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와 찬성하는 이유
저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최대한 간략하고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두서로 깔아두고 가야할 것이,
국가대 국가의 관계, 즉 국제 외교 관계에서
그 어떤 의리나 도덕이나 낭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철저하게 힘과 이익의 논리만이 존재하며, 어째서 그러한지는 알기 쉽습니다.
학생 여러분이 학교를 다니면서 주변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
성격이 포악하고 호전적이고 이기적이고,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친구들이
거래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거래'의 의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그러나 싫어하고 거부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따르게 되 있는 것 역시도 보셨을겁니다.
외교 관계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다르더라도 속성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수많은 사례들 역시도 이를 증명해줍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나라와 국민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이유입니다.
국가간의 협정이라 함은, 이익의 논리 안에 있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도
최대한 윈윈으로, 내지는 최소 제로썸에 가까울 수 있도록
서로의 격차를 좁히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 협정은 그 자체로써 협정의 의미가 없습니다.
양자간의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을 해결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 역시도 역시 양자 당사자에
게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1세기 전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고 지배하였던 시작점은 강화도 조약이었습니다.
강화도 조약이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조약이었던 까닭은
양국간에 발생하는 분쟁에 대해 관여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에서
조선의 정부를 배제시켰다는 데에 있습니다.
조선 영토 내에서 발생하는 양국의 경제적 마찰을, 조선의 법규대로 처리할 수 없고
일본의 법규대로 처리한다는 치외법권을 내어줌으로써, 이미 몇 발짝은 물러난 상태에서 일본의 행동과 추
진대로 우리가 전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바탕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역시 국가의 중대한 고유 권리인 사법권의 영역을 이미 국가 밖으로 이전시켰다
는 점에서, 협정의 방대한 내용에 대해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인지 논하는 모든 논쟁 자체가
이미 의미가 없는 탁상공론인 것입니다.
덧붙여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분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죠.
밀가루 음식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그 의학적인 근거를 알고 계십니까?
밀 자체가 인체에 유해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하는 밀은 거의 전부가 미국산이고, 미국에
서 우리에게 수출하는 밀에는 다량의 방부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그것이 각종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
다.
산업화가 진행된 1960년대 이후로 국내에서 각종 소화기 계통의 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급증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잊고 사는 것이죠.
뭐,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 거의 매일같이 그 독약이나 다름없는 밀가루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잘 살아갑니
다.
뿐만 아니라 밀의 가격이 폭등하고 그에 따라 식자재의 가격도 함께 올라가면서 고통이 가중되어도, 어쨌든
살아가긴 살아가지 않습니까?
쌀마저도 그렇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뻔한 것이겠죠.
그런데, 위와 같은 말 자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의료 따위의 자생 복지비용으로 얼마만큼을 더 지출하게 되고 가정 경제에 얼마만큼의 변화가 생기는지를
수백 날 논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익’과 ‘소득’은 결코 같은 범주가 아님을 국민들은 알아야 합니다.
국가의 고유 주권인 사법권을 뚝 떼어서 내어준 상태가 되면, 그 어떤 문제점이 생겨도 우리 스스로
조정하고 해결할 수가 없으며, 이는 어떠한 세부 소득과도 관계 없이 일방적인 착취가 됩니다.
어떠한 문제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고 해석도 당연히 다릅니다.
그러나 수백 수천가지의 의견이 서로 조율되거나 대립하거나 상관없이
문제 자체의 본질과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에는 반드시 중점과 요점이 있고, 그것을 파악하는게 중요합니다.
세부적인 가지를 아무리 솎아봤자 뿌리와 줄기가 병들면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죠.
두 번째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공화정 체제입니다.
국회와 정부는 국민의 대표 기관이고, 국민의 의견과 이익을 대변하며 수렴하여 정책으로 일궈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민주주의의 세부 원리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김선동 의원이 국회에서 최루탄 사건을 일으킨 것에 대해 말이 많은데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통과된 안에 대해 그러한 물리적인 방법으로 소수가 일으킨 행동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되짚어 봅시다.
현재 통과된 FTA국회 비준안이 과연 진정한 다수결의 원칙을 이행한 것이라 할 수 있는지부터.
국회가 국민의 대표 기관이라면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데도 반드시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그 과정
역시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국회의 관행은 ‘그들만의 리그’와 같습니다.
정치라는 것을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의 권리이고 유희인 것처럼 의
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정당한 다수결의 절차에 의해서 통과된 것이고, 그 원리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절차적, 형식적 법치주의에만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다 인정해주어야만 한다면
프랑스 대혁명부터 시작해서 세계사 속에서 일어난 모든 민중 혁명은 불법행위입니다.
히틀러의 독재와 유럽 침공과 같은 일은 매우 정당한 것이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젊은 층들은, 자신들이 정치의 객체이고 관람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패배적인 생각에
매우 짙게 빠져있는 듯합니다.
평가와 비판은 갓난아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태아 때부터 시민권이 인정되지만, 실질적
으로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이 되어도 자신이 태아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비준 통과는, 국민의 대표기관이 국민의 의견을 확연하고 세부적으로 반영하
지 않았고,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으며, 실질적 법치주의의 원칙을 위배했습니다. 다수 의결에 따
라 결정된다는 실정법 위에, 그 다수는 국회의 다수가 아닌 국민의 다수를 우선해야 한다는 기본 원
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타당성이 없습니다.
다음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주권의 이행을 통한 행복과 번영을 누릴 자격이 현재로써는
부족하고, 아직도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첫째로,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본인들의 주인의식을 통해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직자를 선출하는 선거조차 투표율이 50%를 초과하기 힘들다는 것은, 민주주의국가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조차가 부끄러운 것이며,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볼 때 어떠한 국가의 불이익이나 외국에 의한 침략
과 착취도 부당하다고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참여하지 않는 것도 권리 행
사의 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조차 있는 나라에서, 그 어떠한 변명도 말 그대로 변명일 뿐입니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터득하고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해야 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정치의 영역에
서 멀어지도록 부추기는 어른들의 행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정진하고 정작 교육의 주된 목적은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비뚤어진 교육열 역시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합니다.
그 밖에도 우리 국민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시련을 달게 받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과거의 독재정권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면서도, 그 독재정권 하에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불려준
배를 쓰다듬으며 그 시절에 대해 향수마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통제할 목적으로 주입시킨 남북대결구도와 색깔론을 현재까지도 정치 토론의 주
수단으로 삼으며 심지어는 할 말이 없을 때 내세우는 보루와도 같이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문제들에 대해 불만하면서도, 그것의 원인을 분석하고 찾아낼 생각은 하지
않으며,
그 원인을 파고 들어가면 항상 나오는 결론이 있는데도. 우리 민족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해결해야 될 문
제가 있는데도, 그것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같은 국적을 가지고 같은 영토 내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연대 책임을 지며 잘못된 과정에 의한 잘못된 결과도 다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
다.
그리하여 저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국제 사회는 야생동물의 세계와도 같이 철저한 약육강식의 원리에 의해서 돌아갑니다.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국민이 단합하여 투쟁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당연한 의무이며, 가족과 후손을 위한 사
명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겉만 핥고 있는 탁상공론에 치우쳐있
다면 그것은 백 년 전의 과거가 그대로 되풀이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 과거의 교훈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역사 교과서는 우리 민족의 숱한 수난들을 다 외세의 탓으로 돌리
고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도록 유도하지만, 우리가 수난을 겪었던 원인은 외부가 아닌 우리 스스로에게 있었
습니다. 왜 우리 스스로 나라를 병들게 하고 결국에는 모두가 함께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이제는 국민들이
합심하여 그 원인부터 차근히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되풀이되는 수난 역시도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시행착오와 과정으로만 여기기에는 우리 스스로와 후손들이 받아야 하는 피해가
너무나 가혹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