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의 탄생 - 높은 산과 섬이 많은 그리스
지금부터 약 4,000년 전 그리스의 에게 해를 둘러싸고 에게 문명이 나타났어. 에게 문명이 사라지고 난 후 그리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라. 하지만 마을과 마을이 모여 작은 나라들이 생겨났어. 그리스의 지도를 볼래? 높은 산과 섬이 많고 해안선이 복잡해서 지역 간에 교류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래서 큰 나라가 아닌 작은 도시 국가(폴리스, polis)가 생겨났어. 폴리스들은 대체로 한가운데에 있는 높은 언덕에 아크로폴리스라는 신전을 만들었어. 신전 아래에 있는 아고라라는 광장은 토론과 상업 활동을 하는 장소로 사용했지. 폴리스는 점점 많아져서 200~250개가 있었대.
폴리스들은 같은 신들을 섬기고 동족 의식도 강했기 때문에 4년마다 한 번씩 모여 올림피아 제전을 열었어. 올림푸스의 신들에게 시와 운동 경기로 제사를 지내는 거야. 각종 운동 경기 중 달리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멀리뛰기, 레슬링의 5종목이 가장 중요한 경기였어. 우승자는 월계수 잎으로 만든 월계관을 받고, 훌륭한 시민이자 병사로 존경을 받았대. 지금의 올림픽은 그리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1896년 프랑스의 쿠베르탱이 세계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로 만든 거야.
그런데 올림피아 제전은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었어. 여자들은 구경을 하는 것 조차도 어려웠지. 왜냐하면 남자들이 옷을 벗고 경기를 진행했기 때문이야. 그리스 인의 옷은 큰 천 하나를 접어서 어깨에 끈으로 고정시킨 뒤 허리를 묶어주는 형식이었는데, 이 옷은 뛰기만 하면 벗겨졌대.
민주 국가 아테네 - 누군가 독재를 할까봐 걱정돼
고대 아테네의 민주 정치
그리스의 수많은 폴리스 중 가장 발전한 곳은 아테네였어. 해안가에 있는 아테네는 일찍부터 바다를 통해 상업 활동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지. 차츰 평민 중에도 장사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방패와 창을 스스로 구입해서 전투에 참가하기 시작했어. 이들을 중장 보병이라고 해.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당연히 이들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어.
시민들은 지위가 높아지면서 정치에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했어. 그러자 솔론은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 그렇지만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끊이지 않았고, 대립을 이용해 독재자가 나타나기도 했어. 클레이스테네스는 여러 개혁을 통해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평민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제도를 만들었어.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도편 추방제야. 종이가 없던 그리스에서 매년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를 열고, 도자기 조각(도편)에 독재를 할 것 같은 사람의 이름을 적는 거지. 6,000표 이상이 나온 사람은 10년 동안 국외로 추방당했대. 관리를 뽑을 때는 추첨 제도나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한 번씩 했고, 중요한 일들은 회의를 통해 결정했지. 이렇게 직접 모든 일을 함께 결정하는 방법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시작이 되었어.
현대의 민주 정치와 닮은 점, 다른 점
모든 일을 직접 결정하기는 했지만 여자와 외국인, 노예는 제외시켰기 때문에 아테네의 민주 정치를 제한된 직접 민주 정치라고 불러. 현대의 국가들은 아테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기 때문에 한곳에 모일 수가 없어. 그리고 사회가 너무 복잡해서 모든 일을 함께 결정할 수도 없어. 그래서 시민을 대표해서 시민의 의사를 전달해 줄 사람들을 선거로 뽑아서 대신 정치를 하도록 하고 있어. 물론 여자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지. 그래서 현대의 민주 정치를 평등한 간접 민주 정치라고 부르고 있어.
군사 국가 스파르타 - 노예들의 반란이 걱정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스파르타는 땅이 넓고 토지가 비옥해서 농사가 특히 잘되는 곳이었어. 하지만 이곳에 처음부터 살던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고, 정복한 사람들이 시민이 되어 이곳을 다스렸어. 시민이 많은 수를 차지했던 아테네와 달리 전체 인구 중 10% 정도 밖에 안 되는 스파르타의 시민들은 혹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늘 걱정해야만 했어. 그래서 모든 시민은 군인이 되는 군사 국가를 만들게 되었지. 남자들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군사 훈련에 집중했고, 여자들도 체육 활동을 했어. 건강한 아이를 낳아 군대에 보내려면 어머니도 건강해야 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남자들이 전쟁을 나갔을 때 혹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여자들이 막아 내야만 했거든. 아들 6명이 전쟁터에서 모두 죽은 스파르타의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스파르타여, 나는 너를 위하여 죽으라고 아들 여섯을 낳은 것이다.”라고 했대.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 그리스의 쇠퇴
기원전 6세기 말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한 페르시아를 기억하지? 페르시아가 영토를 넓히면서 그리스 지역과 맞닿게 되었어. 그리스를 침략하려는 페르시아에 맞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많은 폴리스들은 똘똘 뭉쳐서 함께 싸웠어. 이 전쟁에서 그리스는 승리를 거두었고, 페이디피데스는 42.195km의 마라톤 평원을 달려 승리의 소식을 전한 최초의 마라토너가 되었어.
아테네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민주주의와 문화가 크게 발전했어. 아테네의 세력이 강해지자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스파르타는 이를 시기하면서 전쟁을 일으켰어. 결국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두 패로 갈라졌어. 이렇게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전쟁에 지친 폴리스들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에게 정복당하고 말았어.
서양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의 문화
그리스 사람들은 자유롭고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어. 다른 지역에서는 신이 용, 괴물, 번개 등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리스에서는 신들도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인간처럼 사랑을 나누고, 질투를 하고, 부부 싸움도 한다고 믿었던 거지. 인간처럼 생긴 신들을 조각하면서 발전시킨 그리스 문화의 특징을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문화라고 해.
신을 인간처럼 표현하면서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지. 자연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 또 시민들은 아고라 광장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신들의 모습을 조각한 미술과 신전을 만든 건축,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도 함께 발달했지.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를 담은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를 썼어. 슐리만이 트로이를 발굴해야겠다는 꿈을 키우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야. 그리스 문화는 알렉산드로스 제국과 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화로 이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