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관련 (한국군)

베트남 전쟁관련 (한국군)

작성일 2021.03.01댓글 5건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베트남 전쟁때 죽었던 베트남 사람들의 유가족 분들이 우리나라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잖아요

근데 베트남 사람들은 다른나라(미국)에게도 사과를 요구하나요?

물론 군인이 민간인을 죽인건 잘못한건 맞지만
전쟁이였잖아요 같이 있던 동료가 베트남 사람때문에 죽는 모습을 보는데 더 미치고 더 예민해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베트남은 제네바 협정 무시하고 민간인에게 총소지하게 했다고 들었는데요 그 민간인들은 한국군에게 위협을 했고요
그당시 베트남군들은 군복을 입지 않고 총을 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어요 그런 사람들을 누가 군인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별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베트남전쟁 한국군에 대해 알고 있는건 여기까지 인것 같아요
제가 쓴 것들 중에 잘못된 얘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역사에 대해 배우고 있는 학생이거든요 :)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 베트남 전쟁때 죽었던 베트남 사람들의 유가족 분들이 우리나라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잖아요

근데 베트남 사람들은 다른나라(미국)에게도 사과를 요구하나요?

아닙니다.

베트남 정부나 베트남 사람들은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이거나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베트남은 공산당이 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권위정인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입니다.

따라서, 베트남 정부의 허락 없이,

베트남인 개인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허용하는 국가가 아니며

베트남정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하여 다른나라에 대하여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전에 대하여

다른나라가 그릇된 사실로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는

베트남 정부에서는 강력하게 항의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어떤 나라에도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2. 일부 베트남 민간학살 피해자가 사실조사와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때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 피해를 받은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 일부 사건 당사자

또는, 유족의 경우 한국의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대한민국 정부 또한 국회에 이에 대한 진상조사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청원을 하기도 하고,

일부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는 민사 재판을 청구한 한 경우는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이들은 한국내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3. 베트남 전쟁중 민간인이 살해된 경우가 있었다는 데 ~

그 당시 베트남군들은 군복을 입지 않고 총을 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어요

그런 사람들을 누가 군인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별할 수 있었을까요?

누가 적군이고 민간인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우선,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남북으로 대치하는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전투지역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 즉, 서쪽에 있는 베트콩과 전선을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

한국군이 주둔한 지역은 베트남의 동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주둔했고

베트콩들은 베트남 서쪽 지역의 산악지역과 밀림지역

또는 남베트남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마을 ( 북베트남은 해방지역이라고 부릅니다. )을

기반으로 해서, 활동 했기 때문에

한국군은 주로 서쪽에서 활동하는 베트콩과 대치했습니다.

베트콩들은 정규군은 아니지만,

정규군에 준하는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평상시는 대부분 마을에서 일상생활에 종사하다가

소집 명령이 있을 경우, 숨겨놓은 무기를 들고 전투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해방지역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이들 베트콩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즉, 베트콩의 구성원은 이들 해방구역의 젊은이 들이 대부분이었고

반민 반군 형태로 군사훈련과 일상생활을 유지하다

필요시 소집되어 전투에 임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전투가 끝난 후에는 다시 마을로 돌아와 신분을 위장하고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젊은 남자는 쉽게 베트콩 신분이 드러나므로

이런 사람들은 한국군 주둔지역에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숨어 지냈습니다.

반면, 여성이나 어린아이들 중에도 이들 베트콩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소떼를 몰며 풀을 먹이던 어린 아이가 한국군의 매복 여부를 파악하고

들판에 불을 피워 베트콩에게 알리는 행위 등이나

한국군의 동향을 자세하게 파악해서

베트콩에게 수시로 알려주는 행동등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고 봐야 맞습니다.

이런지역에서 한국군이 작전을 벌일 때는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공격을 받을 지 알 수 없는 겁니다.

따라서, 이런 지역은 무차별사격구역 ( Free Fire Zone )으로 간주하고

작전에 방해가 되는 대상은 누구든지 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는 대부분은 이런 지역에서 발생한 겁니다.

4. 한국군은 선량한 베트남인과 베트콩을 분리하는 작전을 폈습니다.

한국군은 민간인 거주지역의 주민들이 베트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베트남인들을 한국군 평정지역에 이주해서 거주하도록 했으며

이들 지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선량한 베트남인이 희생되지 않도록

당시, 채명신 주월 한군군 사령관은

민간인을 함부로 살해하지 않도록 지시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는 강력하게 처벌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전지에서 베트남인을 강간한 한국군을 군사재판에 넘겨 사형으로 처벌한 경우도 있었고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오인해서 사살하게 명령한 소대장을 군사 재판에 넘겨

1심 사형, 2심,3심 무기징역의 처벌을 받게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 무기징역의 형을 확정받은 김ㅇㅇ 장교는 실제로

국내에서 15년간 (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징역살이를 했으며,

나중에, 모범수로 15년만에 가석방 되었을 정도 입니다.

5. 2차세계 대전중 일본군의 잔학행위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을 동일시 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 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여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군의 경우는 민간인 학살에대하여 범죄행위로 취급했지만,

일본군의 경우는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적극 장려했었습니다.

2차세계 대전중 일본군의 잔학행위는 일일이 예를 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이들 사실을 대부분 부정하고

오히려, 당시 아시아인의 행복을 위해서 일본인이 전쟁을 대신하면서 희생했다고

미화하고 있을 정도 입니다.

일본은, 명백하게 알려진 사실 조차도 인정 하지 않는 데,

자신들이 과거에 대해서 사과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베트남전의 한국군을

2차세계 대전의 일본군과 동일시 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6. 베트남에선는 민간인과 적군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베트남 전에서는 적군과 민간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 사람 전체를 적군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소위 말하는 해방지역 ( 베트콩의 세력이 미치는 구역)에서는 더욱 심했습니다.

아래는 베트남 전쟁 종전후 북베트남이 만든 영화의 장면중에서 캡춰 화면입니다.

당시, 마을전체 주민이 베트콩을 숨겨주고,

남베트남군을 속이며 공격하는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속의 장면과 같은 실제 상황이 한국군 주둔지역에서도 실제로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무장한 여자 공산 게릴라 ( 베트콩 )이 남베트남 군을 공격합니다

공격후 미리 준비한 땅굴에 몸을 숨깁니다.

땅굴에서 남베트남 군의 동태를 살피며 공격의 기회를 엿봅니다.

땅굴에 숨어있던 여자 베트콩은 갑자기 수류탄을 던져 남베트남 군을 공격합니다.

여자 베트콩은 남베트남 군을 기습공격한 뒤, 마을 쪽으로 재빨리 도주합니다.

여자베트콩은 마을사람들이 대피해 있는 방공호로 달려갑니다.

다른 마을 주민이 여자 베트콩이 갈아 입을 다른 옷을 재빨리 가져옵니다.

여자 베트콩은 옷을 재빨리 갈아 입고, 방공호속에 있는 다른 주민 속에 몸을 숨깁니다.

주변의 다른 사람이 여자 베트콩의 무기와 옷을 강물 속에 숨깁니다.

남베트남군이 베트콩이 숨어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마을을 수색할 때

숨어있던 여자 베트콩은 아이를 안고 마을주민과 함께 방공호 밖으로 나옵니다.

마을 주민들은 여자 베트콩이 엉뚱한 방향으로 도주했다고 말하며 남베트남군을 속입니다.

그래도 의심하는 남베트남 군에게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이 거짓으로 둘러댑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거짓으로 둘러대며 여자베트콩이 숨는 것을 도와 줍니다.

마을주민들에 속은 남베트남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도록 돕는데, 이들 주민중에는 여자 베트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여자 베트콩은 마을에 숨어 있던 다른 베트콩과 힘을 합쳐, 다시 남베트남군을 기습 공격합니다.

많은 남베트남 군이 죽고, 남베트남군의 지휘관은 베트콩의 포로가 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베트남 사람들에게 전혀 미안함 감정 가질 필요 없어요.

이유는 베트남 전쟁은 미국때문에 한국이 참전한거라는 베트남 사람들도 다 알아요.

그리고 베트남은 캄보디아 침공해서 캄보디아 사람들 많이 죽였어요.

그건 왜 사과 안하죠?

이말 베트남사람한테 하면 갑자가 아무말도 안하더군요.

베트남에 있었을때 웃긴게

한국군인 욕하는 한국학과 다니는 베트남 여학생을 봤는데

한국군 욕하면서

한국어 배우고

한국회사 취업할려고하고

심지어 애인도 한국 남자였어요.

베트남 신경쓸거 없어요.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요.

한국에있는 베트남인 범죄건수가 매년 2000건 정도래요.

이건 베트남 정부가 사과안하고 대책도 없잖아요.

반면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범죄하면 신문에 나올정도로 적어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베트남의 전쟁 피해자 유족들이 배상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베트남의 공식적인 입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에 방문했을 때 '과거 서로 적으로 만나서 미안했다'고 사과하자 동행하던 베트남 장군 중 선임자가 '우리가 이겼으니 연연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 이후로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군대가 베트남에 가서 싸웠을 때 대부분의 전투는 베트콩과의 전투였는데 베트콩은 신분 자체가 민간인이며 베트남 공화국 국적자로 미군의 상대인 월맹이 아닌 월맹을 따르는 월남인들이었습니다.

제네바 협정에서는 교전권, 싸울 수 있고 그에 따라 정당한 포로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먼저 무기를 숨기지 않고 적이 볼 수 있게 소지해야하며 통일된 복장이나 표식을 착용해 소속을 드러내야만 하는데 베트콩들은 여기에 해당이 안 됩니다. 신분 자체도 민간인이고...

그래서 누가 누구인지 몰라서 오인사격을 한 경우도 있고 어떤 장교도 부하들을 이끌다가 밤에 일반 시민들과 조우했을 때 베트콩인지 분간 못해서 그대로 공격한(본인주장)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군사법원은 인정하지 않았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가 유기징역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님 글 본문에는 동료가 죽으니 화가 나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좋지 않은 발상입니다. 오인사격이 있었다 하더라도 생명이 사라진 이상 반성해야 할 문제지 너희들이 교전권도 없으면서 덤볐으니 상관 없는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나 교전권도 없는 작자들이 기습해대서 전우가 죽었으니 민간인을 죽일 만도 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베트남전은 일치단결된 민족주의와 탐욕과 정신병적인 제국주의-당시 미국은 베트남이 공산화 되면 베트콩들이 카누를 타고 미국에 상륙해서 전쟁할것이라는 말도안되는 소리같은 이야기를 진짜인양 믿었다고 합니다 의 싸움에서 민족주의가 이긴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전쟁에서-이 미친 미국의 강도짓같은 전쟁에서- 한국군은 5000명 이상의 전사자와 1만명 이상의 부상자 그리고 훨씬많은 고엽제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어떤 보상도 없었으며 고엽제 생산업체였던 다우코닝과 몬산토는 미군 고엽제 피해자에게는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한국 고엽제 피해자에게 배상의무가 없다며 아직도 뻐팅기고 있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진실이 아닙니다. 당시 한국군은 용맹했습니다. 너무 잘 싸워서 베트공들은 전면전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 여론전으로 시민들 학살하고 한국군에게 뒤집어 씌운겁니다. 이를 알고 있는 베트남 정부는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고 침묵 중이었는데 베트남 민간인 중 한국군 희생자라며 한국에 소송했고 기밀문서 해제를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조사를 하던중 당시 시민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는데 한국군은 먹을것을 나눠 줬으며 자신들을 보호해 줬다는 증언들이었지요! 최근 미국 기밀문서에서도 베트공 짓이라고 나왔으며 정황과 사진 속 조작 증거까지 모두 들어났습니다. 이렇게 몸바쳐 충성한 한국군에게 한겨레 신문과 정체모를 시민단체, 그리고 인권단체는 직접 베트남에 찾아가 보상한다며 선동해서 한국에 소송하라고 부추겼습니다. 이것이 애국자를 대하는 태도입니까? 만약 전쟁이 또 다시 일어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싸울까요? 전 절대 싸우지 않고 도망갈것 같네요! 더 웃긴건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누구 하나 사과하는 언론이 없습니다. 한겨레와 시민, 인권 단체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짓밟은 애국 국민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유린해 놓고 왜 사과하지 않습니까?

베트남전쟁 한국군 만행

... 제목처럼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여성을 강간해서 라이따이한이라는... 모아 관련 희생자에 대한 위령비 건립, 특파원 보도. 4. 무엇을 감추었다고 보십니까?...

베트남전쟁 한국군만행??

베트남전쟁때 우리나라군인들이 베트남민간인들을... 모아 관련 희생자에 대한위령비 건립 추진 베트남전당시... 13건중 한국군만행만 8건 입니다 베트남 민간단체가...

베트남 전쟁 한국군의 만행에 대한 진실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일제시대 일본군과 같이 민간인 학살과 여러 베트남... 베트남인들은 관련자료와 사료를 보유하고 박물관에는 전시도 해두면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한국군 파병

제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 파병에 관한 내용을 조사해야 하는데 만족할만한 정보를... 브라운 각서에 대한 내용 그밖에 한국군관련된 내용라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꼭 한국군을 파병해야...

베트남 전쟁에 꼭 한국군을 파병해야 했던 이유를 여러 가지 적어주세요.(4가지 이상)... 미국의 일반회계국이 1973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과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