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 작품들에 대해서...

현대 미술 작품들에 대해서...

작성일 2009.12.07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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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 미술시간에 현대미술 작품 사진과 작품의 소개에 대해 조사해서 책을 만드는것을 하기로 했는데요.

자료를 찾기가 어렵네요. 내공 50 드립니다.

 

현대미술작품 3-7가지 올려주세요.

한 화가의 작품들이면 더욱 좋습니다.

 

예: 1번째 작품사진.

     2번째 작품 소개( 화가이름. 만든재료. 만든시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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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야수파>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브라크[포르투갈 사람] < 입체파>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표현파>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래파 (FUTURISM)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다다이즘 (DADAISM)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파>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감정이나 잠재의식, 환상, 공상을 새로운 표현 기법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려한 화피이다."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초현실주의가 표현한 방법은 바로 "색다른 낯설음" 이었는데, 그 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낯익은 사물들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놓음으로서 성취가 된다.또 한편 그들은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 들을 이용했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물 들이 엉켜있는 작품에서 당혹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결국 이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꿈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화되고 관념화되어버려서 똑같은 삶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더 넓은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드,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연대에 와서는 르동, 키리코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 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조하려고 했다.


에른스트[친구들의 모임]


달리[기억의 지속]



<추상파>현실적인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보다는 선, 형, 색채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만을 사용하여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화파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추상 미술의 언어적 의미는 재현하는 대상이 없는 구체적 예술이다. 최초의 완전한 추상화는 1912년 뮌헨에서 나타나지만 추상화 전개에 있어 가장 활동적인 의욕을 보인 작가는 네덜란드의 몬드리안과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말레비치 등이 있다.


1. 칸딘스키<청기사>


초기에 표현주의의 마티스로 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서 밝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를 이끌었던 그는 우연히 작업실에 뒤집혀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경탄에 마지 않고 급기야 내용이 되고 있는 사물의 형태에 의해 순수한 조형미가 불가능하다는 알게된다. 칸딘스키는 작품을 통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순수한 미적 정서를 불러 일으키고자 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을 시사하지도 나타내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작품의 제목 자체의 관념들 처럼 미적 감성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몬드리안<신조형 주의>


신조형이란 말 그대로 과거의 조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형을 말한다. 몬드리안 등에 창간된 《데슈틸》이란 전위예술 잡지가 있는데 이 데슈틸 운동의 기본목표는 초자연적인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할 보편적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것이다
신조형주의의 는 가능한한 개인의 주관적 정서와 개성을 제거하려고 하며 순전히 기하학적으로 표현된다. 그의 그림은 매우 이성적이다. 그의 그림은 순수한 색으로 채색된 직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조화로운 결합은 수학적인 원칙과 음악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쇤매커를 만나 조형수학을 접하면서 부터인데 수직과 수평선이 만나 만들어지는 기하학적 형태는 근본적인 모순의 해(解)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번갈아 우주적 힘과 관계하는 것으로 노랑은 햇빛, 파랑은 무한한 넓이의 공간, 빨강은 통일의 색이었다. 이러한 사상으로 그는 노랑, 빨강, 파랑의 구성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추상 표현주의 (ABSTACT EXPRESSIONISM )일반적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미국 회화사상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본래 추상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서 사용했던 말로,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에 대해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썼었다.이 용어가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어서 비평가가 해롤드 고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서구 근대미술의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미니멀 아트 (MINIMAL ART)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팝 아트>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을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앤디 워홀[블루 마릴린]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필립 펄 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의 작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 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된 일관성 있는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가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가시적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비디오아트>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로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이다. 비디오아트는 크게 나누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제작자보다도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정보의 개념에 기초를 둔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직 확실한 형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연장, 또 한편으로는 예술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 공간이나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 더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어느 방향으로 귀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電子繪畵)'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백남준[백팔번뇌]


98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모니터 1백8개로 이뤄진 백남준씨의 작품「백팔번뇌」. 영상실에서는 첨단 영상과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멀티디멘션 기법의 대형 영상쇼가 18분 간 격으로 매일 17회 상영(상영시간 12분)된다·첨단기법으로 인류문화 비전 제시
현대 미술에 있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후 제기 되어온 오브제(Object)의 문제는 이제 새로운 사고의 전환으로 물리적 재료인 TV에 시간과 공간, 조형 예술 작업 등 미디어(Media)적 성격변화로 비물질적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예술은 조각의 형상적 작업이나 회화의 평면적인 작업이 아닌 전혀 다른 오브제 TV를 사용한다.
바로 이런 새로운 유형인 비디오 아트의 가장 큰 특징은 회화, 음악, 조각도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며, TV브라운관을 통해서 움직이는 이미지 즉, 움직임을 따라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며 그 공간은 무한한 시간적 흐름을 가진다. 따라서 모든 분야- 예술, 기술-의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고, 인간 의식의 진보적 형성 및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매체의 모든 영역을 오브제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백남준의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식의 변화 즉, 사고의 전환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다다의 허무주의적 파괴주의 정신을 기초로 한 것이나 매체의 적극적인 활용은 단순한 부정과 파괴가 아닌 하나의 승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새로운 매체들을 예술적 재료로 사용하여 시간적 연장속에서 전개되는 시각적 표현의 세계를 구현하고 대중매체로서의 TV와 비디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 미술의 확장된 한 분야로서 인정받게 한 비디오아트의 효시가 백남준이다.
우선 2장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형성과 배경에서, 사상적 배경을 1958년 독일의 다름슈타트(Darmstadt) 하기 음악강습회에서 존케이지(John Cage)를 만남으로 인해 동양인으로서의 본질적 자각이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케이지로부터 받은 영향은 59년부터 60년대 초,중반 플럭서스 콘서트, 미국에서의 초기 비디오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전통으로부터 일탈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백남준의 예술 시기적 구분과 작품 제작 배경에서는 먼저 1961∼1964년을 기성화된 고급문화 제도와 전통에 대항하는 전위 예술가 모임인 플럭서스 운동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1964∼1968년을 미국 소호에서 샬롯 무어만과의 만남을 계기로 퍼포먼스 시기로, 1969년부터 비디오 예술의 시작에서, 비디오 예술의 전성기와 위성중계 예술을 현재까지 구분지었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비디오 아트는 1963년 3월 백남준이 독일의 파르나스 화랑( Parnass Gallery)에서 TV 수상기를 이용한 전시회를 열었던 시점으로 소급하게 된다. 비디오 아트는 시기적으로나 매체적 특성으로 포스트 모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시대의 특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놓은 가장 대표적인 쟝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는 흔히 보는 텔레비젼 수상기를 통해 실현되는 예술이다. 모든 시각적 표현은 종이나 캔버스 혹은 벽 등의 공간적인 연장의 바탕위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백남준은 영화에서처럼 텔레비젼의 화상을 통해 시간적 연장속에서 전개되는 미술영역의 확대를 열었다.
3장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의 주요 분류와 내용에서는 많은 형태 (오브제,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 비디오 테이프, 비디오 퍼포먼스, 위성중계와 공연예술 등)들로 나타냈다. 4장에서 비디오 아트의 특징과 미술사적 의미를, 그의 비디오 이미지는 기존의 관념적이고 논리적인 시간개념을 부정하여 자유로운 시간을 표현했고, 비디오만이 갖는 시간의 특수성을 그가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 중에 확실하게 반영시켰다. 반영된 그의 비디오 이미지는 관조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활성적인 객체, 즉 또 하나의 주체가 되어 지각주체와 상호 주관적 소통을 이루어 '인간 의식의 확장'을 경험케 한다. 이러한 그의 독창성은 전혀 새롭지만 가능한 방식을 도입하여 예술을 일상생활의 실제적인 영역속에 포함 시켰다
따라서, 백남준은 비디오라고 하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시간적으로 효과 범위가 넓은 매체를 사용하여 삶과 예술을 집결시켰으며, 예술가의 사명은 기술 및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생활에 기여 할 수 있는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며, 관객과의 참여와 상호 소통으로 인하여 삶의 예술화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의 이러한 낙관적인 신념을 그의 비디오 아트를 통해 표현한 것이었다
http://www.eduart2000.com/nonmun/nonmun/박혜정00.hwp 내용출처
백남준의 플럭서스(Fluxus)적인 자발성은 그의 경력을 통틀어 지속적인 맥락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한 비디오 아트의 화제 작가가 아니라, 백남준이 중요한 예술가로 부각되는 이유는 그의 재발성과 관련된 행동의 체계적 양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 로버트 모건 저《백남준의 단편들》NAM JUNE PAIK'95 ART AND COMMUNICATION. Gallery HYUNDAI
비디오는 현재까지 그 예술적 가능성이 개발되고 실험 중에 있는 예술 매체이며, 백남준 역시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비디오 예술은 일시적인 유행이나 일개주의(一介主義, ism)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예술적 영역이 확장되고, 매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미학이 탄생하는, 열린 개념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비디오 아트는 예술에 대한 고정 관념이나 기존의 예술 개념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비디오 예술의 이해는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요구
) 김홍희 저《백남준과 그의 예술》p.12 ,디자인 하우스, 1992, 서울
하고 있는데, "꼴라쥬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 하듯, TV 브라운관이 켄버스를 대신하리라"는 그의 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백남준이 미술가로서의 방향제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존 케이지(John Cage)인데, 그것은 백남준이 음악도로 출발했던 배경과 케이지의 배경이 흡사하고 또한 비디오 예술이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

그래도 숙제에 많은 도움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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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흰소'  1954, 30x41.7cm, 합판에유채. 홍익대학교 소장

한국근대미술의 선구자인 이중섭의 유명작 흰소는

그 강렬한 붓의 터치로서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8~1949) 유화

월북작가로 알려져 있는 이쾌대는

1930년대 이후 활발히 활동한 서양화가로, 서구미술 속에서 한국의 ‘근대’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던 화가이다.

월북작가로서 그 가치가 뭍혀있다가 최근에 재조명되고 있는 작가이다.

위의 자화상을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그 구도가 흡사한데

이러한 해석은 작가만의 그림방식으로 해석이 되고 있다.

 

 


 천경자, [ 황금의 비 ], 1982 유화

현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그 입지를 확고히 한 작가는

1998년자신이 제작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기증된 작품들 중, 32점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상설전시 <천경자의 혼>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상설전시 <천경자의 혼>에서는 테마에 따른 다섯 개의 섹션으로 전시를 구성하여 천경자 특유의 자전적

채색화를 비롯하여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자화상과 해외 스케치 여행 중에 만난 이국(異國)여인의

모습을 담은 인물화, 지구를 몇 바퀴 돈 세계 여행을 통해 제작한 여행풍물화 및 문학 기행화,

학창 시절의 습작 등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수근(1914~65)의 37×72㎝ 크기 유화 '빨래터'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1950년대 후반 작품으로 추정되는 37×72㎝ 크기(20호) 유화 '빨래터'가

45억2천만원에 낙찰,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추정가 35억-45억원, 시작가 33억원에 출발한 이 작품은 전화응찰자들의 경합 끝에

추정가를 넘는 45억2천만원에 낙찰됐다.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는 군관련 사업을 하느라 한국에 체류했던 미국인 소장자가 박수근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지원하자 박수근이 고마움의 표시로 직접 건넨 작품으로 약 50년만에 국내에 공개됐다.

가로로 긴 화면에 흰색과 분홍, 노랑, 민트 등 다채로운 색상의 저고리를 입은 여인 6명이 냇가에 줄줄이 앉아

빨래를 하고 있는 옆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경매시장에서 공개된 박수근의 작품으로는

유난히 화사하고 크기가 큰 작품이다.

 

 


 이응노(1904-1989)취야, 1950년대 종이에 수묵담채, 39.9 x 55.5 cm, 개인소장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는 20세기 한국의 역사를 통과하면서 자기완성을 이룩한
작가이다. 실패, 이에 대한 예찬과 폄하는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고암은 예외적인작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도의 한국화가이다.

취야를 보면 동양화라는 기법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파격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다.

 


 권진규(1922-1983)마두, 1969  테라코타, 34 x 58 x 20 국립현대미술관

테라코타작업으로 유명한 조각가 권진규.

말이라는 소재는 아마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들이 가장 많이 다루는 소재중의 하 나일 것이다.

말은 사람들과 친숙한 것만 아니라 말의 외형이 조형적으로 매우 적정한 비율 과 변화를 가지고 있어

많은 작가들이 표현에 신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각가 권진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체를 제외한 권진규의 동물 소재들 중에서 일관된 주요대상은 말이었고

말을 통해 그는 힘찬 조형의지를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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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OriginalView(0) height=12 alt="질문자 인사" src="http://static.naver.com/kin/ending/txt_q_comment.gif" width=66 onload=javascript:imgAutoResize(0) name=resize_img_0> 수행평가는 끝났지만 고맙습니다^.^ 감사 점수 10 드립니다.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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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의 작품인지[올덴버그]

2 제목 [스픈 브릿지]

3재료 [NORAX(아크릴/96×87㎝/1985년 작]

4 어떤 느낌과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지? 거인국 나라에 온 느낌 콜롬버스 달걀같다는 생각 -쉽지만 감히 생각하지 못한 분야.


:imgOriginalView(2) src="http://imgnews.naver.com/image/023/2004/12/02/200412020395_00.jpg" onload=javascript:imgAutoResize(2) name=resize_img_2>


1.뒤샹(Duchamp, Marcel/1887~1968/프랑스)

2.샘

3.오브제/높이 63cm/1917년 작

4.뒤샹(Duchamp, Marcel/1887~1968/프랑스)뒤샹은 변기에 R..뮤트라고 가명으로 서명하고 이를 전람회에 출품했다.
이 기괴한 물품은 일상 사물을 정상적인 환경에서 분리해 새롭고 낯선 환경으로 옮겨 놓는 개념의 실례를 보여 준다. 뒤샹은 바로 이 작품을통해 '레디 메이드오브젤’ 개념을 최초로 정의했으며,우연적인 한 기성품을 선택하여 제작하는 방법은 현대미술에 새로운 표현 방법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피카소의 아비뇽의처녀들작품보다 더 현대미술에 가깝다는 최근의 세계 뉴스!



 

1853~1920 ]:imgOriginalView(3) src="http://bingoimage.naver.com/data/bingo_36/imgbingo_34/vrebirth/214/vrebirth_149.jpg" onload=javascript:imgAutoResize(3) name=resize_img_3>
한말의 화가.
본관 : 함안
호 : 소림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황해도 옹진
주요작품 : 《군리도》 《매림유거도》 《매조도》
본관 함안(咸安). 호 소림(小琳). 황해도 옹진 출생. 조부에게서 화기(畵技)를 배우고 산수·인물·기명(器皿)·화조(花鳥)·절지(折枝)·어해(魚蟹)에 이르기까지 모두 능하였다. 고종의 초상화를 그린 공으로 영춘군수(永春郡守)가 되고 정3품에 올랐다. 만년에는 후진육성에 힘쓰면서 1911년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안중식(安中植)과 함께 교수로 나가 이용우(李用雨)·김은호(金殷鎬)·이상범(李象範)·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 등을 길러내고 1920년에는, 서화협회를 설립하여 제2대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안중식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한말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작품으로는 《군리도(群鯉圖)》 《매림유거도(梅林幽居圖)》 《운산서식도(雲山棲息圖)》 《매조도(梅鳥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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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 등과 같이 여러 가지 재료와 기법을 이용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김환기金煥基 , 1913.2.27~1974.7.25 서양화가.호 : 수화(樹話)전남 신안 출생. 1936년 니혼[日本]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1940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아방가르드 연구소를 조직하는 한편 이과회(二科會)와 자유전(自由展) 등에 출품, 신미술(新美術:아르누보) 운동에 참여하였고, 8 ·15광복 후에는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5년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체적인 이미지 대신 연속적인 사각 공간 속에 점묘(點描)를 배열하였으며, 한국 근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여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초기 수업시대는 미술학교 재학시와 연구과 시절, 귀국하기까지의 몇 년 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과회 ·백만회(白蠻會)를 조직하여 당시 일본 신감각파 대열에서 활발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광복 이후부터 프랑스로 건너가기까지의 청년시절은 한국적 모티프 발견으로 일관했다고 할 수 있다. 운학(雲鶴) ·달 ·산 ·나목(裸木) ·꽃 ·여인을 통해 한국적 풍류의 정서를 표출하려는 것이 이 시기의 지배적 경향이다. 한국적 모티프에 대한 탐닉은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1959년 귀국하기까지의 파리시절에서도 농도를 더하였다. 약 10년간 미국에 있을 때에는 외견상 지금까지의 경향에 비해 많이 변모하였는데, 우선 모티프 해소, 순화된 색감, 공간의 심화와 확대라는 특징으로 묶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실지로 작품상에는 어떠한 변모도 초래하지 않았으며, 작가 내면의 발전으로 여과시킨 심화현상일 뿐이다. 대표작으로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론도》《해와 달》 등이 있다. 한편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환기미술관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세워져 1992년 개관되었다. 안좌면(安佐面) 읍동리(邑洞里)의 그의 생가는 지방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었다

등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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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의 작품인지[올덴버그]

2 제목 [스픈 브릿지]

3재료 [NORAX(아크릴/96×87㎝/1985년 작]

4 어떤 느낌과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지? 거인국 나라에 온 느낌 콜롬버스 달걀같다는 생각 -쉽지만 감히 생각하지 못한 분야.

:imgOriginalView(1) src="http://imgnews.naver.com/image/023/2004/12/02/200412020395_00.jpg" onload=javascript:imgAutoResize(1) name=resize_img_1>1.뒤샹(Duchamp, Marcel/1887~1968/프랑스)

2.샘

3.오브제/높이 63cm/1917년 작

4.뒤샹(Duchamp, Marcel/1887~1968/프랑스)뒤샹은 변기에 R..뮤트라고 가명으로 서명하고 이를 전람회에 출품했다.
이 기괴한 물품은 일상 사물을 정상적인 환경에서 분리해 새롭고 낯선 환경으로 옮겨 놓는 개념의 실례를 보여 준다. 뒤샹은 바로 이 작품을통해 '레디 메이드오브젤’ 개념을 최초로 정의했으며,우연적인 한 기성품을 선택하여 제작하는 방법은 현대미술에 새로운 표현 방법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피카소의 아비뇽의처녀들작품보다 더 현대미술에 가깝다는 최근의 세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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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브라크[포르투갈 사람] < 입체파>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표현파>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래파 (FUTURISM)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다다이즘 (DADAISM)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파>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감정이나 잠재의식, 환상, 공상을 새로운 표현 기법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려한 화피이다."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초현실주의가 표현한 방법은 바로 "색다른 낯설음" 이었는데, 그 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낯익은 사물들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놓음으로서 성취가 된다.또 한편 그들은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 들을 이용했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물 들이 엉켜있는 작품에서 당혹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결국 이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꿈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화되고 관념화되어버려서 똑같은 삶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더 넓은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드,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연대에 와서는 르동, 키리코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 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조하려고 했다.


에른스트[친구들의 모임]


달리[기억의 지속]



<추상파>현실적인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보다는 선, 형, 색채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만을 사용하여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화파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추상 미술의 언어적 의미는 재현하는 대상이 없는 구체적 예술이다. 최초의 완전한 추상화는 1912년 뮌헨에서 나타나지만 추상화 전개에 있어 가장 활동적인 의욕을 보인 작가는 네덜란드의 몬드리안과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말레비치 등이 있다.


1. 칸딘스키<청기사>


초기에 표현주의의 마티스로 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서 밝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를 이끌었던 그는 우연히 작업실에 뒤집혀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경탄에 마지 않고 급기야 내용이 되고 있는 사물의 형태에 의해 순수한 조형미가 불가능하다는 알게된다. 칸딘스키는 작품을 통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순수한 미적 정서를 불러 일으키고자 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을 시사하지도 나타내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작품의 제목 자체의 관념들 처럼 미적 감성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몬드리안<신조형 주의>


신조형이란 말 그대로 과거의 조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형을 말한다. 몬드리안 등에 창간된 《데슈틸》이란 전위예술 잡지가 있는데 이 데슈틸 운동의 기본목표는 초자연적인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할 보편적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것이다
신조형주의의 는 가능한한 개인의 주관적 정서와 개성을 제거하려고 하며 순전히 기하학적으로 표현된다. 그의 그림은 매우 이성적이다. 그의 그림은 순수한 색으로 채색된 직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조화로운 결합은 수학적인 원칙과 음악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쇤매커를 만나 조형수학을 접하면서 부터인데 수직과 수평선이 만나 만들어지는 기하학적 형태는 근본적인 모순의 해(解)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번갈아 우주적 힘과 관계하는 것으로 노랑은 햇빛, 파랑은 무한한 넓이의 공간, 빨강은 통일의 색이었다. 이러한 사상으로 그는 노랑, 빨강, 파랑의 구성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추상 표현주의 (ABSTACT EXPRESSIONISM )일반적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미국 회화사상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본래 추상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서 사용했던 말로,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에 대해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썼었다.이 용어가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어서 비평가가 해롤드 고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서구 근대미술의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미니멀 아트 (MINIMAL ART)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팝 아트>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을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앤디 워홀[블루 마릴린]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필립 펄 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의 작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 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된 일관성 있는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가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가시적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비디오아트>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로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이다. 비디오아트는 크게 나누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제작자보다도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정보의 개념에 기초를 둔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직 확실한 형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연장, 또 한편으로는 예술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 공간이나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 더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어느 방향으로 귀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電子繪畵)'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백남준[백팔번뇌]


98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모니터 1백8개로 이뤄진 백남준씨의 작품「백팔번뇌」. 영상실에서는 첨단 영상과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멀티디멘션 기법의 대형 영상쇼가 18분 간 격으로 매일 17회 상영(상영시간 12분)된다·첨단기법으로 인류문화 비전 제시
현대 미술에 있어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후 제기 되어온 오브제(Object)의 문제는 이제 새로운 사고의 전환으로 물리적 재료인 TV에 시간과 공간, 조형 예술 작업 등 미디어(Media)적 성격변화로 비물질적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예술은 조각의 형상적 작업이나 회화의 평면적인 작업이 아닌 전혀 다른 오브제 TV를 사용한다.
바로 이런 새로운 유형인 비디오 아트의 가장 큰 특징은 회화, 음악, 조각도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며, TV브라운관을 통해서 움직이는 이미지 즉, 움직임을 따라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며 그 공간은 무한한 시간적 흐름을 가진다. 따라서 모든 분야- 예술, 기술-의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고, 인간 의식의 진보적 형성 및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매체의 모든 영역을 오브제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백남준의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식의 변화 즉, 사고의 전환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다다의 허무주의적 파괴주의 정신을 기초로 한 것이나 매체의 적극적인 활용은 단순한 부정과 파괴가 아닌 하나의 승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새로운 매체들을 예술적 재료로 사용하여 시간적 연장속에서 전개되는 시각적 표현의 세계를 구현하고 대중매체로서의 TV와 비디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 미술의 확장된 한 분야로서 인정받게 한 비디오아트의 효시가 백남준이다.
우선 2장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형성과 배경에서, 사상적 배경을 1958년 독일의 다름슈타트(Darmstadt) 하기 음악강습회에서 존케이지(John Cage)를 만남으로 인해 동양인으로서의 본질적 자각이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케이지로부터 받은 영향은 59년부터 60년대 초,중반 플럭서스 콘서트, 미국에서의 초기 비디오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전통으로부터 일탈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백남준의 예술 시기적 구분과 작품 제작 배경에서는 먼저 1961∼1964년을 기성화된 고급문화 제도와 전통에 대항하는 전위 예술가 모임인 플럭서스 운동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1964∼1968년을 미국 소호에서 샬롯 무어만과의 만남을 계기로 퍼포먼스 시기로, 1969년부터 비디오 예술의 시작에서, 비디오 예술의 전성기와 위성중계 예술을 현재까지 구분지었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비디오 아트는 1963년 3월 백남준이 독일의 파르나스 화랑( Parnass Gallery)에서 TV 수상기를 이용한 전시회를 열었던 시점으로 소급하게 된다. 비디오 아트는 시기적으로나 매체적 특성으로 포스트 모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시대의 특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놓은 가장 대표적인 쟝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는 흔히 보는 텔레비젼 수상기를 통해 실현되는 예술이다. 모든 시각적 표현은 종이나 캔버스 혹은 벽 등의 공간적인 연장의 바탕위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백남준은 영화에서처럼 텔레비젼의 화상을 통해 시간적 연장속에서 전개되는 미술영역의 확대를 열었다.
3장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의 주요 분류와 내용에서는 많은 형태 (오브제,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 비디오 테이프, 비디오 퍼포먼스, 위성중계와 공연예술 등)들로 나타냈다. 4장에서 비디오 아트의 특징과 미술사적 의미를, 그의 비디오 이미지는 기존의 관념적이고 논리적인 시간개념을 부정하여 자유로운 시간을 표현했고, 비디오만이 갖는 시간의 특수성을 그가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 중에 확실하게 반영시켰다. 반영된 그의 비디오 이미지는 관조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활성적인 객체, 즉 또 하나의 주체가 되어 지각주체와 상호 주관적 소통을 이루어 '인간 의식의 확장'을 경험케 한다. 이러한 그의 독창성은 전혀 새롭지만 가능한 방식을 도입하여 예술을 일상생활의 실제적인 영역속에 포함 시켰다
따라서, 백남준은 비디오라고 하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시간적으로 효과 범위가 넓은 매체를 사용하여 삶과 예술을 집결시켰으며, 예술가의 사명은 기술 및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생활에 기여 할 수 있는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며, 관객과의 참여와 상호 소통으로 인하여 삶의 예술화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의 이러한 낙관적인 신념을 그의 비디오 아트를 통해 표현한 것이었다
http://www.eduart2000.com/nonmun/nonmun/박혜정00.hwp 내용출처
백남준의 플럭서스(Fluxus)적인 자발성은 그의 경력을 통틀어 지속적인 맥락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한 비디오 아트의 화제 작가가 아니라, 백남준이 중요한 예술가로 부각되는 이유는 그의 재발성과 관련된 행동의 체계적 양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 로버트 모건 저《백남준의 단편들》NAM JUNE PAIK'95 ART AND COMMUNICATION. Gallery HYUNDAI
비디오는 현재까지 그 예술적 가능성이 개발되고 실험 중에 있는 예술 매체이며, 백남준 역시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비디오 예술은 일시적인 유행이나 일개주의(一介主義, ism)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예술적 영역이 확장되고, 매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미학이 탄생하는, 열린 개념의 예술이다. 그러므로 비디오 아트는 예술에 대한 고정 관념이나 기존의 예술 개념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비디오 예술의 이해는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뿐 아니라, 예술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요구
) 김홍희 저《백남준과 그의 예술》p.12 ,디자인 하우스, 1992, 서울
하고 있는데, "꼴라쥬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 하듯, TV 브라운관이 켄버스를 대신하리라"는 그의 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백남준이 미술가로서의 방향제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존 케이지(John Cage)인데, 그것은 백남준이 음악도로 출발했던 배경과 케이지의 배경이 흡사하고 또한 비디오 예술이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

 

꼭 도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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