리스도인이구요.

5년동안 성경을 늘 읽어왔는데요...

저는 대부분 신약성경만 읽습니다.

예수님의 자애로우심과 선하심 그리고 그 지혜로우심이 저를 많이 감동시키시는것 같구  또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여호수아편을 읽게 되었는데요.

옛날에 읽었을땐 걍 지나친것 같은데 어제 읽으니 너무 섬뜩해서..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첫번째 전쟁에서

승리하고 2번째에 패배하는데...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 드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중 누군가가 죄를 지어서 그렇다고 하셨어요.

각지파를 나오라하고 남은 지파중에 족속을 나오라 하고 그중 남은 족속중에 죄지은자를 가려내는 그 대목에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죄를 지은것이 발각되고 아간은 숨김없이 죄를 고백했는데도 불구하고

회개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아간과 그 아들과 딸들과 모든 가족들 그리고 그 소유물들을 이스라엘백성들이 돌로 쳐죽이고 불에 사르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늘 자비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이라고 듣고 배운 저로써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시절엔 왜 그렇게 사람을 돌로 쳐죽이는지 ..너무 무서워요..

여호수아를 읽다가 너무 무서워서 성경책을 닫아 버렷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 할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죄는 들으시되 기억하시지 않으시고 용서하신다고~ㅠㅠ 그런데 회개할 기회도없이 그렇게 사람들 손에 처참히 돌에 맞아 죽는것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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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주님의 이름으로 님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를 읽으시고 큰 충격을 받으신 것같으시군요!

 

 이제 님이 성장을 해가는 믿음의 성장통이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님은 식사를 하실때 편식을 하시는지요?  편식을 하게 되면 좋은 것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먹는 것을 편식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결과는 영양의 불균형이 오게되며 그로인하여 병원신세를 자주지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 합하여 66권입니다.(개신교기준)

그런데 님은 신약성경만을 주로 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마음에 드는 것만을 골라 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왜곡하여 알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꼭 신구약 성경을 골고루 읽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초보신앙을 벗으려면...

하나님이 왜 성경을 신약만 주시지 않고 구약도 주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모른다고해서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필요한데 내가 어디에서 필요한지를 모를 뿐인 것입니다.

 

님의 성경지식이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느정도인지 제가 몰라 감히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는 지식과 다르다고해서 틀렸다고 하시는 것을 많이 봤기에...

 

본론으로 님이 알고 싶은 것에대해서 제가는 상식선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꼭 100%이렇다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하신일을 내가 아는 것은 극히 한계가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오늘의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문학으로 좋은글로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아직 믿음이 없다는 증거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서 6장에 보면 아무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 민족이 철옹성인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대로 7일동안 여리고성을 돌았을 뿐인데 성이 무너졌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아무리 큰성이라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할지라도 가능하게 되며 그것을 실제 역사를 통해서 삶의 현장에 나타내 보이심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옹성인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난 이스라엘 민족은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은근이 내가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연약함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이 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했다는 교만함이 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님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이제 님이 말씀하시는 아이성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여호수아 7장에 아이성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성에 비하면 정말 작고 초라한 성이 바로 아이성입니다. 아이성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점령했다는 소문을 듣고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기가 떨어지고 이스라엘을 무서원하는 아이성을 점령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패했습니다. 그런데 전투에서 패한 원인을 여호수아서 7:1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음 가졌음이라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이성싸움에서 진것은 아간의 범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견물생심이라고 사람은 좋은 것을 가지고싶은 마음이 누구나 있음니다. 이것이 사람의 연약함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은 성결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성경 곳곳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베드로전서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이라하더라도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습니다. 믿고 안믿고를 떠나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내것이 아니더라도 갖고 싶고 만지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연약함을 예수를 믿음으로서 내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상사람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간은 가족을 처벌함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죄악의 무서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계시며 모든 전쟁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전쟁을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전쟁의 지고 이기는 것이 달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역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자라고 말씀하신 다윗의 생애를 보면 다윗은 사는 날 동안 거의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모시고 있는 사울왕으로부터 쫓겨다녔고, 아들에게 반역을 당하고 첩들이 대낮에 아들에게 겁탈당하기도 했으며 죽음에 임박에서도 아들 아도니야와 솔로몬의 권력다툼까지 사는 날 동안 평안한 날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다윗은 사는날동안 많은 죄를 지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했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댓가를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분이십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으로, 죄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보혜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즉,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연약하지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지만 내 안에계시는 성령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셔서 죄악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강하게 해시고, 거룩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결과물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도 전과같이 나쁜행동이나 습관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말만 믿는 다고 하는 것이지 실제 믿음은 없는 것인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나무는 무엇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바로 열매로 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12:33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떠들어도 믿음의 열매인 삶의 행위의 결과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하면 그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아간의 가족이 죽임을 당한 것은

 첫째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미리 경고를 하였음에도 범죄한 아간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신 것이며

 둘째 이스라엘민족안에 욕심이 잉태하여 이스라엘민족이 파멸당하지 않기 위해서 죽인 것이며

 셋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운명체임을 분명하게 알리신 것이며

 넷째 전쟁은 내가 잘해서 즉 이스라엘이 잘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하게 승리와 실패가 있음으로 보인 것입니다.

 

님이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독생자 예수를 믿는 것도 님의 믿음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님께 믿음을 허락하셔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땅에 그 외아들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것은 그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그의 삶을 본받아 예수의 삶에 가깝게 가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만 예수를 믿는 다고 합니다. 그런데 행동을 보면 세상 사람들과 같아요. 그것은 아직 믿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를 닮는 삶을 살수 있도록 믿음으로 허락해달라고 기도해야할 줄 믿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날마다 님께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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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여호수아에 나오는 아간에 관한 성경구절입니다.

 

역본: 개역
(수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수 7: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수 7:19)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수 7:20)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수 7: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수 22:20) 세라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었느냐 그 죄악으로 망한 자가 그 사람 뿐이 아니었느니라

 

 여호수아를 큰맥락으로 짚어가면서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서 뿐 아니라 모세오경부터 나오는 이민족들 그리고 여리고성을 대표로 가나안 땅의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십니다. 저는 이러한 장면도 섬뜩하게 뜨겨지곤 합니다. swindy80님께서 들었던 생각도 저도 들곤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움이 되는 글을 옮겨왔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리고성 함락부터 아간이 범죄로 죽는 장면까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여리고의 함락

 

히브리인은 이미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아직 그 나라 백성들을 정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에는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길고도 어려운 전쟁을 치러야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나안에는 강대한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영토의 침략에 대항할 준비를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여러 종족들은 공통된 위험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일치단결하였습니다. 그들의 말과 철병거와 지형에 대한 밝은 식견과 전쟁을 위한 훈련 등을 생각할 때 그들은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나라는 견고한 성채로 방어되고 있었는데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아”(신 9:1) 있었습니다. 그들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분의 능력의 보증으로써만 이스라엘은 절박한 전투에서 성공을 바랄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크고 견고한 성 중에 하나인 부요한 여리고 성읍은 길갈에 있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비옥한 평원의 변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열대 지방의 윤택한 각종 생산물이 풍부했고 사치와 죄악의 소굴인 궁전과 신전이 있고 그 뒤에 육중한 성벽이 둘러 있는 이 거만한 여리고 성읍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도전하였습니다. 여리고는 우상숭배의 본거지 중 하나인데 특히 달의 여신 아스다롯을 섬기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가나안인들의 종교 중에 가장 비열하고 가장 부패된 모든 것들의 중심지였습니다. 벧브올에서 범한 죄의 무서운 결과가 마음속에 생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이교의 성읍을 증오와 공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제일보가 여리고를 함락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보증을 간구하여 그 보증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진영에서 물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앞에 행하시기를 묵상하고 기도할 때에 키가 크고 풍채가 당당하고 “칼을 빼어 손에” 든 한 무장한 군사를 보았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는 여호수아의 도전에 그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수 5:13~15, 6장, 7장)고 대답하였습니다.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명하셨던 동일한 명령이 이 신비스러운 낯선 사람의 참 성격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 서셨던 분은 지존하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위엄에 눌린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이셨습니다는 보증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분으로부터 그 성읍을 빼앗는 일에 대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정렬시켰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가하지 말아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나팔을 불면서 그 성읍 주위를 돌아야 하였습니다. 대열의 선두에 무사들이 섰었는데 그들은 선발된 용사의 단체이었으나 지금은 그들 자신들의 수완과 용맹으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지시를 순종함으로 승리를 얻어야 하였습니다. 그 뒤를 나팔을 가진 일곱 제사장이 따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의 신성한 직무를 나타내는 의복을 입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영광의 구름에 둘러싸인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행진하였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군대는 각 지파마다 그 지파의 깃발 아래 행진하였습니다. 그 운명지어진 성읍을 도는 행렬은 이와 같았습니다. 이 강대한 군사들의 발걸음 소리와 엄숙한 나팔 소리가 산들에 메아리치고 그 소리가 다시 여리고 시가에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돌기를 마치자 전군은 조용히 각기 장막으로 되돌아가고 법궤는 성막 안에 전에 있던 자리에 안치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읍의 파수꾼들은 경이와 공포로써 이스라엘의 모든 행동을 세밀히 감시하고 이를 상관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지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강대한 군대가 성스러운 법궤와 수종드는 제사장들과 함께 그들의 성읍을 매일 한 번씩 도는 것을 볼 때에 이 신비스러운 광경은 이교의 사제들과 백성의 마음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능히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그들의 튼튼한 방어 시설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이 이상한 시위 때문에 저희에게 어떤 해가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조롱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날마다 성읍을 도는 행렬을 바라볼 때에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홍해가 열렸으며 얼마 전에는 요단에 길이 열려 그들이 건너온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들은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어떠한 경이로운 일을 더 행하실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대군은 6일 동안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일곱째 날 새벽에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를 소집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제 하나님께서 이 성읍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돈 후에 나팔 소리가 크게 들리거든 큰소리로 외치라고 지시했다.

 

거대한 이스라엘 대군은 운명지어진 성벽 주위를 엄숙히 행진하였습니다.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는 많은 사람의 발걸음 소리와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나팔 소리가 때때로 울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용하였습니다. 견고한 돌로 된 튼튼한 성벽은 사람들의 포위를 멸시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벽 위에 있는 파수병들은 첫 바퀴를 돌고 나서 뒤따라 두 번째 바퀴를 돌고 이어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바퀴를 도는 모습을 공포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신비스러운 행동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떤 큰 사건이 임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일곱 번 돌기를 마친 후 긴 행렬은 멈추어 서고 한동안 조용하던 나팔들이 일시에 울려 온 땅을 진동시켰습니다. 견고한 돌로 쌓은 성벽이 그 거대한 망대와 활 쏘는 구멍 있는 흉벽과 함께 기초에서부터 흔들려 우르르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리고 거민들은 공포에 질려 움직일 수 없었고 이스라엘 대군은 진군하여 들어가 그 성읍을 점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승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정복은 전부 여호와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그 성벽과 거기 포함한 것은 모두 그 땅의 처음 열매로서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하였습니다. 또 가나안 정복은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싸운 싸움이 아님과 그들은 다만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들이 재물이나 명예를 구할 것이 아니요 그들의 왕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아야만 하였습니다. 그 성을 빼앗기 전에 다음과 같은 명령이 내렸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바치되”,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 성읍의 모든 거민은 그중에 있는 모든 생물과 함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다 칼로 진멸해야 하였습니다. 다만 충실한 라합과 그 가족은 정탐꾼의 약속대로 죽임을 면했습니다. 여리고 성읍이 전부 불타버렸습니다. 그 궁전과 사원들, 장엄한 저택과 그 사치스러운 모든 기구들, 화려한 피륙과 값진 의복들이 모두 불꽃에 삼키운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로 태울 수 없는 “은금과 동철 기구”는 성막에서 사용하도록 바쳐야 하였습니다. 성읍의 유적도 저주를 받아 여리고는 결코 성채로서 재건될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권능으로 파괴된 성벽을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자는 형벌 받을 우려가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앞에서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고 엄숙히 선포되었습니다.

 

● 여리고의 백성을 전부 멸한 것은 전에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 백성들에 관하여 주신 명령 곧 “너로 치게 하시리니…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신 7:2, 20:16)라는 명령의 성취에 불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명령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참으로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그들로부터 이 세상에 당신의 나라를 나타낼 수 있는 민족과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종교의 후계자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원칙을 온 세계에 전파하여야 하였습니다. 가나안인들은 가장 더럽고 가장 부패한 이교에 빠졌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목적을 성취하는 데 분명히 방해가 될 것이므로 그들을 그 땅에서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가나안 거민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허락되었습니다. 40년 전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에 형벌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미디안과 길르앗과 바산의 왕들을 정복하게 하심으로 한층 더 여호와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심을 나타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품격이 거룩하시고 음란한 행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서 가증스러운 의식에 참여한 까닭으로 그들에게 내리신 형벌에서 잘 나타내셨습니다. 이 모든 사건을 여리고 거민들이 잘 알고 있었고 비록 그들이 순종하기를 거절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는 라합의 확신에 동참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가나안인들은 홍수 전 사람들처럼 하늘을 모독하고 땅을 더럽히는 삶을 살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와 인류의 원수들을 신속히 처형하기를 요구했습니다.

 

40년 전에 불신의 정탐꾼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던 그 교만한 성읍 여리고의 성벽을 하늘의 군대가 얼마나 쉽게 무너뜨렸던가!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께서 “내가 여리고를 네 손에 붙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은 이 말씀에 항거하기에 무력하였습니다.

 

“믿음으로…여리고 성이 무너졌”(히 11:30)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여호수아로 더불어만 교통하시고 자신을 모든 회중에게 나타내시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의 말을 믿든지 의심하든지 하는 것은 오직 이스라엘 회중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지도 하에 그들을 옹위한 천사들의 무리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면서 날마다 성벽 주위를 행진하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하고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이 일은 이 우뚝 솟은 성채에 아무런 결과도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성벽을 최후로 무너뜨리기 전에 오랫동안 이런 의식을 계속하게 한 이 모든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신앙심을 계발시킬 기회를 주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힘은 인간의 지혜나 그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감명시키려 하심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적으로 그들의 거룩하신 지도자를 의지하도록 숙달되어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보다 큰 능력을 받지 못하는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크게 의지하고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그분에게 기회를 드리지 않는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충실히 당신을 순종한다면 당신을 믿는 자녀들을 위급할 때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 여리고를 함락시킨 지 얼마 후에 여호수아는 요단강 유역 서편 수 마일 떨어진 계곡 중에 있는 작은 성 아이를 공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곳에 보낸 정탐꾼들은 그 곳 주민은 적고 그 곳을 점령하기에는 적은 군대밖에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신 대승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만심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허락하셨으므로 그들은 안심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그들에게 성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또 잊어버렸습니다. 여호수아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아이 성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아이성의 패배

●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을 높이고 원수를 경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쉽게 승리를 얻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 곳을 취하는 데는 3천명의 군사면 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군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리라는 보증도 없이 공격하여 돌진해 나아갔다. 이스라엘 군사는 아이 성문 가까이 진군하였으나 가장 완강한 저항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적의 수효와 철저한 준비를 보고 당황하고 혼란에 빠져 가파른 내리받이 길로 도망하였습니다. 가나안인들은 맹렬히 추격하여 “성문 앞에서부터…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다. 그 때에 36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비록 그 수효는 적었지만 이 패배는 전 회중을 낙담하게 하였습니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인과 실전에서 교전한 최초이었는데 이 작은 성읍의 방어군에게 이처럼 패배를 당한다면 그들 앞에 있는 큰 전투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여호수아는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의 표시임을 알고 슬퍼하고 염려하여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슬프도소입니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들어난 아간의 범죄

여호와께서는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때는 절망과 비탄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요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진영 중에 은밀한 죄가 있었는데 이것을 찾아서 제거하기 전에는 여호와의 임재와 축복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 중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 범죄자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범죄자를 수색하여 처벌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범인을 찾아내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야 하였습니다. 죄인을 직접 지적하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한동안 의문 중에 두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저희 중에 있는 죄에 대하여 책임을 깨닫게 하여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른 아침 “그 지파대로” 백성을 모아 엄숙하고 인상 깊은 의식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하나 조사하는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무서운 심사는 점점 더 범인에게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최초에는 지파, 그 다음에는 종족, 그 후에는 가족, 최후에는 범인을 잡아내게 되었는데 유다지파 갈미의 아들 아간이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로 지목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죄상을 밝혀 그가 부당하게 선고를 받았습니다는 비난을 남기지 못하도록 아간에게 사실을 승인하도록 엄명하였습니다. 비참한 아간은 그의 죄상을 다음과 같이 철저히 고백하였습니다.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입니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은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나입니다. 즉시 사자를 그의 장막에 보냈고 사자들이 그가 말한 장소의 땅을 파 보니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아간에게 형벌이 선고되었고 즉시 그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온 백성이 아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결과로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그들은 이제 저희 대표자들을 통하여 형벌하는 일에 참여하여야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쳤”습니다.

 

그리고 아간의 시체 위에는 돌무더기가 크게 쌓여 그 죄와 형벌에 대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아골(괴로움) 골짜기라 부르더라.” 역대기에는 그의 죄를 기념하여 “아갈이니…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대상 2: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아간의 죄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엄숙한 경고와 가장 강한 하나님의 능력의 출현을 무시하고 범해졌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는 명령이 온 이스라엘에게 포고되었습니다. 이 명령은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온 백성이 할례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인식한 후에 유월절을 지키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인 언약의 천사가 나타난 후에 즉시 주어진 바 되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범죄자들이 분명히 당할 멸망을 증거하는 여리고의 함락에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스라엘이 승리를 얻었고 그들이 자기 힘으로 여리고를 점령하지 않았습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노획물을 취하지 않도록 금지하신 명령에 엄숙한 비중을 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 성을 함락시키셨으므로 승리는 당신의 것이며 그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만 바쳐야 하였습니다.

 

그 승리와 심판이 시행되던 엄숙한 시간에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날산 의복을 볼 때에 아간의 탐욕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 그 순간까지도 아간은 그것을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라고 불렀다. 한 가지 죄는 다른 죄를 유도하여 그는 여호와의 보고에 바쳐야 할 금과 은도 훔쳤는데 곧 가나안 땅의 처음 열매를 하나님에게서 도적질하였습니다.

 

● 아간을 파멸시킨 무서운 죄는 모든 죄 중에 가장 흔하고 가장 경히 여겨지고 있는 탐욕에서 기인되었습니다. 다른 죄들은 조사하여 형벌하는 반면에 열째 계명을 유린한 죄는 좀체로 비난조차 받지 않는다. 이 죄가 얼마나 흉악하며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하여는 아간의 역사에서 배울 수가 있다.

 

탐욕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죄악입니다. 아간이 품은 물욕은 마침내 습관이 되어 거의 깨뜨릴 수 없는 족쇄처럼 그를 속박하였습니다. 그는 이 악을 품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에게 재난이 이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그의 지각은 마비되어 유혹이 닥쳐올 때에 그는 쉽사리 유혹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엄숙하고 명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동일한 죄가 범해지고 있지 아니한가? 아간에게 여리고의 노획물을 훔치지 못하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그 같은 탐욕에 방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골 3:5; 마 6:24; 눅 12:15; 엡 5:3)는 경고를 받고 있다. 우리 앞에는 아간과 유다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무서운 운명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보다 높은 자리를 탐내다가 하늘의 영광과 복락을 영원히 상실한 “아침의 아들” 루스벨의 무서운 운명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탐욕은 매우 많다.

 

● 어느 곳에서든지 탐욕 투성이의 더러운 자국들이 보인다. 탐욕은 가정에서 불만과 알력을 조장하고 가난한 자로 하여금 부자에 대하여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게 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포학한 압박을 가하도록 한다. 이 탐욕이란 악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교회 안에서까지도 이기심과 허욕과 속이는 일과 자선사업의 태만과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일을 얼마나 쉽게 볼 수 있는가! “선량하고 교회에 잘 다니는” 교인들 중에 슬프게도 많은 아간들이 있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아와 주의 식탁에 앉으나 저희 재산 중에 불법적으로 취한 것 즉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물건을 감추어 둔 자들이 많다. 많은 군중들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위하여 양심의 호소와 천국의 소망을 희생한다. 많은 무리들이 그들의 성실과 훌륭하게 될 가능성을 돈주머니와 바꾼다. 가난한 자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은 무시되고, 복음의 빛이 전파되는 일이 방해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자들의 거짓된 행동으로 인하여 속인들의 조롱이 불타오르고 있으나 여전히 탐욕적인 그리스도인은 재물 모으기를 계속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습니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아간의 죄는 전국민에게 재난을 가져왔습니다. 그와같이 한 사람의 죄는 그 범행을 조사하여 처리해 버리기까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당신의 교회에게 임할 것입니다. 교회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영향은 공공연한 반대자나 신앙심 없는 자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의 영향이 아니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축복을 억제하고 당신의 백성들을 약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교회가 난관에 처하고 냉담과 영적 타락에 빠져서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승리의 개가를 부를 기회를 제공하고 있을 때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불행한 상태를 슬퍼하는 대신에 교인들로 하여금 진영 중에 아간과 같은 자가 있는지 조사하게 하라. 각 사람은 겸비하고 마음을 살펴 하나님의 임재를 막는 감추인 죄를 찾아내도록 노력하라.

 

● 아간은 자기의 죄를 시인하였으나 그 고백이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대가 아이에서 패배하여 낙담하여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진하여 죄를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으로 땅에 부복한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 그 때에 자복하였더라면 그는 진심으로 회개한 증거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아간은 큰 죄가 범하여졌다는 선언을 듣고 그 죄의 성질까지 분명히 진술된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은 인봉되었습니다. 그 후에 엄숙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그의 지파에서 시작하여 그의 종족과 가족이 점차 지목당하는 것을 볼 때에 그의 마음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그러나 하나님의 손가락이 그를 지적할 때까지 그는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를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아간은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와 동일한 자복이 얼마나 자주 행하여지고 있는가! 다 알려진 후에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죄를 자복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간은 그의 고백으로써 그의 범죄의 결과를 피하리라는 희망을 갖지 않았습니다면 자기의 죄를 자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자복은 다만 자신의 형벌이 공의로움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도, 깊은 뉘우침도 의도의 변화도, 악에 대한 증오도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죄인들은 생사의 운명이 결정된 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죄를 자복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미칠 결과가 각각 저희 죄를 시인하게 할 것입니다. 선고에 대한 무서운 느낌과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자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복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아간처럼 그들의 범죄를 같은 사람에게 감출 수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엄격히 주목해 보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조만간 희생 제물이나 헌물로도 영원히 죄를 속할 수 없는 그날에 그들의 죄가 그들을 찾아낼 때에는 모두 너무 늦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기록들이 공개될 때에 재판장께서는 말씀으로 인간에게 그들의 죄를 선언하지 않으시고 날카롭고 가책을 느끼게 하는 시선을 던지심으로 모든 행위와 일상 생애의 모든 업무가 행악자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시대에서처럼 지파로부터 가족에게까지 색출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자신의 입술로 자기 수치를 고백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졌던 죄악들이 그 때에는 전 세계에 선포될 것입니다.

 

http://www.egw.or.kr/EGW/Read.php?tn=EGW_BOOK_PP&Gt=cn&Gv=45&G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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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비로운 신분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아간의 죄는 도둑질이지만 거기에 회개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회개의 기회를 버린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서를 보시게 되면 제비를 뽑으면서 점점 범위를 좁혀가면서 아간을 찾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동안 얼마든지 회개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지목이 되어서야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회개의 시간은 충분히 있었고 돌아설 수 있는 기회 또한 이미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로 인해 모든 백성이 큰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이유는 누군가가 여리고에서 아무 물건을 가지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도둑지릉ㄹ 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두가지 죄가 나오는데 바로 도둑질을 한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도둑질을 아무것도 아닐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어긴 것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모욕을 한 것이고 이것은 곧 당시의 율법에 따라 주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기서 아간을 살려주었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이스라엘에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을 전부 죽인 것은 그 당시 생활방식은 천막을 치고 이동을 하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온가족이 집에 있었을 것이고 아간이 물건을 숨기기 위해 땅을 팠는데 문제는 그 땅에 물건을 숨긴 것을 가족이 알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그의 죄를 자복하게 할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비록 아간으로 시작되었지만 이것인 가족 전체가 죄를 동조한 것이기 때문에 가족들도 함께 죽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만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사랑의 하나님은 거룩하시면서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할때에 하나님이 벌을 내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미워하신 것이 아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닮기 원하시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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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님은 구약의 율법 시대와 신약의 은혜 시대를 구분 하시면 간단히 의혹이 풀릴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은 여호와 (야훼) 하나님으로 정말 두렵고무섭고 엄격하시고 공의에

하나님으로만 나타났어요 그래서 님이 보시는 장면 외에도 벌 하시는 장면이 더 많이 있어요

우리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 성읍들을 진멸하되 각 성읍의 남녀와 유아를 진멸하였으나(신 3 : 6)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진노 하시는 백성에게 여자는 물론 어린아이 까지도 용서가 없었어요

안식일을 안 지킨자도 돌로 쳐서 죽이게 하셧어요 (민15 ;32~36)

제사장 아론의 아들이 여호와의 명하지 않은 불을 제단에 올리자 불이 나와 두 아들을 즉시로 불태워 죽게 하시기도 하시고...(레위기10 ;1~2) 구약에서 나타난 여호와는 두려움 자체 였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음성 조차도 듣는 것이 무서워 죽을 지경 이였어요 그래서 모세가 항상 중간 역활을 해야만 했어요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신 18 : 16)

유명한 다윗왕도 남의 아내 빼앗아 온것 때문에 나은 아들을 여호와께서 치셔서 병 들었는데 다윗이 침상이 뜨도록 울며 살려 달라고 회개 하며 기도 하였으나 결국 하나님은 그 아이를 데려가 버리고 말았어요 

이처럼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값으시고 또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 값게 하셨어요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도 이런 차원으로 주셨어요

그러면 왜 이리 두려운 하나님이 였는가 ?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나 1 : 3)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20 : 5)

구약에 하나님은 율법을 주신 율법의 하나님인 것이죠 율법대로 잘못한자는 벌하시고 잘한자는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반듯이 죄를 지으면 죄값을 치뤄야 하는것이니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신19 : 21)

즉 죄의 값은 사망 이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말씀 하신 겁니다.

그래서 율법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지으면 죄 값을 치뤄야 하는겁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노아 홍수와 소돔 고모라성 사람들 입니다.

이들을 심판 하실때 그들의 죄악이 관영 하고 하늘에 사무쳤고 죄박에는 질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을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전부 심판 하셨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죄인은 용납이 안되고 마지막때는 불로 심판 하시고 유황불의 지옥으로 보낸다고 하셨어요

 

자 그러면 사람에게 소망이 있을수 있겠어요 없읍니다.

솔직히 죄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

털어서 먼지 않날 사람 없듯이 사람들중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에요

성경에도 그리 기록 하셨어요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 :1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 :19)

이 말씀은 사람이 아무리 죄 없는 것처럼 해도 다 죄인이라는 거에요

이를 증명 하여 주려고 에수님이 오셔서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하시며

구약의 율법을 완전케 보강 하셨어요 구약의 율법은 겉에 들어난거나 증인이 있어야만 정죄 할수 있었거든여

마음으로 지은죄  몰래 지은죄 악한말을 했어도 증인 없으면 그냥 무죄 였거든여

그런데 완전한 율법으로 만드셔서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미워해도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욕했어도...마음판에 새겨놓은 완전한 법은

아무도 속일수 없게 되고 빠져나갈 방법이 없게 만드셔서 다 죄아래 심판 아래 가두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거룩 하시고 선하시며 의로우시고 완전 하시니 조그마한 죄도 용납이 안되는거에여

옥에 티 라고 옥에는 티 하나만 껴도 값어치가 사라짐니다.

하나님도 작은죄 하나라도 용납 하시면 그순간 하나님도 죄를 지은것이고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할수 없는 거에요

그러기에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용납 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알게되면 왜 그리 엄하고 두려운 하나님인지 이해가 될거에요

 

그러면 님이 물으신대로 용서의 하나님은 무엇인가 ?

죄를 고백하고 회개 하면 용서해 주시는것이 아닌가?

용서한것은 기억지도 않는다고 하신것은 무엇을 말하는건가 ?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사람은 다 죄인 이기에 심판 받고 지옥갈수 밖에 없다고 하였죠

그런데 하나님은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우신 속성만 있는게 아니고 사랑의 속성을 가지신 

사랑 자체의 하나님 이십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 : 8)

그래서 요3 ;16 말씀처럼 세상을 사랑하셔서 심판 받게 나두지 않으시고 구원 하시를 원하셔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독생지를 대신 보내셔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값을

대신해서 심판 받으신 것이 십자가 사건 이에요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착하시고 선하시며 의로우시고 죄가 없으신 분인데

죄 있는 세상 사람의 모습 그대로 사람으로 오셔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 :3)

대신 심판 받으신 것이에요 멸시와 천대와 희롱을 다 당하시고 아픔과 고통을 다 감수 하시며

괴로움과 수치를 한몸에 다 당하시며 벌래처럼 알몸으로 매달려 죽어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신것은 님도 교회 다니셨으니 아실거에요

그래서 신약은 구약의 율법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열어 주신것이에요

은혜는 글자 그대로 값 없이 주는거에요

이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주시는 거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 ;16~17)

이제는 죄 때문에 지옥 가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안 받아 드리고

끝까지 의심하고 거절 하다가 지옥 가는 거에요 회개하고 돌아 오기만 하면 죄 용서는 물론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죄는 다시 기억지도 않으시고 의롭다고 여기시며 천국의 백성 삼아 주시는 거에요

잃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악인도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죠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 :23)

이제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은혜가 무엇인지 구별되시죠 ^^

아간의 죄 라는 대목에서 이해가...

... 그 대목에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죄를 지은것이 발각되고...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시절엔 왜 그렇게 사람을 돌로 쳐죽이는지 ..너무 무서워요.. 여호수아를 읽다가 너무...

유대의 팔레스타인 공격은 하나님의 뜻?

모세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인 부족 몇...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이런 인과의 넘어감이 발생하는... (보통 구약성경)가 평탄하고 온건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창조에서 ‘우리‘ 라는 표현에 관하여.

... 창세기 1장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이미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 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이 해석은 가능하게 보인다. 구약성경에서 성령은 창조의...

.. 율법?

이번에 성경을 처음 읽고 오늘로 여호수아를 끝냈는데... 물론 구약 성경 중에도 교회에 직접 적용되는 부분들이... 재해석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수24;19절은...

이해가 너무나도 안갑니다.

... 답) 이스라엘의 신화가 있는 구약성경 창세기는 어린이와 같은 무식무지한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비유적으로 모세가 꿈적인 이야기로 선과 악에 대해 알리며 또한...

삼위일체 라는것이 이해가 안갑니다.

... 읽고 하나님에 대해 옳바른 이해를 갖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 1)구약성경의 증거...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보호하사 사탄을 대적케...

여호수아,사사기 요약

... 않으면 된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이 명령을... 하나님의 인도로 행악자인 아간이 드러나고, 그와 그의... 이러한 배경은 계속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하나님의 독생자라하고 이해가 안갑니다

... 하는지 이해가 안가요.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순교당할때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잔아요 이해가 안되다보니 믿음도 점점 약해지는거 같고...

전 인류에게 십계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 그리고 신구약 성경에서 나타나는 계명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의무가 더욱 잘 이해되고... 그래서 석가모니는 화유기 주인공이지만 그곳에 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