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주일대 민족국가1
북부여(부여)(夫餘, 기원전 2세기~ 494년) :(c.108 BCE–494년 고구려에 병합)
기원전 2세기경부터 500여 년 간 예맥계의 부여족(夫餘族)이 세웠던 부족 국가로서, 일명 북부여라고도 한다. 현재의 북만주 농안(農安)·장춘(長春) 일대에 웅거하여 동은 읍루(挹婁), 남은 고구려 및 현도군, 서는 선비(鮮卑), 오환(烏桓)과 인접하였었다. 농안 지역은 소위 동이(東夷)들의 주지(主地) 속에서는 가장 평야가 넓은 곳이었다.
삼국시대한국의 고대국가로 여겨지는 초기 국가들 중 하나로, 지금의 쑹화강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만주일대(하얼빈, 아청, 위수, 눙안, 창춘, 솽양, 지린, 옌지, 훈춘, 치치하얼, 룽장)를 지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로부터 기원한 국가로 추정된다.
동부여(東夫餘) (c.86 BCE– 410)
부여의 일부 세력이 동쪽으로 이동해 세운 나라이다. 두만강유역에 위치해 있었다. 동부여는 410년광개토대왕에 완전 병합 멸망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부여는 부여의 왕이었던 해부루가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졸본부여(卒本扶餘)
고구려 동명성왕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며 도읍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이다. 고구려의 첫 도읍은 위서(爲書)에는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하며, 졸본천(卒本川)이나 비류수(沸流水)가라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지역을 통틀어 졸본(卒本)이라 한다.
(남부여는 백제성왕이 538년 국호를 남부여로 개명)
낙랑군(樂浪郡)1세기 중엽에 있었던 고대 정권32년또는 37년에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에게 멸망한 나라이다.
대방군(帶方郡) 220-331년 평양북쪽지역 진번 임둔등 한사군이후 설립한 부족국가 고구려미천왕에의해 합병
한반도북부지역일대
옥저(東沃沮) :(c.2-5ce)
기원전 2세기이전부터 기원후 5세기에 함경남도북부에서 두만강유역 일대에 걸쳐 있었던 종족과 읍락 집단을 가리킨다.
동예(東濊:(bc,3 -4ce)
기원전 3세기 이전 ~ 3세기경에 한반도 동해안 일대에 자리잡았던 한민족의 초기 고대국가의 하나이다. 예(濊)라고 불렸으나, 넓은 의미의 예와 구별하기 위해 통상 ‘동예’라고 부른다.강원도 북부의 동해안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농사를 주업으로 하였고, 직조기술도 발달하였다. 산과 하천을 경계로 읍락이 구분되어 각 읍락을 삼로(三老)가 통치했다
한반도 남부
가야(伽倻)(220-562년)
삼국시대대부분 동안 한반도남부에 위치해 있던 부족국가의 연맹체였다. 동쪽으로 신라, 서쪽으로 백제를 접하고 있었다.
2~3세기경에 김해등지에 있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대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소가야의 5개국이 합쳐져 전기 가야 연맹이 성립되었으나 532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인해 금관가야가 큰 피해를 입자 5~6세기경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 연맹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역시 신라와 백제의 사이에서 위협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져가 결국 562년멸망한다. 삼국과 달리 제대로 된 국가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부족국가의 연맹으로 전락한 것이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야는 김해 지방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철을 바탕으로 국력을 키웠으며 왜 등지와 교역을 하기도 했다. 가야의 철기 문화는 뛰어난 수준으로 평가된다.
요약정리
고조선 (기자 위만조선) 부여 북부여 동부여는 고구려로 흡수 통합
백제는 마한이 뿌리
신라는 진한이 뿌리(가야6소국병합)
가야는 변한이 뿌리
삼국시대
고구려 (BC37-서기 668년)
건국배경
부족국가형태에서 최초의 민족국가를 건설하였으며 완전한 국가기틀을 마련
영토
고조선의영토를 승계하고 타 부족국가 부여 북부여 한사군등을 통일함
백제 (BC18-서기 660년)
건국배경
고구려시조 주몽과 건국동반자인 소서노가 왕위계승에 적서의 분쟁소지가 있어 자식을 데리고 한수(한강)지역으로 이동 하여 건국함
영토: 한강 주변과 한반도 중남부 일대
신라 (BC57-서기935년)
건국배경
한반도 남부지역 부족국가를 통합 최초의 대의기관에 의한 통치제도 확립
영토:경남북지역과 전남일부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