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때의 주요전투를 가르쳐 주세요

제2차 세계대전때의 주요전투를 가르쳐 주세요

작성일 2003.08.12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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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제가 제2차세계대전에 관한 다큐맨터리를 보다가

롬멜과 몽고메리의 북아프리카 전투가 나왔습니다

근데 제2차 세계대전에는 여러 주요 전투가 많잔아요?

머 북아프리카 전투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머 그런거요

그런거 좀 가르쳐 주세요 아 그리고 이왕이면

히틀러와처칠스탈린이 저지른 판단착오 같은 것도

내공 50 걸겠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히틀러와 스탈린의 판단착오 등에 대해서는 요즈음 나온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쟁"이라는 책에 아주 잘 나와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교보문고 가보시면 "화제의 책" 코너에 요즈음에는 놓여졌더군요. 제가 살 때에는 찾기도 힘들었는데... ㅡㅡ*)
그리고, "만약에 - 전쟁사편"이라는 책도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라면서...
일단, 중요전투에 대한 것보다 앞서 언급하신 3명의 인물들의 판단착오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스탈린] 소련의 서기장이자 독재자이며 의심이 많으면서도 고집쇠였던 인물.
이 양반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자신의 가장 충실한 부하가 암살된 것을 빌미로 대규모 숙청을 감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련군의 경우 10만명의 "경험있는 장교들"이 모두 처형 혹은 시베리아 등지로 유배형을 당하였습니다. 이 결과, 나중에 독일과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핀란드와 "겨울전쟁"이 일어났을 적에 소련군은 그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약소국이었던 핀란드의 군대에 연전연패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스탈린은 자신의 친구였던 군사령관을 문책하였는데, 하지만 그 군사령관이 오히려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생각하며" (역사책들 중에는 그가 스탈린과 함께 식사하면서 먹던 돼지 통구이를 내던져가며) 소리치기를 "당신(스탈린)이 1919년의 적군(공산당군)과 백군(황제군)의 전쟁을 비롯한 여러 상황을 경험하였던 훌륭한 장교들을 모두 숙청하였기 때문에 우리 군대가 약체화 되었단 말이오!"라고 했을 정도였죠. (이 점을 "불행중 다행이도" 스탈린이 인식했던지... 그 군사령관은 숙청을 면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투폴렉스를 비롯한 우수한 기술자들이 만든 4발 폭격기 등이 "자신의 항공기 관련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그들을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냈을 정도로 기술적 진보를 "자신의 고집 때문에" 가로막은바 있었죠. 그 결과, 소련군은 독일과의 전쟁 당시에 무기의 양은 많았어도 질은 너무 떨어지는 무기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 덕에, 독일군에는 "전투기 슈퍼 에이스"며 "전차 슈퍼 에이스" 등이 많이 많이 배출되었을 정도였죠.)
또한, 히틀러가 결코 소련으로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즉, "독일-소련 불가침조약" 등을 맺은 자신의 외교적 역량이 "너무나도 탁월해서" 히틀러가 소련을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덕에... 막상, 당시 독일 내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독일군 (공산주의자) 탈영병들에 의해서, 첩보원들에 의해서, 그리고 심지어 소련 공군 정찰기 조종사 등에 의해서... "곧 독일이 소련으로 침공을 개시할 것이다!"라는 조짐을 계속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쟁이 막상 일어나자 "아무래도 히틀러 밑에 있는 어느 정신나간 장군이 국경분쟁을 시도한 모양이다! 어서 어서 히틀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를 중단시키라 해야겠다!"는 소리까지 했을 정도였죠. 그리고, 더 한심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개전 후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고, 그 결과 소련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였습니다. (공군의 경우 항공기의 2/3 이상을 이 일주일 동안에 일방적으로 상실하였습니다.)

[히틀러] 자기 중심적인 사상과 이기주의,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사상 속에서 살았던 인물. 엘리트절대우월주의자들의 대표적인 사례.
이 양반은 첫째... "유태인들을 대거 탄압"함으로서, 그 결과 아인쉬타인과 페르미(그 자신은 유태인이 아니었지만, 아내가 유태인인지라...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미국으로 망명) 등을 연합국에 "넘겨" 줌으로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핵무기를... 막상 독일은 "이론 수준을 못 벗어날 적에" 미국이 오히려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1940년의 프랑스 및 영국과의 육상전 초반, 프랑스군과 영국군 수십만을 덩케르크 해안지역에 가두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들을 분쇄 및 포로로 잡을 명령만 기다리던 롬멜 장군 등에게 "계속 기다리도록" 명령함으로서 이들이 모두 영국으로 도망가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들 병사들이 훗날 엘 알라메인에서 독일군을 분쇄하였던 것이죠... ㅡㅡ*
물론,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가 명예롭게 항복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그랬다고 합니다만, 아무튼 "실수"는 실수입니다.
그 외에, "대영항공전"(Battle Of Briton) 당시에는 영국에 대한 폭격일정을 한달 동안 늦춤으로서 영국군이 충분한 양의 전투기를 확보토록 할 기회를 줌으로서 영국을 항공기로 정복할 기회를 놏쳤고 (물론 이 때에도 "명예로운 항복의 기회"가 이유였습니다.), 더 나아가 막상 항공전이 시작된 뒤, 런던에 대한 어떤 폭격기 조종사들의 항법실수에 의한 폭격 및 그에 따른 영국의 베를린 보복폭격이 있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목표를 바꾸어서, 즉 당시 거의 다 박살난 영국의 공군기지와 군수공장 등 대신에 런던 등의 민간인 거주지역을 폭격하도록 지시하여, 영국군이 다시 한번 전쟁을 위한 철저한 준비를 실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해군에 대해서는 수상함대를 멸시하고 잠수함대에 대해서도 (그 엄청난 총애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지원을 해주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소련에 대해서는 "스탈린그라드"가 "스탈린의 이름을 가진 도시"라는 이유로 막대한 병력을 투입하여 이 도시를 점령하려고 시도하는 통에, 동부전선의 독일군 중 상당수가 발이 묶였고,
소련 침공 첫해에 "모스크바 공략에 실패하였다는 이유로" 그 다음해에는 작전목표를 남방지역으로 쉽게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동부전선에서의 계속된 패전 속에서도 "후퇴는 절대 불가!"를 선언함으로서 많은 부대들이 소련군의 인해전술과 더더욱 발전되고 또한 막대한 양이 생산되어진 전투장비들의 바다 속에서 조각 조각 박살나도록 만들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일어나자, 당시 연합군이 이미 목표했었던 지역들 - 유타해안, 오마하해안, 소드해안, 골드해안, 쥬노해안 등 -에 상륙하여 여기에 강력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시작한지 한참 된 뒤에도 불구하고, "적은 분명 파트깔레에 있다! 이를 공격하라! 여기가 영국과 가장 가까우니 이는 분명하다!"면서 이리로 병력을 출동시킬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 결과, 여차하면 연합군을 바다로 밀어넣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회를 놏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 뒤...
독일이 멸망하기 시작하던 때...
마지막으로 엄청난 판단미스를 일으킵니다.
바로, "이제 야만한 소련 사람들 및 영국과 미국의 잡종들에게 패할 경우, 우리 독일인들은 더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 이에 독일의 모든 인프라를 파괴하여 독일인들이 더이상 생존을 못하게 만들자!"는...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죽기 직전에 내리는 명령"과 비슷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행히, 그 아래의 "제정신인 부하들" 덕에 이 명령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습니다만... ㅡㅡ*)

[처칠] 원래 수세기 전의 "계승전쟁" 당시에 큰 공을 세운 "Sir 말버로우 장군"의 후예라는 점 때문에 항상 "조상님의 본을 따라서" 큰 공을 세워보기를 원하였고, 또한 큰 권력을 누려보기를 원하였습니다. 실례로, 그는 수상자리 등의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난 50년대 중반 이후, 말 그대로 "폐인"이 되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 양반은 해군장관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갈리폴리 전투에서 "육군과 고집스럽게 공을 다투던 통에" 결국 수 많은 영국 및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군 병사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 양반의 고집은 결국 오히려 영국을 살리게 됩니다.
즉, 히틀러가 (앞서 언급하였듯이 ㅡㅡ;;;) "그렇게 기회를 많이 주었음에도" 결코 항복하지 않았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도 역시 많은 실수들을 하였으니...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전쟁이 일어나기 딱 10년 전에, 이른바 "윈저공과 심슨부인의 열애사건"과 관련한 책임을 지고 그는 총리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물론, 이는 그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가 그의 정적(政敵)들의 공격에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남으로서 영국은 항공력과 해군력 등에서 충분히 보충을 할 여유를 제대로 얻지 못함으로서 전쟁 중 고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히틀러가 앞서 언급된 것과 관련한 "실수들"을 하지 않았을 경우, 영국은 결국 이로 인하여 독일에 정복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처칠은 계속해서 대륙파견군, 특히 공군전투기 부대를 (이미 상당수 파견되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파견할 것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프랑스 내의 영국 대륙파견군 공군전투기부대가 사용하던 비행장들은 거의 모두 독일 전차부대들에 의해서 파괴 및 점령당하던 상황이었죠. 그 결과, 점령당하지 않은 비행장을 찾아 프랑스 국내를 전전하던 상황이었고, 그 결과 제대로 된 보급과 정비 등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제대로 싸운다는 것이 불가능해졌던 상황입니다. 만약 공군 전투기부대 사령관 다우딩 중장이 뜯어말리지 않았더라면, 영국 공군의 전투기부대는 지상에서 궤멸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을 지켜낸 훌륭한 무기들 중 하나로 뽑히는 "레이더"의 경우, 원래 처칠이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과학자를 밀어주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답변확정되지 않을 뻔 했지요. 당시 그 과학자는 적외선을 이용하여 야간에 적기를 발견하는 장치를 개발하였는데 (오늘날 우리 군대에서도 쓰이는 TOD라는 열상장치의 원형이 아닌가 합니다만...) 이 당시에는 그 성능이 레이더보다 훨씬 떨어지는 장비였죠. 하지만, 처칠은 그 과학자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이유로 레이더 대신 그 장비를 도입할 것을 한동안 주장하였습니다. 다행히 참모들의 지속적인 만류 때문에 이를 이행하지 않았었던 것이 결국 영국을 살렸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의 국제사회적 몰락에 있어서 아주 중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태평양에서는 일본의 육해군의 공격으로 그리고 대서양에서는 독일 잠수함대의 공격으로 인도, 캐나다, 싱가포르, 호주,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홍콩 등의 식민지들로부터의 지원이 끊어지거나 혹은 이를 점령당함으로서 심지어 이들 지역에 병력을 파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 결과,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 수행을 위한 충분한 무력과 경제력을 급히 확보하기 위하여 미국에 손을 벌리지 않으면 안되었죠.
이는 마치 우리가 한국전쟁 당시에 미국에 텅스텐광석채굴협정 및 전시 및 평시 군통수권 이양 (평시는 다행히 몇년 전 돌려받았죠...) 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즉, 미국으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퇴역한 구식 구축함 40척을 독일잠수함대에 대한 대항용으로 "빌려오는" 과정에서 영국은 카리브해의 식민지들을 "미국에 99년 동안 빌려주기로 협정"을 맺습니다. 물론, 이 구축함들은 정말 구닥다리여서... 당시 영국해군의 수병들은 "만약 우리가 전쟁을 끝낸 뒤에 이 배들 각각에 스카치위스키 10상자씩을 얹어서 돌려주겠다고 해도 미국인들은 결코 이 배들을 돌려받지 아니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었죠.
게다가, 그 당시 엄청날 정도로 미국에 의존한 결과,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말 그대로" 미국의 "국제적 시다바리"가 된 것입니다. (한 200년 쯤 전까지만 해도 식민지였고, 그나마 "하늘의 도우심으로" 겨우 독립했었던 미국이... 그 식민지 종주국을 시다바리로 만들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가히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ㅡㅡ;;;)

[중요전투들에 대해서]
일단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이트들을 참조하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 사이트들이야말로 정말 잘 나와있지요.

http://airwar.hihome.com/airwar/airwar-ww2.htm

http://user.chollian.net/%7Ehartmannshim/main.htm

http://www.combinedfleet.com/kaigun.htm

http://cafe.daum.net/lovewar

http://cafe.daum.net/pwarh

http://cafe.daum.net/International

 

여기에, 만화책들로서는... 일본만화가 小林原文 선생 등이 그리신 만화들이 있는데... 혹시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 가실 일이 있으시다면, "을지문고"를 들르시기 바랍니다. 거기 만화책 코너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중요 전투들 및 중요 에이스들과 영웅들에 대해서 다룬 만화책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타 진주만전투, 미드웨이전투, 토부룩전투, 엘알라메인전투, 스탈린그라드전투, 쿠르스크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유황도 전투 등의 굵직굵직한 전투들을 일일이 소개해드리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집필 공간이 들기 때문에 일단 위에 올려놓은 사이트들과 서적들 등을 참조하시기 바라며, 더 필요하시다면 추후 따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이것보다는 차라리 직접 밀리터리에 관한 자료실을찾아보시는게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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