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명론(安命論)
장자의 생활태도 중 기본원칙은 안명무위(安命無爲)이다.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命 같은 데 편안히 하는 것은 德이 있는 자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무심'무정하여 편안히 命을 따르는 것은 도덕 수양의 가장 높은 단계로, 지극한 德을 갖춘 사람만이 이러한 생활 원칙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자연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인간의 의지로는 운명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 때문에 命 중의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추구하지 않는다.
무릇 대지는 나에게 형체를 주어 싣고, 나에게 生을 주어 수고롭게 하며, 늙음을 주어 나를 편안하게 하며, 죽음을 주어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내가 삶을 좋다고 한다면 죽음도 좋다고 해야 한다.
소위 안명무위(安命無爲)는 사실 피동적인 생활 방식의 일종이다. 즉, 부득이한데서 맡겨서 순순히 그냥 外物에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궁궐 안에서 노닐지만 명예나 지위, 이득, 복록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애써 다투지 않고 억지로 간하지 않는등 모든 것에 피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장자는 이것을 生을 온전히 하고, 우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식하였다. 장자가 말하는 무위의 형식은 편안히 命을 따르는 것이고, 그 내용은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며 무엇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 목적은 자득자적(自得自適)하고 소요자재(逍遙自在)하는 것이다. 장자에게서 無爲는 安命과 통하여 하나가 된다. 그 특징은 절대무위이고, 무심히 명을 따르는 것이다.
* 진지론(眞知論)
장자 사상은 정신적인 경지를 창조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인식의 관계는 넘어서 있다. 감각적 경험은 정신활동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장자는 內觀的 지식의 실재성을 주장한다. 내관적인 지식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언어를 초월하는 특징이 있으며, 자각에 의해 파악된다. 그의 인식체계에서 언어나 문자 및 개념 분석의 방법은 항상 무시된다. 선가(禪家)에서 주장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도 장자의 이러한 사상과 관련이 있음직하다. 서적을 고인의 찌꺼기라고 혹평하는 '편륜'의 비유는 체험의 고귀함을 말하는 것이다. 기술에 빗대어서, 도를 터득하는 길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우화에서는 우리가 언어나 문자를 통하여 이전 사람들의 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음미하는 이전 사람들의 문자라는 것은 찌꺼기에 불과ㅤㅎㅏㄷ. 사실, 인간의 마음은 문자로 표현할 수 없고, 정신적인 경지는 왕왕 고정적인 방식으로 전수할 수 없다. 단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을 뿐이다.
언어나 문자에는 늘 사용자의 기교가 잇기 때문에, 장자는 사람들에게 言無言, 즉 주관적인 편견이 들어 있지 않은 말을 하자고 주장한다. 장자의 앎은 주체의 정신적인 체득을 중시한다. 그가 보기에 앎은 반드시 구체적인 삶의 단계로 내려와, 정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용을 해야 한다. 장자는,
眞人이 있은 후에 眞知가 있다.
라고 하는데, 진지(眞知)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인식 주체의 깊은 체험을 통해서 나온다. 진인은 이러한 진지를 획득하는 필요조건이다. 즉, 열린 마음과 열린 시야, 그리고 넓은 마음이 있어야 眞知를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자 제 1편, 소요유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새를 가지고 광막한 세계를 보이고, 인간의 시야를 넓혀준다. 끝없이 넓은 이런 세계에서 인간의 마음은 자연히 넓어지고 정신은 호방해진다. 장자가 말하는 眞知와 大知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진지는 자연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해하며, 관조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천인합일 사상은 인간과 자연을 융화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둘째, 眞知는 변화가 만물의 본래 모습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만물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변화뿐만 아니라, 객관의 변화를 통찰해야 한다. 변화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갑에서 을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 역시 이러하다. 삶과 죽음이란 氣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과정임을 이해하고, 이런 변화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셋째, 眞知는 지식의 범위는 무한하고 생명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유한한 생명 속에서 얻은 지식을 어떻게 운용하여 인생을 평안하게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만일, 능력을 벗어나 맹목적으로 지식을 추구한다면 몸과 마음이 상해 편안할 수가 없다. 즉, 인간의 인식능력과 지식의 범위를 성찰하라는 것이다.(비판적/반성적 인식론) 그래서 지식의 탐구가 일정 범위를 넘어, 道가 지나치면 적당한 곳에서 멈춰야 한다. 총괄하면, 眞知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과 인간의 관계 및 생명의 관계를 이해하게 한다. 또한,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편안하게 할 방법을 찾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