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대한 소개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서울에 대한 소개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작성일 2004.10.11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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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울에 대한 소개를 해야하는데요.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쓸데없는것 밖에 없더군요-_-;;;;;

서울의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모습과 서울이 수도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것 등등,,

많은 자료 부탁드립니다.

현재 서울의 장단점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예를들어, 교통이 많이 혼잡한것이 안좋다거나,

시민공원이 매우 좋다거나 이런거요,

제가 찾기가 너무 힘드네요, 지식인에 꼭 부탁드립니다-0 -!!

아, 영어로 번역하고 막 이런거 아니거든요-_- 한글로요,ㅎㅎㅎㅎ


#서울에 대한 설명 #서울에 대한 글 #서울에 대한 환상 #서울에 대한 소개 #서울에 대한 이미지 #대한민국 서울에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서울의 마크
서울을 나타내는 마크는 1996년 10월28일 만들어졌으며 세계중심도시로 뻗어가는 서울의 밝은 미래 이미지를 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마크의 모양은 한글 '서울'을 서울의 산, 해, 한강으로 나타내면서 전체적으로는 신명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녹색 산은 환경사랑, 청색 한강은 역사와 활력, 가운데 해는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함축하고, 이 세 요소를 붓터치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서울의 이미지와 사람의 활력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서울의 슬로건 ‘하이 서울(Hi Seoul)’은 가벼운 인사말로,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서울의 친근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높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 high (하이)” 와 같은 소리로 발음되어 서울이 한단계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제9회 시민의 날인 2002. 10. 28일 공식 선포되었습니다. 서울 슬로건의 모양은 “Hi”의 의미에 맞도록 밝고 활기찬 글자체를 이용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친근한 스타일로 표현하였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삼태극의 청, 적, 황 3색을 사용하였습니다.


서울시 캐릭터 '왕범이(Wangbomi)' 는 전통민화에 나오는 한국 호랑이를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디자인하여 1998년 2월 19일부터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의미로는 굳건한 기상, 열린 마음, 높은 이상, 밝은 마음을 나타내고 전체적으로는 '자랑스런 서울 시민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왕범이'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왕'과 '범'의 복합명사로 보통 우두머리, 으뜸, 아주 큼을 나타내는 '왕'과 호랑이를 나타내는 순 우리말인 '범'이 어우러져 세계적인 도시 수도 서울의 캐릭터 호랑이를 의미하며 또한 인왕산의 '왕'과 호랑이의 '범'이 합해진 합성어로 인왕산 호랑이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은행나무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도시 공해와 병충해에 강해 수명이 긴 나무로 꼽힙니다. 서울시는 1971년 4월 3일 서울을 상징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를 지정하였습니다.


꽃 : 개나리/서울시는 1971년 4월 3일 서울을 상징하는 꽃으로 개나리를 선정하였습니다. 개나리는 서울의 기후와 풍토에 가장 적합한 꽃으로, 이른 봄 일제히 꽃이 피며 서울시민의 협동정신을 표현합니다.


새 : 까치
까치는 도시나 시골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텃새로 예로부터 전래설화에서 사랑의 다리를 놓아주거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겨왔습니다. 1971년 서울의 새로 선정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주장 중에 한가지는 신라시대에서부터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왕이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 시조 혁거세왕이 건국 후에 나라 이름을 서나벌, 서벌 혹은 사라(斯羅), 사로(斯盧)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의 서울인 서나벌 또는 서벌이나 나라 이름인 신라, 시림 등으로 부르는 이 모두 지금 우리말의 수도를 뜻하는 서울의 어원이 되었다고 보는 설이 있습니다.

또 조선시대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이라는 말에서 서울의 어원을 찾을 수 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증보문헌비고 : 조선 영조 때 정부가 편찬한 전통문화 대백과 사전

서울은 한반도의 서쪽 중심부인 동경 126도 59분, 북위 37도 34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족의 젖줄인 한강이 도심을 가로질러 동에서 서로 흐0?있다.
또한 한반도의 등뼈라고 할 수 있는 백두대간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한북 정맥의 영향을 받아 곳곳에 구릉이 발달하고 주변이 산으로 에워싸인 분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 중심부는 비교적 평지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산들은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http://www.seoul.go.kr/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며,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전개되어 있다.
북쪽 끝은 도봉구 도봉동, 동쪽 끝은 강동구 상일동, 남쪽 끝은 서초구 원지동, 서쪽 끝은 강서구 오곡동이다. 2002년 현재 25구 522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 605.52㎢, 인구 1,028만 523명(2002)이다.
1394년(태조 3)부터 한국의 수도가 되어 정치·경제·산업·사회·문화·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가 개최되는 등 국제적인 대도시이다.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통근 및 거주지역이 반경 30km 내의 주변 수도권에 광역적으로 확장되고 있어, 거대도시(Megalopolis)가 되고 있다. 서울 정도(定都) 600년인 1994년에 10월 28일이 서울시민의 날로 제정되어 이후 각종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01년 말 현재 서울에서는 하루에 311명이 태어나고, 104명이 사망하는 한편, 212쌍이 결혼하고, 79쌍이 이혼한다. 가구당 인구는 2.9명으로 1980년 4.5명, 1990년 3.8명에서 핵가족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1인당 급수량은 390ℓ, 유류소비량은 19만 5000배럴, 범죄건수는 하루에 1,123건에 이르고 있으며, 쌀소비량은 274만 1040kg, 소고기는 1,127마리, 돼지고기는 1만 487마리가 소비된다. 하루에 지방세는 217억 원이 징수되고 있으며, 교통인구는 2859만 8000명이며, 교통사고로 1.4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자연은 북한산(836m)을 최고점으로 하는 고양(高陽)·양주(楊州) 구릉과 경기평야와 접하는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주위에 북한산·도봉산(740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해발고도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서 분지를 형성한다.
이러한 지형이 가져다 주는 자연적 방위효과가 조선 초에 수도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에 이른다.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11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남으로 뻗은 산줄기는 남대문을 지나 남산(232m)·응봉(175m)과 이어지며, 서로 뻗은 줄기는 무악재[毋嶽峴]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5m)에 이어져 있다.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하여 남대문 부근은 40m 내외가 된다.

남대문을 분수계(36.6m)로 하여 동으로는 청계천이 흘러 중랑천과 합류하고 서로는 갈월천이 흐른다.
청계천은 인왕산의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북악산의 남사면을 흐르는 중학천(中學川)·청운천(淸雲川)·대학천(大學川)·성북천(城北川)과 남산의 북사면을 흐르는 장충천(奬忠川)·필동천(筆洞川)·오장천(五壯川)·신당천(新堂川)과 합류하고, 하류에서 정릉천(貞陵川)·월곡천(月谷川)·전농천(典農川)과 합류한 후에 중랑천으로 유입하여 뚝섬 부근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강남과 강북 사이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한강이 W자로 흐르고 있다.
옛날에는 뚝섬과 마포에 하항(河港)이 있어 번창하였으나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모습이 사라졌고, 노량도(鷺梁渡:서울~시흥)·양화도(楊花渡:서울~인천)·한남도(漢南渡:서울~용인)·송파도(松坡渡:서울~광주)·광나루[廣津渡:서울~광주]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큰 다리들이 놓이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강 상류로부터의 토사가 퇴적되어 하중도(河中島)와 잠실(蠶室) 등을 이루었다.
이 섬들에는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관공서를 비롯하여 외국공관, 각종 협회 회관, 방송국, 언론기관, 금융기관 등이 몰려 있어 한강변에 새로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기후는
위도 북위 37°33'에 있어 온대에 속하며, 경도 동경 127°로,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있어 대륙 동안기후를 이루고 있다.
연평균기온 11.1℃이며 8월 평균기온 25.4℃, 1월 평균기온 -3.4℃로 등위도상의 세계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한다.

겨울에는 대륙의 한랭한 고기압, 여름에는 고온다습한 해양기단의 영향을 받아 기온의 연교차가 30℃에 이르는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강수량은 1,370mm이며, 강수의 계절적 분포는 6·7·8·9월에 연강수량의 약 72%가 내리고, 특히 7월에 약 20%가 내려 계절적 변동이 심하다.

****서울의 공해문제
1960년대 이후 인구과밀, 산업·위락시설 집중, 자동차 급증 등으로 다양한 공해문제를 생겨났다.
근래에는 중국의 공업화로 인해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에 의한 영향도 많이 받고 있다.
1980년 아황산가스 농도가 0.094ppm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점차 호전되어 2000년에는 0.006ppm으로 환경기준치 0.05ppm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자동차 배기가스와 관련된 오존오염도(0.017ppm/8시간)가 높아지고 오염원의 절대량 증가로 일반시민이 느끼는 체감오염도는 높아지고 있다.

대기오염물질로는 1999년의 경우 일산화탄소가 58.1%로 가장 많이 배출되었고
질소산화물은 27.6%, 탄화수소는 7.8%, 아황산가스는 3.5%, 먼지는 3.1% 순으로
배출되었다.

대체로 약산성의 비(2000년 기준 pH4.8)가 내리지만 오염농도가 높은 동절기와 도심지역은 산성도가 강해 산성비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대기오염원별 배출비율을 보면 1999년의 경우 산업시설에서 1.7%, 난방시설에서 12.7%, 발전시설에서 0.2%가 배출되며, 특히 자동차는 전체의 85.4%를 차지한다.

저유황유와 청정연료(LNG)의 보급을 확대하고 자동차 매연배출기준과 먼지저감책을 강화하는 등 맑은 공기 보전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강의 수질은 상류인 구의지역에서 상수원수 2급수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류 이하는 2급수를 초과하며, 생활하수가 전체 폐·하수 발생량의 98%를 차지하여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밝혀졌다.

중랑·탄천·서남·난지 하수처리장에서 매일 550만t 가량의 하수를 처리하고 있으나 상당량의 폐·하수가 그대로 방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강수질 악화는 상수원 수질오염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도 하수처리장별 시설용량 및 하수 유입량을 살펴보면 탄천·서남·난지처리장은 유입하수 전량을 처리할 수 있으나, 중랑처리장의 경우 시설용량이 다소 부족해 1일 30만t 증량처리를 위한 시설보완공사를 2001년 말 완공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수돗물은 잠실수중보 일대와 팔당호에서 공급받고 있으나 잠실수중보 상류로 흘러드는 한강지류의 오염이 심각하다.
팔당호의 경우 주변에서 배출되는 생활하수·축산배수·공장폐수의 대부분이 정화처리되지 않은 채 유입되고 있다.
1990년 팔당상수원수질 영향권 전역이 상수원보호구역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시에서는 하수처리장과 정화시설을 확충하고, 폐수배출업소의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심각한 대중교통난을 해소로 버스 전용차선 개편으로 대혼란을 가중시켰으나 점차로 편리한 교통수단으로의 역할을 다해고 있다.

*****김포공항은 서울의 관문으로
대한항공과 1988년 제2민항으로 설립된 아시아나 항공을 포함한 세계 유수의 30개 항공사가 취항, 1일 평균 400여 대의 항공기가 뜨고 내리며 7만여 명의 승객이 이용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항공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수용능력이 부분적으로 한계에 달하게 되자 환태평양시대 동북아시아의 세계도시로서
서울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하여 경기만의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간석지 일대에 신국제공항 건설이 추진되었고 이에 따라 2001년 3월 29일 인천국제공항이 개항되었다.

인천국제공항은 현재 여객터미널·화물터미널·교통센터·첨단운항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연간 2700만 명의 여객과 170만t의 화물을 수용할 수 있다.
앞으로 2020년까지 4단계로 나누어 총 4743만㎡ 부지에 국제업무단지·공항신도시 조성 등 주변시설을 계속 확충할 예정이다.
공항시설이 완비되는 최종단계에서는 연간 1억 명의 여객과 700만t의 화물을 수용할 수 있어 명실공히 동북아 최대의 공항으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 김포공항은 국내선만 운항되고 있으며, 모든 국제선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하도록 되어 있다.

http://100.naver.com/100.php?id=718764
서울의 교통망

조선 초 한성의 도시계획은 오늘날 가로망의 기본이 되고 있다.
당시 도성의 도로는 대로·중로·소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복궁 앞까지 이르는 대로와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로 관통하는 대로(종로), 남대문에서 현 종로 네거리까지의 도로 등 3개 대로가 주요 간선도로로 이용되었다.

중로는 이들 대로에 직각으로 교차하여 규칙적인 가로망을 형성하였지만,
그 밖의 소로들은 지형을 그대로 반영한 미로형의 불규칙한 형태를 이루었다.

1899년 최초로 등장한 전차는 1930년대 이후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으며,
1968년 철거될 때까지 2억km에 가까운 거리를 달리며 총 40억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는 등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차궤도가 철거되어
버스가 도시교통의 주종을 이루면서 3·1고가도로, 서울역고가도로와 같은 입체도로와 교차로를 비롯하여 보도와 육교, 동서간 강변도로 등이 들어섰다.

1963년 한강 이남지역의 편입과 함께 이전까지 한강인도교 등 3개에 불과하던
한강다리는
1965년 우리 기술로 최초 건설된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를 시작으로,
1999년 서강대교가 개통, 당산철교가 재개통되었고,
2000년 청담대교가 개통되었다.
2002년 완공 목표로 가양대교·광진교를 공사 중에 있으며 제2성산대교와 암사대교도 가설할 계획이다. 평균 2년에 1개씩 건설되어 총 21개의 교량이 한강에 건설되었거나 건설 중에 있다.

도로망 체계는 19개 방사선도로와, 방사선도로를 환상으로 연결하여 도심교통을 분산처리하기 위한 3개의 순환선, 그리고 동서방향으로 도시교통축을 형성하는
2개의 강변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날로 급증하는 도심집중 교통량을 외곽에서 우회처리하여 시내전역의 교통여건을 개선하고자 13개 노선, 총길이 352km의 내·외부순환 및 방사연결형 도시고속도로를 건설할 계획으로 우선 1999년 강북내부순환도로와 동부간선도로를 완공하여 도심교통량을 9% 줄이고 차량속도를 20% 향상시켰다.

강변북로(잠실대교∼토평동)와 북부간선도로(하월곡동∼목동) 12.3km를 2002년 완공하고, 강남내부순환도로를 1, 2단계로 나누어 금천구 시흥대교∼양재I.C∼수서I.C로 연결되는 23.4km의 도시고속도로를 2005년까지 완공하고, 시흥대교∼제2성산대교(현재 계획중)를 강북 순환도로와 연결하여 1시간 생활권의 도로교통을 실현할 예정에 있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현재 감소되는 추세에 있으나, 교통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주변의 신도시개발과 생활권의 광역화에 따른 위성도시의 인구급증은 유출입 교통 및 통과교통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

교통인구는 1990년 2464만 명에서 1999년 현재 2746만 명으로 11.4% 증가하였고, 수도권 유출입 인구는 1990년 475만 명에서 1999년 현재 640만 명으로 34.7% 증가하였다.

자동차 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연평균 26.1%의 폭발적인 증가를 보이다 1996년 이후 조금씩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1년 7월 현재 자동차 등록대수는 250만 9736대이며, 승용차가 186만 8144대로 74.4%를 차지한다. 수송분담률은 버스 28.8%, 지하철 33.8%, 택시 9.2%, 자가용 등 19.6%로, 대중 교통수단은 버스에서 지하철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도로율은 21.0%로 외국의 주요도시(도쿄 24.4, 뉴욕 21.9, 런던 23, 파리 25.1)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며, 더욱이 차량 왕복통행이 가능한 12m 이상의 유효도로율은 더욱 낮은 실정이다. 2000년 현재 도로총길이 7,888km, 도로면적 78.69㎢이며, 도로 효율을 높이기 위한 버스전용차선제 등이 실시되고 있다

http://www.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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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연혁은 고대 출토유물과 고고학적 연구 결과 BC 4000년경 선사시대부터 한강을 중심으로 집단거주가 밝혀졌다.
북방과 중국을 통하여 금속문화가 전래되고 부족연맹체 사회가 형성되었고, BC 108년 한사군이 설치되어 진번군(眞番郡)의 세력하에 있었다.
한사군 자체의 변천과 우리 민족의 저항으로 진번군 세력이 물러가고 마한(馬韓)에 속하였다.

BC 18년경부터는 백제 세력이 이 지역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백제의 발상지는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으로, 지금의 도봉구 미아동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후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고대국가를 형성하자 한반도의 중심지로 삼국이 세력 충돌을 일으키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392년 백제를 공격하여 서울지역을 일시 점령하였고, 이어서 475년 장수왕이 다시 백제를 점령한 후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 위례성을 남평양(南平壤)이라고 하였다.
그후 실지회복을 꾀하고 있던 백제는 점차 국력을 신장하여 영토확장을 염원하던 신라와 연합하여 551년 고구려 세력을 한강 유역에서 물리쳤다.

그러나 백제의 옛 수도였던 이 지역을 신라가 차지함으로써 신라와 백제 간의 동맹은 깨어지고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으로 백제 성왕이 전사하였고, 신라 진흥왕이 이 지역을 완전히 차지하여 신주(新州)를 설치한 후 북한산주 또는 남천주(南川州)라고 개칭하였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9주로 나눌 때 한산주에 편입시켰다.
경덕왕은 한산주를 한주라 개칭하고 이 지역을 한양군(漢陽郡)이라 하였다.
고려 성종에 이르러 12목(牧)의 하나인 양주목(楊州牧)으로 승격하여 지방행정구역의 중요한 단위가 되었고, 이에 따라 정치적 비중도 높아졌다.
1067년(문종 21)에 이르자 3소경(小京:서경·동경·남경)의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하고 유수관을 두어 지방제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남경의 범위는 동으로 대봉(大峰:낙산), 서로 기봉(岐峰:안산), 북으로 면악(面嶽:북악산), 남으로 사리(沙里:용산 남단)에 이르렀다.
남경의 설치는 서울 역사상 획기적이었던 것으로, 이때 처음으로 궁궐이 창건되었고, 인근의 백성들을 이주하게 하여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후 숙종이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새 궁궐을 낙성하고 천도를 계획하였으나 숙종의 사망으로 무산되었다.

1231년 이래 몽골의 침입을 받고 수도를 잠시 강화로 천도하여 한때 남경은 몽골군의 주둔지가 되기도 하였다.
충렬왕 때 중국 원(元)나라의 간섭으로 3경 제도가 무너지자 남경은 지방단위의 하나인 한양부(漢陽府)로 개칭되었다. 공민왕에 이르러서는 배원(排元) 정책을 취하고 3경 제도를 부활시키는 한편 남경의 궁궐을 중수하여 한양천도론이 대두되었다.
한양천도론은 우왕 때 더욱 고조되어 1382년 9월과 그후 공양왕 때 잠시 천도하기도 하였다.

1392년 7월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는 왕조의 면목과 인심을 일신할 목적으로 승려인 무학국사와 하륜 등 중신들의 의견에 따라 1393년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고 종묘·사직·궁궐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11월 한양천도를 단행하였다.
1395년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하고 경복궁을 준공하였으며, 1396년 4월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설정하고 같은 해 9월 도성과 문루를 완성하였다.

행정구역은 도성(都城)과 성저(城底)로 구성되었는데, 도성은 성 안의 땅으로 궁궐·관청·도로·하수도·시장 등의 위치가 정해졌다.
성저는 성벽으로부터 사방 10리에 이르렀는데, 북으로는 북한산, 남으로는 한강 노도(露渡), 동으로는 양주의 송계원(松溪院)·대현(大峴:牛耳川)·중랑포(中浪浦)·장안평(長安坪), 서로는 양화도·고양의 덕수원(德水院:응암동)·모래내[沙川]를 따라 난지도에 이르렀다.
이로써 한성부는 수도로서의 내용과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398년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정종이 즉위하면서 한때는 수도를 개성으로 옮겼다가 태종이 즉위하면서 다시 한성으로 환도하였다.
그 이듬해 궁궐을 수축하고 도읍지로서의 시설을 보완하였다.
운종가(종로 1~2가)를 비롯하여 각종 도로를 설치하고, 그 양편에는 가가(街家:상점)를 만들었다. 간선도로변에는 구거(溝渠:배수구)를 설치하였다.

1428년 성 안 인구는 10만 3328명, 성 밖 인구까지 합하면 11만 명이었고, 그 뒤 200여 년 간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1592년 선조 때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1624년 인조 때에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인명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당시의 도시형태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고 주요 관청이 들어서 있는, 지금의 세종로와 상업지역으로 행랑과 시전이 있는 종로가 있었다.
종로 북쪽은 양반계급의 주거지인 북촌이 있었으며, 남쪽은 하급관리와 세력이 없는 선비들의 주거지인 남촌이 있었다.

행정구역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성 안을 가리키는 도성과 성저로 크게 구별되었다.
관할구역인 도성과 성저를 동·서·남·북·중의 5부(部)와 성저 10리 지역으로 나누었다.
각 부에는 영(令)을 두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구(區)에 해당하는 것이다.
5부는 처음 태조 때 52방(坊)으로 구분하고 그 아래 계(契)·동(洞)·통(統)을 두었으며, 성종 때는 52방을 49방으로 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 5부제를 5서제(署制)로 고치고 47방 288계 775동으로 하였다.

1876년 개항 이래 새로운 문명시설이 생겨났다.
근대적인 병원·학교·교회·신문사 등이 세워졌으며, 1898년 서대문과 홍릉 사이에 전차가 개통되었다.
1895년 한성군으로 격하되고 5부가 5서로 개칭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한성부가 되었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고 전화가 가설되었으며, 1900년 한강 가교(假橋)가 준공되었다.

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본은 경성부(京城府)로 바꾸고 경기도 밑에 두어 그 지위를 격하시켰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켜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확대시켰다.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을사조약 당시 약 25만 명이었던 인구가 자체의 인구증가와 일본인 거류민의 급격한 증가로 1936년에는 73만 명을 돌파하게 되자 행정구역을 133.94㎢로 확장하였는데, 이때 고양군·시흥군·김포군 관내의 면들이 편입되었다. 지역 확대에 따라 용산·동부·영등포에는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종로·남대문로·태평로를 중심으로 번화한 도심지가 형성되었고, 청량리·마포·돈암동·영천·영등포 등의 전차 종점과 전차노선 부근에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남산 북사면 일대의 필동·남산동·인현동·쌍림동·장충동·회현동과 남대문 밖 서울역 부근의 후암동·용문동·원효로 등지 및 용산 방면에 일본인 주택지가 생겨 일본식 목조가옥이 들어섰다.
8·15광복을 2년 앞둔 1943년에는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종로·중구·동대문·성동·서대문·용산·영등포의 7개 구로 나누어 구제(區制)를 실시하였고, 1944년에는 인접지역인 연희면을 편입하여 다시 행정구역을 조정하고 여기에 마포구를 신설하였다.
1945년 8·15광복과 동시에 경성부가 서울시로 개칭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경기에서 분리되어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서울특별자유시가 되었으며 종전까지의 일본식 동명이었던 정(町)을 동(洞)·가(街)·로(路) 등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1949년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 일원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136.06㎢에서 268.35㎢로 확장되었다.
그해 성북구가 신설되어 모두 9개의 구로 개편되었고 인구는 140만여 명에 이르렀다.

6·25전쟁을 겪고 1955년 부산에서 수도를 서울로 환도하자 인구가 급증하였고 수도로서의 기능도 급속도로 팽창하였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다.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동시에 1963년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가 되었다.
이때 편입된 지역은 양주군·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일부지역 7개면 54개리로 주로 강남지역이었다.

1973년 3번째 시역확장이 이루어져 605.33㎢가 되었으며,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구가 되었다.
1975년 강남구, 1977년 강서구, 1979년 은평구와 강동구, 1980년 동작구와 구로구가 신설되었다.
1988년 중랑구가 동대문구에서, 노원구가 도봉구에서, 양천구가 강서구에서, 서초구가 강남구에서, 송파구가 강동구에서 각각 분리, 신설되었다.
1994년은 수도로 정한 지 600년이 된 해였다.

1995년 3월 강북구가 도봉구에서, 광진구가 성동구에서, 금천구가 구로구에서 각각 분리, 신설되었다.
1973년 시역확장 이후 고정된 면적에서 구의 증설은 모두가 관할지역의 인구조정을 위해서 취해진 행정적 조치였다.

2001년 현재 종로·중·용산·성동·동대문·중랑·성북·도봉·노원·은평·서대문·마포·양천 ·강서·구로·영등포·동작·관악·서초·강남·송파·강동·광진·금천·강북 등 25개구 522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http://100.naver.com/100.php?id=718764 서울 교통 관광

http://100.naver.com/100.php?id=718767 고궁
경복궁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으로 1395년(태조 4)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이 중건했다.

창덕궁
1405년(태종 5) 창건된 것으로 조선 왕조의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1996년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곳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누문(樓門)인 돈화문(敦化門)과 인정전(仁政殿)·대조전(大造殿)·선정전(宣政殿)·비원 등이 있다.

덕수궁,
경희궁

서울의 사회문화

조선시대 이후 한국의 교육 및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립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연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서강대학교·고려대학교·경희대학교·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 등이 주로 신촌 지역과 성북구 일대에 집중해 있다.
1999년 현재 전국 대학교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42개의 대학이 집중해 있으며, 그외 서울교육대학교와 전문대학 15개교가 있다.
초등학교는 529개교, 중학교는 353개교, 고등학교는 일반계가 199개교, 실업계가 79개교 있다.

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서초구 서초동)·국회도서관·시립도서관 등 27개소가 있으며,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등 63개소, 미술관은 간송미술관 등 12개소가 있다.
주요 문화공간으로 국립극장이 장충동에, 세종문화회관이 세종로에, 예술의 전당이 서초동에 있다.
각종 연극소극장들이 동숭동 대학로에 집중해 있으며, 일부가 서대문구 신촌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미술관과 화랑은 1980년대 이후 골동품상가였던 종로의 인사동·관훈동 지역에 서울시 전체의 34%가 분포하고 있으며, 강남의 청담동, 압구정동 일대에도 새로운 상업적인 화랑가가 형성되었다.
1984년 이래로 동숭동 대학로 주변지역이 정책적으로 문화예술의 거리로 추진되면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예총회관·문예회관 대극장·동숭아트센타·샘터파랑새극장·동숭미술관 등을 비롯하여 각종 소극장·미술관 등이 개관되었으며, 각종 전시회·무용제·음악제 등 활발한 문화예술행사가 벌어져 문화의 거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문화시설은 종로구·중구 지역에 40%가 집중되어 있는 양상이나, 강남구와 서초구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밖에 경복궁 옆 삼청동길을 따라 프랑스 문화원과 갤러리 현대 등 미술관·화랑들이 밀집해 있으며, 종로구 운니동·원서동 지역은 공간소극장·아랍미술회관 등 연극소극장과 미술관이 밀집해 있다.
종로 3·4가 일대에는 단성사·피카디리·허리우드·서울극장 등 역사가 오랜 대형 영화관들이 분포해 있다.

스포츠 시설로는 서울종합운동장(잠실)·동대문운동장·목동운동장 등이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서울대학교부속병원을 비롯하여 각 대학의 부속병원들이 있으며, 국립의료원·삼성의료원·을지병원·서울중앙병원·국립서울정신병원·원자력병원·국립경찰병원 등이 있다.

서울숭례문·
원각사지십층석탑 등 149점의 국보,
서울흥인지문·
서울동묘 등 491점의 보물,
서울성곽·
창덕궁·
몽촌토성 등 63개소의 사적,
서울 재동의 백송·
삼청동의 측백나무 등 11점의 천연기념물,
종묘제례악·
북청사자놀음 등 33점의 중요무형문화재,
덕온공주당의·
심동신금관조복 등 194점의 중요민속자료,
장충단비·
봉황대 등 113점의 서울시유형문화재,
칠장·
서울송절주 등 24점의 서울시무형문화재,
잠실리뽕나무·
한양대느티나무 등 15점의 서울시기념물,
서빙고동군부당·
선바위(선암) 등 27점의 민속자료,
박노수가옥·
이준구가옥 등 8점의 문화재자료 등 1,108개의 문화재가 있다.

문화제로는 1985년 석촌동 놀이마당에서
송파민속보존회 주최로
송파산대·
답교놀이가 복원되어 대보름축제를 벌인 이후 매년 축제공연을 가지고 있으며,
사월초파일에는 유서 깊은 연등놀이가 거행되고 있는데 불교도들이 연등을 들고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행진하는 제등행렬이 펼쳐진다.

서울의 정치http://100.naver.com/100.php?id=718758

산업

한국경제의 명실상부한 중심지로 전체 경제력의 76%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1992년 현재 취업인구의 구성은
1차산업이 0.5%,
2차산업이 27.3%,
3차산업이 72.2%로,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은 1980년 32.6%를 최고로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사회자본을 포함하는 3차산업의 비중은 확대되고 있다.

전국에서 차지하는 취업자 비중은 2차와 3차산업을 중심으로 볼 때 1991년 32%에서 2000년 7월 현재 21.49%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서울시내 구별 취업자 비중은 종로와 중구를 합할 경우 10.23%를 차지하고 있어 높은 편이나 1991년 24.1%에 비해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제조업 고용이 특화되어 있던 영등포구와 구로구(금천구 포함), 그리고 1980년대에 와서 서비스 인구의 특화가 현저한 강남구(서초구 포함)·송파구의 취업인구를 합치면 1998년 현재 총고용의 39.73%가 한강 이남의 6개 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1998년 서울의 지역총생산(GRDP)은 676억 달러로 국가총생산(GDP)의 21.3%에 해당하며, 이 중 금융·보험·임대업이 42.9%, 도·소매 및 숙박업이 19%, 운송·통신업이 11.4%를 차지했다.
1999년의 교역량은 수출 334억 달러, 수입 324억 달러로 전체 교역량의 약 1/4에 해당한다.

근래 들어 첨단정보산업 육성과 함께 외국인 투자도 늘어나 2001년 6월 중 서울의 외국인 투자금액은 1억 9000만 달러로 전국 총투자금액 12억 2600만 달러의 15.5%를 차지하며, 대부분(86.2%)이 3차산업에 집중되어 있다.


상업및서비스업
국내 최대의 상업중심지로서 전국 총판매액의 4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소매업의 일반적인 양상은 지역중심의 소형소매점과 광역상권을 위한 대형 소매점을 중심으로 재편성되고 있다.
소형점 영역에서는 프랜차이즈체인 조직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대형점 영역에서는 백화점, 대형 슈퍼마켓, 양판점 등 근대화된 경영방식의 소매기구들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편의점의 성장이 두드러져 1990년 10개에서 1993년 520여 개로 증가하였으며, 강남·강동 지역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상업기능 분포를 전체적으로 볼 때 중심지에 해당하는 종로구·중구의 점유비가 1980년대 이후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강남·강동 지역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일반 소매시장은 370개가 있는데 그중 중구에 38개, 서초구에 29개가 있으며, 백화점은 45개가 있는데 그중 중구에 10개, 강남구에 8개가 있다.
도매업의 경우에는 아직 종로구·중구의 비중이 67% 정도로 높은 편이나, 소매업의 경우에는 종로구·중구와 강남·강동 지역의 비중이 서로 비슷하여 서울의 상권 및 유통구조가 두 지역을 중심으로 좌우되고 있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과 동대문의 의류상가, 전국 농수산물의 집산이 이루어지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용산 전자상가, 한약재 및 청과물 중심의 경동시장, 구로기계공구상가 등이 있다.
남대문로 주변지역에는 각종 금융기관의 본점과 증권·보험회사가 집중해 있으며, 여의도에는 새롭게 증권가가 형성되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죄송해요..

 

저는 서울에 살지는 않지만요..

 

아주아주 간단하고 누구나 다아는 것이요.

 

서울이 우리 나라 수도이고요.

 

그래서, 서울이 대 도시 라는 것이에요...

 

정말 죄송해요..

이것 밖엔 잘 몰라서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서 울 은 거 대 도 시 다

서울에 대한 소개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서울에 대한 소개를 해야하는데요.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쓸데없는것 밖에 없더군요-_-;;;;; 서울의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모습과 서울이 수도로서 중요한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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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개를 하려고 하는데요, 장르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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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썬팅 하려고 하는데요...

... 썬팅을 하려고 합니다. 빵이랑 음료를 같이 팔거라... 경기도 광주 근처에 괜찮은곳 아시면 소개좀... 변색,탈색,기포현상에 대한 A/S 보장 ※ 개발부터 생산,시공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