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ror: INSERT INTO `kin_3_307` (subject, seo_subject, content, page, description, og_image, time) VALUES ('제 소설 좀 읽어주세요', '%EC%A0%9C+%EC%86%8C%EC%84%A4+%EC%A2%80+%EC%9D%BD%EC%96%B4%EC%A3%BC%EC%84%B8%EC%9A%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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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설을 쓰긴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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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제가 읽기에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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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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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Remember m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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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기도하고 갑자기 우리 준이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혹시나 내가 전화 하면 방해될까봐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다가 하다가 큰맘먹고 준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없이 \'뚜루루루\'하는 심심한 통화연결음이 흐르고 이쯤 되면 받겠다 싶을때도 안받고 50초넘었는데도 전화를 안받아서 핸드폰 고장났나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한참을 안받아서 결국엔 핸드폰 폴더를 닫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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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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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준이 목소리... 듣고싶던 그 목소리가... 요즘들어 까칠해진 그 말투가 내 심장에 와서 가시처럼 박힌다. 정말 듣고싶던 목소린데 자꾸만 생갔났던 목소린데 항상 날 생각해주던 준이목소리가.. 요즘들어 무지 까칠해진 목소리가 내 심장 깊숙히 박힌다. 준이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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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저기.... 그냥... 니목소리 듣고싶기도하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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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소리냐? 듣기 싫어. 나 공부중이야 이번주 시험기간인거 몰라?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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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준아...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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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박준희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니가 보고싶단말.. 바보같이 그거하나도 제대로 못꺼내는 나, 난 널 사랑하는데 요즘들어 왜 넌 나를 사랑한다고 느껴지지 않는걸까..너의 그 목소리는 차갑고 까칠한... 그리고 귀찮음이 묻어날 뿐 왜 날 사랑한다는 말이 안나올까... 왜 날 먼저 사랑한다는 말이안나올까.. 야 박준희... 우리 사귀는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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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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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는게, 이제 겨우 이틀남았다. 솔직히 가고싶지 않다. 난 아직 한국에서 할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정한별한테 아직 사랑한단 말도 많이 못해줬고, 미안하단 말도 하지못했고..... 날 잊어버리라는 말도..... 아직 하질 못했는데.... 이말을 하면.. 니가 아플 거란 변명으로 내 자신에게 돌아올 상처의 두려움을 감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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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한테 전화를 걸까 하는 마음에 꺼놓았던 핸드폰 전원을 켰다. 켜자마자 보이는 정한별의 사진 위로 내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번호... 정한별번호를 눌렀다. 누르고 나니까 전화를 걸 자신이 없어졌다. 건다고 해도 너한테 말할 수는 있을까...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리고 내가 이러고 사는거... 아버지란 사람이 날 보낸다는거... 이런 내 인생 정말 싫어서 괜시리 핸드폰을 침대로 던져버렸다. 새파란 침대위로 떨어진 까만 핸드폰이 왜 던지냐는 듯 신경질내며 통통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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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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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가던 핸드폰에 울리는 벨소리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치켜들고 누군지 확인하는데...  정한별이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정한별이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밖에 안운다는건 다 거짓말이다. 난 벌써 마음 속으로도 내 눈에서도 수백번도 더 울었으니까.... 입고있던 옷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비벼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듯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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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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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저기.... 그냥... 니목소리 듣고싶기도하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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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소리냐? 듣기 싫어 나 공부중이야 이번주 시험기간인거 몰라?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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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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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를 내려버렸다. 더 이상 정한별 목소리들으면 진짜 가기 싫어 질것 같아서 다 때려치우고 정한별한테 달려갈 것 같아서 아니면 진짜 제대로 울 것 같아서...... 너한테 정말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하고... 니가 날 사랑하게 만들어서... 너무 미안해...... 넌 날 잊어야만 할테니까.... 아니... 잊어줘... 나같이 바보같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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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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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빠르다는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눈깜짝할사이에 지나고 우리학교는 시험이 시작됐다. 이틀동안 준이랑 서로 연락하나도 안하고 진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보고싶지만, 준희의 그 목소리를 듣고 난 다음부턴 왠지 자신도 없어지고 그래서 다시 전화 할 수 없었다. 오늘 가면 볼수있을까 해서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갔다. 원래 시험이란건 신경쓰지 않던 나였기 때문에 준이를 볼수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이리저리 복잡한 이동이 끝나고 난뒤에 시험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1교시 사회시험이 시작되고 골고루 열심히 찍어줬는데 왠지 많이 맞을것만 같은 기쁜 맘이다. 문제를 읽는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죽을 맛이었던 1교시가 끝나고 박준희가 있는 2반으로 통통거리며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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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아- 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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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박준희 자리는 시험 본 사람 자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깨끗히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눈에 띈 문 앞 책상에 엎드려 졸고있는... 아니 자고있는 애, 그애를 쿡쿡 찔러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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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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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벌써 시험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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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시작 전 부터 잔거구나.......... 포기상태야.......... 뭐 나도 잘난 건 아니지만 문제를 만든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읽어는 봐야 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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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깨워서 미안한데.. 준이 어디 갔는지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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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일어나서 눌리고 부시시한 머리와 촉촉한 입가, 팅팅부은 눈으로 일어난 그 남자애........... 진심으로... 혼자보기 아깝다... 저기요.. 이불은 덮고 자세요..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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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준이??? 그건 누구이름이냐..... 준이라... 흠냠... 아... 박준희? 발음을 정확히 해야지 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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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준이어딨는지 아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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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오늘 학교 안나왔는데? 시험인데 학교안나온걸보면 대단한 실력인데? 존경할만해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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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시작전부터 잔거 아니셨나요? 박준희 자식... 나한테 신경질내면서까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다더니 학교는 왜 안나왔다냐? 연락도 안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더니....
핸드폰 폴더를 열고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누르니까 박준희란 이름으로 전화가 걸린다. 그리고나서 핸드폰을 얼굴에 갖다대니깐 어떤 이름모르는 목소리 이쁜 언니가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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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이 꺼져있어 삐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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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일 난거아냐? 아... 걱정되네........... 그렇게 나한테 까칠하게 굴었던 앤데도 난 왜 대체 박준희를 좋아하는건지.... 또 걱정된다... 2교시 종이치고 다시 선생님 책상에 전원을 끈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험을 시작했다. 간만에 아는 것 같은 문제가 나와서 시험에 집중하려 했지만 준이 생각이 자꾸나서 제대로 풀 수 없었다. 배운 기억도 안나는 문제를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대충 찍어넘기고 OMR카드를 내버렸다. 대체 어디로 간거냐구 박준희...
2교시시험이 끝나고 핸드폰 전원을 바로 켰다. 핸드폰 전원을 켜자마자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소리샘에 새로운 음성메세지가 남겨졌다는거다. *89에 전화를 걸어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세지를 확인했다. 첫번째 메세지입니다 라는 언니의 이쁜 목소리가 흘러나온 후 내 귀에 들리는 건 준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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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내 여자친구... 내 첫사랑.... 안녕-? 전화로 할려고 그랬는데 시험보는 중인가보네? 어............ 여기가 어디냐면 공항인데.... 나 한시간만 있으면 일본으로 가 .......... 나 진짜 나쁜놈이니까. 나 꼭 잊어.... 너 그거 아냐? 우리반에 김윤한이라고 너 좋아하는 놈 있거든....나 가고나면 그 놈이 달라붙을 테니까 잘 아껴줘라. 그럼... 또 만날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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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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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것 같던 이틀이 지나고 기사가 운전하는 아버지차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정한별... 우리 한별이... 목소리들으면 못 갈 것 같아서... 전화는 안하려고 했는데-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이제 미안해서라도 전화못 걸 것 같아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 그 걸로 정한별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니까 \"전원이 꺼져있어 삐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라는 말이 나오고 아 맞다... 오늘 시험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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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화도 못하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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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빠른건지 시간이 빨리가는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벌써 공항에 도착해버렸다. 비행기 출발까지는 한시간 정도 남은거 같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고, 정한별이 눈 앞에 아른아른거려서 못견딜 것 같다. 정말 지금 아니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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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화장실좀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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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나이인지라 주름살에 나잇살로 늙어버린 우리 아버지... 아마도 아버지의 마지막이 될 소원으로 일본엘 가서 여러가지 공부를 하게 됐다... 아버지를 이어 나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가 보다. 우리 아버지..... 정말 밉지만.. 우리 아버지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걸 알기때문에... 미워할수가 없다... 그치만 자꾸 정한별이 보고싶고,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차라리 그냥 말을 하고 갔다 올까 했지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면서 아파할 정한별, 다른 사랑이 필요할 정한별에게 미안해서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돌아 갈 수 있는 날은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실 그 날일 것이다. 나 좋자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만을 기도 할 수도 없다. 난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아픔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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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가는동안 별 생각을 다했다. 역시 걸면 안되는 걸까 하고 다시 돌아섰다가 또 다시 지금 아님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가를 몇번이나 반복한다음에 남자 화장실이라는 그림 팻말이 붙어있는 화장실로 들어와서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고 번호를 누른다. 역시 전원은 꺼져있는데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삐소리 후에 목소리를 남긴다. 차라리 이게 잘 된 건지도 몰라... 정말로 니 목소릴 들으면 여기서 뛰쳐 나가버릴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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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내 여자친구... 내 첫사랑.... 안녕-? 전화로 할려고 그랬는데 시험보는 중인가보네? 어............ 여기가 어디냐면 공항인데.... 나 한시간만 있으면 일본으로 가 .......... 나 진짜 나쁜놈이니까. 나 꼭 잊어.... 너 그거 아냐? 우리반에 김윤한이라고 너 좋아하는 놈 있거든....나 가고나면 그 놈이 달라붙을 테니까 잘 아껴줘라. 그럼... 또 만날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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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하고싶었던말... 날... 기다려줄수 있냐는말... 그 말..... 결국은 못 할 말이었나 보다.. 보고싶지만.. 그래서 슬프지만 눈물은 나지않는다. 내가 울면... 정한별.... 너도 울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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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다려줄수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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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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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 손을 벗어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뺨을타고 눈물이 흐르고 맘속에선 준이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준이는 없었다. 박준희... 너 이럼 안되잖아... 그냥 가는게 어딨어... 이렇게 가면... 안되는거잖아... 그 후론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뛰기 시작했다. 3교시 시험이 시작함을 알리는 종이 치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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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인천공항이요!! 빨리가주세요... 빨리요.. 최대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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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 느렸다. 할 수 만 있다면 내가 운전해서 가고 싶었다. 지금 너한테가서 거짓말이었다고.. 다 장난이라는 말을 꼭 들어야했다- 아니면..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들어도... 내가 널 사랑한다고 제발 가지말라는 그말은 꼭하고싶었다.. 정말 자존심 다버리고... 매달리고 싶었다.. 널 사랑하니까... 난 너 아니면 안된단말야...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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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좀만 더 빨리가면 안돼요?... 네..? 빨리...가야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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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가고 있응께 걱정하지말고 있으요... 재촉하면 내보고 우짜라는 말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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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이... 꼭 지금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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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가는 길은 아직까지도 멀기만 하다. 니가 벌써 없을 까봐 두려워져.... 준아... 내가 다 잘못했어... 그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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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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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지 벌써 들었으려나? 그럼.... 올까....? 아냐.... 오면 안돼.. 발 한걸음 뗄 때 마다 수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미쳤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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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냐.. 빨리 안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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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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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생각을 그렇게 해? 가기싫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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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잘갔다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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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힘들겠지만 부탁들어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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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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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면... 좀더 멋진사람, 그리고 강한사람이 돼있으라 믿는다.. 그리고 혹.. 내가 없더라도.. 엄마.. 니가 꼭 지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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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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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오지 않을거라는거 알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널 잊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머리속에서 니가 둥둥 떠다니고 눈앞에서 니가 왔다갔다해..
그만큼.. 정한별... 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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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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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여기요 택시비- 잔돈은 안주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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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학생-!! 잔돈은 무신!! 돈이 모잘라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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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죄송합니다-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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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치겠네 안그래도 정신없고 시간없는데 택시비까지 헷갈리구.. 아.. 지금 이생각을 할때가 아니지 준이... 박준희... 어디있는거야...? 아직 안갔지? 안갔을 거라고 믿을게.. 너도 날 사랑한다고 믿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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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 넓은공항에서 박준희를 찾는다는건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물건을 찾는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더 어려웠다. 같은 곳을 계속 빙빙돌고 그 넓은 공항을 계속 돌아다녔지만 준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 게이트앞에 서있는 준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얼마만에 니 얼굴을 보는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연락 끊고 있었는데.. 얼굴도 못보고 목소리도 못듣는 그 시간동안 박준희 얼굴을 다 잊어버린것같았는데- 이렇게 멀리서도 니얼굴 보자마자 알아보는건.. 내가 널 많이 사랑하는 가봐..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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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리에 가만히 서서 멍하게 준이가 있는쪽을 바라만 보다가 준이가 아버지와 인사가 끝났는지 등을 돌려 문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는게 보여서 정신이 번쩍 뜨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널 못볼 것 같아서 무작정 뛰었다. 그리고 니이름을 불렀다.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니가 날떠나는게 싫어서 소리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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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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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날 돌아 보는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날 향해 돌아올 수 없었다. 박준희에 눈에서 눈물이 반짝반짝 빛나고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너의 눈에서 나를 향해 말하고있는게 보였다. 넌 분명히 날 향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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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다려 줄수있냐?\" 라고.... 니눈에서 날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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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기다리고 싶지않아도 널 기다릴수밖에 없어..  내 기억속에서 너란 사람 못지우니까...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는게 아니니까... 그리고 난 널 사랑하니까..
게이트 문이 닫혀버렸다. 너와 나의 마음의 문이 닫혀버렸다. 너에 대한 나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근데 준아...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나는 사랑이란 병은.. 니가 없으면 치료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 앞으론 아파도 니가 내옆에 없는데, 나... 아파서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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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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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랑 인사를 끝내고 게이트안으로 들어가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게 보였다. 그게 내 눈에서 정한별로 보였는데, 이제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됐는줄 알았다. 내 눈도 바보가 돼버린 줄 알았다. 문이 닫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소릴 질렀다. 내이름을 불렀다. 너였다. 지금 내눈앞에 정한별이 서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지금 돌아가버리면..., 내가 널 벗어날 수 없게 될 것같아서..... 근데.. 정한별... 니가 날 기다려줬음 하는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 인가? 근데.. 니가 날 기다려줬음 좋겠다.
정한별... 나 ... 기다려 줄수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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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꽉깨물고 눈물을 참는데도 눈물이 난다. 널 앞으로.. 내 기억속에서 어떻게 지울지... 참.. 하느님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왜 우리를 이렇게 떨어뜨려 놓냐고.. 하늘에 항의하고 싶다. 우리가 너무 사랑해서... 질투하는 거라면... 내가 사랑하는걸 조금 줄일테니까.... 제발 정한별은 아프게 하지말라고.. 그렇게 말하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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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 사진앨범에 들어가서 그동안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하나씩 지운다. 사진 하나를 지울때마다 눈에선 눈물이 한방울씩 떨어진다. 옆자리에 아직 사람이 안들어온건지.. 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는건진 모르지만.. 아직 옆자리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지금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이 사진들도 지우지 못할테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사진들을 지워나가고 마지막 사진... 정한별이 혼자 찍은 사진.. 이땐, 정말 우리가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했는데..  다른 여자 만났다고 정한별이랑 싸우다가 결국 내 핸드폰 가져가더니.. 여자애들 번호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다지우고, 막 핸드폰 만지더니 결국 찍은게 이사진이다. 나중에 이사진 보고나서 귀여워서 죽는 줄 알았는데..
손등으로 쓱쓱비벼서 팅팅부은 얼굴로 이사진을 지워야되나 지우지 말아야되나 생각하고있었다. 다른사람이 보면 얼마나 웃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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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는 전원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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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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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고 전원을 껐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변명으로 그 마지막사진을 지우고싶지않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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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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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 일주일... 니가 없는 시간은 미치도록 느리게 지나갔다. 차라리 니가 내 머리속에서 지워졌음 좋겠단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박준희네 반으로 찾아가 그의 자리를 쳐다보기도하고 앉아보기도하고 그러다가 울고 울다 지쳐 쓰러지고 1분 1초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겠고, 수업내용도 들어오지않았다. 내 머리속을 그리고 내 심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건 오직 하나- 박준희... 너밖에 들어올수가없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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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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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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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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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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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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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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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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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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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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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시간도 언제나 처럼 준희자리에 앉아서 준이가 썼던 책상..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울고있었다. 울려고 한게아닌데.. 여기만 오면 눈물이 나서... 나... 안울려고 하는데 그래서 여기 안오고싶은데.. 시간만 나면 발걸음이 저절로 오게 되는곳이라서.. 나도 어쩔수가없다.. 이젠 쪽팔리지도 않는다. 이반 애들도 또 와서 울으려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데- 여기 일주일 와있는동안 내가 올때마다 내 앞에 앉아서 항상 말거는 애가있다. 쪽팔리게 시리... 우는거 첨 보냐.. 하는 식으로 무시하고 울고있는데.. 나보고 울지 말랜다. 근데... 걱정해주는 투가 우리 준이같애서 준이가 너무 보고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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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우니까 더 못생긴거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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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흑... 니가 더 못생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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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야지, 이렇게- 스마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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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흐.. 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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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마아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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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 빨리 안꺼져.. 흡... 나지금 심각하거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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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얘 때문에? 에이- 얘가 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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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러다 맞는 수가 있..다..아... 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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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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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 흡흐....어떻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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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좋아하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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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속엔... 내 심장속엔 박준희 너밖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니가 자꾸 나갈려고 하니까... 자꾸 다른사람이 들어오려고 하잖아... 바보야... 보고싶어.. 바보... 너 돌아오면... 진짜 미워할거야... 내 머리속에.. 내심장속에 너 못들어오게 할거야... 바보야....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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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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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정한별이랑 사귀기 전에... 김윤한이라는 애랑 내기를 했다. 정한별이랑 먼저 사귀게 되는 사람이 돈받게 되는거- 그 내기를 시작하기로 하고 바로 내가 그냥 정한별한테 고백을 해버렸는데- 한번의 고민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버려서 내가 내기에 이겨버렸다. 그때 김윤한은 정말로 정한별을 좋아했었고, 난 재미삼아서 내기한거였는데- 사귀게 된걸 알고 김윤한이 나한테 뭐든 다해줄테니까 정한별이랑 헤어지라고 했었다. 그래서 난 뭐 상관없었기때문에 정한별이랑 헤어지려고했었다. 근데- 사람마음이라는게 쉽게 변하는거라서 정한별을 알고 만나고 하다보니까 어느새 정이들고, 처음엔 귀엽다 귀엽다 생각하던게 점차 사랑으로 번져나갔다. 그래서.. 정한별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버려서.. 헤어질 수 없었다. 아니, 헤어지기 싫었다. 정한별을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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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뭔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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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무 생각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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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때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간거여서, 그때 친했던 친구가 아직도 일본에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같이 밥먹기로 하고
지금 밥을 먹고있는데- 딴생각하느라 밥을 먹다가도 물을 마시다가도, 이게 지금 밥을 먹는건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먹고있었나보다-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생각나버리는게 정한별이어서... 자꾸만 보고싶어서... 딴생각을 하게된다. 오랫만에 만난친구에겐 미안하지만 ... 이젠 얘까지 정한별로
보이기 시작했나보다- 자꾸만 멍하게 쳐다보고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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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신나간 사람같애- 무슨 일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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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것도 아냐...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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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웃지마.. 너지금 웃을 기분 아닌거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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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보여?.. 왜? 나 기분좋은데 하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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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거짓말하는거 싫어하는거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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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랬었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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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밥이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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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한별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되버려서.. 정한별 없이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누가 좀 가르쳐 주는 사람없나... 제발 좀..... 잊을수 있는 방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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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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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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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이상해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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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또 무슨... 그래- 너 이상한 사람같애- 고민있음 말해봐- 어렸을때 부터 내가 니 얘기 많이 들어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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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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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겁긴-\"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한가지... 너한테... 지금 정한별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하면.. 니가 해결해 줄 수 있는것도 아니잖아- 난 겁쟁이라서 아무한테나 말 못꺼내겠다-

\n


*

\n


저녁늦게 되서야 학교가 끝나고서 가로등 하나 있는거 마저도 깨져서 깜빡깜빡 거리는 집앞 골목을 걸어가고있는데 뒤에서 타박타박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 발소리는 내가 멈추면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따라 걷고있었다. 진짜 이씨.. 안그래도 무서워 죽겠는데..!

\n

\"야... 너 자꾸 따라올거야?\"

\n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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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앞에서 서서 자꾸 따라오는 그자식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짜증나는 표정으로 그리고 짜증나는 말투로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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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신경쓰여, 왜 자꾸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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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소리야- 난 조용히 우리집 가고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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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n

\"우리집 간다고 우.리.집, 여기가 우리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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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집? 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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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가 우리집이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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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집인데?\"

\n

\"히히-그럼 뭐 니가 이집 주인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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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뭔소리야?\"

\n

\"잘부탁드립니다- 오늘부터 하숙하게 된 김윤한이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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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잘 들어가-\"

\n

\"어.. 어- 다음에 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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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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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나서 임은민네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냥 가려다가 안에 들렸다가 잠깐 차마시고 다시 나와서 이제 차에 타서 핸들을 잡으니 또 정한별 생각이 난다. 니가 지금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정한별이라는 사람은.. 공기랑 같아서- 같이 있을땐 중요한건줄 몰랐는데.. 없으니까 그게 참 중요한 거란걸 알았다- 사랑한다고 말로만 했던 지난 날이 바보같아진다- 오기 전에 까칠하게 대하지말고.. 차라리 잘해주고 올걸 그랬나? 그럼 이렇게까지 생각은 안났으려나...
오랜만에 하지만 왠지 항상 해왔던것 같은 운전이다- 처음엔 도로를 달린다는게 무서웠는데- 배우고 나니까 차츰 무서움이 사라졌다. 정한별도 내가 없어지고 처음엔 슬플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서 나를 차츰 잊어줄까? 그래야 정한별한테는 편하겠지만- 내 이기적인생각은 니가 날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때- 나만 널 기억하고 넌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정말 슬플것같으니까.
익숙하지않은 일본의 도로를 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끼익\' 하는 마찰음이 시끄러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차문을 잠그고 나와서 임은민한테 도착했다고 문자나 보내려고하는데, 주머니 어디를 뒤져도 핸드폰이 없다. 차문을 다시열고 차안을 뒤져봐도 핸드폰이 없다. 잃어버렸나? 어쩌지.. 정한별사진..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n


*

\n


\"엄마!! 엄마-!!\"

\n

\"아주머니-안녕하세요?\"

\n

\"어,그래- 한별아- 우리집에 새로 들어온 하숙생, 윤한이- 말했었나?\"

\n

\"왜 엄마 맘대로야! 하숙생이라고 말만했지, 얘라고 말했냐구!!\"

\n

\"왜? 평소엔 하숙생 들어와도 잘만 대하드만 얘가 갑자기 왜이래\"

\n

\"아- 진짜!\"

\n

\"정한별-! 시끄럽고! 들어와서 밥이나 먹어, 윤한이도 어서 들어와서 먹구.\"

\n

\"네에-\"

\n

\"씨이-, 난 먹을생각 없어-\"

\n

\"얘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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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엄마가 하숙생 구했다고 그랬었는데.. 누굴까 별로 궁금하지않아서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게 얘일줄은 몰랐다- 아... 미치겠네.. 왜 하필이면 얘지?.. 왠지 되게 싫다. 어... 근데 내가 얘를 싫어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내가 얘를 왜 이렇게 피할까...

\n

\"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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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넌 노크 할줄도 모르냐!! 여자방에 왜 노크도 없이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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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먹어? 배고플텐데- 너 학교에선 하루종일 울기만 하더니 집에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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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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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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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먹을려고 했는데... 역시 하루종일 울기만 하니까 배는 고픈가보다.. 우씨.. 근데 하필 이럴때- 꼬르륵인건데!!! 아 쪽팔리게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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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야 니 배가 배고프댄다. 그만 고집부리고 나와서 밥먹으래-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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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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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야 !! 야!! 던지지마, 알았어 먹기싫음 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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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저걸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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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이라는 사람이 우리집에 들어와서 신경쓰이기는 한다만.. 뭐 나쁘진 않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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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삑.삑.삑.삑.삑. 띠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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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발 벗고 들어와서 당장 전화기 부터 들었다- 하나뿐인 정한별 사진이 있는 핸드폰.. 잃어버리면 안되는거라서... 신호가 가면서 연결음이 나온다. 내 통화연결음이 이렇게 지루했던가...? 그냥 심심하게 \'뚜루루루\' 하기만하는 통화 연결음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렇게 두세번 통화연결음이 가더니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역시 떨어 뜨린건가?.. 전화를 받자 もしもし가 아닌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한국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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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기 핸드폰 주우셨어요?\"

\n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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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핸드폰 인데요- 떨어뜨렸나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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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박준희. 나 은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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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임은민- 니가 왜 내 핸드폰을 가지고 있냐?\"

\n

\"글쎄- 그건 내가 물어봐야 될것같은데- 니가 우리집에 두고 간 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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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나? 무튼- 내가 지금갈까? 중요한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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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늦었는데- 내가 내일 너희집으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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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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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아직도 전에 있던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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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은 다른 오피스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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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알았어. 자세한건 이번호로 내일 전화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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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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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럼 내일 다시 전화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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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귀찮게 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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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내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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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까 임은민네 집에 핸드폰을 두고왔었나?.. 휴우 그래도 다행이다.. 잃어버리거나 한게 아니라서- 한별아 미안해- 내가 자꾸 너를.. 아니 니가 담겨있는 핸드폰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아서-
정한별이 없는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핸드폰을 두고와서 정한별에게 무지 미안해진다- 내가 널 잃어버린거라고 생각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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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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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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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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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아침인가..? 핸드폰에 설정해놓은 모닝콜이 정확히 세 번 울릴 때 일어났다- 어제까지는 어깨가 결려서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면 항상 아프곤 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어깨가 안 결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서 왠지 기분이 좋아서 룰루랄라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까 오늘따라 내얼굴이 더 이뻐보이고 막그러는데... 드디어 내가 미친건가... ?... 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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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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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미친듯한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과격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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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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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야.. 문 좀열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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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나씻고 있거든! 넌 작은 욕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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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작은 욕실쓰고있어... 야.. 옷벗고 있는거 아님 문열어봐... 아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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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왜 신경질이야! 내가 먼저 들어와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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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는 걸로 시작하고 욕실 문을 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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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뭔데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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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주고나서 신경질적으로 다시 치카치카(...)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뒤에서 들리는 쪼르르륵.. 하는소리.. 뭐지?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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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 야!! 너뭐야!! 이변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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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야!! 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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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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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식이 내 뒤에서 소변을 보고있는것이었던 것이었다. 뭐이런 변태같은 자식이 다있나 하고 양치하고 입을 헹구려던 물을 김윤한한테 부어버렸...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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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차거!! 야, 이씨-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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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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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어쨌다고 찬물을 붓고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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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안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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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차가워 죽겠네!! 수건이나 좀 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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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은 무슨- 빨리안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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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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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은 무슨... 다시 컵에 물을 받아서 부어버리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자 알아서 뒤로 물러난다. 다시 양치질을 제대로 하고나서 물로 입을 헹구는데.. 아 이빨시려... 물 진짜 차갑다.. 아..  괜히 미안해지는데?... 하하하.... 아냐아냐 내가 잘못한건 없다구-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와서 수건으로 머리를 툴툴 털고 나오는데- 지 방에서 나오는 김윤한이 나한테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래서 김윤한한테 난 잘못한거 없다는 표정을 지어줬다.그랬더니 김윤한 이자식.. 썩소를 짓고 욕실안으로 사라진다. 잇..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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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윤한아- 아침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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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교복을 갖춰입고나서 아침을 먹으려고 주방으로 나와서 식탁에 앉았더니.. 김윤한이 덜말린 머리로 교복을 챙겨입고 나온다. 내가 엄마 옆자리에 앉고 김윤한이 엄마 앞자리에 앉는다. 평소에는 대충 때우던 아침 식사였는데, 뭐가 이렇게 반찬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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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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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숟갈 퍼내더니 \'에취-\' 하고 기침을 한다. 나는 왠지 뜨끔하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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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감기 걸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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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그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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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따뜻하게 하고 다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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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하고 다녔는데- 아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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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머리를 안말리고 그러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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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그건 내 잘못이아니야- 난 정당한 짓을 했을 뿐인걸- 아하하하...하하..하..하.. 억지로 웃음을 짓는다. 가식.. 어우.. 완전 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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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날 한번 쳐다보더니 금새 헤헤- 웃는다. 근데 왠지 그 웃음이 무서워 보이는건 기분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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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머리를 안말려서 그런가봐... 머리 말려야지...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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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 니가 웃는게 난.. 박준희로 보일까..... 아.., 생각나버렸다. 또, 보고싶어져 버렸다. 오늘은 잊어버리고 지나갈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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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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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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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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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전화가 왔다. 지금 핸드폰 가지고 올테니까 주소 알려달라고, 솔직히 더자고 싶었는데.. 핸드폰얘기를 들으니까 눈이 번쩍 뜨였다. 정한별이 다시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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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니 사진앨범에 하나있는 그 사진.. 여자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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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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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니핸드폰 사진앨범에 들어가는데 비밀번호가 안걸려있는거있지- 기분 나빴다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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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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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사진 여자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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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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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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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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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니여자친구는 한국에 있어? 왜 혼자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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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정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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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벌써 여자친구가 있구나- 난 없는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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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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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지막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크게 웃을 수가 없었다. 정한별이 생각나버려서... 왠지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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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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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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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때 부터 너 좋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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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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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반응이 그러냐- 사실.. 나 작년에 너 일본왔을 때 고백 하려고 그랬는데.. 입이 안 떨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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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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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되게 많이 좋아했는데.. 여자친구 있다니까 아쉽네- 이번엔 진짜 어떻게 해볼려는 생각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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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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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마...키키.. 내가 여자 친구 있는 애를 어떻게 할까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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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지금 나한텐 정한별밖에 안보여서.. 내심장에 다른사람이 들어올수가 없다... 지금 내 맘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한별이 한테 너무미안하잖아... 그리고... 난 널 좋아하게 되지 않을테니까 너한테도 미안해질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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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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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김윤한이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또 학교 갈 시간에 늦었다. 뒤에서 자꾸 말 걸어서 귀찮게 만들고 말이야.. 뒤에서 계속 따라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힘들지만 뛰기로 했다. 한참을 헥헥 거리고 뛰어가다가 이제 없어졌을까 해서  뒤를 돌아보면 김윤한은 여유로운 눈빛으로 내뒤를 계속 졸졸 쫓아오고있다. 이자식 뭐지..? 순간이동이라도 하나...
역시 뛰는게 걷는것보단 빨리오는데 도움이 됐나보다, 다행히 교실안에는 늦지않게 도착했다. 교실안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다가 이제 좀 살 것같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담탱이가 칠판에 큼지막하게 써놓은 \'자습\'을 보고 왠지 쫄아서 자습할 공책을 꺼냈는데 은정이가 새로운 소식이라면서 달려온다. 또 맨날 무슨 새로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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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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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기말고사 봤던걸로 성적순으로 합반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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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순? 아.. 미치겠네.... 나 그때 시험 사회밖에 안 봤다고 볼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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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갓... 나.. 시험.. 안봤단 말이야..... 사회는 뭐.. 배운기억도 안났었고, 2교시가 수학이었는데 수학을 제대로 쳤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다음에 일주일동안은 울었던 기억 밖에 없는데.... 아.. 망했다.... 성적에 연연하진 않지만 이런 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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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야- 갑자기 무슨 합반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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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학년도 몇 달밖에 안남았는데 무슨 합반이야.. 교장이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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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미쳤어... 교장이 진짜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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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성적순으로 함으로써 학습 능률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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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능률 뭐..? 아.. 진짜- 난 그럼 끝반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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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반이라고 다 못하는 애들은 아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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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야 또- 복잡하게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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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은 1반.. 2등은 2반 …해서 8등은 8반이고 다시 9등은 1반 이런식으로 돌아가는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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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복잡하게도 해놨네- 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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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남녀 합반이라는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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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남녀.. 합반? 남.. 녀...... 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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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진짜 이 찐빵교장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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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부터 합반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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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익-! 다음주? 뭐 그렇게 빠르냐? 오늘 무슨요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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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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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핸드폰을 찾아서 슬라이드를 올려 날짜를 확인하는 은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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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금요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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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금요일이야? 내일 놀토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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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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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합반이면- 체육복도 맘대로 못갈아입고, 행동하나하나 신경써야되고.., 이상한짓(...) 도 할수가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이상한 짓을 했다는 건 아니고.....!! 아...! 무튼무튼!!! 찐빵교장새끼 맘에안들어!!!!!! 퉷퉷이다, 이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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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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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그치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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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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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히히.. 진짜? 되게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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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심부름으로 귀찮아서 틱틱거리며 6반에 들어갔었을때- 그 때였던 것같다. 내 기억엔 그때부터 널보면 심장이 뭘 훔친것 마냥 두근두근 뛰어댔으니까.. 항상 히죽히죽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고, 내심장이 병에걸린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었다. 그래서 너의 옆을 지날땐, 혹시라도 내 심장소리가 너한테 들릴까 조심조심 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널 잡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넌 지금 내옆에서 항상 날향해 웃는 얼굴로 서있어 줬을까? 지금처럼 박준희때문에 울지않고, 나때문에 웃어주는 사람으로 내옆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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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윤한- 농구 한 판 뜨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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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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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말고 가자- 너 요즘 왜이렇게 농구 안할려고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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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잖아. 다른애랑 가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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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사내새끼가 추위는 되게 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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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교복 마이를 더 당겼다. 왠지 자꾸만 추워지는 것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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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안추우란 법있냐? 안그래도 추운데 문은 왜열어놨어- 문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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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왜 니가 닫지 나보고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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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취! 야.. 나 감기.. 에취!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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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게 도움도 되네- 귀찮은 일 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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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까진 멀쩡하던게 오늘은 왜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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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찬물맞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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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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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있어.. 세상에서 제일...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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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여자가 있어-..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세상에서 제일 지켜주고 싶은 여자.... 내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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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됐고! 빅뉴스 있어 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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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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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순으로 남녀합반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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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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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에- 너 시험 잘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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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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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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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합반이라... 재밌는 사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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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벌써 몇번째 핸드폰 사진앨범만 왔다 갔다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이 없어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잡고 사진앨범에만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있다. 근데 신기한건- 니 사진을 보니까 배가 안고프다는거야... 한별아- 신기하지? 널 보고 있으면 만병이 다 나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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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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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식탁에 앉아서 왼쪽 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쪽 손으로 핸드폰만 만지작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이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하고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임은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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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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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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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짜 맨날 사람 무안하게 반응이 그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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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영어 쓰는거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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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영어쓰랬냐.. 반응을 좀 해달라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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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알았어, 안녕- 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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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 됐고, 같이 점심 먹을래? 아직 점심 안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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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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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점심먹을 때가 다됐나? 아까 내가 배고파서 일어난게 9시 약간 안됐을때 였는데- 지금 벌써 열두시가 넘었네- 내가 세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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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게 이짓하고 있었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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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먹을거야? 같이 먹자아- 나 같이 먹을 사람 없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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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알았어- 근데 나 시간좀 걸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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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몇신데 집에서 뭐하고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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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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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미안하대- 알았으니까 한시까지 준비하고 신주쿠에 유명한 그.. 식당 알아? 이름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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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마? 마츠야? 어떤 거 말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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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마츠야였어. 거기로 나와..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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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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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따봐- 늦지말고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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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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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녀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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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안해서 입을옷 없을텐데-  밖에 추울텐데... 뭐입고 가냐 또.. 근데.. 귓속에서 정한별 잔소리가 들리는것같다. 예전에 우리집에 왔을때 잔뜩 쌓아놓은 옷들보고 \'왜 밖에 안내놓는거야! 어우 드러워 너랑 안놀아\' 했던 니말소리가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자꾸만 내머리속에서 너의 생각이 뒤집어져 옛날생각이 난다. 사람 눈이 앞에 있는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지말고 앞만 보면서 가라고 해서 앞에 있는거라고 하던데- 쓸모없는 내눈은 눈물밖에 나지 않는 걸까... 진짜.. 쓸모없다- 누가 물어보면 내 눈이라고 하기 싫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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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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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합반된 애들 선생님이 성적순으로 결정하시고 나서 드디어 오늘! 합반 된 애들 발표가 나는 날이다. 아침부터 그것때문에 긴장해서 물 엎고 필통도 다 쏟고 대체 내가 이런 일에 왜 긴장을 하고있는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긴장을 정말 많이 하고있었다. 혹시- 잠시 후에 일어날 요상한 일을 미리 직감해서 그런건가... 대체 난 누구랑 같은 반이 되길래- 하아.... 미치겠다. 나 지금 떨고있니...
학교에 도착해서 잠을 자면 좀 긴장감이 덜할까 해서 교복 마이 주머니에 손을꽂고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잠깐 잤는데 꿈 속에서 조니뎁까지 나오고말이야... 무튼 열심히 잠을 자고있는데 애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소리에 졸린눈을 비벼가며 상체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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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조용,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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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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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합반 발표난거 다들 알고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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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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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는 애들이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담탱이를 꼬라보면서 야유를 퍼부어댔다. 난 졸려서 그런거 할수는 없었지만, 나도 같이 야유를 퍼부어주고 싶었다. 진짜 남녀 합반 하는거 싫은데 말이야-  그 짓들을.... 할 수가 없잖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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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고- 자 그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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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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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1반으로 가는 애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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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발표가 시작되고 애들은 자기의 이름이 언제 나올까 하는 얼굴로 귀를 기울여가면서 선생님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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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반은 여기까지고- 자 우리 6반에 남아있게 되는애들은… 3번 … 8번 박은정…… 그리고 13번 정한별…… 이상 5명이다. 자 다음 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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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 6반에 남아있네- 아싸.. 추운데 밖에 안나가도 된다- 그리고 은정이랑 같은반이네~ 히힛.. 내가 좀 운이 타고 났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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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은, 각 반에 있던 선생님 그대로이시고, 자 이상으로 합반발표는 여기까지고 각자 반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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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선생님이 앞 문밖으로 나가시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가방을 들쳐매고 각자 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른반 애들도 하나둘씩 우리반으로 들어왔다. 성적순으로 합반한다. 그래서 뭐 성적 다 밝히고 이런 건줄 알았는데 아니네? 뭐야- 괜히 겁먹었잖아- 나 바본가봐.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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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도 이 반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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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헤헤 거리면서 웃고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는 그대로 있고 \'어떤 놈이야?\' 하는 눈빛으로 눈만 교실문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윤한이 앞 문을 통해 교실안으로 들어온다. 뭐야 김윤한도 우리반이야? 너보니까 기분 확 잡치는 구나.. 근데 누구 부르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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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늘은 안우냐? 울면 못생겨진다 그러니까, 또 이미지 관리하시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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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누굴 부르는 걸까? 하고 전후좌우를 꼼꼼히 둘러보며 살피고 곧 김윤한이 시선이 날 향해있다는걸 알아채고, \'나?\' 하는 입모양과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김윤한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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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지 누구냐? 이반애 울면 못생긴애가 너밖에 더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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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넌 가만히 있어도 못생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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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넌 우는거 아니면 욕밖에 못하지? 이쁜 아가씨가 입이 그렇게 험하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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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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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김윤한이랑 얘기 하고있는데, 주위에서 수군 거리는 소리도 들리는거 같고 은정이가 내 옆으로 와서 조용히 말하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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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박준희랑 깨진거였어? 벌써 새로운 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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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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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깜짝이야. 물어본거잖아- 진실을 말해줘 궁금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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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박준희랑 깨진적 없거든!! 그리구... 흐...읍.. 나 아직 박준희 좋아하거든!! 얘.. 는... 흐..윽.. 그냥 친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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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박준희 얘기만 꺼내면 난.. 눈물이 날까- 아.. 씨 쪽팔리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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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누군데 얘 울리냐? 야!! 울면 못생겨지는 애!! 고개좀 들어봐- 어이구 오늘은 안울고 넘어가나 했더니 또 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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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신경꺼.. 이..씨- 야 너! 내가 왜 못생긴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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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냐? 넌 거울도 안보지? 지금 거울 좀 봐라. 최고조다. 혼자보기 아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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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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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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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어 던지지말라고! 던지지 말고 얘기 할 순 없냐? 화장실 갔다올테니까 진정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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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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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미치겠네. 솔직히 말해서 넌 우는 것도 어떻게 그렇게 이쁘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뭐. 얼굴이 뜨끈뜨끈해 진다. 너만 보면 가슴이 쿵쾅대서 미치겠어. 니가 좀 내 심장 좀 어떻게 해봐.... 돌아가시겠다. 얼굴에 찬물을 껸지면서 열을 식히고 있는데 아까 그 장면이 다시 생각난다. 그리고 정한별이 말했던 것도 분명히 기억난다. 아직 박준희를 좋아한다고.... 난 그냥 친구라고.... 그치만 난 포기하지 않을거다. 니가 아직 박준희를 좋아한다고해서 앞으로도 계속 니가 박준희를 좋아할건 아니니까... 내가 널 내여자로 만들테니까-
김윤한 아자-! 하고 소리치고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까 교실밖으로 나올때의 속도보단 많이 느리게- 그렇지만 마음은 가볍다. 정한별을 이제 차근차근 내걸로 만들생각을 하니까.....
교실앞에 다다라서 들어가야 되나 말아야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중엔 정한별의 목소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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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아.. 알았어 던지지말라고! 던지지 말고 얘기 할 순 없냐? 화장실 갔다올테니까 진정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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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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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교실밖으로 나가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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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진짜 박준희랑 깨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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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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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진짜? 근데 박준희는 일본 왜 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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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도 몰랐다. 박준희가 일본을 왜 갔는지는... 그래서 정말 내가 싫어져서 떠난건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난 그날 박준희의 눈에서 반짝반짝하면서
눈물이 흘러내리는걸... 봤기때문에, 난 널 믿을거야. 니가 빨리 돌아올거라고 난 믿을거야... 넌 날 사랑하고있는거라고 믿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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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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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흡.. .아..냐... 안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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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왜 박준희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데- 니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데- 눈물은 왜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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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쟤는 뭐야? 왜 혼자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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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윤한이는 그냥 친구야.... 장난 치는거야- 원래 이러고 놀아.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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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치는거.... 라고 믿고싶겠지-.... 난 항상 박준희 사랑만 받고싶었고, 항상 박준희한테만 사랑받았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받는 사랑은 익숙하지않아서... 지금
내 심장속엔 박준희라는 사람밖에없어서... 넌 들어올수가없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널 사랑할수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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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다른 애들 목소리는 안들려도 왜 내 귀엔 니 목소리만 들려서 날 아프게 만드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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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윤한이는 그냥 친구야.... 장난 치는거야- 원래 이러고 놀아.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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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던 너의 웃는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아니 지금은 너의 웃는 모습을 보는데 막... 심장이 설레는게 아니고 따끔거리고... 막 눈물이 나.. 널 내 걸로 만들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만 그런거고... 넌 아니었구나... 난 널 보면 미치도록 좋은데... 넌그게 아니었구나- 나만 혼자 쇼한거구나...
이런 내가 싫다. 널 밖에 사랑할수가 없는 내 심장이 너무 밉다. 널 사랑한다는게 이런게 아픈건지 몰랐다. 사랑하면.. 그게 다인 줄 알았다. 나만 사랑하면 다인 줄 알았다.

\n


*

\n


신주쿠의 마츠야는 작년에 아버지랑 많이 왔었다. 작년엔 이 근처에 살았었는데, 거리도 가깝고 맛도 좋고 꽤 유명한 식당이라서 자주 왔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여기도 많이 바뀐것같다. 인테리어도 그렇고 직원들도 바뀐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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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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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입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임은민을 기다리게 해버렸다. 벌써 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임은민을 보니까 왠지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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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갑자기 점심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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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밥 안먹고있었지? 너 여기 오고나서 어째 점점 마르는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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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먹은건 어떻게 알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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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딱 보면 얼굴에 밥 안먹었다고 써있어- 밥좀 먹어 야.. 얼굴이 반쪽이 다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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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기전엔 항상 정한별이랑 같이 밥먹고 했었는데- 그땐 정말 밥이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뭐 그닥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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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내 마누라냐.. 잔소리가 뭐 이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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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정한별이 잔소리하던게 생각났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머리속을 계속 빙빙 돌고있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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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까짓거 인심써서 오늘만 내가 니 마누라 해주지 뭐..- 히히\"

\n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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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학교가 끝나고 하얀 목도리를 목에 둘둘 두르고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누가 같이 걸어오고있는게 느껴지는데- 보나마나 김윤한이다. 너무 추워서 빨리 집에 가서 이불로 꽁꽁싸매고 귤도 까먹고싶었고, 따끈한 코코아도 마시고 싶어지는 날씨다. 이럴때 누구라도 손좀 잡아줬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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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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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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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을 끝내곤 내옆으로 바짝 붙더니 내손을 잡아버리는 김윤한.... 순간적으로 내 손에 나의 손이 아닌 다른사람의 손이 닿자 피해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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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까봐.. 그랬는데-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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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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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잠깐 닿은거긴 하지만.. 김윤한의 손은 무척 따뜻했다. 내 손은 얼음장 처럼 차가운데 김윤한 손은 난로에 데우기라도 한것처럼 따뜻했다. 마치 김윤한이 손난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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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많이 차갑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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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원래 손이 차가운 사람이 마음이 따뜻하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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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나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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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속으로 내가 한말을 잔뜩 후회하고 있는데, 김윤한이 다시 손을 잡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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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만 나쁜 사람 하면 안돼지- 나도 착한사람좀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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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얼굴 빨개진거 다보이는데- 피이.... 그래 뭐 까짓거 내가 손 잡아주지뭐-
김윤한의 손을 꽉 잡아버리자 김윤한이 고개를 든다. 아직도 얼굴 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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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뭐- 내가 너무 많이 착하잖냐...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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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따뜻하다- 얘는 뭐 하루종일 손만 데우고 있었나.. 왜이렇게 따뜻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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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손 되게 차갑다. 너 여름에도 손 이렇게 차갑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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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 원래 몸이 좀 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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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여름에도 따뜻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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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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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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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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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추울땐 내가 손잡아 줄테니까- 나 더울땐 니가 내 손 잡아줄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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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가 할수 있을까.......

\n


*

\n


\"너, 지금 마누라라도 없으면 밥도 안먹고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을 것같단 말이야-\"

\n

임은민의 얼굴은 의무감으로 빛나고 있는것 같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보고있는것 같달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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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오늘은 내가 니 마누라 해준다고- Okay?\"

\n

그러고는 히죽히죽 웃는 임은민, 해준다고 말은 귀찮은듯 말하는데 얼굴은 왜 좋은것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거냐, 너……

\n

\"싫..어?\"

\n

\"응?\"

\n

\"싫냐구, 너 평생 그러고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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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맘대로.., 너 되게 시간 많아보인다?\"

\n

\"나? 나 하는거 없어- 하는거라곤 쇼핑이랑 집에서 놀거나, 애들불러서 노는거밖에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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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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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지는- 너도 부를때마다 다 나오는걸 보면 시간 되게 많아보여\"

\n

\"난 오늘 오후부터 수업있고, 넌?\"

\n

\"뭔 고등학생이 오후부터 수업이냐- 난 학교 안다녀\"

\n

\"뭐?\"

\n

\"학교 때려치웠지이- 어짜피 아빠돈 쓰면 되는걸 공부는 뭐하러하나...\"

\n

\"임은민이 드디어 미쳤구나\"

\n

\"푸후... 무튼! 너 그럼 오늘 내가 니 마누라 하는거다?\"

\n

\"맘대로 하시라구요, 혼자 놀던지- 나 수업나간다\"

\n

\"어? 야- 밥도 다 안먹고? 야\"

\n

\"계산은 내가 하고 갈게. 넌 집에서 공부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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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도 돈있거든-\"

\n

\"으휴 이 바보야 원래 이런건 남자가 돈 내는거야. 잘있어라\"

\n

\"야, 그럼 오늘 마누라하려면 수업끝날때 까지 기다려야 겠네? 야 몇시에 끝나는데?\"

\n

\"모르셔도 됩니다- 야! 너 나 좋아하는거 아니면 좀 집에가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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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그럼 그냥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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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민 말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왔다. 난 기다리라고 한적 없다. 기다리지마라. 너 나 좋아하면 안된다. 난 정한별밖에 없다.

\n


*

\n


정한별은 대답이 없었다. 니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난 이걸 내 첫 고백이 될거라고 생각했기에 니가 내 대답에 응해준다면 난 정말 행복할것같았는데, 넌 그게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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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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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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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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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를 남기고 너는 사라졌다. 아니... 한마디도 아닌가... 그 두글자를 남기고 너는 빠른걸음으로 집을향해 걸어갔다. 난 알고있었다.
니가 박준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었다보다. 너한테.. 그리고 나한테도 중요하게 작용되고 있었나보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 이런 내가 널 계속 좋아할수있는지, 널 계속 좋아해도 되는건지, 널 좋아하면 안되겠지?, 내가 박준희한테 미안해져야 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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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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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집안에 들어오고 나서 너의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들은 눈 녹듯이 싹 사라졌다. 넌 지금 슬픈표정을 짓고있다. 지금 충분히 아파보인다. 그게 박준희 때문이란걸 난 알고있다. 내가 널 행복하게 해주고싶어졌다. 널 더 사랑해주고 싶어졌다. 박준희 때문에 지금까지 아팠겠지만, 앞으로도 수많은 날들이 아플거지만, 그 상처만큼 내가 널 사랑해주고 아껴주면서 널 행복하게 해주고싶어졌다. 니가 아픈걸 난 보기 싫기때문에, 너의 슬픈모습을 난 보기 싫기때문에, 난 널 사랑하고 있기때문에-
정한별은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내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정한별의 방을 노크없이 들어가버렸다.

\n

\"야- 뭐해...?\"

\n

\"............\"

\n

\"야아- 너... 울어?\"

\n

\"야.. 너 노크하고 들어오랬지...\"

\n

넌 울고있었다. 정한별이 울고있었다. 정한별의 눈에서 빠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너의 눈물을 지켜볼 수 밖에없었다. 난 너의 눈물을 아직 닦아줄 수 없었다.

\n

\"왜.. 또 우냐...\"

\n

\"안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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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울긴....\"

\n

\"안운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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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어 때리지마, 때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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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 넌 내가 맨날 때리는 앤 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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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표정을 무섭게 짓고 있는데- 맞을것 같은 공포감을 넌 안느끼냐?\"

\n

\"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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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웃었다. 히- 거봐 넌 웃는게 훨씬....\"

\n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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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웃으면 신체 변화 있다고\"

\n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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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물을 닦아 줄순 없지만, 널 웃게 만드는 사람은 되어줄게.

\n


\"야- 너 근데 내방엔 왜들어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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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왜 들어왔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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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말하지? 보고싶어서 들어왔다고 하면 맞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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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밥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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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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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밥 먹어야지 아하..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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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생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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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아하..하하... 건강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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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어 좀있다 나갈테니까 먼저 먹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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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빨리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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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와서 왠지 숨이차는 느낌에 가슴에 손을 얹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있다. 아.. 심장떨리는 느낌이 이런건가, 죽는줄 알았다. 어째서 예전보다 심장떨리는느낌이 심해지는거지...
문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껌뻑대고 있는데, 뒤에서 문이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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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밥먹으러 간다면서 안가고 여기서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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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가야지,..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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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떨림이 좀 멈추는듯 싶더니 다시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이 아닌 쿵쾅쿵쾅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혹시나 정한별한테 들릴까 노심초사하면서 정한별한테서 최대한 떨어져 걸었다. 넌 알고있을까? 널향한 나의 마음이 이렇게 설렌다는걸, 보고있어도 또 보고싶고 옆에서 이렇게 가슴떨려하고 있다는걸

\n


*

\n


밥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식탁에 앉았다. 반찬도 그닥 맛있을 것같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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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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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멍하게 반찬을 바라보고 있으니 김윤한이 수저를 건넸다. 그래서 수저를 들고있는 김윤한의 얼굴을 또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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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얼굴에 뭐.. 묻었어?\"

\n

\"어....., 어? 어 미안 밥 먹자,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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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를 들고 밥을 한숟갈 떠놓고 무슨 반찬을 먹을까 젓가락을 들고 반찬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밥을 떠놓았던 숟가락위로 계란말이 한조각이 얹어졌다.

\n

\"야 계란말이 맛있다. 먹어봐. 헤헤- 역시 아줌마가 만든게 제일 맛있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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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엄마를 쳐다보며 말하자 엄마가 다 끓은 찌개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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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근데 이게 밥을 통 안먹으니 뭐 밥할 맛이나나, 우리 윤한이 없었으면 밥도 이렇게 못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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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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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정한별, 이렇게 맛있는데 왜안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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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은 밥을 입에 한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또 헤헤 웃어댔다. 또 뭐가 저리 좋은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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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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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위에 얹어진 밥과 계란말이 한조각을 쳐다보다가 입으로 넣었다. 뭐 맛은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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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지,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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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계란말이 너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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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더 안먹어? 더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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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숟가락위에 계란말이 한조각이 얹어졌다. 이씨- 김치먹을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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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먹으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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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말이를 김윤한 밥그릇에 던지듯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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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주는거야?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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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너 많이 먹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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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말이를 김윤한한테 넘기고 나는 김치를 한조각 양념을 닦아내고 젓가락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곤 내 밥그릇으로 가져가려는데 김윤한이 내 젓가락옆으로 밥이 떠놓아져있는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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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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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니가 집어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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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 나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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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손이 없냐 젓가락이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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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론 숟가락 들고있고 어짜피 니가 김치 집은김에 나 주라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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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그래 너 다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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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엄마가 호호 웃으시며 말을 꺼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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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그러는거 보기 좋네- 원래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쌓이잖니..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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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랑 얘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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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솔직히 한별이보다 아줌마가 훨씬 이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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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러니..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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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쿵짝이 잘맞으시는군요... 둘이 잘 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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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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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더먹지 않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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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윤한이랑 많이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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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그걸로 삐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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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치긴 무슨! 난 다 먹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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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그냥 해 본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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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잘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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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먹었습니다.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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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올라가서 둘이 잘 놀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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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슨 어린앤가.. 놀게, 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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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텔레비젼에서 재밌는거하는데 보고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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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럴까, 심심하긴한데\"

\n


*

\n


\"뭐하냐?\"

\n

\"보면 모르냐, 티비보는거?\"

\n

\"왜 시비야- 그냥 물어본거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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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이게...씨.. 니가 자꾸 그러니까 더 짜증나는거 아니겠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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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라는 인간은 참 신기한 인간인것같다. 금방 나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떼고 다른 사람인 양 나랑 싸우려고 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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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n

그리고.. 이렇게 자꾸 쳐다보게 되는 건 정말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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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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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이상해, 너 진짜 나 좋아하는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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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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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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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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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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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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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꼭감았다가 뜨고 고개를 돌렸다. 김윤한 얼굴이 내얼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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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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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 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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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하면 나랑 사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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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어...?\"

\n

\"이럼 나랑 사귈래?\"

\n

\"무..슨 소ㄹ...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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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 빨간입술이 내 입술에 와서 부딪혔다. 부딪힌것 보다는 감싸줬다고 해야되나..? 아.. 따뜻해- 

\n

따뜻한 기운에 저절로 눈이 감겨졌다. 너는 손도 따뜻하더니 입술도 따뜻하구나... 맞아... 입술이.... 아주 따뜻.. 뭐...!?

\n

순간 정신이 번쩍들어 김윤한을 뒤로 밀쳐냈다.

\n

그리곤 쿵쾅대는 소리가 짧게 들린걸보니 김윤한이 바닥으로 떨어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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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야, 정한별!\"

\n

\"이씨... 너 뭐야!\"

\n

\"아.. 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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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 흐앙....... 너.. 이...씨이....\"

\n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자식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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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우냐..?\"

\n

김윤한은 쇼파 밑 바닥에 앉아서 허리를 문지르며 나를 올려다 봤다.

\n

\"아.. 몰라!! 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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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 다 해놓고 난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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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머어? 이...씨이.... 으앙......\"

\n

\"그럼, 우리 오늘이 1일이다. 잘자- 우리별이~\"

\n

뭐... 별이..?

\n

김윤한은 쿵쾅쿵쾅대며 2층계단을 올라가버렸다.

\n

\"야, 야!!! 너 죽어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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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이렇게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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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엄마-\"

\n

\"뭐야, 뭔데 이렇게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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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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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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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이걸 말하면... 나만 쪽팔려지는건가...? 으.....이씨... 아, 나 몰라- 김윤한... 너 두고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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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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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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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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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업끝났다. 오늘 수업하는 선생들은 죄다 지루하게 수업하는 선생들밖에 없냐- 지루해서 죽어버리는줄 알았다. 수업끝나고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무거운 눈꺼풀로
겨우겨우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벨소리가 들린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핸드폰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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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박준희 니 마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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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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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잘못왔나?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려 액정을 확인하는데-, 분명히 임은민이라고 적혀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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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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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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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했냐? 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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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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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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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긴!! 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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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왜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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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업끝날때 까지 기다린다구 했잖아! 야 나 안보이냐? 난 너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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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갈색옷을입고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이긴한다. 근데, 조그마하니까 바퀴벌레가 움직이는것같다. 나 바퀴벌레 싫은데...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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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어쩌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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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와~ 밥먹으러가자 계속 기다렸더니 배고파..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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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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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나 계속 기다렸는데 그러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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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다리라고 했냐? 난 분명히 기다리지 말라고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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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끄럽고! 밥먹으러나 가자구~ 빨리 텨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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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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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벌써 끊겼다... 젠장.. 얘는 왜 또 와서 난리야...

\n

 

\n

어느새 식당까지 와버렸다. 솔직히 끌려왔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안간다고 수천번은 말한듯 했으나- 끝까지 쫓아오는걸 어떻게 할수가 없었고. 또 마침 배꼽시계가 울리는 통에 밥먹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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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을래? 너 일본와서 한식 안먹어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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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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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식당 되게 유명한데- 우리 엄마가 해준것보다 여기가 더 맛있는거같아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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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어머님은 원래 요리 못하시지 않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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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거 기억하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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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집에서 밥을 먹어봤는데 그맛을 어떻게 잊냐... 혀가 마비되는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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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하긴 .. 우리엄마 요리 못하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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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못하는게 아니구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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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얘긴 그만하구- 뭐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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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민네 엄마 요리얘기를 생각하니 그 맛이 생각나서.... 지금 생각해도 토할것같다. 그생각만 하면 내가 불만을 말할게 많지.... 말하다 보니까 백분 토론이 되고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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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냥 뭐 아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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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우리 돼지불고기 먹자 배고픈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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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나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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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너 돼지고기 알레르기 있지?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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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그걸 어떻게 기억해?\"

\n

\"아, 너 몰랐어? 내가 너 좋아했다니까? 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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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알레르기있는거 우리엄마랑 한별이밖에 모르는줄 알았는데-

\n

\"그럼 소갈비 먹자-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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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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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를 정하고 나서 임은민이 직원을 부른다. 역시 일본에서 오래 묵힌 애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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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の、注文お願いします。\" (저기요. 주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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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い。何を注文しますか。\" (네. 뭘로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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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のガルビ2個下さい。\" (소갈비 2인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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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い、分かりました。ちょっと待ってください。\" (네에, 알겠습니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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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고프다..조금만 기다리라면서 왜이렇게 안나와......... 몇일동안 제대로 밥을 안먹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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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많이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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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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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 많이 배고파보여서...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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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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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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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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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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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임은민, 아무래도... 많이 이상해진듯 .... 심각해... 병원엘 데려가야되나?
한참을 기다리니까 밥이 나왔다.. 끼야..... 사랑해... 정한별 만큼은 아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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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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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그치~ 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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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켁켁.... 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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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자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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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꿀꺽..애 쩌다바...(왜쳐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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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냐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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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애일세..... 진짜...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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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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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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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누구지? 아직 깜깜하고 내가 눈감고 있는거보니까 밤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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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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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시..... 어... 새벽 두...시? 핸드폰 폴더 열어보니까 am 2:17 라고 써있는걸보니까, 새벽인가보다.
누가 자꾸 방문을 두드려대! 아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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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한별......... 자.....냐...?\"

\n

\"아...함- 이 새벽에,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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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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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누군데에- 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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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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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머야!...
졸려 죽겠는 얼굴로 겨우 눈뜨고 방문을 열었다. 새벽이라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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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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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니까 김윤한이 바닥에 무릎꿇고 앉아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어떡하지?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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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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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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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배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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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ㄹ라.... 죽을...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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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엄마한테 말해야될것같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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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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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마...\"

\n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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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말라...고... 그냥... 내옆..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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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픈데- 진짜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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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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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방.. 어디더라.. 아... 급하니까 위치까지 헷갈린다. 어.. 여기
방문을 급히 열고서 불을 켰다. 엄마아빠가 자고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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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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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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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있잖아 윤한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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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윤한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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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이가... 아프대... 진짜 많이 아픈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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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윤한이가?.. 여보! 여보... 일어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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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침이야? 두시 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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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이가 아프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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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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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아빠가 김윤한을 들쳐 매고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김윤한이 정말 너무 아파보여서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지고 있다. 제발- 괜찮아지게 해주세요-
병원에 도착해서 땀으로 온몸이 다 흠뻑 젖어버린 김윤한을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김윤한을 계속 보면 울것만 같아서 밖으로 나와버렸다. 왜 울것 같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한참을 밖에서 앉아서 심각한게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김윤한이 아프면 내가 정말 아파질것같은느낌이 들어서...
엄마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아빠가 나오셨다. 엄마가 나오자 마자 엄마한테 붙어서 의사가 뭐라고 하냐고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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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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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을 듣고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신들께 정말 감사드렸다. 내 기도 안들어주면 평생동안 다신 기도 안하려고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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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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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맹장이란다. 맹장이 터지기 직전이라는데 . 바로 수술해야겠댄다. 네다섯시간정도는 계속 아팠을텐데, 병신같이 참고만 있었나보다, 꼴에 남자라구... 싱글벙글하면서 밥먹을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 인터넷에 보니까 많이먹는거랑 맹장이랑 관련이 뭐 없진 않은가본데, 아까 많이 먹긴했다.
맹장수술은 한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벌써 오십분째 핸드폰 게임만 하고있다. 걱정이 되서 잠이 안온다. 핸드폰게임도 집중 안 된다. 아까 자기전에 충전을 안해놓고자서 배터리가 한칸밖에 안남았다.아니 방금 한칸마져 사라져버렸으니까 이제 핸드폰이 뾰로롱-하고 꺼져버릴일만 남았다. 배터리가 다되서 게임을 실행할수없댄다. 어짜피 뭐 그많은 시간동안 단한판도 못이겼으니까, 이제 할맛도안난다.
멍하니 턱을 괴고 무릎을 까딱까딱 거리며 앞쪽 벽을 바라보고있는데 수술중 불이 꺼지더니 누워있는 김윤한이 나온다. 앞에서 졸고있던 엄마도 나처럼 멍하게 있던 아빠도 그리고 나도 김윤한이 나오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사선생님께 다가섰다.
엄마가 젤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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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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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위치도 나쁘지않고 다행히 터지기 전이라서 잘 됐습니다. 근데 환자가 마취 하기전에 계속 한별이라는 사람을 부르던데요.. 허허- 여자친구라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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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한별- ..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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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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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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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꿈이구나. 놀랐다. 정말 많이 놀랐다. 하얗고 아무도 없는 그런 공간에서.. 정한별, 니가 나타났다. 꿈에서라도 널 볼수있어서 정말 기분이좋았다.  근데, 그 하얀공간에서 하얀 옷을 입은 니가 김윤한과 다정히 손을 잡고는 멀리.. 저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니가 날두고 사라져버렸다.  그것도.... 김윤한이랑....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사실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꿈이란걸 알면서도 너무나 두렵다. 달달하고 추억을 되돌아 볼수있게 만드는 너의 모습이 나의 꿈속에 나타나 주길 바랬는데 너무 두렵다. 등과 얼굴엔 식은땀들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메말랐던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가 사랑했었던 기억들도 그 공간에서 주르륵 흘러내려내버리고 있는것같다.
지이이잉-, 하고 탁상위에서 핸드폰이 울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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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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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자고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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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할 힘이 없어서 누군지 확인을 못하고 그냥 받았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알것같다. 하긴 나한테 전화 걸 사람이 또 누가 있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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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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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긴-, 쉬는날인데 놀자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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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날이면 좀 쉬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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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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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뭐 사실대로 말하면 배터리를 빼버린거지만. 분리된 핸드폰과 배터리를 책상위로 던져버렸다. 타악-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썼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좀 찝찝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않았다. 혼자있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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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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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 정말- 이런내가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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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이 너무 보고싶다. 진짜 미치겠을만큼... 지금당장 뛰어가서 니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만, 꽉 안아주고 만져보고싶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게 안된다는게 정말 싫어졌다. 밉다. 정말.. 날 여기로 보낸 아버지도 밉고 , 널 좋아하게 만든 정한별 너도 밉고... 이런 나도 정말...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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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삼십분 가량 침대에 누워서 별생각을 다했다. 내가 왜 여기있나, 내가 여기서 해야되는건 무엇인가. 정한별은 어떻게 되는건가..... 그러다가 문득 샤워를 하면 좀 나아질것 같아서 욕실로 들어왔다.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몸을 바디워시으로 뒤덮기도 하고 해봤지만 그닥 나아진것 없는듯하다. 샤워를 대충마치고 샤워가운을 입고 밖으로 나와서 냉장고 문을 열고 주스한잔을 따랐다. 쪼로록- 하고 마지막잔이 따라지고 주스 병이 다 비워졌다. 언제 다 마셨지..? 이따가 사러가야겠다. 아 귀찮은데- 하고 머리를 털털 털면서 주스를 반정도 마셨는데 띵동띵동-하고 초인종이 울린다. 멍한 얼굴로 샤워가운만 입은것도 까먹고 문을 열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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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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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한별... 니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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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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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졸려.... 어제 집에 5시넘게 와서 6시 다되서 잠들어서 한시간밖에 못잤다. 눈꺼풀이 백만톤인 상태로 손엔 펜을 쥐고 필기를 하는건지 예술작품을 그리는지 내가 수업을 하는지 알수없는 상태로 그것도! 지루한 국사수업을 들으면서(솔직히 말하면 들은건 아무것도 없지만) 책상앞에 앉아있는것..같다-
김윤한 자리가 비어있으니까 뭔가 허전하다. 항상 옆에서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없으니까 허전하다. 뭔가 빈것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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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 문제, 13번 답 불러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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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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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누구냐? 1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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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해 뭔가......, 아졸려-
근데..십삼... 십삼.. 왠지 익숙한 이숫자는 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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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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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정한별- 다음문제 답 불러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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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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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 모르면 밖으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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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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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정신이 있었더라도 알것같은 문제는 아닌듯 싶었다.
들었던 펜을 다시 뚜껑을 똑딱- 덮고 내려놓고, 터벅터벅밖으로 걸어나왔다. 드르륵- 하고 문을 여니 찬바람이 슈욱-밀려온다. 가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 겨울이 되고 있었나.. 으으..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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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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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저 국사 색히... 학생이 말이야! 어! 모르면 가르쳐 줘야될거 아냐! 이 추운날에 자켓도 안입은 애를 밖으로 내몰아? 이런..... 씨이...
아 진짜, 춥다아- 속으로 국사선생을 실컷 욕하다가 점점 더 추워지니까 따뜻한게 생각난다. 우리집, 따뜻한데에- 코코아 한잔도 따뜻하고.. 붕어빵두... 떡볶이도.... 그리고 맞다! 오뎅국물도 따뜻한데에... 어 그리구 또 김윤한 손도 따뜻하고.....,
혼자만의 정적이 흐르고 교실안 국사선생의 지루한 목소리만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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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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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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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 보내고- 누구처럼 병원가지말고 건강하게 월요일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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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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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렷, 선생님께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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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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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등에 들쳐매고 가만히 자리에 서서, 김윤한 자리를 바라본다. 청소당번들 빼고 아이들이 물빠지듯이 교실안을 빠져나간다. 항상 이렇게 끝나면 김윤한이 내자리로 와서 집에 같이 갔는데...
그때..귀찮기는 했지만 또, 그 발길이 없으니까 허전하다-
발걸음을 한발짝씩 천천히 떼서 교실밖으로 나간다. 심심해- 허전해- 아- 김윤한 병문안이나 갈까.... 아냐 내가 거길왜가 호호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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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결국 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벌써 병원앞이다. 난 오려고 하지 않았다. 내 발이 자동으로..... 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가 온거 맞나보다.   푸후... 그리고 또 어느새 붕어빵은 산건지 내 오른손에는 붕어빵이 들려있다.
입원병동에 들어서서 엘레베이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까 왔었는데 기억이 안나네..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려다가 엘레베이터를 발견해서 , 찾아 들어가서 또 한 10초간 멍하게있었다.
몇혼지... 기억이 안나... 전화를 걸려다가 엘레베이터안에서는 전화가 안 된단 사실을 기억해내고 밖으로 나왔다.
전화해서 물어보긴 왠지.. 좀 그렇거같으니까 문자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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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자..? 너 몇호 입원이더라..? 자면.. 미안- 답장안오면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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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표시 붙여주는 센스!... 이러고있다.. 전송완료- 답장올때 까지 뭐하나- 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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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자 ^^ 왔네?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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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은 또 뭐야... 호 붙이기가 그렇게 귀찮냐 비밀번호도 아니고....
엘레베이터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4층- 그러니까 F를 꾹 눌렀다. F주위로 빨간불이 네모나게 둘러진다. 문이닫히고 붕뜨는 느낌이 들면서 4층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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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어보자.. 411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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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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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 나와있어? 안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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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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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아픈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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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안아프니까 걱정마, 날 아픈애로 몰진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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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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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없으니까 허전하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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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 맞다 너 배안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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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뒤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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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먹을래? 추워서 붕어빵 좀 사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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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 근데 못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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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 먹지.. 이거 따뜻할때 안먹으며ㄴ.... 푸... 흐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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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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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냐- 나혼자 먹을게 다... 프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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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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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미친사람처럼 웃어대니까 김윤한이 볼을 꼬집는다. 볼 꼬집은게 아프진 않은데..., 맹장...이 너무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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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아이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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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방귀땜에 이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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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흐하하하.... 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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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마 원숭이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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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걸 어떡해...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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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활력소. 그래, 너 없어서 많이 허전했어. 너 땜에 웃는다.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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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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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그냥 전화 끊기냐? 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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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정한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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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고 있던거... 어, 씻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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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정한별이 아니지..... 정한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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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그렇게 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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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인데... 내가 듣고싶던... 그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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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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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목소리가....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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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눈을 꾹꾹 누르며 비볐다. 방금 감고나온 머리에선 차갑고 서늘하기 까지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발등위로 떨어져 내렸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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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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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상하게 본 그사람이 나에게 손을 가져오자 나를 건들지 못하게 그사람의 손을 쳐냈다. 공기중으로 타악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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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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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였던 고개를 듬과 동시에 눈이 떠졌다. 지금 내앞에 있는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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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왜...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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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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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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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니가 아니구나... 내가 미친거구나..... 내앞에 있는 게... 니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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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그래..? 응? 그러지 말구... 하핫... 씻었으면 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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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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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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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내앞에서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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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저기 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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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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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왜에.. 내가.. 놀러갈데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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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민이 말을 다 하기전에 쾅하는소리가 온집안에 다 퍼지도록 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나도 아직 움직이지 않았고 밖에서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보니 임은민도 아직 가지 않고있나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서 느릿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사라져가고 나도 자리에서 움직여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자 아직까지 마르지 않은 머리에선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내려 침대를 축축히 적셨다. 그리고 말라있던 샤워가운 위로도 그 차가운 비가 똑똑.. 하고 내렸다. 침대에 앉아 샤워가운 어깨가.. 그리고 침대가 축축히 다 젖을 때까지 멍하게 앉아있다가, 핸드폰에서 문자알림음이 울리자 정신을 차리곤 핸드폰을 확인했다.
원래부터 임은민 밖에 연락올사람이 없었지만, 그래서 임은민이란걸 어느정도 눈치채고있었지만, 아니길 바랬다. 지금은 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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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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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민의 그 문자가 내 머리속을 계속 맴맴돌았다. 답장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되나...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기로 하곤 몇자 틱틱대며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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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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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이렇게 적어놓고는 전송버튼을 누른다. 몇초뒤 \'전송완료\'라는 문구가 확인되고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린다.
사실..... 초인종소리가 들릴때부터 문앞에 서있는게 정한별이길 바랬고, 정한별의 환상이보일때 너무 기뻤고, 정한별이 아니란걸 알았을때도 아닐거라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게 정한별일거라고... 정한별이어야만 한다고... 그렇게생각했는데.. 정한별이 아니란걸 알게 되고 정말 싫었다. 니가 정말로 보고싶은데.....
다시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린다. \'알러뷰~\' 하는 그 알림소리가 머리를 뱅뱅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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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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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갈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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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선 김윤한의 질질끄는 목소리와 말그대로 신발을 \'질질\'끌고 있는 소리가 맴돌았다. 병실에서 김윤한이랑 별별 얘기를 다하면서 웃고 울고.. 우는건 아닌가? 여하튼.. 같이 수다떨고 놀고 하다보니깐 벌써 몇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김윤한이 원래 재밌는 얘기는 자주 해줬지만, 둘이서 얘기하고 하다보니까 재밌어서 조금더 있고 싶지만, 조금더.. 조금더.. 하다보면 왠지 시간 되게 많이 지나버릴것만 같아서 시간도 꽤 늦었고하니 이쯤에서 가야겠다고 생각되서 침대에 딱 달라붙어있던 엉덩이를 떼어내 몸을 일으켜서 짐들을 하나둘 챙기고 김윤한한테 간다고 하니까, 그 조그마한 병원복 주머니에 큰 손을 집어넣고 신발 질질 끌면서 따라오고 있는 김윤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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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시 다 돼 간다. 착한 어린이는 빨리가서 씻고 자야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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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김윤한은 계속 신발을 질질끌면서 내뒤를 졸졸 쫓아온다. 김윤한의 슬리퍼 특유의 \'치익치익\'하는 소리가 계속 내뒤를 따라오자 고개를 돌려 시끄럽다고 그러는데도 계속 질질끌면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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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진짜.. 이씨.. 시끄럽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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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다고 하는 내소리는 귓뜸으로도 안듣는 건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헤죽 거리면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서 날 쳐다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도 않고서 나는 김윤한을 계속 째려보고 김윤한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내쪽을 쳐다보는 일종의 신경전(?)같은게 펼쳐졌다. 한참을 서로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난 째려본거지만) 김윤한이 내쪽으로 여전히 신발을 질질끌면서 치익거리며 다가오자 김윤한 보다 한참 작은 나는 점점 김윤한을 올려다보게되었다. 올려다보다가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내 눈높이로 내리자 김윤한이 내 눈높이에 맞춰서 고개를 내린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굴려 내얼굴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리저리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추고 김윤한이 내 볼을 빤히 쳐다본다. 난 뭔가... 싶은 표정으로 계속 김윤한을 쳐다보고 있었는데(참, 진짜... 째려본거라니까...) 김윤한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 따끈한 입술이 내 볼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다. 떨어지는동시에 쪽-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들리고, 내가 김윤한을 쳐다보던 눈빛이(아 진짜!!! 째려봤다고 이....) 점점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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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면 좋을텐데.. 가야된다니까 뭐...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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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인사 안 해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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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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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도 할수가 없는 상태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빨간 불이 켜졌고, 내 얼굴에는 발그레하게 빨간 빛이 떠올랐다. 뒤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아직 김윤한이 가지 않았다는걸 알수있었다. 김윤한과 나 둘 다 아무말없이 엘리베이터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바람이 쌩하고 부는 것같았다. 잠시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했고,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김윤한을 안 쳐다보고 1층버튼을 누르려고 버튼들이 있는 곳으로 손을 옮기려는데 김윤한이 날 부른다.

\n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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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고 김윤한이 1층버튼을 꾹 누르자 빨갛게 버튼을 눌렀다는 표시가 또 나타났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 몇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마치 몇시간이.. 아니.. 몇년이 지나간듯이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고, 우리는 또 말없이 엘리베이터가 다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들릴까 두려운 이공간안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들어서 흠칫 놀라버렸다. 다행히 김윤한은 보지 못한듯 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열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 김윤한 차례로 천천히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뭔가 해방된 느낌에 발걸음을 빨리 옮기며 숨을 후아후아 내뱉어 댔고, 뒤에서 같이 나를 쫓아서 김윤한이 신발이 치익대는 소리를 내지 않고 빠르게 걸어오고있었다. 병원문을 열고 나가려고 문 손잡이에 손을 대고 힘을 주려는데 뒤에서 큰손이 내손목을 덥썩하고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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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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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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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기다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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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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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은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그 큰손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쑤욱하고 집어넣었다가 까만색 무언가와함께 손을 다시 쑤욱하고 빼냈다. 그걸 열어서 그안에.. 파란색종이 들이 가득 들어있는걸보니 지갑인것같다. 어이구.. 돈도 많아라 근데 그렇게 돈이 많은데 왜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거냐.... 대체 왜.. 자꾸 이렇게 신경쓰이게 하는건지.. 너란 인간 참이해할수없다.... 한참 나만의 생각에 빠져서 멍하게 김윤한을 쳐다보고있는데 김윤한이 나한테 파란색 종이들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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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려면 삼만원이면 되나? 택시타고 가라. 조심해서 들어가. 데려다 주고싶은데. 이러고 있는 몸뚱이가 참 너한테 미안.. 자,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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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펄럭이며 내민 파란색 종이 세장은 반으로 접혀져 내손에 꾸욱 쥐어졌고, 김윤한이 큰손을 좌우로 흔들흔들대며 잘가라고 연신 말을 해댔고 병원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이제 추워진다는 듯이 차가운 바람을 뿜어대는 날씨를 보며 뒤를 돌아보았다. 밖으로 나와서 벌써 한참을 가고있는데도, 병원안에선 김윤한이 손을 흔들대고있었다. 멀리멀리 까지 갔는데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신경쓰게 된다.
저기 뒤에서 아직까지도 손을 흔들거리고 있는니가... 자꾸만 신경쓰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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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그럼.. 오늘 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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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또 임은민이다. 얘는 눈치가 없는거냐.. 바본거냐... 순진한거냐.. 대체 뭐냐... 방금 그렇게 심하게 뭐라그랬는데도 또 놀고싶어지냐... 임은민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오늘 그냥 혼자 있고싶어졌다. 잠깐만 임은민에 대한 생각은 접고, 정한별로 좀 채우고싶어졌다.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렸다가 올렸다. 슬라이드를 내렸다가 올리니 발랄한 소리가 핸드폰에서 나와 방을 꽉매웠다. 그리곤 기억속에서 한참 찾다가 못찾고는 전화번호부속에서 김윤한 번호를 찾아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댔더니, 기분좋은 컬러링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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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사랑하나봐- 사랑에 빠졌어- 이 기분좋은 느낌이 변함없길 바래- 널 사랑하나봐- 자꾸보고싶어- 매일 모닝커피를 너와 들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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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가 좋아했던 헤이의 주뗌므가 흘러나오고있다. 한별이 mp3엔 항상 이곡이 담겨있어서 항상 이어폰을 나눠끼워 같이 이노래를 듣곤했었는데... 서로를 바라보면서 바보같이 웃던 그때가 그립다. 한별이는 웃을때 눈꼬리가 휘어지는게 너무 이뻤는데... 노래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이며 옛생각에 잠시 잠겼다. 컬러링이 어느정도 끝나갈때쯤 김윤한이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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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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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생각에 깊이 들어가버린 난 김윤한이 전화받은 사실을 인식하지못했고, 둘사이에는 침묵이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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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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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말소리가 들리자 겨우 정신이 든 나는 전화통화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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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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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화..했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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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왜했냐니... 그게 오랜만에 전화하는 친구한테 할소리냐... 말은 이렇게 해주고싶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정작 전화했던 본이유를 해결하지 못할것만같아서 차근히 말한마디를 이어나갔다.

\n

\"어.. 그니까..\"

\n

\"정한별...때문이지..?\"

\n

정한별.... 그래... 정한별때문에 전화한거 알고있구나... 내가 좀 여려서 정한별한테 직접전화해서 상처주는 건 아직 할 수가 없다.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고... 정한별 목소리만이라도 너무 듣고싶은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내가 자꾸만 정한별한테 상처만줘서... 정한별이 나를 좋아하지 않게될까봐.. 난 그게 두려운 겁쟁이라서.... 널 볼수가 없다. 미안해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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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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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거말고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있냐..?\"

\n

\"하긴...하핫...\"

\n

웃고는 있지만 속은 너무 쓰린 슬픈 웃음.... 넌 모를거다. 가까이에서 정한별을 볼수있는 넌 정말 몰라... 할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보고싶은데.... 이렇게 몰래 친구한테 전화해서 소식밖에 들을수 없는난 정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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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

\n

\"한별이 잘지낸다. 걱정마라. 다 잘되고 있고 이제 니 얘기도 거의 안하는걸 보니까 많이 괜찮아진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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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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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니가 날 못잊고 아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니가 날 다 잊고 행복하게 지낸다면... 그건 나한테 정말 아프니까.... 그러고보니까 나 진짜 못됐다. 어떻게 진짜 내생각 밖에 안하냐... 니가 행복하게 지내면 나도 좋아해야하는건데... 니가 행복해하면 내가 너무 아프다... 니얼굴이 자꾸만 보고싶어진다. 너의 세상에서 가장 이쁜 눈도... 귀여운 코도... 앵두보다 더 이쁘고 촉촉한 그 입술도... 모든게 그립다. 니가 자꾸만 내 심장에 가시를 박아놓는다. 니가 박아놓은 이 가시는 오직 너만이 빼줄수 있는데.. 니가... 정한별... 여긴... 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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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물어볼거 있냐...?\"

\n

\".... 좋아보이지..?\"

\n

\"어?\"

\n

\"...한별이... 행복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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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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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복해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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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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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웃지..?\"

\n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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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됐다. 잘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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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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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눈물한방울이 따뜻한 볼위를 스쳐흘러지나가 따뜻했던 볼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래.. 니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니... 그걸로 난됐다. 아프지만... 난됐다. 근데 자꾸만 니목소리가 듣고싶어진다. 딱한번만... 전화해도 되려나... 니목소리 딱한번만 들어도 되려나...?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 벌써 내 손은 전화기를 들어 정한별 번호를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눌렀다.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혹시나 니가 알까.. 집 전화기를 들어 소중한 너에게로 가는 버튼을 하나하나 누른다. 차갑고 단조로운 따르릉 소리에 내 따뜻한 두근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섞여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너에게 전화한번 하는것만으로도 조마조마 하고 두근두근 댈거면 오기전에 너한테 정말 잘해주고 올걸 그랬다. 그랬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거아냐....

\n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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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대며 너의 목소리를 기다리는데, 니가 전화를 받는다. 차가운 따르릉소리완 대조를 이루는 너의 따뜻한 목소리는 내 심장으로 들어와 심장이 더 두근두근 거리게 만든다. 얼마나 두근두근했으면 내 심장소리가 이 전화를 타고 너의 귓가로 들어갈까 두려울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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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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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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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전화를 하셨으면 누구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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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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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니...? 너... 박준희지... 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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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에서 눈물이 뚝뚝하고 떨어져 내리고 정한별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어쩔줄 모르고 울고만 있다가 전화를 끊어버리곤 침대로 뛰어 넘어들어갔다.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버리는데 베게가 축축히 젖어간다. 서서히 베게안을 번지는 나의 눈물은 이미 돌이킬수없는 너를 향한 나의 마음같다. 눈물이 서서히 퍼졌다가 지우려고 말렸지만 결국은 흔적이 남아버리는 베게처럼 내 심장속에 들어와있는 너도 그렇다. 이제는 지워지지않을 너의 흔적을 지워보려고 노력하지만 지워지지않는다. 니가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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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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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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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이 병원문을 지나 저기 멀리 점이 되어 보이지않을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이렇게 하지않으면 자꾸만 정말 니가 점이 되어 저멀리 날아가 버릴것만 같아서 그래서 다시는 못볼것만 같아서 너에게 내가 좀 더 각인되고싶어서 손을 힘차게 흔들어댄다. 결국 저멀리 점이 되어 사라진 너는 헤어진지 얼마 되지않았는데, 안 본지 얼마 되지않았는데 자꾸만 보고싶어진다. 니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사랑한단 나만의 속삭임을 들리지 않을 너에게 전한다.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처음봤을때부터 좋아했다고.... 멀리 사라버린너에게 머리속에 혼자 적어둔 글들을 적어 보내려는데 지갑을 넣어둔 반대편 주머니에서 지잉-하는 진동소리와 벨소리가 같이 울린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찾아 뒤적거리다가 까만핸드폰을 찾아 액정을 확인한다. 정한별일줄 알았는데 정한별이 아닌 오랜만에 보는 박준희이름이 둥둥떠다닌다. 핸드폰을 들고 한참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볼에 공기를 가득넣었다가 한숨을 뱉어내며 이게 받아도 되는 전화인가 확인했다. 먼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 슬라이드를 올려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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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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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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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전화해놓고는 아무말이 없다. 기껏생각해줘서 받았더니...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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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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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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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화..했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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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니가 정한별때문에 전화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있었다. 아니, 전화 오기 전부터 언젠가는 박준희 너한테 이런전화가 한번쯤은 올거라고 생각 했었다. 근데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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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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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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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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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니가 나한테 전화해 정한별에대해 물어볼 줄 이야.... 정말 만약에... 만약에... 전화할거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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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거말고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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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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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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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 잘지낸다. 걱정마라. 다 잘되고 있고 이제 니 얘기도 거의 안하는걸 보니까 많이 괜찮아진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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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모를거다. 다 잘되고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니얘기를 안한다는게 나에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내가 정한별네 집에서 살고있고, 정한별이 나와 이렇게 가까운사이가 됐다는것도 넌 모를거다. 정한별이 내 병문안와서 내걱정도 해줬다는 걸 넌 모를거다. 내 인생에서 벌써 정한별이 이만큼이나 소중한 존재가 되버렸다는걸, 이제 없으면 안되게 되버렸다는걸... 처음엔 좋아했지만.... 이젠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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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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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물어볼거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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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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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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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 행복해 보이지...?\"

\n

아니... 행복하지 않아보여.... 너에대해서 말은 하지않지만... 이제 알 수 있게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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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복해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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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정한별은 온통 니생각에 가득차있다는걸... 나와 같이 얘기하고 놀고있는 듯 하지만 속은 너로 꽉 차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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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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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 항상 웃고는있어... 근데 한별이 눈을 보면... 너무 슬픈 웃음인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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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됐다. 잘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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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직 안말해줬잖아.... 미안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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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해.... 정한별한텐 너밖에 없나보다... 너올때까진 내가 그래도 한별이 행복하게 해줄게...... 이미 끊어진지 오래된 통화에서는 뚜뚜뚜-- 하는 차가운 소리만 들려오고 이미 끊겨진 전화에 대고 혼자 용서를 구한다. 넌 어떻게 했길래... 정한별이 너한테서 못 벗어나게 만든거냐... 그거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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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흔들며 안녕하던 김윤한도 이젠 안보인지 오래고 가까운 거리인데도 택시타고 가라는 김윤한의 성의를 무시할수가 없었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가는중이다. 창밖을 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비가 똑똑 떨어지며 차창에 노크를 한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비내리는 동네의 모습이 너무 슬퍼보인다. 코끝이 찡해져오면서 박준희가 보고싶다. 보는것 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박준희 목소리 한번만 듣고싶다. 정말 한번만 니 목소릴들으면 더이상 난 바랄것도 없을것만 같은데... 눈물이 날것만 같은데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다. 입술에 피가 빨갛게 번져가고 따끔따끔한 기운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짙은 한숨을 후아- 하고 내뱉자, 택시기사 아저씨가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으신다. 아니에요- 하고 대답하는 내모습이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괜찮지 않아보였다. 눈시울이 빨갛고 입술엔 피가 번져있고 한숨을 푹푹쉬는애가 어떻게 괜찮아 보일수가 있냐고... 소나기 였는지 어느새 똑똑 떨어지던 비가 뚝그치고 그새 집앞에 도착을 했다. 김윤한이 준 파란돈으로 택시비를 내고 차밖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뚝 그친 비처럼 내마음의 비도 그쳤으면 좋으련만... 박준희를 보고싶은 이맘도 이만 그쳤으면 좋겠건만.. 내맘은 내말을 듣지 않는다. 속이 너무 답답해 질퍽질퍽한 바닥을 저벅저벅소리가 나게 밟으며 현관문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가 후우아-하고 뱉어냈다. 질퍽질퍽한 땅바닥이 꼭 내마음인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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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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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애나멜 점퍼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새하얀 핸드폰이 지이잉-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주머니엔 핸드폰 외에 아무것도 없는데 괜시리 뒤적이다 핸드폰을 손에 꼬옥 쥐었다. 손에 잡힌 핸드폰은 진동을 그칠줄을 모르고 지이잉- 거린다. 핸드폰의 작은 액정위로 흐르는 글자는 몇개의 숫자일뿐 누구인지 알려주지않았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인걸보니 모르는 사람인것 같아 받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혹시나 박준희일지도 모른다는 바보같은 생각에 폴더를 열어 상대방의 소리를 귓가에 담으려 했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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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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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물어보았지만 누구인지 대답을 하지않았고 옅은 숨소리만 귀에 담아져오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않는다. 자꾸만 대답안하면 내맘대로 박준희라고 단정 지을것만 같아 제발 빨리 대답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무런 대답을 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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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전화를 하셨으면 누구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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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줘요... 자꾸그러면 나는... 정말로 당신이 박준희인줄로만 안단말이에요...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대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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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니...? 너... 박준희지... 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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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사람이 박준희라고 내맘대로 단정 지어버렸다. 그사람은 마지막 물음이 끝나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보세요를 연신 외쳐보았지만 뚜뚜뚜.. 하는 통화끊겼다는 소리만 흘러나와 귓가를 간지럽힐뿐이었다. 너진짜.... 박준희야...? 빨갛게 물들었던 눈가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차 매달린채로 버티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뚝... 떨어져 내려 버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오늘 따라 너무 차가운 것만 같아 너무 아프다. 새하얀 핸드폰 그 위로... 아직 니 숨소리가 남아있는 것만 같은 그 핸드폰 위로 내 차갑고도 아픈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져내려 번져간다. 준아... 박준희... 나 너무 아픈데... 넌 알고있는거야..? 너를...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너를...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는게 내가 너무 바보같고 그렇다... 나혼자만 너무 아픈거같아서 막 억울해 질려고해....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던 눈물은 어느새 내리는 비마냥 주륵주륵 내려와 볼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혼자서 끅끅거리며 울고있었던 나는 위로해줄 사람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n

\"야, 정한별. 너여기서 뭐해...?\"

\n

\"흐읍.. 으..... 흐으...으아앙....\"

\n

\"야 왕눈이 너 여기서 왜 혼자 질질짜고있어-? 너 팅팅 불었잖아 에이- 다 불은 만두같이.. 못먹겠다 너\"

\n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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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보는데 이래야 겠냐...? 뚝 그쳐- 어? 밖에 뭔소리가 나나했더니 너가 질질짜고 있었구나.\"

\n

\"한경이오빠- 우으...흐읍...\"

\n

가로등에 노란머리에 하얀 피부가 유난히 빛나는 오빠가... 내몸을 일으켰다. 한경이오빠.. 오랫만에 보는데 히이... 쪽팔리게 시리.... 뭐야 맨날 질질짤 때만 오빠오고... 오빠한테 부축을 받으면서 눈가를 스윽닦아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쿵쾅쿵쾅대며 현관 앞으로 나왔다.

\n

\"어머, 한별이 왜이래?\"

\n

\"엄마아-\"

\n

\"몰라요. 또 질질짜고있네. 꼭 나오면 질질짜나몰라- 너 내가 싫냐?\"

\n

엄마한테 안겨서 훌쩍훌쩍대는 나를보면서 한경이오빠가 또 옆에서 말을 걸어댄다. 눈물을 자꾸만 부비대며 닦아대느라 다 불어터진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심했다. 한경이오빠를 소개하자면.. 뭐...어렸을때부터 친했던 사촌오빠다. 이름은 뭐 알다싶이 정한경이고... 지난번에 올때는 갈색머리였는데, 어느새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여버렸다. 니가 노홍철도 아니고... 게다가 1년마다 놀러오는 오빠가 작년에도 하얀 얼굴이었는데 올해에는 이제 하얗다 못해 허옇기 까지할정도로 하얘졌다. 이 인간 밖엔 안나가고 집에서 미백크림만 바르고 있는건가... 백인보다 더 하얘... 새앳-노란 머리에 새애-하얀 얼굴을 하고 장난을 걸어오는 오빠를 보니 무섭기까지할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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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운거냐?\"

\n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사는 한경이오빠는 그 무섭다는 AB형에 속해있다. AB형은 천재아니면 바보라던데... 한경이오빠는 천재인듯싶다. 약간 유치한면이 있지만 머리가 정말정말로 좋고, 그래서 그런지 중학교때 일본에 처음갔는데 일본어가 아주... 장난이 아니다. 영어도 너무 잘해... 가끔 짜증나면 혼자 일본어로 씨부려대는 경향이있다.  또 바이올린이며 피아노며 등등 다룰줄 아는 악기가 엄청많고 노래도 잘하고 외동아들이라 귀하게 자란데다가 생긴건 동방신기에 영웅.. 뭐? 아 맞다 영웅재중 많이 닮았구 키도크다. 문제는 자기가 잘생긴걸 너무나 잘 알고있다는거... 캐스팅 제의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옛날에 고등학생때는 일본에서 모델도 했었다. 생긴것과 같이 험한일도 못하고 삐쩍 마른데다가 힘은 없는데 싸움은 또 디게잘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1년에 한번씩 우리집에 놀러오는 오빠는 내 고민상담용이다. 1년에 한번씩와서 그동안 쌓였던 고민들 다 털어버리는데에는 아주 좋은... 집안이 한자돌림이라 나도 한별이고 오빠도 한경.. 우리아빠는 한자 준자 쓰시고 오빠네 아빠.. 그러니까 큰아버지는 한자 철자 쓰신다. 한경이오빠는 AB형이라 상당히- 특이하고 머리도 좋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기도 하고 까칠한면과 그 반대로 상당히 유치한면도 가지고있는... 무튼 그런오빠다. 작년에는 내 옆방, 그러니까 지금 김윤한이 쓰고있는 방을 썼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나..? 김윤한 내일 퇴원이라던데-?... 거울을 보면서 팅팅부은 얼굴을 비비적대면서 히잉-대고있는데 배에서 꼬루루룩~ 하는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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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그렇게 비비면 더 불어터진다. 만두는 불면 맛없어요- 밥이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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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잉... 나 많이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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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풋... 나 지금 많이 참고있는거에요. 정한별씨. 座ってね\"

\n

\"엄마 나 밥 너무 많다. 좀만 덜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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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소리가 나며 식탁의자를 뒤로 빼내고 그곳에 앉는다. 마주보는쪽에 앉은 한경이오빠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있었다. 어깨의 떨림이 심하게 전해온다.

\n

\"이씨...왜웃냐...\"

\n

\"끅...끅.. 그럼 안웃게 생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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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말라니까!! 이씨- 나안먹어 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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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왕눈이 만두! 밥은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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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배에서 꼬로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식도를 타고 꼬르륵소리가 넘어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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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된장찌개 맛있다. 오- 김치도있어!!\"

\n

\"그거 되게 맵게 한건데.. 둘다-\"

\n

된장찌개에 청양고추 넣었다고 말안했구나.. 엄마.... 한경이오빠 일본음식만 먹어서 그거 못먹을텐데... 별로 ... 미안하지는 않네- 하하.... 이렇게 나의 승리로 끝날거란말야....

\n

\"야... 물!!!!\"

\n


*

\n


-\"야.... 진짜 미안한데... 내가 좀 바본가부다... 너 몇호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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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퇴원하는 날이됐다. 이제 몸은 언제 아팠냐는듯 말짱해졌고, 오히려 전보다 더 튼튼해진듯 싶다. 정한별 보고싶어도 꾹꾹 참고 병문안 올때까지 기다렸었는데, 드디어 퇴원... 답답한 병원공기안에서 벗어날수있다는것도 좋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한별을 언제나 볼수있다는게 너무 좋다.퇴원한다는 사실에 한껏 들뜬 나는 그동안 병원에 두었던 짐을 꼭꼭 잘개어서 바닥에 있는 줄도 모르고 처박혀있던 짐가방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2인용병실이라 마주편에 입원해 있는 친해졌던 할아버지께 건강해지셔서 얼른 퇴원하시라고 꾸벅 인사를 드리고 한별이가 온다고했는데 온다고 한지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안와서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고 밖으로 나가보려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매너모드로 해두었던 핸드폰이 징징대며 울어대고 너무 꽉끼는 바지를 입었는지 바지주머니에 손이 잘 안들어가서 낑낑대며 겨우 손을 집어넣어 핸드폰에 바로 귀를 대고 전화를 받는데 정한별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몇신데 안오냐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살살달래며 왜안와? 하고 다정하게 말해줬더니, 슬그머니 말을 꺼내는 정한별이다. 어제 알려주지 않았나?

\n

\"그냥, 4층으로 올라와 내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나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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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미안-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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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의 웃는 목소리로 이미 모든게 용서가 된지 오래다. 싱글벙글하며 할아버지께 다시한번 인사를 하고 인사성이 참 밝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병실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 앞에섰다. 이제 막 엘리베이터는 3층을오르고있었다. 이제야 올라오는걸 보니까 몇층인지도 까먹어버렸나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정한별이 서서히 보이고, 정한별이 내리는데 뒤에서 나보다 키가 조금, 아주조금- 더 큰 남자가 나온다. 머리가 노랗고 얼굴이 새하얀걸보니 외국인인가.. 생각하다가 상관없는 사람이기에 정한별에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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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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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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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대가리의 그입에서 영어가 샬라샬라 꼬부러져 나올 것같기도하고 일본어가 나올 것같은 포스가 느껴졌지기도했지만, 그 모든 예상을 뒤집어엎고 반듯한 한국말이 흘러나온다. 내이름을 어떻게 아나 싶어서 노란대가리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한마디 꺼내려는데 정한별이 먼저 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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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김윤한이구, 이쪽은 우리 오빠야. 한경이오빠가 운전면허있어서 차끌고 나오려고 데리구나왔지-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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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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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한테 오빠가 있었던가..? 왜 나한텐 말안해줬었지? 한경이오빠..? 왜이렇게 둘이 다정해보여. 너 나 차끌고 나오게 하려고 데려온거였냐? 어쩐지 같이 가자고 그렇게 조르는게 이상하다했어- 하면서 정한별의 볼을 살짝 꼬집는 노란대가리는 내 눈엔 낯설었지만 정한별눈에는 원래 자주 있었던 일이라는듯, 그럼 운전면허없는 내가 나와서 차박고 구르고 할까?하면서 눈웃음을 살살짓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얼굴이 점점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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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려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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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노란대가리와 한별이 그둘은 열림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엘리베이터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고 정한별에게 슬쩍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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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있었어? 그런말 전혀 못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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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오빠거든- 그래서 못들었을거야. 일본에 살고-.1년에 한번씩 한국에 놀러와. 잘생겼네 너, 형이라고 불러도돼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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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대가리가 정한별 대신 대답을 하는데, 저기.. 그쪽한테 물은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누구신데 제가 형이라고 부른답니까? 라는말이 순간 툭 튀어나올뻔했다. 뱉으려던 말을 침삼키듯이 삼켜버리고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띵-\'소리와 함께 열리고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계속 짓고있는데 또 그 노란대가리가 시비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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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화장실급하냐? 표정이 왜그래.. 풉... 화장실이... 오른쪽이네 저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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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또 노란대가리 한테는 뭐 마려운 똥개 표정 마냥 웃기게 보였나보다. 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아닌데요- 하자 노란대가리는 혼자 뭐라뭐라하는데 못알아먹겠다.

\n

\"가끔저래- 일본에 살아서, 혼자 가끔씩.. 아주 가끔씩..저래. 무시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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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가 눈웃음 지으면서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옆에서 풉풉웃어대던 노란대가리가 빨리가자며 정한별 손을 덥썩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나도 겨우 잡은 손을 저 노란대가리는 쉽게 쉽게 잡아버리고 질질 끌고 간다. 병원공기를 벗어나 밖으로 나와서 가져온 차 안으로 정한별을 태우는데 노란대가리가 아까는 손을 잡더니 이젠 그손을 어깨로 올려 차에 정한별을 태운다. 저둘은 가족이다. 가족이다- 하면서 머리속에 주문을 혼자 외우고 \'참을 인\'자를 새기고있는데, 나한테는 타란 말도 안하고 그냥 출발하려는듯 싶어 얼른 차 뒷문을 열고 안으로 가방을 집어넣곤 몸을 쏘옥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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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볼일은 잘 해결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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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경..진짜..... 한경이오빠, 유치한거 이제 그만해-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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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어, 풉..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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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부웅소리를 내며 출발하는데, 왠지 찝찝하다. 노란대가리와 같은 공간안에 있는것부터가 찝찝하지만 더 찝찝한건, 저 인간이 운전을 하고있다는거..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데...,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운전은 아주 부드럽고 안전하게 진행됐고 집에도 사고없이 무사히 잘 도착했다. 그래도 뭔가 찝찝하다. 왠지 더 이상한게 있을것만 같은느낌. 노란대가리는 주차를 하고 들어온다고 하고 한별이와 나만 먼저 들어왔다. 한별이는 총총총 뛰어 먼저 2층으로 올랐고, 짐가방을 챙겨들고 오랫만에 보는 아주머니께도 인사드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주머니가 2층으로 오르는 나를 붙잡으신다.

\n

\"저기 윤한아-, 한별이한테 한경이얘기는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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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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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당분간은 한경이랑 같은방 써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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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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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방은 한경이가 썼던 방이구... 그 옆에 방을 쓰자니 너무 좁고 치우지도 않았구.. 이왕이면 넓은 방에서 같이 쓰는게 좋지 않냐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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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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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이가 착하니까 이해해줄거라고 믿어 2주동안만 있다갈거니까 좀만 참아줘-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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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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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하루도 아니, 한시간도 아니고 십분만 같이 있어도 짜증나는 인간인데 같이 2주를 쓰라고? 아주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신지 이미 오래고 허- 하는 어이없는 한숨이 흘러나오는데, 주차를 마쳤는지 노란대가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형광등에 반사되서 반짝빛나는 노란대가리는 볼수록 더 짜증이 난단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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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안들어가고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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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를 툭 던지고 올라가는데 기분이 나빠서 힘껏 가방을 던졌...... 으면 내가 여기서 못살겠지? 아.. 미치겠네. 아오!! 빡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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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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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오빠, 잠깐만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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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와서 짐가방을 노란대가리 인양 발로 툭툭 쳐서 침대 구석에 박아놓았다. 침대 구석에 박혀서 찌그러져있는 가방이 정말로 노란대가리로 상상되서 쿡 하고 웃었더니 노란대가리가 날 이상한애보듯이 쳐다본다. 노란대가리가 쳐다봐서 나도 노려봐 주려는 찰라, 한별이가 방으로 들어와서 노란대가리를 부른다. 노란대가리가 한별이 부름에 따라 나가는걸보니 왠지 정한별을 노란대가리한테 뺏긴것만 같은 느낌이들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뭐 한별이가 노란대가리한테는 무표정으로 말했지만, 그다음 나한테 방실 웃으면서 김윤한- 너 엄마가 빨래 있으면 빨리 밖에 내놓으래, 지금 세탁기 돌리려고 하니까 빨리 갖다놔 하고 하는걸로 짜증은 끝났지만- 짐가방을 얼른 풀러놓고 가방은 장롱에 대충꾸겨박고선, 옷가지들만 골라서 들곤 방문을 열고 나왔다. 병원에 있는동안은 병원복입고 한지라, 저번에 갈때 입었던 옷이랑 속옷몇개, 수건몇개밖에는 빨게 없다. 가벼운 옷가지만 들고 나가려니까 뭔가 허전해서 나가기전에 뭐 가져갈게 없나 확인해보는데 역시 없다. 꾸깃꾸깃 구겨서 들고 밖으로 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려고 계단을 향해가는데 바로 옆방인 한별이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가려고하다가 둘이 하는 얘기가 뭔가 해서 방문에 귀를 갖다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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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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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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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그럼 내가 일본가서 알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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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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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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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아! 빨래 빨리가지고 와라! 세탁기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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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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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대가리가 시..? 어쩌구 하는데 아줌마가 부르는 소리때문에 못들었다. 세탁기를 돌린다기에 계단을 뛰어내리다가 마지막 칸에서 엉덩방아를 찧을뻔했지만, 나의 순발력으로 위기모면.... 하는듯 싶었는데 우어어- 하는 괴물같은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들고있던 빨랫감들때문에 심하게 부딪히지는 않았는데, 팔꿈치를 찧어버렸다. 으- 이건 부딪혀본사람만 안다는 그 찌릿하면서도 디게 아픈.. 그느낌- . 너무 아파서 팔꿈치를 문지르다가 어느정도 괜찮아졌기에 빨랫감을 들고 세탁기에 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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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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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뚜껑을 탁소리나게 닫고 주먹을 꽉 올려 잡으며 세이브를 외치자, 언제 나왔는지 계단을 내려오던 노란대가리가 또 날 이상한애 보듯이 쳐다본다. 어우.. 나 노란대가리한테 완전 ㅁㅣ친놈으로 찍히는거 아닌가싶다. 뭐 그쪽도 만만치않게 이상하신 분이지만, 이상하신분이 보기에도 이상할정도면... 또라이아냐... 노란대가리는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냉동실을 열어 얼음 몇조각을 컵에 집어넣더니 그걸 마신다....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얼음물을 마시는것도 아니고 얼음을 마시고있다. 뭐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시는게 아니라 갈고있는거랄까? 네- 여러분은 지금 최신상품인 노란대가리 사람 모양 믹서기를 보고계십니다. 입으로 음식물을 넣어주시면 그 어떤 딱딱한 음식이라도 곱게- 갈아드립니다. 자 매진이 얼마남지 않았구요. 080... 이것도 아니고!! 이제 이상하다못해 약간은 정신이 어떻게 된것같은 노란대가리를 보면서 두려운 느낌까지 들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려고 계단을 오르려는데, 얼음을 갈아마시고 있던 노란대가리가 웅얼웅얼대면서 뭐라뭐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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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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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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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그럼 너말고 또 누가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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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깐 그렇게 잘 갈아마시더니 이제서야 차가워지기 시작한듯한 모습을 보이고있는 노란대가리는 정말 두렵다. 대체 뭔 얘기를 꺼낼려고 이러는지-, 그러고 보니까 말거는 투가 약간 돈뺏으려는 듯한 느낌같은것도 든다. 내가 환자라는 걸 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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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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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한별이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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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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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 좋아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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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아,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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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아님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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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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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동안 상담 언제든지 해줄테니까, 할맘있으면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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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오해가 있는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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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계단위를 빠르게 올라 방안으로 쏘옥 들어가버리는 저,,저!! 아오 진짜 얄밉네 진짜. 또 내가 정한별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는지 ,  알수없는 인간이야... 어우... 진짜 또 진 것같은 느낌이 드는건 뭐지... 쿵쾅쿵쾅대며 2층으로 뛰어올라가서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벌컥 여는데, 방바닥엔 보라색 이불이 깔려진위로 베게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침대위에서는 이불을 한참위까지 덮어있는 그위로 노란색깔 머리카락이 빛난다. 아.......졌다.....진거구나..

\n


*

\n


몇마디밖에 안되는 짧은 전화통화였지만...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나만 정한별 목소리 들은거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슬펐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얼굴도 찰싹찰싹 때려보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문질러 닦고 책상 서랍을 열어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찾아도 없어서 서랍을 꺼내서 뒤집어 엎자, 딱딱한 소리가 바닥을 퍼졌고, 찾았다. 반지.. 반지에 사선으로 은선이 그어있는 단조로운 무늬.... 사이에 반짝이며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없지만 함께여서 행복했던 우리 100일째만남을 기념한 반지... 장미 꽃한다발과 같이 선물한 이 반지를 나는 정한별 손에 끼워주었고, 정한별도 내 못난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줬다. 손가락에 다시 반지를 끼워보고는 괜시리 마음이 다시 콩닥콩닥 설렌다. 옷장을 열어서 후드티 하나와 청바지하나를 골라꺼내 옷을 갈아입고선 물건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담아 서랍을 다시 집어넣고선 서랍 위에 놓아두었던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도어키를 눌러 주차장에 주차해 두었던 새까만 자동차의 문을 열고선 부드럽게 탑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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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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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안에서 나혼자만의 기합소리를 내뱉고 서둘러 시동을 걸어 주차장안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막상 자동차에 타긴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그냥 일단 가는 대로 가본다. 항상 네비게이션이 떽떽 잔소리를 해댔었는데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운전하니 왠지 틀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이 구간의 제한속도는 몇km다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 지겨웠었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반갑다.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시에서 벗어나 드디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을 찾아내곤 달리던 차를 멈춰 내린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발자국씩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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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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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질러보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는이없는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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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한별!!!!!! 듣고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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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달리면서 그쳐졌던 뜨거운 눈물이 다시 봇물터지듯 펑펑 쏟아졌다. 아 진짜.. 쪽팔리게, 아무리 아무도 없다지만 사내새끼가 이렇게 울고있다는거, 너무 쪽팔리잖아 박준희... 하긴.... 니생각만 하면 자꾸 이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는건 나도 조절 못하겠는데 어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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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들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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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들릴리가 없는데... 자꾸만 너한테 들릴것만 같아서 빽빽 소리를 질러낸다. 내 목소리가 이 곳을 멀리 멀리 퍼져 나가서 너에게 들렸으면 정말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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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정말 많이 좋아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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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생각만 하면 이렇게 심장이 터질것만 같은걸 보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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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많이 사랑하나봐!!!!! 난 너없이는 안되는가보다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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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나봐.... 내겐 너없는 시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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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는 꼭 너한테 갈거니까!!! 나 꼭 기다려주라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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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날 버리지 마... 날 잊지 말아줘... 너의 기억속에서 나를 지워버리지 말아줘.... 그럼 내가 너무... 너무 많이 아프단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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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사랑해!!!!!!!!!! 그래서 미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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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너밖엔 안보이는데... 니가 날 버리면 어쩌지?? 자꾸만 바보같은 생각이 드는것도...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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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들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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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내 심장소리가.... 보이지.....? 내 슬픈 두 눈이... 느껴지지....? 널사랑하는 내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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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줄 알았으면!!! 사랑한단말 많이 해줄걸 그랬나보다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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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수천번 수만번으로도 표현되지 못하는 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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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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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표현되지 못하는 내사랑을...... 더 많이 표현해줬어야 하는 내사랑을... 더 많이 보여줄걸 그랬나봐....... 나 기도같은건 안 했었는데.... 널 알게 되고서 신이라는 걸 믿게됐어... 우리 이쁘고 착한 한별이를 만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신은 내게 많은걸 주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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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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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빨 거 있으면 줘, 세탁기 돌리게, 아 그리고 윤한이- 병원갔다왔으니까 빨거 다 가져오라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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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방으로 들어와서 빨랫 거리들을 들고 나가신다. 방문이 닫아지니 핑크색으로 꾸며진 방문이 눈에 띈다. 핑크색을 좋아해서 온통 핑크로만 가득 채워진방, 예전엔 이 핑크빛 방에 핑크색의 큰 하트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는데, 아직도 이방엔 너와의 추억이 담긴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보여주지 못한... 너에게 보여줄 사랑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너는 내곁에 남아있질 않다. 그래서 자꾸만 겁이나.... 여기 남아있는 너와의 추억들마저 모두 다 니가 가져가서 사라져버릴까봐.... 또 눈물이 날려고 하는데 입술을 꽉 깨물고 최대한 웃어보려고 애쓴다. 후아- 한숨을 내쉬고, 핑크색 방을 빠져나간다. 몇걸음 걷지않아 김윤한과 한경이오빠가 있는 방앞에 다다랐고 문손잡이를 돌려 열자 네개의 눈동자가 날향해 방향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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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오빠, 잠깐만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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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냐는듯 표정을 짓는 오빠에게 손짓을 하자, 이제 뭔지 알았는지 천천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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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무슨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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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내 고민을 들어주곤 했다. 누구보다 가깝고 또 장난을 많이 치고 괴롭히곤 했지만 배려심도 많고 이해심도많고 말도 잘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기도한다. 그래서 1년에 한번씩 오빠가 우리집에 오면 고민을 털어놓는게 습관이 되버렸다. 오빠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안하자 오빠가 먼저 나서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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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춰볼까?... 음 이번 고민은... 박준희?\"

\n

\"우와... 오빠, 어떻게 알았어... 오빠 진짜 신내림 받았냐?..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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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박준희 한테 받은 반지잖아. 그렇게 손으로 주물럭 대고 있는데 어떻게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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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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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지는 않지만 항상 가지고는 있는 이반지를 괜시리 박준희 생각이 나서 또 꺼내놓고 주물럭 대고 있었는데, 그게 한경이오빠 눈에 띄었나보다. 박준희랑 내가 만난지 백일째 되던날, 박준희가 꼭맞는 반지를 내손에 끼워줬던 기억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평소엔 기억력이 그렇게 나쁘던 내 머리가... 박준희에 관한거면 왜이렇게 기억력이 좋아지는지... 정말... 정말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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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일본으로 나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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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도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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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엄마가 말해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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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또 괜히 별얘기를 다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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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때 뭐라고 그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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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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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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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나 좋아한다고 걔한테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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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우리집에 있는 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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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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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봤는데, 웃긴놈이구만, 어디서 내동생을 넘봐,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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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는 하지말걸그랬나... 오빠가 또 나서는거 아냐? 흠..... 꼬일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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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 또 뭐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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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또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고-, 아맞다. 음성 남긴거 아직 저장 되어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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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89에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세지를 누른다.

\n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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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오빠가 진지한 모드로 음성메세지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곤 갑자기 눈빛이 확뜨이더만은-, 뭔가 발견했다는 듯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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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かった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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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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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라 동생아- 박준희도 너 아직 못잊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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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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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직감이랄까? 그리고 나중에 만나자는건 미래가 보장된 얘기잖아, 오케이?\"

\n

그런가... 근데 여자의 직감은 들어봤어도 남자의 직감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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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케이... 아리가또다 아리가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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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잠깐, 너는 정확히 박준희 어떻게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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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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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를 잊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는걸보면 아직 많이 사랑하는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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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그럼 내가 일본가서 알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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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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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에 산다고 했지? 나도 같은 도쿄에서 사니까 뭐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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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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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마라 동생아- 이 오빠가 다 알아서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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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히죽 웃는 오빠가 너무 고맙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항상 도와주려고 하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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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간다-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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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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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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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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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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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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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하는 소리가 편지지 위를 오간다. 편지는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거라서 이렇게 쓰고있다는게 어색하기는 하지만,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고있다. 한별이라는 그 이름이 벌써 몇번째나 적어졌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오랫만에 마음껏 불러보는 이름인지라 자꾸만 자꾸만 적어 넣게 된다. 한별로 시작해서 한별로 끝나는 이 편지는 온통 거짓말 투성이다. 거짓말.. 거짓말... 손으로는 열심히 거짓말을 써내려가고있지만,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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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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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안녕이라고 써야하나? 잘 지내지? 한별이 넌 잘지내고 있겠지? 벌써 일본 온지가 꽤 됐다. 그치..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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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일본 왔을 때는 적응 안되고 그랬는데, 지금은 한국보다 더 편해진 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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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가 이편지를 쓰는이유는, 한별이 너에게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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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별이 너없이 어떻게 살까 했는데... 그게 시간이 다 알아서 해주는 일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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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한별이 너를 잊고있고... 한별이 너를 다 지워낼수 있을 것만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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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한국을 언제 갈지는 아무도 몰라, 물론 나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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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던말은, 다시 한국으로 가게 된다 하더라도 한별이 너를 만날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하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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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그냥 나같은거는 툴툴 털어버리라고.... 그말 하려고 이 편지쓰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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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별이 넌 정말 좋은 추억이었어... 내 곁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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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정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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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꽉깨물고선 새하얀편지지를 국제우편봉투에 집어넣고 입구를 풀로 칠해 봉했다. 받는 사람편쪽에 똑똑히 기억하고있는 정한별네 집주소를 적어 넣고 보내는 사람편은 새햐얗게 비워두었다. 하얗게 비워둔 자리를 결국은 까맣게 글씨로 채워넣는다. 너에게 미련 생기게 만들면 안되지만은, 너에게 답장이 오기를 바라는 이 못된 심장이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기적이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을 니가 제발 지워 줬으면 한다. 너의 머리에서 나의 기억만 새하얗게 지워져버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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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못된 이기심이 담긴 편지는 그렇게 우체통으로 들어가버린다. 우체부가 나의 못된 이기심은 다 빼버린 편지를 정한별에게 전해줬으면 하고 또 못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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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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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아 편지왔다~ 어.. 이름이 안써있네? 東京, 新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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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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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일본에서 왔댄다. 신주쿠면.... 편지 올 사람이 그 자식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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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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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뜯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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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나한테 편지라.... 그것도 신주쿠? 멀리 일본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편지봉투를 받는 사람인 나대신에 벌써 한경오빠가 열심히 뜯고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찢어버린듯한 모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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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내가 먼저 읽어도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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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다 뜯어버리고서는 아무래도 내편진데 자기가 먼저 읽기 뭐했는지 나한테 먼저 건낸다. 새하얀 색깔에 아무 장식도 그림도 없이 까만 글자 몇줄만 길게 늘여져있는 편지에는 뭔가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것만 같았다. 첫번째 줄부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해서는 중간 쯤에 와서는 눈물이 앞을가려 읽을수 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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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왜울어? 뭐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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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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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안볼거라는... 날 다 지워낼 거라는 그말... 날 상처주는 말들이 이편지에는 너무나 많이 써있는데도 한별이 한별이하고 써있는 부분마다 니가 내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가 자꾸만 기억이 나서 그게 더 아프다. 거짓말일거야, 다 거짓말- 거짓말일거라고 믿으면서도 눈물을 그칠줄 모르고 얼굴위를 가득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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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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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오빠가 내 손에 꼬옥 쥐어져있던 새하얀 편지를 가져가 눈동자를 굴리며 빠르게 읽어나간다. 니가 자꾸만 생각이나고 자꾸만 맘이 슬퍼져서 점점 몸에 힘이 빠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무렇지 않게 편지를 읽어나갈수있는 한경이오빠가 정말로 정말로 부러워진다. 난 언제쯤 너에 관한 생각을 지워낼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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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러고보니까 여기 주소 .. 여기로 찾아가면 되는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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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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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쿡.. 내가 여기로 가면 되는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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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뜨고 비비면서 장화신은 고양이마냥 한경이오빠를 쳐다봤더니 한경이오빠가 내 머리를 헤집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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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투는 나줘. 일본 가면 제일 먼저 여기부터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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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그이오빠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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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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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거 알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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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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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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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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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서 한경이오빠를 미워할수가 없는거야. 히히- 하면서 한경이오빠를 껴안고있는데, 위층에서 김윤한이 쾅쾅거리면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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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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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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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고 있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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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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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아침.., 7시 조금 안돼서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가 하얀비누로 하얀거품을 가득 낸뒤,  얼굴전체에 골고루 비비고서는 손가락사이사이도 비누를 골고루 발라준뒤, 콸콸 쏟아져나오는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에 얼굴을 씻어냈다. 매끈한 피부위로 자리잡은 상쾌한 비누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수건으로 깔끔히 마무리를 하고선 방에 들어와서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이제 방학까지는 한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네- 히죽 거리며 기분좋은 생각도 잔뜩 떠올리고는 한껏 올라간 기분을 데리고 방을 나온다. 방금 전까지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는데 방밖으로 나와 계단을 밟자마자 보이는 정한별과 노란대가리가 꼬옥 안고있는 모습에 기분이 땅바닥으로 내려 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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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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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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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고 있지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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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적으로 계단을 쾅쾅 밟고 내려가면서 속에 자리잡고있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니 결국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가방을 다시 고쳐매고는 현관문을 향해 걸어나간다. 금방 방에서 나오셔서 끓이고있던 국과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하나씩 꺼내시던 아주머니가 밥 안먹고 가냐고 물어보지만, 먹고싶은 기분도 싹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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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배 안고파요- 먼저 학교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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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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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을 부르는 정한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짜증난다. 뭐, 따지고 보면 정한별이 짜증나는게 아니라 정한별 옆에 꼬옥 붙어있는 저 노랑대가리가 짜증나는 거겠지- 신발을 꾸겨신고선 현관문을 신경질적으로닫고 밖으로 나온나는 괜히 잘못없는 땅한테 화풀이다.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누가보기에도 \'나 삐쳤어요\'를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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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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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루퉁한 표정으로 쿵쾅대며 걸어가다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는데, 뒤에서 헥헥거리며 쫓아 뛰어오는 정한별이 보인다. 이제 곧 겨울인데 헥헥거리면서 땀이 삐질 나온 정한별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게 보인다. 또 거기에 삐친게 다 풀어져버린 나는 정한별을 쳐다보다가 침을 꿀꺽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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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야 너 밥도 안먹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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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먹고 나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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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먼저 씩씩대면서 나가버리는데 먹을새가 어딨냐 진짜!! 같이 먹어야 될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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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고파? 먹고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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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빨리 가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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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걸어나가는 정한별의 뒤를 빠른걸음으로 쫄래쫄래 쫓는다. 정한별의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밟아보기도 하고 정한별이 발자국을 뗀 그자리를 바로 밟아 보기도 하다가, 얼굴위로 차가운 뭔가가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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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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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낀 하늘에서 새햐안 눈송이들이 내려와 소복소복 땅위에 쌓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정한별에 내 기분까지 좋아져버린다. 눈이 그렇게 좋냐는 질문에 으응- 하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정한별은 마냥 어린 꼬맹이같다. 한편으론 노란대가리가 왜 정한별을 꼬맹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빨개진 정한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번지고 어느새 눈이 새하얗게 쌓여 온동네를 지워버린다. 그렇게- 우리 마음도 하얀 눈으로 뒤덮혀 다 지우고 하얗게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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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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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열었더니, 텅- 비어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잔뜩 쌓여있고, 식탁위에는 드러운게 덕지덕지 붙어있다. 혼자살다보니까 자꾸만 안 치우게 되고 지저분하게 있게만 된다. 한국인이다보니 학교친구들과도 별로친해지지 못했고, 학교가는 것 외에는 바깥에도 잘 나가지를 않았다. 그랬더니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같기도 하고, 무튼 냉장고도 채울겸해서 밖에좀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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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문을 열자 딸랑- 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문을 잡고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기분을 조금 업시켜보려고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했다가는 ㅁㅣ친놈 취급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관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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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한국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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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 네- 헤헤, 한국분이신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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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데, 이동네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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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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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 입맛에는 안맞는 것들이라 뭘 먹어야되나 열심히 음식들을 쳐다보고있었는데, 편의점 알바생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사람인데, 머리를 깔끔하게 깎고 안경을 쓴 딱보기에도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라는걸 알수있는 그런남자였다. 음식 목록에서 그나마 별로 느끼하지 않은 통조림 몇개랑 맛은없지만 그래도 김치 없으면 밥 못먹으니까 포장용 김치 하나 고르고 카운터에 올려놓고선 지갑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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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어떻게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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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냥... 공부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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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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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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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돈데... 공부할려고 막상 오긴 왔는데, 가족들도 보고싶고 여자친구도 보고싶고 막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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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히 꽂혀있는 지폐몇장을 꺼내서 그 남자에게 내밀었다. 여자친구가 보고싶다는 그 한마디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나도... 나도 그래요- 하고 나도모르게 슬픈눈으로 그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사람은 여자친구랑 전화도 하고 편지도 주고받고 하겠지?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맘이 아픈사람이 있을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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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봉지를 들고 무거운 맘도 들고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기분좋은 소리로도 정리되지 않는 맘과 무거운 한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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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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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나 아이스크림 사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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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데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호빵먹을래? 아니면 호떡? 것도 아니면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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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에- 저기서 그냥 500원짜리 사오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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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걸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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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이래뵈도 내가 무쇠로 만든 사람이잖냐, 인조인간 로보트-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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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따뜻한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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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아아- 아이스크림 아, 먹고싶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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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알았어- 사올테니까 대신 집에 들어가서 먹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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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김윤한 최고!! 역시 내친구!! 빨랑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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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와서 축축한데다가 차가운 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는데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은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긴 했는데, 갑자기 정말정말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아직어려서 그런가..? 아직 어리다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데-흐음.... 내가 사달라고 한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뛰어간 김윤한을 뒤로하고 몇걸음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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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혹시 정한별씨....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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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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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쌩쌩부는가운데 편의점과 얼마 멀지 않은 공원에 벤치하나 덩그러니, 그리고 그 위에 사람하나 덩그러니... 멍하게 김윤한이 간 방향만 쳐다보고있는데, 누가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건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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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씨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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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데요...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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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 임은민이라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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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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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요.. 음... 그니까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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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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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일본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인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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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준희랑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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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주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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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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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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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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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준희랑 연락하고 있대. 나랑도 안 하는 연락을 이사람은 잘 하고 있대. 보고 싶은데.... 이사람은 많이 볼 수 있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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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혹시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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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아이스크.... 어, 너 또 왜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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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아..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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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지못하고 흐느끼던 울음이 김윤한이 오자 막혔던게 뚫리 듯 크게 터져버렸다. 지금 내옆에는 니가 있어줘야 되는 거 아냐....? 박준희.. 너 진짜 나쁜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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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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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걸어 집에 까지 도착해서 냉장고에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선 다시 터벅터벅 TV앞까지 걸어가서 쇼파에 털썩 눕다시피 앉아서는 리모콘을 꼬옥 눌러서 TV를 켰다. TV에서는 딱딱한말들로 세상돌아가는얘기들을 해주고, 오늘의 소식들도 말해주고 해주는데, 정한별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있는지도, 정한별은 오늘 어떤일들이 있었는지도 아무것도 말해주지않는다. 그저 자기가 뱉어내고 싶은 말들만 열심히 뱉어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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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테이블위에있는 핸드폰을 집어 슬라이드를 올린후 번호를 꾹꾹 눌렀다. 잠시후 따르르릉- 하는 통화연결음이 몇번 들리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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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しもし?\"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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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郁... 俺、潤だけど\" *카오루... 나 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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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潤? どうゆう事なの?\" *준? 무슨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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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ちょっとでて来てくれる? バスケットボール一緒にしようって言おうと思って電話したのよ。\" * 잠깐 나와 줄 수 있어? 농구같이 하자고하려고 전화 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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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ぁ。わかったよ。まっててね。すぐ行くから\" 응. 알았어.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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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서 바로 초록색 반팔티위에 하얀색 얇은 후드점퍼하나를 입고 농구공하나를 들곤 밖으로 나왔다. 11월의 마지막에 12월의 바람이 찾아와 몸을 때리듯이 달려들어 반팔하나 얇은점퍼하나를 입었으니 추울만도 하겠건만 그닥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농구공을 틱틱 튕겨가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루이스네집에 점점 가까워졌다. 루이스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루이스가 먼저 나와서 날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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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わり!少し遅っちゃ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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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丈夫だ。始める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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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랑 농구를 하면서, 잠시 모든 생각은 다잊고, 겨울이 무색하게 땀을 뻘뻘흘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어지러운 기억속에서도 잠시 잊어버릴수조차 없는 너의 기억이 점점 내안으로 파고들어오는게 그게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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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루... 나 한국이 너무 가고 싶다.. 한국이 너무 그립다. 아니..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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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と言ったの??\"  *뭐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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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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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潤?どうしたの?\"  *준? 무슨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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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もない。ごめん\"  *아무것도 아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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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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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정한별이 나를 밀다시피 편의점으로 집어넣고 자기는 공원으로 총총총 뛰어가 벤치에 털썩 앉아버린다.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저 안 구석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박스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박스문을 밀어서 열고선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데, 추워- 라는 말이 나올뻔했다. 밖에서도 추웠는데, 또 들어와서 차가운걸 만지려니 손이 얼것만 같았다.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나가서 정한별한테 손녹여달라는 말을 하곤 손을 꼬옥 잡을 생각을 하니깐 기분이 업되서는 정한별이 좋아하는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다 꺼내놓고는 카운터로 향했다. 주머니를 팡팡 두드리니깐 지갑이 느껴지질않아서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지폐몇장이랑 동전몇개만 나뒹굴고 있고 지갑은 안가져왔나보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죄다 꺼내보니까 퍼런지폐 세장하고 오백원짜리하나 오십원과 십원이 사이좋게 세개씩 그리고 주머니 구석에 꾸깃꾸깃 박혀있던 천원짜리 한장까지, 모두 삼만천육백팔십원이있다. 만원짜리 한장빼고는 모두 다시 주머니에 처박아놓고는 카운터로 만원짜리 한장을 내밀었다. 6500원입니다 라는 말과함께 띵- 하고 카운터에서 돈이 들어있는곳이 열렸다가 만원짜리를 먹고, 3500원을 뱉어내고는 다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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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름돈 35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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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돈 3500원까지 다시 주머니에 처박고, 들어왔던 문쪽으로 가자 자동문이 조용히 열리고, 벤치에 앉아있는 정한별이 보인다. 그리고 그옆에 갈색머리에 짧은치마를 입고있는 여자가 정한별과 얘기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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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아이스크.... 어, 너 또 왜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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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데 둘이 저렇게 얘기하고 있는건가- 하고 조용히 다가가는데 갑자기 정한별의 눈에서 한방울 눈물이 또로록 흘러내리더니 두방울 세방울..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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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아..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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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가가자 아까보다 더 크게 울어버리는 정한별... 손에 들고 있는 봉지에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들어있고, 지금 내눈에는 차가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한별이 비친다. 대체 뭐 때문에 또 우는건지.... 정한별 앞에 서있는 그여자에게 한 번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정한별에게 시선을 맞췄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게 없어 휴지도 없고 닦을것도 없다. 급한 마음에 옷 소매를 끌어 당겨 정한별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점점 내 소매를 적셔가고, 아까부터 앞에 서있던 그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도 모르는 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한별은 너무 아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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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왜울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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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읍.... 안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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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울긴... 집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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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기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는 먼저 걸어가는 정한별을 앞 에두고 뒤에서 왼손엔 아이스크림 봉지를 들고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걸음을 빨리해서 정한별옆에 따라 붙어서는 눈물로 차갑게 얼어붙은 정한별의 손을 덥썩 잡았다. 내 손도 아직 녹질 않아서 그렇게 따뜻하지 않은데, 정한별 손은 내 손보다 훨씬더 차가웠다. 평소에는 손을 놓아버리던 정한별이 오늘은 웬일인지 내손을 더 꼭 붙잡는다. 차가운 둘이 맞붙어 더 차가워 져야할 손은 점점 더 따뜻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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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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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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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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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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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나한테 사귀자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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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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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지금 대답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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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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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답해도 되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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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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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받아들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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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터져버릴것만 같다는 느낌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정말로...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것같이 쿵쾅쿵쾅뛰어대는게 정한별한테 들릴것만같았다. 지금 시간이 멈춘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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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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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 버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사이에 지나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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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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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서 임은민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내가 임은민한테 먼저 전화한 적이 있었나? 없는 것같은데... 있었다해도 기억조차 나지않는다. 임은민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넘어가려는 사이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받아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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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박준희가 웬일로 나한테 먼저 전화를 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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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냥 뭐- 잘지내나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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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나 잘지내는걸 궁금해할 애가 아닌데-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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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내가 생각하기에도 잘지내나 궁금해서란 말은 가식이다. 그냥 심심해서 한번 눌러본 것일뿐인데, 이렇게나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도모르게 잘지내나 궁금해서 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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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몇일 전에 한국 갔다 왔다. 진짜 오랜만에 갔더니 많이 바뀌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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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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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나 니네집 들렸다가 근처에서 니 여자친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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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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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랑 똑같아서 단번에 알아봤어. 이쁘긴 이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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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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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여자친구, 내가 니 이름 얘기하니깐 바로 울어버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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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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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울어가지고 놀라서, 인사도 못하고 그냥 와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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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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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니 여자친구랑 어떤 남자랑 같이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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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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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음..... 약간 갈색톤 머리에다가 눈썹짙고, 눈도 크고 잘생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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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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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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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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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일본 와있는 동안에, 니 여자친구 한 눈 파는 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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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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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냐.. 미안.. 나 먼저 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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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가 끊겼다는 깔끔한 소리가 한번들리고는 사라졌다. 너 일본 와있는 동안에, 니 여자친구 한 눈 파는 거아냐? 라는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리속을 뱅뱅 돌고돌고 또 돌고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엔 김윤한이라는 세글자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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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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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빨리 나와- 아침먹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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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기에 버터바른 식빵 두개를 넣어놓고, 냉장고에서 우유와 딸기 잼을 꺼내 식탁에 깔끔하게 정리해 올려놓는다. 한별이가 입에 머리끈을 물고 머리를 묶으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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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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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무시고 계셔. 깨우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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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빵이네- 내것도 딸기잼 발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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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 맞다 컵 안꺼냈다. 컵좀 꺼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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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 빵에 먼저 딸기잼을 적당히 바르고, 한별이가 가져온 컵에다가 지금 밖에 내리고 있는 눈만큼 하얀 우유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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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꺼는 반만- 어 됐어,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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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시지? 너무 조금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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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아침부터 포식하고 나가는것도 아니고 적당히먹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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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만 더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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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많이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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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센 고집을 못꺾고, 내 컵에 남은우유를 모조리 부어버린다. 컵안에 가득 찬 우유를 한모금 마시고, 딸기잼을 바르려는데, 딸기잼이 슥슥 발라지고있는 빵이 한별이 손에 들려있다.

\n

\"자, 먹자아- 잘먹겠습니다.

\n

맞부딪혀 짝- 소리를 낸 한별이의 손이 우유를 따라둔 컵으로 향한다. 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 난 한별이의 입가가 하얗게 물들었다. 손등으로 입가를 쓱 문지르곤 딸기잼바른 빵을 들어올려 입을 벌리고는 한입 크게 베어문다. 빵을 씹으면서 웅얼웅얼 마시따-라고 하면서 헤죽웃는데, 이번에는 입가에 딸기잼이 묻었다.

\n

\"칠칠맞게 다 묻히긴-\"

\n

쿡쿡 웃으면서 입가를 가리키자 어디? 하면서 엉뚱한 곳을 문지른다. 아니 거기 말고 왼쪽- 하니까 또 이번에는 여기?하면서 한참 밑을 문지른다.

\n

\"아니 거기말고 여기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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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를 못잡고 엉뚱한 곳을 짚고있는 정한별의 손을 치워내고는 빨간딸기잼이 묻어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닦아낸다. 헤헤- 거리면서 웃다가 또 켁켁 하고 목에 걸려버렸나보다. 아직 다마시려면 한참이나 남은 우유를 한별이에게 내밀자 벌컥벌컥 마시곤 반도 안남았다. 한번더 마셔서 깨끗이 잔을 비워버리곤 식탁위에 컵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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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켁.. 아 숨넘어가는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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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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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배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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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다고 해놓고는 내우유를 가져가서 마시곤 또 손등으로 입가를 쓱 문지른다. 나도 남은 우유를 마저 마셔버리고는 한별이 컵과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넣어둔다. 빨리 나와- 하고 먼저 밖으로 나가버리는 한별이를 따라 무거운 가방을 들쳐매고는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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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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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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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친 눈이 땅을 가득 매워서 차가운 공기가 차오른다. 한별이를 향해 손을 내밀자 한별이가 손을 꼬옥 잡아준다. 날씨는 이제 막 추워지기 시작했지만, 우리 손은... 따뜻해지고있고, 우리의 맘도 따뜻해지고있다-

\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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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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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리집 문을 혼자 열고 들어온다. 항상 김윤한이 내가 늦게 끝나도 기다려서 같이 가주고 했는데, 오늘은 청소당번이기도 하고, 윤한이가 먼저 가서 해야될일이 있다고 해서 청소를 마치고 혼자 왔다. 날 내팽겨치고 먼저 갈정도면 대체 무슨 중요한 일이길래.....

\n

\"윤한아-, 김윤한?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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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불러도 대답도 없고 나 진짜 삐치려고 그러는데.... 김윤한 방문을 벌컥 여니까 여기도 없다. 한경이 오빠는 오전에는 쭉 자다가 오후에는 친구 만나러 간댔고...해서 없고,  일단 가방부터 내려놓고 전화라도 걸어봐야겠다해서 힘이 다 빠진 채로 방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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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생일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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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 마자 폭죽들이 팡팡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터지기 시작했다. 고깔모자를 쓴 남자 둘, 그러니깐 김윤한이랑 한경이 오빠가 빨간 고깔모자를 뒤집어 쓰고있고, 김윤한은 빨간딸기와 여러 과일들이 얹어있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까지 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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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벌써 열여덟이나 먹었구나!! 너도 늙을 날이 얼마 안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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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오빠.... 친구만나러 간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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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구가 어딨냐? 십년을 넘게 일본에서만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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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한별! 나 삐친다? 이거 다 내가 준비한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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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이의 삐친듯한 그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그냥 꼬옥 안아버렸다. 귓가에 대고 고마워- 라는 말을 속삭이곤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헤죽 웃었더니, 옆에서 한경이 오빠가 놀고있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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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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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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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할줄 알았어, 침대에 걸터 앉아서 방을 둘러보니까 내 핑크색 방에 무지개 색깔 풍선들이 천장을 가득 메우고 그 풍선들은 각각 \'생\' \'일\' \'축\'\' 하\' \'해\' 라는 한글자 한글자가 써있다. 벌써 내생일이 다됐나? 12월 9일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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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잌 먹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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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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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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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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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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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도 좀만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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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익을 먹으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발에 뭐가 채인다. 뭔가 해서 봤더니 크기 차이가 엄청 큰 상자들이 차례로 놓여있다.

\n

\"어? 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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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뭐야, 벌써 봤어?\"

\n

\"케익 다 먹고 보여줄려고 숨겨놨는데 들켰네..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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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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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선물, 제일큰게 내가 주는거다. 돈이 없어서 좋은건 못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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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두개는 내가 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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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히히 지금 열어봐도 돼?\"

\n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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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상자를 먼저 열어 봤더니 상자만큼이나 엄청 커다란 곰인형 하나가 들어있다. 감촉이 보들보들한게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n

\"나 가면 또 일년동안 못보니까 이왕 온김에 큰 존재를 안겨주고 가는거야, 오케이? 1년동안 깨끗하게 모셔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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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고마워 오빠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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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건 안열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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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운데에 껴있던 그 상자를 열어봤더니, 이 방의 색이랑 너무 잘어울리는 핑크색의 장미가 한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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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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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장미는 행복한사랑 그리고 맹세라는 꽃말이 있대-, 그리고 핑크색 장미 백송이니까 100% 완전한 행복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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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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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하나는 안열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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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자 두개를 열고나니 조그마한 상자 하나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콩콩 걸어가서 그 상자를 주워와 김윤한 한테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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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나중에... 나중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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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열어보지도 않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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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나중에 줘도 돼. 나중에 내가 달라고 할 때.. 그 때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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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 날 향한 너의 사랑 만큼의 반짝임을 머금고 있는 그 반지가... 아직 나에게는 너무 감당하기 부담스럽다... 그건 나중에.... 나중에 내 맘이 널 허용하면 그 때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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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나 갈게- 꼬맹이 잘있어. 작은 엄마도 안녕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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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내 년에는 좀 따뜻할때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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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몸 건강하구, 삼촌한테 안부 좀 전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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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야, 너는 인사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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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앞코가 공항 바닥에 부딪히면서 탁탁 하는 소리를 낸다. 그소리 말고도 게이트 안내등 안내방송이 공항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며 서로 수다 떠는 소리등이 귓가를 맴도는데 그 중, 저 노란대가리가 나한테 한말이 귀속을 찔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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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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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가는구나, 이 노란대가리.... 2주만 있는다고 하더니 2주를 훌쩍넘어 한달이 다되도록 가지 않는 이 노란대가리를 볼 때마다 간지러운데 손이 닿지않아 긁지 못하는 등한가운데 마냥, 혹은 긁고 싶어도 긁지못하는 발바닥 한가운데가 가려운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제 간다고하니 그 간지러운 등을 효자손으로 벅벅 긁어서 시원해진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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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요. 꼬맹이 둘 잘있어라!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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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와? 절이라도 할테니까 제발 오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노란대가리를 향해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해줄수밖엔 없었다. 어차피 저 인간은 오지말라고 안 올 인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도 저 인간은 구름을 타고서라도 올거야, 암.. 그렇고말고,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서 공항 문을 제일먼저 빠져나온건 역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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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안타요?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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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렇게 서둘러, 좀 천천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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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멀리서 느릿느릿걸어오는 한별이와 아주머니가 그렇게 답답해 보일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시달렸던걸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버리고 싶어졌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노란대가리가 또 찾아와 날 괴롭힐 것만 같았다. 차 문을 열어 한별이를 먼저 태운 후 내가 그 옆자리에 앉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왔을때 노란대가리가 운전하고 온것과 달리 아주머니가 운전을 하고 가셨다. 운전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는 아주머니는 꽤 수준급의 운전실력을 갖고계셨다. 아까 노란대가리가 운전하고 갈 때보다 훨씬 맘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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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본 가려면 몇시간 정도 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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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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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좀 있다가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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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안해놨는데, 우리 외식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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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맛있는거 사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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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괴고선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고있는데, 창밖에서 나무들이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달리고 달려서 어디로 도망치려고만 하는것같다. 멀리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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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윤한아 뭐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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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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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고 있어?... 엄마가 외식한대 뭐 먹고싶은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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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 먹고싶은거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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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고기 먹으러 갈까? 갈비 어때 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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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해, 난 아무거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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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에- 엄마, 그럼 갈비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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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갈비집 맛있는데 아는데 거기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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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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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이제 알것같다... 해방됐다는걸.. 해방..... 노란대가리한테서 해방됐다!!!!!!! 아 너무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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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아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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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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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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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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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부터 열심히 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운건 오랜만에 듣는 초인종 소리였다. 침대헤드 옆 협탁위에 시선없이 손을 휘적휘적 거려본다. 핸드폰을 찾으려했지만 잡으려는 핸드폰은 잡아지지않고 괜시리 다른 물건들만 툭, 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하나 둘 떨어졌다. 핸드폰 옆에 모든 물건을 다 떨어뜨리고서야 핸드폰이 손에 쥐어졌다. 초인종소리는 간격을 두고 계속 들려오는데, 핸드폰 액정을 열어젖혀 시간을 확인하는데, 11시 5분에서 방금 막 11시 6분으로 넘어간다. 핸드폰을 다시 협탁위에 던지듯이 올려놓고는 꾸물덕대며 침대위를 빠져나오는데, 아까 떨어뜨렸던 물건들이 하나,둘씩 발에 밟힌다. 모서리를 밟았는지, 상당한 고통이 밀려오고 나서야 한쪽 발을 붙잡고선 떨어뜨린 물건을 하나씩 올려놓는다. 내가 발로 밟은 그 모서리는 아마 이 뾰족한 액자모서리가 아닌가 싶다. 정한별 사진을 고이 모셔둔 액자를 다시 협탁위로 모셔놓고는 거울을 보고 상태를 확인하는데 까치가 제 집인줄 알고 날아 들어올것만 같은 까치집이 머리위에 마련되어있다. 대충 머리를 손으로 몇번 빗어넘긴후에 터벅터벅 걸어가 현관문을 열어 밖에 있는 사람을 빼꼼히 내다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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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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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 누군지는 잘 안보이는데 노란색깔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고있는 사람이 한명 문앞에 서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것 마냥 손가락으로 초인종을 콕콕 누르고 있는 그사람을 다시한번 눈을 비벼서 확인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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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한경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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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박준희! 너 여기사는거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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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 형이 여길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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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가, 아씨 추워 뒈지는줄 알았네! 넌 왜 문은 안열고 난리야! 나 추위에 약한거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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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란머리에 볼과 손이 뻘게진채로 문을 열고는 나를 앞서서 신발을 후닥닥 벗고는 먼저 들어가는데, 방금전까지는 그렇게 졸려서 백만 톤보다 더 무거웠던 눈꺼풀이 가볍게 확 떠졌다. 눈을 껌뻑껌뻑 감았다 뜨면서, 얼른 쇼파로 가서 앉아버리는 한경이형을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는데, 마치 주인인양, 안들어오고 거기서 뭐하냐고 물어보는 한경이 형이 황당해 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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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거 있냐? 아무거나 손 녹일것 좀 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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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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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커피는 싫은데, 다른 차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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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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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말구, 녹차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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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없는데, 쟈스민차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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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걸로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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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달라더니 고르는건 여전하구나... 주전자에 물을 조금 따라 보글보글 김이 날때까지 끓이고는 빨간꽃이 그려있어 왠지 한경이 형이 좋아할것만 같은 작은찻잔에 끓인물을 따르고 쟈스민 알갱이가 담겨있는 병을 열어 5알을 퐁당 물에 담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찻잔안이 분홍빛으로 가득찬다. 쟁반에 컵을 올려 한경이 형이 앉아있는 쇼파앞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자 한경이 형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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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스민차는 색깔이랑 향이 좋아서 좋아, 그리고 은은하면서도 강하지 않은맛... 너무 맘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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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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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도 맘에 든다. 너 내 취향 기억하고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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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튀는걸 좋아하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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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내가 차마시러 여기온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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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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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이가 보내서왔어. 한별이가 너 아직 못잊는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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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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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왜 못잊어..... 나같이 나쁜놈을 못잊는 이유가 뭐야..... 내가 잊어버려도 좋다고 했으면.... 그냥 지워버리지....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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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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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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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늦게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밥을 꾸역꾸역 입 안으로 집어넣고 있는데, 주머니에 빳빳히 손을 꽂고 룰루랄라 계단을 내려오는 김윤한이 팅팅부은 눈에 포착됐다. 밥 먹는거냐는 물음에 눈을 꿈뻑대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김치 하나를 집어서 입 안으로 집어넣는데, 마주편 식탁 의자를 삐그덕대면서 빼내고선 김윤한이 앉는다. 김치를 꼭꼭 씹어 넘기고는 밥 한숟가락을 다시 떠서 입안으로 집어넣고는 찌개를 떠먹으려고 손을 뻗는데, 앞에서 찌개가 담긴 숟가락하나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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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러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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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서 꿈뻑대던 눈이 아이스크림이란 소리에 번뜩 떠졌다. 눈을 크게 뜨곤 밥을 꼭꼭 씹어서 넘겼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는 물 컵을 집어들어 한모금을 쪼로록 마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는 말에 먹던 밥을 치우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김윤한이 어깨를 눌러 다시 의자에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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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던거는 다먹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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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밥다먹으면 배불러서 아이스크림 못먹는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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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서 다 소화되니까 걱정말고 드세요,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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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 그럼 니가 한숟가락만 먹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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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한숟가락 가득 퍼서는 김윤한의 입을 향해 갖다댄다. 반찬은? 하고 묻는 말에, 계란말이 하나를 떡하니 밥위에 올려놓곤, 괜시리 내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들이댄다. 김윤한의 입이 크게 벌려지고 그안으로 가득차있는 숟가락이 들어갔다가 나올땐 깨끗이 비어서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밥을 쓱싹 해치우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얼른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점퍼 하나를 걸쳐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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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죠,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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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갈아신고 나오는 나에게 내미는 김윤한의 손위로 내 손이 꼬옥 맞잡혀졌다. 처음 문 밖을 나섰을때는 별로 추운걸 못느꼈는데 점점 앞으로 나아갈수록 목안으로 바람이 슝슝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입에서 아 추워-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김윤한이 자기가 하고있던 목도리를 훌훌풀러 내 목에 둘둘 둘러줬다. 김윤한의 체온으로 데워져서 그런지 따뜻하다는 느낌이 가득한 목도리를 두르고는 두손을 꼭 잡고 김윤한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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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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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베스킨라빈스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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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로 드릴까요? 싱글로 하나씩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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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쿼터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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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시고 가실거죠? 어떤걸로 담아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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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한별- 뭘로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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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팅스타-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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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이 뚜껑을열어 김윤한이 고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던 슈팅스타가 담기고 김윤한이 부르는 것 순서대로 담기기 시작한다. 모두 담기고 난 후에 김윤한이 계산을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오는데, 어디서 먼지가 날아왔는지 내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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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눈에 뭐 들어갔나봐, 따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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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봐. 많이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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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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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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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내 눈꺼풀을 들어올려 시원한 바람을 후우- 하고 불었다. 눈안으로 시원한 느낌이 감돌면서 따가운 느낌이 말끔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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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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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응- 거마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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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스푼을 들고 먼저 슈팅스타를 가득 퍼담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톡톡쏘는 맛과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어우러져 나는 내가 제일좋아하는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입안에서 사르륵 녹여 목으로 넘기는데, 내가 제일 좋아할만 하다.
너랑 같이 먹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넌 여기 없어....

\n


*

\n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바닥까지 싹 비우고 나서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니까, 온몸이 꽁꽁 얼어버린듯한 느낌이든다. 한별이한테 내 목도리를 주긴 했지만, 그 목도리만으로는 이 날씨를 어떻게 할수가 없을것같아서 한별이 손을 꼭 잡곤 내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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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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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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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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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전만해도 너 나 싫어했잖아, 그때 내가 니 손 잡았을때 니가 손 차가운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했던거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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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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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니가 했던 말이 맞는거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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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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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무 나쁘거든, 널 너무 갖고싶어서 너의 상처도 감싸주지 못하는 난 너무 나쁘거든... 근데, 이렇게 못된 나를 봐주는 넌 정말 착한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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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냐, 춥다. 빨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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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던 내 시간들은 어느새 크리스마스도 지나가버렸고, 나에게는 이제 새로운 한해가 인사를 해주고있다. 이때는 이렇게 해야지,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해야겠다하는 계획들도 대부분 지키지못하고 휙휙 지나가버렸다. 모든지 한별이에게 다 맞춰졌고, 한별이가 하자는대로, 모든것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난 점점 더 한별이를 향해 맞춰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몇일이 지나가자 벌써 새해도 몇시간 남지 않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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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종소리 들으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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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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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 계속 돌아다니더니 결국 감기가 걸려버려서 빨간얼굴,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하는데, 그래도 심각하게 아파보이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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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새해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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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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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기싫으면 안가도돼. 감기도 걸렸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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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자.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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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귀엽긴하지만 기복도 심하고, 귀도 얇아서 나중에 직장이라도 나가면, 어떻게 될지모르겠다. 뭐 그럼어때, 내가 평생 돈 벌어주면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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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옷 안입고 뭐해. 가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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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게 생각하고있었는데, 벌써 옷 다입고 문앞에서서 콩콩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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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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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금방 준비하고 나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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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빨리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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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챙겨입는중에도 자꾸만 그 귀여운모습이 생각나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지갑이랑 가방을 챙기곤 문손잡이를 잡는데,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니가 있을걸 생각하니까 자꾸만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분좋은 느낌이 변함없길 바라-, 문을 열고 나가니까 아직 니가 문앞에 있다. 밖에 발을 내딛으려 하는데 방에서 문이 열리더니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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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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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제야의 종소리 들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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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니까, 오늘 진짜 춥다더라. 집에서 그냥 티비로 보면되지 뭐하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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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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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부침개 해줄테니까 , 먹으면서 티비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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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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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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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아!!! 그냥 집에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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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귀여운게 넘어서서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되는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넌... 그게 매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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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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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되게 넓네.. 나 여기서 자고 가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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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한참동안 여러가지 긴긴 얘기를 꺼내놓던 한경이형은 마지막 말을 꺼내놓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들고왔던 가방을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아까 들고온 가방이 엄청 크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가려고 그랬던거구나... 하고 생각하고있는데, 문이 다시 벌컥열리더니 한경이 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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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먼저 씻어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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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를 남기곤, 역시 또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채, 당연하다는 듯이 욕실로 사라졌다. 딸깍하고 욕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자동적으로 하아- 하고 한숨이 나온다. 타박타박 걸어가서 작은 방 문을열고, 포근한 이불하나를 꺼내 깔았다. 언제 부터 이런게 있었나 싶을정도로, 딱- 한경이형이 좋아하는 스타일일것같은 이불이었다. 마치 꽃밭같은 그이불은 보기만해도 향기가 슬슬 올라오는것 같았다. 이불을 고이 다 깔아놓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밖에서 먼저 문이 열렸고, 샤워가운에 촉촉하게 젖은 머리의 형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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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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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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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취향을 너무 잘 알고있는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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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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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잘 알고있긴했다. 둘 사이로 어색한 기운이 흘러서 어색한 웃음을 한번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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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난 남자는 안좋아하는데..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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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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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冗談だった。진지하게 생각하지마 제발...\" *농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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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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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엔 농담이 뭐그러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입 밖으론 나가볼게요- 하는 말이 나왔다. 여긴 우리집인데, 왠지 자꾸만 저 형이 주인인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찝찝했다. 그후로 몇일동안 계속 한경이형의 말을 들으면서 지냈고, 한경이형은 한동안 계속 우리집에서 잤다. 그 긴긴 시간이 흐르고 한경이 형이 돌아가는 날에는 왠지 틀에서 벗어나서 해방된 느낌같은게 들었다고나 할까? 되게 자유로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경이 형이 간뒤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 새로운 한해가 시작이 되곤, 그 짧았던 방학이 다 끝나버렸고 벌써 개학을 해서 졸린눈으로 학교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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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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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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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씹고 지나가? 놀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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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피곤하거든?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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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학교까지 왔는데, 그러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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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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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이... 야아... 놀자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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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민은 지치지도 않나보다... 눈치가 없는건지, 바본건지... 순진한건지... 아무래도 순진한건 아닌것 같은데...  집까지 가는 그동안 뒤에서 계속 쫑알쫑알 하는 말을 무시하면서 가자, 길잃어버린 개에게 한번 관심가져줬더니 쫄랑쫄랑 쫓아오는것 마냥 쫓아오고있다. 집 앞까지 와서야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이제 좀 가라- 하니까 이젠 이게 내말을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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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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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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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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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으아- 너 나빠...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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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꽥 지르자, 갑자기 주저앉아 소리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임은민이 밉지만, 왠지 불쌍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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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어엉... 너어.. 내애가 그러어케 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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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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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알았어어.. 가면 될 거 아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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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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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서 왔던 방향으로 다시 가려는 임은민의 손등을 붙잡았다. 이대로 보내버리면.. 내가 진짜 나쁜놈 되는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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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차 한잔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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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는 사람 보면 왠지... 달래줘야 될것같은 느낌이 들어..... 널 떠나던 날.... 너의 눈물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그래서..... 아직도 아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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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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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빨리나와, 여어 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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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첫눈이 펑펑 내린다. 이제 스물셋도 한달하고 몇일밖에 안남았다. 눈이 온다면서 이따만한 무지개 우산을 들고나가 펼치는 김윤한이다. 아직도 나는 엄마아빠랑 같이 살고있고, 아직도- 김윤한은 우리집에 하숙들어 살고있다. 뭐, 이제는 하숙이 아닌 가족으로 물들어 가고있는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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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무슨!! 늦었어!! 나 먼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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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같이가!! 눈 다 맞고 가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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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늦었다니까, 오늘도 지각하면 그 이중인격이 가만있을거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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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터, 용돈도 벌어쓸 겸 김윤한이랑 같이 시작한 편의점 알바는 평소에는 생글생글 웃다가 1분이라도 늦게오면 사람을 말려죽이려고 하는 여사장이있어서, 최대한 성실히 행동해야했다. 사실, 초중고 십여년동안 공부는 제대로 한적이 없는지라, 그나마 가까운 지방대에 김윤한이랑 나란히 붙어 간간히 버티고 있는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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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35초, 36초, 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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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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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문이 딸랑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먼저 뛰어 들어오고 그 뒤로 김윤한이 하얀눈이 가득쌓인 우산을 털면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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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희 둘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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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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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분까지 오라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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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20분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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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 몇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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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십이....삼....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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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대꾸 하지말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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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가 몇분이냐고 물어봐놓구 왜 나한테 난린건데, 그리고 몇분이나 늦었다고.. 그리고 이사장은 겨우 몇분 늦은거 가지고 마치 한시간이라도 늦은것마냥 부풀릴수있는 재주가 있다. 그 재주로 쇼호스트나 하지 그러셨어요... 삼만 구천 팔백원~ 와우~ 무이자 삼개월~ 하시면서요...  그 단발머리와 빨간립스틱이 정말 쇼호스트랑 잘어울리실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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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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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말야!! 시간은 그렇게 함부로 낭비해도 되는게 아니라고 몇번을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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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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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랑까랑한 여사장의 목소리에 굽신거리고 있는 나와 김윤한 뒤로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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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들어가서 옷갈아입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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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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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빠르게 입고왔던 점퍼를 벗곤 티 위에 유니폼을 걸쳤다. 유명한 편의점이 아니라 그냥 동네에 하나 만든 편의점인지라, 꽤 촌스런 빨간바탕에 하얀 글씨로 영24시라고 써있는 유니폼-. 유니폼을 입고 밖으로 나오자 밖으로 나갔는지 여사장은 없고 손님만 과자봉지 몇개를 카운터로 들고와선 얼마냐고 묻는다. 삑삑 바코드를 찍어서 계산을 완료하곤 삼천오백이십원이요- 하고는 오천원짜리를 받아 천사백팔십원을 거슬러주곤 봉지에 과자를 집어담아 손님에게 건네주자, 김윤한은 그때 서야 어슬렁어슬렁 유니폼을 갖춰입고는 나와서 안녕히가세요-를 크게 외치고는 유니폼 지퍼를 주욱 끌어 잠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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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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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액정에 써있는건, 요번년에는 일찍와서 얼마전에 돌아간 한경이오빠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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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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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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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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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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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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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준희한테 전화걸었는데, 낼모레 한국 간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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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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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오빠가 준희랑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그러더니, 연락을 많이 하고 지냈나보다. 준희가 한국 온다는 얘기는 처음듣는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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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비많이나와- 전해줬으니까,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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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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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끊겼다는 뚜뚜뚜뚜- 하는 소리가 몇번 들리다가 이내 꺼지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곤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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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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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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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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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이 옆에서 어깰 흔들어대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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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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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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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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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가..... 한국엘... 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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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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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들은 먼저 한국으로 보냈고, 남은 조그마한 물건들중에 빠진게 없나 살펴보고, 확인한다음 가방 지퍼를 잠그곤, 가벼운 느낌으로 그동안 지냈던 오피스텔을 빠져나온다. 문을 닫자 삐리릭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긴다. 이 집에서 지낸지도 벌써 5년이 훌쩍넘었다. 이젠 한국보다 일본이 익숙해졌을만큼 오래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가방을 열어 여권과 비행기표를 확인하고 찬찬히 오피스텔을 빠져나온다. 지금가면 언젠가는 오긴오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기때문에 왠지 뭔가 빈 기분이 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방향을 바꿔 계단을 내려간다. 또각또각 하는 구두소리가 계단 전체에 울리고 3층이라 계단 내려가는데에 별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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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렇게 늦게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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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 많이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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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빨리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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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을 나오자, 빨간 차 부터 눈에 띈다. 이 추운 날씨에 정말 손바닥만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임은민은, 그 보다 늦게 눈에 띈다. 임은민이 운전하는 빨간 차에 몸을 싣고선 공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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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먼저 가있어- 나는 정리할게 있어서 좀 나중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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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얼마나 걸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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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면 일주일에서 길면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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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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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서 아는사람들이랑 인사 먼저 하구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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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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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오후 2시 비행긴데 지금이 12시반이니까, 시간이 어느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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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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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 비행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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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가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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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갈게- 나중에 봐. 도착하면 연락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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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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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차가 저 멀리로 사라질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다가, 점이 되어 사라지자 면세점으로 들어섰다. 뭘 고를까 하다가 수수한 오렌지색의 립스틱을 하나 골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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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手伝いしましょうか?\"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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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점원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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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いぃ。この色のほかに違う色がありますか?\" *네에... 이 색말고 다른색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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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女にのプレゼントですね。\" *여자친구 선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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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い。\"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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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れはどうですか? 私が推薦する物ですけど。\" * 이건 어때요? 제가 추천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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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れより明るくて地味な色ならいいんですけど。\" *그것보다 밝고 수수한색이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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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んな色ならやはりこのピンクが良さそうです。\" *그런 색이라면 역시 핑크색인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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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れならこれにし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 그럼 이걸로 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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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귀여운 핑크색깔의 립스틱을 하나 달랑 들고는 면세점을 빠져나왔다. 언제 시간이 그렇게 빨리갔는지 벌써 45분정도 밖에 안남았다. 게이트를 찾아서 여권과 비행기표를 보여주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으로 올때도 이렇게 떨렸었나?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댄다. 작은 가방을 들고는 정해진 좌석에 앉았다. 앉아서 립스틱을 빤히 쳐다보다가 바지 주머니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널 볼수 있을것 같아, 달콤한 꿈으로 빠져든다. 정말 달콤한 꿈속으로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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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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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인천공항으로 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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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가슴이 쿵쿵대고,간질거린다. 니가 떠나던 그날 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니가 간지도 어언 5년이 지났다. 공항에 도착했을때, 그 마지막 너의 모습을 지울수가 없어... 슬픈 눈을 남기고 가버린 너의 모습을 난... 지워버릴수가 없어.... 가지말라고 하고싶던 그날의 아픈 날... 잊을수가 없어... 택시가 어느새 인천공항 앞에 도착하고 택시비를 내곤 택시에서 내렸다. 급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히 공항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천장이 높은 공항 안으로 들어서니까 마음이 붕 뜨는것만 같다. 탁,탁 하고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입국 게이트앞에 수많은 사람들과 발을 나란히 했다. 쿵쿵대는 심장소리가 점점 커지고 침이 꿀떡하고 목뒤로 넘어간다. 도쿄에서 온 비행기는 3시반에 도착한다는 말이 전광판에서 반짝인다. 지금이 정확히 3시 25분, 1분.. 2분... 3분.... 4분..... 5분......이 지나고 삼십분이 됐다. 게이트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커다란 가방을 끌면서 나오고 마중나온 사람들이 그사람들을 반긴다. 하지만...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선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넌 나오지 않는다. 5분, 10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나오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나오질 않는다. 잘근 잘근 손톱을 물게 되고 눈을 자꾸만 깜빡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오고 더이상 사람이 나오지 않자, 게이트문이 닫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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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도쿄에서 온사람 다 나온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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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그럴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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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널 기다리는 내가 바보같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않는다. 그 후로 얼마간 널 기다렸지만 넌 나오지 않았다. 발걸음을 천천히 떼서 밖으로 나온다. 아까 처럼 발걸음이 빨라진다거나 심장뛰는 소리가 커지지도 않고 그냥 천천히 나오기만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곤 택시를 찾는다. 아까는 왠지 빠르게 타야할것만 같았던 택시가 이번엔 타고싶지가 않다. 마음을 다잡고 택시를 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반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너.... 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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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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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지르자 너의 얼굴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마침내 나를 향해 맞추어 진다. 니가 날 보고있다. 다른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직 널 향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좀전에 널 만나러 갈때처럼 다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 김윤한한텐 미안하지만 김윤한을 사랑하지 않았어... 맘이 많이 아파서 그랬던 것뿐인데... 너는 여전히 내 심장속에서 나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아있었구나...  건너편에있는 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다가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주위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너의 얼굴만 보이고 니 소리만 들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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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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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가 가방을 집어던지곤 나를 향해 뛰어온다. 니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니가 나에게 가까워지자 옆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니가 날 감싸안았고 몸이 위로 날아가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바닥으로 추락했다. 깨질듯이 밀려오는 고통과 함께 눈앞에서 니가 보이곤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맣게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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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저기요, 제가 주머니에 뒀던게 없어진 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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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을 먹곤 잠이 들어서 도착하는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와 함께 눈이 뜨였다. 가방을 챙기곤 착륙하고 나서 확인차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립스틱이 사라졌다. 주변바닥을 뒤져도 없었다. 결국 승무원에게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고, 약간 싫은듯한 눈빛이 보이긴했지만, 친절하게도 같이 찾는걸 도와줬다. 비행기가 넓은지라 몇분이 지나도록 립스틱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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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있네요!, 이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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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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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요. 여자친구드릴건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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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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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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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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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십분 가까이 시간을 소비하고서야 승무원이 찾게 되었다. 립스틱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선, 가벼운 마음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몇있긴했지만, 왠지 왔을것 같았던 한별이는 없다. 한별이가 어떻게 알고 와... 하는 생각으로 타박타박 걸어 공항을 빠져나왔다. 나오자 마자 보이는 한국의 하늘이 왠지 맑아보인다. 이제 날씨도 다시 겨울로 돌아온지라 추운 날씨는 다를게 없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바닥을 보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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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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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였다.틀림없이.. 정한별 너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마주편에 작게보이는 얼굴을 보며 난 알수있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선명하게 그려지는 너의 얼굴.... 한번에 보고도 아니... 보지 않아도 난 알수있다. 너라는걸... 그 정도쯤은 눈감고도 알 수있어...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었더니 한별이가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점점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멍한사람처럼 앞을향해 뛰어오는데 옆에서 사람을 태운 택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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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 한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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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쥐고있던 가방이 내팽겨치고 너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진다. 옆에서 택시가 빠르게 달려오지만 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하다. 택시에 부딪히는 너를 꼭 감싸는 느낌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느낌이 든다. 앞이 깜깜해지다가 파란하늘이 눈에 가득찬다. 다시 눈에 너의 모습이 가득 차더니 이내 멀어진다.......... 저기 멀리로 점이 되어 보이지 않게 사라져 버린다. 널 보고싶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게 사라져버렸다. 널 위해 준비한 선물도 줄 수 없게 되는 건가.... 두려운 느낌이 맘을 가득채우고 나즈막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와 나의 이야기의 끝을 맺으려는듯 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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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_307_59645642', ' 제가 소설을 쓰긴했는데... 뭔가 제가 읽기에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요... 읽어주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목은 Remember me 입니다. 심심하기도하고 갑자기 우리 준이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혹시나 내가 전화 하면 방해될까봐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다가 하다가 큰맘먹고 준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없이 \'뚜루루루\'하는 심심한 통화연결음이 흐르고 이쯤 되면 받겠다 싶을때도 안받고 50초넘었는데도 전화를 안받아서 핸드폰 고장났나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한참을 안받아서 결국엔 핸드폰 폴더를 닫으려는 순간 \"왜 또?\" 들리는 준이 목소리... 듣고싶던 그 목소리가... 요즘들어 까칠해진 그 말투가 내 심장에 와서 가시처럼 박힌다. 정말 듣고싶던 목소린데 자꾸만 생갔났던 목소린데 항상 날 생각해주던 준이목소리가.. 요즘들어 무지 까칠해진 목소리가 내 심장 깊숙히 박힌다. 준이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묻어났다. \"어.... 아... 저기.... 그냥... 니목소리 듣고싶기도하구.... 어.....\" \"또 그소리냐? 듣기 싫어. 나 공부중이야 이번주 시험기간인거 몰라? 끊어.\" \"어 저기 준아... 박준희!\" 정말 박준희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니가 보고싶단말.. 바보같이 그거하나도 제대로 못꺼내는 나, 난 널 사랑하는데 요즘들어 왜 넌 나를 사랑한다고 느껴지지 않는걸까..너의 그 목소리는 차갑고 까칠한... 그리고 귀찮음이 묻어날 뿐 왜 날 사랑한다는 말이 안나올까... 왜 날 먼저 사랑한다는 말이안나올까.. 야 박준희... 우리 사귀는거 맞아? * 일본 가는게, 이제 겨우 이틀남았다. 솔직히 가고싶지 않다. 난 아직 한국에서 할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정한별한테 아직 사랑한단 말도 많이 못해줬고, 미안하단 말도 하지못했고..... 날 잊어버리라는 말도..... 아직 하질 못했는데.... 이말을 하면.. 니가 아플 거란 변명으로 내 자신에게 돌아올 상처의 두려움을 감추고 있어. 한별이한테 전화를 걸까 하는 마음에 꺼놓았던 핸드폰 전원을 켰다. 켜자마자 보이는 정한별의 사진 위로 내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번호... 정한별번호를 눌렀다. 누르고 나니까 전화를 걸 자신이 없어졌다. 건다고 해도 너한테 말할 수는 있을까...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리고 내가 이러고 사는거... 아버지란 사람이 날 보낸다는거... 이런 내 인생 정말 싫어서 괜시리 핸드폰을 침대로 던져버렸다. 새파란 침대위로 떨어진 까만 핸드폰이 왜 던지냐는 듯 신경질내며 통통 굴러간다. -\"♪♩♬♩\" 굴러가던 핸드폰에 울리는 벨소리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치켜들고 누군지 확인하는데...  정한별이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정한별이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밖에 안운다는건 다 거짓말이다. 난 벌써 마음 속으로도 내 눈에서도 수백번도 더 울었으니까.... 입고있던 옷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비벼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듯 전화를 받았다. \"왜 또?\" \"어.... 아... 저기.... 그냥... 니목소리 듣고싶기도하구.... 어.....\" \"또 그소리냐? 듣기 싫어 나 공부중이야 이번주 시험기간인거 몰라? 끊어\" \"어 저기 준...............\" 슬라이드를 내려버렸다. 더 이상 정한별 목소리들으면 진짜 가기 싫어 질것 같아서 다 때려치우고 정한별한테 달려갈 것 같아서 아니면 진짜 제대로 울 것 같아서...... 너한테 정말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하고... 니가 날 사랑하게 만들어서... 너무 미안해...... 넌 날 잊어야만 할테니까.... 아니... 잊어줘... 나같이 바보같은 인간. * 시간이 빠르다는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눈깜짝할사이에 지나고 우리학교는 시험이 시작됐다. 이틀동안 준이랑 서로 연락하나도 안하고 진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보고싶지만, 준희의 그 목소리를 듣고 난 다음부턴 왠지 자신도 없어지고 그래서 다시 전화 할 수 없었다. 오늘 가면 볼수있을까 해서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갔다. 원래 시험이란건 신경쓰지 않던 나였기 때문에 준이를 볼수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이리저리 복잡한 이동이 끝나고 난뒤에 시험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1교시 사회시험이 시작되고 골고루 열심히 찍어줬는데 왠지 많이 맞을것만 같은 기쁜 맘이다. 문제를 읽는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죽을 맛이었던 1교시가 끝나고 박준희가 있는 2반으로 통통거리며 뛰어갔다. \"준아- 준아?\" 멀리서 본 박준희 자리는 시험 본 사람 자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깨끗히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눈에 띈 문 앞 책상에 엎드려 졸고있는... 아니 자고있는 애, 그애를 쿡쿡 찔러 깨웠다. \"야. 야?\" \"어? 벌써 시험 끝났어?\" 시험시작 전 부터 잔거구나.......... 포기상태야.......... 뭐 나도 잘난 건 아니지만 문제를 만든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읽어는 봐야 될 거 아냐... \"어... 저기 깨워서 미안한데.. 준이 어디 갔는지 알어?\" 자다일어나서 눌리고 부시시한 머리와 촉촉한 입가, 팅팅부은 눈으로 일어난 그 남자애........... 진심으로... 혼자보기 아깝다... 저기요.. 이불은 덮고 자세요..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누구... 준이??? 그건 누구이름이냐..... 준이라... 흠냠... 아... 박준희? 발음을 정확히 해야지 하-암\" \"그래. 준이어딨는지 아냐구.\" \"박준희 오늘 학교 안나왔는데? 시험인데 학교안나온걸보면 대단한 실력인데? 존경할만해 흠흠!\" 지는 시작전부터 잔거 아니셨나요? 박준희 자식... 나한테 신경질내면서까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다더니 학교는 왜 안나왔다냐? 연락도 안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더니....핸드폰 폴더를 열고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누르니까 박준희란 이름으로 전화가 걸린다. 그리고나서 핸드폰을 얼굴에 갖다대니깐 어떤 이름모르는 목소리 이쁜 언니가 전화를 받는다. \"전원이 꺼져있어 삐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 뭔일 난거아냐? 아... 걱정되네........... 그렇게 나한테 까칠하게 굴었던 앤데도 난 왜 대체 박준희를 좋아하는건지.... 또 걱정된다... 2교시 종이치고 다시 선생님 책상에 전원을 끈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험을 시작했다. 간만에 아는 것 같은 문제가 나와서 시험에 집중하려 했지만 준이 생각이 자꾸나서 제대로 풀 수 없었다. 배운 기억도 안나는 문제를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대충 찍어넘기고 OMR카드를 내버렸다. 대체 어디로 간거냐구 박준희...2교시시험이 끝나고 핸드폰 전원을 바로 켰다. 핸드폰 전원을 켜자마자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소리샘에 새로운 음성메세지가 남겨졌다는거다. *89에 전화를 걸어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세지를 확인했다. 첫번째 메세지입니다 라는 언니의 이쁜 목소리가 흘러나온 후 내 귀에 들리는 건 준이 목소리. \"정한별... 내 여자친구... 내 첫사랑.... 안녕-? 전화로 할려고 그랬는데 시험보는 중인가보네? 어............ 여기가 어디냐면 공항인데.... 나 한시간만 있으면 일본으로 가 .......... 나 진짜 나쁜놈이니까. 나 꼭 잊어.... 너 그거 아냐? 우리반에 김윤한이라고 너 좋아하는 놈 있거든....나 가고나면 그 놈이 달라붙을 테니까 잘 아껴줘라. 그럼... 또 만날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 * 미칠 것 같던 이틀이 지나고 기사가 운전하는 아버지차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정한별... 우리 한별이... 목소리들으면 못 갈 것 같아서... 전화는 안하려고 했는데-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이제 미안해서라도 전화못 걸 것 같아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 그 걸로 정한별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니까 \"전원이 꺼져있어 삐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라는 말이 나오고 아 맞다... 오늘 시험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전화도 못하게 됐네...   차가 빠른건지 시간이 빨리가는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벌써 공항에 도착해버렸다. 비행기 출발까지는 한시간 정도 남은거 같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고, 정한별이 눈 앞에 아른아른거려서 못견딜 것 같다. 정말 지금 아니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어버렸다. \"아버지... 화장실좀 다녀올게요\" 나이는 나이인지라 주름살에 나잇살로 늙어버린 우리 아버지... 아마도 아버지의 마지막이 될 소원으로 일본엘 가서 여러가지 공부를 하게 됐다... 아버지를 이어 나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가 보다. 우리 아버지..... 정말 밉지만.. 우리 아버지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걸 알기때문에... 미워할수가 없다... 그치만 자꾸 정한별이 보고싶고,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차라리 그냥 말을 하고 갔다 올까 했지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면서 아파할 정한별, 다른 사랑이 필요할 정한별에게 미안해서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돌아 갈 수 있는 날은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실 그 날일 것이다. 나 좋자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만을 기도 할 수도 없다. 난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아픔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다. 화장실로 가는동안 별 생각을 다했다. 역시 걸면 안되는 걸까 하고 다시 돌아섰다가 또 다시 지금 아님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가를 몇번이나 반복한다음에 남자 화장실이라는 그림 팻말이 붙어있는 화장실로 들어와서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고 번호를 누른다. 역시 전원은 꺼져있는데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삐소리 후에 목소리를 남긴다. 차라리 이게 잘 된 건지도 몰라... 정말로 니 목소릴 들으면 여기서 뛰쳐 나가버릴 지도 모르니까... \"정한별... 내 여자친구... 내 첫사랑.... 안녕-? 전화로 할려고 그랬는데 시험보는 중인가보네? 어............ 여기가 어디냐면 공항인데.... 나 한시간만 있으면 일본으로 가 .......... 나 진짜 나쁜놈이니까. 나 꼭 잊어.... 너 그거 아냐? 우리반에 김윤한이라고 너 좋아하는 놈 있거든....나 가고나면 그 놈이 달라붙을 테니까 잘 아껴줘라. 그럼... 또 만날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 정말로 하고싶었던말... 날... 기다려줄수 있냐는말... 그 말..... 결국은 못 할 말이었나 보다.. 보고싶지만.. 그래서 슬프지만 눈물은 나지않는다. 내가 울면... 정한별.... 너도 울까봐...   나.... 기다려줄수있냐? *   핸드폰이 손을 벗어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뺨을타고 눈물이 흐르고 맘속에선 준이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준이는 없었다. 박준희... 너 이럼 안되잖아... 그냥 가는게 어딨어... 이렇게 가면... 안되는거잖아... 그 후론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뛰기 시작했다. 3교시 시험이 시작함을 알리는 종이 치는지도 몰랐다. \"아저씨..!! 인천공항이요!! 빨리가주세요... 빨리요.. 최대한 빨리-\"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 느렸다. 할 수 만 있다면 내가 운전해서 가고 싶었다. 지금 너한테가서 거짓말이었다고.. 다 장난이라는 말을 꼭 들어야했다- 아니면..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들어도... 내가 널 사랑한다고 제발 가지말라는 그말은 꼭하고싶었다.. 정말 자존심 다버리고... 매달리고 싶었다.. 널 사랑하니까... 난 너 아니면 안된단말야... 바보야... \"아저씨.. 좀만 더 빨리가면 안돼요?... 네..? 빨리...가야되는데\" \"빨리가고 있응께 걱정하지말고 있으요... 재촉하면 내보고 우짜라는 말인교..\" \"아저씨이... 꼭 지금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공항가는 길은 아직까지도 멀기만 하다. 니가 벌써 없을 까봐 두려워져.... 준아... 내가 다 잘못했어... 그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갈게....... * 메세지 벌써 들었으려나? 그럼.... 올까....? 아냐.... 오면 안돼.. 발 한걸음 뗄 때 마다 수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미쳤나봐.. \"뭐하냐.. 빨리 안오고?\" \"네?.... 네...\" \"뭔생각을 그렇게 해? 가기싫으냐?\" \"아.. 아뇨... 잘갔다 올게요....\" \"그래... 힘들겠지만 부탁들어 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다녀오면... 좀더 멋진사람, 그리고 강한사람이 돼있으라 믿는다.. 그리고 혹.. 내가 없더라도.. 엄마.. 니가 꼭 지켜야한다\" \"......네...\" 니가 오지 않을거라는거 알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널 잊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머리속에서 니가 둥둥 떠다니고 눈앞에서 니가 왔다갔다해..그만큼.. 정한별... 널 많이 사랑해 * \"아저씨, 여기요 택시비- 잔돈은 안주셔도 돼요\" \"학생- 학생-!! 잔돈은 무신!! 돈이 모잘라는디-\" \"네? 죄송합니다- 여기요\" 아.. 미치겠네 안그래도 정신없고 시간없는데 택시비까지 헷갈리구.. 아.. 지금 이생각을 할때가 아니지 준이... 박준희... 어디있는거야...? 아직 안갔지? 안갔을 거라고 믿을게.. 너도 날 사랑한다고 믿을게- 넓디 넓은공항에서 박준희를 찾는다는건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물건을 찾는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더 어려웠다. 같은 곳을 계속 빙빙돌고 그 넓은 공항을 계속 돌아다녔지만 준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 게이트앞에 서있는 준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얼마만에 니 얼굴을 보는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연락 끊고 있었는데.. 얼굴도 못보고 목소리도 못듣는 그 시간동안 박준희 얼굴을 다 잊어버린것같았는데- 이렇게 멀리서도 니얼굴 보자마자 알아보는건.. 내가 널 많이 사랑하는 가봐.. 정말로.... 그자리에 가만히 서서 멍하게 준이가 있는쪽을 바라만 보다가 준이가 아버지와 인사가 끝났는지 등을 돌려 문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는게 보여서 정신이 번쩍 뜨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널 못볼 것 같아서 무작정 뛰었다. 그리고 니이름을 불렀다.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니가 날떠나는게 싫어서 소리질렀다. \"야 박준희!!!!!!..\" 니가 날 돌아 보는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날 향해 돌아올 수 없었다. 박준희에 눈에서 눈물이 반짝반짝 빛나고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너의 눈에서 나를 향해 말하고있는게 보였다. 넌 분명히 날 향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 기다려 줄수있냐?\" 라고.... 니눈에서 날 향해 말했다. 난... 내가 기다리고 싶지않아도 널 기다릴수밖에 없어..  내 기억속에서 너란 사람 못지우니까...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는게 아니니까... 그리고 난 널 사랑하니까..게이트 문이 닫혀버렸다. 너와 나의 마음의 문이 닫혀버렸다. 너에 대한 나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근데 준아...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나는 사랑이란 병은.. 니가 없으면 치료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 앞으론 아파도 니가 내옆에 없는데, 나... 아파서 어떡해... * 아버지랑 인사를 끝내고 게이트안으로 들어가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게 보였다. 그게 내 눈에서 정한별로 보였는데, 이제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됐는줄 알았다. 내 눈도 바보가 돼버린 줄 알았다. 문이 닫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소릴 질렀다. 내이름을 불렀다. 너였다. 지금 내눈앞에 정한별이 서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지금 돌아가버리면..., 내가 널 벗어날 수 없게 될 것같아서..... 근데.. 정한별... 니가 날 기다려줬음 하는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 인가? 근데.. 니가 날 기다려줬음 좋겠다.정한별... 나 ... 기다려 줄수있냐? 입술을 꽉깨물고 눈물을 참는데도 눈물이 난다. 널 앞으로.. 내 기억속에서 어떻게 지울지... 참.. 하느님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왜 우리를 이렇게 떨어뜨려 놓냐고.. 하늘에 항의하고 싶다. 우리가 너무 사랑해서... 질투하는 거라면... 내가 사랑하는걸 조금 줄일테니까.... 제발 정한별은 아프게 하지말라고.. 그렇게 말하고싶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 사진앨범에 들어가서 그동안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하나씩 지운다. 사진 하나를 지울때마다 눈에선 눈물이 한방울씩 떨어진다. 옆자리에 아직 사람이 안들어온건지.. 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는건진 모르지만.. 아직 옆자리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지금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이 사진들도 지우지 못할테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사진들을 지워나가고 마지막 사진... 정한별이 혼자 찍은 사진.. 이땐, 정말 우리가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했는데..  다른 여자 만났다고 정한별이랑 싸우다가 결국 내 핸드폰 가져가더니.. 여자애들 번호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다지우고, 막 핸드폰 만지더니 결국 찍은게 이사진이다. 나중에 이사진 보고나서 귀여워서 죽는 줄 알았는데..손등으로 쓱쓱비벼서 팅팅부은 얼굴로 이사진을 지워야되나 지우지 말아야되나 생각하고있었다. 다른사람이 보면 얼마나 웃길까.. \"휴대전화는 전원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아..네...\" 그 사진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고 전원을 껐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변명으로 그 마지막사진을 지우고싶지않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 하루.. 이틀... 일주일... 니가 없는 시간은 미치도록 느리게 지나갔다. 차라리 니가 내 머리속에서 지워졌음 좋겠단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박준희네 반으로 찾아가 그의 자리를 쳐다보기도하고 앉아보기도하고 그러다가 울고 울다 지쳐 쓰러지고 1분 1초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겠고, 수업내용도 들어오지않았다. 내 머리속을 그리고 내 심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건 오직 하나- 박준희... 너밖에 들어올수가없대.. \"흡...흐흑......\" \"야-\" \".......흡...\" \"야아...\" \".......흐...흑...\" \"또 우냐..?\" \".......흑흐으........\" \"울..지마...\" \"....흐아앙-.........\" 지금 이시간도 언제나 처럼 준희자리에 앉아서 준이가 썼던 책상..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울고있었다. 울려고 한게아닌데.. 여기만 오면 눈물이 나서... 나... 안울려고 하는데 그래서 여기 안오고싶은데.. 시간만 나면 발걸음이 저절로 오게 되는곳이라서.. 나도 어쩔수가없다.. 이젠 쪽팔리지도 않는다. 이반 애들도 또 와서 울으려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데- 여기 일주일 와있는동안 내가 올때마다 내 앞에 앉아서 항상 말거는 애가있다. 쪽팔리게 시리... 우는거 첨 보냐.. 하는 식으로 무시하고 울고있는데.. 나보고 울지 말랜다. 근데... 걱정해주는 투가 우리 준이같애서 준이가 너무 보고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건지... \"야- 너 우니까 더 못생긴거 알어?\" \"....흐..흐흑... 니가 더 못생겼거든....\" \"웃어야지, 이렇게- 스마아일~\" \"흡.. 흐.. 머어..?\" \"스 마아이일~~\" \"... 야... 너 빨리 안꺼져.. 흡... 나지금 심각하거드..은?\" \"박준희.. 얘 때문에? 에이- 얘가 뭐라구..\" \"너.. 그러다 맞는 수가 있..다..아... 흐..읍..\" \"정한별-\" \"내이름은... 흡흐....어떻게 아냐?....\" \"내가 너 좋아하니까- 뭐...\" 내 머리속엔... 내 심장속엔 박준희 너밖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니가 자꾸 나갈려고 하니까... 자꾸 다른사람이 들어오려고 하잖아... 바보야... 보고싶어.. 바보... 너 돌아오면... 진짜 미워할거야... 내 머리속에.. 내심장속에 너 못들어오게 할거야... 바보야.... 보고싶어.... * 옛날에- 내가 정한별이랑 사귀기 전에... 김윤한이라는 애랑 내기를 했다. 정한별이랑 먼저 사귀게 되는 사람이 돈받게 되는거- 그 내기를 시작하기로 하고 바로 내가 그냥 정한별한테 고백을 해버렸는데- 한번의 고민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버려서 내가 내기에 이겨버렸다. 그때 김윤한은 정말로 정한별을 좋아했었고, 난 재미삼아서 내기한거였는데- 사귀게 된걸 알고 김윤한이 나한테 뭐든 다해줄테니까 정한별이랑 헤어지라고 했었다. 그래서 난 뭐 상관없었기때문에 정한별이랑 헤어지려고했었다. 근데- 사람마음이라는게 쉽게 변하는거라서 정한별을 알고 만나고 하다보니까 어느새 정이들고, 처음엔 귀엽다 귀엽다 생각하던게 점차 사랑으로 번져나갔다. 그래서.. 정한별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버려서.. 헤어질 수 없었다. 아니, 헤어지기 싫었다. 정한별을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어졌다. \"야- 뭔생각해?\" \"어? 아무 생각도 안해\" 난 어렸을때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간거여서, 그때 친했던 친구가 아직도 일본에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같이 밥먹기로 하고지금 밥을 먹고있는데- 딴생각하느라 밥을 먹다가도 물을 마시다가도, 이게 지금 밥을 먹는건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먹고있었나보다-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생각나버리는게 정한별이어서... 자꾸만 보고싶어서... 딴생각을 하게된다. 오랫만에 만난친구에겐 미안하지만 ... 이젠 얘까지 정한별로보이기 시작했나보다- 자꾸만 멍하게 쳐다보고있게 된다. \"너 정신나간 사람같애- 무슨 일있었어?\" \"아... 아무것도 아냐... 하핫..\" \"억지로 웃지마.. 너지금 웃을 기분 아닌거같아\" \"그.. 그래보여?.. 왜? 나 기분좋은데 하하하....핫..\" \"너 내가 거짓말하는거 싫어하는거 몰라?\" \"그.. 그..랬었나? 미안-\" \"응... 밥이나 먹어...\" 이젠 정한별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되버려서.. 정한별 없이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누가 좀 가르쳐 주는 사람없나... 제발 좀..... 잊을수 있는 방법은 없나- \"야- 임은민..\" \"왜?\" \"내가 그렇게 이상해 보이냐?\" \"갑자기 또 무슨... 그래- 너 이상한 사람같애- 고민있음 말해봐- 어렸을때 부터 내가 니 얘기 많이 들어줬잖아-\" \"아냐... 밥먹자\" \"싱겁긴-\"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한가지... 너한테... 지금 정한별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하면.. 니가 해결해 줄 수 있는것도 아니잖아- 난 겁쟁이라서 아무한테나 말 못꺼내겠다- * 저녁늦게 되서야 학교가 끝나고서 가로등 하나 있는거 마저도 깨져서 깜빡깜빡 거리는 집앞 골목을 걸어가고있는데 뒤에서 타박타박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 발소리는 내가 멈추면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따라 걷고있었다. 진짜 이씨.. 안그래도 무서워 죽겠는데..! \"야... 너 자꾸 따라올거야?\" \"어?\" 우리집 앞에서 서서 자꾸 따라오는 그자식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짜증나는 표정으로 그리고 짜증나는 말투로 말해줬다- \"너 신경쓰여, 왜 자꾸 따라와?\" \"뭔소리야- 난 조용히 우리집 가고있었는데-\" \"뭐어?\" \"우리집 간다고 우.리.집, 여기가 우리집인데?\" \"너네집? 여기가?\" \"왜? 여기가 우리집이면 안돼?\" \"여..기.. 우리집인데?\" \"히히-그럼 뭐 니가 이집 주인인가 보네\" \"엉? 뭔소리야?\" \"잘부탁드립니다- 오늘부터 하숙하게 된 김윤한이라고합니다\" * \"잘 들어가-\" \"어.. 어- 다음에 또보자\" \"응- 안녕-\" 저녁을 먹고나서 임은민네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냥 가려다가 안에 들렸다가 잠깐 차마시고 다시 나와서 이제 차에 타서 핸들을 잡으니 또 정한별 생각이 난다. 니가 지금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정한별이라는 사람은.. 공기랑 같아서- 같이 있을땐 중요한건줄 몰랐는데.. 없으니까 그게 참 중요한 거란걸 알았다- 사랑한다고 말로만 했던 지난 날이 바보같아진다- 오기 전에 까칠하게 대하지말고.. 차라리 잘해주고 올걸 그랬나? 그럼 이렇게까지 생각은 안났으려나...오랜만에 하지만 왠지 항상 해왔던것 같은 운전이다- 처음엔 도로를 달린다는게 무서웠는데- 배우고 나니까 차츰 무서움이 사라졌다. 정한별도 내가 없어지고 처음엔 슬플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서 나를 차츰 잊어줄까? 그래야 정한별한테는 편하겠지만- 내 이기적인생각은 니가 날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때- 나만 널 기억하고 넌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정말 슬플것같으니까.익숙하지않은 일본의 도로를 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끼익\' 하는 마찰음이 시끄러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차문을 잠그고 나와서 임은민한테 도착했다고 문자나 보내려고하는데, 주머니 어디를 뒤져도 핸드폰이 없다. 차문을 다시열고 차안을 뒤져봐도 핸드폰이 없다. 잃어버렸나? 어쩌지.. 정한별사진..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 \"엄마!! 엄마-!!\" \"아주머니-안녕하세요?\" \"어,그래- 한별아- 우리집에 새로 들어온 하숙생, 윤한이- 말했었나?\" \"왜 엄마 맘대로야! 하숙생이라고 말만했지, 얘라고 말했냐구!!\" \"왜? 평소엔 하숙생 들어와도 잘만 대하드만 얘가 갑자기 왜이래\" \"아- 진짜!\" \"정한별-! 시끄럽고! 들어와서 밥이나 먹어, 윤한이도 어서 들어와서 먹구.\" \"네에-\" \"씨이-, 난 먹을생각 없어-\" \"얘가 진짜!\" 어제 저녁에 엄마가 하숙생 구했다고 그랬었는데.. 누굴까 별로 궁금하지않아서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게 얘일줄은 몰랐다- 아... 미치겠네.. 왜 하필이면 얘지?.. 왠지 되게 싫다. 어... 근데 내가 얘를 싫어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내가 얘를 왜 이렇게 피할까... \"야아-\" \"야! 넌 노크 할줄도 모르냐!! 여자방에 왜 노크도 없이 들어와!\" \"밥 안먹어? 배고플텐데- 너 학교에선 하루종일 울기만 하더니 집에선 무섭다-\" \"뭐어?\" -꼬르륵... 밥 안먹을려고 했는데... 역시 하루종일 울기만 하니까 배는 고픈가보다.. 우씨.. 근데 하필 이럴때- 꼬르륵인건데!!! 아 쪽팔리게 시리..... \"풋... 야 니 배가 배고프댄다. 그만 고집부리고 나와서 밥먹으래- 킥....\" \"너, 진짜!!\" \"어 야 !! 야!! 던지지마, 알았어 먹기싫음 말던가\" \"아우... 저걸그냥\" 김윤한... 이라는 사람이 우리집에 들어와서 신경쓰이기는 한다만.. 뭐 나쁘진 않네- 아닌가?.... * -삑.삑.삑.삑.삑. 띠리리링-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발 벗고 들어와서 당장 전화기 부터 들었다- 하나뿐인 정한별 사진이 있는 핸드폰.. 잃어버리면 안되는거라서... 신호가 가면서 연결음이 나온다. 내 통화연결음이 이렇게 지루했던가...? 그냥 심심하게 \'뚜루루루\' 하기만하는 통화 연결음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렇게 두세번 통화연결음이 가더니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역시 떨어 뜨린건가?.. 전화를 받자 もしもし가 아닌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한국인이네? \"네- 저기 핸드폰 주우셨어요?\" \"네?\" \"제 핸드폰 인데요- 떨어뜨렸나본데- \" \"야- 박준희. 나 은민이야-\" \"어? 임은민- 니가 왜 내 핸드폰을 가지고 있냐?\" \"글쎄- 그건 내가 물어봐야 될것같은데- 니가 우리집에 두고 간 거아냐?\" \"그랬나? 무튼- 내가 지금갈까? 중요한 거라서-\" \"지금? 늦었는데- 내가 내일 너희집으로 갈게-\" \"우리집으로?\" \"어어.. 아직도 전에 있던데 살아?\" \"아니- 지금은 다른 오피스텔에..\" \"어 알았어. 자세한건 이번호로 내일 전화하면 되지?\" \"어...\" \"응- 그럼 내일 다시 전화할게-\" \"어... 귀찮게 해서 미안\" \"아니야.. 내일봐-\" 내가 아까 임은민네 집에 핸드폰을 두고왔었나?.. 휴우 그래도 다행이다.. 잃어버리거나 한게 아니라서- 한별아 미안해- 내가 자꾸 너를.. 아니 니가 담겨있는 핸드폰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아서-정한별이 없는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핸드폰을 두고와서 정한별에게 무지 미안해진다- 내가 널 잃어버린거라고 생각되서..... * -♪♩♬♩♪♩♬♩♪♩♬♩ \"하아암-\" 아 벌써 아침인가..? 핸드폰에 설정해놓은 모닝콜이 정확히 세 번 울릴 때 일어났다- 어제까지는 어깨가 결려서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면 항상 아프곤 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어깨가 안 결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서 왠지 기분이 좋아서 룰루랄라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까 오늘따라 내얼굴이 더 이뻐보이고 막그러는데... 드디어 내가 미친건가... ?... 크큭.... -똑똑똑!! 한참 미친듯한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과격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야- 나야.. 문 좀열어봐..\" \"아 왜!! 나씻고 있거든! 넌 작은 욕실로가-\" \"아줌마가 작은 욕실쓰고있어... 야.. 옷벗고 있는거 아님 문열어봐... 아 쫌!!!....\" \"이씨.. 왜 신경질이야! 내가 먼저 들어와있었거든!!\" 결국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는 걸로 시작하고 욕실 문을 열어줬다. \"아.. 뭔데 난리야-\" 문을 열어주고나서 신경질적으로 다시 치카치카(...)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뒤에서 들리는 쪼르르륵.. 하는소리.. 뭐지?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꺄!!! 야!! 너뭐야!! 이변태야!!!\" \"아 뭐야!! 야야!!\" -촤륵... 이자식이 내 뒤에서 소변을 보고있는것이었던 것이었다. 뭐이런 변태같은 자식이 다있나 하고 양치하고 입을 헹구려던 물을 김윤한한테 부어버렸...다. 하하하...... \"아 차거!! 야, 이씨- 뭐야!!\" \"이 변태야!!\" \"내가 뭘 어쨌다고 찬물을 붓고 난리야!!\" \"빨리 안나가?!!\" \"아씨- 차가워 죽겠네!! 수건이나 좀 줘봐!!\" \"수건은 무슨- 빨리안나가?!\" \"알았어, 알았어-\" 수건은 무슨... 다시 컵에 물을 받아서 부어버리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자 알아서 뒤로 물러난다. 다시 양치질을 제대로 하고나서 물로 입을 헹구는데.. 아 이빨시려... 물 진짜 차갑다.. 아..  괜히 미안해지는데?... 하하하.... 아냐아냐 내가 잘못한건 없다구-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와서 수건으로 머리를 툴툴 털고 나오는데- 지 방에서 나오는 김윤한이 나한테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래서 김윤한한테 난 잘못한거 없다는 표정을 지어줬다.그랬더니 김윤한 이자식.. 썩소를 짓고 욕실안으로 사라진다. 잇..뭐야!! \"한별아- 윤한아- 아침먹자.\"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교복을 갖춰입고나서 아침을 먹으려고 주방으로 나와서 식탁에 앉았더니.. 김윤한이 덜말린 머리로 교복을 챙겨입고 나온다. 내가 엄마 옆자리에 앉고 김윤한이 엄마 앞자리에 앉는다. 평소에는 대충 때우던 아침 식사였는데, 뭐가 이렇게 반찬이 많지? \"잘먹겠습니다-\" 김윤한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숟갈 퍼내더니 \'에취-\' 하고 기침을 한다. 나는 왠지 뜨끔하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 감기 걸렸니?\" \"아.. 네 그런가봐요\" \"좀 따뜻하게 하고 다니지\" \"따뜻하게 하고 다녔는데- 아ㄲ...\" \"머..머리를 안말리고 그러니까 그렇지....\" 그래그래.. 그건 내 잘못이아니야- 난 정당한 짓을 했을 뿐인걸- 아하하하...하하..하..하.. 억지로 웃음을 짓는다. 가식.. 어우.. 완전 가식 ... 김윤한이 날 한번 쳐다보더니 금새 헤헤- 웃는다. 근데 왠지 그 웃음이 무서워 보이는건 기분탓인가?... \"맞아. 머리를 안말려서 그런가봐... 머리 말려야지... 하하핫...\" 근데 왜 ... 니가 웃는게 난.. 박준희로 보일까..... 아.., 생각나버렸다. 또, 보고싶어져 버렸다. 오늘은 잊어버리고 지나갈수 있었는데- * \"자- 여기\" \"어.. 고마워..\" 아침일찍 전화가 왔다. 지금 핸드폰 가지고 올테니까 주소 알려달라고, 솔직히 더자고 싶었는데.. 핸드폰얘기를 들으니까 눈이 번쩍 뜨였다. 정한별이 다시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달까? \"근데 니 사진앨범에 하나있는 그 사진.. 여자친구야?\" \"어?\" \"심심해서.. 니핸드폰 사진앨범에 들어가는데 비밀번호가 안걸려있는거있지- 기분 나빴다면 미안-\" \"어.. 아냐.. 괜찮아-\" \"그래..? 그사진 여자친구야?\" \"어,....? 어....\" \"이쁘더라-\" \"어.. 고마워\" \"근데, 니여자친구는 한국에 있어? 왜 혼자왔어?\" \"아.. 사정이.. 있어서-\" \"니가 벌써 여자친구가 있구나- 난 없는줄 알았지\" \"응...\" 난 나지막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크게 웃을 수가 없었다. 정한별이 생각나버려서... 왠지 마음이 아프다... \"너 그거 알아?\" \"뭘..?\" \"나, 어렸을때 부터 너 좋아했는데-\" \"어.., 그래..?\" \"뭐 반응이 그러냐- 사실.. 나 작년에 너 일본왔을 때 고백 하려고 그랬는데.. 입이 안 떨어지더라\" \"어.......\" \"나 너 되게 많이 좋아했는데.. 여자친구 있다니까 아쉽네- 이번엔 진짜 어떻게 해볼려는 생각 있었는데\" \"............\" \"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마...키키.. 내가 여자 친구 있는 애를 어떻게 할까봐 그래?\" 미안.... 지금 나한텐 정한별밖에 안보여서.. 내심장에 다른사람이 들어올수가 없다... 지금 내 맘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한별이 한테 너무미안하잖아... 그리고... 난 널 좋아하게 되지 않을테니까 너한테도 미안해질 뿐이야.... * 아침부터 김윤한이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또 학교 갈 시간에 늦었다. 뒤에서 자꾸 말 걸어서 귀찮게 만들고 말이야.. 뒤에서 계속 따라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힘들지만 뛰기로 했다. 한참을 헥헥 거리고 뛰어가다가 이제 없어졌을까 해서  뒤를 돌아보면 김윤한은 여유로운 눈빛으로 내뒤를 계속 졸졸 쫓아오고있다. 이자식 뭐지..? 순간이동이라도 하나...역시 뛰는게 걷는것보단 빨리오는데 도움이 됐나보다, 다행히 교실안에는 늦지않게 도착했다. 교실안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다가 이제 좀 살 것같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담탱이가 칠판에 큼지막하게 써놓은 \'자습\'을 보고 왠지 쫄아서 자습할 공책을 꺼냈는데 은정이가 새로운 소식이라면서 달려온다. 또 맨날 무슨 새로운소식.. \"뭐 합반?\" \"어- 기말고사 봤던걸로 성적순으로 합반한다는데?\" \"성적순? 아.. 미치겠네.... 나 그때 시험 사회밖에 안 봤다고 볼 수 있는데....\" 오 마이갓... 나.. 시험.. 안봤단 말이야..... 사회는 뭐.. 배운기억도 안났었고, 2교시가 수학이었는데 수학을 제대로 쳤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다음에 일주일동안은 울었던 기억 밖에 없는데.... 아.. 망했다.... 성적에 연연하진 않지만 이런 건 싫어.... \"그러게 말이야- 갑자기 무슨 합반을 한다고..\" \"이제 2학년도 몇 달밖에 안남았는데 무슨 합반이야.. 교장이 미쳤나-\" 미쳤어- 미쳤어... 교장이 진짜 미쳤어... \"그니까.. 성적순으로 함으로써 학습 능률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학습.. 능률 뭐..? 아.. 진짜- 난 그럼 끝반이겠네..\" \"끝반이라고 다 못하는 애들은 아니래-\" \"그럼 뭐야 또- 복잡하게 시리!!\" \"전교 1등은 1반.. 2등은 2반 …해서 8등은 8반이고 다시 9등은 1반 이런식으로 돌아가는 거래\" \"진짜 복잡하게도 해놨네- 아씨..\" \"문제는 남녀 합반이라는거 아니냐\" 뭐어...? 남녀.. 합반? 남.. 녀...... 합.반? \"뭐어!!!!!!! 진짜 이 찐빵교장새끼가\" \"다음주 부터 합반이래.\" \"히익-! 다음주? 뭐 그렇게 빠르냐? 오늘 무슨요일인데?\" \"오늘? 잠깐만-\"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핸드폰을 찾아서 슬라이드를 올려 날짜를 확인하는 은정이- \"오늘 금요일인데?\" \"벌써 금요일이야? 내일 놀토아냐?\" \"맞아-\" 남녀 합반이면- 체육복도 맘대로 못갈아입고, 행동하나하나 신경써야되고.., 이상한짓(...) 도 할수가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이상한 짓을 했다는 건 아니고.....!! 아...! 무튼무튼!!! 찐빵교장새끼 맘에안들어!!!!!! 퉷퉷이다, 이딴 학교. * \"헤헤- 그치그치?\" \"어- 근데……\" \"어... 히히.. 진짜? 되게 귀엽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귀찮아서 틱틱거리며 6반에 들어갔었을때- 그 때였던 것같다. 내 기억엔 그때부터 널보면 심장이 뭘 훔친것 마냥 두근두근 뛰어댔으니까.. 항상 히죽히죽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고, 내심장이 병에걸린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었다. 그래서 너의 옆을 지날땐, 혹시라도 내 심장소리가 너한테 들릴까 조심조심 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널 잡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넌 지금 내옆에서 항상 날향해 웃는 얼굴로 서있어 줬을까? 지금처럼 박준희때문에 울지않고, 나때문에 웃어주는 사람으로 내옆에 있었을까? \"야 김윤한- 농구 한 판 뜨러가자~\" \"별로-\" \"그러지말고 가자- 너 요즘 왜이렇게 농구 안할려고 하냐?\" \"춥잖아. 다른애랑 가서 해\" \"뭔 사내새끼가 추위는 되게 타네-\" 괜히 교복 마이를 더 당겼다. 왠지 자꾸만 추워지는 것같아서... \"남자는 안추우란 법있냐? 안그래도 추운데 문은 왜열어놨어- 문닫아\" \"이씨- 왜 니가 닫지 나보고 시켜!!\" \"에에취! 야.. 나 감기.. 에취! 걸렸어\" 감기 걸린게 도움도 되네- 귀찮은 일 안하고- \"어제 까진 멀쩡하던게 오늘은 왜이래\" \"오늘 아침에 찬물맞았어..\" \"누구한테..?\" \"아- 있어.. 세상에서 제일... 아냐..\" 그런 여자가 있어-..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세상에서 제일 지켜주고 싶은 여자.... 내 건 아니지만... \"미친... 됐고! 빅뉴스 있어 빅뉴스\" \"아 또 뭔데-\" \"성적순으로 남녀합반한대-\" \"진짜?\" \"그래에- 너 시험 잘봤냐?\" \"아니.. 잤지\" \"나도- 크크\" 남녀합반이라... 재밌는 사실인데? * 벌써 몇번째 핸드폰 사진앨범만 왔다 갔다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이 없어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잡고 사진앨범에만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있다. 근데 신기한건- 니 사진을 보니까 배가 안고프다는거야... 한별아- 신기하지? 널 보고 있으면 만병이 다 나을 것도 같다. -♪♩♬♩ 한참을 식탁에 앉아서 왼쪽 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쪽 손으로 핸드폰만 만지작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이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하고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임은민이다. \"Hello~\" \"왜\" \"넌 진짜 맨날 사람 무안하게 반응이 그게 뭐냐?\" \"나 영어 쓰는거 싫어해-\" \"누가 영어쓰랬냐.. 반응을 좀 해달라는거지\" \"알았어, 알았어, 안녕- 됐냐?\" \"치이- 됐고, 같이 점심 먹을래? 아직 점심 안먹었지?\" \"점심?\" 벌써 점심먹을 때가 다됐나? 아까 내가 배고파서 일어난게 9시 약간 안됐을때 였는데- 지금 벌써 열두시가 넘었네- 내가 세시간 넘게 이짓하고 있었던건가..? \"응응-? 먹을거야? 같이 먹자아- 나 같이 먹을 사람 없단 말야\" \"어.. 알았어- 근데 나 시간좀 걸릴텐데-\" \"시간이 몇신데 집에서 뭐하고있는거야\" \"아.. 미안\" \"맨날 미안하대- 알았으니까 한시까지 준비하고 신주쿠에 유명한 그.. 식당 알아? 이름이 뭐였더라\" \"요시노마? 마츠야? 어떤 거 말하는거?\" \"아 맞다- 마츠야였어. 거기로 나와.. 알았지?\" \"어.. 알았어\" \"응.. 이따봐- 늦지말고 나와라\" \"어,어...\" \"안녀엉-\" 빨래 안해서 입을옷 없을텐데-  밖에 추울텐데... 뭐입고 가냐 또.. 근데.. 귓속에서 정한별 잔소리가 들리는것같다. 예전에 우리집에 왔을때 잔뜩 쌓아놓은 옷들보고 \'왜 밖에 안내놓는거야! 어우 드러워 너랑 안놀아\' 했던 니말소리가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자꾸만 내머리속에서 너의 생각이 뒤집어져 옛날생각이 난다. 사람 눈이 앞에 있는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지말고 앞만 보면서 가라고 해서 앞에 있는거라고 하던데- 쓸모없는 내눈은 눈물밖에 나지 않는 걸까... 진짜.. 쓸모없다- 누가 물어보면 내 눈이라고 하기 싫을 만큼.... * 지난주에 합반된 애들 선생님이 성적순으로 결정하시고 나서 드디어 오늘! 합반 된 애들 발표가 나는 날이다. 아침부터 그것때문에 긴장해서 물 엎고 필통도 다 쏟고 대체 내가 이런 일에 왜 긴장을 하고있는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긴장을 정말 많이 하고있었다. 혹시- 잠시 후에 일어날 요상한 일을 미리 직감해서 그런건가... 대체 난 누구랑 같은 반이 되길래- 하아.... 미치겠다. 나 지금 떨고있니...학교에 도착해서 잠을 자면 좀 긴장감이 덜할까 해서 교복 마이 주머니에 손을꽂고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잠깐 잤는데 꿈 속에서 조니뎁까지 나오고말이야... 무튼 열심히 잠을 자고있는데 애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소리에 졸린눈을 비벼가며 상체를 일으켰다. \"다들 조용,조용-\" \".........\" \"오늘 합반 발표난거 다들 알고있지?\" \"아-\" 곳곳에서는 애들이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담탱이를 꼬라보면서 야유를 퍼부어댔다. 난 졸려서 그런거 할수는 없었지만, 나도 같이 야유를 퍼부어주고 싶었다. 진짜 남녀 합반 하는거 싫은데 말이야-  그 짓들을.... 할 수가 없잖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끄럽고- 자 그럼 발표한다-\" \"........\" \"자- 1반으로 가는 애들은 …\" 선생님의 발표가 시작되고 애들은 자기의 이름이 언제 나올까 하는 얼굴로 귀를 기울여가면서 선생님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5반은 여기까지고- 자 우리 6반에 남아있게 되는애들은… 3번 … 8번 박은정…… 그리고 13번 정한별…… 이상 5명이다. 자 다음 7반…\" 어? 나 6반에 남아있네- 아싸.. 추운데 밖에 안나가도 된다- 그리고 은정이랑 같은반이네~ 히힛.. 내가 좀 운이 타고 났나봐.. \"담임선생님은, 각 반에 있던 선생님 그대로이시고, 자 이상으로 합반발표는 여기까지고 각자 반으로 이동-!\" 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선생님이 앞 문밖으로 나가시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가방을 들쳐매고 각자 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른반 애들도 하나둘씩 우리반으로 들어왔다. 성적순으로 합반한다. 그래서 뭐 성적 다 밝히고 이런 건줄 알았는데 아니네? 뭐야- 괜히 겁먹었잖아- 나 바본가봐. 헤헤- \"야- 너도 이 반이냐?\" 한참 헤헤 거리면서 웃고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는 그대로 있고 \'어떤 놈이야?\' 하는 눈빛으로 눈만 교실문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윤한이 앞 문을 통해 교실안으로 들어온다. 뭐야 김윤한도 우리반이야? 너보니까 기분 확 잡치는 구나.. 근데 누구 부르는거? \"어? 오늘은 안우냐? 울면 못생겨진다 그러니까, 또 이미지 관리하시는거?\" 김윤한이 누굴 부르는 걸까? 하고 전후좌우를 꼼꼼히 둘러보며 살피고 곧 김윤한이 시선이 날 향해있다는걸 알아채고, \'나?\' 하는 입모양과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김윤한을 쳐다봤다. \"그럼 너지 누구냐? 이반애 울면 못생긴애가 너밖에 더있냐?\" \"미친.. 넌 가만히 있어도 못생겼거든-\" \"쓰읍- 넌 우는거 아니면 욕밖에 못하지? 이쁜 아가씨가 입이 그렇게 험하면 쓰나\" \"머어?\" 한참 김윤한이랑 얘기 하고있는데, 주위에서 수군 거리는 소리도 들리는거 같고 은정이가 내 옆으로 와서 조용히 말하는게- \"야.. 너 박준희랑 깨진거였어? 벌써 새로운 남친?\" \"야!!\" \"아- 깜짝이야. 물어본거잖아- 진실을 말해줘 궁금하잖아\" \"나 박준희랑 깨진적 없거든!! 그리구... 흐...읍.. 나 아직 박준희 좋아하거든!! 얘.. 는... 흐..윽.. 그냥 친구거든-\" 왜 박준희 얘기만 꺼내면 난.. 눈물이 날까- 아.. 씨 쪽팔리게시리 \"야! 너 누군데 얘 울리냐? 야!! 울면 못생겨지는 애!! 고개좀 들어봐- 어이구 오늘은 안울고 넘어가나 했더니 또 우냐?\" \"넌 신경꺼.. 이..씨- 야 너! 내가 왜 못생긴 애야?\" \"바보냐? 넌 거울도 안보지? 지금 거울 좀 봐라. 최고조다. 혼자보기 아깝네.\" \"..이씨!\" * \"아.. 알았어 던지지말라고! 던지지 말고 얘기 할 순 없냐? 화장실 갔다올테니까 진정시켜라\" \"야..!!! 야!!\" 후아... 미치겠네. 솔직히 말해서 넌 우는 것도 어떻게 그렇게 이쁘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뭐. 얼굴이 뜨끈뜨끈해 진다. 너만 보면 가슴이 쿵쾅대서 미치겠어. 니가 좀 내 심장 좀 어떻게 해봐.... 돌아가시겠다. 얼굴에 찬물을 껸지면서 열을 식히고 있는데 아까 그 장면이 다시 생각난다. 그리고 정한별이 말했던 것도 분명히 기억난다. 아직 박준희를 좋아한다고.... 난 그냥 친구라고.... 그치만 난 포기하지 않을거다. 니가 아직 박준희를 좋아한다고해서 앞으로도 계속 니가 박준희를 좋아할건 아니니까... 내가 널 내여자로 만들테니까-김윤한 아자-! 하고 소리치고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까 교실밖으로 나올때의 속도보단 많이 느리게- 그렇지만 마음은 가볍다. 정한별을 이제 차근차근 내걸로 만들생각을 하니까.....교실앞에 다다라서 들어가야 되나 말아야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중엔 정한별의 목소리도 있었다...... * \"아.. 알았어 던지지말라고! 던지지 말고 얘기 할 순 없냐? 화장실 갔다올테니까 진정시켜라\" \"야..!!! 야!!\" 김윤한이 교실밖으로 나가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야- 너 진짜 박준희랑 깨진거야?\" \"아..아냐!!\" \"에이- 진짜? 근데 박준희는 일본 왜 갔대?\" 솔직히 나도 몰랐다. 박준희가 일본을 왜 갔는지는... 그래서 정말 내가 싫어져서 떠난건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난 그날 박준희의 눈에서 반짝반짝하면서눈물이 흘러내리는걸... 봤기때문에, 난 널 믿을거야. 니가 빨리 돌아올거라고 난 믿을거야... 넌 날 사랑하고있는거라고 믿을거야... \"야... 너울어?\" \"흐... 흡.. .아..냐... 안울..어\" 난 정말 왜 박준희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데- 니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데- 눈물은 왜날까? \"그럼 쟤는 뭐야? 왜 혼자저래?\" \"아니야- 윤한이는 그냥 친구야.... 장난 치는거야- 원래 이러고 놀아. 헤헤-\" 장난 치는거.... 라고 믿고싶겠지-.... 난 항상 박준희 사랑만 받고싶었고, 항상 박준희한테만 사랑받았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받는 사랑은 익숙하지않아서... 지금내 심장속엔 박준희라는 사람밖에없어서... 넌 들어올수가없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널 사랑할수없어- * 다른 애들 목소리는 안들려도 왜 내 귀엔 니 목소리만 들려서 날 아프게 만드는거냐.. \"아니야- 윤한이는 그냥 친구야.... 장난 치는거야- 원래 이러고 놀아. 헤헤-\" 항상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던 너의 웃는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아니 지금은 너의 웃는 모습을 보는데 막... 심장이 설레는게 아니고 따끔거리고... 막 눈물이 나.. 널 내 걸로 만들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만 그런거고... 넌 아니었구나... 난 널 보면 미치도록 좋은데... 넌그게 아니었구나- 나만 혼자 쇼한거구나...이런 내가 싫다. 널 밖에 사랑할수가 없는 내 심장이 너무 밉다. 널 사랑한다는게 이런게 아픈건지 몰랐다. 사랑하면.. 그게 다인 줄 알았다. 나만 사랑하면 다인 줄 알았다. * 신주쿠의 마츠야는 작년에 아버지랑 많이 왔었다. 작년엔 이 근처에 살았었는데, 거리도 가깝고 맛도 좋고 꽤 유명한 식당이라서 자주 왔었다. 오랜만에 오니까여기도 많이 바뀐것같다. 인테리어도 그렇고 직원들도 바뀐거 같고... \"여기야- 여기~\" 뭘 입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임은민을 기다리게 해버렸다. 벌써 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임은민을 보니까 왠지 미안해진다. \"어.. 갑자기 점심은 왜?\" \"너 밥 안먹고있었지? 너 여기 오고나서 어째 점점 마르는거같다?\" \"밥 안먹은건 어떻게 알았냐?\" \"너 딱 보면 얼굴에 밥 안먹었다고 써있어- 밥좀 먹어 야.. 얼굴이 반쪽이 다됐네\" 일본 오기전엔 항상 정한별이랑 같이 밥먹고 했었는데- 그땐 정말 밥이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뭐 그닥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니가 내 마누라냐.. 잔소리가 뭐 이리 많아-\" 자꾸만 정한별이 잔소리하던게 생각났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머리속을 계속 빙빙 돌고있는것 같았다. \"뭐- 까짓거 인심써서 오늘만 내가 니 마누라 해주지 뭐..- 히히\" \"뭐-?\" * 학교가 끝나고 하얀 목도리를 목에 둘둘 두르고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누가 같이 걸어오고있는게 느껴지는데- 보나마나 김윤한이다. 너무 추워서 빨리 집에 가서 이불로 꽁꽁싸매고 귤도 까먹고싶었고, 따끈한 코코아도 마시고 싶어지는 날씨다. 이럴때 누구라도 손좀 잡아줬으면 좋으련만- \"춥지-?\" \"어?... 어....\" 그말을 끝내곤 내옆으로 바짝 붙더니 내손을 잡아버리는 김윤한.... 순간적으로 내 손에 나의 손이 아닌 다른사람의 손이 닿자 피해버리게 됐다. \"추울까봐.. 그랬는데- 미안....\" \"아.. 아냐\" 아까 잠깐 닿은거긴 하지만.. 김윤한의 손은 무척 따뜻했다. 내 손은 얼음장 처럼 차가운데 김윤한 손은 난로에 데우기라도 한것처럼 따뜻했다. 마치 김윤한이 손난로 같았다. \"손... 많이 차갑던데-\" \"어.. 어- 원래 손이 차가운 사람이 마음이 따뜻하대잖아-\" \"그럼.. 난 나쁜 사람인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속으로 내가 한말을 잔뜩 후회하고 있는데, 김윤한이 다시 손을 잡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버렸다. \"나..나만 나쁜 사람 하면 안돼지- 나도 착한사람좀 돼보자\" 바보... 얼굴 빨개진거 다보이는데- 피이.... 그래 뭐 까짓거 내가 손 잡아주지뭐-김윤한의 손을 꽉 잡아버리자 김윤한이 고개를 든다. 아직도 얼굴 빨개... \"아.. 아니 뭐- 내가 너무 많이 착하잖냐... 헤헤-\" 아 따뜻하다- 얘는 뭐 하루종일 손만 데우고 있었나.. 왜이렇게 따뜻하냐- \"너 손 되게 차갑다. 너 여름에도 손 이렇게 차갑냐-?\" \"응?... 어- 원래 몸이 좀 차서\" \"그래-? 난 여름에도 따뜻한데-\" \"덥겠다-\" \"..........수....있어?\" \"응?\" \"너 추울땐 내가 손잡아 줄테니까- 나 더울땐 니가 내 손 잡아줄 수 있냐...고...\" 글쎄.... 내가 할수 있을까....... * \"너, 지금 마누라라도 없으면 밥도 안먹고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을 것같단 말이야-\" 임은민의 얼굴은 의무감으로 빛나고 있는것 같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보고있는것 같달까...? 흠-... \"그니까, 오늘은 내가 니 마누라 해준다고- Okay?\" 그러고는 히죽히죽 웃는 임은민, 해준다고 말은 귀찮은듯 말하는데 얼굴은 왜 좋은것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거냐, 너…… \"싫..어?\" \"응?\" \"싫냐구, 너 평생 그러고 살거야?\" \"뭐... 맘대로.., 너 되게 시간 많아보인다?\" \"나? 나 하는거 없어- 하는거라곤 쇼핑이랑 집에서 놀거나, 애들불러서 노는거밖에는- 히히\" \"자랑이냐?\" \"그러는 지는- 너도 부를때마다 다 나오는걸 보면 시간 되게 많아보여\" \"난 오늘 오후부터 수업있고, 넌?\" \"뭔 고등학생이 오후부터 수업이냐- 난 학교 안다녀\" \"뭐?\" \"학교 때려치웠지이- 어짜피 아빠돈 쓰면 되는걸 공부는 뭐하러하나...\" \"임은민이 드디어 미쳤구나\" \"푸후... 무튼! 너 그럼 오늘 내가 니 마누라 하는거다?\" \"맘대로 하시라구요, 혼자 놀던지- 나 수업나간다\" \"어? 야- 밥도 다 안먹고? 야\" \"계산은 내가 하고 갈게. 넌 집에서 공부나 해\" \"야! 나도 돈있거든-\" \"으휴 이 바보야 원래 이런건 남자가 돈 내는거야. 잘있어라\" \"야, 그럼 오늘 마누라하려면 수업끝날때 까지 기다려야 겠네? 야 몇시에 끝나는데?\" \"모르셔도 됩니다- 야! 너 나 좋아하는거 아니면 좀 집에가라? 응?\" \"야아- 그럼 그냥 기다린다?\" 임은민 말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왔다. 난 기다리라고 한적 없다. 기다리지마라. 너 나 좋아하면 안된다. 난 정한별밖에 없다. * 정한별은 대답이 없었다. 니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난 이걸 내 첫 고백이 될거라고 생각했기에 니가 내 대답에 응해준다면 난 정말 행복할것같았는데, 넌 그게 아니었나보다. \"김윤한...\" \"응?\" \"미안-\" 그 한마디를 남기고 너는 사라졌다. 아니... 한마디도 아닌가... 그 두글자를 남기고 너는 빠른걸음으로 집을향해 걸어갔다. 난 알고있었다.니가 박준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었다보다. 너한테.. 그리고 나한테도 중요하게 작용되고 있었나보다.집으로 걸어오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 이런 내가 널 계속 좋아할수있는지, 널 계속 좋아해도 되는건지, 널 좋아하면 안되겠지?, 내가 박준희한테 미안해져야 하는건가...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오고 나서 너의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들은 눈 녹듯이 싹 사라졌다. 넌 지금 슬픈표정을 짓고있다. 지금 충분히 아파보인다. 그게 박준희 때문이란걸 난 알고있다. 내가 널 행복하게 해주고싶어졌다. 널 더 사랑해주고 싶어졌다. 박준희 때문에 지금까지 아팠겠지만, 앞으로도 수많은 날들이 아플거지만, 그 상처만큼 내가 널 사랑해주고 아껴주면서 널 행복하게 해주고싶어졌다. 니가 아픈걸 난 보기 싫기때문에, 너의 슬픈모습을 난 보기 싫기때문에, 난 널 사랑하고 있기때문에-정한별은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내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정한별의 방을 노크없이 들어가버렸다. \"야- 뭐해...?\" \"............\" \"야아- 너... 울어?\" \"야.. 너 노크하고 들어오랬지...\" 넌 울고있었다. 정한별이 울고있었다. 정한별의 눈에서 빠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너의 눈물을 지켜볼 수 밖에없었다. 난 너의 눈물을 아직 닦아줄 수 없었다. \"왜.. 또 우냐...\" \"안울어...\" \"안울긴....\" \"안운다니까!!!\" \"아... 알았어 때리지마, 때리지마-\" \"치이- 넌 내가 맨날 때리는 앤 줄 아냐?\" \"그렇게 표정을 무섭게 짓고 있는데- 맞을것 같은 공포감을 넌 안느끼냐?\" \"푸후...\" \"어? 웃었다. 히- 거봐 넌 웃는게 훨씬....\" \"응?\" \"울다가 웃으면 신체 변화 있다고\" \"야!!\" 너의 눈물을 닦아 줄순 없지만, 널 웃게 만드는 사람은 되어줄게. \"야- 너 근데 내방엔 왜들어왔냐?\" \"어..어? 왜 들어왔냐면.....\" 뭐라고 말하지? 보고싶어서 들어왔다고 하면 맞으려나... \"얘들아 밥먹어라-\"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핫핫.... \"밥.. 밥 먹어야지 아하.. 하핫....\" \"밥 먹을 생각 없는데\" \"야!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아하..하하... 건강이 최고야\" \"아 알았어 좀있다 나갈테니까 먼저 먹고있어\" \"어.. 빨리나와\"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와서 왠지 숨이차는 느낌에 가슴에 손을 얹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있다. 아.. 심장떨리는 느낌이 이런건가, 죽는줄 알았다. 어째서 예전보다 심장떨리는느낌이 심해지는거지...문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껌뻑대고 있는데, 뒤에서 문이열렸다. \"야, 너 밥먹으러 간다면서 안가고 여기서 뭐해?\" \"어?... 가야지,.. 내려가자\" 심장떨림이 좀 멈추는듯 싶더니 다시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이 아닌 쿵쾅쿵쾅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혹시나 정한별한테 들릴까 노심초사하면서 정한별한테서 최대한 떨어져 걸었다. 넌 알고있을까? 널향한 나의 마음이 이렇게 설렌다는걸, 보고있어도 또 보고싶고 옆에서 이렇게 가슴떨려하고 있다는걸 * 밥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식탁에 앉았다. 반찬도 그닥 맛있을 것같진 않은데, \"안먹어?\" 한참을 멍하게 반찬을 바라보고 있으니 김윤한이 수저를 건넸다. 그래서 수저를 들고있는 김윤한의 얼굴을 또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나보다 \"왜..? 얼굴에 뭐.. 묻었어?\" \"어....., 어? 어 미안 밥 먹자, 먹어야지\" 수저를 들고 밥을 한숟갈 떠놓고 무슨 반찬을 먹을까 젓가락을 들고 반찬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밥을 떠놓았던 숟가락위로 계란말이 한조각이 얹어졌다. \"야 계란말이 맛있다. 먹어봐. 헤헤- 역시 아줌마가 만든게 제일 맛있는것같아요\" 김윤한이 엄마를 쳐다보며 말하자 엄마가 다 끓은 찌개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으셨다. \"그치? 근데 이게 밥을 통 안먹으니 뭐 밥할 맛이나나, 우리 윤한이 없었으면 밥도 이렇게 못했을걸-\" \"엄마는-\" \"맞아 정한별, 이렇게 맛있는데 왜안먹냐-\" 김윤한은 밥을 입에 한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또 헤헤 웃어댔다. 또 뭐가 저리 좋은지 참.. \"많이들 먹어~\" 숟가락위에 얹어진 밥과 계란말이 한조각을 쳐다보다가 입으로 넣었다. 뭐 맛은 있는것 같다. \"맛있지, 맛있지?\" \"어?... 어... 계란말이 너 많이 먹어\" \"너는? 더 안먹어? 더 먹어\" 또 숟가락위에 계란말이 한조각이 얹어졌다. 이씨- 김치먹을려고 했는데 \"너 먹으라니까-\" 계란말이를 김윤한 밥그릇에 던지듯이 넣었다. \"어? 나주는거야? 헤헤-\" \"그래그래 너 많이 먹으라구\" 계란말이를 김윤한한테 넘기고 나는 김치를 한조각 양념을 닦아내고 젓가락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곤 내 밥그릇으로 가져가려는데 김윤한이 내 젓가락옆으로 밥이 떠놓아져있는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나- 나먹을래\" \"이씨.. 니가 집어먹어라?\" \"아아아아- 나 김치\" \"넌 손이 없냐 젓가락이없냐!\" \"손으론 숟가락 들고있고 어짜피 니가 김치 집은김에 나 주라 헤헤-\" \"이씨.... 그래 너 다먹어!\" 우리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엄마가 호호 웃으시며 말을 꺼내셨다. \"둘이 그러는거 보기 좋네- 원래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쌓이잖니.. 호호...\" \"난 엄마랑 얘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헤헤- 솔직히 한별이보다 아줌마가 훨씬 이쁘세요\" \"어머, 그러니.. 호호\" 둘이 쿵짝이 잘맞으시는군요... 둘이 잘 노세요.... \"잘먹었습니다-\" \"벌써? 더먹지 않구\" \"아냐... 윤한이랑 많이 드세요\" \"호호... 그걸로 삐친거야?\" \"삐치긴 무슨! 난 다 먹었잖아\"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그냥 해 본소리야\" \"네네- 잘먹었습니다.\" \"저도 잘먹었습니다. 들어갈게요\" \"그래. 올라가서 둘이 잘 놀으렴\" \"우리가 무슨 어린앤가.. 놀게, 피이-\" \"어머, 텔레비젼에서 재밌는거하는데 보고 들어가라\" \"아 그럴까, 심심하긴한데\" * \"뭐하냐?\" \"보면 모르냐, 티비보는거?\" \"왜 시비야- 그냥 물어본거갖고\" \"내가 언제? 이게...씨.. 니가 자꾸 그러니까 더 짜증나는거 아니겠냐구\" 김윤한이라는 인간은 참 신기한 인간인것같다. 금방 나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떼고 다른 사람인 양 나랑 싸우려고 드니 말이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그리고.. 이렇게 자꾸 쳐다보게 되는 건 정말 신기해- \"아냐-\" \"너 진짜 이상해, 너 진짜 나 좋아하는거 아냐?\" \"미...미쳤냐!!\" \"야, 정한별-\" \"왜..왜에...\" \"나 좀 봐봐\" \"으...응?\" 눈을 꼭감았다가 뜨고 고개를 돌렸다. 김윤한 얼굴이 내얼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야- 정한별아-\" \"으... 으.. 응, 왜?\" \"너 어떻게 하면 나랑 사귈래?\" \"머어...?\" \"이럼 나랑 사귈래?\" \"무..슨 소ㄹ...읍\" 김윤한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 빨간입술이 내 입술에 와서 부딪혔다. 부딪힌것 보다는 감싸줬다고 해야되나..? 아.. 따뜻해-  따뜻한 기운에 저절로 눈이 감겨졌다. 너는 손도 따뜻하더니 입술도 따뜻하구나... 맞아... 입술이.... 아주 따뜻.. 뭐...!? 순간 정신이 번쩍들어 김윤한을 뒤로 밀쳐냈다. 그리곤 쿵쾅대는 소리가 짧게 들린걸보니 김윤한이 바닥으로 떨어진것같다. \"아.... 야, 정한별!\" \"이씨... 너 뭐야!\" \"아.. 아퍼...\" \"으... 으.. 흐앙....... 너.. 이...씨이....\"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자식한테.... \"야... 우냐..?\" 김윤한은 쇼파 밑 바닥에 앉아서 허리를 문지르며 나를 올려다 봤다. \"아.. 몰라!! 너 뭐야!!\" \"넌 뭐 다 해놓고 난리냐\" \"머..머어? 이...씨이.... 으앙......\" \"그럼, 우리 오늘이 1일이다. 잘자- 우리별이~\" 뭐... 별이..? 김윤한은 쿵쾅쿵쾅대며 2층계단을 올라가버렸다. \"야, 야!!! 너 죽어진짜!\" \"뭐가 이렇게 시끄러?\" \"어..엄마-\" \"뭐야, 뭔데 이렇게 시끄러-\" \"아... 아니에요. 들어갈게요-\" \"그래-\" 아씨... 이걸 말하면... 나만 쪽팔려지는건가...? 으.....이씨... 아, 나 몰라- 김윤한... 너 두고보자... 응? * -♪♩♬♩ \"......여보세요?\" 드디어 수업끝났다. 오늘 수업하는 선생들은 죄다 지루하게 수업하는 선생들밖에 없냐- 지루해서 죽어버리는줄 알았다. 수업끝나고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무거운 눈꺼풀로겨우겨우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벨소리가 들린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핸드폰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 야- 박준희 니 마누라다! \"뭐?\" 전화가 잘못왔나?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려 액정을 확인하는데-, 분명히 임은민이라고 적혀져있다. \"임은민?\" -응! \"뭐라고 했냐? 마.. 뭐?\" -마누라~ \"미친..거야?\" -미쳤긴!! 얘가 \"전화는 왜했냐?\" -내가 수업끝날때 까지 기다린다구 했잖아! 야 나 안보이냐? 난 너보이는데- 멀리서 갈색옷을입고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이긴한다. 근데, 조그마하니까 바퀴벌레가 움직이는것같다. 나 바퀴벌레 싫은데... 욱... \"뭐야... 어쩌라는거야..\" -빨리와~ 밥먹으러가자 계속 기다렸더니 배고파..힝.. \"혼자먹어\" -너 진짜.. 나 계속 기다렸는데 그러기냐? \"내가 기다리라고 했냐? 난 분명히 기다리지 말라고했다. 응?\" -아 시끄럽고! 밥먹으러나 가자구~ 빨리 텨와라~ \"야.. 야!!!\" 전화 벌써 끊겼다... 젠장.. 얘는 왜 또 와서 난리야...   어느새 식당까지 와버렸다. 솔직히 끌려왔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안간다고 수천번은 말한듯 했으나- 끝까지 쫓아오는걸 어떻게 할수가 없었고. 또 마침 배꼽시계가 울리는 통에 밥먹으러 왔다- \"뭐 먹을래? 너 일본와서 한식 안먹어봤지?\" \"어?... 어...\" \"여기 한식당 되게 유명한데- 우리 엄마가 해준것보다 여기가 더 맛있는거같아 헤헤\" \"너희 어머님은 원래 요리 못하시지 않았냐?\" \"어..? 그거 기억하네- 후후\" \"너네집에서 밥을 먹어봤는데 그맛을 어떻게 잊냐... 혀가 마비되는줄 알았어\" \"헤헷... 하긴 .. 우리엄마 요리 못하긴해\" \"그냥 못하는게 아니구 많-------이!\" \"그얘긴 그만하구- 뭐 먹을래?\" 임은민네 엄마 요리얘기를 생각하니 그 맛이 생각나서.... 지금 생각해도 토할것같다. 그생각만 하면 내가 불만을 말할게 많지.... 말하다 보니까 백분 토론이 되고있었어... \"나..? 그냥 뭐 아무거나\" \"그래? 그럼 우리 돼지불고기 먹자 배고픈데- \" \"미안, 나 돼..\" \"아 맞다, 너 돼지고기 알레르기 있지? 미안-\" \"야... 너 그걸 어떻게 기억해?\" \"아, 너 몰랐어? 내가 너 좋아했다니까? 피이-\" 돼지고기 알레르기있는거 우리엄마랑 한별이밖에 모르는줄 알았는데- \"그럼 소갈비 먹자- 히히\" \"어...?어-\" 메뉴를 정하고 나서 임은민이 직원을 부른다. 역시 일본에서 오래 묵힌 애 답다. \"あの、注文お願いします。\" (저기요. 주문이요) \"はい。何を注文しますか。\" (네. 뭘로 하시겠어요?) \"牛のガルビ2個下さい。\" (소갈비 2인분주세요.) \"はい、分かりました。ちょっと待ってください。\" (네에, 알겠습니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배고프다..조금만 기다리라면서 왜이렇게 안나와......... 몇일동안 제대로 밥을 안먹었더니.... \"야.. 너 많이 배고파?\" \"으..,응??\" \"아니, 너 많이 배고파보여서...헷....\" \"아... 조금\" \"귀여워-\" \"응?\" \"아냐-\"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임은민, 아무래도... 많이 이상해진듯 .... 심각해... 병원엘 데려가야되나?한참을 기다리니까 밥이 나왔다.. 끼야..... 사랑해... 정한별 만큼은 아냐.... 뭐.. \"맛있다아-\" \"그치~~ 그치~ 호홋\" \"아... 켁켁.... 무..물!!\"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자 물\" \"꿀꺽꿀꺽..애 쩌다바...(왜쳐다봐)\" \"아, 아냐 ,히히\" 이상한 애일세..... 진짜... 이상해 * -똑똑 아, 누구지? 아직 깜깜하고 내가 눈감고 있는거보니까 밤인것같다. -똑똑똑똑 지금 몇시..... 어... 새벽 두...시? 핸드폰 폴더 열어보니까 am 2:17 라고 써있는걸보니까, 새벽인가보다.누가 자꾸 방문을 두드려대! 아짜증... \"저.... 정...한별......... 자.....냐...?\" \"아...함- 이 새벽에, 누구세요?\" \"야....... 나......\" \"나가 누군데에- 아..함...\" \"기...\" 아 머야!...졸려 죽겠는 얼굴로 겨우 눈뜨고 방문을 열었다. 새벽이라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야! 김윤한?\" 문을 여니까 김윤한이 바닥에 무릎꿇고 앉아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어떡하지? 아픈가? \"야? 왜이래?\" \"배.....가... 아파....\" \"배? 배가 왜?\" \"모...ㄹ라.... 죽을...거 같아....\" 일단 엄마한테 말해야될것같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들어왔다. \"잠깐만... 엄마!\" \"가...지마...\" \"어...?\" \"가지...말라...고... 그냥... 내옆..에... 있어...\" \"야... 아픈데- 진짜 잠깐만-\" \"한..별아....\" 엄마 아빠방.. 어디더라.. 아... 급하니까 위치까지 헷갈린다. 어.. 여기방문을 급히 열고서 불을 켰다. 엄마아빠가 자고계신다. \"엄마!! 엄마!!\" \"우..우응?\" \"엄마, 있잖아 윤한이가\" \"어...? 윤한이가 왜...\" \"윤한이가... 아프대... 진짜 많이 아픈가봐\" \"어머.. 윤한이가?.. 여보! 여보... 일어나봐요\" \"벌써 아침이야? 두시 반? 왜..?\" \"윤한이가 아프대잖아요\" ... 우리가족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아빠가 김윤한을 들쳐 매고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김윤한이 정말 너무 아파보여서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지고 있다. 제발- 괜찮아지게 해주세요-병원에 도착해서 땀으로 온몸이 다 흠뻑 젖어버린 김윤한을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김윤한을 계속 보면 울것만 같아서 밖으로 나와버렸다. 왜 울것 같았는지는 모르겠지만-정말.. 한참을 밖에서 앉아서 심각한게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김윤한이 아프면 내가 정말 아파질것같은느낌이 들어서...엄마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아빠가 나오셨다. 엄마가 나오자 마자 엄마한테 붙어서 의사가 뭐라고 하냐고 물어봤다. \"맹장이래-\" 이말을 듣고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신들께 정말 감사드렸다. 내 기도 안들어주면 평생동안 다신 기도 안하려고했는데, 말이다. ... 급성 맹장이란다. 맹장이 터지기 직전이라는데 . 바로 수술해야겠댄다. 네다섯시간정도는 계속 아팠을텐데, 병신같이 참고만 있었나보다, 꼴에 남자라구... 싱글벙글하면서 밥먹을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 인터넷에 보니까 많이먹는거랑 맹장이랑 관련이 뭐 없진 않은가본데, 아까 많이 먹긴했다.맹장수술은 한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벌써 오십분째 핸드폰 게임만 하고있다. 걱정이 되서 잠이 안온다. 핸드폰게임도 집중 안 된다. 아까 자기전에 충전을 안해놓고자서 배터리가 한칸밖에 안남았다.아니 방금 한칸마져 사라져버렸으니까 이제 핸드폰이 뾰로롱-하고 꺼져버릴일만 남았다. 배터리가 다되서 게임을 실행할수없댄다. 어짜피 뭐 그많은 시간동안 단한판도 못이겼으니까, 이제 할맛도안난다.멍하니 턱을 괴고 무릎을 까딱까딱 거리며 앞쪽 벽을 바라보고있는데 수술중 불이 꺼지더니 누워있는 김윤한이 나온다. 앞에서 졸고있던 엄마도 나처럼 멍하게 있던 아빠도 그리고 나도 김윤한이 나오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사선생님께 다가섰다.엄마가 젤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잘됐나요?\" \"네- 위치도 나쁘지않고 다행히 터지기 전이라서 잘 됐습니다. 근데 환자가 마취 하기전에 계속 한별이라는 사람을 부르던데요.. 허허- 여자친구라도 되나요?\" 한별.... 한별- .. 나? * \"한별... 한별아!\" 아, 꿈이구나. 놀랐다. 정말 많이 놀랐다. 하얗고 아무도 없는 그런 공간에서.. 정한별, 니가 나타났다. 꿈에서라도 널 볼수있어서 정말 기분이좋았다.  근데, 그 하얀공간에서 하얀 옷을 입은 니가 김윤한과 다정히 손을 잡고는 멀리.. 저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니가 날두고 사라져버렸다.  그것도.... 김윤한이랑....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사실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꿈이란걸 알면서도 너무나 두렵다. 달달하고 추억을 되돌아 볼수있게 만드는 너의 모습이 나의 꿈속에 나타나 주길 바랬는데 너무 두렵다. 등과 얼굴엔 식은땀들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메말랐던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가 사랑했었던 기억들도 그 공간에서 주르륵 흘러내려내버리고 있는것같다.지이이잉-, 하고 탁상위에서 핸드폰이 울려댄다. \"여보세요?\" - 어, 자고있었어? 확인할 힘이 없어서 누군지 확인을 못하고 그냥 받았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알것같다. 하긴 나한테 전화 걸 사람이 또 누가 있겠냐만은.. \"임은민, 왜?\" - 왜긴-, 쉬는날인데 놀자는거지 \"쉬는날이면 좀 쉬자, 응?\" - 야..,-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뭐 사실대로 말하면 배터리를 빼버린거지만. 분리된 핸드폰과 배터리를 책상위로 던져버렸다. 타악-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썼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좀 찝찝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않았다. 혼자있고 싶어졌다. \"아아악!!!!!!!!!!!!!!!!!!!!!!!!\" 싫다. 정말- 이런내가 정말... 싫다.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다. 진짜 미치겠을만큼... 지금당장 뛰어가서 니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만, 꽉 안아주고 만져보고싶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게 안된다는게 정말 싫어졌다. 밉다. 정말.. 날 여기로 보낸 아버지도 밉고 , 널 좋아하게 만든 정한별 너도 밉고... 이런 나도 정말... 밉다. 한 삼십분 가량 침대에 누워서 별생각을 다했다. 내가 왜 여기있나, 내가 여기서 해야되는건 무엇인가. 정한별은 어떻게 되는건가..... 그러다가 문득 샤워를 하면 좀 나아질것 같아서 욕실로 들어왔다.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몸을 바디워시으로 뒤덮기도 하고 해봤지만 그닥 나아진것 없는듯하다. 샤워를 대충마치고 샤워가운을 입고 밖으로 나와서 냉장고 문을 열고 주스한잔을 따랐다. 쪼로록- 하고 마지막잔이 따라지고 주스 병이 다 비워졌다. 언제 다 마셨지..? 이따가 사러가야겠다. 아 귀찮은데- 하고 머리를 털털 털면서 주스를 반정도 마셨는데 띵동띵동-하고 초인종이 울린다. 멍한 얼굴로 샤워가운만 입은것도 까먹고 문을 열러나간다. \"누구..-\" 어... 정한별... 니가.. 여기.... * 아졸려.... 어제 집에 5시넘게 와서 6시 다되서 잠들어서 한시간밖에 못잤다. 눈꺼풀이 백만톤인 상태로 손엔 펜을 쥐고 필기를 하는건지 예술작품을 그리는지 내가 수업을 하는지 알수없는 상태로 그것도! 지루한 국사수업을 들으면서(솔직히 말하면 들은건 아무것도 없지만) 책상앞에 앉아있는것..같다-김윤한 자리가 비어있으니까 뭔가 허전하다. 항상 옆에서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없으니까 허전하다. 뭔가 빈것같고.... \"자 다음 문제, 13번 답 불러봐라\" \"........\" \"13번 누구냐? 13번-\" 허전해 뭔가......, 아졸려-근데..십삼... 십삼.. 왠지 익숙한 이숫자는 뭐더..라? \"네?\" \"13번, 정한별- 다음문제 답 불러봐라\" \"네..?....\" \".... 답 모르면 밖으로 나가!\" \"......네...\" 아..., 뭐 정신이 있었더라도 알것같은 문제는 아닌듯 싶었다.들었던 펜을 다시 뚜껑을 똑딱- 덮고 내려놓고, 터벅터벅밖으로 걸어나왔다. 드르륵- 하고 문을 여니 찬바람이 슈욱-밀려온다. 가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 겨울이 되고 있었나.. 으으.. 추워 \"문 안닫아?\" 이씨.. 저 국사 색히... 학생이 말이야! 어! 모르면 가르쳐 줘야될거 아냐! 이 추운날에 자켓도 안입은 애를 밖으로 내몰아? 이런..... 씨이...아 진짜, 춥다아- 속으로 국사선생을 실컷 욕하다가 점점 더 추워지니까 따뜻한게 생각난다. 우리집, 따뜻한데에- 코코아 한잔도 따뜻하고.. 붕어빵두... 떡볶이도.... 그리고 맞다! 오뎅국물도 따뜻한데에... 어 그리구 또 김윤한 손도 따뜻하고.....,혼자만의 정적이 흐르고 교실안 국사선생의 지루한 목소리만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있었다. 아 추워.... ... \"주말 잘 보내고- 누구처럼 병원가지말고 건강하게 월요일날 보자-\" \"네에!\" \"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가방을 등에 들쳐매고 가만히 자리에 서서, 김윤한 자리를 바라본다. 청소당번들 빼고 아이들이 물빠지듯이 교실안을 빠져나간다. 항상 이렇게 끝나면 김윤한이 내자리로 와서 집에 같이 갔는데...그때..귀찮기는 했지만 또, 그 발길이 없으니까 허전하다-발걸음을 한발짝씩 천천히 떼서 교실밖으로 나간다. 심심해- 허전해- 아- 김윤한 병문안이나 갈까.... 아냐 내가 거길왜가 호호호- ... 왔다.... 결국 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벌써 병원앞이다. 난 오려고 하지 않았다. 내 발이 자동으로..... 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가 온거 맞나보다.   푸후... 그리고 또 어느새 붕어빵은 산건지 내 오른손에는 붕어빵이 들려있다.입원병동에 들어서서 엘레베이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까 왔었는데 기억이 안나네..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려다가 엘레베이터를 발견해서 , 찾아 들어가서 또 한 10초간 멍하게있었다.몇혼지... 기억이 안나... 전화를 걸려다가 엘레베이터안에서는 전화가 안 된단 사실을 기억해내고 밖으로 나왔다.전화해서 물어보긴 왠지.. 좀 그렇거같으니까 문자로 해야겠다. \'야... 너, 자..? 너 몇호 입원이더라..? 자면.. 미안- 답장안오면 갈게^^\' 웃음 표시 붙여주는 센스!... 이러고있다.. 전송완료- 답장올때 까지 뭐하나- 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안 자 ^^ 왔네? 411\' 411은 또 뭐야... 호 붙이기가 그렇게 귀찮냐 비밀번호도 아니고....엘레베이터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4층- 그러니까 F를 꾹 눌렀다. F주위로 빨간불이 네모나게 둘러진다. 문이닫히고 붕뜨는 느낌이 들면서 4층에 도착한다. \"가만있어보자.. 411호가...\" \"한벼라~~\" \"어? 왜 나와있어? 안아파?\" \"걱정하는거냐?\" \"아.. 뭐 아픈애니까-\" \"풋... 안아프니까 걱정마, 날 아픈애로 몰진 말아줘\" \"그래?\" \"응. 나 없으니까 허전하지 않냐?\" \"어?... 아.. 맞다 너 배안고파?\" \"배고파 뒤지겠다.\" \"이거 먹을래? 추워서 붕어빵 좀 사왔는데.\" \"먹고 싶다.... 근데 못 먹어\" \"어? 왜- 먹지.. 이거 따뜻할때 안먹으며ㄴ.... 푸... 흐하하하...\" \"왜 웃냐?\" \"아.. 아냐- 나혼자 먹을게 다... 프흐....\" \"....... 뭐야\" 나 혼자 미친사람처럼 웃어대니까 김윤한이 볼을 꼬집는다. 볼 꼬집은게 아프진 않은데..., 맹장...이 너무 웃겨.... \"아이아이까- (아니라니까)\" \"너 방귀땜에 이러는구나\" \"프흐하하하.... 키키....\" \"웃지마 원숭이같아\" \"웃긴걸 어떡해... 히히...\" 내 삶의 활력소. 그래, 너 없어서 많이 허전했어. 너 땜에 웃는다. 내 친구- * \"너 진짜 그냥 전화 끊기냐? 치이-\" 정한별.... 정한별... 맞아? \"너 자고 있던거... 어, 씻었구나?\" 넌 정한별이 아니지..... 정한별이면....... \"너 왜그렇게 멍해?\" 정한별인데... 내가 듣고싶던... 그 목소리가... \"야...\" 그목소리가....아니다.... 눈을 감고 눈을 꾹꾹 누르며 비볐다. 방금 감고나온 머리에선 차갑고 서늘하기 까지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발등위로 떨어져 내렸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왜그래....\" 나를 이상하게 본 그사람이 나에게 손을 가져오자 나를 건들지 못하게 그사람의 손을 쳐냈다. 공기중으로 타악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아야...\" 숙였던 고개를 듬과 동시에 눈이 떠졌다. 지금 내앞에 있는 넌.... \"오늘 왜...그래...\" \"아니구나...\" \"응?\" 정한별... 니가 아니구나... 내가 미친거구나..... 내앞에 있는 게... 니가 아니었구나.... \"야.. 왜그래..? 응? 그러지 말구... 하핫... 씻었으면 놀러....\" \"가주라...\" \"어?\" \"제발... 내앞에서 사라져...\" \"응...? 저기 놀러...\" \"제발....\" \"어?어... 왜에.. 내가.. 놀러갈데 정해..\" 임은민이 말을 다 하기전에 쾅하는소리가 온집안에 다 퍼지도록 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나도 아직 움직이지 않았고 밖에서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보니 임은민도 아직 가지 않고있나보다.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서 느릿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사라져가고 나도 자리에서 움직여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자 아직까지 마르지 않은 머리에선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내려 침대를 축축히 적셨다. 그리고 말라있던 샤워가운 위로도 그 차가운 비가 똑똑.. 하고 내렸다. 침대에 앉아 샤워가운 어깨가.. 그리고 침대가 축축히 다 젖을 때까지 멍하게 앉아있다가, 핸드폰에서 문자알림음이 울리자 정신을 차리곤 핸드폰을 확인했다.원래부터 임은민 밖에 연락올사람이 없었지만, 그래서 임은민이란걸 어느정도 눈치채고있었지만, 아니길 바랬다. 지금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무슨 잘못했어..?\' 임은민의 그 문자가 내 머리속을 계속 맴맴돌았다. 답장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되나...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기로 하곤 몇자 틱틱대며 눌러본다. \'아냐... 미안하다..\' 결국이렇게 적어놓고는 전송버튼을 누른다. 몇초뒤 \'전송완료\'라는 문구가 확인되고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린다.사실..... 초인종소리가 들릴때부터 문앞에 서있는게 정한별이길 바랬고, 정한별의 환상이보일때 너무 기뻤고, 정한별이 아니란걸 알았을때도 아닐거라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게 정한별일거라고... 정한별이어야만 한다고... 그렇게생각했는데.. 정한별이 아니란걸 알게 되고 정말 싫었다. 니가 정말로 보고싶은데.....다시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린다. \'알러뷰~\' 하는 그 알림소리가 머리를 뱅뱅 돌아다닌다. * \"진짜 갈거냐?\" 귓가에선 김윤한의 질질끄는 목소리와 말그대로 신발을 \'질질\'끌고 있는 소리가 맴돌았다. 병실에서 김윤한이랑 별별 얘기를 다하면서 웃고 울고.. 우는건 아닌가? 여하튼.. 같이 수다떨고 놀고 하다보니깐 벌써 몇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김윤한이 원래 재밌는 얘기는 자주 해줬지만, 둘이서 얘기하고 하다보니까 재밌어서 조금더 있고 싶지만, 조금더.. 조금더.. 하다보면 왠지 시간 되게 많이 지나버릴것만 같아서 시간도 꽤 늦었고하니 이쯤에서 가야겠다고 생각되서 침대에 딱 달라붙어있던 엉덩이를 떼어내 몸을 일으켜서 짐들을 하나둘 챙기고 김윤한한테 간다고 하니까, 그 조그마한 병원복 주머니에 큰 손을 집어넣고 신발 질질 끌면서 따라오고 있는 김윤한이다. \"벌써 8시 다 돼 간다. 착한 어린이는 빨리가서 씻고 자야지 응?\" 병실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김윤한은 계속 신발을 질질끌면서 내뒤를 졸졸 쫓아온다. 김윤한의 슬리퍼 특유의 \'치익치익\'하는 소리가 계속 내뒤를 따라오자 고개를 돌려 시끄럽다고 그러는데도 계속 질질끌면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온다. \"야 너! 진짜.. 이씨.. 시끄럽다니까....!\" 시끄럽다고 하는 내소리는 귓뜸으로도 안듣는 건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헤죽 거리면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서 날 쳐다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도 않고서 나는 김윤한을 계속 째려보고 김윤한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내쪽을 쳐다보는 일종의 신경전(?)같은게 펼쳐졌다. 한참을 서로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난 째려본거지만) 김윤한이 내쪽으로 여전히 신발을 질질끌면서 치익거리며 다가오자 김윤한 보다 한참 작은 나는 점점 김윤한을 올려다보게되었다. 올려다보다가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내 눈높이로 내리자 김윤한이 내 눈높이에 맞춰서 고개를 내린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굴려 내얼굴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리저리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추고 김윤한이 내 볼을 빤히 쳐다본다. 난 뭔가... 싶은 표정으로 계속 김윤한을 쳐다보고 있었는데(참, 진짜... 째려본거라니까...) 김윤한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 따끈한 입술이 내 볼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다. 떨어지는동시에 쪽-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들리고, 내가 김윤한을 쳐다보던 눈빛이(아 진짜!!! 째려봤다고 이....) 점점 굳어졌다. \"안가면 좋을텐데.. 가야된다니까 뭐... 잘가라!\" \".....\" \"인사 안 해주냐?\" \"....\" 아무말도 할수가 없는 상태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빨간 불이 켜졌고, 내 얼굴에는 발그레하게 빨간 빛이 떠올랐다. 뒤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아직 김윤한이 가지 않았다는걸 알수있었다. 김윤한과 나 둘 다 아무말없이 엘리베이터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바람이 쌩하고 부는 것같았다. 잠시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했고,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김윤한을 안 쳐다보고 1층버튼을 누르려고 버튼들이 있는 곳으로 손을 옮기려는데 김윤한이 날 부른다. \"잠깐만!\" 김윤한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고 김윤한이 1층버튼을 꾹 누르자 빨갛게 버튼을 눌렀다는 표시가 또 나타났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 몇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마치 몇시간이.. 아니.. 몇년이 지나간듯이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고, 우리는 또 말없이 엘리베이터가 다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들릴까 두려운 이공간안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들어서 흠칫 놀라버렸다. 다행히 김윤한은 보지 못한듯 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열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 김윤한 차례로 천천히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뭔가 해방된 느낌에 발걸음을 빨리 옮기며 숨을 후아후아 내뱉어 댔고, 뒤에서 같이 나를 쫓아서 김윤한이 신발이 치익대는 소리를 내지 않고 빠르게 걸어오고있었다. 병원문을 열고 나가려고 문 손잡이에 손을 대고 힘을 주려는데 뒤에서 큰손이 내손목을 덥썩하고 잡았다. \"한별아-\" \"....어...?\" \"잠깐만 기다려봐\" \"...으..응...\" 김윤한은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그 큰손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쑤욱하고 집어넣었다가 까만색 무언가와함께 손을 다시 쑤욱하고 빼냈다. 그걸 열어서 그안에.. 파란색종이 들이 가득 들어있는걸보니 지갑인것같다. 어이구.. 돈도 많아라 근데 그렇게 돈이 많은데 왜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거냐.... 대체 왜.. 자꾸 이렇게 신경쓰이게 하는건지.. 너란 인간 참이해할수없다.... 한참 나만의 생각에 빠져서 멍하게 김윤한을 쳐다보고있는데 김윤한이 나한테 파란색 종이들을 내밀었다. \"집에 가려면 삼만원이면 되나? 택시타고 가라. 조심해서 들어가. 데려다 주고싶은데. 이러고 있는 몸뚱이가 참 너한테 미안.. 자, 받아\" 김윤한이 펄럭이며 내민 파란색 종이 세장은 반으로 접혀져 내손에 꾸욱 쥐어졌고, 김윤한이 큰손을 좌우로 흔들흔들대며 잘가라고 연신 말을 해댔고 병원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이제 추워진다는 듯이 차가운 바람을 뿜어대는 날씨를 보며 뒤를 돌아보았다. 밖으로 나와서 벌써 한참을 가고있는데도, 병원안에선 김윤한이 손을 흔들대고있었다. 멀리멀리 까지 갔는데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신경쓰게 된다.저기 뒤에서 아직까지도 손을 흔들거리고 있는니가... 자꾸만 신경쓰여서 * \'그럼.. 오늘 놀자! 응?\' 문자는 또 임은민이다. 얘는 눈치가 없는거냐.. 바본거냐... 순진한거냐.. 대체 뭐냐... 방금 그렇게 심하게 뭐라그랬는데도 또 놀고싶어지냐... 임은민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오늘 그냥 혼자 있고싶어졌다. 잠깐만 임은민에 대한 생각은 접고, 정한별로 좀 채우고싶어졌다.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렸다가 올렸다. 슬라이드를 내렸다가 올리니 발랄한 소리가 핸드폰에서 나와 방을 꽉매웠다. 그리곤 기억속에서 한참 찾다가 못찾고는 전화번호부속에서 김윤한 번호를 찾아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댔더니, 기분좋은 컬러링이 귓가를 맴돈다. 널 사랑하나봐- 사랑에 빠졌어- 이 기분좋은 느낌이 변함없길 바래- 널 사랑하나봐- 자꾸보고싶어- 매일 모닝커피를 너와 들고싶어- 한별이가 좋아했던 헤이의 주뗌므가 흘러나오고있다. 한별이 mp3엔 항상 이곡이 담겨있어서 항상 이어폰을 나눠끼워 같이 이노래를 듣곤했었는데... 서로를 바라보면서 바보같이 웃던 그때가 그립다. 한별이는 웃을때 눈꼬리가 휘어지는게 너무 이뻤는데... 노래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이며 옛생각에 잠시 잠겼다. 컬러링이 어느정도 끝나갈때쯤 김윤한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옛생각에 깊이 들어가버린 난 김윤한이 전화받은 사실을 인식하지못했고, 둘사이에는 침묵이흘렀다. \"...... 왜..?\" 두번째 말소리가 들리자 겨우 정신이 든 나는 전화통화를 이어나갔다. \"....응?\" \"...왜... 전화..했냐구..\" 전화를 왜했냐니... 그게 오랜만에 전화하는 친구한테 할소리냐... 말은 이렇게 해주고싶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정작 전화했던 본이유를 해결하지 못할것만같아서 차근히 말한마디를 이어나갔다. \"어.. 그니까..\" \"정한별...때문이지..?\" 정한별.... 그래... 정한별때문에 전화한거 알고있구나... 내가 좀 여려서 정한별한테 직접전화해서 상처주는 건 아직 할 수가 없다.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고... 정한별 목소리만이라도 너무 듣고싶은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내가 자꾸만 정한별한테 상처만줘서... 정한별이 나를 좋아하지 않게될까봐.. 난 그게 두려운 겁쟁이라서.... 널 볼수가 없다. 미안해 한별아.. \"아는구나...\" \"니가 그거말고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있냐..?\" \"하긴...하핫...\" 웃고는 있지만 속은 너무 쓰린 슬픈 웃음.... 넌 모를거다. 가까이에서 정한별을 볼수있는 넌 정말 몰라... 할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보고싶은데.... 이렇게 몰래 친구한테 전화해서 소식밖에 들을수 없는난 정말 아프다.. \"한별이......\" \"한별이 잘지낸다. 걱정마라. 다 잘되고 있고 이제 니 얘기도 거의 안하는걸 보니까 많이 괜찮아진것같아\" \"......그래...?\" 솔직히 니가 날 못잊고 아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니가 날 다 잊고 행복하게 지낸다면... 그건 나한테 정말 아프니까.... 그러고보니까 나 진짜 못됐다. 어떻게 진짜 내생각 밖에 안하냐... 니가 행복하게 지내면 나도 좋아해야하는건데... 니가 행복해하면 내가 너무 아프다... 니얼굴이 자꾸만 보고싶어진다. 너의 세상에서 가장 이쁜 눈도... 귀여운 코도... 앵두보다 더 이쁘고 촉촉한 그 입술도... 모든게 그립다. 니가 자꾸만 내 심장에 가시를 박아놓는다. 니가 박아놓은 이 가시는 오직 너만이 빼줄수 있는데.. 니가... 정한별... 여긴... 니가 없다... \"더 물어볼거 있냐...?\" \".... 좋아보이지..?\" \"어?\" \"...한별이... 행복해 보이지...?\" \"어?... 어...\" \"정말... 행복해보이지...?\" \"....어...\" \"많이 웃지..?\" \"응...\" \"그럼됐다. 잘지내라-\" \"야-…\" 차가운 눈물한방울이 따뜻한 볼위를 스쳐흘러지나가 따뜻했던 볼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래.. 니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니... 그걸로 난됐다. 아프지만... 난됐다. 근데 자꾸만 니목소리가 듣고싶어진다. 딱한번만... 전화해도 되려나... 니목소리 딱한번만 들어도 되려나...?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 벌써 내 손은 전화기를 들어 정한별 번호를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눌렀다.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혹시나 니가 알까.. 집 전화기를 들어 소중한 너에게로 가는 버튼을 하나하나 누른다. 차갑고 단조로운 따르릉 소리에 내 따뜻한 두근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섞여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너에게 전화한번 하는것만으로도 조마조마 하고 두근두근 댈거면 오기전에 너한테 정말 잘해주고 올걸 그랬다. 그랬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거아냐.... \"여보세요?\" 두근두근 대며 너의 목소리를 기다리는데, 니가 전화를 받는다. 차가운 따르릉소리완 대조를 이루는 너의 따뜻한 목소리는 내 심장으로 들어와 심장이 더 두근두근 거리게 만든다. 얼마나 두근두근했으면 내 심장소리가 이 전화를 타고 너의 귓가로 들어갈까 두려울정도로... \"누구세요?\" \"......\" \"저기요.... 전화를 하셨으면 누구신지...?\" \".....\" \"준이니...? 너... 박준희지... 준아...?\" 두눈에서 눈물이 뚝뚝하고 떨어져 내리고 정한별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어쩔줄 모르고 울고만 있다가 전화를 끊어버리곤 침대로 뛰어 넘어들어갔다.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버리는데 베게가 축축히 젖어간다. 서서히 베게안을 번지는 나의 눈물은 이미 돌이킬수없는 너를 향한 나의 마음같다. 눈물이 서서히 퍼졌다가 지우려고 말렸지만 결국은 흔적이 남아버리는 베게처럼 내 심장속에 들어와있는 너도 그렇다. 이제는 지워지지않을 너의 흔적을 지워보려고 노력하지만 지워지지않는다. 니가 너무 아프다... * -♪♩♬♩ 정한별이 병원문을 지나 저기 멀리 점이 되어 보이지않을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이렇게 하지않으면 자꾸만 정말 니가 점이 되어 저멀리 날아가 버릴것만 같아서 그래서 다시는 못볼것만 같아서 너에게 내가 좀 더 각인되고싶어서 손을 힘차게 흔들어댄다. 결국 저멀리 점이 되어 사라진 너는 헤어진지 얼마 되지않았는데, 안 본지 얼마 되지않았는데 자꾸만 보고싶어진다. 니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사랑한단 나만의 속삭임을 들리지 않을 너에게 전한다.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처음봤을때부터 좋아했다고.... 멀리 사라버린너에게 머리속에 혼자 적어둔 글들을 적어 보내려는데 지갑을 넣어둔 반대편 주머니에서 지잉-하는 진동소리와 벨소리가 같이 울린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찾아 뒤적거리다가 까만핸드폰을 찾아 액정을 확인한다. 정한별일줄 알았는데 정한별이 아닌 오랜만에 보는 박준희이름이 둥둥떠다닌다. 핸드폰을 들고 한참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볼에 공기를 가득넣었다가 한숨을 뱉어내며 이게 받아도 되는 전화인가 확인했다. 먼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 슬라이드를 올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자기가 전화해놓고는 아무말이 없다. 기껏생각해줘서 받았더니... 참내... \"...... 왜..?\" \"....응?\" \"...왜... 전화..했냐구..\" 난 니가 정한별때문에 전화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있었다. 아니, 전화 오기 전부터 언젠가는 박준희 너한테 이런전화가 한번쯤은 올거라고 생각 했었다. 근데 왜 이러지... \"어.. 그니까..\" \"정한별...때문이지..?\" \"아는구나...\" 그리고 정말... 니가 나한테 전화해 정한별에대해 물어볼 줄 이야.... 정말 만약에... 만약에... 전화할거라 생각했는데, \"니가 그거말고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있냐..?\" \"하긴...하핫...\" \"한별이......\" \"한별이 잘지낸다. 걱정마라. 다 잘되고 있고 이제 니 얘기도 거의 안하는걸 보니까 많이 괜찮아진것같아\" 넌 모를거다. 다 잘되고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니얘기를 안한다는게 나에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내가 정한별네 집에서 살고있고, 정한별이 나와 이렇게 가까운사이가 됐다는것도 넌 모를거다. 정한별이 내 병문안와서 내걱정도 해줬다는 걸 넌 모를거다. 내 인생에서 벌써 정한별이 이만큼이나 소중한 존재가 되버렸다는걸, 이제 없으면 안되게 되버렸다는걸... 처음엔 좋아했지만.... 이젠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는걸.... \"......그래...?\" \"더 물어볼거 있냐...?\" \".... 좋아보이지..?\" \"어?\" \"...한별이... 행복해 보이지...?\" 아니... 행복하지 않아보여.... 너에대해서 말은 하지않지만... 이제 알 수 있게됬거든...... \"정말... 행복해보이지...?\" 항상 정한별은 온통 니생각에 가득차있다는걸... 나와 같이 얘기하고 놀고있는 듯 하지만 속은 너로 꽉 차있다는거..... \"많이 웃지..?\" 웃어... 항상 웃고는있어... 근데 한별이 눈을 보면... 너무 슬픈 웃음인거 있지..... \"그럼됐다. 잘지내라-\" \"야..! 아직 안말해줬잖아.... 미안하다고... \" 정말 미안해.... 정한별한텐 너밖에 없나보다... 너올때까진 내가 그래도 한별이 행복하게 해줄게...... 이미 끊어진지 오래된 통화에서는 뚜뚜뚜-- 하는 차가운 소리만 들려오고 이미 끊겨진 전화에 대고 혼자 용서를 구한다. 넌 어떻게 했길래... 정한별이 너한테서 못 벗어나게 만든거냐... 그거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 손을 흔들며 안녕하던 김윤한도 이젠 안보인지 오래고 가까운 거리인데도 택시타고 가라는 김윤한의 성의를 무시할수가 없었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가는중이다. 창밖을 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비가 똑똑 떨어지며 차창에 노크를 한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비내리는 동네의 모습이 너무 슬퍼보인다. 코끝이 찡해져오면서 박준희가 보고싶다. 보는것 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박준희 목소리 한번만 듣고싶다. 정말 한번만 니 목소릴들으면 더이상 난 바랄것도 없을것만 같은데... 눈물이 날것만 같은데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다. 입술에 피가 빨갛게 번져가고 따끔따끔한 기운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짙은 한숨을 후아- 하고 내뱉자, 택시기사 아저씨가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으신다. 아니에요- 하고 대답하는 내모습이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괜찮지 않아보였다. 눈시울이 빨갛고 입술엔 피가 번져있고 한숨을 푹푹쉬는애가 어떻게 괜찮아 보일수가 있냐고... 소나기 였는지 어느새 똑똑 떨어지던 비가 뚝그치고 그새 집앞에 도착을 했다. 김윤한이 준 파란돈으로 택시비를 내고 차밖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뚝 그친 비처럼 내마음의 비도 그쳤으면 좋으련만... 박준희를 보고싶은 이맘도 이만 그쳤으면 좋겠건만.. 내맘은 내말을 듣지 않는다. 속이 너무 답답해 질퍽질퍽한 바닥을 저벅저벅소리가 나게 밟으며 현관문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가 후우아-하고 뱉어냈다. 질퍽질퍽한 땅바닥이 꼭 내마음인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않다. 지이잉- 새까만 애나멜 점퍼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새하얀 핸드폰이 지이잉-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주머니엔 핸드폰 외에 아무것도 없는데 괜시리 뒤적이다 핸드폰을 손에 꼬옥 쥐었다. 손에 잡힌 핸드폰은 진동을 그칠줄을 모르고 지이잉- 거린다. 핸드폰의 작은 액정위로 흐르는 글자는 몇개의 숫자일뿐 누구인지 알려주지않았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인걸보니 모르는 사람인것 같아 받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혹시나 박준희일지도 모른다는 바보같은 생각에 폴더를 열어 상대방의 소리를 귓가에 담으려 했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않았다. \"누구세요?\" 누군지 물어보았지만 누구인지 대답을 하지않았고 옅은 숨소리만 귀에 담아져오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않는다. 자꾸만 대답안하면 내맘대로 박준희라고 단정 지을것만 같아 제발 빨리 대답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무런 대답을 하지않는다. \"저기요.... 전화를 하셨으면 누구신지...?\" 대답해줘요... 자꾸그러면 나는... 정말로 당신이 박준희인줄로만 안단말이에요...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대답해주세요..... \"준이니...? 너... 박준희지... 준아...?\" 결국 그사람이 박준희라고 내맘대로 단정 지어버렸다. 그사람은 마지막 물음이 끝나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보세요를 연신 외쳐보았지만 뚜뚜뚜.. 하는 통화끊겼다는 소리만 흘러나와 귓가를 간지럽힐뿐이었다. 너진짜.... 박준희야...? 빨갛게 물들었던 눈가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차 매달린채로 버티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뚝... 떨어져 내려 버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오늘 따라 너무 차가운 것만 같아 너무 아프다. 새하얀 핸드폰 그 위로... 아직 니 숨소리가 남아있는 것만 같은 그 핸드폰 위로 내 차갑고도 아픈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져내려 번져간다. 준아... 박준희... 나 너무 아픈데... 넌 알고있는거야..? 너를...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너를...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는게 내가 너무 바보같고 그렇다... 나혼자만 너무 아픈거같아서 막 억울해 질려고해....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던 눈물은 어느새 내리는 비마냥 주륵주륵 내려와 볼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혼자서 끅끅거리며 울고있었던 나는 위로해줄 사람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야, 정한별. 너여기서 뭐해...?\" \"흐읍.. 으..... 흐으...으아앙....\" \"야 왕눈이 너 여기서 왜 혼자 질질짜고있어-? 너 팅팅 불었잖아 에이- 다 불은 만두같이.. 못먹겠다 너\" \"어..?....\" \"오랫만에 보는데 이래야 겠냐...? 뚝 그쳐- 어? 밖에 뭔소리가 나나했더니 너가 질질짜고 있었구나.\" \"한경이오빠- 우으...흐읍...\" 가로등에 노란머리에 하얀 피부가 유난히 빛나는 오빠가... 내몸을 일으켰다. 한경이오빠.. 오랫만에 보는데 히이... 쪽팔리게 시리.... 뭐야 맨날 질질짤 때만 오빠오고... 오빠한테 부축을 받으면서 눈가를 스윽닦아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쿵쾅쿵쾅대며 현관 앞으로 나왔다. \"어머, 한별이 왜이래?\" \"엄마아-\" \"몰라요. 또 질질짜고있네. 꼭 나오면 질질짜나몰라- 너 내가 싫냐?\" 엄마한테 안겨서 훌쩍훌쩍대는 나를보면서 한경이오빠가 또 옆에서 말을 걸어댄다. 눈물을 자꾸만 부비대며 닦아대느라 다 불어터진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심했다. 한경이오빠를 소개하자면.. 뭐...어렸을때부터 친했던 사촌오빠다. 이름은 뭐 알다싶이 정한경이고... 지난번에 올때는 갈색머리였는데, 어느새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여버렸다. 니가 노홍철도 아니고... 게다가 1년마다 놀러오는 오빠가 작년에도 하얀 얼굴이었는데 올해에는 이제 하얗다 못해 허옇기 까지할정도로 하얘졌다. 이 인간 밖엔 안나가고 집에서 미백크림만 바르고 있는건가... 백인보다 더 하얘... 새앳-노란 머리에 새애-하얀 얼굴을 하고 장난을 걸어오는 오빠를 보니 무섭기까지할정도다... \"밥은 먹고 운거냐?\"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사는 한경이오빠는 그 무섭다는 AB형에 속해있다. AB형은 천재아니면 바보라던데... 한경이오빠는 천재인듯싶다. 약간 유치한면이 있지만 머리가 정말정말로 좋고, 그래서 그런지 중학교때 일본에 처음갔는데 일본어가 아주... 장난이 아니다. 영어도 너무 잘해... 가끔 짜증나면 혼자 일본어로 씨부려대는 경향이있다.  또 바이올린이며 피아노며 등등 다룰줄 아는 악기가 엄청많고 노래도 잘하고 외동아들이라 귀하게 자란데다가 생긴건 동방신기에 영웅.. 뭐? 아 맞다 영웅재중 많이 닮았구 키도크다. 문제는 자기가 잘생긴걸 너무나 잘 알고있다는거... 캐스팅 제의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옛날에 고등학생때는 일본에서 모델도 했었다. 생긴것과 같이 험한일도 못하고 삐쩍 마른데다가 힘은 없는데 싸움은 또 디게잘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1년에 한번씩 우리집에 놀러오는 오빠는 내 고민상담용이다. 1년에 한번씩와서 그동안 쌓였던 고민들 다 털어버리는데에는 아주 좋은... 집안이 한자돌림이라 나도 한별이고 오빠도 한경.. 우리아빠는 한자 준자 쓰시고 오빠네 아빠.. 그러니까 큰아버지는 한자 철자 쓰신다. 한경이오빠는 AB형이라 상당히- 특이하고 머리도 좋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기도 하고 까칠한면과 그 반대로 상당히 유치한면도 가지고있는... 무튼 그런오빠다. 작년에는 내 옆방, 그러니까 지금 김윤한이 쓰고있는 방을 썼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나..? 김윤한 내일 퇴원이라던데-?... 거울을 보면서 팅팅부은 얼굴을 비비적대면서 히잉-대고있는데 배에서 꼬루루룩~ 하는소리가 울린다. \"자꾸 그렇게 비비면 더 불어터진다. 만두는 불면 맛없어요- 밥이나 먹어\" \"히잉... 나 많이 웃기지..?\" \"응... 풋... 나 지금 많이 참고있는거에요. 정한별씨. 座ってね\" \"엄마 나 밥 너무 많다. 좀만 덜어줘요\" 끼익-소리가 나며 식탁의자를 뒤로 빼내고 그곳에 앉는다. 마주보는쪽에 앉은 한경이오빠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있었다. 어깨의 떨림이 심하게 전해온다. \"이씨...왜웃냐...\" \"끅...끅.. 그럼 안웃게 생겼냐... \" \"웃지말라니까!! 이씨- 나안먹어 체에-\" \"야 왕눈이 만두! 밥은 먹지?\" 또 배에서 꼬로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식도를 타고 꼬르륵소리가 넘어오는 느낌이랄까? \"야 된장찌개 맛있다. 오- 김치도있어!!\" \"그거 되게 맵게 한건데.. 둘다-\" 된장찌개에 청양고추 넣었다고 말안했구나.. 엄마.... 한경이오빠 일본음식만 먹어서 그거 못먹을텐데... 별로 ... 미안하지는 않네- 하하.... 이렇게 나의 승리로 끝날거란말야.... \"야... 물!!!!\" * -\"야.... 진짜 미안한데... 내가 좀 바본가부다... 너 몇호드라..?\"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됐다. 이제 몸은 언제 아팠냐는듯 말짱해졌고, 오히려 전보다 더 튼튼해진듯 싶다. 정한별 보고싶어도 꾹꾹 참고 병문안 올때까지 기다렸었는데, 드디어 퇴원... 답답한 병원공기안에서 벗어날수있다는것도 좋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한별을 언제나 볼수있다는게 너무 좋다.퇴원한다는 사실에 한껏 들뜬 나는 그동안 병원에 두었던 짐을 꼭꼭 잘개어서 바닥에 있는 줄도 모르고 처박혀있던 짐가방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2인용병실이라 마주편에 입원해 있는 친해졌던 할아버지께 건강해지셔서 얼른 퇴원하시라고 꾸벅 인사를 드리고 한별이가 온다고했는데 온다고 한지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안와서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고 밖으로 나가보려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매너모드로 해두었던 핸드폰이 징징대며 울어대고 너무 꽉끼는 바지를 입었는지 바지주머니에 손이 잘 안들어가서 낑낑대며 겨우 손을 집어넣어 핸드폰에 바로 귀를 대고 전화를 받는데 정한별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몇신데 안오냐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살살달래며 왜안와? 하고 다정하게 말해줬더니, 슬그머니 말을 꺼내는 정한별이다. 어제 알려주지 않았나? \"그냥, 4층으로 올라와 내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나갈게\" \"응, 미안- 헤헷\" 정한별의 웃는 목소리로 이미 모든게 용서가 된지 오래다. 싱글벙글하며 할아버지께 다시한번 인사를 하고 인사성이 참 밝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병실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 앞에섰다. 이제 막 엘리베이터는 3층을오르고있었다. 이제야 올라오는걸 보니까 몇층인지도 까먹어버렸나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정한별이 서서히 보이고, 정한별이 내리는데 뒤에서 나보다 키가 조금, 아주조금- 더 큰 남자가 나온다. 머리가 노랗고 얼굴이 새하얀걸보니 외국인인가.. 생각하다가 상관없는 사람이기에 정한별에게 손을 흔들었다. \"왔네?\" \"얘가 김윤한?\" 노란대가리의 그입에서 영어가 샬라샬라 꼬부러져 나올 것같기도하고 일본어가 나올 것같은 포스가 느껴졌지기도했지만, 그 모든 예상을 뒤집어엎고 반듯한 한국말이 흘러나온다. 내이름을 어떻게 아나 싶어서 노란대가리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한마디 꺼내려는데 정한별이 먼저 치고 나온다. \"응, 김윤한이구, 이쪽은 우리 오빠야. 한경이오빠가 운전면허있어서 차끌고 나오려고 데리구나왔지- 헤헷\" \"오빠...?\" 정한별한테 오빠가 있었던가..? 왜 나한텐 말안해줬었지? 한경이오빠..? 왜이렇게 둘이 다정해보여. 너 나 차끌고 나오게 하려고 데려온거였냐? 어쩐지 같이 가자고 그렇게 조르는게 이상하다했어- 하면서 정한별의 볼을 살짝 꼬집는 노란대가리는 내 눈엔 낯설었지만 정한별눈에는 원래 자주 있었던 일이라는듯, 그럼 운전면허없는 내가 나와서 차박고 구르고 할까?하면서 눈웃음을 살살짓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얼굴이 점점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안내려갈거야?\" 벌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노란대가리와 한별이 그둘은 열림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엘리베이터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고 정한별에게 슬쩍 물어봤다. \"오빠있었어? 그런말 전혀 못들었는데-\" \"사촌오빠거든- 그래서 못들었을거야. 일본에 살고-.1년에 한번씩 한국에 놀러와. 잘생겼네 너, 형이라고 불러도돼 하핫\" 노란대가리가 정한별 대신 대답을 하는데, 저기.. 그쪽한테 물은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누구신데 제가 형이라고 부른답니까? 라는말이 순간 툭 튀어나올뻔했다. 뱉으려던 말을 침삼키듯이 삼켜버리고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띵-\'소리와 함께 열리고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계속 짓고있는데 또 그 노란대가리가 시비를 건다. \"너 화장실급하냐? 표정이 왜그래.. 풉... 화장실이... 오른쪽이네 저깄다.\"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또 노란대가리 한테는 뭐 마려운 똥개 표정 마냥 웃기게 보였나보다. 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아닌데요- 하자 노란대가리는 혼자 뭐라뭐라하는데 못알아먹겠다. \"가끔저래- 일본에 살아서, 혼자 가끔씩.. 아주 가끔씩..저래. 무시해도 괜찮아.\" 한별이가 눈웃음 지으면서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옆에서 풉풉웃어대던 노란대가리가 빨리가자며 정한별 손을 덥썩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나도 겨우 잡은 손을 저 노란대가리는 쉽게 쉽게 잡아버리고 질질 끌고 간다. 병원공기를 벗어나 밖으로 나와서 가져온 차 안으로 정한별을 태우는데 노란대가리가 아까는 손을 잡더니 이젠 그손을 어깨로 올려 차에 정한별을 태운다. 저둘은 가족이다. 가족이다- 하면서 머리속에 주문을 혼자 외우고 \'참을 인\'자를 새기고있는데, 나한테는 타란 말도 안하고 그냥 출발하려는듯 싶어 얼른 차 뒷문을 열고 안으로 가방을 집어넣곤 몸을 쏘옥 집어넣었다. \"어떻게.. 볼일은 잘 해결됐니?\" \"정한경..진짜..... 한경이오빠, 유치한거 이제 그만해- 알았죠?\" \"아.. 알았어, 풉.. 출발한다.\" 차가 부웅소리를 내며 출발하는데, 왠지 찝찝하다. 노란대가리와 같은 공간안에 있는것부터가 찝찝하지만 더 찝찝한건, 저 인간이 운전을 하고있다는거..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데...,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운전은 아주 부드럽고 안전하게 진행됐고 집에도 사고없이 무사히 잘 도착했다. 그래도 뭔가 찝찝하다. 왠지 더 이상한게 있을것만 같은느낌. 노란대가리는 주차를 하고 들어온다고 하고 한별이와 나만 먼저 들어왔다. 한별이는 총총총 뛰어 먼저 2층으로 올랐고, 짐가방을 챙겨들고 오랫만에 보는 아주머니께도 인사드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주머니가 2층으로 오르는 나를 붙잡으신다. \"저기 윤한아-, 한별이한테 한경이얘기는 들었지?\" \"네? 네에...\"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은 한경이랑 같은방 써도 괜찮지?\" \"네?\" \"원래 그방은 한경이가 썼던 방이구... 그 옆에 방을 쓰자니 너무 좁고 치우지도 않았구.. 이왕이면 넓은 방에서 같이 쓰는게 좋지 않냐는거지..\" \"네...\" \"윤한이가 착하니까 이해해줄거라고 믿어 2주동안만 있다갈거니까 좀만 참아줘- 쏘리-\" \"네... 네?\" 2주..? 하루도 아니, 한시간도 아니고 십분만 같이 있어도 짜증나는 인간인데 같이 2주를 쓰라고? 아주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신지 이미 오래고 허- 하는 어이없는 한숨이 흘러나오는데, 주차를 마쳤는지 노란대가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형광등에 반사되서 반짝빛나는 노란대가리는 볼수록 더 짜증이 난단말이야. \"아직도 안들어가고 뭐해?\" 한마디를 툭 던지고 올라가는데 기분이 나빠서 힘껏 가방을 던졌...... 으면 내가 여기서 못살겠지? 아.. 미치겠네. 아오!! 빡돌아!! * \"한경이오빠, 잠깐만 와봐\" 방으로 들어와서 짐가방을 노란대가리 인양 발로 툭툭 쳐서 침대 구석에 박아놓았다. 침대 구석에 박혀서 찌그러져있는 가방이 정말로 노란대가리로 상상되서 쿡 하고 웃었더니 노란대가리가 날 이상한애보듯이 쳐다본다. 노란대가리가 쳐다봐서 나도 노려봐 주려는 찰라, 한별이가 방으로 들어와서 노란대가리를 부른다. 노란대가리가 한별이 부름에 따라 나가는걸보니 왠지 정한별을 노란대가리한테 뺏긴것만 같은 느낌이들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뭐 한별이가 노란대가리한테는 무표정으로 말했지만, 그다음 나한테 방실 웃으면서 김윤한- 너 엄마가 빨래 있으면 빨리 밖에 내놓으래, 지금 세탁기 돌리려고 하니까 빨리 갖다놔 하고 하는걸로 짜증은 끝났지만- 짐가방을 얼른 풀러놓고 가방은 장롱에 대충꾸겨박고선, 옷가지들만 골라서 들곤 방문을 열고 나왔다. 병원에 있는동안은 병원복입고 한지라, 저번에 갈때 입었던 옷이랑 속옷몇개, 수건몇개밖에는 빨게 없다. 가벼운 옷가지만 들고 나가려니까 뭔가 허전해서 나가기전에 뭐 가져갈게 없나 확인해보는데 역시 없다. 꾸깃꾸깃 구겨서 들고 밖으로 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려고 계단을 향해가는데 바로 옆방인 한별이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가려고하다가 둘이 하는 얘기가 뭔가 해서 방문에 귀를 갖다대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후아-, 그럼 내가 일본가서 알아볼게\" \"정말...?\" \"시...\" \"윤한아! 빨래 빨리가지고 와라! 세탁기 돌린다.\" \"네에-\" 노란대가리가 시..? 어쩌구 하는데 아줌마가 부르는 소리때문에 못들었다. 세탁기를 돌린다기에 계단을 뛰어내리다가 마지막 칸에서 엉덩방아를 찧을뻔했지만, 나의 순발력으로 위기모면.... 하는듯 싶었는데 우어어- 하는 괴물같은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들고있던 빨랫감들때문에 심하게 부딪히지는 않았는데, 팔꿈치를 찧어버렸다. 으- 이건 부딪혀본사람만 안다는 그 찌릿하면서도 디게 아픈.. 그느낌- . 너무 아파서 팔꿈치를 문지르다가 어느정도 괜찮아졌기에 빨랫감을 들고 세탁기에 골인-. \"세이브!!\" 세탁기뚜껑을 탁소리나게 닫고 주먹을 꽉 올려 잡으며 세이브를 외치자, 언제 나왔는지 계단을 내려오던 노란대가리가 또 날 이상한애 보듯이 쳐다본다. 어우.. 나 노란대가리한테 완전 ㅁㅣ친놈으로 찍히는거 아닌가싶다. 뭐 그쪽도 만만치않게 이상하신 분이지만, 이상하신분이 보기에도 이상할정도면... 또라이아냐... 노란대가리는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냉동실을 열어 얼음 몇조각을 컵에 집어넣더니 그걸 마신다....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얼음물을 마시는것도 아니고 얼음을 마시고있다. 뭐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시는게 아니라 갈고있는거랄까? 네- 여러분은 지금 최신상품인 노란대가리 사람 모양 믹서기를 보고계십니다. 입으로 음식물을 넣어주시면 그 어떤 딱딱한 음식이라도 곱게- 갈아드립니다. 자 매진이 얼마남지 않았구요. 080... 이것도 아니고!! 이제 이상하다못해 약간은 정신이 어떻게 된것같은 노란대가리를 보면서 두려운 느낌까지 들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려고 계단을 오르려는데, 얼음을 갈아마시고 있던 노란대가리가 웅얼웅얼대면서 뭐라뭐라한다. \"야,너-\" \"....네, 저요?\" \"으으- 그럼 너말고 또 누가있냐\" 아깐 그렇게 잘 갈아마시더니 이제서야 차가워지기 시작한듯한 모습을 보이고있는 노란대가리는 정말 두렵다. 대체 뭔 얘기를 꺼낼려고 이러는지-, 그러고 보니까 말거는 투가 약간 돈뺏으려는 듯한 느낌같은것도 든다. 내가 환자라는 걸 잊으셨나요... \"왜요?\" \"너 한별이 좋아하지?\" \"네?\" \"한별이 좋아하냐고-\" \"네,네..? 아, 아닌데요-\" \"킥, 아님말고-\" \"저기요!\" \"2주동안 상담 언제든지 해줄테니까, 할맘있으면 와라-\" \"무슨, 오해가 있는것 같은데!\" 벌써, 계단위를 빠르게 올라 방안으로 쏘옥 들어가버리는 저,,저!! 아오 진짜 얄밉네 진짜. 또 내가 정한별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는지 ,  알수없는 인간이야... 어우... 진짜 또 진 것같은 느낌이 드는건 뭐지... 쿵쾅쿵쾅대며 2층으로 뛰어올라가서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벌컥 여는데, 방바닥엔 보라색 이불이 깔려진위로 베게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침대위에서는 이불을 한참위까지 덮어있는 그위로 노란색깔 머리카락이 빛난다. 아.......졌다.....진거구나.. * 몇마디밖에 안되는 짧은 전화통화였지만...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나만 정한별 목소리 들은거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슬펐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얼굴도 찰싹찰싹 때려보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문질러 닦고 책상 서랍을 열어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찾아도 없어서 서랍을 꺼내서 뒤집어 엎자, 딱딱한 소리가 바닥을 퍼졌고, 찾았다. 반지.. 반지에 사선으로 은선이 그어있는 단조로운 무늬.... 사이에 반짝이며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없지만 함께여서 행복했던 우리 100일째만남을 기념한 반지... 장미 꽃한다발과 같이 선물한 이 반지를 나는 정한별 손에 끼워주었고, 정한별도 내 못난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줬다. 손가락에 다시 반지를 끼워보고는 괜시리 마음이 다시 콩닥콩닥 설렌다. 옷장을 열어서 후드티 하나와 청바지하나를 골라꺼내 옷을 갈아입고선 물건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담아 서랍을 다시 집어넣고선 서랍 위에 놓아두었던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도어키를 눌러 주차장에 주차해 두었던 새까만 자동차의 문을 열고선 부드럽게 탑승한다. \"후아- 가자!\" 자동차안에서 나혼자만의 기합소리를 내뱉고 서둘러 시동을 걸어 주차장안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막상 자동차에 타긴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그냥 일단 가는 대로 가본다. 항상 네비게이션이 떽떽 잔소리를 해댔었는데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운전하니 왠지 틀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이 구간의 제한속도는 몇km다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 지겨웠었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반갑다.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시에서 벗어나 드디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을 찾아내곤 달리던 차를 멈춰 내린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발자국씩 걸어나간다. \"한별아!!!!!!!!!!!\" 소리를 질러보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는이없는 이곳에서... \"야!! 정한별!!!!!! 듣고있냐!!!!!\" 한참을 달리면서 그쳐졌던 뜨거운 눈물이 다시 봇물터지듯 펑펑 쏟아졌다. 아 진짜.. 쪽팔리게, 아무리 아무도 없다지만 사내새끼가 이렇게 울고있다는거, 너무 쪽팔리잖아 박준희... 하긴.... 니생각만 하면 자꾸 이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는건 나도 조절 못하겠는데 어쩌겠냐... \"정한별!!!!!!!!!!!!!!!!!!!!! 들리냐고!!!!!\" 너에게 들릴리가 없는데... 자꾸만 너한테 들릴것만 같아서 빽빽 소리를 질러낸다. 내 목소리가 이 곳을 멀리 멀리 퍼져 나가서 너에게 들렸으면 정말 좋겠는데.. \"나!!!! 너 정말 많이 좋아하나봐!!!!!\" 니생각만 하면 이렇게 심장이 터질것만 같은걸 보면 말이야 \"아니... 많이 사랑하나봐!!!!! 난 너없이는 안되는가보다 한별아!!!\" 난 너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나봐.... 내겐 너없는 시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는 꼭 너한테 갈거니까!!! 나 꼭 기다려주라 한별아!!!!!!!\" 한별아.... 날 버리지 마... 날 잊지 말아줘... 너의 기억속에서 나를 지워버리지 말아줘.... 그럼 내가 너무... 너무 많이 아프단말이야.... \"정한별!!!!!!!!!! 사랑해!!!!!!!!!! 그래서 미칠것같다!!!!!!!!!!!!!!!\" 나 이제 너밖엔 안보이는데... 니가 날 버리면 어쩌지?? 자꾸만 바보같은 생각이 드는것도... 어쩌지?? \"정한별!!!!!!!!!!!!!!! 들리는거지!!!!!!!!!\" 들리지...? 내 심장소리가.... 보이지.....? 내 슬픈 두 눈이... 느껴지지....? 널사랑하는 내마음이... \"이럴줄 알았으면!!! 사랑한단말 많이 해줄걸 그랬나보다 한별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수천번 수만번으로도 표현되지 못하는 내사랑... \"사랑해!!!!!!!!!!!!!!!!!!\" 그걸로 표현되지 못하는 내사랑을...... 더 많이 표현해줬어야 하는 내사랑을... 더 많이 보여줄걸 그랬나봐....... 나 기도같은건 안 했었는데.... 널 알게 되고서 신이라는 걸 믿게됐어... 우리 이쁘고 착한 한별이를 만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신은 내게 많은걸 주신거니까.... * \"한별아, 빨 거 있으면 줘, 세탁기 돌리게, 아 그리고 윤한이- 병원갔다왔으니까 빨거 다 가져오라고 그래\" 엄마가 방으로 들어와서 빨랫 거리들을 들고 나가신다. 방문이 닫아지니 핑크색으로 꾸며진 방문이 눈에 띈다. 핑크색을 좋아해서 온통 핑크로만 가득 채워진방, 예전엔 이 핑크빛 방에 핑크색의 큰 하트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는데, 아직도 이방엔 너와의 추억이 담긴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보여주지 못한... 너에게 보여줄 사랑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너는 내곁에 남아있질 않다. 그래서 자꾸만 겁이나.... 여기 남아있는 너와의 추억들마저 모두 다 니가 가져가서 사라져버릴까봐.... 또 눈물이 날려고 하는데 입술을 꽉 깨물고 최대한 웃어보려고 애쓴다. 후아- 한숨을 내쉬고, 핑크색 방을 빠져나간다. 몇걸음 걷지않아 김윤한과 한경이오빠가 있는 방앞에 다다랐고 문손잡이를 돌려 열자 네개의 눈동자가 날향해 방향을 돌린다. \"한경이오빠, 잠깐만 와봐\" 무슨일이냐는듯 표정을 짓는 오빠에게 손짓을 하자, 이제 뭔지 알았는지 천천히 나온다. \"이번엔 무슨 고민?\" 한경이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내 고민을 들어주곤 했다. 누구보다 가깝고 또 장난을 많이 치고 괴롭히곤 했지만 배려심도 많고 이해심도많고 말도 잘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기도한다. 그래서 1년에 한번씩 오빠가 우리집에 오면 고민을 털어놓는게 습관이 되버렸다. 오빠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안하자 오빠가 먼저 나서서 말한다. \"맞춰볼까?... 음 이번 고민은... 박준희?\" \"우와... 오빠, 어떻게 알았어... 오빠 진짜 신내림 받았냐?.. 쿡...\" \"너 그거 박준희 한테 받은 반지잖아. 그렇게 손으로 주물럭 대고 있는데 어떻게 모르냐?\" \"어.. 봤어?\" 끼지는 않지만 항상 가지고는 있는 이반지를 괜시리 박준희 생각이 나서 또 꺼내놓고 주물럭 대고 있었는데, 그게 한경이오빠 눈에 띄었나보다. 박준희랑 내가 만난지 백일째 되던날, 박준희가 꼭맞는 반지를 내손에 끼워줬던 기억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평소엔 기억력이 그렇게 나쁘던 내 머리가... 박준희에 관한거면 왜이렇게 기억력이 좋아지는지... 정말... 정말로 모르겠다. \"박준희 일본으로 나갔다며?\" \"오빠도 들었어?\" \"작은엄마가 말해줬는데-?\" 엄마는... 또 괜히 별얘기를 다해, 진짜... \"갈때 뭐라고 그러든?\" \"잊으라고...\" \"그게 끝?\" \"김윤한이 나 좋아한다고 걔한테 가라고...\" \"김윤한...? 우리집에 있는 김윤한??\" \"응...\" \"그렇게 안봤는데, 웃긴놈이구만, 어디서 내동생을 넘봐, 이걸...\" 이얘기는 하지말걸그랬나... 오빠가 또 나서는거 아냐? 흠..... 꼬일 것같다. \"아, 미안- 또 뭐라고 했어?\" \"글쎄... 또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고-, 아맞다. 음성 남긴거 아직 저장 되어있는데-\" 핸드폰 *89에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세지를 누른다. \"여기-\" 한경이오빠가 진지한 모드로 음성메세지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곤 갑자기 눈빛이 확뜨이더만은-, 뭔가 발견했다는 듯이 말한다. \"分かったよ。\" \"응?\" \"걱정하지 마라 동생아- 박준희도 너 아직 못잊었을 걸?\" \"....응?\" \"남자의 직감이랄까? 그리고 나중에 만나자는건 미래가 보장된 얘기잖아, 오케이?\" 그런가... 근데 여자의 직감은 들어봤어도 남자의 직감은 뭐지... \"그래 오케이... 아리가또다 아리가또-\" \"잠깐-잠깐, 너는 정확히 박준희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박준희를 잊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는걸보면 아직 많이 사랑하는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겠지... \"후아-, 그럼 내가 일본가서 알아볼게\" \"정말...?\" \"신주쿠에 산다고 했지? 나도 같은 도쿄에서 사니까 뭐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냐?\" \"그럴까?\" \"걱정마라 동생아- 이 오빠가 다 알아서 해주마.\" 그리곤 히죽 웃는 오빠가 너무 고맙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항상 도와주려고 하고, 고마워- \"나 간다- 빠이~\" \"오빠.\" \"응?\"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편지지 위를 오간다. 편지는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거라서 이렇게 쓰고있다는게 어색하기는 하지만,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고있다. 한별이라는 그 이름이 벌써 몇번째나 적어졌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오랫만에 마음껏 불러보는 이름인지라 자꾸만 자꾸만 적어 넣게 된다. 한별로 시작해서 한별로 끝나는 이 편지는 온통 거짓말 투성이다. 거짓말.. 거짓말... 손으로는 열심히 거짓말을 써내려가고있지만,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못한다. 한별이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편지. 어.. 안녕이라고 써야하나? 잘 지내지? 한별이 넌 잘지내고 있겠지? 벌써 일본 온지가 꽤 됐다. 그치.. 한별아? 처음에 일본 왔을 때는 적응 안되고 그랬는데, 지금은 한국보다 더 편해진 것같아. 음.. 내가 이편지를 쓰는이유는, 한별이 너에게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어서야. 내가 한별이 너없이 어떻게 살까 했는데... 그게 시간이 다 알아서 해주는 일이더라.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한별이 너를 잊고있고... 한별이 너를 다 지워낼수 있을 것만 같거든... 내가 다시 한국을 언제 갈지는 아무도 몰라, 물론 나도 모르고.... 내가 하려던말은, 다시 한국으로 가게 된다 하더라도 한별이 너를 만날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하려고 했어. 그니까 그냥 나같은거는 툴툴 털어버리라고.... 그말 하려고 이 편지쓰는거야... 마지막으로... 한별이 넌 정말 좋은 추억이었어... 내 곁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정말로... 고맙다 정한별.....   입술을 꽉깨물고선 새하얀편지지를 국제우편봉투에 집어넣고 입구를 풀로 칠해 봉했다. 받는 사람편쪽에 똑똑히 기억하고있는 정한별네 집주소를 적어 넣고 보내는 사람편은 새햐얗게 비워두었다. 하얗게 비워둔 자리를 결국은 까맣게 글씨로 채워넣는다. 너에게 미련 생기게 만들면 안되지만은, 너에게 답장이 오기를 바라는 이 못된 심장이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기적이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을 니가 제발 지워 줬으면 한다. 너의 머리에서 나의 기억만 새하얗게 지워져버렸으면... 나의 못된 이기심이 담긴 편지는 그렇게 우체통으로 들어가버린다. 우체부가 나의 못된 이기심은 다 빼버린 편지를 정한별에게 전해줬으면 하고 또 못되게 바란다. * \"꼬맹아 편지왔다~ 어.. 이름이 안써있네? 東京, 新宿?\" \"편지?\" \"어어- 일본에서 왔댄다. 신주쿠면.... 편지 올 사람이 그 자식밖에 없지?\" \"응?\" \"빨리 뜯어봐\" 일본에서 나한테 편지라.... 그것도 신주쿠? 멀리 일본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편지봉투를 받는 사람인 나대신에 벌써 한경오빠가 열심히 뜯고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찢어버린듯한 모양이지만. \"야 이거 내가 먼저 읽어도 되냐?\" 열심히 다 뜯어버리고서는 아무래도 내편진데 자기가 먼저 읽기 뭐했는지 나한테 먼저 건낸다. 새하얀 색깔에 아무 장식도 그림도 없이 까만 글자 몇줄만 길게 늘여져있는 편지에는 뭔가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것만 같았다. 첫번째 줄부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해서는 중간 쯤에 와서는 눈물이 앞을가려 읽을수 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꼬맹이 왜울어? 뭐야? 응?\" \"흐으.....으앙..\" 다시는 안볼거라는... 날 다 지워낼 거라는 그말... 날 상처주는 말들이 이편지에는 너무나 많이 써있는데도 한별이 한별이하고 써있는 부분마다 니가 내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가 자꾸만 기억이 나서 그게 더 아프다. 거짓말일거야, 다 거짓말- 거짓말일거라고 믿으면서도 눈물을 그칠줄 모르고 얼굴위를 가득 흐르고 있다. \"이리줘봐.\" 한경이오빠가 내 손에 꼬옥 쥐어져있던 새하얀 편지를 가져가 눈동자를 굴리며 빠르게 읽어나간다. 니가 자꾸만 생각이나고 자꾸만 맘이 슬퍼져서 점점 몸에 힘이 빠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무렇지 않게 편지를 읽어나갈수있는 한경이오빠가 정말로 정말로 부러워진다. 난 언제쯤 너에 관한 생각을 지워낼수있을까.. \"야 그러고보니까 여기 주소 .. 여기로 찾아가면 되는거아냐?\" \"우으응?\" \"바보- 쿡.. 내가 여기로 가면 되는거아냐?\" 눈을 크게 뜨고 비비면서 장화신은 고양이마냥 한경이오빠를 쳐다봤더니 한경이오빠가 내 머리를 헤집어놓는다. \"이 봉투는 나줘. 일본 가면 제일 먼저 여기부터 갈게\" \"한그이오빠아아아아\" \"징그러!\"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이?\" \"아니-\" \"야 정한별!\" \"응?\" 내가 이래서 한경이오빠를 미워할수가 없는거야. 히히- 하면서 한경이오빠를 껴안고있는데, 위층에서 김윤한이 쾅쾅거리면서 내려온다. \"떨어져-\" \"응?\" \"그렇게 안고 있지 말라고\" * 금요일아침.., 7시 조금 안돼서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가 하얀비누로 하얀거품을 가득 낸뒤,  얼굴전체에 골고루 비비고서는 손가락사이사이도 비누를 골고루 발라준뒤, 콸콸 쏟아져나오는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에 얼굴을 씻어냈다. 매끈한 피부위로 자리잡은 상쾌한 비누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수건으로 깔끔히 마무리를 하고선 방에 들어와서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이제 방학까지는 한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네- 히죽 거리며 기분좋은 생각도 잔뜩 떠올리고는 한껏 올라간 기분을 데리고 방을 나온다. 방금 전까지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는데 방밖으로 나와 계단을 밟자마자 보이는 정한별과 노란대가리가 꼬옥 안고있는 모습에 기분이 땅바닥으로 내려 앉아버렸다. \"떨어져-\" \"응?\" \"그렇게 안고 있지말라고\"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쾅쾅 밟고 내려가면서 속에 자리잡고있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니 결국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가방을 다시 고쳐매고는 현관문을 향해 걸어나간다. 금방 방에서 나오셔서 끓이고있던 국과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하나씩 꺼내시던 아주머니가 밥 안먹고 가냐고 물어보지만, 먹고싶은 기분도 싹가셨다. \"아뇨, 배 안고파요- 먼저 학교갈게요\" \"야 김윤한?\" 내이름을 부르는 정한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짜증난다. 뭐, 따지고 보면 정한별이 짜증나는게 아니라 정한별 옆에 꼬옥 붙어있는 저 노랑대가리가 짜증나는 거겠지- 신발을 꾸겨신고선 현관문을 신경질적으로닫고 밖으로 나온나는 괜히 잘못없는 땅한테 화풀이다.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누가보기에도 \'나 삐쳤어요\'를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는 꼴이다. \"김윤한!!!!\" 뾰루퉁한 표정으로 쿵쾅대며 걸어가다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는데, 뒤에서 헥헥거리며 쫓아 뛰어오는 정한별이 보인다. 이제 곧 겨울인데 헥헥거리면서 땀이 삐질 나온 정한별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게 보인다. 또 거기에 삐친게 다 풀어져버린 나는 정한별을 쳐다보다가 침을 꿀꺽 삼킨다. \"하아- 야 너 밥도 안먹고가?\" \"..너는? 먹고 나왔냐?\" \"아니, 너먼저 씩씩대면서 나가버리는데 먹을새가 어딨냐 진짜!! 같이 먹어야 될거아냐\" \"배안고파? 먹고나오지..\" \"지는- 빨리 가기나 해\" 먼저 걸어나가는 정한별의 뒤를 빠른걸음으로 쫄래쫄래 쫓는다. 정한별의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밟아보기도 하고 정한별이 발자국을 뗀 그자리를 바로 밟아 보기도 하다가, 얼굴위로 차가운 뭔가가 툭 떨어졌다. \"어 눈온다-\" 먹구름낀 하늘에서 새햐안 눈송이들이 내려와 소복소복 땅위에 쌓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정한별에 내 기분까지 좋아져버린다. 눈이 그렇게 좋냐는 질문에 으응- 하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정한별은 마냥 어린 꼬맹이같다. 한편으론 노란대가리가 왜 정한별을 꼬맹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빨개진 정한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번지고 어느새 눈이 새하얗게 쌓여 온동네를 지워버린다. 그렇게- 우리 마음도 하얀 눈으로 뒤덮혀 다 지우고 하얗게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좋으련만- * 냉장고를 열었더니, 텅- 비어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잔뜩 쌓여있고, 식탁위에는 드러운게 덕지덕지 붙어있다. 혼자살다보니까 자꾸만 안 치우게 되고 지저분하게 있게만 된다. 한국인이다보니 학교친구들과도 별로친해지지 못했고, 학교가는 것 외에는 바깥에도 잘 나가지를 않았다. 그랬더니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같기도 하고, 무튼 냉장고도 채울겸해서 밖에좀 나가봐야겠다. 편의점 문을 열자 딸랑- 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문을 잡고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기분을 조금 업시켜보려고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했다가는 ㅁㅣ친놈 취급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관두기로 했다. \"어? 한국분이세요?\" \"네? 어... 네- 헤헤, 한국분이신가봐요?\" \"처음보는데, 이동네 사세요?\" \"네에..\" 다 내 입맛에는 안맞는 것들이라 뭘 먹어야되나 열심히 음식들을 쳐다보고있었는데, 편의점 알바생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사람인데, 머리를 깔끔하게 깎고 안경을 쓴 딱보기에도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라는걸 알수있는 그런남자였다. 음식 목록에서 그나마 별로 느끼하지 않은 통조림 몇개랑 맛은없지만 그래도 김치 없으면 밥 못먹으니까 포장용 김치 하나 고르고 카운터에 올려놓고선 지갑을 꺼냈다. \"일본엔 어떻게 오셨어요?\" \"아, 그냥... 공부하러..\" \"혼자 오셨어요?\" \"네..\" \"저돈데... 공부할려고 막상 오긴 왔는데, 가족들도 보고싶고 여자친구도 보고싶고 막 그래요.\" 빳빳히 꽂혀있는 지폐몇장을 꺼내서 그 남자에게 내밀었다. 여자친구가 보고싶다는 그 한마디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나도... 나도 그래요- 하고 나도모르게 슬픈눈으로 그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사람은 여자친구랑 전화도 하고 편지도 주고받고 하겠지?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맘이 아픈사람이 있을수있을까? 다시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봉지를 들고 무거운 맘도 들고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기분좋은 소리로도 정리되지 않는 맘과 무거운 한숨과 함께- * \"김윤한- 나 아이스크림 사주라-\" \"추운데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호빵먹을래? 아니면 호떡? 것도 아니면 붕어빵?\" \"나 진짜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에- 저기서 그냥 500원짜리 사오면 안돼?\" \"감기걸릴텐데?\" \"괜찮아 괜찮아 이래뵈도 내가 무쇠로 만든 사람이잖냐, 인조인간 로보트- 몰라?\" \"그냥 따뜻한거 먹자-\" \"아이스크림- 아아- 아이스크림 아, 먹고싶다아-\" \"아,알았어- 사올테니까 대신 집에 들어가서 먹어, 응?\" \"응, 김윤한 최고!! 역시 내친구!! 빨랑사와요~\" 눈와서 축축한데다가 차가운 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는데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은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긴 했는데, 갑자기 정말정말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아직어려서 그런가..? 아직 어리다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데-흐음.... 내가 사달라고 한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뛰어간 김윤한을 뒤로하고 몇걸음을 걸어본다. \"저기.. 혹시 정한별씨.... 아니세요?\" \"네?\" 차가운 바람이 쌩쌩부는가운데 편의점과 얼마 멀지 않은 공원에 벤치하나 덩그러니, 그리고 그 위에 사람하나 덩그러니... 멍하게 김윤한이 간 방향만 쳐다보고있는데, 누가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건네왔다. \"정한별씨 맞죠?\" \"맞는데요...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임은민이라고해요.\" \"네?... 네.. 안녕하세요.\" \"아.. 저는요.. 음... 그니까 박준희...\" \"준희 아세요?\" \"네?.. 아 일본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인ㄷ...\" \"정말요? 준희랑 연락하세요?\" \"네..? 자주는 아니고..\" \".......... 흐으...읍...\" \"어.. 우세요?\" \"아.... 아녜요..\" 이사람... 준희랑 연락하고 있대. 나랑도 안 하는 연락을 이사람은 잘 하고 있대. 보고 싶은데.... 이사람은 많이 볼 수 있었겠네.... \"저기..... 혹시 제가...\" \"한별아 아이스크.... 어, 너 또 왜울어?\" \"윤한아.. 으앙-\" 소리를 내지못하고 흐느끼던 울음이 김윤한이 오자 막혔던게 뚫리 듯 크게 터져버렸다. 지금 내옆에는 니가 있어줘야 되는 거 아냐....? 박준희.. 너 진짜 나쁜거 알아? * 터벅터벅걸어 집에 까지 도착해서 냉장고에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선 다시 터벅터벅 TV앞까지 걸어가서 쇼파에 털썩 눕다시피 앉아서는 리모콘을 꼬옥 눌러서 TV를 켰다. TV에서는 딱딱한말들로 세상돌아가는얘기들을 해주고, 오늘의 소식들도 말해주고 해주는데, 정한별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있는지도, 정한별은 오늘 어떤일들이 있었는지도 아무것도 말해주지않는다. 그저 자기가 뱉어내고 싶은 말들만 열심히 뱉어내고 있을 뿐... 조용히 테이블위에있는 핸드폰을 집어 슬라이드를 올린후 번호를 꾹꾹 눌렀다. 잠시후 따르르릉- 하는 통화연결음이 몇번 들리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もしもし?\"  *여보세요? \"郁... 俺、潤だけど\" *카오루... 나 준인데... \"潤? どうゆう事なの?\" *준? 무슨일이야? \"ちょっとでて来てくれる? バスケットボール一緒にしようって言おうと思って電話したのよ。\" * 잠깐 나와 줄 수 있어? 농구같이 하자고하려고 전화 한거야. \"あぁ。わかったよ。まっててね。すぐ行くから\" 응. 알았어.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테니까. 전화를 끊고서 바로 초록색 반팔티위에 하얀색 얇은 후드점퍼하나를 입고 농구공하나를 들곤 밖으로 나왔다. 11월의 마지막에 12월의 바람이 찾아와 몸을 때리듯이 달려들어 반팔하나 얇은점퍼하나를 입었으니 추울만도 하겠건만 그닥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농구공을 틱틱 튕겨가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루이스네집에 점점 가까워졌다. 루이스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루이스가 먼저 나와서 날 반겨주었다. \"わり!少し遅っちゃった。\" \"大丈夫だ。始めるか?.\" 루이스랑 농구를 하면서, 잠시 모든 생각은 다잊고, 겨울이 무색하게 땀을 뻘뻘흘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어지러운 기억속에서도 잠시 잊어버릴수조차 없는 너의 기억이 점점 내안으로 파고들어오는게 그게 너무 아프다. \"카오루... 나 한국이 너무 가고 싶다.. 한국이 너무 그립다. 아니..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다...\" \"何と言ったの??\"  *뭐라고 했어? \".......\" \"潤?どうしたの?\"  *준? 무슨일이야? \"........何もない。ごめん\"  *아무것도 아냐.. 미안.. * 거의 정한별이 나를 밀다시피 편의점으로 집어넣고 자기는 공원으로 총총총 뛰어가 벤치에 털썩 앉아버린다.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저 안 구석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박스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박스문을 밀어서 열고선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데, 추워- 라는 말이 나올뻔했다. 밖에서도 추웠는데, 또 들어와서 차가운걸 만지려니 손이 얼것만 같았다.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나가서 정한별한테 손녹여달라는 말을 하곤 손을 꼬옥 잡을 생각을 하니깐 기분이 업되서는 정한별이 좋아하는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다 꺼내놓고는 카운터로 향했다. 주머니를 팡팡 두드리니깐 지갑이 느껴지질않아서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지폐몇장이랑 동전몇개만 나뒹굴고 있고 지갑은 안가져왔나보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죄다 꺼내보니까 퍼런지폐 세장하고 오백원짜리하나 오십원과 십원이 사이좋게 세개씩 그리고 주머니 구석에 꾸깃꾸깃 박혀있던 천원짜리 한장까지, 모두 삼만천육백팔십원이있다. 만원짜리 한장빼고는 모두 다시 주머니에 처박아놓고는 카운터로 만원짜리 한장을 내밀었다. 6500원입니다 라는 말과함께 띵- 하고 카운터에서 돈이 들어있는곳이 열렸다가 만원짜리를 먹고, 3500원을 뱉어내고는 다시 들어갔다. \"거스름돈 3500원입니다.\" 남은돈 3500원까지 다시 주머니에 처박고, 들어왔던 문쪽으로 가자 자동문이 조용히 열리고, 벤치에 앉아있는 정한별이 보인다. 그리고 그옆에 갈색머리에 짧은치마를 입고있는 여자가 정한별과 얘기를 하고있다. \"한별아 아이스크.... 어, 너 또 왜울어?\" 누군데 둘이 저렇게 얘기하고 있는건가- 하고 조용히 다가가는데 갑자기 정한별의 눈에서 한방울 눈물이 또로록 흘러내리더니 두방울 세방울..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윤한아.. 으앙-\" 내가 다가가자 아까보다 더 크게 울어버리는 정한별... 손에 들고 있는 봉지에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들어있고, 지금 내눈에는 차가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한별이 비친다. 대체 뭐 때문에 또 우는건지.... 정한별 앞에 서있는 그여자에게 한 번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정한별에게 시선을 맞췄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게 없어 휴지도 없고 닦을것도 없다. 급한 마음에 옷 소매를 끌어 당겨 정한별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점점 내 소매를 적셔가고, 아까부터 앞에 서있던 그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도 모르는 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한별은 너무 아파보인다. \"한별아... 왜울어... 응?\" \"흐으읍.... 안울어-\" \"안울긴... 집에 갈까?\"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기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는 먼저 걸어가는 정한별을 앞 에두고 뒤에서 왼손엔 아이스크림 봉지를 들고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걸음을 빨리해서 정한별옆에 따라 붙어서는 눈물로 차갑게 얼어붙은 정한별의 손을 덥썩 잡았다. 내 손도 아직 녹질 않아서 그렇게 따뜻하지 않은데, 정한별 손은 내 손보다 훨씬더 차가웠다. 평소에는 손을 놓아버리던 정한별이 오늘은 웬일인지 내손을 더 꼭 붙잡는다. 차가운 둘이 맞붙어 더 차가워 져야할 손은 점점 더 따뜻해져갔다. \"김윤한....\" \"응?\" \"....윤한아...\" \"......왜..?\" \"니가 나한테 사귀자고 했잖아\" \".......\" \"그거 지금 대답해도 돼?\" \".........응?\" \"지금 대답해도 되냐니까...\" \"어? 어..\" \"그거 받아들일게..\" 심장이 터져버릴것만 같다는 느낌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정말로...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것같이 쿵쾅쿵쾅뛰어대는게 정한별한테 들릴것만같았다. 지금 시간이 멈춘다면 정말 좋겠다. *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 버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사이에 지나버렸으니까.... \"여보세요, 임은민?\" 핸드폰에서 임은민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내가 임은민한테 먼저 전화한 적이 있었나? 없는 것같은데... 있었다해도 기억조차 나지않는다. 임은민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넘어가려는 사이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받아서 깜짝 놀랐다. \"어? 박준희가 웬일로 나한테 먼저 전화를 걸구..?\" \"아니... 그냥 뭐- 잘지내나 궁금해서\" \"니가 나 잘지내는걸 궁금해할 애가 아닌데- 안그래?\" 하긴.. 내가 생각하기에도 잘지내나 궁금해서란 말은 가식이다. 그냥 심심해서 한번 눌러본 것일뿐인데, 이렇게나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도모르게 잘지내나 궁금해서 라는 말이 나왔다. \"나 몇일 전에 한국 갔다 왔다. 진짜 오랜만에 갔더니 많이 바뀌었더라.\" \"아, 그래..?\" \"아 맞다. 나 니네집 들렸다가 근처에서 니 여자친구 봤다?\" \"........어?\" \"사진이랑 똑같아서 단번에 알아봤어. 이쁘긴 이쁘더라.\" \".........어..\" \"니 여자친구, 내가 니 이름 얘기하니깐 바로 울어버리더라...\" \"..........\" \"너무 많이 울어가지고 놀라서, 인사도 못하고 그냥 와버렸어-\" \"..........그래?\" \"근데, 니 여자친구랑 어떤 남자랑 같이 있던데...\" \"어?\" \"우음..... 약간 갈색톤 머리에다가 눈썹짙고, 눈도 크고 잘생겼던데\" \"........\" \"누군지 알아?\" \"글쎄...\" \"너 일본 와있는 동안에, 니 여자친구 한 눈 파는 거아냐?\" \"뭐?\" \"아.. 아냐.. 미안.. 나 먼저 끊을게\" 통화가 끊겼다는 깔끔한 소리가 한번들리고는 사라졌다. 너 일본 와있는 동안에, 니 여자친구 한 눈 파는 거아냐? 라는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리속을 뱅뱅 돌고돌고 또 돌고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엔 김윤한이라는 세글자가 남았다. * \"한별아 빨리 나와- 아침먹고 가자\" 토스트기에 버터바른 식빵 두개를 넣어놓고, 냉장고에서 우유와 딸기 잼을 꺼내 식탁에 깔끔하게 정리해 올려놓는다. 한별이가 입에 머리끈을 물고 머리를 묶으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엄마는?\" \"아, 주무시고 계셔. 깨우지마\" \"어? 빵이네- 내것도 딸기잼 발라줘-\" \"응- 아 맞다 컵 안꺼냈다. 컵좀 꺼내줘\" 한별이 빵에 먼저 딸기잼을 적당히 바르고, 한별이가 가져온 컵에다가 지금 밖에 내리고 있는 눈만큼 하얀 우유를 따른다. \"내꺼는 반만- 어 됐어,됐어.\" \"더 마시지? 너무 조금아냐?\" \"무슨 아침부터 포식하고 나가는것도 아니고 적당히먹어, 응?\" \"좀만 더 마셔-\" \"너 많이 마셔\" 결국 그 센 고집을 못꺾고, 내 컵에 남은우유를 모조리 부어버린다. 컵안에 가득 찬 우유를 한모금 마시고, 딸기잼을 바르려는데, 딸기잼이 슥슥 발라지고있는 빵이 한별이 손에 들려있다. \"자, 먹자아- 잘먹겠습니다. 맞부딪혀 짝- 소리를 낸 한별이의 손이 우유를 따라둔 컵으로 향한다. 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 난 한별이의 입가가 하얗게 물들었다. 손등으로 입가를 쓱 문지르곤 딸기잼바른 빵을 들어올려 입을 벌리고는 한입 크게 베어문다. 빵을 씹으면서 웅얼웅얼 마시따-라고 하면서 헤죽웃는데, 이번에는 입가에 딸기잼이 묻었다. \"칠칠맞게 다 묻히긴-\" 쿡쿡 웃으면서 입가를 가리키자 어디? 하면서 엉뚱한 곳을 문지른다. 아니 거기 말고 왼쪽- 하니까 또 이번에는 여기?하면서 한참 밑을 문지른다. \"아니 거기말고 여기라니깐\" 갈피를 못잡고 엉뚱한 곳을 짚고있는 정한별의 손을 치워내고는 빨간딸기잼이 묻어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닦아낸다. 헤헤- 거리면서 웃다가 또 켁켁 하고 목에 걸려버렸나보다. 아직 다마시려면 한참이나 남은 우유를 한별이에게 내밀자 벌컥벌컥 마시곤 반도 안남았다. 한번더 마셔서 깨끗이 잔을 비워버리곤 식탁위에 컵을 내려놓는다. \"켁켁.. 아 숨넘어가는줄 알았어\" \"우유, 더줘?\" \"아니- 배불러.\" 배부르다고 해놓고는 내우유를 가져가서 마시곤 또 손등으로 입가를 쓱 문지른다. 나도 남은 우유를 마저 마셔버리고는 한별이 컵과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넣어둔다. 빨리 나와- 하고 먼저 밖으로 나가버리는 한별이를 따라 무거운 가방을 들쳐매고는 밖으로 나간다. \"아 추워-\" \"자-, 손\" 어느새 그친 눈이 땅을 가득 매워서 차가운 공기가 차오른다. 한별이를 향해 손을 내밀자 한별이가 손을 꼬옥 잡아준다. 날씨는 이제 막 추워지기 시작했지만, 우리 손은... 따뜻해지고있고, 우리의 맘도 따뜻해지고있다- *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우리집 문을 혼자 열고 들어온다. 항상 김윤한이 내가 늦게 끝나도 기다려서 같이 가주고 했는데, 오늘은 청소당번이기도 하고, 윤한이가 먼저 가서 해야될일이 있다고 해서 청소를 마치고 혼자 왔다. 날 내팽겨치고 먼저 갈정도면 대체 무슨 중요한 일이길래..... \"윤한아-, 김윤한? 어딨어?\" 이 자식... 불러도 대답도 없고 나 진짜 삐치려고 그러는데.... 김윤한 방문을 벌컥 여니까 여기도 없다. 한경이 오빠는 오전에는 쭉 자다가 오후에는 친구 만나러 간댔고...해서 없고,  일단 가방부터 내려놓고 전화라도 걸어봐야겠다해서 힘이 다 빠진 채로 방문을 열었다. \"한별아 생일축하해!!!\" 들어가자 마자 폭죽들이 팡팡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터지기 시작했다. 고깔모자를 쓴 남자 둘, 그러니깐 김윤한이랑 한경이 오빠가 빨간 고깔모자를 뒤집어 쓰고있고, 김윤한은 빨간딸기와 여러 과일들이 얹어있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까지 들고있다. \"꼬맹이 벌써 열여덟이나 먹었구나!! 너도 늙을 날이 얼마 안남았어\" \"한경이오빠.... 친구만나러 간다더니-\" \"내가 친구가 어딨냐? 십년을 넘게 일본에서만 살았는데\" \"야 정한별! 나 삐친다? 이거 다 내가 준비한ㄱ....\" 윤한이의 삐친듯한 그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그냥 꼬옥 안아버렸다. 귓가에 대고 고마워- 라는 말을 속삭이곤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헤죽 웃었더니, 옆에서 한경이 오빠가 놀고있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있다. \"놀고있네....\" \"거봐....\" 그말할줄 알았어, 침대에 걸터 앉아서 방을 둘러보니까 내 핑크색 방에 무지개 색깔 풍선들이 천장을 가득 메우고 그 풍선들은 각각 \'생\' \'일\' \'축\'\' 하\' \'해\' 라는 한글자 한글자가 써있다. 벌써 내생일이 다됐나? 12월 9일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케잌 먹을거야?\" \"너는?\' \"너 먹으면-\" \"오빠는?\" \"먹어\" \"그럼 나도 좀만 먹을게\" 케익을 먹으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발에 뭐가 채인다. 뭔가 해서 봤더니 크기 차이가 엄청 큰 상자들이 차례로 놓여있다. \"어? 이거 뭐야?\" \"꼬맹이, 뭐야, 벌써 봤어?\" \"케익 다 먹고 보여줄려고 숨겨놨는데 들켰네.. 헤헷\" \"뭐야?\" \"꼬맹이 선물, 제일큰게 내가 주는거다. 돈이 없어서 좋은건 못주고-\" \"나머지 두개는 내가 주는거야\" \"진짜? 히히 지금 열어봐도 돼?\" \"응\" 제일 큰 상자를 먼저 열어 봤더니 상자만큼이나 엄청 커다란 곰인형 하나가 들어있다. 감촉이 보들보들한게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나 가면 또 일년동안 못보니까 이왕 온김에 큰 존재를 안겨주고 가는거야, 오케이? 1년동안 깨끗하게 모셔놔라\" \"웅!! 고마워 오빠 히히-\" \"내건 안열어봐?\" 먼저 가운데에 껴있던 그 상자를 열어봤더니, 이 방의 색이랑 너무 잘어울리는 핑크색의 장미가 한가득 담겨있다. \"우아, 이쁘다-\" \"핑크색장미는 행복한사랑 그리고 맹세라는 꽃말이 있대-, 그리고 핑크색 장미 백송이니까 100% 완전한 행복한 사랑\" \"고마워\" \"나머지 하나는 안열어봐?\" 큰 상자 두개를 열고나니 조그마한 상자 하나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콩콩 걸어가서 그 상자를 주워와 김윤한 한테 돌려준다. \"이거는 나중에... 나중에 줘\" \"응? 열어보지도 않구..?\" \"아냐... 나중에 줘도 돼. 나중에 내가 달라고 할 때.. 그 때 주라...\" 그 속에 날 향한 너의 사랑 만큼의 반짝임을 머금고 있는 그 반지가... 아직 나에게는 너무 감당하기 부담스럽다... 그건 나중에.... 나중에 내 맘이 널 허용하면 그 때 줘.... * \"나 갈게- 꼬맹이 잘있어. 작은 엄마도 안녕히계세요.\" \"잘 가, 내 년에는 좀 따뜻할때 와.\" \"그래, 몸 건강하구, 삼촌한테 안부 좀 전해드려.\" \"네-. 야, 너는 인사안하냐?\" 운동화 앞코가 공항 바닥에 부딪히면서 탁탁 하는 소리를 낸다. 그소리 말고도 게이트 안내등 안내방송이 공항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며 서로 수다 떠는 소리등이 귓가를 맴도는데 그 중, 저 노란대가리가 나한테 한말이 귀속을 찔러댄다. \"잘가.........요\" 드디어 가는구나, 이 노란대가리.... 2주만 있는다고 하더니 2주를 훌쩍넘어 한달이 다되도록 가지 않는 이 노란대가리를 볼 때마다 간지러운데 손이 닿지않아 긁지 못하는 등한가운데 마냥, 혹은 긁고 싶어도 긁지못하는 발바닥 한가운데가 가려운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제 간다고하니 그 간지러운 등을 효자손으로 벅벅 긁어서 시원해진느낌이다. \"갈게요. 꼬맹이 둘 잘있어라! 또 올게\" 또 와? 절이라도 할테니까 제발 오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노란대가리를 향해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해줄수밖엔 없었다. 어차피 저 인간은 오지말라고 안 올 인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도 저 인간은 구름을 타고서라도 올거야, 암.. 그렇고말고,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서 공항 문을 제일먼저 빠져나온건 역시 나였다. \"빨리 안타요? 춥다.\" \"왜이렇게 서둘러, 좀 천천히 가.\" 저기 멀리서 느릿느릿걸어오는 한별이와 아주머니가 그렇게 답답해 보일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시달렸던걸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버리고 싶어졌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노란대가리가 또 찾아와 날 괴롭힐 것만 같았다. 차 문을 열어 한별이를 먼저 태운 후 내가 그 옆자리에 앉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왔을때 노란대가리가 운전하고 온것과 달리 아주머니가 운전을 하고 가셨다. 운전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는 아주머니는 꽤 수준급의 운전실력을 갖고계셨다. 아까 노란대가리가 운전하고 갈 때보다 훨씬 맘이 편안하다. \"엄마, 일본 가려면 몇시간 정도 걸리지?\" \"별로 안 걸려.\" \"그럼 좀 있다가 전화해야겠다.\" \"밥도 안해놨는데, 우리 외식이나 할까?\" \"응응! 맛있는거 사먹자-\" 턱을 괴고선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고있는데, 창밖에서 나무들이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달리고 달려서 어디로 도망치려고만 하는것같다. 멀리멀리- \"야, 윤한아 뭐먹을까?\" \"어? 어...?\" \"뭐하고 있어?... 엄마가 외식한대 뭐 먹고싶은거 있어?\" \"아니, 너 먹고싶은거 먹어\" \"그럼, 우리 고기 먹으러 갈까? 갈비 어때 갈비-?\" \"맘대로해, 난 아무거나 먹을게\" \"그래에- 엄마, 그럼 갈비먹으러 가자\" \"엄마가 갈비집 맛있는데 아는데 거기로 가자\" \"응-\" 한참,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이제 알것같다... 해방됐다는걸.. 해방..... 노란대가리한테서 해방됐다!!!!!!! 아 너무좋아!!!!!!!! \"아!!! 좋아좋아!!!\" \"갈비 좋지-\" * -띵동띵동 일요일 아침 부터 열심히 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운건 오랜만에 듣는 초인종 소리였다. 침대헤드 옆 협탁위에 시선없이 손을 휘적휘적 거려본다. 핸드폰을 찾으려했지만 잡으려는 핸드폰은 잡아지지않고 괜시리 다른 물건들만 툭, 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하나 둘 떨어졌다. 핸드폰 옆에 모든 물건을 다 떨어뜨리고서야 핸드폰이 손에 쥐어졌다. 초인종소리는 간격을 두고 계속 들려오는데, 핸드폰 액정을 열어젖혀 시간을 확인하는데, 11시 5분에서 방금 막 11시 6분으로 넘어간다. 핸드폰을 다시 협탁위에 던지듯이 올려놓고는 꾸물덕대며 침대위를 빠져나오는데, 아까 떨어뜨렸던 물건들이 하나,둘씩 발에 밟힌다. 모서리를 밟았는지, 상당한 고통이 밀려오고 나서야 한쪽 발을 붙잡고선 떨어뜨린 물건을 하나씩 올려놓는다. 내가 발로 밟은 그 모서리는 아마 이 뾰족한 액자모서리가 아닌가 싶다. 정한별 사진을 고이 모셔둔 액자를 다시 협탁위로 모셔놓고는 거울을 보고 상태를 확인하는데 까치가 제 집인줄 알고 날아 들어올것만 같은 까치집이 머리위에 마련되어있다. 대충 머리를 손으로 몇번 빗어넘긴후에 터벅터벅 걸어가 현관문을 열어 밖에 있는 사람을 빼꼼히 내다보는데 \"에라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 누군지는 잘 안보이는데 노란색깔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고있는 사람이 한명 문앞에 서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것 마냥 손가락으로 초인종을 콕콕 누르고 있는 그사람을 다시한번 눈을 비벼서 확인하는데- \"어, 한경이형?\" \"야 박준희! 너 여기사는거 맞구나!\" \"한경이 형이 여길 어떻게...\" \"일단 들어가, 아씨 추워 뒈지는줄 알았네! 넌 왜 문은 안열고 난리야! 나 추위에 약한거 몰라?\" 그 노란머리에 볼과 손이 뻘게진채로 문을 열고는 나를 앞서서 신발을 후닥닥 벗고는 먼저 들어가는데, 방금전까지는 그렇게 졸려서 백만 톤보다 더 무거웠던 눈꺼풀이 가볍게 확 떠졌다. 눈을 껌뻑껌뻑 감았다 뜨면서, 얼른 쇼파로 가서 앉아버리는 한경이형을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는데, 마치 주인인양, 안들어오고 거기서 뭐하냐고 물어보는 한경이 형이 황당해 져버렸다. \"따뜻한거 있냐? 아무거나 손 녹일것 좀 줘봐\" \"커피 드릴까요?\" \"아.. 커피는 싫은데, 다른 차는 없어?\" \"홍차.....\" \"홍차 말구, 녹차는없어?\" \"녹차없는데, 쟈스민차 드릴까요?\" \"그럼, 그걸로 가져와\" 아무거나 달라더니 고르는건 여전하구나... 주전자에 물을 조금 따라 보글보글 김이 날때까지 끓이고는 빨간꽃이 그려있어 왠지 한경이 형이 좋아할것만 같은 작은찻잔에 끓인물을 따르고 쟈스민 알갱이가 담겨있는 병을 열어 5알을 퐁당 물에 담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찻잔안이 분홍빛으로 가득찬다. 쟁반에 컵을 올려 한경이 형이 앉아있는 쇼파앞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자 한경이 형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진다. \"쟈스민차는 색깔이랑 향이 좋아서 좋아, 그리고 은은하면서도 강하지 않은맛... 너무 맘에든다.\" \"...아,네...\" \"찻잔도 맘에 든다. 너 내 취향 기억하고있구나?\" \"워낙, 튀는걸 좋아하시니까...\" \"아, 맞다. 내가 차마시러 여기온게 아닌데\" \"..네?\" \"한별이가 보내서왔어. 한별이가 너 아직 못잊는거 알지?\" \".....네?\" 날 왜 못잊어..... 나같이 나쁜놈을 못잊는 이유가 뭐야..... 내가 잊어버려도 좋다고 했으면.... 그냥 지워버리지.... 바보같이...... * \"밥 먹는거야?\" 일요일 늦게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밥을 꾸역꾸역 입 안으로 집어넣고 있는데, 주머니에 빳빳히 손을 꽂고 룰루랄라 계단을 내려오는 김윤한이 팅팅부은 눈에 포착됐다. 밥 먹는거냐는 물음에 눈을 꿈뻑대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김치 하나를 집어서 입 안으로 집어넣는데, 마주편 식탁 의자를 삐그덕대면서 빼내고선 김윤한이 앉는다. 김치를 꼭꼭 씹어 넘기고는 밥 한숟가락을 다시 떠서 입안으로 집어넣고는 찌개를 떠먹으려고 손을 뻗는데, 앞에서 찌개가 담긴 숟가락하나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다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러갈래?\" 졸려서 꿈뻑대던 눈이 아이스크림이란 소리에 번뜩 떠졌다. 눈을 크게 뜨곤 밥을 꼭꼭 씹어서 넘겼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는 물 컵을 집어들어 한모금을 쪼로록 마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는 말에 먹던 밥을 치우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김윤한이 어깨를 눌러 다시 의자에 앉힌다. \"먹던거는 다먹고 가.\" \"아- 밥다먹으면 배불러서 아이스크림 못먹는단 말야\" \"가면서 다 소화되니까 걱정말고 드세요, 공주님-\" \"치이- 그럼 니가 한숟가락만 먹어주라\" 밥을 한숟가락 가득 퍼서는 김윤한의 입을 향해 갖다댄다. 반찬은? 하고 묻는 말에, 계란말이 하나를 떡하니 밥위에 올려놓곤, 괜시리 내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들이댄다. 김윤한의 입이 크게 벌려지고 그안으로 가득차있는 숟가락이 들어갔다가 나올땐 깨끗이 비어서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밥을 쓱싹 해치우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얼른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점퍼 하나를 걸쳐입는다. \"가시죠, 공주님-\" 신발을 갈아신고 나오는 나에게 내미는 김윤한의 손위로 내 손이 꼬옥 맞잡혀졌다. 처음 문 밖을 나섰을때는 별로 추운걸 못느꼈는데 점점 앞으로 나아갈수록 목안으로 바람이 슝슝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입에서 아 추워-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김윤한이 자기가 하고있던 목도리를 훌훌풀러 내 목에 둘둘 둘러줬다. 김윤한의 체온으로 데워져서 그런지 따뜻하다는 느낌이 가득한 목도리를 두르고는 두손을 꼭 잡고 김윤한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 \"어서오세요-\" 딸랑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베스킨라빈스 안으로 들어왔다. \"뭘로 드릴까요? 싱글로 하나씩 드려요?\" \"아뇨, 쿼터로 주세요\" \"네-,드시고 가실거죠? 어떤걸로 담아드려요?\" \"네, 정한별- 뭘로 먹을래?\" \"나는 슈팅스타-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골라\" 알바생이 뚜껑을열어 김윤한이 고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던 슈팅스타가 담기고 김윤한이 부르는 것 순서대로 담기기 시작한다. 모두 담기고 난 후에 김윤한이 계산을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오는데, 어디서 먼지가 날아왔는지 내눈으로 들어왔다. \"아-, 눈에 뭐 들어갔나봐, 따가워\" \"어디 봐. 많이아퍼?\" \"따가워...\" \"이리와봐\" 김윤한이 내 눈꺼풀을 들어올려 시원한 바람을 후우- 하고 불었다. 눈안으로 시원한 느낌이 감돌면서 따가운 느낌이 말끔히 사라졌다. \"됐어?\" \"우응- 거마워어\" 핑크색 스푼을 들고 먼저 슈팅스타를 가득 퍼담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톡톡쏘는 맛과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어우러져 나는 내가 제일좋아하는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입안에서 사르륵 녹여 목으로 넘기는데, 내가 제일 좋아할만 하다.너랑 같이 먹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넌 여기 없어.... *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바닥까지 싹 비우고 나서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니까, 온몸이 꽁꽁 얼어버린듯한 느낌이든다. 한별이한테 내 목도리를 주긴 했지만, 그 목도리만으로는 이 날씨를 어떻게 할수가 없을것같아서 한별이 손을 꼭 잡곤 내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 따뜻하다...\" \"기억안나?\" \"응?\" \"두달전만해도 너 나 싫어했잖아, 그때 내가 니 손 잡았을때 니가 손 차가운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했던거 기억나?\" \"그랬었나...?\" \"근데 니가 했던 말이 맞는거같아...\" \"응?\" 난 너무 나쁘거든, 널 너무 갖고싶어서 너의 상처도 감싸주지 못하는 난 너무 나쁘거든... 근데, 이렇게 못된 나를 봐주는 넌 정말 착한 애야.... \"아... 아냐, 춥다. 빨리가자\"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던 내 시간들은 어느새 크리스마스도 지나가버렸고, 나에게는 이제 새로운 한해가 인사를 해주고있다. 이때는 이렇게 해야지,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해야겠다하는 계획들도 대부분 지키지못하고 휙휙 지나가버렸다. 모든지 한별이에게 다 맞춰졌고, 한별이가 하자는대로, 모든것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난 점점 더 한별이를 향해 맞춰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몇일이 지나가자 벌써 새해도 몇시간 남지 않게됐다. \"제야의 종소리 들으러가자\" \"귀찮은데-\" 추운날 계속 돌아다니더니 결국 감기가 걸려버려서 빨간얼굴,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하는데, 그래도 심각하게 아파보이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긴하다. \"그래도 새해되는건데-\" \"그런가..?\" \"니가 가기싫으면 안가도돼. 감기도 걸렸고하니까\" \"그럼 가자. 헤헷\" 내가 보기엔 귀엽긴하지만 기복도 심하고, 귀도 얇아서 나중에 직장이라도 나가면, 어떻게 될지모르겠다. 뭐 그럼어때, 내가 평생 돈 벌어주면되지. \"빨리 옷 안입고 뭐해. 가자,가자\" 멍하게 생각하고있었는데, 벌써 옷 다입고 문앞에서서 콩콩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다. \"왜 웃어?\" \"아냐, 금방 준비하고 나올게\" \"응~ 빨리나와\" 옷을 챙겨입는중에도 자꾸만 그 귀여운모습이 생각나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지갑이랑 가방을 챙기곤 문손잡이를 잡는데,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니가 있을걸 생각하니까 자꾸만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분좋은 느낌이 변함없길 바라-, 문을 열고 나가니까 아직 니가 문앞에 있다. 밖에 발을 내딛으려 하는데 방에서 문이 열리더니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어디 나가?\" \"응. 제야의 종소리 들으러\" \"뉴스보니까, 오늘 진짜 춥다더라. 집에서 그냥 티비로 보면되지 뭐하러 나가\" \"그런가...?\" \"엄마가 부침개 해줄테니까 , 먹으면서 티비나 봐\" \"그럴까....\" \"부침개 한다?\" \"윤한아!!! 그냥 집에 있자-\" 가끔, 귀여운게 넘어서서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되는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넌... 그게 매력이야 * \"집도 되게 넓네.. 나 여기서 자고 가도 되지?\" 정말로 한참동안 여러가지 긴긴 얘기를 꺼내놓던 한경이형은 마지막 말을 꺼내놓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들고왔던 가방을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아까 들고온 가방이 엄청 크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가려고 그랬던거구나... 하고 생각하고있는데, 문이 다시 벌컥열리더니 한경이 형이 나온다. \"나 먼저 씻어도 되지?\" 그 한마디를 남기곤, 역시 또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채, 당연하다는 듯이 욕실로 사라졌다. 딸깍하고 욕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자동적으로 하아- 하고 한숨이 나온다. 타박타박 걸어가서 작은 방 문을열고, 포근한 이불하나를 꺼내 깔았다. 언제 부터 이런게 있었나 싶을정도로, 딱- 한경이형이 좋아하는 스타일일것같은 이불이었다. 마치 꽃밭같은 그이불은 보기만해도 향기가 슬슬 올라오는것 같았다. 이불을 고이 다 깔아놓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밖에서 먼저 문이 열렸고, 샤워가운에 촉촉하게 젖은 머리의 형이 들어왔다. \"너 나 좋아해?\" \"...네?\" \"너 내 취향을 너무 잘 알고있는거아냐?\" \"...하하....\" 하긴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잘 알고있긴했다. 둘 사이로 어색한 기운이 흘러서 어색한 웃음을 한번 흘렸다. \"미안한데, 난 남자는 안좋아하는데.. 풋...\" \"네?\" \"冗談だった。진지하게 생각하지마 제발...\" *농담이었어. \"...아, 네...\" 머리속엔 농담이 뭐그러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입 밖으론 나가볼게요- 하는 말이 나왔다. 여긴 우리집인데, 왠지 자꾸만 저 형이 주인인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찝찝했다. 그후로 몇일동안 계속 한경이형의 말을 들으면서 지냈고, 한경이형은 한동안 계속 우리집에서 잤다. 그 긴긴 시간이 흐르고 한경이 형이 돌아가는 날에는 왠지 틀에서 벗어나서 해방된 느낌같은게 들었다고나 할까? 되게 자유로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경이 형이 간뒤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 새로운 한해가 시작이 되곤, 그 짧았던 방학이 다 끝나버렸고 벌써 개학을 해서 졸린눈으로 학교를 나갔다. \"야아- 박준희!!!\" \"..........\" \"야! 너 왜 씹고 지나가? 놀자아-\" \"나 피곤하거든? 잘가라\" \"오랜만에 학교까지 왔는데, 그러기냐?\" \"누가 오랬냐?\" \"피이... 야아... 놀자아, 응?\" 임은민은 지치지도 않나보다... 눈치가 없는건지, 바본건지... 순진한건지... 아무래도 순진한건 아닌것 같은데...  집까지 가는 그동안 뒤에서 계속 쫑알쫑알 하는 말을 무시하면서 가자, 길잃어버린 개에게 한번 관심가져줬더니 쫄랑쫄랑 쫓아오는것 마냥 쫓아오고있다. 집 앞까지 와서야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이제 좀 가라- 하니까 이젠 이게 내말을 무시한다. \"야! 너 가라고!!!\" \"..... 흐...으아앙\" \"야.. 울어?\" \"... 흐으으아- 너 나빠... 아아\" 소리를 꽥 지르자, 갑자기 주저앉아 소리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임은민이 밉지만, 왠지 불쌍해 보인다. \"으어어엉... 너어.. 내애가 그러어케 시러...?\" \"....미안...\" \"흐읍... 알았어어.. 가면 될 거 아냐아...\" \"야.\" 뒤를 돌아서 왔던 방향으로 다시 가려는 임은민의 손등을 붙잡았다. 이대로 보내버리면.. 내가 진짜 나쁜놈 되는거아냐... \"들어와, 차 한잔 줄게\" 그리고.... 우는 사람 보면 왠지... 달래줘야 될것같은 느낌이 들어..... 널 떠나던 날.... 너의 눈물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그래서..... 아직도 아파서... * \"마누라- 빨리나와, 여어 눈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첫눈이 펑펑 내린다. 이제 스물셋도 한달하고 몇일밖에 안남았다. 눈이 온다면서 이따만한 무지개 우산을 들고나가 펼치는 김윤한이다. 아직도 나는 엄마아빠랑 같이 살고있고, 아직도- 김윤한은 우리집에 하숙들어 살고있다. 뭐, 이제는 하숙이 아닌 가족으로 물들어 가고있는것 같지만... \"마누라는 무슨!! 늦었어!! 나 먼저 간다\" \"야 같이가!! 눈 다 맞고 가지말고-\" \"아, 늦었다니까, 오늘도 지각하면 그 이중인격이 가만있을거같애?\" 얼마전 부터, 용돈도 벌어쓸 겸 김윤한이랑 같이 시작한 편의점 알바는 평소에는 생글생글 웃다가 1분이라도 늦게오면 사람을 말려죽이려고 하는 여사장이있어서, 최대한 성실히 행동해야했다. 사실, 초중고 십여년동안 공부는 제대로 한적이 없는지라, 그나마 가까운 지방대에 김윤한이랑 나란히 붙어 간간히 버티고 있는중이었다. \"1분 35초, 36초, 37초....\" \"헥..헥..헤에...\" 편의점 문이 딸랑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먼저 뛰어 들어오고 그 뒤로 김윤한이 하얀눈이 가득쌓인 우산을 털면서 들어온다. \"지금 너희 둘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 줄 알아?\" \"네?네에...\" \"내가 몇분까지 오라고했어!!\" \"네?.. 20분까지...요\" \"근데 지금 몇분이야!!\" \"어.... 이십이....삼....분...\" \"말대꾸 하지말랬지!!!!\" 아니, 지가 몇분이냐고 물어봐놓구 왜 나한테 난린건데, 그리고 몇분이나 늦었다고.. 그리고 이사장은 겨우 몇분 늦은거 가지고 마치 한시간이라도 늦은것마냥 부풀릴수있는 재주가 있다. 그 재주로 쇼호스트나 하지 그러셨어요... 삼만 구천 팔백원~ 와우~ 무이자 삼개월~ 하시면서요...  그 단발머리와 빨간립스틱이 정말 쇼호스트랑 잘어울리실것같네요 \"죄송합니다아....\" \"이 사람들이 말야!! 시간은 그렇게 함부로 낭비해도 되는게 아니라고 몇번을 말해!!\" \"죄송....\" 까랑까랑한 여사장의 목소리에 굽신거리고 있는 나와 김윤한 뒤로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빨리들어가서 옷갈아입고 나와!!\" \"네에..\" 재빠르게 입고왔던 점퍼를 벗곤 티 위에 유니폼을 걸쳤다. 유명한 편의점이 아니라 그냥 동네에 하나 만든 편의점인지라, 꽤 촌스런 빨간바탕에 하얀 글씨로 영24시라고 써있는 유니폼-. 유니폼을 입고 밖으로 나오자 밖으로 나갔는지 여사장은 없고 손님만 과자봉지 몇개를 카운터로 들고와선 얼마냐고 묻는다. 삑삑 바코드를 찍어서 계산을 완료하곤 삼천오백이십원이요- 하고는 오천원짜리를 받아 천사백팔십원을 거슬러주곤 봉지에 과자를 집어담아 손님에게 건네주자, 김윤한은 그때 서야 어슬렁어슬렁 유니폼을 갖춰입고는 나와서 안녕히가세요-를 크게 외치고는 유니폼 지퍼를 주욱 끌어 잠근다. -♪♩♪♬ 거울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액정에 써있는건, 요번년에는 일찍와서 얼마전에 돌아간 한경이오빠가 전화를 걸었다. \"왜,오빠?\" -\"한별아-\" \"왜-?\" -\"빅뉴스다.\" \"뭐가?\" -\"오늘 준희한테 전화걸었는데, 낼모레 한국 간댄다.\" \"응?\" 한경이오빠가 준희랑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그러더니, 연락을 많이 하고 지냈나보다. 준희가 한국 온다는 얘기는 처음듣는얘기였다. \"통화비많이나와- 전해줬으니까, 끊는다.\" \"오빠, 오빠?\" 전화가 끊겼다는 뚜뚜뚜뚜- 하는 소리가 몇번 들리다가 이내 꺼지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곤 멍해졌다. \"한경이형이냐?\" \".........\" \"한별아-?\" 김윤한이 옆에서 어깰 흔들어대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응?\" \"뭐래?\" \"어... 아냐\" 박준희가..... 한국엘... 온대.... * 짐들은 먼저 한국으로 보냈고, 남은 조그마한 물건들중에 빠진게 없나 살펴보고, 확인한다음 가방 지퍼를 잠그곤, 가벼운 느낌으로 그동안 지냈던 오피스텔을 빠져나온다. 문을 닫자 삐리릭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긴다. 이 집에서 지낸지도 벌써 5년이 훌쩍넘었다. 이젠 한국보다 일본이 익숙해졌을만큼 오래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가방을 열어 여권과 비행기표를 확인하고 찬찬히 오피스텔을 빠져나온다. 지금가면 언젠가는 오긴오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기때문에 왠지 뭔가 빈 기분이 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방향을 바꿔 계단을 내려간다. 또각또각 하는 구두소리가 계단 전체에 울리고 3층이라 계단 내려가는데에 별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고 내려왔다. \"왜이렇게 늦게 나와-\" \"응? 아... 많이 늦었어?\" \"아냐, 빨리 타\" 오피스텔을 나오자, 빨간 차 부터 눈에 띈다. 이 추운 날씨에 정말 손바닥만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임은민은, 그 보다 늦게 눈에 띈다. 임은민이 운전하는 빨간 차에 몸을 싣고선 공항으로 향한다. \"한국 먼저 가있어- 나는 정리할게 있어서 좀 나중에 갈게\" \"응... 얼마나 걸리는데?\" \"빠르면 일주일에서 길면 이주?\" \"알겠어\" \"먼저 가서 아는사람들이랑 인사 먼저 하구있어\" \"어-\" 차를 타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오후 2시 비행긴데 지금이 12시반이니까, 시간이 어느정도 있다. \"먼저 가-\" \"몇시 비행긴데?\" \"금방 가야돼\" \"그래..? 그럼 갈게- 나중에 봐. 도착하면 연락하구\" \"어...\" 빨간 차가 저 멀리로 사라질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다가, 점이 되어 사라지자 면세점으로 들어섰다. 뭘 고를까 하다가 수수한 오렌지색의 립스틱을 하나 골라들었다. \"お手伝いしましょうか?\" *도와드릴까요?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점원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묻는다. \"はいぃ。この色のほかに違う色がありますか?\" *네에... 이 색말고 다른색은 없나요? \"彼女にのプレゼントですね。\" *여자친구 선물이죠? \"............はい。\" *네에.. \"これはどうですか? 私が推薦する物ですけど。\" * 이건 어때요? 제가 추천하는 거에요. \"それより明るくて地味な色ならいいんですけど。\" *그것보다 밝고 수수한색이면 좋겠는데.. \"そんな色ならやはりこのピンクが良さそうです。\" *그런 색이라면 역시 핑크색인것 같네요. \"それならこれにし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 그럼 이걸로 할게요 고맙습니다. 결국은 귀여운 핑크색깔의 립스틱을 하나 달랑 들고는 면세점을 빠져나왔다. 언제 시간이 그렇게 빨리갔는지 벌써 45분정도 밖에 안남았다. 게이트를 찾아서 여권과 비행기표를 보여주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으로 올때도 이렇게 떨렸었나?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댄다. 작은 가방을 들고는 정해진 좌석에 앉았다. 앉아서 립스틱을 빤히 쳐다보다가 바지 주머니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널 볼수 있을것 같아, 달콤한 꿈으로 빠져든다. 정말 달콤한 꿈속으로 깊이.... * \"아저씨 인천공항으로 가주세요\" 자꾸만 가슴이 쿵쿵대고,간질거린다. 니가 떠나던 그날 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니가 간지도 어언 5년이 지났다. 공항에 도착했을때, 그 마지막 너의 모습을 지울수가 없어... 슬픈 눈을 남기고 가버린 너의 모습을 난... 지워버릴수가 없어.... 가지말라고 하고싶던 그날의 아픈 날... 잊을수가 없어... 택시가 어느새 인천공항 앞에 도착하고 택시비를 내곤 택시에서 내렸다. 급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히 공항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천장이 높은 공항 안으로 들어서니까 마음이 붕 뜨는것만 같다. 탁,탁 하고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입국 게이트앞에 수많은 사람들과 발을 나란히 했다. 쿵쿵대는 심장소리가 점점 커지고 침이 꿀떡하고 목뒤로 넘어간다. 도쿄에서 온 비행기는 3시반에 도착한다는 말이 전광판에서 반짝인다. 지금이 정확히 3시 25분, 1분.. 2분... 3분.... 4분..... 5분......이 지나고 삼십분이 됐다. 게이트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커다란 가방을 끌면서 나오고 마중나온 사람들이 그사람들을 반긴다. 하지만...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선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넌 나오지 않는다. 5분, 10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나오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나오질 않는다. 잘근 잘근 손톱을 물게 되고 눈을 자꾸만 깜빡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오고 더이상 사람이 나오지 않자, 게이트문이 닫혀버린다. \"저기요.. 도쿄에서 온사람 다 나온건가요?\" \"네? 네.. 그럴걸요-\" 방금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널 기다리는 내가 바보같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않는다. 그 후로 얼마간 널 기다렸지만 넌 나오지 않았다. 발걸음을 천천히 떼서 밖으로 나온다. 아까 처럼 발걸음이 빨라진다거나 심장뛰는 소리가 커지지도 않고 그냥 천천히 나오기만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곤 택시를 찾는다. 아까는 왠지 빠르게 타야할것만 같았던 택시가 이번엔 타고싶지가 않다. 마음을 다잡고 택시를 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반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너.... 니가 보인다. \"박준희!!!!!!!!!!\" 소리를 지르자 너의 얼굴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마침내 나를 향해 맞추어 진다. 니가 날 보고있다. 다른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직 널 향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좀전에 널 만나러 갈때처럼 다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 김윤한한텐 미안하지만 김윤한을 사랑하지 않았어... 맘이 많이 아파서 그랬던 것뿐인데... 너는 여전히 내 심장속에서 나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아있었구나...  건너편에있는 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다가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주위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너의 얼굴만 보이고 니 소리만 들릴뿐.... \"정한별, 한별아!\" 박준희가 가방을 집어던지곤 나를 향해 뛰어온다. 니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니가 나에게 가까워지자 옆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니가 날 감싸안았고 몸이 위로 날아가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바닥으로 추락했다. 깨질듯이 밀려오는 고통과 함께 눈앞에서 니가 보이곤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맣게 사라져버렸다. * \"저기요, 제가 주머니에 뒀던게 없어진 거같은데\" 기내식을 먹곤 잠이 들어서 도착하는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와 함께 눈이 뜨였다. 가방을 챙기곤 착륙하고 나서 확인차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립스틱이 사라졌다. 주변바닥을 뒤져도 없었다. 결국 승무원에게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고, 약간 싫은듯한 눈빛이 보이긴했지만, 친절하게도 같이 찾는걸 도와줬다. 비행기가 넓은지라 몇분이 지나도록 립스틱을 찾게 되었다. \"여기있네요!, 이거 맞죠?\"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아녜요. 여자친구드릴건가보죠?\" \"네. 하핫.\"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감사합니다-\" 결국 이십분 가까이 시간을 소비하고서야 승무원이 찾게 되었다. 립스틱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선, 가벼운 마음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몇있긴했지만, 왠지 왔을것 같았던 한별이는 없다. 한별이가 어떻게 알고 와... 하는 생각으로 타박타박 걸어 공항을 빠져나왔다. 나오자 마자 보이는 한국의 하늘이 왠지 맑아보인다. 이제 날씨도 다시 겨울로 돌아온지라 추운 날씨는 다를게 없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바닥을 보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박준희!!!!!!!!!!\" 너의 목소리였다.틀림없이.. 정한별 너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마주편에 작게보이는 얼굴을 보며 난 알수있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선명하게 그려지는 너의 얼굴.... 한번에 보고도 아니... 보지 않아도 난 알수있다. 너라는걸... 그 정도쯤은 눈감고도 알 수있어...한참을 쳐다보고만 있었더니 한별이가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점점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멍한사람처럼 앞을향해 뛰어오는데 옆에서 사람을 태운 택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정한별, 한별아!\" 손에 쥐고있던 가방이 내팽겨치고 너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진다. 옆에서 택시가 빠르게 달려오지만 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하다. 택시에 부딪히는 너를 꼭 감싸는 느낌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느낌이 든다. 앞이 깜깜해지다가 파란하늘이 눈에 가득찬다. 다시 눈에 너의 모습이 가득 차더니 이내 멀어진다.......... 저기 멀리로 점이 되어 보이지 않게 사라져 버린다. 널 보고싶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게 사라져버렸다. 널 위해 준비한 선물도 줄 수 없게 되는 건가.... 두려운 느낌이 맘을 가득채우고 나즈막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와 나의 이야기의 끝을 맺으려는듯 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 'https://cboard.net/sitemap/og_image.php?text=제 소설 좀 읽어주세요&link=https://cboard.net/k/3_307_59645642', '200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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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설 좀 읽어주세요

제 소설 좀 읽어주세요

작성일 2009.08.2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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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설을 쓰긴했는데...

뭔가 제가 읽기에도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요...

읽어주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목은 Remember me 입니다.


심심하기도하고 갑자기 우리 준이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혹시나 내가 전화 하면 방해될까봐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다가 하다가 큰맘먹고 준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없이 '뚜루루루'하는 심심한 통화연결음이 흐르고 이쯤 되면 받겠다 싶을때도 안받고 50초넘었는데도 전화를 안받아서 핸드폰 고장났나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한참을 안받아서 결국엔 핸드폰 폴더를 닫으려는 순간

"왜 또?"

들리는 준이 목소리... 듣고싶던 그 목소리가... 요즘들어 까칠해진 그 말투가 내 심장에 와서 가시처럼 박힌다. 정말 듣고싶던 목소린데 자꾸만 생갔났던 목소린데 항상 날 생각해주던 준이목소리가.. 요즘들어 무지 까칠해진 목소리가 내 심장 깊숙히 박힌다. 준이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묻어났다.

"어.... 아... 저기.... 그냥... 니목소리 듣고싶기도하구.... 어....."

"또 그소리냐? 듣기 싫어. 나 공부중이야 이번주 시험기간인거 몰라? 끊어."

"어 저기 준아... 박준희!"

정말 박준희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니가 보고싶단말.. 바보같이 그거하나도 제대로 못꺼내는 나, 난 널 사랑하는데 요즘들어 왜 넌 나를 사랑한다고 느껴지지 않는걸까..너의 그 목소리는 차갑고 까칠한... 그리고 귀찮음이 묻어날 뿐 왜 날 사랑한다는 말이 안나올까... 왜 날 먼저 사랑한다는 말이안나올까.. 야 박준희... 우리 사귀는거 맞아?


*


일본 가는게, 이제 겨우 이틀남았다. 솔직히 가고싶지 않다. 난 아직 한국에서 할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정한별한테 아직 사랑한단 말도 많이 못해줬고, 미안하단 말도 하지못했고..... 날 잊어버리라는 말도..... 아직 하질 못했는데.... 이말을 하면.. 니가 아플 거란 변명으로 내 자신에게 돌아올 상처의 두려움을 감추고 있어.

한별이한테 전화를 걸까 하는 마음에 꺼놓았던 핸드폰 전원을 켰다. 켜자마자 보이는 정한별의 사진 위로 내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번호... 정한별번호를 눌렀다. 누르고 나니까 전화를 걸 자신이 없어졌다. 건다고 해도 너한테 말할 수는 있을까...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리고 내가 이러고 사는거... 아버지란 사람이 날 보낸다는거... 이런 내 인생 정말 싫어서 괜시리 핸드폰을 침대로 던져버렸다. 새파란 침대위로 떨어진 까만 핸드폰이 왜 던지냐는 듯 신경질내며 통통 굴러간다.

-"♪♩♬♩"

굴러가던 핸드폰에 울리는 벨소리에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치켜들고 누군지 확인하는데...  정한별이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정한별이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밖에 안운다는건 다 거짓말이다. 난 벌써 마음 속으로도 내 눈에서도 수백번도 더 울었으니까.... 입고있던 옷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비벼 닦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듯 전화를 받았다.

"왜 또?"

"어.... 아... 저기.... 그냥... 니목소리 듣고싶기도하구.... 어....."

"또 그소리냐? 듣기 싫어 나 공부중이야 이번주 시험기간인거 몰라? 끊어"

"어 저기 준..............."

슬라이드를 내려버렸다. 더 이상 정한별 목소리들으면 진짜 가기 싫어 질것 같아서 다 때려치우고 정한별한테 달려갈 것 같아서 아니면 진짜 제대로 울 것 같아서...... 너한테 정말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하고... 니가 날 사랑하게 만들어서... 너무 미안해...... 넌 날 잊어야만 할테니까.... 아니... 잊어줘... 나같이 바보같은 인간.


*


시간이 빠르다는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눈깜짝할사이에 지나고 우리학교는 시험이 시작됐다. 이틀동안 준이랑 서로 연락하나도 안하고 진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보고싶지만, 준희의 그 목소리를 듣고 난 다음부턴 왠지 자신도 없어지고 그래서 다시 전화 할 수 없었다. 오늘 가면 볼수있을까 해서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갔다. 원래 시험이란건 신경쓰지 않던 나였기 때문에 준이를 볼수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이리저리 복잡한 이동이 끝나고 난뒤에 시험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1교시 사회시험이 시작되고 골고루 열심히 찍어줬는데 왠지 많이 맞을것만 같은 기쁜 맘이다. 문제를 읽는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죽을 맛이었던 1교시가 끝나고 박준희가 있는 2반으로 통통거리며 뛰어갔다.

"준아- 준아?"

멀리서 본 박준희 자리는 시험 본 사람 자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깨끗히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눈에 띈 문 앞 책상에 엎드려 졸고있는... 아니 자고있는 애, 그애를 쿡쿡 찔러 깨웠다.

"야. 야?"

"어? 벌써 시험 끝났어?"

시험시작 전 부터 잔거구나.......... 포기상태야.......... 뭐 나도 잘난 건 아니지만 문제를 만든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읽어는 봐야 될 거 아냐...

"어... 저기 깨워서 미안한데.. 준이 어디 갔는지 알어?"

자다일어나서 눌리고 부시시한 머리와 촉촉한 입가, 팅팅부은 눈으로 일어난 그 남자애........... 진심으로... 혼자보기 아깝다... 저기요.. 이불은 덮고 자세요..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누구... 준이??? 그건 누구이름이냐..... 준이라... 흠냠... 아... 박준희? 발음을 정확히 해야지 하-암"

"그래. 준이어딨는지 아냐구."

"박준희 오늘 학교 안나왔는데? 시험인데 학교안나온걸보면 대단한 실력인데? 존경할만해 흠흠!"

지는 시작전부터 잔거 아니셨나요? 박준희 자식... 나한테 신경질내면서까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다더니 학교는 왜 안나왔다냐? 연락도 안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더니....
핸드폰 폴더를 열고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누르니까 박준희란 이름으로 전화가 걸린다. 그리고나서 핸드폰을 얼굴에 갖다대니깐 어떤 이름모르는 목소리 이쁜 언니가 전화를 받는다.

"전원이 꺼져있어 삐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

뭔일 난거아냐? 아... 걱정되네........... 그렇게 나한테 까칠하게 굴었던 앤데도 난 왜 대체 박준희를 좋아하는건지.... 또 걱정된다... 2교시 종이치고 다시 선생님 책상에 전원을 끈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험을 시작했다. 간만에 아는 것 같은 문제가 나와서 시험에 집중하려 했지만 준이 생각이 자꾸나서 제대로 풀 수 없었다. 배운 기억도 안나는 문제를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대충 찍어넘기고 OMR카드를 내버렸다. 대체 어디로 간거냐구 박준희...
2교시시험이 끝나고 핸드폰 전원을 바로 켰다. 핸드폰 전원을 켜자마자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소리샘에 새로운 음성메세지가 남겨졌다는거다. *89에 전화를 걸어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세지를 확인했다. 첫번째 메세지입니다 라는 언니의 이쁜 목소리가 흘러나온 후 내 귀에 들리는 건 준이 목소리.

"정한별... 내 여자친구... 내 첫사랑.... 안녕-? 전화로 할려고 그랬는데 시험보는 중인가보네? 어............ 여기가 어디냐면 공항인데.... 나 한시간만 있으면 일본으로 가 .......... 나 진짜 나쁜놈이니까. 나 꼭 잊어.... 너 그거 아냐? 우리반에 김윤한이라고 너 좋아하는 놈 있거든....나 가고나면 그 놈이 달라붙을 테니까 잘 아껴줘라. 그럼... 또 만날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


*


미칠 것 같던 이틀이 지나고 기사가 운전하는 아버지차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정한별... 우리 한별이... 목소리들으면 못 갈 것 같아서... 전화는 안하려고 했는데-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이제 미안해서라도 전화못 걸 것 같아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 그 걸로 정한별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니까 "전원이 꺼져있어 삐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라는 말이 나오고 아 맞다... 오늘 시험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전화도 못하게 됐네...

 

차가 빠른건지 시간이 빨리가는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벌써 공항에 도착해버렸다. 비행기 출발까지는 한시간 정도 남은거 같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고, 정한별이 눈 앞에 아른아른거려서 못견딜 것 같다. 정말 지금 아니면 안되겠단 생각이 들어버렸다.

"아버지... 화장실좀 다녀올게요"

나이는 나이인지라 주름살에 나잇살로 늙어버린 우리 아버지... 아마도 아버지의 마지막이 될 소원으로 일본엘 가서 여러가지 공부를 하게 됐다... 아버지를 이어 나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가 보다. 우리 아버지..... 정말 밉지만.. 우리 아버지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걸 알기때문에... 미워할수가 없다... 그치만 자꾸 정한별이 보고싶고,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차라리 그냥 말을 하고 갔다 올까 했지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리면서 아파할 정한별, 다른 사랑이 필요할 정한별에게 미안해서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돌아 갈 수 있는 날은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실 그 날일 것이다. 나 좋자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만을 기도 할 수도 없다. 난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아픔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다.

화장실로 가는동안 별 생각을 다했다. 역시 걸면 안되는 걸까 하고 다시 돌아섰다가 또 다시 지금 아님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가를 몇번이나 반복한다음에 남자 화장실이라는 그림 팻말이 붙어있는 화장실로 들어와서 핸드폰 슬라이드를 열고 번호를 누른다. 역시 전원은 꺼져있는데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삐소리 후에 목소리를 남긴다. 차라리 이게 잘 된 건지도 몰라... 정말로 니 목소릴 들으면 여기서 뛰쳐 나가버릴 지도 모르니까...

"정한별... 내 여자친구... 내 첫사랑.... 안녕-? 전화로 할려고 그랬는데 시험보는 중인가보네? 어............ 여기가 어디냐면 공항인데.... 나 한시간만 있으면 일본으로 가 .......... 나 진짜 나쁜놈이니까. 나 꼭 잊어.... 너 그거 아냐? 우리반에 김윤한이라고 너 좋아하는 놈 있거든....나 가고나면 그 놈이 달라붙을 테니까 잘 아껴줘라. 그럼... 또 만날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

정말로 하고싶었던말... 날... 기다려줄수 있냐는말... 그 말..... 결국은 못 할 말이었나 보다.. 보고싶지만.. 그래서 슬프지만 눈물은 나지않는다. 내가 울면... 정한별.... 너도 울까봐...

 

나.... 기다려줄수있냐?


*

 

핸드폰이 손을 벗어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뺨을타고 눈물이 흐르고 맘속에선 준이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준이는 없었다. 박준희... 너 이럼 안되잖아... 그냥 가는게 어딨어... 이렇게 가면... 안되는거잖아... 그 후론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뛰기 시작했다. 3교시 시험이 시작함을 알리는 종이 치는지도 몰랐다.

"아저씨..!! 인천공항이요!! 빨리가주세요... 빨리요.. 최대한 빨리-"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 느렸다. 할 수 만 있다면 내가 운전해서 가고 싶었다. 지금 너한테가서 거짓말이었다고.. 다 장난이라는 말을 꼭 들어야했다- 아니면.. 거짓말이라는 말은 안들어도... 내가 널 사랑한다고 제발 가지말라는 그말은 꼭하고싶었다.. 정말 자존심 다버리고... 매달리고 싶었다.. 널 사랑하니까... 난 너 아니면 안된단말야... 바보야...

"아저씨.. 좀만 더 빨리가면 안돼요?... 네..? 빨리...가야되는데"

"빨리가고 있응께 걱정하지말고 있으요... 재촉하면 내보고 우짜라는 말인교.."

"아저씨이... 꼭 지금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공항가는 길은 아직까지도 멀기만 하다. 니가 벌써 없을 까봐 두려워져.... 준아... 내가 다 잘못했어... 그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갈게.......


*


메세지 벌써 들었으려나? 그럼.... 올까....? 아냐.... 오면 안돼.. 발 한걸음 뗄 때 마다 수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미쳤나봐..

"뭐하냐.. 빨리 안오고?"

"네?.... 네..."

"뭔생각을 그렇게 해? 가기싫으냐?"

"아.. 아뇨... 잘갔다 올게요...."

"그래... 힘들겠지만 부탁들어 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다녀오면... 좀더 멋진사람, 그리고 강한사람이 돼있으라 믿는다.. 그리고 혹.. 내가 없더라도.. 엄마.. 니가 꼭 지켜야한다"

"......네..."

니가 오지 않을거라는거 알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널 잊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머리속에서 니가 둥둥 떠다니고 눈앞에서 니가 왔다갔다해..
그만큼.. 정한별... 널 많이 사랑해


*


"아저씨, 여기요 택시비- 잔돈은 안주셔도 돼요"

"학생- 학생-!! 잔돈은 무신!! 돈이 모잘라는디-"

"네? 죄송합니다- 여기요"

아.. 미치겠네 안그래도 정신없고 시간없는데 택시비까지 헷갈리구.. 아.. 지금 이생각을 할때가 아니지 준이... 박준희... 어디있는거야...? 아직 안갔지? 안갔을 거라고 믿을게.. 너도 날 사랑한다고 믿을게-

넓디 넓은공항에서 박준희를 찾는다는건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물건을 찾는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더 어려웠다. 같은 곳을 계속 빙빙돌고 그 넓은 공항을 계속 돌아다녔지만 준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 게이트앞에 서있는 준이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도... 얼마만에 니 얼굴을 보는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연락 끊고 있었는데.. 얼굴도 못보고 목소리도 못듣는 그 시간동안 박준희 얼굴을 다 잊어버린것같았는데- 이렇게 멀리서도 니얼굴 보자마자 알아보는건.. 내가 널 많이 사랑하는 가봐.. 정말로....

그자리에 가만히 서서 멍하게 준이가 있는쪽을 바라만 보다가 준이가 아버지와 인사가 끝났는지 등을 돌려 문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는게 보여서 정신이 번쩍 뜨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널 못볼 것 같아서 무작정 뛰었다. 그리고 니이름을 불렀다.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니가 날떠나는게 싫어서 소리질렀다.

"야 박준희!!!!!!.."

니가 날 돌아 보는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날 향해 돌아올 수 없었다. 박준희에 눈에서 눈물이 반짝반짝 빛나고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너의 눈에서 나를 향해 말하고있는게 보였다. 넌 분명히 날 향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 기다려 줄수있냐?" 라고.... 니눈에서 날 향해 말했다.

난... 내가 기다리고 싶지않아도 널 기다릴수밖에 없어..  내 기억속에서 너란 사람 못지우니까...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는게 아니니까... 그리고 난 널 사랑하니까..
게이트 문이 닫혀버렸다. 너와 나의 마음의 문이 닫혀버렸다. 너에 대한 나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근데 준아... 지금 내 눈에서 눈물이 나는 사랑이란 병은.. 니가 없으면 치료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 앞으론 아파도 니가 내옆에 없는데, 나... 아파서 어떡해...


*


아버지랑 인사를 끝내고 게이트안으로 들어가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게 보였다. 그게 내 눈에서 정한별로 보였는데, 이제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됐는줄 알았다. 내 눈도 바보가 돼버린 줄 알았다. 문이 닫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소릴 질렀다. 내이름을 불렀다. 너였다. 지금 내눈앞에 정한별이 서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지금 돌아가버리면..., 내가 널 벗어날 수 없게 될 것같아서..... 근데.. 정한별... 니가 날 기다려줬음 하는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 인가? 근데.. 니가 날 기다려줬음 좋겠다.
정한별... 나 ... 기다려 줄수있냐?

입술을 꽉깨물고 눈물을 참는데도 눈물이 난다. 널 앞으로.. 내 기억속에서 어떻게 지울지... 참.. 하느님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왜 우리를 이렇게 떨어뜨려 놓냐고.. 하늘에 항의하고 싶다. 우리가 너무 사랑해서... 질투하는 거라면... 내가 사랑하는걸 조금 줄일테니까.... 제발 정한별은 아프게 하지말라고.. 그렇게 말하고싶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폰 사진앨범에 들어가서 그동안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하나씩 지운다. 사진 하나를 지울때마다 눈에선 눈물이 한방울씩 떨어진다. 옆자리에 아직 사람이 안들어온건지.. 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는건진 모르지만.. 아직 옆자리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지금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이 사진들도 지우지 못할테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사진들을 지워나가고 마지막 사진... 정한별이 혼자 찍은 사진.. 이땐, 정말 우리가 이렇게 될지 상상도 못했는데..  다른 여자 만났다고 정한별이랑 싸우다가 결국 내 핸드폰 가져가더니.. 여자애들 번호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다지우고, 막 핸드폰 만지더니 결국 찍은게 이사진이다. 나중에 이사진 보고나서 귀여워서 죽는 줄 알았는데..
손등으로 쓱쓱비벼서 팅팅부은 얼굴로 이사진을 지워야되나 지우지 말아야되나 생각하고있었다. 다른사람이 보면 얼마나 웃길까..

"휴대전화는 전원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아..네..."

그 사진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고 전원을 껐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변명으로 그 마지막사진을 지우고싶지않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


하루.. 이틀... 일주일... 니가 없는 시간은 미치도록 느리게 지나갔다. 차라리 니가 내 머리속에서 지워졌음 좋겠단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박준희네 반으로 찾아가 그의 자리를 쳐다보기도하고 앉아보기도하고 그러다가 울고 울다 지쳐 쓰러지고 1분 1초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겠고, 수업내용도 들어오지않았다. 내 머리속을 그리고 내 심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건 오직 하나- 박준희... 너밖에 들어올수가없대..

"흡...흐흑......"

"야-"

".......흡..."

"야아..."

".......흐...흑..."

"또 우냐..?"

".......흑흐으........"

"울..지마..."

"....흐아앙-........."

지금 이시간도 언제나 처럼 준희자리에 앉아서 준이가 썼던 책상..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울고있었다. 울려고 한게아닌데.. 여기만 오면 눈물이 나서... 나... 안울려고 하는데 그래서 여기 안오고싶은데.. 시간만 나면 발걸음이 저절로 오게 되는곳이라서.. 나도 어쩔수가없다.. 이젠 쪽팔리지도 않는다. 이반 애들도 또 와서 울으려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는데- 여기 일주일 와있는동안 내가 올때마다 내 앞에 앉아서 항상 말거는 애가있다. 쪽팔리게 시리... 우는거 첨 보냐.. 하는 식으로 무시하고 울고있는데.. 나보고 울지 말랜다. 근데... 걱정해주는 투가 우리 준이같애서 준이가 너무 보고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건지...

"야- 너 우니까 더 못생긴거 알어?"

"....흐..흐흑... 니가 더 못생겼거든...."

"웃어야지, 이렇게- 스마아일~"

"흡.. 흐.. 머어..?"

"스 마아이일~~"

"... 야... 너 빨리 안꺼져.. 흡... 나지금 심각하거드..은?"

"박준희.. 얘 때문에? 에이- 얘가 뭐라구.."

"너.. 그러다 맞는 수가 있..다..아... 흐..읍.."

"정한별-"

"내이름은... 흡흐....어떻게 아냐?...."

"내가 너 좋아하니까- 뭐..."

내 머리속엔... 내 심장속엔 박준희 너밖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니가 자꾸 나갈려고 하니까... 자꾸 다른사람이 들어오려고 하잖아... 바보야... 보고싶어.. 바보... 너 돌아오면... 진짜 미워할거야... 내 머리속에.. 내심장속에 너 못들어오게 할거야... 바보야.... 보고싶어....


*


옛날에- 내가 정한별이랑 사귀기 전에... 김윤한이라는 애랑 내기를 했다. 정한별이랑 먼저 사귀게 되는 사람이 돈받게 되는거- 그 내기를 시작하기로 하고 바로 내가 그냥 정한별한테 고백을 해버렸는데- 한번의 고민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버려서 내가 내기에 이겨버렸다. 그때 김윤한은 정말로 정한별을 좋아했었고, 난 재미삼아서 내기한거였는데- 사귀게 된걸 알고 김윤한이 나한테 뭐든 다해줄테니까 정한별이랑 헤어지라고 했었다. 그래서 난 뭐 상관없었기때문에 정한별이랑 헤어지려고했었다. 근데- 사람마음이라는게 쉽게 변하는거라서 정한별을 알고 만나고 하다보니까 어느새 정이들고, 처음엔 귀엽다 귀엽다 생각하던게 점차 사랑으로 번져나갔다. 그래서.. 정한별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버려서.. 헤어질 수 없었다. 아니, 헤어지기 싫었다. 정한별을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어졌다.

"야- 뭔생각해?"

"어? 아무 생각도 안해"

난 어렸을때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간거여서, 그때 친했던 친구가 아직도 일본에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같이 밥먹기로 하고
지금 밥을 먹고있는데- 딴생각하느라 밥을 먹다가도 물을 마시다가도, 이게 지금 밥을 먹는건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먹고있었나보다-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생각나버리는게 정한별이어서... 자꾸만 보고싶어서... 딴생각을 하게된다. 오랫만에 만난친구에겐 미안하지만 ... 이젠 얘까지 정한별로
보이기 시작했나보다- 자꾸만 멍하게 쳐다보고있게 된다.

"너 정신나간 사람같애- 무슨 일있었어?"

"아... 아무것도 아냐... 하핫.."

"억지로 웃지마.. 너지금 웃을 기분 아닌거같아"

"그.. 그래보여?.. 왜? 나 기분좋은데 하하하....핫.."

"너 내가 거짓말하는거 싫어하는거 몰라?"

"그.. 그..랬었나? 미안-"

"응... 밥이나 먹어..."

이젠 정한별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되버려서.. 정한별 없이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누가 좀 가르쳐 주는 사람없나... 제발 좀..... 잊을수 있는 방법은 없나-

"야- 임은민.."

"왜?"

"내가 그렇게 이상해 보이냐?"

"갑자기 또 무슨... 그래- 너 이상한 사람같애- 고민있음 말해봐- 어렸을때 부터 내가 니 얘기 많이 들어줬잖아-"

"아냐... 밥먹자"

"싱겁긴-"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한가지... 너한테... 지금 정한별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하면.. 니가 해결해 줄 수 있는것도 아니잖아- 난 겁쟁이라서 아무한테나 말 못꺼내겠다-


*


저녁늦게 되서야 학교가 끝나고서 가로등 하나 있는거 마저도 깨져서 깜빡깜빡 거리는 집앞 골목을 걸어가고있는데 뒤에서 타박타박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 발소리는 내가 멈추면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따라 걷고있었다. 진짜 이씨.. 안그래도 무서워 죽겠는데..!

"야... 너 자꾸 따라올거야?"

"어?"

우리집 앞에서 서서 자꾸 따라오는 그자식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짜증나는 표정으로 그리고 짜증나는 말투로 말해줬다-

"너 신경쓰여, 왜 자꾸 따라와?"

"뭔소리야- 난 조용히 우리집 가고있었는데-"

"뭐어?"

"우리집 간다고 우.리.집, 여기가 우리집인데?"

"너네집? 여기가?"

"왜? 여기가 우리집이면 안돼?"

"여..기.. 우리집인데?"

"히히-그럼 뭐 니가 이집 주인인가 보네"

"엉? 뭔소리야?"

"잘부탁드립니다- 오늘부터 하숙하게 된 김윤한이라고합니다"


*


"잘 들어가-"

"어.. 어- 다음에 또보자"

"응- 안녕-"

저녁을 먹고나서 임은민네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냥 가려다가 안에 들렸다가 잠깐 차마시고 다시 나와서 이제 차에 타서 핸들을 잡으니 또 정한별 생각이 난다. 니가 지금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정한별이라는 사람은.. 공기랑 같아서- 같이 있을땐 중요한건줄 몰랐는데.. 없으니까 그게 참 중요한 거란걸 알았다- 사랑한다고 말로만 했던 지난 날이 바보같아진다- 오기 전에 까칠하게 대하지말고.. 차라리 잘해주고 올걸 그랬나? 그럼 이렇게까지 생각은 안났으려나...
오랜만에 하지만 왠지 항상 해왔던것 같은 운전이다- 처음엔 도로를 달린다는게 무서웠는데- 배우고 나니까 차츰 무서움이 사라졌다. 정한별도 내가 없어지고 처음엔 슬플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서 나를 차츰 잊어줄까? 그래야 정한별한테는 편하겠지만- 내 이기적인생각은 니가 날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때- 나만 널 기억하고 넌 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정말 슬플것같으니까.
익숙하지않은 일본의 도로를 달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끼익' 하는 마찰음이 시끄러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차문을 잠그고 나와서 임은민한테 도착했다고 문자나 보내려고하는데, 주머니 어디를 뒤져도 핸드폰이 없다. 차문을 다시열고 차안을 뒤져봐도 핸드폰이 없다. 잃어버렸나? 어쩌지.. 정한별사진..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


"엄마!! 엄마-!!"

"아주머니-안녕하세요?"

"어,그래- 한별아- 우리집에 새로 들어온 하숙생, 윤한이- 말했었나?"

"왜 엄마 맘대로야! 하숙생이라고 말만했지, 얘라고 말했냐구!!"

"왜? 평소엔 하숙생 들어와도 잘만 대하드만 얘가 갑자기 왜이래"

"아- 진짜!"

"정한별-! 시끄럽고! 들어와서 밥이나 먹어, 윤한이도 어서 들어와서 먹구."

"네에-"

"씨이-, 난 먹을생각 없어-"

"얘가 진짜!"

어제 저녁에 엄마가 하숙생 구했다고 그랬었는데.. 누굴까 별로 궁금하지않아서 벌써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게 얘일줄은 몰랐다- 아... 미치겠네.. 왜 하필이면 얘지?.. 왠지 되게 싫다. 어... 근데 내가 얘를 싫어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내가 얘를 왜 이렇게 피할까...

"야아-"

"야! 넌 노크 할줄도 모르냐!! 여자방에 왜 노크도 없이 들어와!"

"밥 안먹어? 배고플텐데- 너 학교에선 하루종일 울기만 하더니 집에선 무섭다-"

"뭐어?"

-꼬르륵...

밥 안먹을려고 했는데... 역시 하루종일 울기만 하니까 배는 고픈가보다.. 우씨.. 근데 하필 이럴때- 꼬르륵인건데!!! 아 쪽팔리게 시리.....

"풋... 야 니 배가 배고프댄다. 그만 고집부리고 나와서 밥먹으래- 킥...."

"너, 진짜!!"

"어 야 !! 야!! 던지지마, 알았어 먹기싫음 말던가"

"아우... 저걸그냥"

김윤한... 이라는 사람이 우리집에 들어와서 신경쓰이기는 한다만.. 뭐 나쁘진 않네- 아닌가?....


*


-삑.삑.삑.삑.삑. 띠리리링-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발 벗고 들어와서 당장 전화기 부터 들었다- 하나뿐인 정한별 사진이 있는 핸드폰.. 잃어버리면 안되는거라서... 신호가 가면서 연결음이 나온다. 내 통화연결음이 이렇게 지루했던가...? 그냥 심심하게 '뚜루루루' 하기만하는 통화 연결음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렇게 두세번 통화연결음이 가더니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역시 떨어 뜨린건가?.. 전화를 받자 もしもし가 아닌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한국인이네?

"네- 저기 핸드폰 주우셨어요?"

"네?"

"제 핸드폰 인데요- 떨어뜨렸나본데- "

"야- 박준희. 나 은민이야-"

"어? 임은민- 니가 왜 내 핸드폰을 가지고 있냐?"

"글쎄- 그건 내가 물어봐야 될것같은데- 니가 우리집에 두고 간 거아냐?"

"그랬나? 무튼- 내가 지금갈까? 중요한 거라서-"

"지금? 늦었는데- 내가 내일 너희집으로 갈게-"

"우리집으로?"

"어어.. 아직도 전에 있던데 살아?"

"아니- 지금은 다른 오피스텔에.."

"어 알았어. 자세한건 이번호로 내일 전화하면 되지?"

"어..."

"응- 그럼 내일 다시 전화할게-"

"어... 귀찮게 해서 미안"

"아니야.. 내일봐-"

내가 아까 임은민네 집에 핸드폰을 두고왔었나?.. 휴우 그래도 다행이다.. 잃어버리거나 한게 아니라서- 한별아 미안해- 내가 자꾸 너를.. 아니 니가 담겨있는 핸드폰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아서-
정한별이 없는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핸드폰을 두고와서 정한별에게 무지 미안해진다- 내가 널 잃어버린거라고 생각되서.....


*


-♪♩♬♩♪♩♬♩♪♩♬♩

"하아암-"

아 벌써 아침인가..? 핸드폰에 설정해놓은 모닝콜이 정확히 세 번 울릴 때 일어났다- 어제까지는 어깨가 결려서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면 항상 아프곤 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어깨가 안 결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서 왠지 기분이 좋아서 룰루랄라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까 오늘따라 내얼굴이 더 이뻐보이고 막그러는데... 드디어 내가 미친건가... ?... 크큭....

-똑똑똑!!

한참 미친듯한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과격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야- 나야.. 문 좀열어봐.."

"아 왜!! 나씻고 있거든! 넌 작은 욕실로가-"

"아줌마가 작은 욕실쓰고있어... 야.. 옷벗고 있는거 아님 문열어봐... 아 쫌!!!...."

"이씨.. 왜 신경질이야! 내가 먼저 들어와있었거든!!"

결국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는 걸로 시작하고 욕실 문을 열어줬다.

"아.. 뭔데 난리야-"

문을 열어주고나서 신경질적으로 다시 치카치카(...)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뒤에서 들리는 쪼르르륵.. 하는소리.. 뭐지? 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꺄!!! 야!! 너뭐야!! 이변태야!!!"

"아 뭐야!! 야야!!"

-촤륵...

이자식이 내 뒤에서 소변을 보고있는것이었던 것이었다. 뭐이런 변태같은 자식이 다있나 하고 양치하고 입을 헹구려던 물을 김윤한한테 부어버렸...다. 하하하......

"아 차거!! 야, 이씨- 뭐야!!"

"이 변태야!!"

"내가 뭘 어쨌다고 찬물을 붓고 난리야!!"

"빨리 안나가?!!"

"아씨- 차가워 죽겠네!! 수건이나 좀 줘봐!!"

"수건은 무슨- 빨리안나가?!"

"알았어, 알았어-"

수건은 무슨... 다시 컵에 물을 받아서 부어버리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자 알아서 뒤로 물러난다. 다시 양치질을 제대로 하고나서 물로 입을 헹구는데.. 아 이빨시려... 물 진짜 차갑다.. 아..  괜히 미안해지는데?... 하하하.... 아냐아냐 내가 잘못한건 없다구-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와서 수건으로 머리를 툴툴 털고 나오는데- 지 방에서 나오는 김윤한이 나한테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래서 김윤한한테 난 잘못한거 없다는 표정을 지어줬다.그랬더니 김윤한 이자식.. 썩소를 짓고 욕실안으로 사라진다. 잇..뭐야!!

"한별아- 윤한아- 아침먹자."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교복을 갖춰입고나서 아침을 먹으려고 주방으로 나와서 식탁에 앉았더니.. 김윤한이 덜말린 머리로 교복을 챙겨입고 나온다. 내가 엄마 옆자리에 앉고 김윤한이 엄마 앞자리에 앉는다. 평소에는 대충 때우던 아침 식사였는데, 뭐가 이렇게 반찬이 많지?

"잘먹겠습니다-"

김윤한이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숟갈 퍼내더니 '에취-' 하고 기침을 한다. 나는 왠지 뜨끔하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 감기 걸렸니?"

"아.. 네 그런가봐요"

"좀 따뜻하게 하고 다니지"

"따뜻하게 하고 다녔는데- 아ㄲ..."

"머..머리를 안말리고 그러니까 그렇지...."

그래그래.. 그건 내 잘못이아니야- 난 정당한 짓을 했을 뿐인걸- 아하하하...하하..하..하.. 억지로 웃음을 짓는다. 가식.. 어우.. 완전 가식 ...

김윤한이 날 한번 쳐다보더니 금새 헤헤- 웃는다. 근데 왠지 그 웃음이 무서워 보이는건 기분탓인가?...

"맞아. 머리를 안말려서 그런가봐... 머리 말려야지... 하하핫..."

근데 왜 ... 니가 웃는게 난.. 박준희로 보일까..... 아.., 생각나버렸다. 또, 보고싶어져 버렸다. 오늘은 잊어버리고 지나갈수 있었는데-


*


"자- 여기"

"어.. 고마워.."

아침일찍 전화가 왔다. 지금 핸드폰 가지고 올테니까 주소 알려달라고, 솔직히 더자고 싶었는데.. 핸드폰얘기를 들으니까 눈이 번쩍 뜨였다. 정한별이 다시 찾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달까?

"근데 니 사진앨범에 하나있는 그 사진.. 여자친구야?"

"어?"

"심심해서.. 니핸드폰 사진앨범에 들어가는데 비밀번호가 안걸려있는거있지- 기분 나빴다면 미안-"

"어.. 아냐.. 괜찮아-"

"그래..? 그사진 여자친구야?"

"어,....? 어...."

"이쁘더라-"

"어.. 고마워"

"근데, 니여자친구는 한국에 있어? 왜 혼자왔어?"

"아.. 사정이.. 있어서-"

"니가 벌써 여자친구가 있구나- 난 없는줄 알았지"

"응..."

난 나지막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크게 웃을 수가 없었다. 정한별이 생각나버려서... 왠지 마음이 아프다...

"너 그거 알아?"

"뭘..?"

"나, 어렸을때 부터 너 좋아했는데-"

"어.., 그래..?"

"뭐 반응이 그러냐- 사실.. 나 작년에 너 일본왔을 때 고백 하려고 그랬는데.. 입이 안 떨어지더라"

"어......."

"나 너 되게 많이 좋아했는데.. 여자친구 있다니까 아쉽네- 이번엔 진짜 어떻게 해볼려는 생각 있었는데"

"............"

"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마...키키.. 내가 여자 친구 있는 애를 어떻게 할까봐 그래?"

미안.... 지금 나한텐 정한별밖에 안보여서.. 내심장에 다른사람이 들어올수가 없다... 지금 내 맘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한별이 한테 너무미안하잖아... 그리고... 난 널 좋아하게 되지 않을테니까 너한테도 미안해질 뿐이야....


*


아침부터 김윤한이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또 학교 갈 시간에 늦었다. 뒤에서 자꾸 말 걸어서 귀찮게 만들고 말이야.. 뒤에서 계속 따라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힘들지만 뛰기로 했다. 한참을 헥헥 거리고 뛰어가다가 이제 없어졌을까 해서  뒤를 돌아보면 김윤한은 여유로운 눈빛으로 내뒤를 계속 졸졸 쫓아오고있다. 이자식 뭐지..? 순간이동이라도 하나...
역시 뛰는게 걷는것보단 빨리오는데 도움이 됐나보다, 다행히 교실안에는 늦지않게 도착했다. 교실안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다가 이제 좀 살 것같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담탱이가 칠판에 큼지막하게 써놓은 '자습'을 보고 왠지 쫄아서 자습할 공책을 꺼냈는데 은정이가 새로운 소식이라면서 달려온다. 또 맨날 무슨 새로운소식..

"뭐 합반?"

"어- 기말고사 봤던걸로 성적순으로 합반한다는데?"

"성적순? 아.. 미치겠네.... 나 그때 시험 사회밖에 안 봤다고 볼 수 있는데...."

오 마이갓... 나.. 시험.. 안봤단 말이야..... 사회는 뭐.. 배운기억도 안났었고, 2교시가 수학이었는데 수학을 제대로 쳤을리가 없잖아! 그리고 그다음에 일주일동안은 울었던 기억 밖에 없는데.... 아.. 망했다.... 성적에 연연하진 않지만 이런 건 싫어....

"그러게 말이야- 갑자기 무슨 합반을 한다고.."

"이제 2학년도 몇 달밖에 안남았는데 무슨 합반이야.. 교장이 미쳤나-"

미쳤어- 미쳤어... 교장이 진짜 미쳤어...

"그니까.. 성적순으로 함으로써 학습 능률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학습.. 능률 뭐..? 아.. 진짜- 난 그럼 끝반이겠네.."

"끝반이라고 다 못하는 애들은 아니래-"

"그럼 뭐야 또- 복잡하게 시리!!"

"전교 1등은 1반.. 2등은 2반 …해서 8등은 8반이고 다시 9등은 1반 이런식으로 돌아가는 거래"

"진짜 복잡하게도 해놨네- 아씨.."

"문제는 남녀 합반이라는거 아니냐"

뭐어...? 남녀.. 합반? 남.. 녀...... 합.반?

"뭐어!!!!!!! 진짜 이 찐빵교장새끼가"

"다음주 부터 합반이래."

"히익-! 다음주? 뭐 그렇게 빠르냐? 오늘 무슨요일인데?"

"오늘? 잠깐만-"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핸드폰을 찾아서 슬라이드를 올려 날짜를 확인하는 은정이-

"오늘 금요일인데?"

"벌써 금요일이야? 내일 놀토아냐?"

"맞아-"

남녀 합반이면- 체육복도 맘대로 못갈아입고, 행동하나하나 신경써야되고.., 이상한짓(...) 도 할수가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이상한 짓을 했다는 건 아니고.....!! 아...! 무튼무튼!!! 찐빵교장새끼 맘에안들어!!!!!! 퉷퉷이다, 이딴 학교.


*


"헤헤- 그치그치?"

"어- 근데……"

"어... 히히.. 진짜? 되게 귀엽다-"

선생님 심부름으로 귀찮아서 틱틱거리며 6반에 들어갔었을때- 그 때였던 것같다. 내 기억엔 그때부터 널보면 심장이 뭘 훔친것 마냥 두근두근 뛰어댔으니까.. 항상 히죽히죽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대고, 내심장이 병에걸린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었다. 그래서 너의 옆을 지날땐, 혹시라도 내 심장소리가 너한테 들릴까 조심조심 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널 잡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넌 지금 내옆에서 항상 날향해 웃는 얼굴로 서있어 줬을까? 지금처럼 박준희때문에 울지않고, 나때문에 웃어주는 사람으로 내옆에 있었을까?

"야 김윤한- 농구 한 판 뜨러가자~"

"별로-"

"그러지말고 가자- 너 요즘 왜이렇게 농구 안할려고 하냐?"

"춥잖아. 다른애랑 가서 해"

"뭔 사내새끼가 추위는 되게 타네-"

괜히 교복 마이를 더 당겼다. 왠지 자꾸만 추워지는 것같아서...

"남자는 안추우란 법있냐? 안그래도 추운데 문은 왜열어놨어- 문닫아"

"이씨- 왜 니가 닫지 나보고 시켜!!"

"에에취! 야.. 나 감기.. 에취! 걸렸어"

감기 걸린게 도움도 되네- 귀찮은 일 안하고-

"어제 까진 멀쩡하던게 오늘은 왜이래"

"오늘 아침에 찬물맞았어.."

"누구한테..?"

"아- 있어.. 세상에서 제일... 아냐.."

그런 여자가 있어-..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세상에서 제일 지켜주고 싶은 여자.... 내 건 아니지만...

"미친... 됐고! 빅뉴스 있어 빅뉴스"

"아 또 뭔데-"

"성적순으로 남녀합반한대-"

"진짜?"

"그래에- 너 시험 잘봤냐?"

"아니.. 잤지"

"나도- 크크"

남녀합반이라... 재밌는 사실인데?


*


벌써 몇번째 핸드폰 사진앨범만 왔다 갔다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이 없어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잡고 사진앨범에만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있다. 근데 신기한건- 니 사진을 보니까 배가 안고프다는거야... 한별아- 신기하지? 널 보고 있으면 만병이 다 나을 것도 같다.

-♪♩♬♩

한참을 식탁에 앉아서 왼쪽 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쪽 손으로 핸드폰만 만지작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이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냐.. 하고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임은민이다.

"Hello~"

"왜"

"넌 진짜 맨날 사람 무안하게 반응이 그게 뭐냐?"

"나 영어 쓰는거 싫어해-"

"누가 영어쓰랬냐.. 반응을 좀 해달라는거지"

"알았어, 알았어, 안녕- 됐냐?"

"치이- 됐고, 같이 점심 먹을래? 아직 점심 안먹었지?"

"점심?"

벌써 점심먹을 때가 다됐나? 아까 내가 배고파서 일어난게 9시 약간 안됐을때 였는데- 지금 벌써 열두시가 넘었네- 내가 세시간

넘게 이짓하고 있었던건가..?

"응응-? 먹을거야? 같이 먹자아- 나 같이 먹을 사람 없단 말야"

"어.. 알았어- 근데 나 시간좀 걸릴텐데-"

"시간이 몇신데 집에서 뭐하고있는거야"

"아.. 미안"

"맨날 미안하대- 알았으니까 한시까지 준비하고 신주쿠에 유명한 그.. 식당 알아? 이름이 뭐였더라"

"요시노마? 마츠야? 어떤 거 말하는거?"

"아 맞다- 마츠야였어. 거기로 나와.. 알았지?"

"어.. 알았어"

"응.. 이따봐- 늦지말고 나와라"

"어,어..."

"안녀엉-"

빨래 안해서 입을옷 없을텐데-  밖에 추울텐데... 뭐입고 가냐 또.. 근데.. 귓속에서 정한별 잔소리가 들리는것같다. 예전에 우리집에 왔을때 잔뜩 쌓아놓은 옷들보고 '왜 밖에 안내놓는거야! 어우 드러워 너랑 안놀아' 했던 니말소리가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자꾸만 내머리속에서 너의 생각이 뒤집어져 옛날생각이 난다. 사람 눈이 앞에 있는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지말고 앞만 보면서 가라고 해서 앞에 있는거라고 하던데- 쓸모없는 내눈은 눈물밖에 나지 않는 걸까... 진짜.. 쓸모없다- 누가 물어보면 내 눈이라고 하기 싫을 만큼....


*


지난주에 합반된 애들 선생님이 성적순으로 결정하시고 나서 드디어 오늘! 합반 된 애들 발표가 나는 날이다. 아침부터 그것때문에 긴장해서 물 엎고 필통도 다 쏟고 대체 내가 이런 일에 왜 긴장을 하고있는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긴장을 정말 많이 하고있었다. 혹시- 잠시 후에 일어날 요상한 일을 미리 직감해서 그런건가... 대체 난 누구랑 같은 반이 되길래- 하아.... 미치겠다. 나 지금 떨고있니...
학교에 도착해서 잠을 자면 좀 긴장감이 덜할까 해서 교복 마이 주머니에 손을꽂고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잠깐 잤는데 꿈 속에서 조니뎁까지 나오고말이야... 무튼 열심히 잠을 자고있는데 애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소리에 졸린눈을 비벼가며 상체를 일으켰다.

"다들 조용,조용-"

"........."

"오늘 합반 발표난거 다들 알고있지?"

"아-"

곳곳에서는 애들이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담탱이를 꼬라보면서 야유를 퍼부어댔다. 난 졸려서 그런거 할수는 없었지만, 나도 같이 야유를 퍼부어주고 싶었다. 진짜 남녀 합반 하는거 싫은데 말이야-  그 짓들을.... 할 수가 없잖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끄럽고- 자 그럼 발표한다-"

"........"

"자- 1반으로 가는 애들은 …"

선생님의 발표가 시작되고 애들은 자기의 이름이 언제 나올까 하는 얼굴로 귀를 기울여가면서 선생님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5반은 여기까지고- 자 우리 6반에 남아있게 되는애들은… 3번 … 8번 박은정…… 그리고 13번 정한별…… 이상 5명이다. 자 다음 7반…"

어? 나 6반에 남아있네- 아싸.. 추운데 밖에 안나가도 된다- 그리고 은정이랑 같은반이네~ 히힛.. 내가 좀 운이 타고 났나봐..

"담임선생님은, 각 반에 있던 선생님 그대로이시고, 자 이상으로 합반발표는 여기까지고 각자 반으로 이동-!"

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선생님이 앞 문밖으로 나가시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가방을 들쳐매고 각자 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른반 애들도 하나둘씩 우리반으로 들어왔다. 성적순으로 합반한다. 그래서 뭐 성적 다 밝히고 이런 건줄 알았는데 아니네? 뭐야- 괜히 겁먹었잖아- 나 바본가봐. 헤헤-

"야- 너도 이 반이냐?"

한참 헤헤 거리면서 웃고있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는 그대로 있고 '어떤 놈이야?' 하는 눈빛으로 눈만 교실문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윤한이 앞 문을 통해 교실안으로 들어온다. 뭐야 김윤한도 우리반이야? 너보니까 기분 확 잡치는 구나.. 근데 누구 부르는거?

"어? 오늘은 안우냐? 울면 못생겨진다 그러니까, 또 이미지 관리하시는거?"

김윤한이 누굴 부르는 걸까? 하고 전후좌우를 꼼꼼히 둘러보며 살피고 곧 김윤한이 시선이 날 향해있다는걸 알아채고, '나?' 하는 입모양과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김윤한을 쳐다봤다.

"그럼 너지 누구냐? 이반애 울면 못생긴애가 너밖에 더있냐?"

"미친.. 넌 가만히 있어도 못생겼거든-"

"쓰읍- 넌 우는거 아니면 욕밖에 못하지? 이쁜 아가씨가 입이 그렇게 험하면 쓰나"

"머어?"

한참 김윤한이랑 얘기 하고있는데, 주위에서 수군 거리는 소리도 들리는거 같고 은정이가 내 옆으로 와서 조용히 말하는게-

"야.. 너 박준희랑 깨진거였어? 벌써 새로운 남친?"

"야!!"

"아- 깜짝이야. 물어본거잖아- 진실을 말해줘 궁금하잖아"

"나 박준희랑 깨진적 없거든!! 그리구... 흐...읍.. 나 아직 박준희 좋아하거든!! 얘.. 는... 흐..윽.. 그냥 친구거든-"

왜 박준희 얘기만 꺼내면 난.. 눈물이 날까- 아.. 씨 쪽팔리게시리

"야! 너 누군데 얘 울리냐? 야!! 울면 못생겨지는 애!! 고개좀 들어봐- 어이구 오늘은 안울고 넘어가나 했더니 또 우냐?"

"넌 신경꺼.. 이..씨- 야 너! 내가 왜 못생긴 애야?"

"바보냐? 넌 거울도 안보지? 지금 거울 좀 봐라. 최고조다. 혼자보기 아깝네."

"..이씨!"


*


"아.. 알았어 던지지말라고! 던지지 말고 얘기 할 순 없냐? 화장실 갔다올테니까 진정시켜라"

"야..!!! 야!!"

후아... 미치겠네. 솔직히 말해서 넌 우는 것도 어떻게 그렇게 이쁘냐...고 말하고 싶었는데 뭐. 얼굴이 뜨끈뜨끈해 진다. 너만 보면 가슴이 쿵쾅대서 미치겠어. 니가 좀 내 심장 좀 어떻게 해봐.... 돌아가시겠다. 얼굴에 찬물을 껸지면서 열을 식히고 있는데 아까 그 장면이 다시 생각난다. 그리고 정한별이 말했던 것도 분명히 기억난다. 아직 박준희를 좋아한다고.... 난 그냥 친구라고.... 그치만 난 포기하지 않을거다. 니가 아직 박준희를 좋아한다고해서 앞으로도 계속 니가 박준희를 좋아할건 아니니까... 내가 널 내여자로 만들테니까-
김윤한 아자-! 하고 소리치고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까 교실밖으로 나올때의 속도보단 많이 느리게- 그렇지만 마음은 가볍다. 정한별을 이제 차근차근 내걸로 만들생각을 하니까.....
교실앞에 다다라서 들어가야 되나 말아야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중엔 정한별의 목소리도 있었다......


*


"아.. 알았어 던지지말라고! 던지지 말고 얘기 할 순 없냐? 화장실 갔다올테니까 진정시켜라"

"야..!!! 야!!"

김윤한이 교실밖으로 나가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야- 너 진짜 박준희랑 깨진거야?"

"아..아냐!!"

"에이- 진짜? 근데 박준희는 일본 왜 갔대?"

솔직히 나도 몰랐다. 박준희가 일본을 왜 갔는지는... 그래서 정말 내가 싫어져서 떠난건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난 그날 박준희의 눈에서 반짝반짝하면서
눈물이 흘러내리는걸... 봤기때문에, 난 널 믿을거야. 니가 빨리 돌아올거라고 난 믿을거야... 넌 날 사랑하고있는거라고 믿을거야...

"야... 너울어?"

"흐... 흡.. .아..냐... 안울..어"

난 정말 왜 박준희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데- 니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데- 눈물은 왜날까?

"그럼 쟤는 뭐야? 왜 혼자저래?"

"아니야- 윤한이는 그냥 친구야.... 장난 치는거야- 원래 이러고 놀아. 헤헤-"

장난 치는거.... 라고 믿고싶겠지-.... 난 항상 박준희 사랑만 받고싶었고, 항상 박준희한테만 사랑받았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받는 사랑은 익숙하지않아서... 지금
내 심장속엔 박준희라는 사람밖에없어서... 넌 들어올수가없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널 사랑할수없어-


*


다른 애들 목소리는 안들려도 왜 내 귀엔 니 목소리만 들려서 날 아프게 만드는거냐..

"아니야- 윤한이는 그냥 친구야.... 장난 치는거야- 원래 이러고 놀아. 헤헤-"

항상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던 너의 웃는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아니 지금은 너의 웃는 모습을 보는데 막... 심장이 설레는게 아니고 따끔거리고... 막 눈물이 나.. 널 내 걸로 만들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만 그런거고... 넌 아니었구나... 난 널 보면 미치도록 좋은데... 넌그게 아니었구나- 나만 혼자 쇼한거구나...
이런 내가 싫다. 널 밖에 사랑할수가 없는 내 심장이 너무 밉다. 널 사랑한다는게 이런게 아픈건지 몰랐다. 사랑하면.. 그게 다인 줄 알았다. 나만 사랑하면 다인 줄 알았다.


*


신주쿠의 마츠야는 작년에 아버지랑 많이 왔었다. 작년엔 이 근처에 살았었는데, 거리도 가깝고 맛도 좋고 꽤 유명한 식당이라서 자주 왔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여기도 많이 바뀐것같다. 인테리어도 그렇고 직원들도 바뀐거 같고...

"여기야- 여기~"

뭘 입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임은민을 기다리게 해버렸다. 벌써 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임은민을 보니까 왠지 미안해진다.

"어.. 갑자기 점심은 왜?"

"너 밥 안먹고있었지? 너 여기 오고나서 어째 점점 마르는거같다?"

"밥 안먹은건 어떻게 알았냐?"

"너 딱 보면 얼굴에 밥 안먹었다고 써있어- 밥좀 먹어 야.. 얼굴이 반쪽이 다됐네"

일본 오기전엔 항상 정한별이랑 같이 밥먹고 했었는데- 그땐 정말 밥이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뭐 그닥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니가 내 마누라냐.. 잔소리가 뭐 이리 많아-"

자꾸만 정한별이 잔소리하던게 생각났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머리속을 계속 빙빙 돌고있는것 같았다.

"뭐- 까짓거 인심써서 오늘만 내가 니 마누라 해주지 뭐..- 히히"

"뭐-?"


*


학교가 끝나고 하얀 목도리를 목에 둘둘 두르고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누가 같이 걸어오고있는게 느껴지는데- 보나마나 김윤한이다. 너무 추워서 빨리 집에 가서 이불로 꽁꽁싸매고 귤도 까먹고싶었고, 따끈한 코코아도 마시고 싶어지는 날씨다. 이럴때 누구라도 손좀 잡아줬으면 좋으련만-

"춥지-?"

"어?... 어...."

그말을 끝내곤 내옆으로 바짝 붙더니 내손을 잡아버리는 김윤한.... 순간적으로 내 손에 나의 손이 아닌 다른사람의 손이 닿자 피해버리게 됐다.

"추울까봐.. 그랬는데- 미안...."

"아.. 아냐"

아까 잠깐 닿은거긴 하지만.. 김윤한의 손은 무척 따뜻했다. 내 손은 얼음장 처럼 차가운데 김윤한 손은 난로에 데우기라도 한것처럼 따뜻했다. 마치 김윤한이 손난로 같았다.

"손... 많이 차갑던데-"

"어.. 어- 원래 손이 차가운 사람이 마음이 따뜻하대잖아-"

"그럼.. 난 나쁜 사람인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속으로 내가 한말을 잔뜩 후회하고 있는데, 김윤한이 다시 손을 잡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버렸다.

"나..나만 나쁜 사람 하면 안돼지- 나도 착한사람좀 돼보자"

바보... 얼굴 빨개진거 다보이는데- 피이.... 그래 뭐 까짓거 내가 손 잡아주지뭐-
김윤한의 손을 꽉 잡아버리자 김윤한이 고개를 든다. 아직도 얼굴 빨개...

"아.. 아니 뭐- 내가 너무 많이 착하잖냐... 헤헤-"

아 따뜻하다- 얘는 뭐 하루종일 손만 데우고 있었나.. 왜이렇게 따뜻하냐-

"너 손 되게 차갑다. 너 여름에도 손 이렇게 차갑냐-?"

"응?... 어- 원래 몸이 좀 차서"

"그래-? 난 여름에도 따뜻한데-"

"덥겠다-"

"..........수....있어?"

"응?"

"너 추울땐 내가 손잡아 줄테니까- 나 더울땐 니가 내 손 잡아줄 수 있냐...고..."

글쎄.... 내가 할수 있을까.......


*


"너, 지금 마누라라도 없으면 밥도 안먹고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을 것같단 말이야-"

임은민의 얼굴은 의무감으로 빛나고 있는것 같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보고있는것 같달까...? 흠-...

"그니까, 오늘은 내가 니 마누라 해준다고- Okay?"

그러고는 히죽히죽 웃는 임은민, 해준다고 말은 귀찮은듯 말하는데 얼굴은 왜 좋은것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거냐, 너……

"싫..어?"

"응?"

"싫냐구, 너 평생 그러고 살거야?"

"뭐... 맘대로.., 너 되게 시간 많아보인다?"

"나? 나 하는거 없어- 하는거라곤 쇼핑이랑 집에서 놀거나, 애들불러서 노는거밖에는- 히히"

"자랑이냐?"

"그러는 지는- 너도 부를때마다 다 나오는걸 보면 시간 되게 많아보여"

"난 오늘 오후부터 수업있고, 넌?"

"뭔 고등학생이 오후부터 수업이냐- 난 학교 안다녀"

"뭐?"

"학교 때려치웠지이- 어짜피 아빠돈 쓰면 되는걸 공부는 뭐하러하나..."

"임은민이 드디어 미쳤구나"

"푸후... 무튼! 너 그럼 오늘 내가 니 마누라 하는거다?"

"맘대로 하시라구요, 혼자 놀던지- 나 수업나간다"

"어? 야- 밥도 다 안먹고? 야"

"계산은 내가 하고 갈게. 넌 집에서 공부나 해"

"야! 나도 돈있거든-"

"으휴 이 바보야 원래 이런건 남자가 돈 내는거야. 잘있어라"

"야, 그럼 오늘 마누라하려면 수업끝날때 까지 기다려야 겠네? 야 몇시에 끝나는데?"

"모르셔도 됩니다- 야! 너 나 좋아하는거 아니면 좀 집에가라? 응?"

"야아- 그럼 그냥 기다린다?"

임은민 말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왔다. 난 기다리라고 한적 없다. 기다리지마라. 너 나 좋아하면 안된다. 난 정한별밖에 없다.


*


정한별은 대답이 없었다. 니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난 이걸 내 첫 고백이 될거라고 생각했기에 니가 내 대답에 응해준다면 난 정말 행복할것같았는데, 넌 그게 아니었나보다.

"김윤한..."

"응?"

"미안-"

그 한마디를 남기고 너는 사라졌다. 아니... 한마디도 아닌가... 그 두글자를 남기고 너는 빠른걸음으로 집을향해 걸어갔다. 난 알고있었다.
니가 박준희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었다보다. 너한테.. 그리고 나한테도 중요하게 작용되고 있었나보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 이런 내가 널 계속 좋아할수있는지, 널 계속 좋아해도 되는건지, 널 좋아하면 안되겠지?, 내가 박준희한테 미안해져야 하는건가...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오고 나서 너의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들은 눈 녹듯이 싹 사라졌다. 넌 지금 슬픈표정을 짓고있다. 지금 충분히 아파보인다. 그게 박준희 때문이란걸 난 알고있다. 내가 널 행복하게 해주고싶어졌다. 널 더 사랑해주고 싶어졌다. 박준희 때문에 지금까지 아팠겠지만, 앞으로도 수많은 날들이 아플거지만, 그 상처만큼 내가 널 사랑해주고 아껴주면서 널 행복하게 해주고싶어졌다. 니가 아픈걸 난 보기 싫기때문에, 너의 슬픈모습을 난 보기 싫기때문에, 난 널 사랑하고 있기때문에-
정한별은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내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정한별의 방을 노크없이 들어가버렸다.

"야- 뭐해...?"

"............"

"야아- 너... 울어?"

"야.. 너 노크하고 들어오랬지..."

넌 울고있었다. 정한별이 울고있었다. 정한별의 눈에서 빠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너의 눈물을 지켜볼 수 밖에없었다. 난 너의 눈물을 아직 닦아줄 수 없었다.

"왜.. 또 우냐..."

"안울어..."

"안울긴...."

"안운다니까!!!"

"아... 알았어 때리지마, 때리지마-"

"치이- 넌 내가 맨날 때리는 앤 줄 아냐?"

"그렇게 표정을 무섭게 짓고 있는데- 맞을것 같은 공포감을 넌 안느끼냐?"

"푸후..."

"어? 웃었다. 히- 거봐 넌 웃는게 훨씬...."

"응?"

"울다가 웃으면 신체 변화 있다고"

"야!!"

너의 눈물을 닦아 줄순 없지만, 널 웃게 만드는 사람은 되어줄게.


"야- 너 근데 내방엔 왜들어왔냐?"

"어..어? 왜 들어왔냐면....."

뭐라고 말하지? 보고싶어서 들어왔다고 하면 맞으려나...

"얘들아 밥먹어라-"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핫핫....

"밥.. 밥 먹어야지 아하.. 하핫...."

"밥 먹을 생각 없는데"

"야!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아하..하하... 건강이 최고야"

"아 알았어 좀있다 나갈테니까 먼저 먹고있어"

"어.. 빨리나와"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와서 왠지 숨이차는 느낌에 가슴에 손을 얹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있다. 아.. 심장떨리는 느낌이 이런건가, 죽는줄 알았다. 어째서 예전보다 심장떨리는느낌이 심해지는거지...
문앞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껌뻑대고 있는데, 뒤에서 문이열렸다.

"야, 너 밥먹으러 간다면서 안가고 여기서 뭐해?"

"어?... 가야지,.. 내려가자"

심장떨림이 좀 멈추는듯 싶더니 다시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이 아닌 쿵쾅쿵쾅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혹시나 정한별한테 들릴까 노심초사하면서 정한별한테서 최대한 떨어져 걸었다. 넌 알고있을까? 널향한 나의 마음이 이렇게 설렌다는걸, 보고있어도 또 보고싶고 옆에서 이렇게 가슴떨려하고 있다는걸


*


밥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식탁에 앉았다. 반찬도 그닥 맛있을 것같진 않은데,

"안먹어?"

한참을 멍하게 반찬을 바라보고 있으니 김윤한이 수저를 건넸다. 그래서 수저를 들고있는 김윤한의 얼굴을 또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나보다

"왜..? 얼굴에 뭐.. 묻었어?"

"어....., 어? 어 미안 밥 먹자, 먹어야지"

수저를 들고 밥을 한숟갈 떠놓고 무슨 반찬을 먹을까 젓가락을 들고 반찬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밥을 떠놓았던 숟가락위로 계란말이 한조각이 얹어졌다.

"야 계란말이 맛있다. 먹어봐. 헤헤- 역시 아줌마가 만든게 제일 맛있는것같아요"

김윤한이 엄마를 쳐다보며 말하자 엄마가 다 끓은 찌개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으셨다.

"그치? 근데 이게 밥을 통 안먹으니 뭐 밥할 맛이나나, 우리 윤한이 없었으면 밥도 이렇게 못했을걸-"

"엄마는-"

"맞아 정한별, 이렇게 맛있는데 왜안먹냐-"

김윤한은 밥을 입에 한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또 헤헤 웃어댔다. 또 뭐가 저리 좋은지 참..

"많이들 먹어~"

숟가락위에 얹어진 밥과 계란말이 한조각을 쳐다보다가 입으로 넣었다. 뭐 맛은 있는것 같다.

"맛있지, 맛있지?"

"어?... 어... 계란말이 너 많이 먹어"

"너는? 더 안먹어? 더 먹어"

또 숟가락위에 계란말이 한조각이 얹어졌다. 이씨- 김치먹을려고 했는데

"너 먹으라니까-"

계란말이를 김윤한 밥그릇에 던지듯이 넣었다.

"어? 나주는거야? 헤헤-"

"그래그래 너 많이 먹으라구"

계란말이를 김윤한한테 넘기고 나는 김치를 한조각 양념을 닦아내고 젓가락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곤 내 밥그릇으로 가져가려는데 김윤한이 내 젓가락옆으로 밥이 떠놓아져있는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나- 나먹을래"

"이씨.. 니가 집어먹어라?"

"아아아아- 나 김치"

"넌 손이 없냐 젓가락이없냐!"

"손으론 숟가락 들고있고 어짜피 니가 김치 집은김에 나 주라 헤헤-"

"이씨.... 그래 너 다먹어!"

우리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엄마가 호호 웃으시며 말을 꺼내셨다.

"둘이 그러는거 보기 좋네- 원래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쌓이잖니.. 호호..."

"난 엄마랑 얘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헤헤- 솔직히 한별이보다 아줌마가 훨씬 이쁘세요"

"어머, 그러니.. 호호"

둘이 쿵짝이 잘맞으시는군요... 둘이 잘 노세요....

"잘먹었습니다-"

"벌써? 더먹지 않구"

"아냐... 윤한이랑 많이 드세요"

"호호... 그걸로 삐친거야?"

"삐치긴 무슨! 난 다 먹었잖아"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그냥 해 본소리야"

"네네- 잘먹었습니다."

"저도 잘먹었습니다. 들어갈게요"

"그래. 올라가서 둘이 잘 놀으렴"

"우리가 무슨 어린앤가.. 놀게, 피이-"

"어머, 텔레비젼에서 재밌는거하는데 보고 들어가라"

"아 그럴까, 심심하긴한데"


*


"뭐하냐?"

"보면 모르냐, 티비보는거?"

"왜 시비야- 그냥 물어본거갖고"

"내가 언제? 이게...씨.. 니가 자꾸 그러니까 더 짜증나는거 아니겠냐구"

김윤한이라는 인간은 참 신기한 인간인것같다. 금방 나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떼고 다른 사람인 양 나랑 싸우려고 드니 말이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그리고.. 이렇게 자꾸 쳐다보게 되는 건 정말 신기해-

"아냐-"

"너 진짜 이상해, 너 진짜 나 좋아하는거 아냐?"

"미...미쳤냐!!"

"야, 정한별-"

"왜..왜에..."

"나 좀 봐봐"

"으...응?"

눈을 꼭감았다가 뜨고 고개를 돌렸다. 김윤한 얼굴이 내얼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야- 정한별아-"

"으... 으.. 응, 왜?"

"너 어떻게 하면 나랑 사귈래?"

"머어...?"

"이럼 나랑 사귈래?"

"무..슨 소ㄹ...읍"

김윤한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 빨간입술이 내 입술에 와서 부딪혔다. 부딪힌것 보다는 감싸줬다고 해야되나..? 아.. 따뜻해- 

따뜻한 기운에 저절로 눈이 감겨졌다. 너는 손도 따뜻하더니 입술도 따뜻하구나... 맞아... 입술이.... 아주 따뜻.. 뭐...!?

순간 정신이 번쩍들어 김윤한을 뒤로 밀쳐냈다.

그리곤 쿵쾅대는 소리가 짧게 들린걸보니 김윤한이 바닥으로 떨어진것같다.

"아.... 야, 정한별!"

"이씨... 너 뭐야!"

"아.. 아퍼..."

"으... 으.. 흐앙....... 너.. 이...씨이...."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자식한테....

"야... 우냐..?"

김윤한은 쇼파 밑 바닥에 앉아서 허리를 문지르며 나를 올려다 봤다.

"아.. 몰라!! 너 뭐야!!"

"넌 뭐 다 해놓고 난리냐"

"머..머어? 이...씨이.... 으앙......"

"그럼, 우리 오늘이 1일이다. 잘자- 우리별이~"

뭐... 별이..?

김윤한은 쿵쾅쿵쾅대며 2층계단을 올라가버렸다.

"야, 야!!! 너 죽어진짜!"

"뭐가 이렇게 시끄러?"

"어..엄마-"

"뭐야, 뭔데 이렇게 시끄러-"

"아... 아니에요. 들어갈게요-"

"그래-"

아씨... 이걸 말하면... 나만 쪽팔려지는건가...? 으.....이씨... 아, 나 몰라- 김윤한... 너 두고보자... 응?


*


-♪♩♬♩


"......여보세요?"

드디어 수업끝났다. 오늘 수업하는 선생들은 죄다 지루하게 수업하는 선생들밖에 없냐- 지루해서 죽어버리는줄 알았다. 수업끝나고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무거운 눈꺼풀로
겨우겨우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벨소리가 들린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핸드폰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 야- 박준희 니 마누라다!

"뭐?"

전화가 잘못왔나?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려 액정을 확인하는데-, 분명히 임은민이라고 적혀져있다.

"임은민?"

-응!

"뭐라고 했냐? 마.. 뭐?"

-마누라~

"미친..거야?"

-미쳤긴!! 얘가

"전화는 왜했냐?"

-내가 수업끝날때 까지 기다린다구 했잖아! 야 나 안보이냐? 난 너보이는데-

멀리서 갈색옷을입고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이긴한다. 근데, 조그마하니까 바퀴벌레가 움직이는것같다. 나 바퀴벌레 싫은데... 욱...

"뭐야... 어쩌라는거야.."

-빨리와~ 밥먹으러가자 계속 기다렸더니 배고파..힝..

"혼자먹어"

-너 진짜.. 나 계속 기다렸는데 그러기냐?

"내가 기다리라고 했냐? 난 분명히 기다리지 말라고했다. 응?"

-아 시끄럽고! 밥먹으러나 가자구~ 빨리 텨와라~

"야.. 야!!!"

전화 벌써 끊겼다... 젠장.. 얘는 왜 또 와서 난리야...

 

어느새 식당까지 와버렸다. 솔직히 끌려왔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안간다고 수천번은 말한듯 했으나- 끝까지 쫓아오는걸 어떻게 할수가 없었고. 또 마침 배꼽시계가 울리는 통에 밥먹으러 왔다-

"뭐 먹을래? 너 일본와서 한식 안먹어봤지?"

"어?... 어..."

"여기 한식당 되게 유명한데- 우리 엄마가 해준것보다 여기가 더 맛있는거같아 헤헤"

"너희 어머님은 원래 요리 못하시지 않았냐?"

"어..? 그거 기억하네- 후후"

"너네집에서 밥을 먹어봤는데 그맛을 어떻게 잊냐... 혀가 마비되는줄 알았어"

"헤헷... 하긴 .. 우리엄마 요리 못하긴해"

"그냥 못하는게 아니구 많-------이!"

"그얘긴 그만하구- 뭐 먹을래?"

임은민네 엄마 요리얘기를 생각하니 그 맛이 생각나서.... 지금 생각해도 토할것같다. 그생각만 하면 내가 불만을 말할게 많지.... 말하다 보니까 백분 토론이 되고있었어...

"나..? 그냥 뭐 아무거나"

"그래? 그럼 우리 돼지불고기 먹자 배고픈데- "

"미안, 나 돼.."

"아 맞다, 너 돼지고기 알레르기 있지? 미안-"

"야... 너 그걸 어떻게 기억해?"

"아, 너 몰랐어? 내가 너 좋아했다니까? 피이-"

돼지고기 알레르기있는거 우리엄마랑 한별이밖에 모르는줄 알았는데-

"그럼 소갈비 먹자- 히히"

"어...?어-"

메뉴를 정하고 나서 임은민이 직원을 부른다. 역시 일본에서 오래 묵힌 애 답다.

"あの、注文お願いします。" (저기요. 주문이요)

"はい。何を注文しますか。" (네. 뭘로 하시겠어요?)

"牛のガルビ2個下さい。" (소갈비 2인분주세요.)

"はい、分かりました。ちょっと待ってください。" (네에, 알겠습니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배고프다..조금만 기다리라면서 왜이렇게 안나와......... 몇일동안 제대로 밥을 안먹었더니....

"야.. 너 많이 배고파?"

"으..,응??"

"아니, 너 많이 배고파보여서...헷...."

"아... 조금"

"귀여워-"

"응?"

"아냐-"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임은민, 아무래도... 많이 이상해진듯 .... 심각해... 병원엘 데려가야되나?
한참을 기다리니까 밥이 나왔다.. 끼야..... 사랑해... 정한별 만큼은 아냐.... 뭐..

"맛있다아-"

"그치~~ 그치~ 호홋"

"아... 켁켁.... 무..물!!"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자 물"

"꿀꺽꿀꺽..애 쩌다바...(왜쳐다봐)"

"아, 아냐 ,히히"

이상한 애일세..... 진짜... 이상해


*


-똑똑

아, 누구지? 아직 깜깜하고 내가 눈감고 있는거보니까 밤인것같다.

-똑똑똑똑

지금 몇시..... 어... 새벽 두...시? 핸드폰 폴더 열어보니까 am 2:17 라고 써있는걸보니까, 새벽인가보다.
누가 자꾸 방문을 두드려대! 아짜증...

"저.... 정...한별......... 자.....냐...?"

"아...함- 이 새벽에, 누구세요?"

"야....... 나......"

"나가 누군데에- 아..함..."

"기..."

아 머야!...
졸려 죽겠는 얼굴로 겨우 눈뜨고 방문을 열었다. 새벽이라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야! 김윤한?"

문을 여니까 김윤한이 바닥에 무릎꿇고 앉아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어떡하지? 아픈가?

"야? 왜이래?"

"배.....가... 아파...."

"배? 배가 왜?"

"모...ㄹ라.... 죽을...거 같아...."

일단 엄마한테 말해야될것같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들어왔다.

"잠깐만... 엄마!"

"가...지마..."

"어...?"

"가지...말라...고... 그냥... 내옆..에... 있어..."

"야... 아픈데- 진짜 잠깐만-"

"한..별아...."

엄마 아빠방.. 어디더라.. 아... 급하니까 위치까지 헷갈린다. 어.. 여기
방문을 급히 열고서 불을 켰다. 엄마아빠가 자고계신다.

"엄마!! 엄마!!"

"우..우응?"

"엄마, 있잖아 윤한이가"

"어...? 윤한이가 왜..."

"윤한이가... 아프대... 진짜 많이 아픈가봐"

"어머.. 윤한이가?.. 여보! 여보... 일어나봐요"

"벌써 아침이야? 두시 반? 왜..?"

"윤한이가 아프대잖아요"

.
.
.

우리가족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아빠가 김윤한을 들쳐 매고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김윤한이 정말 너무 아파보여서 점점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지고 있다. 제발- 괜찮아지게 해주세요-
병원에 도착해서 땀으로 온몸이 다 흠뻑 젖어버린 김윤한을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김윤한을 계속 보면 울것만 같아서 밖으로 나와버렸다. 왜 울것 같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한참을 밖에서 앉아서 심각한게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김윤한이 아프면 내가 정말 아파질것같은느낌이 들어서...
엄마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아빠가 나오셨다. 엄마가 나오자 마자 엄마한테 붙어서 의사가 뭐라고 하냐고 물어봤다.

"맹장이래-"

이말을 듣고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신들께 정말 감사드렸다. 내 기도 안들어주면 평생동안 다신 기도 안하려고했는데, 말이다.

.
.
.

급성 맹장이란다. 맹장이 터지기 직전이라는데 . 바로 수술해야겠댄다. 네다섯시간정도는 계속 아팠을텐데, 병신같이 참고만 있었나보다, 꼴에 남자라구... 싱글벙글하면서 밥먹을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 인터넷에 보니까 많이먹는거랑 맹장이랑 관련이 뭐 없진 않은가본데, 아까 많이 먹긴했다.
맹장수술은 한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벌써 오십분째 핸드폰 게임만 하고있다. 걱정이 되서 잠이 안온다. 핸드폰게임도 집중 안 된다. 아까 자기전에 충전을 안해놓고자서 배터리가 한칸밖에 안남았다.아니 방금 한칸마져 사라져버렸으니까 이제 핸드폰이 뾰로롱-하고 꺼져버릴일만 남았다. 배터리가 다되서 게임을 실행할수없댄다. 어짜피 뭐 그많은 시간동안 단한판도 못이겼으니까, 이제 할맛도안난다.
멍하니 턱을 괴고 무릎을 까딱까딱 거리며 앞쪽 벽을 바라보고있는데 수술중 불이 꺼지더니 누워있는 김윤한이 나온다. 앞에서 졸고있던 엄마도 나처럼 멍하게 있던 아빠도 그리고 나도 김윤한이 나오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사선생님께 다가섰다.
엄마가 젤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잘됐나요?"

"네- 위치도 나쁘지않고 다행히 터지기 전이라서 잘 됐습니다. 근데 환자가 마취 하기전에 계속 한별이라는 사람을 부르던데요.. 허허- 여자친구라도 되나요?"

한별.... 한별- .. 나?


*


"한별... 한별아!"

아, 꿈이구나. 놀랐다. 정말 많이 놀랐다. 하얗고 아무도 없는 그런 공간에서.. 정한별, 니가 나타났다. 꿈에서라도 널 볼수있어서 정말 기분이좋았다.  근데, 그 하얀공간에서 하얀 옷을 입은 니가 김윤한과 다정히 손을 잡고는 멀리.. 저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니가 날두고 사라져버렸다.  그것도.... 김윤한이랑....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사실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꿈이란걸 알면서도 너무나 두렵다. 달달하고 추억을 되돌아 볼수있게 만드는 너의 모습이 나의 꿈속에 나타나 주길 바랬는데 너무 두렵다. 등과 얼굴엔 식은땀들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메말랐던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가 사랑했었던 기억들도 그 공간에서 주르륵 흘러내려내버리고 있는것같다.
지이이잉-, 하고 탁상위에서 핸드폰이 울려댄다.

"여보세요?"

- 어, 자고있었어?

확인할 힘이 없어서 누군지 확인을 못하고 그냥 받았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알것같다. 하긴 나한테 전화 걸 사람이 또 누가 있겠냐만은..

"임은민, 왜?"

- 왜긴-, 쉬는날인데 놀자는거지

"쉬는날이면 좀 쉬자, 응?"

- 야..,-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뭐 사실대로 말하면 배터리를 빼버린거지만. 분리된 핸드폰과 배터리를 책상위로 던져버렸다. 타악-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썼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서 좀 찝찝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않았다. 혼자있고 싶어졌다.

"아아악!!!!!!!!!!!!!!!!!!!!!!!!"

싫다. 정말- 이런내가 정말... 싫다.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다. 진짜 미치겠을만큼... 지금당장 뛰어가서 니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만, 꽉 안아주고 만져보고싶지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게 안된다는게 정말 싫어졌다. 밉다. 정말.. 날 여기로 보낸 아버지도 밉고 , 널 좋아하게 만든 정한별 너도 밉고... 이런 나도 정말... 밉다.

한 삼십분 가량 침대에 누워서 별생각을 다했다. 내가 왜 여기있나, 내가 여기서 해야되는건 무엇인가. 정한별은 어떻게 되는건가..... 그러다가 문득 샤워를 하면 좀 나아질것 같아서 욕실로 들어왔다.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몸을 바디워시으로 뒤덮기도 하고 해봤지만 그닥 나아진것 없는듯하다. 샤워를 대충마치고 샤워가운을 입고 밖으로 나와서 냉장고 문을 열고 주스한잔을 따랐다. 쪼로록- 하고 마지막잔이 따라지고 주스 병이 다 비워졌다. 언제 다 마셨지..? 이따가 사러가야겠다. 아 귀찮은데- 하고 머리를 털털 털면서 주스를 반정도 마셨는데 띵동띵동-하고 초인종이 울린다. 멍한 얼굴로 샤워가운만 입은것도 까먹고 문을 열러나간다.

"누구..-"

어... 정한별... 니가.. 여기....


*


아졸려.... 어제 집에 5시넘게 와서 6시 다되서 잠들어서 한시간밖에 못잤다. 눈꺼풀이 백만톤인 상태로 손엔 펜을 쥐고 필기를 하는건지 예술작품을 그리는지 내가 수업을 하는지 알수없는 상태로 그것도! 지루한 국사수업을 들으면서(솔직히 말하면 들은건 아무것도 없지만) 책상앞에 앉아있는것..같다-
김윤한 자리가 비어있으니까 뭔가 허전하다. 항상 옆에서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없으니까 허전하다. 뭔가 빈것같고....

"자 다음 문제, 13번 답 불러봐라"

"........"

"13번 누구냐? 13번-"

허전해 뭔가......, 아졸려-
근데..십삼... 십삼.. 왠지 익숙한 이숫자는 뭐더..라?

"네?"

"13번, 정한별- 다음문제 답 불러봐라"

"네..?...."

".... 답 모르면 밖으로 나가!"

"......네..."

아..., 뭐 정신이 있었더라도 알것같은 문제는 아닌듯 싶었다.
들었던 펜을 다시 뚜껑을 똑딱- 덮고 내려놓고, 터벅터벅밖으로 걸어나왔다. 드르륵- 하고 문을 여니 찬바람이 슈욱-밀려온다. 가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 겨울이 되고 있었나.. 으으.. 추워

"문 안닫아?"

이씨.. 저 국사 색히... 학생이 말이야! 어! 모르면 가르쳐 줘야될거 아냐! 이 추운날에 자켓도 안입은 애를 밖으로 내몰아? 이런..... 씨이...
아 진짜, 춥다아- 속으로 국사선생을 실컷 욕하다가 점점 더 추워지니까 따뜻한게 생각난다. 우리집, 따뜻한데에- 코코아 한잔도 따뜻하고.. 붕어빵두... 떡볶이도.... 그리고 맞다! 오뎅국물도 따뜻한데에... 어 그리구 또 김윤한 손도 따뜻하고.....,
혼자만의 정적이 흐르고 교실안 국사선생의 지루한 목소리만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있었다.

아 추워....

.
.
.

"주말 잘 보내고- 누구처럼 병원가지말고 건강하게 월요일날 보자-"

"네에!"

"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가방을 등에 들쳐매고 가만히 자리에 서서, 김윤한 자리를 바라본다. 청소당번들 빼고 아이들이 물빠지듯이 교실안을 빠져나간다. 항상 이렇게 끝나면 김윤한이 내자리로 와서 집에 같이 갔는데...
그때..귀찮기는 했지만 또, 그 발길이 없으니까 허전하다-
발걸음을 한발짝씩 천천히 떼서 교실밖으로 나간다. 심심해- 허전해- 아- 김윤한 병문안이나 갈까.... 아냐 내가 거길왜가 호호호-
 
.
.
.

왔다.... 결국 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벌써 병원앞이다. 난 오려고 하지 않았다. 내 발이 자동으로..... 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가 온거 맞나보다.   푸후... 그리고 또 어느새 붕어빵은 산건지 내 오른손에는 붕어빵이 들려있다.
입원병동에 들어서서 엘레베이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까 왔었는데 기억이 안나네..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려다가 엘레베이터를 발견해서 , 찾아 들어가서 또 한 10초간 멍하게있었다.
몇혼지... 기억이 안나... 전화를 걸려다가 엘레베이터안에서는 전화가 안 된단 사실을 기억해내고 밖으로 나왔다.
전화해서 물어보긴 왠지.. 좀 그렇거같으니까 문자로 해야겠다.

'야... 너, 자..? 너 몇호 입원이더라..? 자면.. 미안- 답장안오면 갈게^^'

웃음 표시 붙여주는 센스!... 이러고있다.. 전송완료- 답장올때 까지 뭐하나- 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안 자 ^^ 왔네? 411'

411은 또 뭐야... 호 붙이기가 그렇게 귀찮냐 비밀번호도 아니고....
엘레베이터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4층- 그러니까 F를 꾹 눌렀다. F주위로 빨간불이 네모나게 둘러진다. 문이닫히고 붕뜨는 느낌이 들면서 4층에 도착한다.

"가만있어보자.. 411호가..."

"한벼라~~"

"어? 왜 나와있어? 안아파?"

"걱정하는거냐?"

"아.. 뭐 아픈애니까-"

"풋... 안아프니까 걱정마, 날 아픈애로 몰진 말아줘"

"그래?"

"응. 나 없으니까 허전하지 않냐?"

"어?... 아.. 맞다 너 배안고파?"

"배고파 뒤지겠다."

"이거 먹을래? 추워서 붕어빵 좀 사왔는데."

"먹고 싶다.... 근데 못 먹어"

"어? 왜- 먹지.. 이거 따뜻할때 안먹으며ㄴ.... 푸... 흐하하하..."

"왜 웃냐?"

"아.. 아냐- 나혼자 먹을게 다... 프흐...."

"....... 뭐야"

나 혼자 미친사람처럼 웃어대니까 김윤한이 볼을 꼬집는다. 볼 꼬집은게 아프진 않은데..., 맹장...이 너무 웃겨....

"아이아이까- (아니라니까)"

"너 방귀땜에 이러는구나"

"프흐하하하.... 키키...."

"웃지마 원숭이같아"

"웃긴걸 어떡해... 히히..."

내 삶의 활력소. 그래, 너 없어서 많이 허전했어. 너 땜에 웃는다. 내 친구-


*


"너 진짜 그냥 전화 끊기냐? 치이-"

정한별.... 정한별... 맞아?

"너 자고 있던거... 어, 씻었구나?"

넌 정한별이 아니지..... 정한별이면.......

"너 왜그렇게 멍해?"

정한별인데... 내가 듣고싶던... 그 목소리가...

"야..."

그목소리가....아니다....

눈을 감고 눈을 꾹꾹 누르며 비볐다. 방금 감고나온 머리에선 차갑고 서늘하기 까지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발등위로 떨어져 내렸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왜그래...."

나를 이상하게 본 그사람이 나에게 손을 가져오자 나를 건들지 못하게 그사람의 손을 쳐냈다. 공기중으로 타악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아야..."

숙였던 고개를 듬과 동시에 눈이 떠졌다. 지금 내앞에 있는 넌....

"오늘 왜...그래..."

"아니구나..."

"응?"

정한별... 니가 아니구나... 내가 미친거구나..... 내앞에 있는 게... 니가 아니었구나....

"야.. 왜그래..? 응? 그러지 말구... 하핫... 씻었으면 놀러...."

"가주라..."

"어?"

"제발... 내앞에서 사라져..."

"응...? 저기 놀러..."

"제발...."

"어?어... 왜에.. 내가.. 놀러갈데 정해.."

임은민이 말을 다 하기전에 쾅하는소리가 온집안에 다 퍼지도록 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나도 아직 움직이지 않았고 밖에서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보니 임은민도 아직 가지 않고있나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밖에서 느릿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사라져가고 나도 자리에서 움직여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앉자 아직까지 마르지 않은 머리에선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내려 침대를 축축히 적셨다. 그리고 말라있던 샤워가운 위로도 그 차가운 비가 똑똑.. 하고 내렸다. 침대에 앉아 샤워가운 어깨가.. 그리고 침대가 축축히 다 젖을 때까지 멍하게 앉아있다가, 핸드폰에서 문자알림음이 울리자 정신을 차리곤 핸드폰을 확인했다.
원래부터 임은민 밖에 연락올사람이 없었지만, 그래서 임은민이란걸 어느정도 눈치채고있었지만, 아니길 바랬다. 지금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무슨 잘못했어..?'

임은민의 그 문자가 내 머리속을 계속 맴맴돌았다. 답장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되나...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기로 하곤 몇자 틱틱대며 눌러본다.

'아냐... 미안하다..'

결국이렇게 적어놓고는 전송버튼을 누른다. 몇초뒤 '전송완료'라는 문구가 확인되고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린다.
사실..... 초인종소리가 들릴때부터 문앞에 서있는게 정한별이길 바랬고, 정한별의 환상이보일때 너무 기뻤고, 정한별이 아니란걸 알았을때도 아닐거라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게 정한별일거라고... 정한별이어야만 한다고... 그렇게생각했는데.. 정한별이 아니란걸 알게 되고 정말 싫었다. 니가 정말로 보고싶은데.....
다시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린다. '알러뷰~' 하는 그 알림소리가 머리를 뱅뱅 돌아다닌다.


*


"진짜 갈거냐?"

귓가에선 김윤한의 질질끄는 목소리와 말그대로 신발을 '질질'끌고 있는 소리가 맴돌았다. 병실에서 김윤한이랑 별별 얘기를 다하면서 웃고 울고.. 우는건 아닌가? 여하튼.. 같이 수다떨고 놀고 하다보니깐 벌써 몇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김윤한이 원래 재밌는 얘기는 자주 해줬지만, 둘이서 얘기하고 하다보니까 재밌어서 조금더 있고 싶지만, 조금더.. 조금더.. 하다보면 왠지 시간 되게 많이 지나버릴것만 같아서 시간도 꽤 늦었고하니 이쯤에서 가야겠다고 생각되서 침대에 딱 달라붙어있던 엉덩이를 떼어내 몸을 일으켜서 짐들을 하나둘 챙기고 김윤한한테 간다고 하니까, 그 조그마한 병원복 주머니에 큰 손을 집어넣고 신발 질질 끌면서 따라오고 있는 김윤한이다.

"벌써 8시 다 돼 간다. 착한 어린이는 빨리가서 씻고 자야지 응?"

병실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김윤한은 계속 신발을 질질끌면서 내뒤를 졸졸 쫓아온다. 김윤한의 슬리퍼 특유의 '치익치익'하는 소리가 계속 내뒤를 따라오자 고개를 돌려 시끄럽다고 그러는데도 계속 질질끌면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온다.

"야 너! 진짜.. 이씨.. 시끄럽다니까....!"

시끄럽다고 하는 내소리는 귓뜸으로도 안듣는 건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헤죽 거리면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서 날 쳐다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도 않고서 나는 김윤한을 계속 째려보고 김윤한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내쪽을 쳐다보는 일종의 신경전(?)같은게 펼쳐졌다. 한참을 서로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난 째려본거지만) 김윤한이 내쪽으로 여전히 신발을 질질끌면서 치익거리며 다가오자 김윤한 보다 한참 작은 나는 점점 김윤한을 올려다보게되었다. 올려다보다가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내 눈높이로 내리자 김윤한이 내 눈높이에 맞춰서 고개를 내린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굴려 내얼굴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리저리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추고 김윤한이 내 볼을 빤히 쳐다본다. 난 뭔가... 싶은 표정으로 계속 김윤한을 쳐다보고 있었는데(참, 진짜... 째려본거라니까...) 김윤한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 따끈한 입술이 내 볼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다. 떨어지는동시에 쪽-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들리고, 내가 김윤한을 쳐다보던 눈빛이(아 진짜!!! 째려봤다고 이....) 점점 굳어졌다.

"안가면 좋을텐데.. 가야된다니까 뭐... 잘가라!"

"....."

"인사 안 해주냐?"

"...."

아무말도 할수가 없는 상태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엘리베이터 버튼에는 빨간 불이 켜졌고, 내 얼굴에는 발그레하게 빨간 빛이 떠올랐다. 뒤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아직 김윤한이 가지 않았다는걸 알수있었다. 김윤한과 나 둘 다 아무말없이 엘리베이터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바람이 쌩하고 부는 것같았다. 잠시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했고,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김윤한을 안 쳐다보고 1층버튼을 누르려고 버튼들이 있는 곳으로 손을 옮기려는데 김윤한이 날 부른다.

"잠깐만!"

김윤한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고 김윤한이 1층버튼을 꾹 누르자 빨갛게 버튼을 눌렀다는 표시가 또 나타났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 몇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마치 몇시간이.. 아니.. 몇년이 지나간듯이 시간이 느리게 지나갔고, 우리는 또 말없이 엘리베이터가 다 내려가기만을 기다렸다.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들릴까 두려운 이공간안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들어서 흠칫 놀라버렸다. 다행히 김윤한은 보지 못한듯 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열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 김윤한 차례로 천천히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뭔가 해방된 느낌에 발걸음을 빨리 옮기며 숨을 후아후아 내뱉어 댔고, 뒤에서 같이 나를 쫓아서 김윤한이 신발이 치익대는 소리를 내지 않고 빠르게 걸어오고있었다. 병원문을 열고 나가려고 문 손잡이에 손을 대고 힘을 주려는데 뒤에서 큰손이 내손목을 덥썩하고 잡았다.

"한별아-"

"....어...?"

"잠깐만 기다려봐"

"...으..응..."

김윤한은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그 큰손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쑤욱하고 집어넣었다가 까만색 무언가와함께 손을 다시 쑤욱하고 빼냈다. 그걸 열어서 그안에.. 파란색종이 들이 가득 들어있는걸보니 지갑인것같다. 어이구.. 돈도 많아라 근데 그렇게 돈이 많은데 왜 우리집에서 같이 사는거냐.... 대체 왜.. 자꾸 이렇게 신경쓰이게 하는건지.. 너란 인간 참이해할수없다.... 한참 나만의 생각에 빠져서 멍하게 김윤한을 쳐다보고있는데 김윤한이 나한테 파란색 종이들을 내밀었다.

"집에 가려면 삼만원이면 되나? 택시타고 가라. 조심해서 들어가. 데려다 주고싶은데. 이러고 있는 몸뚱이가 참 너한테 미안.. 자, 받아"

김윤한이 펄럭이며 내민 파란색 종이 세장은 반으로 접혀져 내손에 꾸욱 쥐어졌고, 김윤한이 큰손을 좌우로 흔들흔들대며 잘가라고 연신 말을 해댔고 병원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이제 추워진다는 듯이 차가운 바람을 뿜어대는 날씨를 보며 뒤를 돌아보았다. 밖으로 나와서 벌써 한참을 가고있는데도, 병원안에선 김윤한이 손을 흔들대고있었다. 멀리멀리 까지 갔는데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신경쓰게 된다.
저기 뒤에서 아직까지도 손을 흔들거리고 있는니가... 자꾸만 신경쓰여서


*


'그럼.. 오늘 놀자! 응?'

문자는 또 임은민이다. 얘는 눈치가 없는거냐.. 바본거냐... 순진한거냐.. 대체 뭐냐... 방금 그렇게 심하게 뭐라그랬는데도 또 놀고싶어지냐... 임은민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오늘 그냥 혼자 있고싶어졌다. 잠깐만 임은민에 대한 생각은 접고, 정한별로 좀 채우고싶어졌다. 핸드폰 슬라이드를 내렸다가 올렸다. 슬라이드를 내렸다가 올리니 발랄한 소리가 핸드폰에서 나와 방을 꽉매웠다. 그리곤 기억속에서 한참 찾다가 못찾고는 전화번호부속에서 김윤한 번호를 찾아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댔더니, 기분좋은 컬러링이 귓가를 맴돈다.

널 사랑하나봐- 사랑에 빠졌어- 이 기분좋은 느낌이 변함없길 바래- 널 사랑하나봐- 자꾸보고싶어- 매일 모닝커피를 너와 들고싶어-

한별이가 좋아했던 헤이의 주뗌므가 흘러나오고있다. 한별이 mp3엔 항상 이곡이 담겨있어서 항상 이어폰을 나눠끼워 같이 이노래를 듣곤했었는데... 서로를 바라보면서 바보같이 웃던 그때가 그립다. 한별이는 웃을때 눈꼬리가 휘어지는게 너무 이뻤는데... 노래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이며 옛생각에 잠시 잠겼다. 컬러링이 어느정도 끝나갈때쯤 김윤한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옛생각에 깊이 들어가버린 난 김윤한이 전화받은 사실을 인식하지못했고, 둘사이에는 침묵이흘렀다.

"...... 왜..?"

두번째 말소리가 들리자 겨우 정신이 든 나는 전화통화를 이어나갔다.

"....응?"

"...왜... 전화..했냐구.."

전화를 왜했냐니... 그게 오랜만에 전화하는 친구한테 할소리냐... 말은 이렇게 해주고싶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정작 전화했던 본이유를 해결하지 못할것만같아서 차근히 말한마디를 이어나갔다.

"어.. 그니까.."

"정한별...때문이지..?"

정한별.... 그래... 정한별때문에 전화한거 알고있구나... 내가 좀 여려서 정한별한테 직접전화해서 상처주는 건 아직 할 수가 없다.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고... 정한별 목소리만이라도 너무 듣고싶은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내가 자꾸만 정한별한테 상처만줘서... 정한별이 나를 좋아하지 않게될까봐.. 난 그게 두려운 겁쟁이라서.... 널 볼수가 없다. 미안해 한별아..

"아는구나..."

"니가 그거말고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있냐..?"

"하긴...하핫..."

웃고는 있지만 속은 너무 쓰린 슬픈 웃음.... 넌 모를거다. 가까이에서 정한별을 볼수있는 넌 정말 몰라... 할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보고싶은데.... 이렇게 몰래 친구한테 전화해서 소식밖에 들을수 없는난 정말 아프다..

"한별이......"

"한별이 잘지낸다. 걱정마라. 다 잘되고 있고 이제 니 얘기도 거의 안하는걸 보니까 많이 괜찮아진것같아"

"......그래...?"

솔직히 니가 날 못잊고 아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니가 날 다 잊고 행복하게 지낸다면... 그건 나한테 정말 아프니까.... 그러고보니까 나 진짜 못됐다. 어떻게 진짜 내생각 밖에 안하냐... 니가 행복하게 지내면 나도 좋아해야하는건데... 니가 행복해하면 내가 너무 아프다... 니얼굴이 자꾸만 보고싶어진다. 너의 세상에서 가장 이쁜 눈도... 귀여운 코도... 앵두보다 더 이쁘고 촉촉한 그 입술도... 모든게 그립다. 니가 자꾸만 내 심장에 가시를 박아놓는다. 니가 박아놓은 이 가시는 오직 너만이 빼줄수 있는데.. 니가... 정한별... 여긴... 니가 없다...

"더 물어볼거 있냐...?"

".... 좋아보이지..?"

"어?"

"...한별이... 행복해 보이지...?"

"어?... 어..."

"정말... 행복해보이지...?"

"....어..."

"많이 웃지..?"

"응..."

"그럼됐다. 잘지내라-"

"야-…"

차가운 눈물한방울이 따뜻한 볼위를 스쳐흘러지나가 따뜻했던 볼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래.. 니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니... 그걸로 난됐다. 아프지만... 난됐다. 근데 자꾸만 니목소리가 듣고싶어진다. 딱한번만... 전화해도 되려나... 니목소리 딱한번만 들어도 되려나...?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 벌써 내 손은 전화기를 들어 정한별 번호를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눌렀다.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혹시나 니가 알까.. 집 전화기를 들어 소중한 너에게로 가는 버튼을 하나하나 누른다. 차갑고 단조로운 따르릉 소리에 내 따뜻한 두근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섞여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너에게 전화한번 하는것만으로도 조마조마 하고 두근두근 댈거면 오기전에 너한테 정말 잘해주고 올걸 그랬다. 그랬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거아냐....

"여보세요?"

두근두근 대며 너의 목소리를 기다리는데, 니가 전화를 받는다. 차가운 따르릉소리완 대조를 이루는 너의 따뜻한 목소리는 내 심장으로 들어와 심장이 더 두근두근 거리게 만든다. 얼마나 두근두근했으면 내 심장소리가 이 전화를 타고 너의 귓가로 들어갈까 두려울정도로...

"누구세요?"

"......"

"저기요.... 전화를 하셨으면 누구신지...?"

"....."

"준이니...? 너... 박준희지... 준아...?"

두눈에서 눈물이 뚝뚝하고 떨어져 내리고 정한별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어쩔줄 모르고 울고만 있다가 전화를 끊어버리곤 침대로 뛰어 넘어들어갔다.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버리는데 베게가 축축히 젖어간다. 서서히 베게안을 번지는 나의 눈물은 이미 돌이킬수없는 너를 향한 나의 마음같다. 눈물이 서서히 퍼졌다가 지우려고 말렸지만 결국은 흔적이 남아버리는 베게처럼 내 심장속에 들어와있는 너도 그렇다. 이제는 지워지지않을 너의 흔적을 지워보려고 노력하지만 지워지지않는다. 니가 너무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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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별이 병원문을 지나 저기 멀리 점이 되어 보이지않을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이렇게 하지않으면 자꾸만 정말 니가 점이 되어 저멀리 날아가 버릴것만 같아서 그래서 다시는 못볼것만 같아서 너에게 내가 좀 더 각인되고싶어서 손을 힘차게 흔들어댄다. 결국 저멀리 점이 되어 사라진 너는 헤어진지 얼마 되지않았는데, 안 본지 얼마 되지않았는데 자꾸만 보고싶어진다. 니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사랑한단 나만의 속삭임을 들리지 않을 너에게 전한다.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처음봤을때부터 좋아했다고.... 멀리 사라버린너에게 머리속에 혼자 적어둔 글들을 적어 보내려는데 지갑을 넣어둔 반대편 주머니에서 지잉-하는 진동소리와 벨소리가 같이 울린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찾아 뒤적거리다가 까만핸드폰을 찾아 액정을 확인한다. 정한별일줄 알았는데 정한별이 아닌 오랜만에 보는 박준희이름이 둥둥떠다닌다. 핸드폰을 들고 한참 받을까 말까 고민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볼에 공기를 가득넣었다가 한숨을 뱉어내며 이게 받아도 되는 전화인가 확인했다. 먼저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다. 결국 핸드폰 슬라이드를 올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자기가 전화해놓고는 아무말이 없다. 기껏생각해줘서 받았더니... 참내...

"...... 왜..?"

"....응?"

"...왜... 전화..했냐구.."

난 니가 정한별때문에 전화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있었다. 아니, 전화 오기 전부터 언젠가는 박준희 너한테 이런전화가 한번쯤은 올거라고 생각 했었다. 근데 왜 이러지...

"어.. 그니까.."

"정한별...때문이지..?"

"아는구나..."

그리고 정말... 니가 나한테 전화해 정한별에대해 물어볼 줄 이야.... 정말 만약에... 만약에... 전화할거라 생각했는데,

"니가 그거말고 나한테 전화할 이유가 있냐..?"

"하긴...하핫..."

"한별이......"

"한별이 잘지낸다. 걱정마라. 다 잘되고 있고 이제 니 얘기도 거의 안하는걸 보니까 많이 괜찮아진것같아"

넌 모를거다. 다 잘되고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니얘기를 안한다는게 나에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내가 정한별네 집에서 살고있고, 정한별이 나와 이렇게 가까운사이가 됐다는것도 넌 모를거다. 정한별이 내 병문안와서 내걱정도 해줬다는 걸 넌 모를거다. 내 인생에서 벌써 정한별이 이만큼이나 소중한 존재가 되버렸다는걸, 이제 없으면 안되게 되버렸다는걸... 처음엔 좋아했지만.... 이젠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는걸....

"......그래...?"

"더 물어볼거 있냐...?"

".... 좋아보이지..?"

"어?"

"...한별이... 행복해 보이지...?"

아니... 행복하지 않아보여.... 너에대해서 말은 하지않지만... 이제 알 수 있게됬거든......

"정말... 행복해보이지...?"

항상 정한별은 온통 니생각에 가득차있다는걸... 나와 같이 얘기하고 놀고있는 듯 하지만 속은 너로 꽉 차있다는거.....

"많이 웃지..?"

웃어... 항상 웃고는있어... 근데 한별이 눈을 보면... 너무 슬픈 웃음인거 있지.....

"그럼됐다. 잘지내라-"

"야..! 아직 안말해줬잖아.... 미안하다고... "

정말 미안해.... 정한별한텐 너밖에 없나보다... 너올때까진 내가 그래도 한별이 행복하게 해줄게...... 이미 끊어진지 오래된 통화에서는 뚜뚜뚜-- 하는 차가운 소리만 들려오고 이미 끊겨진 전화에 대고 혼자 용서를 구한다. 넌 어떻게 했길래... 정한별이 너한테서 못 벗어나게 만든거냐... 그거 나한테도 좀 알려주지...


*


손을 흔들며 안녕하던 김윤한도 이젠 안보인지 오래고 가까운 거리인데도 택시타고 가라는 김윤한의 성의를 무시할수가 없었기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가는중이다. 창밖을 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비가 똑똑 떨어지며 차창에 노크를 한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비내리는 동네의 모습이 너무 슬퍼보인다. 코끝이 찡해져오면서 박준희가 보고싶다. 보는것 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박준희 목소리 한번만 듣고싶다. 정말 한번만 니 목소릴들으면 더이상 난 바랄것도 없을것만 같은데... 눈물이 날것만 같은데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다. 입술에 피가 빨갛게 번져가고 따끔따끔한 기운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짙은 한숨을 후아- 하고 내뱉자, 택시기사 아저씨가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으신다. 아니에요- 하고 대답하는 내모습이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괜찮지 않아보였다. 눈시울이 빨갛고 입술엔 피가 번져있고 한숨을 푹푹쉬는애가 어떻게 괜찮아 보일수가 있냐고... 소나기 였는지 어느새 똑똑 떨어지던 비가 뚝그치고 그새 집앞에 도착을 했다. 김윤한이 준 파란돈으로 택시비를 내고 차밖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뚝 그친 비처럼 내마음의 비도 그쳤으면 좋으련만... 박준희를 보고싶은 이맘도 이만 그쳤으면 좋겠건만.. 내맘은 내말을 듣지 않는다. 속이 너무 답답해 질퍽질퍽한 바닥을 저벅저벅소리가 나게 밟으며 현관문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가 후우아-하고 뱉어냈다. 질퍽질퍽한 땅바닥이 꼭 내마음인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않다.

지이잉-

새까만 애나멜 점퍼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새하얀 핸드폰이 지이잉-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주머니엔 핸드폰 외에 아무것도 없는데 괜시리 뒤적이다 핸드폰을 손에 꼬옥 쥐었다. 손에 잡힌 핸드폰은 진동을 그칠줄을 모르고 지이잉- 거린다. 핸드폰의 작은 액정위로 흐르는 글자는 몇개의 숫자일뿐 누구인지 알려주지않았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인걸보니 모르는 사람인것 같아 받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혹시나 박준희일지도 모른다는 바보같은 생각에 폴더를 열어 상대방의 소리를 귓가에 담으려 했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않았다.

"누구세요?"

누군지 물어보았지만 누구인지 대답을 하지않았고 옅은 숨소리만 귀에 담아져오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않는다. 자꾸만 대답안하면 내맘대로 박준희라고 단정 지을것만 같아 제발 빨리 대답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무런 대답을 하지않는다.

"저기요.... 전화를 하셨으면 누구신지...?"

대답해줘요... 자꾸그러면 나는... 정말로 당신이 박준희인줄로만 안단말이에요...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대답해주세요.....

"준이니...? 너... 박준희지... 준아...?"

결국 그사람이 박준희라고 내맘대로 단정 지어버렸다. 그사람은 마지막 물음이 끝나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보세요를 연신 외쳐보았지만 뚜뚜뚜.. 하는 통화끊겼다는 소리만 흘러나와 귓가를 간지럽힐뿐이었다. 너진짜.... 박준희야...? 빨갛게 물들었던 눈가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차 매달린채로 버티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뚝... 떨어져 내려 버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오늘 따라 너무 차가운 것만 같아 너무 아프다. 새하얀 핸드폰 그 위로... 아직 니 숨소리가 남아있는 것만 같은 그 핸드폰 위로 내 차갑고도 아픈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져내려 번져간다. 준아... 박준희... 나 너무 아픈데... 넌 알고있는거야..? 너를...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너를...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는게 내가 너무 바보같고 그렇다... 나혼자만 너무 아픈거같아서 막 억울해 질려고해....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던 눈물은 어느새 내리는 비마냥 주륵주륵 내려와 볼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혼자서 끅끅거리며 울고있었던 나는 위로해줄 사람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야, 정한별. 너여기서 뭐해...?"

"흐읍.. 으..... 흐으...으아앙...."

"야 왕눈이 너 여기서 왜 혼자 질질짜고있어-? 너 팅팅 불었잖아 에이- 다 불은 만두같이.. 못먹겠다 너"

"어..?...."

"오랫만에 보는데 이래야 겠냐...? 뚝 그쳐- 어? 밖에 뭔소리가 나나했더니 너가 질질짜고 있었구나."

"한경이오빠- 우으...흐읍..."

가로등에 노란머리에 하얀 피부가 유난히 빛나는 오빠가... 내몸을 일으켰다. 한경이오빠.. 오랫만에 보는데 히이... 쪽팔리게 시리.... 뭐야 맨날 질질짤 때만 오빠오고... 오빠한테 부축을 받으면서 눈가를 스윽닦아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쿵쾅쿵쾅대며 현관 앞으로 나왔다.

"어머, 한별이 왜이래?"

"엄마아-"

"몰라요. 또 질질짜고있네. 꼭 나오면 질질짜나몰라- 너 내가 싫냐?"

엄마한테 안겨서 훌쩍훌쩍대는 나를보면서 한경이오빠가 또 옆에서 말을 걸어댄다. 눈물을 자꾸만 부비대며 닦아대느라 다 불어터진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심했다. 한경이오빠를 소개하자면.. 뭐...어렸을때부터 친했던 사촌오빠다. 이름은 뭐 알다싶이 정한경이고... 지난번에 올때는 갈색머리였는데, 어느새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여버렸다. 니가 노홍철도 아니고... 게다가 1년마다 놀러오는 오빠가 작년에도 하얀 얼굴이었는데 올해에는 이제 하얗다 못해 허옇기 까지할정도로 하얘졌다. 이 인간 밖엔 안나가고 집에서 미백크림만 바르고 있는건가... 백인보다 더 하얘... 새앳-노란 머리에 새애-하얀 얼굴을 하고 장난을 걸어오는 오빠를 보니 무섭기까지할정도다...

"밥은 먹고 운거냐?"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사는 한경이오빠는 그 무섭다는 AB형에 속해있다. AB형은 천재아니면 바보라던데... 한경이오빠는 천재인듯싶다. 약간 유치한면이 있지만 머리가 정말정말로 좋고, 그래서 그런지 중학교때 일본에 처음갔는데 일본어가 아주... 장난이 아니다. 영어도 너무 잘해... 가끔 짜증나면 혼자 일본어로 씨부려대는 경향이있다.  또 바이올린이며 피아노며 등등 다룰줄 아는 악기가 엄청많고 노래도 잘하고 외동아들이라 귀하게 자란데다가 생긴건 동방신기에 영웅.. 뭐? 아 맞다 영웅재중 많이 닮았구 키도크다. 문제는 자기가 잘생긴걸 너무나 잘 알고있다는거... 캐스팅 제의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옛날에 고등학생때는 일본에서 모델도 했었다. 생긴것과 같이 험한일도 못하고 삐쩍 마른데다가 힘은 없는데 싸움은 또 디게잘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1년에 한번씩 우리집에 놀러오는 오빠는 내 고민상담용이다. 1년에 한번씩와서 그동안 쌓였던 고민들 다 털어버리는데에는 아주 좋은... 집안이 한자돌림이라 나도 한별이고 오빠도 한경.. 우리아빠는 한자 준자 쓰시고 오빠네 아빠.. 그러니까 큰아버지는 한자 철자 쓰신다. 한경이오빠는 AB형이라 상당히- 특이하고 머리도 좋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기도 하고 까칠한면과 그 반대로 상당히 유치한면도 가지고있는... 무튼 그런오빠다. 작년에는 내 옆방, 그러니까 지금 김윤한이 쓰고있는 방을 썼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나..? 김윤한 내일 퇴원이라던데-?... 거울을 보면서 팅팅부은 얼굴을 비비적대면서 히잉-대고있는데 배에서 꼬루루룩~ 하는소리가 울린다.

"자꾸 그렇게 비비면 더 불어터진다. 만두는 불면 맛없어요- 밥이나 먹어"

"히잉... 나 많이 웃기지..?"

"응... 풋... 나 지금 많이 참고있는거에요. 정한별씨. 座ってね"

"엄마 나 밥 너무 많다. 좀만 덜어줘요"

끼익-소리가 나며 식탁의자를 뒤로 빼내고 그곳에 앉는다. 마주보는쪽에 앉은 한경이오빠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있었다. 어깨의 떨림이 심하게 전해온다.

"이씨...왜웃냐..."

"끅...끅.. 그럼 안웃게 생겼냐... "

"웃지말라니까!! 이씨- 나안먹어 체에-"

"야 왕눈이 만두! 밥은 먹지?"

또 배에서 꼬로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식도를 타고 꼬르륵소리가 넘어오는 느낌이랄까?

"야 된장찌개 맛있다. 오- 김치도있어!!"

"그거 되게 맵게 한건데.. 둘다-"

된장찌개에 청양고추 넣었다고 말안했구나.. 엄마.... 한경이오빠 일본음식만 먹어서 그거 못먹을텐데... 별로 ... 미안하지는 않네- 하하.... 이렇게 나의 승리로 끝날거란말야....

"야... 물!!!!"


*


-"야.... 진짜 미안한데... 내가 좀 바본가부다... 너 몇호드라..?"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됐다. 이제 몸은 언제 아팠냐는듯 말짱해졌고, 오히려 전보다 더 튼튼해진듯 싶다. 정한별 보고싶어도 꾹꾹 참고 병문안 올때까지 기다렸었는데, 드디어 퇴원... 답답한 병원공기안에서 벗어날수있다는것도 좋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한별을 언제나 볼수있다는게 너무 좋다.퇴원한다는 사실에 한껏 들뜬 나는 그동안 병원에 두었던 짐을 꼭꼭 잘개어서 바닥에 있는 줄도 모르고 처박혀있던 짐가방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2인용병실이라 마주편에 입원해 있는 친해졌던 할아버지께 건강해지셔서 얼른 퇴원하시라고 꾸벅 인사를 드리고 한별이가 온다고했는데 온다고 한지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안와서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고 밖으로 나가보려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매너모드로 해두었던 핸드폰이 징징대며 울어대고 너무 꽉끼는 바지를 입었는지 바지주머니에 손이 잘 안들어가서 낑낑대며 겨우 손을 집어넣어 핸드폰에 바로 귀를 대고 전화를 받는데 정한별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몇신데 안오냐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살살달래며 왜안와? 하고 다정하게 말해줬더니, 슬그머니 말을 꺼내는 정한별이다. 어제 알려주지 않았나?

"그냥, 4층으로 올라와 내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나갈게"

"응, 미안- 헤헷"

정한별의 웃는 목소리로 이미 모든게 용서가 된지 오래다. 싱글벙글하며 할아버지께 다시한번 인사를 하고 인사성이 참 밝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병실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서 엘리베이터 앞에섰다. 이제 막 엘리베이터는 3층을오르고있었다. 이제야 올라오는걸 보니까 몇층인지도 까먹어버렸나보다. 엘리베이터에서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정한별이 서서히 보이고, 정한별이 내리는데 뒤에서 나보다 키가 조금, 아주조금- 더 큰 남자가 나온다. 머리가 노랗고 얼굴이 새하얀걸보니 외국인인가.. 생각하다가 상관없는 사람이기에 정한별에게 손을 흔들었다.

"왔네?"

"얘가 김윤한?"

노란대가리의 그입에서 영어가 샬라샬라 꼬부러져 나올 것같기도하고 일본어가 나올 것같은 포스가 느껴졌지기도했지만, 그 모든 예상을 뒤집어엎고 반듯한 한국말이 흘러나온다. 내이름을 어떻게 아나 싶어서 노란대가리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한마디 꺼내려는데 정한별이 먼저 치고 나온다.

"응, 김윤한이구, 이쪽은 우리 오빠야. 한경이오빠가 운전면허있어서 차끌고 나오려고 데리구나왔지- 헤헷"

"오빠...?"

정한별한테 오빠가 있었던가..? 왜 나한텐 말안해줬었지? 한경이오빠..? 왜이렇게 둘이 다정해보여. 너 나 차끌고 나오게 하려고 데려온거였냐? 어쩐지 같이 가자고 그렇게 조르는게 이상하다했어- 하면서 정한별의 볼을 살짝 꼬집는 노란대가리는 내 눈엔 낯설었지만 정한별눈에는 원래 자주 있었던 일이라는듯, 그럼 운전면허없는 내가 나와서 차박고 구르고 할까?하면서 눈웃음을 살살짓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얼굴이 점점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안내려갈거야?"

벌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노란대가리와 한별이 그둘은 열림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엘리베이터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고 정한별에게 슬쩍 물어봤다.

"오빠있었어? 그런말 전혀 못들었는데-"

"사촌오빠거든- 그래서 못들었을거야. 일본에 살고-.1년에 한번씩 한국에 놀러와. 잘생겼네 너, 형이라고 불러도돼 하핫"

노란대가리가 정한별 대신 대답을 하는데, 저기.. 그쪽한테 물은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누구신데 제가 형이라고 부른답니까? 라는말이 순간 툭 튀어나올뻔했다. 뱉으려던 말을 침삼키듯이 삼켜버리고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띵-'소리와 함께 열리고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계속 짓고있는데 또 그 노란대가리가 시비를 건다.

"너 화장실급하냐? 표정이 왜그래.. 풉... 화장실이... 오른쪽이네 저깄다."

나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또 노란대가리 한테는 뭐 마려운 똥개 표정 마냥 웃기게 보였나보다. 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아닌데요- 하자 노란대가리는 혼자 뭐라뭐라하는데 못알아먹겠다.

"가끔저래- 일본에 살아서, 혼자 가끔씩.. 아주 가끔씩..저래. 무시해도 괜찮아."

한별이가 눈웃음 지으면서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옆에서 풉풉웃어대던 노란대가리가 빨리가자며 정한별 손을 덥썩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나도 겨우 잡은 손을 저 노란대가리는 쉽게 쉽게 잡아버리고 질질 끌고 간다. 병원공기를 벗어나 밖으로 나와서 가져온 차 안으로 정한별을 태우는데 노란대가리가 아까는 손을 잡더니 이젠 그손을 어깨로 올려 차에 정한별을 태운다. 저둘은 가족이다. 가족이다- 하면서 머리속에 주문을 혼자 외우고 '참을 인'자를 새기고있는데, 나한테는 타란 말도 안하고 그냥 출발하려는듯 싶어 얼른 차 뒷문을 열고 안으로 가방을 집어넣곤 몸을 쏘옥 집어넣었다.

"어떻게.. 볼일은 잘 해결됐니?"

"정한경..진짜..... 한경이오빠, 유치한거 이제 그만해- 알았죠?"

"아.. 알았어, 풉.. 출발한다."

차가 부웅소리를 내며 출발하는데, 왠지 찝찝하다. 노란대가리와 같은 공간안에 있는것부터가 찝찝하지만 더 찝찝한건, 저 인간이 운전을 하고있다는거..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데...,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운전은 아주 부드럽고 안전하게 진행됐고 집에도 사고없이 무사히 잘 도착했다. 그래도 뭔가 찝찝하다. 왠지 더 이상한게 있을것만 같은느낌. 노란대가리는 주차를 하고 들어온다고 하고 한별이와 나만 먼저 들어왔다. 한별이는 총총총 뛰어 먼저 2층으로 올랐고, 짐가방을 챙겨들고 오랫만에 보는 아주머니께도 인사드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주머니가 2층으로 오르는 나를 붙잡으신다.

"저기 윤한아-, 한별이한테 한경이얘기는 들었지?"

"네? 네에..."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은 한경이랑 같은방 써도 괜찮지?"

"네?"

"원래 그방은 한경이가 썼던 방이구... 그 옆에 방을 쓰자니 너무 좁고 치우지도 않았구.. 이왕이면 넓은 방에서 같이 쓰는게 좋지 않냐는거지.."

"네..."

"윤한이가 착하니까 이해해줄거라고 믿어 2주동안만 있다갈거니까 좀만 참아줘- 쏘리-"

"네... 네?"

2주..? 하루도 아니, 한시간도 아니고 십분만 같이 있어도 짜증나는 인간인데 같이 2주를 쓰라고? 아주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신지 이미 오래고 허- 하는 어이없는 한숨이 흘러나오는데, 주차를 마쳤는지 노란대가리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형광등에 반사되서 반짝빛나는 노란대가리는 볼수록 더 짜증이 난단말이야.

"아직도 안들어가고 뭐해?"

한마디를 툭 던지고 올라가는데 기분이 나빠서 힘껏 가방을 던졌...... 으면 내가 여기서 못살겠지? 아.. 미치겠네. 아오!! 빡돌아!!


*


"한경이오빠, 잠깐만 와봐"

방으로 들어와서 짐가방을 노란대가리 인양 발로 툭툭 쳐서 침대 구석에 박아놓았다. 침대 구석에 박혀서 찌그러져있는 가방이 정말로 노란대가리로 상상되서 쿡 하고 웃었더니 노란대가리가 날 이상한애보듯이 쳐다본다. 노란대가리가 쳐다봐서 나도 노려봐 주려는 찰라, 한별이가 방으로 들어와서 노란대가리를 부른다. 노란대가리가 한별이 부름에 따라 나가는걸보니 왠지 정한별을 노란대가리한테 뺏긴것만 같은 느낌이들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뭐 한별이가 노란대가리한테는 무표정으로 말했지만, 그다음 나한테 방실 웃으면서 김윤한- 너 엄마가 빨래 있으면 빨리 밖에 내놓으래, 지금 세탁기 돌리려고 하니까 빨리 갖다놔 하고 하는걸로 짜증은 끝났지만- 짐가방을 얼른 풀러놓고 가방은 장롱에 대충꾸겨박고선, 옷가지들만 골라서 들곤 방문을 열고 나왔다. 병원에 있는동안은 병원복입고 한지라, 저번에 갈때 입었던 옷이랑 속옷몇개, 수건몇개밖에는 빨게 없다. 가벼운 옷가지만 들고 나가려니까 뭔가 허전해서 나가기전에 뭐 가져갈게 없나 확인해보는데 역시 없다. 꾸깃꾸깃 구겨서 들고 밖으로 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려고 계단을 향해가는데 바로 옆방인 한별이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가려고하다가 둘이 하는 얘기가 뭔가 해서 방문에 귀를 갖다대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후아-, 그럼 내가 일본가서 알아볼게"

"정말...?"

"시..."

"윤한아! 빨래 빨리가지고 와라! 세탁기 돌린다."

"네에-"

노란대가리가 시..? 어쩌구 하는데 아줌마가 부르는 소리때문에 못들었다. 세탁기를 돌린다기에 계단을 뛰어내리다가 마지막 칸에서 엉덩방아를 찧을뻔했지만, 나의 순발력으로 위기모면.... 하는듯 싶었는데 우어어- 하는 괴물같은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들고있던 빨랫감들때문에 심하게 부딪히지는 않았는데, 팔꿈치를 찧어버렸다. 으- 이건 부딪혀본사람만 안다는 그 찌릿하면서도 디게 아픈.. 그느낌- . 너무 아파서 팔꿈치를 문지르다가 어느정도 괜찮아졌기에 빨랫감을 들고 세탁기에 골인-.

"세이브!!"

세탁기뚜껑을 탁소리나게 닫고 주먹을 꽉 올려 잡으며 세이브를 외치자, 언제 나왔는지 계단을 내려오던 노란대가리가 또 날 이상한애 보듯이 쳐다본다. 어우.. 나 노란대가리한테 완전 ㅁㅣ친놈으로 찍히는거 아닌가싶다. 뭐 그쪽도 만만치않게 이상하신 분이지만, 이상하신분이 보기에도 이상할정도면... 또라이아냐... 노란대가리는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냉동실을 열어 얼음 몇조각을 컵에 집어넣더니 그걸 마신다....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얼음물을 마시는것도 아니고 얼음을 마시고있다. 뭐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시는게 아니라 갈고있는거랄까? 네- 여러분은 지금 최신상품인 노란대가리 사람 모양 믹서기를 보고계십니다. 입으로 음식물을 넣어주시면 그 어떤 딱딱한 음식이라도 곱게- 갈아드립니다. 자 매진이 얼마남지 않았구요. 080... 이것도 아니고!! 이제 이상하다못해 약간은 정신이 어떻게 된것같은 노란대가리를 보면서 두려운 느낌까지 들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려고 계단을 오르려는데, 얼음을 갈아마시고 있던 노란대가리가 웅얼웅얼대면서 뭐라뭐라한다.

"야,너-"

"....네, 저요?"

"으으- 그럼 너말고 또 누가있냐"

아깐 그렇게 잘 갈아마시더니 이제서야 차가워지기 시작한듯한 모습을 보이고있는 노란대가리는 정말 두렵다. 대체 뭔 얘기를 꺼낼려고 이러는지-, 그러고 보니까 말거는 투가 약간 돈뺏으려는 듯한 느낌같은것도 든다. 내가 환자라는 걸 잊으셨나요...

"왜요?"

"너 한별이 좋아하지?"

"네?"

"한별이 좋아하냐고-"

"네,네..? 아, 아닌데요-"

"킥, 아님말고-"

"저기요!"

"2주동안 상담 언제든지 해줄테니까, 할맘있으면 와라-"

"무슨, 오해가 있는것 같은데!"

벌써, 계단위를 빠르게 올라 방안으로 쏘옥 들어가버리는 저,,저!! 아오 진짜 얄밉네 진짜. 또 내가 정한별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는지 ,  알수없는 인간이야... 어우... 진짜 또 진 것같은 느낌이 드는건 뭐지... 쿵쾅쿵쾅대며 2층으로 뛰어올라가서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벌컥 여는데, 방바닥엔 보라색 이불이 깔려진위로 베게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침대위에서는 이불을 한참위까지 덮어있는 그위로 노란색깔 머리카락이 빛난다. 아.......졌다.....진거구나..


*


몇마디밖에 안되는 짧은 전화통화였지만...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나만 정한별 목소리 들은거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슬펐다.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얼굴도 찰싹찰싹 때려보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문질러 닦고 책상 서랍을 열어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찾아도 없어서 서랍을 꺼내서 뒤집어 엎자, 딱딱한 소리가 바닥을 퍼졌고, 찾았다. 반지.. 반지에 사선으로 은선이 그어있는 단조로운 무늬.... 사이에 반짝이며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없지만 함께여서 행복했던 우리 100일째만남을 기념한 반지... 장미 꽃한다발과 같이 선물한 이 반지를 나는 정한별 손에 끼워주었고, 정한별도 내 못난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줬다. 손가락에 다시 반지를 끼워보고는 괜시리 마음이 다시 콩닥콩닥 설렌다. 옷장을 열어서 후드티 하나와 청바지하나를 골라꺼내 옷을 갈아입고선 물건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담아 서랍을 다시 집어넣고선 서랍 위에 놓아두었던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도어키를 눌러 주차장에 주차해 두었던 새까만 자동차의 문을 열고선 부드럽게 탑승한다.

"후아- 가자!"

자동차안에서 나혼자만의 기합소리를 내뱉고 서둘러 시동을 걸어 주차장안을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막상 자동차에 타긴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그냥 일단 가는 대로 가본다. 항상 네비게이션이 떽떽 잔소리를 해댔었는데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고 운전하니 왠지 틀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이 구간의 제한속도는 몇km다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 지겨웠었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반갑다.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도시에서 벗어나 드디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을 찾아내곤 달리던 차를 멈춰 내린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발자국씩 걸어나간다.

"한별아!!!!!!!!!!!"

소리를 질러보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는이없는 이곳에서...

"야!! 정한별!!!!!! 듣고있냐!!!!!"

한참을 달리면서 그쳐졌던 뜨거운 눈물이 다시 봇물터지듯 펑펑 쏟아졌다. 아 진짜.. 쪽팔리게, 아무리 아무도 없다지만 사내새끼가 이렇게 울고있다는거, 너무 쪽팔리잖아 박준희... 하긴.... 니생각만 하면 자꾸 이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는건 나도 조절 못하겠는데 어쩌겠냐...

"정한별!!!!!!!!!!!!!!!!!!!!! 들리냐고!!!!!"

너에게 들릴리가 없는데... 자꾸만 너한테 들릴것만 같아서 빽빽 소리를 질러낸다. 내 목소리가 이 곳을 멀리 멀리 퍼져 나가서 너에게 들렸으면 정말 좋겠는데..

"나!!!! 너 정말 많이 좋아하나봐!!!!!"

니생각만 하면 이렇게 심장이 터질것만 같은걸 보면 말이야

"아니... 많이 사랑하나봐!!!!! 난 너없이는 안되는가보다 한별아!!!"

난 너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나봐.... 내겐 너없는 시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는 꼭 너한테 갈거니까!!! 나 꼭 기다려주라 한별아!!!!!!!"

한별아.... 날 버리지 마... 날 잊지 말아줘... 너의 기억속에서 나를 지워버리지 말아줘.... 그럼 내가 너무... 너무 많이 아프단말이야....

"정한별!!!!!!!!!! 사랑해!!!!!!!!!! 그래서 미칠것같다!!!!!!!!!!!!!!!"

나 이제 너밖엔 안보이는데... 니가 날 버리면 어쩌지?? 자꾸만 바보같은 생각이 드는것도... 어쩌지??

"정한별!!!!!!!!!!!!!!! 들리는거지!!!!!!!!!"

들리지...? 내 심장소리가.... 보이지.....? 내 슬픈 두 눈이... 느껴지지....? 널사랑하는 내마음이...

"이럴줄 알았으면!!! 사랑한단말 많이 해줄걸 그랬나보다 한별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수천번 수만번으로도 표현되지 못하는 내사랑...

"사랑해!!!!!!!!!!!!!!!!!!"

그걸로 표현되지 못하는 내사랑을...... 더 많이 표현해줬어야 하는 내사랑을... 더 많이 보여줄걸 그랬나봐....... 나 기도같은건 안 했었는데.... 널 알게 되고서 신이라는 걸 믿게됐어... 우리 이쁘고 착한 한별이를 만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신은 내게 많은걸 주신거니까....


*


"한별아, 빨 거 있으면 줘, 세탁기 돌리게, 아 그리고 윤한이- 병원갔다왔으니까 빨거 다 가져오라고 그래"

엄마가 방으로 들어와서 빨랫 거리들을 들고 나가신다. 방문이 닫아지니 핑크색으로 꾸며진 방문이 눈에 띈다. 핑크색을 좋아해서 온통 핑크로만 가득 채워진방, 예전엔 이 핑크빛 방에 핑크색의 큰 하트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는데, 아직도 이방엔 너와의 추억이 담긴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보여주지 못한... 너에게 보여줄 사랑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너는 내곁에 남아있질 않다. 그래서 자꾸만 겁이나.... 여기 남아있는 너와의 추억들마저 모두 다 니가 가져가서 사라져버릴까봐.... 또 눈물이 날려고 하는데 입술을 꽉 깨물고 최대한 웃어보려고 애쓴다. 후아- 한숨을 내쉬고, 핑크색 방을 빠져나간다. 몇걸음 걷지않아 김윤한과 한경이오빠가 있는 방앞에 다다랐고 문손잡이를 돌려 열자 네개의 눈동자가 날향해 방향을 돌린다.

"한경이오빠, 잠깐만 와봐"

무슨일이냐는듯 표정을 짓는 오빠에게 손짓을 하자, 이제 뭔지 알았는지 천천히 나온다.

"이번엔 무슨 고민?"

한경이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내 고민을 들어주곤 했다. 누구보다 가깝고 또 장난을 많이 치고 괴롭히곤 했지만 배려심도 많고 이해심도많고 말도 잘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기도한다. 그래서 1년에 한번씩 오빠가 우리집에 오면 고민을 털어놓는게 습관이 되버렸다. 오빠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안하자 오빠가 먼저 나서서 말한다.

"맞춰볼까?... 음 이번 고민은... 박준희?"

"우와... 오빠, 어떻게 알았어... 오빠 진짜 신내림 받았냐?.. 쿡..."

"너 그거 박준희 한테 받은 반지잖아. 그렇게 손으로 주물럭 대고 있는데 어떻게 모르냐?"

"어.. 봤어?"

끼지는 않지만 항상 가지고는 있는 이반지를 괜시리 박준희 생각이 나서 또 꺼내놓고 주물럭 대고 있었는데, 그게 한경이오빠 눈에 띄었나보다. 박준희랑 내가 만난지 백일째 되던날, 박준희가 꼭맞는 반지를 내손에 끼워줬던 기억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평소엔 기억력이 그렇게 나쁘던 내 머리가... 박준희에 관한거면 왜이렇게 기억력이 좋아지는지... 정말... 정말로 모르겠다.

"박준희 일본으로 나갔다며?"

"오빠도 들었어?"

"작은엄마가 말해줬는데-?"

엄마는... 또 괜히 별얘기를 다해, 진짜...

"갈때 뭐라고 그러든?"

"잊으라고..."

"그게 끝?"

"김윤한이 나 좋아한다고 걔한테 가라고..."

"김윤한...? 우리집에 있는 김윤한??"

"응..."

"그렇게 안봤는데, 웃긴놈이구만, 어디서 내동생을 넘봐, 이걸..."

이얘기는 하지말걸그랬나... 오빠가 또 나서는거 아냐? 흠..... 꼬일 것같다.

"아, 미안- 또 뭐라고 했어?"

"글쎄... 또 만날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보자고-, 아맞다. 음성 남긴거 아직 저장 되어있는데-"

핸드폰 *89에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메세지를 누른다.

"여기-"

한경이오빠가 진지한 모드로 음성메세지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곤 갑자기 눈빛이 확뜨이더만은-, 뭔가 발견했다는 듯이 말한다.

"分かったよ。"

"응?"

"걱정하지 마라 동생아- 박준희도 너 아직 못잊었을 걸?"

"....응?"

"남자의 직감이랄까? 그리고 나중에 만나자는건 미래가 보장된 얘기잖아, 오케이?"

그런가... 근데 여자의 직감은 들어봤어도 남자의 직감은 뭐지...

"그래 오케이... 아리가또다 아리가또-"

"잠깐-잠깐, 너는 정확히 박준희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박준희를 잊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는걸보면 아직 많이 사랑하는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겠지...

"후아-, 그럼 내가 일본가서 알아볼게"

"정말...?"

"신주쿠에 산다고 했지? 나도 같은 도쿄에서 사니까 뭐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냐?"

"그럴까?"

"걱정마라 동생아- 이 오빠가 다 알아서 해주마."

그리곤 히죽 웃는 오빠가 너무 고맙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항상 도와주려고 하고, 고마워-

"나 간다- 빠이~"

"오빠."

"응?"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편지지 위를 오간다. 편지는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거라서 이렇게 쓰고있다는게 어색하기는 하지만,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고있다. 한별이라는 그 이름이 벌써 몇번째나 적어졌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오랫만에 마음껏 불러보는 이름인지라 자꾸만 자꾸만 적어 넣게 된다. 한별로 시작해서 한별로 끝나는 이 편지는 온통 거짓말 투성이다. 거짓말.. 거짓말... 손으로는 열심히 거짓말을 써내려가고있지만,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못한다.


한별이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편지.

어.. 안녕이라고 써야하나? 잘 지내지? 한별이 넌 잘지내고 있겠지? 벌써 일본 온지가 꽤 됐다. 그치.. 한별아?

처음에 일본 왔을 때는 적응 안되고 그랬는데, 지금은 한국보다 더 편해진 것같아.

음.. 내가 이편지를 쓰는이유는, 한별이 너에게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어서야.

내가 한별이 너없이 어떻게 살까 했는데... 그게 시간이 다 알아서 해주는 일이더라.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한별이 너를 잊고있고... 한별이 너를 다 지워낼수 있을 것만 같거든...

내가 다시 한국을 언제 갈지는 아무도 몰라, 물론 나도 모르고....

내가 하려던말은, 다시 한국으로 가게 된다 하더라도 한별이 너를 만날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하려고 했어.

그니까 그냥 나같은거는 툴툴 털어버리라고.... 그말 하려고 이 편지쓰는거야...

마지막으로... 한별이 넌 정말 좋은 추억이었어... 내 곁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정말로...

고맙다 정한별.....

 

입술을 꽉깨물고선 새하얀편지지를 국제우편봉투에 집어넣고 입구를 풀로 칠해 봉했다. 받는 사람편쪽에 똑똑히 기억하고있는 정한별네 집주소를 적어 넣고 보내는 사람편은 새햐얗게 비워두었다. 하얗게 비워둔 자리를 결국은 까맣게 글씨로 채워넣는다. 너에게 미련 생기게 만들면 안되지만은, 너에게 답장이 오기를 바라는 이 못된 심장이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기적이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을 니가 제발 지워 줬으면 한다. 너의 머리에서 나의 기억만 새하얗게 지워져버렸으면...

나의 못된 이기심이 담긴 편지는 그렇게 우체통으로 들어가버린다. 우체부가 나의 못된 이기심은 다 빼버린 편지를 정한별에게 전해줬으면 하고 또 못되게 바란다.


*


"꼬맹아 편지왔다~ 어.. 이름이 안써있네? 東京, 新宿?"

"편지?"

"어어- 일본에서 왔댄다. 신주쿠면.... 편지 올 사람이 그 자식밖에 없지?"

"응?"

"빨리 뜯어봐"

일본에서 나한테 편지라.... 그것도 신주쿠? 멀리 일본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편지봉투를 받는 사람인 나대신에 벌써 한경오빠가 열심히 뜯고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찢어버린듯한 모양이지만.

"야 이거 내가 먼저 읽어도 되냐?"

열심히 다 뜯어버리고서는 아무래도 내편진데 자기가 먼저 읽기 뭐했는지 나한테 먼저 건낸다. 새하얀 색깔에 아무 장식도 그림도 없이 까만 글자 몇줄만 길게 늘여져있는 편지에는 뭔가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것만 같았다. 첫번째 줄부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해서는 중간 쯤에 와서는 눈물이 앞을가려 읽을수 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꼬맹이 왜울어? 뭐야? 응?"

"흐으.....으앙.."

다시는 안볼거라는... 날 다 지워낼 거라는 그말... 날 상처주는 말들이 이편지에는 너무나 많이 써있는데도 한별이 한별이하고 써있는 부분마다 니가 내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가 자꾸만 기억이 나서 그게 더 아프다. 거짓말일거야, 다 거짓말- 거짓말일거라고 믿으면서도 눈물을 그칠줄 모르고 얼굴위를 가득 흐르고 있다.

"이리줘봐."

한경이오빠가 내 손에 꼬옥 쥐어져있던 새하얀 편지를 가져가 눈동자를 굴리며 빠르게 읽어나간다. 니가 자꾸만 생각이나고 자꾸만 맘이 슬퍼져서 점점 몸에 힘이 빠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무렇지 않게 편지를 읽어나갈수있는 한경이오빠가 정말로 정말로 부러워진다. 난 언제쯤 너에 관한 생각을 지워낼수있을까..

"야 그러고보니까 여기 주소 .. 여기로 찾아가면 되는거아냐?"

"우으응?"

"바보- 쿡.. 내가 여기로 가면 되는거아냐?"

눈을 크게 뜨고 비비면서 장화신은 고양이마냥 한경이오빠를 쳐다봤더니 한경이오빠가 내 머리를 헤집어놓는다.

"이 봉투는 나줘. 일본 가면 제일 먼저 여기부터 갈게"

"한그이오빠아아아아"

"징그러!"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이?"

"아니-"

"야 정한별!"

"응?"

내가 이래서 한경이오빠를 미워할수가 없는거야. 히히- 하면서 한경이오빠를 껴안고있는데, 위층에서 김윤한이 쾅쾅거리면서 내려온다.

"떨어져-"

"응?"

"그렇게 안고 있지 말라고"


*


금요일아침.., 7시 조금 안돼서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가 하얀비누로 하얀거품을 가득 낸뒤,  얼굴전체에 골고루 비비고서는 손가락사이사이도 비누를 골고루 발라준뒤, 콸콸 쏟아져나오는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에 얼굴을 씻어냈다. 매끈한 피부위로 자리잡은 상쾌한 비누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수건으로 깔끔히 마무리를 하고선 방에 들어와서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이제 방학까지는 한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네- 히죽 거리며 기분좋은 생각도 잔뜩 떠올리고는 한껏 올라간 기분을 데리고 방을 나온다. 방금 전까지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는데 방밖으로 나와 계단을 밟자마자 보이는 정한별과 노란대가리가 꼬옥 안고있는 모습에 기분이 땅바닥으로 내려 앉아버렸다.

"떨어져-"

"응?"

"그렇게 안고 있지말라고"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쾅쾅 밟고 내려가면서 속에 자리잡고있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니 결국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가방을 다시 고쳐매고는 현관문을 향해 걸어나간다. 금방 방에서 나오셔서 끓이고있던 국과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하나씩 꺼내시던 아주머니가 밥 안먹고 가냐고 물어보지만, 먹고싶은 기분도 싹가셨다.

"아뇨, 배 안고파요- 먼저 학교갈게요"

"야 김윤한?"

내이름을 부르는 정한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짜증난다. 뭐, 따지고 보면 정한별이 짜증나는게 아니라 정한별 옆에 꼬옥 붙어있는 저 노랑대가리가 짜증나는 거겠지- 신발을 꾸겨신고선 현관문을 신경질적으로닫고 밖으로 나온나는 괜히 잘못없는 땅한테 화풀이다.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누가보기에도 '나 삐쳤어요'를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는 꼴이다.

"김윤한!!!!"

뾰루퉁한 표정으로 쿵쾅대며 걸어가다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는데, 뒤에서 헥헥거리며 쫓아 뛰어오는 정한별이 보인다. 이제 곧 겨울인데 헥헥거리면서 땀이 삐질 나온 정한별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게 보인다. 또 거기에 삐친게 다 풀어져버린 나는 정한별을 쳐다보다가 침을 꿀꺽 삼킨다.

"하아- 야 너 밥도 안먹고가?"

"..너는? 먹고 나왔냐?"

"아니, 너먼저 씩씩대면서 나가버리는데 먹을새가 어딨냐 진짜!! 같이 먹어야 될거아냐"

"배안고파? 먹고나오지.."

"지는- 빨리 가기나 해"

먼저 걸어나가는 정한별의 뒤를 빠른걸음으로 쫄래쫄래 쫓는다. 정한별의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밟아보기도 하고 정한별이 발자국을 뗀 그자리를 바로 밟아 보기도 하다가, 얼굴위로 차가운 뭔가가 툭 떨어졌다.

"어 눈온다-"

먹구름낀 하늘에서 새햐안 눈송이들이 내려와 소복소복 땅위에 쌓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정한별에 내 기분까지 좋아져버린다. 눈이 그렇게 좋냐는 질문에 으응- 하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정한별은 마냥 어린 꼬맹이같다. 한편으론 노란대가리가 왜 정한별을 꼬맹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빨개진 정한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번지고 어느새 눈이 새하얗게 쌓여 온동네를 지워버린다. 그렇게- 우리 마음도 하얀 눈으로 뒤덮혀 다 지우고 하얗게 처음부터 시작했으면 좋으련만-


*


냉장고를 열었더니, 텅- 비어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잔뜩 쌓여있고, 식탁위에는 드러운게 덕지덕지 붙어있다. 혼자살다보니까 자꾸만 안 치우게 되고 지저분하게 있게만 된다. 한국인이다보니 학교친구들과도 별로친해지지 못했고, 학교가는 것 외에는 바깥에도 잘 나가지를 않았다. 그랬더니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같기도 하고, 무튼 냉장고도 채울겸해서 밖에좀 나가봐야겠다.

편의점 문을 열자 딸랑- 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문을 잡고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기분을 조금 업시켜보려고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했다가는 ㅁㅣ친놈 취급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관두기로 했다.

"어? 한국분이세요?"

"네? 어... 네- 헤헤, 한국분이신가봐요?"

"처음보는데, 이동네 사세요?"

"네에.."

다 내 입맛에는 안맞는 것들이라 뭘 먹어야되나 열심히 음식들을 쳐다보고있었는데, 편의점 알바생이 나한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사람인데, 머리를 깔끔하게 깎고 안경을 쓴 딱보기에도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이라는걸 알수있는 그런남자였다. 음식 목록에서 그나마 별로 느끼하지 않은 통조림 몇개랑 맛은없지만 그래도 김치 없으면 밥 못먹으니까 포장용 김치 하나 고르고 카운터에 올려놓고선 지갑을 꺼냈다.

"일본엔 어떻게 오셨어요?"

"아, 그냥... 공부하러.."

"혼자 오셨어요?"

"네.."

"저돈데... 공부할려고 막상 오긴 왔는데, 가족들도 보고싶고 여자친구도 보고싶고 막 그래요."

빳빳히 꽂혀있는 지폐몇장을 꺼내서 그 남자에게 내밀었다. 여자친구가 보고싶다는 그 한마디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나도... 나도 그래요- 하고 나도모르게 슬픈눈으로 그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사람은 여자친구랑 전화도 하고 편지도 주고받고 하겠지?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맘이 아픈사람이 있을수있을까?

다시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봉지를 들고 무거운 맘도 들고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기분좋은 소리로도 정리되지 않는 맘과 무거운 한숨과 함께-


*


"김윤한- 나 아이스크림 사주라-"

"추운데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호빵먹을래? 아니면 호떡? 것도 아니면 붕어빵?"

"나 진짜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에- 저기서 그냥 500원짜리 사오면 안돼?"

"감기걸릴텐데?"

"괜찮아 괜찮아 이래뵈도 내가 무쇠로 만든 사람이잖냐, 인조인간 로보트- 몰라?"

"그냥 따뜻한거 먹자-"

"아이스크림- 아아- 아이스크림 아, 먹고싶다아-"

"아,알았어- 사올테니까 대신 집에 들어가서 먹어, 응?"

"응, 김윤한 최고!! 역시 내친구!! 빨랑사와요~"

눈와서 축축한데다가 차가운 바람까지 쌩쌩 불어대는데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싶은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하긴 했는데, 갑자기 정말정말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아직어려서 그런가..? 아직 어리다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데-흐음.... 내가 사달라고 한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뛰어간 김윤한을 뒤로하고 몇걸음을 걸어본다.

"저기.. 혹시 정한별씨.... 아니세요?"

"네?"

차가운 바람이 쌩쌩부는가운데 편의점과 얼마 멀지 않은 공원에 벤치하나 덩그러니, 그리고 그 위에 사람하나 덩그러니... 멍하게 김윤한이 간 방향만 쳐다보고있는데, 누가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건네왔다.

"정한별씨 맞죠?"

"맞는데요...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임은민이라고해요."

"네?... 네.. 안녕하세요."

"아.. 저는요.. 음... 그니까 박준희..."

"준희 아세요?"

"네?.. 아 일본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인ㄷ..."

"정말요? 준희랑 연락하세요?"

"네..? 자주는 아니고.."

".......... 흐으...읍..."

"어.. 우세요?"

"아.... 아녜요.."

이사람... 준희랑 연락하고 있대. 나랑도 안 하는 연락을 이사람은 잘 하고 있대. 보고 싶은데.... 이사람은 많이 볼 수 있었겠네....

"저기..... 혹시 제가..."

"한별아 아이스크.... 어, 너 또 왜울어?"

"윤한아.. 으앙-"

소리를 내지못하고 흐느끼던 울음이 김윤한이 오자 막혔던게 뚫리 듯 크게 터져버렸다. 지금 내옆에는 니가 있어줘야 되는 거 아냐....? 박준희.. 너 진짜 나쁜거 알아?


*


터벅터벅걸어 집에 까지 도착해서 냉장고에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선 다시 터벅터벅 TV앞까지 걸어가서 쇼파에 털썩 눕다시피 앉아서는 리모콘을 꼬옥 눌러서 TV를 켰다. TV에서는 딱딱한말들로 세상돌아가는얘기들을 해주고, 오늘의 소식들도 말해주고 해주는데, 정한별주변이 어떻게 돌아가고있는지도, 정한별은 오늘 어떤일들이 있었는지도 아무것도 말해주지않는다. 그저 자기가 뱉어내고 싶은 말들만 열심히 뱉어내고 있을 뿐...

조용히 테이블위에있는 핸드폰을 집어 슬라이드를 올린후 번호를 꾹꾹 눌렀다. 잠시후 따르르릉- 하는 통화연결음이 몇번 들리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もしもし?"  *여보세요?

"郁... 俺、潤だけど" *카오루... 나 준인데...

"潤? どうゆう事なの?" *준? 무슨일이야?

"ちょっとでて来てくれる? バスケットボール一緒にしようって言おうと思って電話したのよ。" * 잠깐 나와 줄 수 있어? 농구같이 하자고하려고 전화 한거야.

"あぁ。わかったよ。まっててね。すぐ行くから" 응. 알았어.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테니까.

전화를 끊고서 바로 초록색 반팔티위에 하얀색 얇은 후드점퍼하나를 입고 농구공하나를 들곤 밖으로 나왔다. 11월의 마지막에 12월의 바람이 찾아와 몸을 때리듯이 달려들어 반팔하나 얇은점퍼하나를 입었으니 추울만도 하겠건만 그닥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농구공을 틱틱 튕겨가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루이스네집에 점점 가까워졌다. 루이스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루이스가 먼저 나와서 날 반겨주었다.

"わり!少し遅っちゃった。"

"大丈夫だ。始めるか?."

루이스랑 농구를 하면서, 잠시 모든 생각은 다잊고, 겨울이 무색하게 땀을 뻘뻘흘리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어지러운 기억속에서도 잠시 잊어버릴수조차 없는 너의 기억이 점점 내안으로 파고들어오는게 그게 너무 아프다.

"카오루... 나 한국이 너무 가고 싶다.. 한국이 너무 그립다. 아니.. 정한별이 너무 보고싶다..."

"何と言ったの??"  *뭐라고 했어?

"......."

"潤?どうしたの?"  *준? 무슨일이야?

"........何もない。ごめん"  *아무것도 아냐.. 미안..


*


거의 정한별이 나를 밀다시피 편의점으로 집어넣고 자기는 공원으로 총총총 뛰어가 벤치에 털썩 앉아버린다.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저 안 구석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박스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박스문을 밀어서 열고선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데, 추워- 라는 말이 나올뻔했다. 밖에서도 추웠는데, 또 들어와서 차가운걸 만지려니 손이 얼것만 같았다.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나가서 정한별한테 손녹여달라는 말을 하곤 손을 꼬옥 잡을 생각을 하니깐 기분이 업되서는 정한별이 좋아하는 과일맛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다 꺼내놓고는 카운터로 향했다. 주머니를 팡팡 두드리니깐 지갑이 느껴지질않아서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지폐몇장이랑 동전몇개만 나뒹굴고 있고 지갑은 안가져왔나보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죄다 꺼내보니까 퍼런지폐 세장하고 오백원짜리하나 오십원과 십원이 사이좋게 세개씩 그리고 주머니 구석에 꾸깃꾸깃 박혀있던 천원짜리 한장까지, 모두 삼만천육백팔십원이있다. 만원짜리 한장빼고는 모두 다시 주머니에 처박아놓고는 카운터로 만원짜리 한장을 내밀었다. 6500원입니다 라는 말과함께 띵- 하고 카운터에서 돈이 들어있는곳이 열렸다가 만원짜리를 먹고, 3500원을 뱉어내고는 다시 들어갔다.

"거스름돈 3500원입니다."

남은돈 3500원까지 다시 주머니에 처박고, 들어왔던 문쪽으로 가자 자동문이 조용히 열리고, 벤치에 앉아있는 정한별이 보인다. 그리고 그옆에 갈색머리에 짧은치마를 입고있는 여자가 정한별과 얘기를 하고있다.

"한별아 아이스크.... 어, 너 또 왜울어?"

누군데 둘이 저렇게 얘기하고 있는건가- 하고 조용히 다가가는데 갑자기 정한별의 눈에서 한방울 눈물이 또로록 흘러내리더니 두방울 세방울..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윤한아.. 으앙-"

내가 다가가자 아까보다 더 크게 울어버리는 정한별... 손에 들고 있는 봉지에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들어있고, 지금 내눈에는 차가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한별이 비친다. 대체 뭐 때문에 또 우는건지.... 정한별 앞에 서있는 그여자에게 한 번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정한별에게 시선을 맞췄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게 없어 휴지도 없고 닦을것도 없다. 급한 마음에 옷 소매를 끌어 당겨 정한별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점점 내 소매를 적셔가고, 아까부터 앞에 서있던 그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도 모르는 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한별은 너무 아파보인다.

"한별아... 왜울어... 응?"

"흐으읍.... 안울어-"

"안울긴... 집에 갈까?"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기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는 먼저 걸어가는 정한별을 앞 에두고 뒤에서 왼손엔 아이스크림 봉지를 들고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걸음을 빨리해서 정한별옆에 따라 붙어서는 눈물로 차갑게 얼어붙은 정한별의 손을 덥썩 잡았다. 내 손도 아직 녹질 않아서 그렇게 따뜻하지 않은데, 정한별 손은 내 손보다 훨씬더 차가웠다. 평소에는 손을 놓아버리던 정한별이 오늘은 웬일인지 내손을 더 꼭 붙잡는다. 차가운 둘이 맞붙어 더 차가워 져야할 손은 점점 더 따뜻해져갔다.

"김윤한...."

"응?"

"....윤한아..."

"......왜..?"

"니가 나한테 사귀자고 했잖아"

"......."

"그거 지금 대답해도 돼?"

".........응?"

"지금 대답해도 되냐니까..."

"어? 어.."

"그거 받아들일게.."

심장이 터져버릴것만 같다는 느낌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정말로...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것같이 쿵쾅쿵쾅뛰어대는게 정한별한테 들릴것만같았다. 지금 시간이 멈춘다면 정말 좋겠다.


*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 버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사이에 지나버렸으니까....

"여보세요, 임은민?"

핸드폰에서 임은민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내가 임은민한테 먼저 전화한 적이 있었나? 없는 것같은데... 있었다해도 기억조차 나지않는다. 임은민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넘어가려는 사이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받아서 깜짝 놀랐다.

"어? 박준희가 웬일로 나한테 먼저 전화를 걸구..?"

"아니... 그냥 뭐- 잘지내나 궁금해서"

"니가 나 잘지내는걸 궁금해할 애가 아닌데- 안그래?"

하긴.. 내가 생각하기에도 잘지내나 궁금해서란 말은 가식이다. 그냥 심심해서 한번 눌러본 것일뿐인데, 이렇게나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도모르게 잘지내나 궁금해서 라는 말이 나왔다.

"나 몇일 전에 한국 갔다 왔다. 진짜 오랜만에 갔더니 많이 바뀌었더라."

"아, 그래..?"

"아 맞다. 나 니네집 들렸다가 근처에서 니 여자친구 봤다?"

"........어?"

"사진이랑 똑같아서 단번에 알아봤어. 이쁘긴 이쁘더라."

".........어.."

"니 여자친구, 내가 니 이름 얘기하니깐 바로 울어버리더라..."

".........."

"너무 많이 울어가지고 놀라서, 인사도 못하고 그냥 와버렸어-"

"..........그래?"

"근데, 니 여자친구랑 어떤 남자랑 같이 있던데..."

"어?"

"우음..... 약간 갈색톤 머리에다가 눈썹짙고, 눈도 크고 잘생겼던데"

"........"

"누군지 알아?"

"글쎄..."

"너 일본 와있는 동안에, 니 여자친구 한 눈 파는 거아냐?"

"뭐?"

"아.. 아냐.. 미안.. 나 먼저 끊을게"

통화가 끊겼다는 깔끔한 소리가 한번들리고는 사라졌다. 너 일본 와있는 동안에, 니 여자친구 한 눈 파는 거아냐? 라는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리속을 뱅뱅 돌고돌고 또 돌고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엔 김윤한이라는 세글자가 남았다.


*


"한별아 빨리 나와- 아침먹고 가자"

토스트기에 버터바른 식빵 두개를 넣어놓고, 냉장고에서 우유와 딸기 잼을 꺼내 식탁에 깔끔하게 정리해 올려놓는다. 한별이가 입에 머리끈을 물고 머리를 묶으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엄마는?"

"아, 주무시고 계셔. 깨우지마"

"어? 빵이네- 내것도 딸기잼 발라줘-"

"응- 아 맞다 컵 안꺼냈다. 컵좀 꺼내줘"

한별이 빵에 먼저 딸기잼을 적당히 바르고, 한별이가 가져온 컵에다가 지금 밖에 내리고 있는 눈만큼 하얀 우유를 따른다.

"내꺼는 반만- 어 됐어,됐어."

"더 마시지? 너무 조금아냐?"

"무슨 아침부터 포식하고 나가는것도 아니고 적당히먹어, 응?"

"좀만 더 마셔-"

"너 많이 마셔"

결국 그 센 고집을 못꺾고, 내 컵에 남은우유를 모조리 부어버린다. 컵안에 가득 찬 우유를 한모금 마시고, 딸기잼을 바르려는데, 딸기잼이 슥슥 발라지고있는 빵이 한별이 손에 들려있다.

"자, 먹자아- 잘먹겠습니다.

맞부딪혀 짝- 소리를 낸 한별이의 손이 우유를 따라둔 컵으로 향한다. 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 난 한별이의 입가가 하얗게 물들었다. 손등으로 입가를 쓱 문지르곤 딸기잼바른 빵을 들어올려 입을 벌리고는 한입 크게 베어문다. 빵을 씹으면서 웅얼웅얼 마시따-라고 하면서 헤죽웃는데, 이번에는 입가에 딸기잼이 묻었다.

"칠칠맞게 다 묻히긴-"

쿡쿡 웃으면서 입가를 가리키자 어디? 하면서 엉뚱한 곳을 문지른다. 아니 거기 말고 왼쪽- 하니까 또 이번에는 여기?하면서 한참 밑을 문지른다.

"아니 거기말고 여기라니깐"

갈피를 못잡고 엉뚱한 곳을 짚고있는 정한별의 손을 치워내고는 빨간딸기잼이 묻어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닦아낸다. 헤헤- 거리면서 웃다가 또 켁켁 하고 목에 걸려버렸나보다. 아직 다마시려면 한참이나 남은 우유를 한별이에게 내밀자 벌컥벌컥 마시곤 반도 안남았다. 한번더 마셔서 깨끗이 잔을 비워버리곤 식탁위에 컵을 내려놓는다.

"켁켁.. 아 숨넘어가는줄 알았어"

"우유, 더줘?"

"아니- 배불러."

배부르다고 해놓고는 내우유를 가져가서 마시곤 또 손등으로 입가를 쓱 문지른다. 나도 남은 우유를 마저 마셔버리고는 한별이 컵과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넣어둔다. 빨리 나와- 하고 먼저 밖으로 나가버리는 한별이를 따라 무거운 가방을 들쳐매고는 밖으로 나간다.

"아 추워-"

"자-, 손"

어느새 그친 눈이 땅을 가득 매워서 차가운 공기가 차오른다. 한별이를 향해 손을 내밀자 한별이가 손을 꼬옥 잡아준다. 날씨는 이제 막 추워지기 시작했지만, 우리 손은... 따뜻해지고있고, 우리의 맘도 따뜻해지고있다-


*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우리집 문을 혼자 열고 들어온다. 항상 김윤한이 내가 늦게 끝나도 기다려서 같이 가주고 했는데, 오늘은 청소당번이기도 하고, 윤한이가 먼저 가서 해야될일이 있다고 해서 청소를 마치고 혼자 왔다. 날 내팽겨치고 먼저 갈정도면 대체 무슨 중요한 일이길래.....

"윤한아-, 김윤한? 어딨어?"

이 자식... 불러도 대답도 없고 나 진짜 삐치려고 그러는데.... 김윤한 방문을 벌컥 여니까 여기도 없다. 한경이 오빠는 오전에는 쭉 자다가 오후에는 친구 만나러 간댔고...해서 없고,  일단 가방부터 내려놓고 전화라도 걸어봐야겠다해서 힘이 다 빠진 채로 방문을 열었다.

"한별아 생일축하해!!!"

들어가자 마자 폭죽들이 팡팡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터지기 시작했다. 고깔모자를 쓴 남자 둘, 그러니깐 김윤한이랑 한경이 오빠가 빨간 고깔모자를 뒤집어 쓰고있고, 김윤한은 빨간딸기와 여러 과일들이 얹어있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까지 들고있다.

"꼬맹이 벌써 열여덟이나 먹었구나!! 너도 늙을 날이 얼마 안남았어"

"한경이오빠.... 친구만나러 간다더니-"

"내가 친구가 어딨냐? 십년을 넘게 일본에서만 살았는데"

"야 정한별! 나 삐친다? 이거 다 내가 준비한ㄱ...."

윤한이의 삐친듯한 그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그냥 꼬옥 안아버렸다. 귓가에 대고 고마워- 라는 말을 속삭이곤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헤죽 웃었더니, 옆에서 한경이 오빠가 놀고있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있다.

"놀고있네...."

"거봐...."

그말할줄 알았어, 침대에 걸터 앉아서 방을 둘러보니까 내 핑크색 방에 무지개 색깔 풍선들이 천장을 가득 메우고 그 풍선들은 각각 '생' '일' '축'' 하' '해' 라는 한글자 한글자가 써있다. 벌써 내생일이 다됐나? 12월 9일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케잌 먹을거야?"

"너는?'

"너 먹으면-"

"오빠는?"

"먹어"

"그럼 나도 좀만 먹을게"

케익을 먹으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발에 뭐가 채인다. 뭔가 해서 봤더니 크기 차이가 엄청 큰 상자들이 차례로 놓여있다.

"어? 이거 뭐야?"

"꼬맹이, 뭐야, 벌써 봤어?"

"케익 다 먹고 보여줄려고 숨겨놨는데 들켰네.. 헤헷"

"뭐야?"

"꼬맹이 선물, 제일큰게 내가 주는거다. 돈이 없어서 좋은건 못주고-"

"나머지 두개는 내가 주는거야"

"진짜? 히히 지금 열어봐도 돼?"

"응"

제일 큰 상자를 먼저 열어 봤더니 상자만큼이나 엄청 커다란 곰인형 하나가 들어있다. 감촉이 보들보들한게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나 가면 또 일년동안 못보니까 이왕 온김에 큰 존재를 안겨주고 가는거야, 오케이? 1년동안 깨끗하게 모셔놔라"

"웅!! 고마워 오빠 히히-"

"내건 안열어봐?"

먼저 가운데에 껴있던 그 상자를 열어봤더니, 이 방의 색이랑 너무 잘어울리는 핑크색의 장미가 한가득 담겨있다.

"우아, 이쁘다-"

"핑크색장미는 행복한사랑 그리고 맹세라는 꽃말이 있대-, 그리고 핑크색 장미 백송이니까 100% 완전한 행복한 사랑"

"고마워"

"나머지 하나는 안열어봐?"

큰 상자 두개를 열고나니 조그마한 상자 하나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콩콩 걸어가서 그 상자를 주워와 김윤한 한테 돌려준다.

"이거는 나중에... 나중에 줘"

"응? 열어보지도 않구..?"

"아냐... 나중에 줘도 돼. 나중에 내가 달라고 할 때.. 그 때 주라..."

그 속에 날 향한 너의 사랑 만큼의 반짝임을 머금고 있는 그 반지가... 아직 나에게는 너무 감당하기 부담스럽다... 그건 나중에.... 나중에 내 맘이 널 허용하면 그 때 줘....


*


"나 갈게- 꼬맹이 잘있어. 작은 엄마도 안녕히계세요."

"잘 가, 내 년에는 좀 따뜻할때 와."

"그래, 몸 건강하구, 삼촌한테 안부 좀 전해드려."

"네-. 야, 너는 인사안하냐?"

운동화 앞코가 공항 바닥에 부딪히면서 탁탁 하는 소리를 낸다. 그소리 말고도 게이트 안내등 안내방송이 공항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며 서로 수다 떠는 소리등이 귓가를 맴도는데 그 중, 저 노란대가리가 나한테 한말이 귀속을 찔러댄다.

"잘가.........요"

드디어 가는구나, 이 노란대가리.... 2주만 있는다고 하더니 2주를 훌쩍넘어 한달이 다되도록 가지 않는 이 노란대가리를 볼 때마다 간지러운데 손이 닿지않아 긁지 못하는 등한가운데 마냥, 혹은 긁고 싶어도 긁지못하는 발바닥 한가운데가 가려운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제 간다고하니 그 간지러운 등을 효자손으로 벅벅 긁어서 시원해진느낌이다.

"갈게요. 꼬맹이 둘 잘있어라! 또 올게"

또 와? 절이라도 할테니까 제발 오지 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노란대가리를 향해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해줄수밖엔 없었다. 어차피 저 인간은 오지말라고 안 올 인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도 저 인간은 구름을 타고서라도 올거야, 암.. 그렇고말고,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서 공항 문을 제일먼저 빠져나온건 역시 나였다.

"빨리 안타요? 춥다."

"왜이렇게 서둘러, 좀 천천히 가."

저기 멀리서 느릿느릿걸어오는 한별이와 아주머니가 그렇게 답답해 보일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시달렸던걸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버리고 싶어졌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노란대가리가 또 찾아와 날 괴롭힐 것만 같았다. 차 문을 열어 한별이를 먼저 태운 후 내가 그 옆자리에 앉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왔을때 노란대가리가 운전하고 온것과 달리 아주머니가 운전을 하고 가셨다. 운전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는 아주머니는 꽤 수준급의 운전실력을 갖고계셨다. 아까 노란대가리가 운전하고 갈 때보다 훨씬 맘이 편안하다.

"엄마, 일본 가려면 몇시간 정도 걸리지?"

"별로 안 걸려."

"그럼 좀 있다가 전화해야겠다."

"밥도 안해놨는데, 우리 외식이나 할까?"

"응응! 맛있는거 사먹자-"

턱을 괴고선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고있는데, 창밖에서 나무들이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달리고 달려서 어디로 도망치려고만 하는것같다. 멀리멀리-

"야, 윤한아 뭐먹을까?"

"어? 어...?"

"뭐하고 있어?... 엄마가 외식한대 뭐 먹고싶은거 있어?"

"아니, 너 먹고싶은거 먹어"

"그럼, 우리 고기 먹으러 갈까? 갈비 어때 갈비-?"

"맘대로해, 난 아무거나 먹을게"

"그래에- 엄마, 그럼 갈비먹으러 가자"

"엄마가 갈비집 맛있는데 아는데 거기로 가자"

"응-"


한참,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이제 알것같다... 해방됐다는걸.. 해방..... 노란대가리한테서 해방됐다!!!!!!! 아 너무좋아!!!!!!!!

"아!!! 좋아좋아!!!"

"갈비 좋지-"


*


-띵동띵동

일요일 아침 부터 열심히 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운건 오랜만에 듣는 초인종 소리였다. 침대헤드 옆 협탁위에 시선없이 손을 휘적휘적 거려본다. 핸드폰을 찾으려했지만 잡으려는 핸드폰은 잡아지지않고 괜시리 다른 물건들만 툭, 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하나 둘 떨어졌다. 핸드폰 옆에 모든 물건을 다 떨어뜨리고서야 핸드폰이 손에 쥐어졌다. 초인종소리는 간격을 두고 계속 들려오는데, 핸드폰 액정을 열어젖혀 시간을 확인하는데, 11시 5분에서 방금 막 11시 6분으로 넘어간다. 핸드폰을 다시 협탁위에 던지듯이 올려놓고는 꾸물덕대며 침대위를 빠져나오는데, 아까 떨어뜨렸던 물건들이 하나,둘씩 발에 밟힌다. 모서리를 밟았는지, 상당한 고통이 밀려오고 나서야 한쪽 발을 붙잡고선 떨어뜨린 물건을 하나씩 올려놓는다. 내가 발로 밟은 그 모서리는 아마 이 뾰족한 액자모서리가 아닌가 싶다. 정한별 사진을 고이 모셔둔 액자를 다시 협탁위로 모셔놓고는 거울을 보고 상태를 확인하는데 까치가 제 집인줄 알고 날아 들어올것만 같은 까치집이 머리위에 마련되어있다. 대충 머리를 손으로 몇번 빗어넘긴후에 터벅터벅 걸어가 현관문을 열어 밖에 있는 사람을 빼꼼히 내다보는데

"에라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 누군지는 잘 안보이는데 노란색깔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고있는 사람이 한명 문앞에 서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것 마냥 손가락으로 초인종을 콕콕 누르고 있는 그사람을 다시한번 눈을 비벼서 확인하는데-

"어, 한경이형?"

"야 박준희! 너 여기사는거 맞구나!"

"한경이 형이 여길 어떻게..."

"일단 들어가, 아씨 추워 뒈지는줄 알았네! 넌 왜 문은 안열고 난리야! 나 추위에 약한거 몰라?"

그 노란머리에 볼과 손이 뻘게진채로 문을 열고는 나를 앞서서 신발을 후닥닥 벗고는 먼저 들어가는데, 방금전까지는 그렇게 졸려서 백만 톤보다 더 무거웠던 눈꺼풀이 가볍게 확 떠졌다. 눈을 껌뻑껌뻑 감았다 뜨면서, 얼른 쇼파로 가서 앉아버리는 한경이형을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는데, 마치 주인인양, 안들어오고 거기서 뭐하냐고 물어보는 한경이 형이 황당해 져버렸다.

"따뜻한거 있냐? 아무거나 손 녹일것 좀 줘봐"

"커피 드릴까요?"

"아.. 커피는 싫은데, 다른 차는 없어?"

"홍차....."

"홍차 말구, 녹차는없어?"

"녹차없는데, 쟈스민차 드릴까요?"

"그럼, 그걸로 가져와"

아무거나 달라더니 고르는건 여전하구나... 주전자에 물을 조금 따라 보글보글 김이 날때까지 끓이고는 빨간꽃이 그려있어 왠지 한경이 형이 좋아할것만 같은 작은찻잔에 끓인물을 따르고 쟈스민 알갱이가 담겨있는 병을 열어 5알을 퐁당 물에 담궈 조금 시간이 지나자 찻잔안이 분홍빛으로 가득찬다. 쟁반에 컵을 올려 한경이 형이 앉아있는 쇼파앞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자 한경이 형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진다.

"쟈스민차는 색깔이랑 향이 좋아서 좋아, 그리고 은은하면서도 강하지 않은맛... 너무 맘에든다."

"...아,네..."

"찻잔도 맘에 든다. 너 내 취향 기억하고있구나?"

"워낙, 튀는걸 좋아하시니까..."

"아, 맞다. 내가 차마시러 여기온게 아닌데"

"..네?"

"한별이가 보내서왔어. 한별이가 너 아직 못잊는거 알지?"

".....네?"

날 왜 못잊어..... 나같이 나쁜놈을 못잊는 이유가 뭐야..... 내가 잊어버려도 좋다고 했으면.... 그냥 지워버리지.... 바보같이......


*


"밥 먹는거야?"

일요일 늦게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밥을 꾸역꾸역 입 안으로 집어넣고 있는데, 주머니에 빳빳히 손을 꽂고 룰루랄라 계단을 내려오는 김윤한이 팅팅부은 눈에 포착됐다. 밥 먹는거냐는 물음에 눈을 꿈뻑대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김치 하나를 집어서 입 안으로 집어넣는데, 마주편 식탁 의자를 삐그덕대면서 빼내고선 김윤한이 앉는다. 김치를 꼭꼭 씹어 넘기고는 밥 한숟가락을 다시 떠서 입안으로 집어넣고는 찌개를 떠먹으려고 손을 뻗는데, 앞에서 찌개가 담긴 숟가락하나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다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러갈래?"

졸려서 꿈뻑대던 눈이 아이스크림이란 소리에 번뜩 떠졌다. 눈을 크게 뜨곤 밥을 꼭꼭 씹어서 넘겼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는 물 컵을 집어들어 한모금을 쪼로록 마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는 말에 먹던 밥을 치우곤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김윤한이 어깨를 눌러 다시 의자에 앉힌다.

"먹던거는 다먹고 가."

"아- 밥다먹으면 배불러서 아이스크림 못먹는단 말야"

"가면서 다 소화되니까 걱정말고 드세요, 공주님-"

"치이- 그럼 니가 한숟가락만 먹어주라"

밥을 한숟가락 가득 퍼서는 김윤한의 입을 향해 갖다댄다. 반찬은? 하고 묻는 말에, 계란말이 하나를 떡하니 밥위에 올려놓곤, 괜시리 내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들이댄다. 김윤한의 입이 크게 벌려지고 그안으로 가득차있는 숟가락이 들어갔다가 나올땐 깨끗이 비어서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밥을 쓱싹 해치우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얼른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점퍼 하나를 걸쳐입는다.

"가시죠, 공주님-"

신발을 갈아신고 나오는 나에게 내미는 김윤한의 손위로 내 손이 꼬옥 맞잡혀졌다. 처음 문 밖을 나섰을때는 별로 추운걸 못느꼈는데 점점 앞으로 나아갈수록 목안으로 바람이 슝슝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입에서 아 추워-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김윤한이 자기가 하고있던 목도리를 훌훌풀러 내 목에 둘둘 둘러줬다. 김윤한의 체온으로 데워져서 그런지 따뜻하다는 느낌이 가득한 목도리를 두르고는 두손을 꼭 잡고 김윤한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

"어서오세요-"

딸랑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베스킨라빈스 안으로 들어왔다.

"뭘로 드릴까요? 싱글로 하나씩 드려요?"

"아뇨, 쿼터로 주세요"

"네-,드시고 가실거죠? 어떤걸로 담아드려요?"

"네, 정한별- 뭘로 먹을래?"

"나는 슈팅스타-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골라"

알바생이 뚜껑을열어 김윤한이 고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던 슈팅스타가 담기고 김윤한이 부르는 것 순서대로 담기기 시작한다. 모두 담기고 난 후에 김윤한이 계산을하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오는데, 어디서 먼지가 날아왔는지 내눈으로 들어왔다.

"아-, 눈에 뭐 들어갔나봐, 따가워"

"어디 봐. 많이아퍼?"

"따가워..."

"이리와봐"

김윤한이 내 눈꺼풀을 들어올려 시원한 바람을 후우- 하고 불었다. 눈안으로 시원한 느낌이 감돌면서 따가운 느낌이 말끔히 사라졌다.

"됐어?"

"우응- 거마워어"

핑크색 스푼을 들고 먼저 슈팅스타를 가득 퍼담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톡톡쏘는 맛과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어우러져 나는 내가 제일좋아하는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입안에서 사르륵 녹여 목으로 넘기는데, 내가 제일 좋아할만 하다.
너랑 같이 먹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넌 여기 없어....


*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바닥까지 싹 비우고 나서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니까, 온몸이 꽁꽁 얼어버린듯한 느낌이든다. 한별이한테 내 목도리를 주긴 했지만, 그 목도리만으로는 이 날씨를 어떻게 할수가 없을것같아서 한별이 손을 꼭 잡곤 내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 따뜻하다..."

"기억안나?"

"응?"

"두달전만해도 너 나 싫어했잖아, 그때 내가 니 손 잡았을때 니가 손 차가운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했던거 기억나?"

"그랬었나...?"

"근데 니가 했던 말이 맞는거같아..."

"응?"

난 너무 나쁘거든, 널 너무 갖고싶어서 너의 상처도 감싸주지 못하는 난 너무 나쁘거든... 근데, 이렇게 못된 나를 봐주는 넌 정말 착한 애야....

"아... 아냐, 춥다. 빨리가자"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던 내 시간들은 어느새 크리스마스도 지나가버렸고, 나에게는 이제 새로운 한해가 인사를 해주고있다. 이때는 이렇게 해야지,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해야겠다하는 계획들도 대부분 지키지못하고 휙휙 지나가버렸다. 모든지 한별이에게 다 맞춰졌고, 한별이가 하자는대로, 모든것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난 점점 더 한별이를 향해 맞춰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몇일이 지나가자 벌써 새해도 몇시간 남지 않게됐다.

"제야의 종소리 들으러가자"

"귀찮은데-"

추운날 계속 돌아다니더니 결국 감기가 걸려버려서 빨간얼굴,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하는데, 그래도 심각하게 아파보이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긴하다.

"그래도 새해되는건데-"

"그런가..?"

"니가 가기싫으면 안가도돼. 감기도 걸렸고하니까"

"그럼 가자. 헤헷"

내가 보기엔 귀엽긴하지만 기복도 심하고, 귀도 얇아서 나중에 직장이라도 나가면, 어떻게 될지모르겠다. 뭐 그럼어때, 내가 평생 돈 벌어주면되지.

"빨리 옷 안입고 뭐해. 가자,가자"

멍하게 생각하고있었는데, 벌써 옷 다입고 문앞에서서 콩콩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다.

"왜 웃어?"

"아냐, 금방 준비하고 나올게"

"응~ 빨리나와"

옷을 챙겨입는중에도 자꾸만 그 귀여운모습이 생각나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지갑이랑 가방을 챙기곤 문손잡이를 잡는데,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니가 있을걸 생각하니까 자꾸만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분좋은 느낌이 변함없길 바라-, 문을 열고 나가니까 아직 니가 문앞에 있다. 밖에 발을 내딛으려 하는데 방에서 문이 열리더니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어디 나가?"

"응. 제야의 종소리 들으러"

"뉴스보니까, 오늘 진짜 춥다더라. 집에서 그냥 티비로 보면되지 뭐하러 나가"

"그런가...?"

"엄마가 부침개 해줄테니까 , 먹으면서 티비나 봐"

"그럴까...."

"부침개 한다?"

"윤한아!!! 그냥 집에 있자-"

가끔, 귀여운게 넘어서서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되는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넌... 그게 매력이야


*


"집도 되게 넓네.. 나 여기서 자고 가도 되지?"

정말로 한참동안 여러가지 긴긴 얘기를 꺼내놓던 한경이형은 마지막 말을 꺼내놓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들고왔던 가방을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아까 들고온 가방이 엄청 크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가려고 그랬던거구나... 하고 생각하고있는데, 문이 다시 벌컥열리더니 한경이 형이 나온다.

"나 먼저 씻어도 되지?"

그 한마디를 남기곤, 역시 또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채, 당연하다는 듯이 욕실로 사라졌다. 딸깍하고 욕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자동적으로 하아- 하고 한숨이 나온다. 타박타박 걸어가서 작은 방 문을열고, 포근한 이불하나를 꺼내 깔았다. 언제 부터 이런게 있었나 싶을정도로, 딱- 한경이형이 좋아하는 스타일일것같은 이불이었다. 마치 꽃밭같은 그이불은 보기만해도 향기가 슬슬 올라오는것 같았다. 이불을 고이 다 깔아놓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밖에서 먼저 문이 열렸고, 샤워가운에 촉촉하게 젖은 머리의 형이 들어왔다.

"너 나 좋아해?"

"...네?"

"너 내 취향을 너무 잘 알고있는거아냐?"

"...하하...."

하긴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잘 알고있긴했다. 둘 사이로 어색한 기운이 흘러서 어색한 웃음을 한번 흘렸다.

"미안한데, 난 남자는 안좋아하는데.. 풋..."

"네?"

"冗談だった。진지하게 생각하지마 제발..." *농담이었어.

"...아, 네..."

머리속엔 농담이 뭐그러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입 밖으론 나가볼게요- 하는 말이 나왔다. 여긴 우리집인데, 왠지 자꾸만 저 형이 주인인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뭔가 찝찝했다. 그후로 몇일동안 계속 한경이형의 말을 들으면서 지냈고, 한경이형은 한동안 계속 우리집에서 잤다. 그 긴긴 시간이 흐르고 한경이 형이 돌아가는 날에는 왠지 틀에서 벗어나서 해방된 느낌같은게 들었다고나 할까? 되게 자유로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경이 형이 간뒤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 새로운 한해가 시작이 되곤, 그 짧았던 방학이 다 끝나버렸고 벌써 개학을 해서 졸린눈으로 학교를 나갔다.

"야아- 박준희!!!"

".........."

"야! 너 왜 씹고 지나가? 놀자아-"

"나 피곤하거든? 잘가라"

"오랜만에 학교까지 왔는데, 그러기냐?"

"누가 오랬냐?"

"피이... 야아... 놀자아, 응?"

임은민은 지치지도 않나보다... 눈치가 없는건지, 바본건지... 순진한건지... 아무래도 순진한건 아닌것 같은데...  집까지 가는 그동안 뒤에서 계속 쫑알쫑알 하는 말을 무시하면서 가자, 길잃어버린 개에게 한번 관심가져줬더니 쫄랑쫄랑 쫓아오는것 마냥 쫓아오고있다. 집 앞까지 와서야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이제 좀 가라- 하니까 이젠 이게 내말을 무시한다.

"야! 너 가라고!!!"

"..... 흐...으아앙"

"야.. 울어?"

"... 흐으으아- 너 나빠... 아아"

소리를 꽥 지르자, 갑자기 주저앉아 소리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임은민이 밉지만, 왠지 불쌍해 보인다.

"으어어엉... 너어.. 내애가 그러어케 시러...?"

"....미안..."

"흐읍... 알았어어.. 가면 될 거 아냐아..."

"야."

뒤를 돌아서 왔던 방향으로 다시 가려는 임은민의 손등을 붙잡았다. 이대로 보내버리면.. 내가 진짜 나쁜놈 되는거아냐...

"들어와, 차 한잔 줄게"

그리고.... 우는 사람 보면 왠지... 달래줘야 될것같은 느낌이 들어..... 널 떠나던 날.... 너의 눈물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그래서..... 아직도 아파서...


*


"마누라- 빨리나와, 여어 눈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첫눈이 펑펑 내린다. 이제 스물셋도 한달하고 몇일밖에 안남았다. 눈이 온다면서 이따만한 무지개 우산을 들고나가 펼치는 김윤한이다. 아직도 나는 엄마아빠랑 같이 살고있고, 아직도- 김윤한은 우리집에 하숙들어 살고있다. 뭐, 이제는 하숙이 아닌 가족으로 물들어 가고있는것 같지만...

"마누라는 무슨!! 늦었어!! 나 먼저 간다"

"야 같이가!! 눈 다 맞고 가지말고-"

"아, 늦었다니까, 오늘도 지각하면 그 이중인격이 가만있을거같애?"

얼마전 부터, 용돈도 벌어쓸 겸 김윤한이랑 같이 시작한 편의점 알바는 평소에는 생글생글 웃다가 1분이라도 늦게오면 사람을 말려죽이려고 하는 여사장이있어서, 최대한 성실히 행동해야했다. 사실, 초중고 십여년동안 공부는 제대로 한적이 없는지라, 그나마 가까운 지방대에 김윤한이랑 나란히 붙어 간간히 버티고 있는중이었다.

"1분 35초, 36초, 37초...."

"헥..헥..헤에..."

편의점 문이 딸랑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먼저 뛰어 들어오고 그 뒤로 김윤한이 하얀눈이 가득쌓인 우산을 털면서 들어온다.

"지금 너희 둘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 줄 알아?"

"네?네에..."

"내가 몇분까지 오라고했어!!"

"네?.. 20분까지...요"

"근데 지금 몇분이야!!"

"어.... 이십이....삼....분..."

"말대꾸 하지말랬지!!!!"

아니, 지가 몇분이냐고 물어봐놓구 왜 나한테 난린건데, 그리고 몇분이나 늦었다고.. 그리고 이사장은 겨우 몇분 늦은거 가지고 마치 한시간이라도 늦은것마냥 부풀릴수있는 재주가 있다. 그 재주로 쇼호스트나 하지 그러셨어요... 삼만 구천 팔백원~ 와우~ 무이자 삼개월~ 하시면서요...  그 단발머리와 빨간립스틱이 정말 쇼호스트랑 잘어울리실것같네요

"죄송합니다아...."

"이 사람들이 말야!! 시간은 그렇게 함부로 낭비해도 되는게 아니라고 몇번을 말해!!"

"죄송...."

까랑까랑한 여사장의 목소리에 굽신거리고 있는 나와 김윤한 뒤로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빨리들어가서 옷갈아입고 나와!!"

"네에.."

재빠르게 입고왔던 점퍼를 벗곤 티 위에 유니폼을 걸쳤다. 유명한 편의점이 아니라 그냥 동네에 하나 만든 편의점인지라, 꽤 촌스런 빨간바탕에 하얀 글씨로 영24시라고 써있는 유니폼-. 유니폼을 입고 밖으로 나오자 밖으로 나갔는지 여사장은 없고 손님만 과자봉지 몇개를 카운터로 들고와선 얼마냐고 묻는다. 삑삑 바코드를 찍어서 계산을 완료하곤 삼천오백이십원이요- 하고는 오천원짜리를 받아 천사백팔십원을 거슬러주곤 봉지에 과자를 집어담아 손님에게 건네주자, 김윤한은 그때 서야 어슬렁어슬렁 유니폼을 갖춰입고는 나와서 안녕히가세요-를 크게 외치고는 유니폼 지퍼를 주욱 끌어 잠근다.

-♪♩♪♬

거울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액정에 써있는건, 요번년에는 일찍와서 얼마전에 돌아간 한경이오빠가 전화를 걸었다.

"왜,오빠?"

-"한별아-"

"왜-?"

-"빅뉴스다."

"뭐가?"

-"오늘 준희한테 전화걸었는데, 낼모레 한국 간댄다."

"응?"

한경이오빠가 준희랑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그러더니, 연락을 많이 하고 지냈나보다. 준희가 한국 온다는 얘기는 처음듣는얘기였다.

"통화비많이나와- 전해줬으니까, 끊는다."

"오빠, 오빠?"

전화가 끊겼다는 뚜뚜뚜뚜- 하는 소리가 몇번 들리다가 이내 꺼지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곤 멍해졌다.

"한경이형이냐?"

"........."

"한별아-?"

김윤한이 옆에서 어깰 흔들어대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응?"

"뭐래?"

"어... 아냐"

박준희가..... 한국엘... 온대....


*


짐들은 먼저 한국으로 보냈고, 남은 조그마한 물건들중에 빠진게 없나 살펴보고, 확인한다음 가방 지퍼를 잠그곤, 가벼운 느낌으로 그동안 지냈던 오피스텔을 빠져나온다. 문을 닫자 삐리릭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긴다. 이 집에서 지낸지도 벌써 5년이 훌쩍넘었다. 이젠 한국보다 일본이 익숙해졌을만큼 오래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가방을 열어 여권과 비행기표를 확인하고 찬찬히 오피스텔을 빠져나온다. 지금가면 언젠가는 오긴오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기때문에 왠지 뭔가 빈 기분이 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방향을 바꿔 계단을 내려간다. 또각또각 하는 구두소리가 계단 전체에 울리고 3층이라 계단 내려가는데에 별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고 내려왔다.

"왜이렇게 늦게 나와-"

"응? 아... 많이 늦었어?"

"아냐, 빨리 타"

오피스텔을 나오자, 빨간 차 부터 눈에 띈다. 이 추운 날씨에 정말 손바닥만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임은민은, 그 보다 늦게 눈에 띈다. 임은민이 운전하는 빨간 차에 몸을 싣고선 공항으로 향한다.

"한국 먼저 가있어- 나는 정리할게 있어서 좀 나중에 갈게"

"응... 얼마나 걸리는데?"

"빠르면 일주일에서 길면 이주?"

"알겠어"

"먼저 가서 아는사람들이랑 인사 먼저 하구있어"

"어-"

차를 타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오후 2시 비행긴데 지금이 12시반이니까, 시간이 어느정도 있다.

"먼저 가-"

"몇시 비행긴데?"

"금방 가야돼"

"그래..? 그럼 갈게- 나중에 봐. 도착하면 연락하구"

"어..."

빨간 차가 저 멀리로 사라질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다가, 점이 되어 사라지자 면세점으로 들어섰다. 뭘 고를까 하다가 수수한 오렌지색의 립스틱을 하나 골라들었다.

"お手伝いしましょうか?" *도와드릴까요?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점원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묻는다.

"はいぃ。この色のほかに違う色がありますか?" *네에... 이 색말고 다른색은 없나요?

"彼女にのプレゼントですね。" *여자친구 선물이죠?

"............はい。" *네에..

"これはどうですか? 私が推薦する物ですけど。" * 이건 어때요? 제가 추천하는 거에요.

"それより明るくて地味な色ならいいんですけど。" *그것보다 밝고 수수한색이면 좋겠는데..

"そんな色ならやはりこのピンクが良さそうです。" *그런 색이라면 역시 핑크색인것 같네요.

"それならこれにし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 그럼 이걸로 할게요 고맙습니다.

결국은 귀여운 핑크색깔의 립스틱을 하나 달랑 들고는 면세점을 빠져나왔다. 언제 시간이 그렇게 빨리갔는지 벌써 45분정도 밖에 안남았다. 게이트를 찾아서 여권과 비행기표를 보여주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으로 올때도 이렇게 떨렸었나?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댄다. 작은 가방을 들고는 정해진 좌석에 앉았다. 앉아서 립스틱을 빤히 쳐다보다가 바지 주머니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널 볼수 있을것 같아, 달콤한 꿈으로 빠져든다. 정말 달콤한 꿈속으로 깊이....


*


"아저씨 인천공항으로 가주세요"

자꾸만 가슴이 쿵쿵대고,간질거린다. 니가 떠나던 그날 처럼 마음이 급해진다. 니가 간지도 어언 5년이 지났다. 공항에 도착했을때, 그 마지막 너의 모습을 지울수가 없어... 슬픈 눈을 남기고 가버린 너의 모습을 난... 지워버릴수가 없어.... 가지말라고 하고싶던 그날의 아픈 날... 잊을수가 없어... 택시가 어느새 인천공항 앞에 도착하고 택시비를 내곤 택시에서 내렸다. 급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히 공항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천장이 높은 공항 안으로 들어서니까 마음이 붕 뜨는것만 같다. 탁,탁 하고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입국 게이트앞에 수많은 사람들과 발을 나란히 했다. 쿵쿵대는 심장소리가 점점 커지고 침이 꿀떡하고 목뒤로 넘어간다. 도쿄에서 온 비행기는 3시반에 도착한다는 말이 전광판에서 반짝인다. 지금이 정확히 3시 25분, 1분.. 2분... 3분.... 4분..... 5분......이 지나고 삼십분이 됐다. 게이트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커다란 가방을 끌면서 나오고 마중나온 사람들이 그사람들을 반긴다. 하지만...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선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넌 나오지 않는다. 5분, 10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이 게이트를 나오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나오질 않는다. 잘근 잘근 손톱을 물게 되고 눈을 자꾸만 깜빡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오고 더이상 사람이 나오지 않자, 게이트문이 닫혀버린다.

"저기요.. 도쿄에서 온사람 다 나온건가요?"

"네? 네.. 그럴걸요-"

방금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널 기다리는 내가 바보같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않는다. 그 후로 얼마간 널 기다렸지만 넌 나오지 않았다. 발걸음을 천천히 떼서 밖으로 나온다. 아까 처럼 발걸음이 빨라진다거나 심장뛰는 소리가 커지지도 않고 그냥 천천히 나오기만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곤 택시를 찾는다. 아까는 왠지 빠르게 타야할것만 같았던 택시가 이번엔 타고싶지가 않다. 마음을 다잡고 택시를 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반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너.... 니가 보인다.

"박준희!!!!!!!!!!"

소리를 지르자 너의 얼굴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마침내 나를 향해 맞추어 진다. 니가 날 보고있다. 다른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직 널 향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좀전에 널 만나러 갈때처럼 다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 김윤한한텐 미안하지만 김윤한을 사랑하지 않았어... 맘이 많이 아파서 그랬던 것뿐인데... 너는 여전히 내 심장속에서 나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아있었구나...  건너편에있는 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다가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주위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너의 얼굴만 보이고 니 소리만 들릴뿐....

"정한별, 한별아!"

박준희가 가방을 집어던지곤 나를 향해 뛰어온다. 니가 나에게로 다가온다. 니가 나에게 가까워지자 옆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니가 날 감싸안았고 몸이 위로 날아가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바닥으로 추락했다. 깨질듯이 밀려오는 고통과 함께 눈앞에서 니가 보이곤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맣게 사라져버렸다.


*


"저기요, 제가 주머니에 뒀던게 없어진 거같은데"

기내식을 먹곤 잠이 들어서 도착하는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와 함께 눈이 뜨였다. 가방을 챙기곤 착륙하고 나서 확인차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립스틱이 사라졌다. 주변바닥을 뒤져도 없었다. 결국 승무원에게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고, 약간 싫은듯한 눈빛이 보이긴했지만, 친절하게도 같이 찾는걸 도와줬다. 비행기가 넓은지라 몇분이 지나도록 립스틱을 찾게 되었다.

"여기있네요!, 이거 맞죠?"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아녜요. 여자친구드릴건가보죠?"

"네. 하핫."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감사합니다-"

결국 이십분 가까이 시간을 소비하고서야 승무원이 찾게 되었다. 립스틱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선, 가벼운 마음으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몇있긴했지만, 왠지 왔을것 같았던 한별이는 없다. 한별이가 어떻게 알고 와... 하는 생각으로 타박타박 걸어 공항을 빠져나왔다. 나오자 마자 보이는 한국의 하늘이 왠지 맑아보인다. 이제 날씨도 다시 겨울로 돌아온지라 추운 날씨는 다를게 없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바닥을 보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박준희!!!!!!!!!!"

너의 목소리였다.틀림없이.. 정한별 너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마주편에 작게보이는 얼굴을 보며 난 알수있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선명하게 그려지는 너의 얼굴.... 한번에 보고도 아니... 보지 않아도 난 알수있다. 너라는걸... 그 정도쯤은 눈감고도 알 수있어...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었더니 한별이가 이쪽으로 걸어오다가 점점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멍한사람처럼 앞을향해 뛰어오는데 옆에서 사람을 태운 택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정한별, 한별아!"

손에 쥐고있던 가방이 내팽겨치고 너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진다. 옆에서 택시가 빠르게 달려오지만 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하다. 택시에 부딪히는 너를 꼭 감싸는 느낌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느낌이 든다. 앞이 깜깜해지다가 파란하늘이 눈에 가득찬다. 다시 눈에 너의 모습이 가득 차더니 이내 멀어진다.......... 저기 멀리로 점이 되어 보이지 않게 사라져 버린다. 널 보고싶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게 사라져버렸다. 널 위해 준비한 선물도 줄 수 없게 되는 건가.... 두려운 느낌이 맘을 가득채우고 나즈막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와 나의 이야기의 끝을 맺으려는듯 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제 타입 아닌데요 소설 #제 3차 세계대전 소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글쓰는 솜씨는 굉장히 좋으신 것 같은데, 글이 약간 잔잖하면서 집중이 되질 않아요.

좀 더 '*'로 끊지 말고 자연스럽게 잇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인공 시점으로 가는 것보다 작가시점이나 관찰자시점으로 가는 게 더 났지 않을까요?
흥미가 생길만한 에피소드도 여러 개 넣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많은 도움되셨길 바라고,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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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어주시고 평가좀해주세요!! ㅋㅋ 전 남자입니다. ㅋㅋ EP1 (남) 나는 바보를... 그녀는 마음 속 사전에 세겨진 바보라는 말의 의미를 알까요? 며칠 후 그녀는 제게 작은...

제 소설 좀 읽어주세요..ㅜㅜ

... 제발 블로그에 충고나 조언 주세요. 정말 진심입니다. 주소는 http://blog.naver.com/souleoe 이구요.. 끄적끄적 소설 들어가시면 됩니다... 제발..ㅜㅜ 참고로 욕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