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의 행복과 현대인의 행복]
한동안 서구인들은 풍요로운 사회가 바로 인간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거져 가져다 주는 것으로 착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기술 문명의 진보로 인류는 풍요로운 세상을 이룩하게 되고 이렇게 하므로써 저절로 행복이 도래한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지금도 이러한 순진하고 어처구니 없는 과학 유토피아를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기술 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인들이 과연 그렇지 못했던 옛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기술문명, 물질문명의 발달에 비례하는 행복이 도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거의 공감을 가질 것입니다.
옛날 ㅡ 예컨대 조선조 말 ㅡ 우리 선조들은 봄 기운이 무르익으면 서로 모여 뒷동산으로 천렵을 갔습니다. 조촐한 술상을 준비하고 가재 등을 잡아 막걸리 안주를 삼아서 시조를 읊조리면서 친목을 다짐하고 하루를 즐겼던 것입니다. 지금은 자가용을 몰고 명승지에 가서 양주를 들이키며 카세트를 틀어놓고 팝송을 부릅니다.
그 기술적 차이는 천지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그 즐거움의 강도도 천지 차이일까요? 나로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술 문명의 발달이 숱하게 늘어난 인종들의 욕구의 불만족을 해소하는 데에는 공헌했지만 행복의 질량을 크게 향상시키는 데에 공헌한 바는 ㅡ 당연히 당시보다는 향상되었다 할 것입니다만 ㅡ 혁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진실과 가식이 혼동되는 미래 사회]
얼마 전의 신문에 경남 어느 군수가,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의 합성술을 이용, 대통령과 합석한 듯이 사진을 위조한 사건이 있었음을 보도했습니다. 아직은 이러한 일들은 애교(?)로 보아 줄 수 있을 겁니다만 먼 미래에 사진은 물론 인간 복제술 등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복제하고, 현실 세계와 혼동할 수 있을만한 가상적 세계를 재현하는 경우, 그 놀라운 기술 문명에 대해 그때의 사람들이 얼마나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과학적 사조의 팽배와 인간성 상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미래의 이상향을 저절로 가져다 주는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과학의 발전, 그 기술을 이용한 공학 문명의 상상을 불허하는 발전의 겉보기만을 보고 갘탄을 금치 못하면서 과학의 발달이야말로 인류의 무궁한 미래를 보증할 행복의 복권이라도 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지금은 과학이라는 말을, 모든 것의 해결사처럼 믿는 과학만능시대입니다. 자연히 인간 자신을 돌볼 줄을 모르고 과학의 발전만으로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양날의 칼, 기술 문명의 폐해]
그러나 일부에서는 과학기술 문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는 사싱을 확연히, 또는 어렴프시 느끼는 사람들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가 행복이나 이상을 실현시켜 주는 도구가 결코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문명은 그 자체로도 양면의 칼이어서 이로움을 주는 반면 해로움도 야기하는 것입니다. 대량 살상무기의 발달과 핵무기의 등장 등은 그러한 유명한 예증들입니다.
[적응성향의 부적응에 따르는 문제점]
그런데 위와 같은 문제점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이미 제시되었던 것들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아무도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 제기가 되었더라도 그 원리가 명백하게 제시된 바가 없는 점 한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생체의 적응 성향과 과학기술 문명의 속도와의 괴리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는데 지능은 세계 이해의 가장 효율적이고 명료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지적(知的)인 이해심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재언이 필요없습니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정세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지능에 의해서는 번개처럼 재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정세라고 해도 그러한 정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빈번한 접촉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술문명의 발달 속도는 이미 이러한 적응 능력을 훨씬 초과하고 있습니다. 즉 두뇌의 지능에 의해서는 이해 가능한 현상임에도 이에 관한 본능적/ 의식적 적응이 미쳐 따르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괴리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지금 인류가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이로 인한 현상이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살던 옛날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현상입니다. 그 당시에도 세상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적응 가능한 정도의 속도로 변화되었으므로 변화는 오히려 긴장을 유발시키고 생을 약동하게 하는 활력소가 되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기술문명의 발달 속도에 적응하기가 아주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어떤 화학물질이 생태계에 독이 되는 이유는 그것 자체의 독소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체가 그것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적응 후에는 독소도 이미 독소가 아닐 수 있는 것(담배를 상기해 보십시오)인데 아마도 그러한 물질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 천년에서 수 십만년이 필요할른지도 모릅니다.
정신지체 어린이가 학교에 입학하여 수업을 받게 될 때의 적응의 곤란함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겁니다. 수많은 지식들을 내것으로 익히기(이것도 적응의 한 현상입니다) 위해서 정상아들도 막대한 정력을 들여가며 적응해야 합니다. 그나마 그것들은 지능에 의한 적응이지만 본능적인 적응에는 더욱 커다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은 이처럼 인간의 적응 성향에 심대한 시험대가 되어 인간 심리의 불안과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 내용이 길어서 생존 경쟁의 원리인 인간의 상대적인 자기 과시욕과 기술문명의 관계에 관해서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