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불교 수용의 공통점 3가지

삼국시대 불교 수용의 공통점 3가지

작성일 2022.04.1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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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에 따르면 19대 눌지왕(訥祗王, 재위 417~458) 대에 고구려에서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북 선산 일대)에 와 있던 묵호자(墨胡子, ?~?)가 양나라 사신이 가져온 향의 용도를 알려 주었을 뿐 아니라 공주의 병도 고쳐 주었다고 한다. 즉 신라는 묵호자를 통해 처음으로 불교를 접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아도기라(阿道基羅)조에는 양나라 사신이 신라에 향을 가지고 온 시점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양나라는 502년부터 558년까지 존속하였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신라와 양나라 사이에 사신이 오고 간 기사는 521년(법흥왕 8년)이 처음으로 확인된다. 그렇다면 묵호자가 신라로 건너온 시점과 신라가 양나라와 교류를 맺는 시점이 적어도 60년에서 많게는 1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때문에 묵호자가 양나라 사신이 가져온 향의 용도를 알려 주었다는 기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사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아도본비(我道本碑)」에는 조금 다른 내용이 실려 있다. 「아도본비」에는 고구려 사람 아도(我道, ?~?)가 미추왕(味鄒王, 재위 262~284) 때 신라로 건너와 불법을 전해 주었으며,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나자 대궐로 들어가 병을 고쳐 주었다고 한다. 아도기라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라본기」와 「아도본비」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지만, 묵호자와 아도가 고구려에서 건너와 불교를 전래하였다는 점이나 공주의 병을 낫게 하였다는 점, 또 일선군에 머물렀다는 점 등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양쪽의 공통점을 분석함으로써 신라가 불교를 수용할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복원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먼저 묵호자와 아도가 고구려에서 건너왔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이는 곧 신라가 고구려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음을 말해 준다. 특히 아도는 위(魏)나라에 가서 불법을 배워 왔다고 한다. 따라서 고구려는 위나라, 즉 북조(北朝)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였고, 신라는 다시 고구려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으므로, ‘북조→고구려→신라’라는 경로를 통해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셈이다. 더욱이 묵호자와 아도가 일선군에 머물거나 도망하였다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모두 일선군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일선군은 고구려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경주로 통하는 길목이었으므로 이는 결국 신라가 고구려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였음을 뒷받침한다고 여겨진다.

다음으로 묵호자와 아도가 각각 공주의 병을 낫게 하였다는 점도 관심을 끄는데, 중요한 것은 공주의 병을 치료함으로써 신라에서 불교를 포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공주를 치료한 방법은 묵호자가 그랬던 것처럼 향을 피워 놓고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을 텐데, 어찌되었든 공주의 병이 낫자 왕실 사람들은 불교에 흥미를 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점은 신라의 불교 수용이 일선군이라는 지방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함께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불교가 공인되기 전인 소지왕(炤知王, 479~500) 대에 내전(内殿)에 분수승(焚修僧)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삼국유사』권1의 사금갑(射琴匣)조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신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수용된 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아도본비」에 따른다면 미추왕 대까지 소급이 가능하지만 후대에 덧붙여진 부분이 적지 않다. 가령 아도의 어머니인 고도령(高道寧)이 경주에 천경림(天鏡林)을 비롯해 전불(前佛) 시대의 절터 7곳이 있었다는 이른바 ‘전불 시대 칠처가람설(七處伽藍說)’을 언급하지만,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전불 시대 칠처가람설’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 대에 정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신라에 불교가 수용된 시기를 미추왕 대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고고학적 자료를 이용해 보는 것도 문제 해결의 방편이 될 수 있다. 경주 호우총(壺衧塚)에서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는 청동 그릇과 함께 연꽃 문양이 새겨진 청동 주전자가 출토된 바 있다. 여기에 보이는 을묘년이 415년을 가리킨다는 점은 틀림 없고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므로, 5세기 전반 신라에 불교문화가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에서 불교와 관련해 이보다 연대가 올라가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415년을 전후한 무렵 신라에 불교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고, 이는 눌지왕(訥祗王, 재위 417~458) 대에 불교를 처음 접하였다는 「신라본기」의 기사와도 일정 부분 통한다는 점에서, 신라의 불교 수용 시점에 관해서는 「아도본비」보다 「신라본기」가 더 믿을 만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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