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70)이거 보신분 바로 답변 부탁 사회4학년2학기 사회 12쪽에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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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09.02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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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보시면 아는 분 바로 부탁

4학년2학기 사회12쪽에 나오는 역사지도 옆에5가지 석탑 이름좀..

뽀너스로 시대랑 위치 자세히좀 알려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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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연도

석탑이름

특징

삼국시대

630~

660년경

정림사지 5층 석탑

충남 부여군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9호이다.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좁고 낮은 기단위에 5cm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600~

640년경

미륵사지 석탑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11호 이며, 백제시대의 탑이다. 한국의 시원양식으로써 목탑이 석탑으로 이행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탑이다. 탑의 규모로 보더라도 우리나라 석탑 중 최대의 걸작이다. 무너진 시맨트를 보강하여 아쉽게도 반쪽탑의 형태만 남아있다.

634년경

분황사 석탑

경북 경주시에 있는 분황사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30호이며 신라 선덕여왕때의 탑이다. 현제 남아있는 신라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석탑이다. 원래는 9층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통일

신라시대

780년경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충북 충주시에 있는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6호이다. 남한강의 경관과 잘 어우러저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당시에 세워진 석탑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우리나라 중앙에 있어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다.

682년

감은사지 3층 석탑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112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2중의 기단에 3층 석탑으로 동/서 모두 같은 구조이다. 감은사는 682년에 창건되었으며 이 탑의 건립도 그 무렵으로 추정되어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석탑이다.

686년

고선사지 3층 석탑

경북 경주시 경주국립박물관 안에 위치한 고선사지 3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38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원래 경주 고선사지에 있던 것을 덕동댐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1977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고선사는 원효가 머물렀던 사실이 있으며 그의 업적이 686년이므로 이 탑의 건설연도를 그때로 보는 것도 타당할 것 같다.

751년

불국사 다보탑

경주 불국사 안에 위치한 다보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20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불국사 대웅전 서쪽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건립연대는 석가탑과 마찬가지로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중창한 당시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751년

불국사 3층 석탑

경주 불국사 안에 위치한 3층석탑(석가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21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탑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며 흔히 줄여 석가탑이라고 한다. 다보탑과 같이 김대성이 지었다.

고려시대

1419년

안국사 9층 석탑

평성시 봉학동에 있는 안국사는 고구려 문차명왕 12년전인 503년에 지었고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절의 본전인 대웅보전은 지어진 후 두차례에 걸쳐 보수했다고 한다. 이 탑은 2층의 불전으로 북한에 남아있는 사찰중 유일한 2층 건물이다.

1020년

현화사 7층 석탑

개성 현화사 7층 석탑은 북한 국보 제41호이다. 1020년에 세워졌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있고 그위에 양련과 보개가 있다. 기단면석은 방형이며 1단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직사각형처럼 쌓아 올렸다. 탑신은 위로 갈수로 크기와 너비를 줄여 안정된 균형감을 주며 연화와 불상은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1962년

월정사 8각9층 석탑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있는 월정사 8각9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48호이며 고려시대의 탑이다. 8각9층 석탑은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8각 다층탑중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그 보존에 있어서도 가치를 받는 탑 이다. 돌, 청동, 금동으로 만들어 졌으며 만든사람은 구체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1465년

원각사지 10층 석탑

서울 종로구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2호이며 조선시대의 탑이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13년에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며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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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역사  지도

 

 시대

석탑의 이름

건립 시기

특기 사항

삼국시대

정립사지
5층석탑

백제 후기

 정림사 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목조 건물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미륵사지
석탑

백제 후기(약 600년경)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석탑.
 목탑이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다.

 분황사 석탑

선덕 여왕
3년(634년)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3층석탑

신문왕
2년
(682년)

 감은사 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있는 석탑.
옛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 통일 직후 쌍탑 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고선사지
3층 석탑

통일 신라
초기

 원효 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통일 신라 시대 석탑 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불국사
다보탑

신라 경덕왕(751년)

 불국사 경냉 세워진 아름다운 탑으로, 건물의 모습을 띤 난간의 모양이 특이하다.

 불국사
3층 석탑

신라 경덕왕(751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인의 전설이 깃든 탑으로, 무영탑이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탑이다.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통일 신라
원성왕
때로 추정

 높이 14.5미터로, 현존하는 통일 신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된 2층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형성하였다.

 고려시대

안국사 9층
석탑

고려 시대

 평남 평성시 안국사 앞에 있는 탑으로, 몸체가 하늘을 찌를 듯 날렵하다.

 현화사 7층
석탑

 고려 시대

 고려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현화사에 있는 탑. 규모가 크면서도 균형이 잡히고, 세부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월정사 팔각
9층 석탑

고려 시대

 강원도 평창에 있는 월정사 대웅전 앞뜰에 있다. 상하가 균형을 이룬 대표적인 고려 시대 석탑이다.

 조선시대

원각사지
10층 석탑

조선 세조
13년
(1467년)

 원각사의 터에 남아 있는 탑. 대부분의 석탑의 재료가 화강암인 데 비하여 대리석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며, 세련된 조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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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연도

석탑이름

특징

삼국시대

630~

660년경

정림사지 5층 석탑

충남 부여군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9호이다.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좁고 낮은 기단위에 5cm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600~

640년경

미륵사지 석탑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11호 이며, 백제시대의 탑이다. 한국의 시원양식으로써 목탑이 석탑으로 이행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탑이다. 탑의 규모로 보더라도 우리나라 석탑 중 최대의 걸작이다. 무너진 시맨트를 보강하여 아쉽게도 반쪽탑의 형태만 남아있다.

634년경

분황사 석탑

경북 경주시에 있는 분황사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30호이며 신라 선덕여왕때의 탑이다. 현제 남아있는 신라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석탑이다. 원래는 9층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통일

신라시대

780년경

중원 탑평리 7층 석탑

충북 충주시에 있는 중원 탑평리 7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6호이다. 남한강의 경관과 잘 어우러저 있는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당시에 세워진 석탑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우리나라 중앙에 있어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다.

682년

감은사지 3층 석탑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112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2중의 기단에 3층 석탑으로 동/서 모두 같은 구조이다. 감은사는 682년에 창건되었으며 이 탑의 건립도 그 무렵으로 추정되어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석탑이다.

686년

고선사지 3층 석탑

경북 경주시 경주국립박물관 안에 위치한 고선사지 3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38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원래 경주 고선사지에 있던 것을 덕동댐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1977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고선사는 원효가 머물렀던 사실이 있으며 그의 업적이 686년이므로 이 탑의 건설연도를 그때로 보는 것도 타당할 것 같다.

751년

불국사 다보탑

경주 불국사 안에 위치한 다보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20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불국사 대웅전 서쪽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건립연대는 석가탑과 마찬가지로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중창한 당시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751년

불국사 3층 석탑

경주 불국사 안에 위치한 3층석탑(석가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21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의 탑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탑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며 흔히 줄여 석가탑이라고 한다. 다보탑과 같이 김대성이 지었다.

고려시대

1419년

안국사 9층 석탑

평성시 봉학동에 있는 안국사는 고구려 문차명왕 12년전인 503년에 지었고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절의 본전인 대웅보전은 지어진 후 두차례에 걸쳐 보수했다고 한다. 이 탑은 2층의 불전으로 북한에 남아있는 사찰중 유일한 2층 건물이다.

1020년

현화사 7층 석탑

개성 현화사 7층 석탑은 북한 국보 제41호이다. 1020년에 세워졌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있고 그위에 양련과 보개가 있다. 기단면석은 방형이며 1단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직사각형처럼 쌓아 올렸다. 탑신은 위로 갈수로 크기와 너비를 줄여 안정된 균형감을 주며 연화와 불상은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1962년

월정사 8각9층 석탑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있는 월정사 8각9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48호이며 고려시대의 탑이다. 8각9층 석탑은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8각 다층탑중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그 보존에 있어서도 가치를 받는 탑 이다. 돌, 청동, 금동으로 만들어 졌으며 만든사람은 구체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1465년

원각사지 10층 석탑

서울 종로구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우리나라 국보 제2호이며 조선시대의 탑이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13년에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며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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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비파형동검 [琵琶形銅劍]

 

중국 둥베이[東北]지방의 랴오허강[遼河]를 중심으로 랴오닝지방[遼寧地方]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에 랴오닝식 동검이라고도 하며, 8 ·15광복 전에는 만주식동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용어는 비파형동검이 나오는 지린[吉林] ·창춘[長春]지방이나 한반도를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근 중국학계에서 사용하는 곡인(曲刃)청동단검이라는 용어가 지금으로서는 제일 타당하다.

이 동검의 특징은 그것이 검몸 ·손잡이 ·검자루맞추개돌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조립식으로 된 점이다. 검몸은 비파처럼 날의 아래가 둥글고 검날 가운데에는 돌기부가 있으며, 이 돌기부 양쪽에는 날이 얼마간 휘어 들었다. 검 한가운데는 등대가 뿌리부터 칼 끝까지에 이르렀는데, 이 등대에는 흔히 등날이 섰으며 대개 중앙에 있는 마디 위로 뻗어 있다.

검의 자루는 T자형으로 되었고 나팔형으로 된 끝 부분에 칼뿌리를 꽂게 되어 있다. 이런 검자루에는 대개 번개무늬 ·삼각무늬를 돋쳤는데, 검자루맞추개돌을 맞추개틀에 끼우고 그 위에 구멍 있는 청동제 덮개를 씌우면 검이 완성된다. 이러한 동검의 형식은 크게 검몸의 형태에 따라 전형적인 돌기부와 휘인 몸체를 가진 제1식동검과 그의 변화한 형태인 제2식동검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양자의 발전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북한 학계에서는 초기 유형은 동검의 길이가 짧고 양쪽의 곡인이 뚜렷하여 피홈이 검끝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이러한 초기 유형의 검이 점점 곡인이 밋밋해지면서 길이가 길고 피홈이 상당히 내려와 시작하는 단계의 검으로 변해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짧은 길이의 고식(古式)검은 주로 랴오둥[遼東]지역의 돌널무덤[石棺墓]에서 미송리형토기와 함께 출토되고, 이후에 랴오시[遼西]지방 및 그 이동으로 전파된다고 보았다.

반면 중국 학계는 동검이 긴 것에서부터 짧은 것으로 변했고, 비파형검의 출토가 랴오시지역이 훨씬 많은 점을 들어 랴오시에서 랴오둥으로의 전파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비파형동검의 담당자 문제와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대체로 동북아시아의 청동기문화권을 동검을 표지로 하여 구분할 경우, 손잡이가 검몸과 붙어 주조되며 동물장식이 있는 오르도스식(Ordos式) 동검문화권, 날이 곧고 손잡이도 함께 만든 동주식(東周式) 동검문화권, 그리고 비파형동검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다.

이때 비파형동검문화권은 랴오시-쑹화강[松花江]-한반도에 걸치는 청동기문화권과 거의 일치하며, 넓은 의미의 예맥족(濊貊族)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랴오시지방의 청동기문화에는 북방계 요소가 강하게 있어, 그 담당자가 예맥과 고조선과는 다른 북방 유목민족, 즉 동호(東胡:烏丸, 鮮卑)의 문화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비파형동검이 랴오허강 유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러한 비파형동검이 랴오시와 랴오둥 중 어느 곳에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 형태, 반출유물, 묘제의 유사성 등으로 보아 한반도 지역에서 계승되었음이 분명하다.

한반도에서만 출토되는 좁은 놋단검의 크기가 비파형동검과 비슷하고, 검몸과 검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조립한 점, 검손잡이가 T자를 이루고 검자루맞추개돌을 장착하게 된 점 등이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따라서 비파형동검은 한(韓)민족인 예맥족의 문화요소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랴오시 일대에 보이는 북방 및 중국 청동기문화와의 지리적 ·종족적 구분은 이후의 많은 자료의 축적과 함께 검토가 좀더 요구된다. 최근 한반도 거의 전역에서 약 54점이라는 많은 양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고 있고, 이것이 또한 청동도끼의 거푸집과 세트를 이루어 출토됨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직접 비파형동검을 제작하였음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한반도를 비파형동검문화의 변방이 아닌 하나의 새로운 중심지로 설정할 경우, 종래의 비파형동검문화권에 대한 해석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들 동검의 제작연대에 대해서는 늦어도 BC 8세기경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며, 이러한 주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경북 김천시 및 전남 여천시 출토 비파형동검의 녹에 함유된 납과 남한지역 4대 광산에서 채광한 납의 동위원소비를 측정하여 분석한 결과와도 일치된다. 이러한 비파형동검문화는 역사상으로는 고조선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믿어지며, 이 문화 이후 단계의 한국식 동검(좁은 놋단검)문화는 비파형동검문화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확실하다.

 

 

(고조선) 미송리형 토기 [美松里型土器]

예맥족(穢貊族)의 유물로 추정되며, 1959년 평북 의주군(義州郡) 미송리동굴유적의 윗층인 민무늬토기문화층에서 전형적인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미송리식 토기’ 또는 ‘미송리형 단지’라고도 부른다. 이 토기는 미송리 외에도 현재까지 평북 용천군(龍川郡) 신암리(新岩里), 압록강 상류의 자강도(慈江道) 중강군(中江郡) 장성리(長城里) 및 토성리(土城里), 청천강 유역의 세죽리(細竹里) 및 구룡리(九龍里), 대동강·재령강 유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밖에도 한반도의 서·중·남부 지구, 중국 길림·장춘 지구, 요녕 동부 지구, 요서 지구, 요동반도 일대에 분포한다. 종류에는 항아리, 굽 달린 발[鉢], 단지[壺]가 있고 청동도끼도 더러 있다. 그러나 단지가 주로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미송리형 토기라 함은 단지 형태를 말한다. 이 토기의 모양을 보면, 대체로 몸체는 표주박의 아래위를 수평으로 조금씩 잘라낸 형태이다. 밑면은 납작바닥 혹은 들린바닥이다. 윗부분은 밖으로 바라진 넓은 아가리가 조금 높게 얹혀 있다. 몸체의 중간 부분에는 다리 모양, 입술 모양 또는 젖꼭지 모양 등의 손잡이가 한 쌍 내지 두 쌍씩, 혹은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 각 한 쌍씩 대칭으로 붙어 있는 것도 있다. 특징적인 것은, 몸체의 윗부분에 5∼6개의 선을 한 단위로 하는 집선(集線) 무늬가 가로로 3단 둘러져 있는 것이 주종이라는 것이다. 사용된 흙은 사질(砂質)의 태토(胎土)에 운모가 섞여 있고 겉면은 매끄럽게 갈아져 있다. 크기는 대개 높이가 20∼30cm이고 색깔은 거의 회갈색, 흑갈색, 적갈색이다.

 

(고조선) 고인돌 [支石墓(지석묘), dolmen]

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고인돌은 크게 나누어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 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연구에서는 지하의 묘실 구조와 축조방법을 중시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북방식 ·남방식 ·개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 학계는 고인돌에는 한 구역 안에 2,3기의 고인돌을 나란히 세우고 상석 높이까지 돌을 덮어 묘역을 구성한 형식의 고인돌과,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각각 침촌리형과 오덕형 고인돌로 부르며 전자가 시기적으로 보다 이르다고 본다.

고인돌 각 형식 간의 시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북방식이 앞선다는 설과 남방식이 앞선다는 설이 있으나, 시간적 관계 판단에 필요한 유물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언하기 힘들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인돌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거나,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을 하여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움무덤[土壙墓]이 등장하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石棺墓]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하였다는 자생설,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大石棚)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설, 남아시아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입으로 발생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 ·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북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일본 규슈[九州]지방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죠몽[繩文]시대 말기에서 야요이[邇生]시대 초기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한국계 유물과 함께 발견되고 있어, 일본 야요이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민무늬토기와 붉은간그릇 등 토기류와 청동기가 부장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고인돌에서는 유물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매우 미미해, 고인돌이 세골장(洗骨葬) 혹은 이차장(二次葬)용의 무덤일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거대한 돌의 운반에는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로 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것이 족장(族長) 등 지배계급들의 묘(墓)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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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국내성>> →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이다.

고사에 "주몽이 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졸본은 고구려의 첫번째 수도인 흘승골성과 같은 곳이다.

AD 3년(유리왕 22)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겼는데, 그 위치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주 안둥성 지안과 그 배후의 산성을 포함한 지역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고구려는 3∼427년 국내성을 수도로 삼았다가 427년(장수왕 15) 평양으로 세번째 천도를 행하였다.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서울을 옮기기 전에 환도성으로 천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는 환도성과 국내성이 이름만 다른 동일 지역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국내성의 위치는 평북 의주라는 설도 있고, 또는 같은 도 초산군 북쪽 압록강 건너편 땅이라는 설도 있다.

 

(고구려)<<중원고구려비>> → 고구려 영토 확장에 대한 정계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 부락에 있는 이 비석은 1979년 충주 지방의 문화재 애호 단체인 예성 동호회에서 찾아내어, 단국대학교 박물관의 학술조사단에의해 확인된 고구려 시대의 비석이다.

비석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1981년 3월18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비석의 모양이나 새겨진 글씨체와 형식으로 보아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의 비와 비슷하며, 4면 모두에 글씨를 새긴 비석이다. 비석의 앞면은 10행 23자이고, 왼쪽면은 7행 23자로 보여진다.

비석에 새긴 글씨는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씻기어서 모두 읽을 수는 없으나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 문제로 다투다가 화해를 한 기념으로 이 곳에 세원 진 듯하다.

비석에 새겨진 내용으로 보아 고구려와 신라가 화친을 하면서 고구려가 형님이 되고 신라가 아우 국가가 된다는 기록과, 고구려의 영토가 소백산맥을 경계로 조령과 죽령에 이르게 된 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구려 장수왕 때의 업적을 적은 것으로 판단되며 당시 영토 확장에 대한 정계비(국경을 정하여 적은 비석)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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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나옴 찾아보센

내공70)이거 보신분 바로 답변 부탁...

이글 보시면 아는 분 바로 부탁 4학년2학기 사회12쪽에 나오는 역사지도 옆에5가지 석탑 이름좀.. 뽀너스로 시대랑 위치 자세히좀 알려주세여.. 시대 연도 석탑이름 특징...

조예있는분 답변부탁드립니다<<내공70>>

... 사서에 나오는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낙랑' 이 후한이... 성의있는 답변 부탁드립니다 <3>의 석씨신라의 위치가... 하나가 바로 15년(AD 32)에 "최씨낙랑" 을 멸망시킨 일이고...

아시는분 답변 부탁드립니다. 내공 110!...

... 3>스쿠프의 장점 및 단점 부탁드립니다. 4>보험료는 원래 1.5의 경우 제 기준으로 70-80만원나오는데 이건...... 혹시 조금 전에 제가 답변을 달았던 그 아닌가요?...

같은 일 해보신분 답변부탁합니다

... 나이가 30 인데 이걸로 먹고 살기 너무 빠듯하네요 ..... 좀 나오는건지 답변부탁합니다. 그리고 무슨일을... 그동안 검토해 보신 분들은 확신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더...

정말 답변부탁드려요...내공(45)

... 써보신분들..정말 성실한 답변 부탁드려요.. 내공은... 이건나쁘고..뭐 물론 장단점은 있겠지만.. 제가 원하는 디카는..; 1. 300~400만화소 2. 자연의색 그대로 나오는......

내공:70 사회초년생 돈관리 질문 입니다...

안녕하세요 사회 초년생인데 돈 관리를 해본 적이 없어... 아니면 아파트값이 저렴하게 나오는건지... ? 그리고... 4) 재테크에관한 조언도 부탁 드립니다..^^(펀드같은거)...

스킬과 사냥터 70이상 분들 답변 부탁

... 자세한 답변들 기다리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자 그럼 전직하자마자 나오는 포인트 1을 에너지 볼트에... 누가 다 읽어줄까요?? 꼭 내공 걸어주세염~~ 부탁이에욤ㅜㅜ

보신분 답변좀 해주세요 내공 100!

영화 투모로우 보신분들 중에서 아직도 기억 잘나는 ... 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만의 한 줄 비평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거 바로 어제 새벽? 에 DVD 로 봤어요ㅋㅋ...

지식이 풍부하신분 답변부탁드릴께요.

처음으로 답변을 달아서 내공이 210정도 있습니다. 그만큼... 근데 이건 그냥 아바타 살 돈 이고요. 개인적으로 맨... 10부터 15까지는 엘리니아 북쪽으로 두번정도 가면 나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