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폭동?

5.18 민주화운동? 폭동?

작성일 2012.05.09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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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이 다가오면서, 관련 기사들이 종종 올려오는걸 봤는데요.

제가 학교다닐때 책에서 배운걸 기억해보면, 민주화운동이라고 배웠고

중요한건 군대에서 보고 배운겁니다.


4년정도 지난일이라 잘 생각은 안나는데,

그때 제가 본사진들은, 그 광주에 조선학생회? 인가 하는 단체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빨간글귀를 쓴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들을 봤습니다.

한두장이 아니라 수십장은 봤었고요.

근데 중요한건 그때 교육해주던 간부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에 한창 밖애선 FTA 미국소고기 반대 촛불시위하다가

뭐 언제부턴가 미군철수로 바뀌어서 시위를 이어갈때입니다.


저는 군대가기전엔 별 신경도 안써서 잘 몰랐으나,

그때 촛불집회의 주동자도 알고보니 그 북한간첩같은놈이 주동자 였다는게 밝혀진거죠.

그놈이 옛날부터 엄청난 활동을 해왔던데, 그게 밝혀지고 난뒤에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아 그놈이름이 누군지 기억이 안나네요. 이것도 좀 가르켜주세요.



그때 교육해주던 간부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이유는

자기입으로 이건 민감한 사항이라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하라면서

보여준게 다인것 같거든요?



그니까 제가 본 5.18당시 사진들을 봤을때

그게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운동 이였다면,

왜 북한을 찬양하는 글귀를 들고 시위를 하였냐는거죠.

제가볼땐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촛불시위도 다 그 간첩같은놈들의 선동질에 놀아난거고요.

이유를 불문하고 미군철수를 외친다는것은 이땅에 또다시 피바람이 몰고오게 만들일인데

..

좀 제가 말한내용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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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대한민국은 데모가 합법화 된 민주주의국가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수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미 대한민국의 모든 데모가 북한과 관련있다고 미리 결론을 내려놓으시고 근거를 찾으시는것같군요.

물론 북한이 우리나라에 대규모 데모가 일어나면 관심을 가지고 '이걸 기회삼아서 한번 뭐좀 해볼까?'하고 나름대로 계획이야 세우겠지요.

그렇다해도 당신의 생각과 다르게 데모가 흘러간다고 다짜고짜'빨갱이새끼들의 선동이다'이러신다면 당신의 못배운것을 인증하는 꼴이 되는것입니다.

 

광우병소동은 누가봐도 사실 지나칠정도로 과대포장되고 반미성향까지 띄게된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자주적인 주권을 가진나라입니다. 현재로써는 미국으로써도 주요비나토동맹국이고

우리나라로써도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 볼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미국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고 거리를 두자고 주장할수있는것입니다. 왜냐면 미국은 우리의 상전국가도 아니고 100%믿을만한 국가도 아니고 비록 동맹국이고 다른나라에 비해 가장 믿을만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우리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기보다는 자기나라이익대로 행동하는 '외국'이거든요.

 

 

이러한 상황에서 그 누구도 미군철수를 충분히 외칠수있습니다. 전 당신과 미군철수가 옳냐 옳지않느냐를 토론하고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는 충분히 그렇게 주장할수있고 다른사람의 생각을 '다르다'라고 인정하라고 말하고싶습니다.

북한이 반미라고 우리나라에서 반미를 외치면 '빨갱이'라고 한다? 지나치도록 이분법적인 당신의 두뇌가 궁금합니다. 죽은다음에 한번 검사해보는것도 괜찮은방법일듯하네요.

 

 

그리고 5.18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북한과는 아무런관련이 없습니다.

자세한건 이걸 참조하시지요.

 

출처:위키백과

 

  • 일부 극우단체 일각에서는 시민군이 광주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하는 계엄군의 학살과 폭력에 맞서 무장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5·18 민주화 운동을 북한 인민군의 개입에 따른 폭동사태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인민군이 개입했음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증거가 전혀 없어서 신빙성은 낮다. 증언내용이 본인이 경험한 내용이 아니라 북한에서 들은 '전언'인데다 '잃어버린 10년' 등 극우보수단체의 논리와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소행이 맞는다면 전두환 정권시절 이를 밝히지 않고 넘어갔겠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74]
  • 일부 극우단체는 계엄사 및 제5공화국 정부의 발표를 인용해, 5.18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광주 시민 중에 계엄군이 주로 사용하던 총기인 M16보다 시민군이 주로 사용하던 총기인 카빈에 의한 희생자가 더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5.18 민주화운동 진압 후 의사·검찰 관계자·보안사 요원이 작성한 사망자 검시 자료 원본에는 M16에 의한 사망자가 카빈에 의한 사망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6월 중순 보안사 주재로 사체 검안위원회가 열려, 피해자 보상 문제가 제기되면서 공식 발표에서 카빈에 의한 사망자로 분류된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났다. 당시 군부에서는 M16 총상 사망자는 군에 대항한 것으로 인식돼 폭도로 분류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당시 의사 2명과 목사는 난동자(폭도)로 분류될 경우 위로금 등이 지급되지 않았으므로 최대한 양민(비폭도)으로 분류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검안위원회에서 최초로 폭도로 분류된 사람은 20여 명이 조금 넘었으나 군에서는 이 정도의 비율이면 곤란하다고 해 격론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 38명이 폭도로 분류됐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인해 사체 검안위원회 회의 결과 M16보다는 M1이나 카빈로 분류된 사망자가 더 많아진 것으로 1995년 국방부의 재조사에서 밝혀졌다. 1995년 국방부는 재조사 후 1980년의 조사는 잘못되었으며, 대다수의 희생자가 M16에 희생되었다고 발표하였다.[75]
  • 5·18 당시 계엄군의 작전보고·전투상보에 광주 시민을 살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국회 광주특위·검찰·국방부는 대한민국 계엄군 기록을 토대로 진상규명을 했다. 진상규명 결과 무차별 연행과 과잉진압에 의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 광주역·전남대·전남도청에서의 집단 발포, 광주외곽봉쇄작전 과정에서 일어난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 사건, 통합병원 진로개척 작전, 송암동 학살 사건과 같은 무차별적 발포,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 중 무장시위대에 대한 발포 등이 밝혀졌다. 진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군인들에게 훈장이 주어졌으며 심지어 상부의 지시 없이 발포를 한 군인들까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진압된 이후 신군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볼 때 대한민국 계엄군에 의한 광주 시민 살해 행위는 분명히 존재했으며,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계획적인 테러를 행했다는 주장에는 실질적인 증거가 있을 수 없다.[76]
  • 일부 극우단체는 북한이 5·18을 기념한다는 것을 문제삼고 있다. 북한은 5·18 민주화운동 뿐만 아니라 4·19 혁명(남조선인민봉기), 6·3 항쟁(남조선청년학생봉기), 6월항쟁(6월 인민항쟁), 부마항쟁(10월 민주항쟁) 등 남한의 주요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사건이 발발한 날을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5·18 민주화운동 등 남한의 민주화운동을 반미투쟁으로 왜곡해서 북한 주민에게 선전한다. 북한에 있을 때 ‘5.18 민주화운동’을 반미투쟁으로 잘못 알고 있었던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야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77] 광주에 취재를 위해 잡입했던 조갑제는 5·18 당시 많이 불리고 큰 박수를 받았던 구호가 “김일성은 오판 말라”면서 5·18이 반공민주화운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78]
  •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의 정수만 회장은 2006년 12월 21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인터뷰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에서 “북한군 사망자가 민주화 투사로 둔갑된 사례가 있다.”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중 한 명이 북한군이라고 지목을 했는데, 정수만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지목된 인물은 1980년 5월 22일 광주국군통합병원 앞에서 20사단 61연대의 작전 도중 사망한 고등학생 임00라고 밝혔다. 당시 사망자 검시 기록을 보면 임00이 끝까지 군을 추격하기에 계엄군이 사살했다고 한다.[79]
  • 5.18 당시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 한미연합사령부와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의 분석에 따르면, 5월 초부터 5월 18일까지 북한의 특이 동향이 감지되지 않았다.[80] 5월 20일 한미연합사령부에서 미국에 보낸 전문을 보면, 그 시점까지 북한군의 어떤 동향도 확인되지 않았다. 5.18을 진압했던 계엄군은 부상자와 연행자 수천명에 대해 조사 과정에서 대공 판단서를 첨부했다. 여기에는 대공 용의점을 철저히 조사해서 대공 유무를 기록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이상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81]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일성이 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루마니아를 방문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5.18 발발을 사전 예측했다고 보기 어렵다.
  • 1980년 5월 21일 날 오전 8시부로 전라남도 지역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이 됐다. 5월 23일 저녁 전 해양경찰에 해안경계태세 강화지시가 떨어졌다. 전남 일대 전 해안에는 31사단 병력의 이 부대는 대간첩 침투작전 부대 3개 연대가 경계를 했는데, 93연대가 목표지역 해안, 95연대가 고흥 여수 지역 해안, 96연대가 무안 영광 지역 해안경계를 했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빠지는 길은 공수부대 7사단과 11사단이, 나주와 목포, 영광으로 가는 길은 20사단이, 담양 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에는 3사단이 투입돼 광주 외곽을 전부 막고 있었으며 31일에는 해안까지 경계가 강화됐다. 이와 같은 철통경계 속에서 극우단체 주장대로 북한군 600명이 해안으로 침투해서 육로로 빠져나갈 상황이 아니었다.[82][83]
  • 자유북한군인연합은 탈북자 사이에서 5·18 북한개입설은 상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 조선로동당 비서 황장엽 등 고위급 탈북자들은 5·18 북한개입설을 언급한 적이 없다. 북한 인민군 출신 탈북자 단체 탈북군인협회 심신복 회장은 '5∙18 광주에 북한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자유북한군인연합의 주장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84]
  • 1980년 당시 광주는 전라남도 산하의 일개 시로서 서울에서 남쪽으로 300km 정도 떨어진 소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그다지 큰 가치가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북한 측에서 광주에 개입한다고 해서 별다른 이익을 얻거나 대한민국 정부에 커다란 타격을 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과거에 군사분계선 인근 지역에 무장공비가 출몰했을 때와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 등에서 훨씬 적은 숫자의 병력도 주민신고에 의해 발각되거나 동선이 노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안가도 아닌 후방 내륙도시에 상당한 수의 병력을 별 노출없이 침투시켰다는 주장에도 무리가 있다.
  • 탈북자 단체의 주장대로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개입해 시민군과 계엄군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는 공작을 자행했다면, 이는 중대한 사안으로서, 당시 신군부가 시민군이 아닌 북한군을 주적으로 삼았어야 한다. 그렇지만 신군부는 시민군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허위 선전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탈북자 단체의 주장 역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 당시 계엄군이 무고한 시민들까지 닥치는 대로 사살하는 국가폭력을 똑똑히 목격하고 분노한 광주시민들이 경찰서 등의 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해 저항한 일은 굳이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고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보수단체의 주장에는 논리적인 허점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 무엇보다도 광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전북 군산주한 미군 공군 베이스캠프가 있는데다, 시내에서 20~30마일 거리에 위치한 광주광역시 송정동에도 주한 미군이 주둔한 상황에서. 북한군이 정말 개입했다면. 주한 미군 사령부나 미국 정부가 이를 수수방관했을 리가 없었다는 점에서 북한군 개입설은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 또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조차도 모르게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오히려 대한민국이 전복될 뻔한 위기를 신군부가 자초했다는 얘기가 되고, 결과적으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우익 단체가 스스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무능과 직무유기를 증명하는 결함이 된다.
  • 11공수여단에서 복무하던 이경남은 “5월 18일, 5월 19일 양일간에 걸친 7공수, 11공수 부대원들의 진압 작전은 오히려 극중(영화 화려한 휴가) 장면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픽션은 아무리 잘 꾸며놓아도 논픽션만 못하다.”라고 말하며 한 중사가 시민군에게 포위되자 옷을 벗어 학생들에게 총을 쏘라고 하자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을 향해 M16 소총으로 사격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시민군은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대, 광주 민주화 운동학살이라고 말했다. 또한, 군부대에서 “좌경용공 빨갱이 새끼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복학생들이 시험 기피하고 그러기 위해서 데모 선동” 등 교육 시켰다고 한다.[85]

2007년 3월 우파 언론인이며 조선일보 원로 기자인 조갑제는 5.18 당시 현장을 취재했었다. 조갑제는 자신이 직접 5.18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상황과 정황에 따른 논리적 판단을 토대로 5.18을 ‘반공 민주화 운동’이라 평가했고[86], 일부 우파에서 제기한 북조선 인민군 개입설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러한 주장이 결국 좌파들을 돕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87] 이에 대해 북한인민군 개입설을 주장한 탈북자 단체 및 이에 동조하는 우파 세력이 조갑제를 비난하는 등의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조갑제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애국단체들이 북한군 개입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88]

  • 광주시민 수십 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기자 수백명들이 취재한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5·18을 취재했던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 전국 비상계엄령으로 해안과 항만이 철저히 봉쇄됐다.
  • 전두환 정권 하에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확인했을 것이다.
  • 대대 규모 북한군이 개입다면 무장시민에 의한 국군 사망자가 7명에 그칠리 없다.
  • 탈북자 증언은 전언에 불과하며,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 김일성이 5월 18일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 투입했다고 해도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며, 5월 20일부터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됐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간첩의 선동질?

아직도 구시대적인 색깔론에 놀아다니고 있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댓글로 썼었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답변으로 남깁니다.

 

KBS다큐 :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 

-> 5.18을 직접 취재한 독일 기자가 나오는 다큐입니다. 화질이 좋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한 번 보세요.

(특히 12분부터. 트럭에서 내린 군인이 건물 옆에 서있던 비무장 민간인을 곤봉으로 때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양심적인 행동을 덮으려는 거짓에 속지 마세요.

이유를 불문하고, 시민들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을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아 죽인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거짓으로 덮으려 해도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목격자는 분명히 있습니다.
(링크로 들어가 세 번째 자료입니다. kbs 아이디로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http://www.kbs.co.kr/end_program/1tv/sisa/sunspecial/vod/vod,1,list,8.html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북한 간첩과 연결지으려는 행동은 1980년에 독재하던 군부가 자신들의 비양심적 행동을 덮기 위해 했던 일입니다. 다큐를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80년대 반대세력을 매장시키기 위해 했던 일들을 지금 2012년에 다시 하고 있다니,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네요.  
(본인들은 대단하다는 말에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적어도 5.18 당시에는 북한을 찬양하는 구호는 없었습니다.

 

보수논객 조갑제씨 아십니까? 5.18 당시 광주에 취재 나가서 현장을 지켜본 조갑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광주 학생 운동이 북파공작원에 의해 일어나거나 노동자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덧붙이고, 본인이 그 당시 현장에서 구호를 들어보니 김대중 지지 구호는 거의 없었다며 그 당시 가장 많이 불리우고 큰 박수를 받았던 구호가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것이었다면서 “광주 운동은 반공민주화 운동이었다”고 말했다.(조갑제)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030

 

시위차에 탑승하여 '계엄해제', '전두환 물러가라',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를 외쳤다.그때는 광주 시민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다. (김영호 증언)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6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1%E8%C0%CF%BC%BA%C0%BA&sop=and

 

5월 18일 이전에 학생들이 주로 외친 구호는 '비상계엄 해제하라. 언론자유 보장하라. 노동 3권 보장하라. 학생 자율활동 보장하라' 등이었고 5월 18일이 넘어서는 '김대중 씨 석방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김일성은 오판 말라. 계엄군을 몰아내자. 전두환 찢어 죽이자. 내 자식 살려내라' 등의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구호들이 많았다.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훌라송', '아침이슬', '투사의 노래' 등이었고 무엇보다 애국가를 많이 불렀다.(박영순 증언)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50&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1%E8%C0%CF%BC%BA%C0%BA&sop=and

 

지금도 그들이 외치던 구호 중에 '김일성아, 내려오지 말아라' 던 구호가 생생하게 기 억난다.사람들은 로터리 부근과 인동에 모여서 그러한 것들을 구경하고 환호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윤석진 증언)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19&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B1%E8%C0%CF%BC%BA&sop=and&page=2

 

광주에서 간첩들의 사주를 받은 폭동을 일어났다고, 신군부의 지시를 받은 TV와 신문 등 언론이 왜곡보도를 냈죠. 광주시민들은 자신들을 간첩으로 모는 신군부에 대한 반발심에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외쳤다고 합니다.

 

질문자님께서 정신교육 때 본 광주사진들은 아마도 2004년 10월 '한총련'(한국대학생총연합회)이 광주 송정리 미군 공군기지 앞에서 벌인 시위사진인 것 같네요. '한총련'은 광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미군기지 앞에서도 시위합니다. 아마도 미군철수와 관련된 주제에서 들으신 것처럼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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