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안믿으면 지옥가나요 (한번만 이라도 터치해주세요

하느님 안믿으면 지옥가나요 (한번만 이라도 터치해주세요

작성일 2024.02.29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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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이 예수님 안믿으면 지옥 간다는데,,진짠가요 저희 가족 전부 무교인데ㅜ그래서 그럼 저희 부모님도 지옥가냐고 물어봤는데 가족들도 안믿으면 지옥 간데요이것 때문에 하루종일 방구석에서 생각해봤어요,,무서워서 진짜 지옥 가나 울기도 하고,,지식인 찾아보니까 하느님 믿어야지 죄를 씻어서 천국에 간데요.저 너무 무서운데1.진짜 착하게 살아도,,,하나님 안믿으면 걍 지옥행인가요ㅠㅠ2.저 진짜 지옥가나요 무서워요ㅠㅠ 친구들이 그러니까 제 곁에는 아무도 없는거 같고,,3.기독교 분들은,,실례지만 기독교 안믿으면 무조건 지옥 간다고 생각하시나요,,진짜,,어떤 친구가 제 엄마아빠 까지 건드리면서 지옥간다고 하루에도 수십번 얘기하니까 기독교의인식이 안좋아진걸까요,,무서워요,,[그냥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안될까요, 걍요하지 않고요. 무조건 안믿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는것 보다는 서로 인정해 주시면 어떨까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님이 생각하는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해준다는 생각이 바로 " 종교다원주의 " 입니다.

정말 지옥가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말이죠.

니종교 내종교 다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주자. 이게 " 차별금지법 " 에도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이 법을 통과시킬려고 지금 준비중이죠.

이게 통과되면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남자와남자가 결혼하고 여자와여자가 결혼해도 부부로 인정해줘야하고

남자2명여자1명, 여자여러명 남자1명, 남자2명해도 다 인정해줘야하는겁니다.

한마디로 가족이 붕괴되는거죠.

모두 지옥가는 사람들입니다. 악마들이죠.

님도 지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네요. 아주 무서운 생각입니다. 지옥에서 아마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전 떨어질꺼라고 봅니다.

성경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불타죽고 노아의 방주시대에 사람들이 모두 몰살된 이유도

바로 이런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쳤기에 하나님이 심판을 내린겁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이 시대에 전세계에서 카톨릭 천주교와 불교가 이끌고 있고

우리나라에선 민주당이 이법을 통과 시킬려고 하죠.

님이 아무리 착하게 살고 기부많이해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무조건 지옥갑니다.

연예인들 기부한다고 자랑하고 알리고 하죠? 제 생각에는 이들은 다 지옥갑니다. 그런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진심으로 회개하지않고 산다면 지옥갑니다.

지옥의 가장 기본적인 고통이 지금 화산에서 터지는 용암에 던져지는겁니다.

이게 아주 기본입니다.

그리고 지옥간증을 통해서 보면 그중에 또 약한벌이

벌겋게 달군 쇠미끄럼틀위에서 알몸으로 위에서 미끄러져 타고 내려오는겁니다.

그럼 우리 피부는 어떻게 될까요 쭈욱 다 벗겨질껍니다. 이게 약한 고통입니다. 이걸 영원이 합니다.

믿고 안믿고는 님의 선택이고

진심으로 믿고 안믿고도 님의 선택이며

이 선택으로 이한 마지막 심판날에 심판대에서 판결을 받는것도 고스란이 받아야하며

한번 지옥이나 천국으로 결정되면 그 결정은 영원이 바뀌지 않습니다.

지옥가면 부모고 자식이고 애인이고 내 아이고 아무도 옆에 있어도 상관없이 영원이 내가 지를수있는

비명의 백만배가 넘는 비명을 영원이 매일 끊임없이지릅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천국과 지옥을 주장하는 종교는 기독교 카톨릭입니다.

다른종교는 천국과 지옥을 다르게 표현하지요.

지옥은 천국의 반대지요.

그럼 천국에 못가면 지옥에 가게되는데,

천국은 어떤곳인가요??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곳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는 곳 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지옥에 가는 거지요.

이것이 기독교와 카톨릭에 교리입니다.

결국 믿음으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것이에요.

저는 이것을 믿기 때문에 이말씀을 드리지만 안믿는 사람들에게 "너 지옥간다!"

라고 말하는것은 잘못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기독교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그건 개신교의 교리니 걱정하지 마세요. 개신교는 16세기에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바람에 수만개의 종파로 갈라져 있고 이단과 사이비도 많아요. 기독교의 원조인 천주교의 교리는 달라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선행을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수 없다고 하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은 후 천국으로 간다고 하며 믿지 않았더라도 예수님말씀처럼 착하게 살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힙니다. 개신교의 교리대로라면 예수님을 알수 없었던 시대나 지역에 살던 훌륭한 분들도 모두 지옥에가야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믿으면 지옥 간다"는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불타는 지옥"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서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점을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지옥 교리는 너무도 논란이 많기 때문에 설명이 길어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옥불 고초에 관한 창조주의 견해

성경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고 기록합니다. (요한 1서 4:8)

사랑의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벌하기 위해 영원한 고초의 장소ㅡ지옥을 과연 만들었겠습니까?

율법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웃에 사는 이방 사람들의 본을 따라 자기 자녀들을 불사르며

제사로 바치는 일을 하였을 때 하느님의 생각은 어떠했을까요?

그분의 말씀의 설명은 이러합니다.

그들은 ' 벤 힌놈 골짜기'에 토펫의 산당을 세우고 저희 아들딸들을 불에 살라 바쳤는데,

이는 내가 명령한 적도 없고 내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일이다.—예레미야 7:31, 가톨릭역 성경.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을 불에 살라 바쳤는 일이 하느님의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일이라면

그분이 자기를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벌하기 위하여 불타는 지옥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이치적으로 들립니까?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죄를 유전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데 사랑의 하느님께서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영원한 벌을 준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도 않고 논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셔요.

악한 사람이라도 못된 자식이 자기의 잘못으로 불타는 장소에 던저져 불의 고초로 "살려달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면 그것을 보게 된 악한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요?

"그래 잘 됐다! 지독히 말 잘 안듣더니 뜨거운 맛을 봐라!! 영원히 고초를 당해봐라!!!"

이렇게 말 할 부모가 과연 있겠습니까?

자식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더라도 일단 불 속에서 구해 놓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악한 인간 부모도 그럴진데 사랑의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로마 6: 23에서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고초가 아니죠.

그래서 이미 사망한 사람은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ㅡ로마 6:7, 가톨릭 성경

죄 때문에 죽음의 벌(사형)을 받은 사람들을 판결문에도 없는 지옥으로 보내 영원히 고초를 받게한다는 것은 사랑의 하느님을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변태적인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지옥”—과연 있을까요?

수십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에서 “지옥”이라는 고초의 장소가 있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이 “지옥”은 악한 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가르치는 지옥은 ··· 영원히 존속하며, 그 지옥의 고통은 끝이 없다”고 합니다. 이 「백과 사전」은 이어 이 가톨릭의 교리는 “아직도 많은 보수적 프로테스탄트 교파에 의하여 고수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 힌두교 그리고 회교 역시 지옥이 고초의 장소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 온 사람들이 만일 지옥이 그러한 나쁜 곳이라면 지옥에 관하여는 이야기하는 것조차 싫다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듣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지옥'이 정말 존재할까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는 “지옥”이 참으로 영원한 고초의 장소라고 알려줍니까?

스올과 하데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으로 성서 「구약 성경」에서는 스올[저승, 가톨릭역 한글판]이라는 말을, 「신약 성경」에서는 하데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두 가지 단어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편 16:10과 사도 행전 2:31을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스올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편 16:10을 인용한 사도 행전 2:31에서는 그리스어 하데스라는 말을 사용한 점에 유의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하데스[저승, 가톨릭역 한글]가 영원한 고초의 장소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데스에 계셨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사도행전 2:27에서는 하데스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가톨릭역 한글>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정한글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새번역성경>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 ㉧그, '하데스'』

<공동번역개정판>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주께서 나를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의 거룩한 자를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현대어성경> 주께서 이 몸을 스올로 팽개치지 않으시고 주님만을 애타게 그리는 이 몸 버리지 않으시리니

<쉬운성경> 주님께서는 나를 무덤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한글킹제임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또 주의 거룩하신 분이 부패되는 것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보시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무덤(또는 저승, 음부, 지옥, 스올, 죽음의 세계 등)에 들어 가셨으나 버려짐을 당하지 않고 썩는 일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옥(저승)"에 가셨지만 고초를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썩는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불 타는 “지옥”에서 고초를 당하게 하셨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단순히 무덤으로 가셨을 뿐입니다.

성경 창세기 37:35에는 야곱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슬퍼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 말하였다. 아니다. 나는 슬퍼하며 스올(저승)으로 내 아들에게 내려가련다. 이렇게 요셉의 아버지는 그를 생각하며 울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스올이 고초의 장소입니까? 야곱은 자기 아들 요셉이 그런 곳으로 가서 거기서 영원히 있게 된다고 믿고, 자기도 거기로 가서 아들을 만나기를 원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것이 아니고 야곱은 단순히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서 무덤에 있다고 생각하였고 야곱 자신도 죽기를 원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선한 사람도 스올(저승, 지옥)에 갑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대한 충실과 성실을 지킨 사람으로 유명한 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심히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그는 하느님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의 기도가 욥기 14:13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 당신께서 저를 스올(저승)에다 감추시고 당신의 진노가 그칠 때까지 숨겨 두신다면! 저를 위한 때를 정하시어 저를 다시 기억해 주신다면!

만일 스올(저승)이 불이 타는 고초의 장소라면 욥이 그곳에 가서 하느님께서 그를 기억하실 때까지 그곳에 있기를 원했겠습니까? 분명히 욥은 죽어서 고통이 끝나는 무덤으로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스올'이라는 말이 나오는 모든 곳을 조사해 보면 생명, 활동 혹은 고초와 관련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은 흔히 죽음 및 무활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서 9:10의 내용에 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네가 힘껏 해야 할 바로서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나 하여라. 네가 가야 하는 저승에는 일도 계산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답은 매우 분명합니다. 스올과 하데스는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의미합니다. (시 139:8)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다 스올 혹은 하데스로 갑니다.

지옥으로부터 나옴

사람들은 스올(하데스)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요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나로 익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큰 고기가 그를 삼키게 하셨을 때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음부, 난외주; 지옥, 흠정역]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요나 2:2.

요나가 “스올의 뱃속”이라고 한 말의 뜻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고기 뱃속이 불이 타는 고초의 장소가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나의 무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태 12:40.

예수께서는 죽어서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데스[지옥, 흠정역]에 버림을 당하지 않고 ···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도 2:31, 32, 새번역)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요나도 스올 곧 그의 무덤이 될 뻔했던 곳으로부터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그 물고기가 그를 육지로 토해 냈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스올(그리스어 하데스)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사실상 계시록 20:13(새번역)에 있는 마음을 뜨겁게 해주는 약속은 “사망과 하데스도 그 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놓”겠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많은 종교들이 가르치는 것과 얼마나 다릅니까!

게헨나와 불못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성경에는 지옥불과 불못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것은 고초의 장소가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일부 성경 번역판에 “지옥불”에 관하여 또는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태 5:22; 마가 9:43) 「흠정역」에서는 「신약 성경」 가운데서 그리스어 게헨나를 번역하는 데 “지옥”을 열두 번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데스는 단순한 무덤을 의미하는데 게헨나는 과연 불의 고초를 당하는 곳입니까?

히브리어 “스올”과 그리스어 “하데스”는 무덤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게헨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게헨나는 「구약 성경」 가운데서는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힌놈은 바로 예루살렘 성밖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그들의 자녀를 불로 제사를 지냈었던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침내 선한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와서 이 골짜기는 다시 그러한 끔찍한 행악을 위하여 사용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열왕 하 23:10) 그곳은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던 때에 게헨나는 예루살렘의 쓰레기 처리장이었습니다. 그곳은 쓰레기를 태우기 위하여 유황을 뿌려 불이 계속 타고 있었습니다.

「스미스 편 성서 사전」 제1권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곳은 그 성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었다. 그곳에는 범죄자들의 시체, 죽은 동물들 그리고 온갖 더러운 것들을 버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산것들은 그곳에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들의 쓰레기 처리장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께서 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게헨나의 심판을 피하겠느냐?”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였습니다. (마태 23:33, 새번역)

예수께서는 그들 종교 지도자들이 고초를 당할 것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골짜기에서 그들의 자녀들을 산 채로 불사르는 일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끔찍한 일은 자기 마음에 결코 생각조차 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게헨나를 완전하고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이들 악한 종교 지도자들은 부활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게헨나로 갈 사람들이 쓰레기와 같아서 영원히 멸망될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성서 「계시록」에 언급되어 있는 “불못”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게헨나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것은 의식을 가지고 고초를 받는 곳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 혹은 멸망을 의미합니다.

성경 자체가 이 점을 계시록 20:14(새번역)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사망과 하데스가 불 바다[불못, 개역 한글판]에 던져졌읍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그렇습니다. 불못은 “둘째 사망” 곧 부활을 받지 못할 사망을 의미합니다. 이 “못”은 상징적임이 분명합니다. 사망과 하데스(지옥)가 그곳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사망과 지옥이 문자적으로 불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없어지거나 멸해질 수 있으며, 멸해질 것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하지만 성서는 마귀가 불못에서 영원히 고초를 당할 것으로 말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계시 20:10)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유치장 간수도 때때로 “고초를 주는 자”로 불리었습니다. 예수께서 한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어떤 사람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주인은 크게 노하여 그를 형리[고초를 주는 자, 흠정역]에게 넘기고 빚진 것을 다 갚게 했다.” (마태 18:34, 새번역)

“불못”에 던져지는 사람들은 부활이 없을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그들은 말하자면 죽음에 영원히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옥리에게 감금되어 있는 것처럼 죽은 채로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악한 자들이 문자적으로 고초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이 죽으면 그는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합니다.

부자와 나사로

그러면 예수께서 한 비유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어느 날 거지는 죽어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게 되었고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혔다.

부자가 하데스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 보니 멀리 아브라함 옆에 나사로가 있지 않은가!” (누가 16:19-31, 새번역)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하데스는 고초의 장소가 아니라 인류의 무덤을 의미하므로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실화가 아니라 비유라는 한층 더한 증거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과 천당 사이의 거리가 문자적으로 이처럼 실제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리입니까?

더욱이 만일 부자가 실제로 불이 타는 못에 있었다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 끝에 찍은 물 한 방울로 혀를 시원케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의 비유의 뜻은 무엇이었습니까?

비유 가운데 부자는 예수를 배척하고 나중에 그분을 죽인, 자만으로 가득 찬 종교 지도자들을 대표합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인 일반 대중을 상징하였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은 그들의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수께서 천대받는 나사로와 같은 대중을 영적으로 먹이심으로 그들이 더 큰 아브라함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거짓 종교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면에 있어서 “죽”었습니다. 버림을 받은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악행을 폭로하자 고초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도 7:51-57)

그러므로 이 비유는 일부 죽은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불이 타는 지옥에서 고초를 당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영감에 의한 가르침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은 마귀였습니다. (창세 3:4; 계시 12:9) 그러나 하와는 죽었습니다. 그의 어느 부분도 계속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은 계속 산다는 것은 마귀가 시작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 혹은 연옥에서 고초를 당한다는 것도 마귀가 퍼뜨린 거짓말입니다.

성서는 분명히 죽은 자들은 무의식임을 알려 주므로 이러한 교리가 참일 수 없습니다. 사실상 성경에는 “연옥”이라는 말도 또는 연옥이라는 사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올 혹은 하데스가 죽은 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쉬는 곳임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모두 그곳에 가며, 거기서 부활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또한 게헨나는 고초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서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불못”도 문자적으로 불이 타는 곳이 아니라 부활이 없는 “둘째 사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고초의 장소를 의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신이나 마음 가운데 그러한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이 지상에서 몇해 동안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영원히 고초를 당한다는 것은 공의에 위배됩니다.

죽은 자에 관한 진리를 알게 된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우리는 참으로 공포와 미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요한 8:32.

참고로 <구약 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스올’이 나오는 성구 66개를 소개합니다.

이 성구에서는 단 한번도 지옥불의 고초와 관련하여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 (창 37:35)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2 (창 42:38)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3 (창 44:29) 『너희가 이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4 (창 44:31)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5 (민 16:30)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6 (민 16:33)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7. (신 32:22)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

8. (삼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9. (삼하 22:6)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10. (왕상 2: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11. (왕상 2: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12. (욥 7: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3. (욥 11: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14. (욥 14:13)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5. (욥 17:13) 『내 소망이 음부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16. (욥 17:16) 『흙 속에서 쉴 때에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17. (욥 21:13)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18. (욥 24:19)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말리나니 음부가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은 것인즉』

19. (욥 26:6)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20. (시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21. (시 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22. (시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23. (시 18:5)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24. (시 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25. (시 31: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26-27. (시 49:14) 『양 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28. (시 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셀라)』

29. (시 55:15)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며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30. (시 86: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31. (시 88:3)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사오니』

32. (시 89:48)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셀라)』

33. (시 116: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34.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35. (시 141: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졌도다』

36. (잠 1:12) 『음부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37. (잠 5:5)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38. (잠 7:27)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39. (잠 9: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40. (잠 15:11)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41. (잠 15:24)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

42. (잠 23:14)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43. (잠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44. (잠 30:16) 『곧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45. (전 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46. (아 8:6)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47. (사 5:14)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48. (사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49. (사 14:9)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에서의 모든 영웅을 너로 인하여 동하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으로 그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50. (사 14:11)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51. (사 14: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52. (사 28:15)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53. (사 28:18)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54. (사 38:10)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55. (사 38:18)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56. (사 57:9)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욱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57. (겔 31:1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가 음부에 내려가던 날에 내가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깊은 바다를 덮으며 모든 강을 쉬게 하며 큰 물을 그치게 하고 레바논으로 그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들의 모든 나무로 그로 인하여 쇠잔하게 하였느니라』

58. (겔 31:16) 『내가 그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음부에 떨어뜨리던 때에 열국으로 그 떨어지는 소리를 인하여 진동하게 하였고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59. (겔 31:17) 『그러나 그들도 그와 함께 음부에 내려 칼에 살륙을 당한 자에게 이르렀나니 그들은 옛적에 그의 팔이 된 자요 열국 중에서 그 그늘 아래 거하던 자니라』

60. (겔 32:21) 『용사 중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음부 가운데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륙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61. (겔 32:27) 『그들이 할례 받지 못한 자 중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이 용사들은 다 병기를 가지고 음부에 내려 자기의 칼을 베게 하였으니 그 백골이 자기 죄악을 졌음이여 생존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62-63. (호 13:14)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64. (암 9:2)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65. (욘 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이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66. (합 2:5)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지옥 교리의 역사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내세에 대한 신앙을 언제 받아들였습니까? 예수와 사도들 당시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프랑스의 「대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경외서(經外書)]「베드로의 묵시서」(Apocalypse of Peter)(기원 2세기)는 죄인들이 지옥에서 겪는 형벌과 고통을 묘사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술물이었다.”

사실, 초기 교회의 교부들 사이에 지옥에 대한 의견 차이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클레멘트), 테르툴리아누스 및 키프리아누스는 불타는 지옥을 지지하였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죄인들이 지옥에서 결국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지옥에 대해 수정을 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지지를 다소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옥에 대한 그처럼 부드러운 견해를 없애버렸습니다. 옥스퍼드 교수 J. N. D. 켈리는 그의 저서 「초기 그리스도교 교리」(Early Christian Doctrines)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제 5세기 무렵에는 죄인들이 현 생명 이후에 제 2의 기회를 결코 갖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삼킬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엄격한 교리가 어디에서나 우세하였다.”

하지만 성서는 어떠합니까? 성서에서는 몸이 죽을 때 영혼은 살아 남아서 불타는 지옥이나 연옥에서 형벌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 줍니까?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사후에 영혼이 살아 남는다는 개념은 성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 구약에서 영혼은 사람의 일부분이 아니라, 사람 전체—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사람—를 의미한다. 그와 비슷하게, 신약에서도 영혼은 인간 생명 곧 한 개인의 생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후 형벌의 기초가 되는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성서는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알려 줍니다. (에스겔 18:4) 성서는 또한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밝혀 줍니다. (로마 6:23, 공동번역)

그러므로 성서에서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이 결국 “게헨나”나 “영영한 불” 혹은 “불못”에 들어간다고 언급할 때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당하는 영구적인 죽음 곧 “둘째 사망”을 언급하기 위하여 단지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마태 23:33, 새번역; 25:41, 46; 계시 20:14; 21:8; 비교 데살로니가 후 1:7-9.

부활로 인해 지옥은 텅 비게 된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옥은 고초를 겪는 뜨거운 장소가 아닙니다. 그와는 달리, 쉬는 곳이며, 죽은 사람들이 그곳으로부터 부활되어 나올 때 까지 대기하는 장소입니다. (전도 9:10)

사도 바울은 자기를 고발한 유대인 종교 지도자와의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바로 저들이 품고 있는 것과 똑같은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있습니다.

의로운 이들이나 불의한 자들이나 모두 부활하리라는 것입니다."ㅡ로마서 24:15, 가톨릭 성경

불의한 사람이 죽으면 지옥으로 갔을텐데 그들이 부활된다니 앞 뒤가 맞지 않습니까?

사실, 아담의 후손은 자신의 뜻과 행위에 상관없이 불완전성을 유전받았기 때문에 죽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은 완전하게 창조되어 자신의 온전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그의 후손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불완전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저절로 죄를 짓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의의 하느님께서는 죽음으로 죄값을 치른 사람들을 부활해서 완전하게 변화한 다음 하느님을 온전히 설길 기회를 주시기로 하셨고 그 죄를 없애시기 위하여 대속주로 당신의 외아들을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불의한 자들은 창조주 하느님을 모르는자들(비 이스라엘인)과 하느님의 인도를 받았으나 불순종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자손을 의미하는데 하느님께서는 무덤 속에서 흔적 마저 없어진 그들 모두를 부활시켜 완전성으로 회복되게 하신 후 앞으로 계속 자유의지로 창조주 하느님을 섬길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중에 그러한 일이 있을 것임을 알려주는데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나다.

(계시록 21:1-7, 가톨릭 성경)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이어서 “이것을 기록하여라. 이 말은 확실하고 참된 말이다.” 하신 다음,

[6]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어졌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

[7] 승리하는 사람은 이것들을 받을 것이며,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하늘에는 죽음, 슬픔, 울부짖음, 괴로움 등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중 새롭게 된 땅에서 지금까지 죽었던 대부분의 인류가 부활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올(하데스)은 텅 비게 될 것이고 부활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의로운 통치를 통해 점진적으로 완전성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 기도하라고 알려주신 기도가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마태오 6:9, 10, 가톨릭 성경>

[9]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 기간 동안, 이전에 죽었던 모든 사람들은 부활되어 충실한 사람들과 함께 땅에서 하느님을 섬길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실로 감격스러운 때가 될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성서에서 말하는 ‘심판 날’이라는 기간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첫 인간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시면서 선언하신 창세기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ㅡ창세기 1:27, 28, 가톨릭 성경.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안녕하세요.^^

지옥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군요...

지옥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100년 내에 죽는다는 것만큼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죠.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대로 모든 인간은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죄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크고 많은 죄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원받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대가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죄사함이 없기 때문에 결코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벽히 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행위만으로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성경에는 세상에 의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착해보이는 사람들도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구원받을 자격이 안되는 죄인들입니다.

따라서 죽음으로부터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죄사함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주와 생명체는 저절로 생겨나서 진화하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생물들은 각기 따로 창조된 것이 확실합니다.

생명은 물질에서 저절로 생겨날 수도 없고, 또 어떤 생물이 형태적으로 많이 다르게 계속 변화, 진화해 갈 수도 없습니다. 사소한 변화만 가능합니다.

아래 글들과 영상들을 보시면 놀라운 사실들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직접 읽어보시고 무엇이 진실일지 판단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지금은 창조를 이야기하면 비웃는 사람들이 많지만, 언젠가 땅을 치고 후회할 때가 올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고, 나중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과학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에서 리스트를 내려받으시면 전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이 이미 진화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하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진화론의 핵심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논의가 있습니다. 그만큼 불확실한 이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