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수많은 과학적 패러다임과는 달리, 진화생물학의 패러다임은 항상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재미있는 일이죠. 누구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하여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핵폭탄을 발명하여 모든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만, 그의 이론은 핵폭탄의 원리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핵폭탄의 위력을 항상 두려워했으며, 미국의 핵폭탄제조계획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는 그 이론의 기초가 되는 자연선택의 원리부터 가장 최근의 첨단 이론들까지 모든 면에 걸쳐 그 반대자들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물론 모든 과학적 이론은 항상 그 반증가능성을 갖게 마련이고, 진화론 이외의 다른 과학이론들도 항상 그를 반증하기 위한 다른 과학자들의 공격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의 반대자들은 정식으로 생물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아니라 아마추어 생물학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나 종교이론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진화생물학자들이 과학적 반론을 펴고자 해도 반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진화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를 풀고 많은 반대론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반론을 몇가지 아래에 적어보겠습니다.
1. 인간은 원숭이, 혹은 침팬지에서 진화하였다?
-> 그렇지 않습니다. 진화는 항상 한가지 생물종에서 다른 변종이 생겨나거나 한 생물종이 둘 이상의 전혀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인간과 원숭이, 침팬지는 모두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분화되어 나왔습니다. 인간과 원숭이는 한 조상에서 갈라진 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합니다만 수천만년 전에 둘로 갈라져 나왔습니다. 인간과 침팬지는 비교적 최근에 갈라져 나왔는데, 약 600만~800만년 전에 분화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면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인간도 침팬지도 아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종입니다. 그것이 진화적 어떤 사건에 의해 멸종하고 후손인 인간과 침팬지만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입니다.
2. 단순한 원핵생물이 인간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더미에서 갑자기 점보제트기가 솟아오르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왜 사실인고 하면, 원핵생물과 인간의 복잡한 정도의 차이는 쓰레기더미와 점보제트기의 복잡한 정도의 차이보다도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이유는, 쓰레기더미에 비해 원핵생물은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원핵생물에게는 자손을 퍼뜨릴 능력이 있습니다. 바닷속에 퍼져있었을 수십억개의 원핵생물중 단 한마리라도 생존에 유리한 어떤 특성을 획득했다면, 그 특성을 획득한 개체의 자손들은 빠른 시간 내에 퍼져나가 결국 그 특성을 획득한 생물이 주변 지역 전체를 지배하게 됩니다. 원핵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진화는 그런 변화 하나하나가 계속 쌓여 이루어진 것이지 어느날 기적처럼 인간이 솟아오른 것이 아닙니다.
둘째, 원핵생물에게는 30억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로또를 열장 샀는데 열장 중 하나도 당첨되지 않았다고 기업을 상대로 고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혼자서 900만장을 구입해 모두 서로 다른 번호를 적어서 하나도 당첨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고소할 자격이 있습니다. (로또의 서로 다른 번호의 가지수는 840만가지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적은 확률이라도 수억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는 기적에 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3. 진화론에 반대하는 생물학자들도 많이 존재한다?
진화론은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패러다임입니다. 현대 생물학의 발견 중 진화론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때문에 대부분 대학교의 교양 생물학 교재들은 먼저 진화론에 대해 가르치고 나서 다른 주제들을 강의합니다. 진화론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학자들 중에는 실제 생물학 연구실에는 가 보지도 않고 논문만 발표하는 사람도 비일비재합니다. 진화론이 반박해서는 안될 신성불가침의 학설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반대자들의 논거가 빈약하다는 뜻입니다.
4. 진화는 화석으로 추측한 결과일 뿐 실제 일어난 적이 없다?
-> 먼저, 고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소진화와 대진화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진화(小進化)는 핀치새의 부리가 여러 세대가 지나 먹이를 먹기에 더 알맞은 모양으로 변화한다거나, 세월이 지나면서 곤충들이 살충제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거나 하는 등 생물의 유전적 특징에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지만 생물이 전혀 다른 종이 되지는 않는 작은 규모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대진화(大進化)는 사람과 침팬지가 같은 종이었다가 두개의 다른 종으로 갈라져 나오는 것처럼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큰 규모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진화 현상 중 소진화는 충분히 여러번 목격되었고, 그 원리와 메커니즘도 정확히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대진화는, 특히 복잡한 생물의 진화일 경우 그것이 일어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이 수백만년에 달하기 때문에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화석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한, 동시대에 전혀 몰랐던 새로운 생물종이 등장한다 해도, 그것이 여태 존재했지만 아무도 발견한 적이 없을 뿐인지 아니면 새로운 종의 탄생인지는 구별할 방법이 없으므로, 대진화를 실제로 목격하는 것은 더욱 힘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보지는 못했지만 기록과 유물을 통해 고조선의 존재를 의심치 않는 것처럼, 생물학자들도 진화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5. 진화는 하등한 생물에서 더 고등한 생물이 태어나는 과정이다?
-> 진화는 주변 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적응하는 자연선택을 통해 이루어질 뿐, 자연선택이 항상 더 고등한 생물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은 더 잘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을 선택할 따름이므로, 더 복잡한 형태의 생물이 더 단순한 형태로 진화한 예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이 밟아온 진화과정이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런 형태의 진화가 잘 알려져 있는 것 뿐입니다. 인간과 박테리아의 차이는 고등한 생물과 하등한 생물의 차이가 아니라, 복잡한 형태의 생물과 단순한 형태의 생물이 갖는 차이일 뿐입니다. 때문에 현대 생물학에서는 하등생물과 고등생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쓰다보니 진화론을 옹호하기보다는 진화론에 대한 강의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진화론의 옳고 그름을 논하시려면 진화론에 대해 아시는 것이 순서겠지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