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전에는 역법에 혼란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중국에서 정삭을 받아 와 그대로 실시하여 그 후 줄곳 중국역법을 그대로 준용했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 정도는 孝昭王(695) 새해의 시작을 子月로 바꿨다가 5년 뒤인 효소왕 9년에는 다시 寅月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중국에서 당시 정권을 잡았던 則天武后의 역법을 따라 고쳤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1159)
지금은 사라진 신라말의≪新羅年代曆≫이란 자료에 대해서 역법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지만.1160) 이는 역서가 아닌 것 같다.≪삼국사기≫와≪增補文獻備考≫에 모두 역사책인 것처럼 기록된 것을 보더라도 이것이 역법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1161) 이 시기 동안에는 아직 통일신라는 독자적인 역 계산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얻어 온 역을 해마다 적당히 바꿔 사용하면서 중국의 것을 계속해 참고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통일 직전인 推古天皇 10년(602)에 백제의 승려 觀勒은 曆本과 천문지리서, 그리고 遁甲方術書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 그리고 智通 4년(690) 11월 갑술(11일)에는 칙명을 받들어 일본은 元嘉曆과 儀鳳曆을 시행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중국역법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라나 일본이나 역법을 독자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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