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현재 다시 이슈가 되는이유 알려주세요!(내공만땅)

박정희가 현재 다시 이슈가 되는이유 알려주세요!(내공만땅)

작성일 2010.05.10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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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현재 다시 이슈가 되는이유 알려주세요!(내공만땅)

 

급합니다.

 

부탁드릴게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제가 에 올린 오픈백과의 글로 대신하니 참고하세요.

 

朴正熙를 다시 생각하며

adcsk
2008.04.12 19:55
 
조회
88

  조선(朝鮮)의 망국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로 거의 반세기를 보낸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서 박정희처럼 선이 뚜렷한 인물이 없다. 지금은 서구 각국은 기독교가 하나의 문화양식으로만 존재하는데, 전국의 교회가 번성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보다도 주자학에 몰두하여 근대사의 그 험한 물결을 알아 채리지 못해 나라를 빼앗겼던 그 때를 연상하게 한다.

   사실 19세기 서구의 침탈 아래 극동 3국(조선.중국.일본)의 당면한 과제는 어떻게 서구의 근대 기술을 받아들여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와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그리고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는 다 당면한 과제를 풀고자 열망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세 나라 모두 개혁을 이루려 하였지만 중국은 서구의 기술에만 관심을 갖고 정신적 개혁을 이루지 못해 몰락하고,조선은 그나마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가장 먼저 서양의 기술과 정신을 접목시켜 성공한 일본에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교육제도.농업정책.철도 등 모든 것을 정립해 나가는 부속지로 되어 근 40년을 보냈다. 더우기 일본의 조선지배는 근대적인 산업기술만 이식한 것이 아니라 교육.행정.사법 등 모든 제도와 관습마저 일본화하여 그 정신과 체제가 해방된지 이제 63 년이 되었어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0년간 남한과 북한이 추진했던 근대화의 과정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비록 북한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사실 일본의 메이지 시대의 천황제보다 더 강화된 수령제로 60년 세습정권으로 변형된 사회주의 독재국가로 완성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북한의 이런 독재 체제는 북한 국민들이 일제의 식민지 체계에서 해방되고 바로 독재 체제로 바뀌어 왔기 때문에 식민지 시기의 경험 외에 다른 비교가 없어 북의 독재는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남한의 경우는 미국에 의해 정부수립이 되고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경험과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도 정권의 교체가 평화적으로 두 번이나 있었고, 4.19혁명이라는 민주주의의 실험도 있고, 5.16의 군사정변과 12.12의 악순환도 겪어 이제는 국민들이 무엇이 나은 것인가에 절대성 보다는 상대적으로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성숙되었다.

   여기서 왜, 박정희냐 하면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군사정변(구테타)으로 정권을 잡아 17 년간 통치하며 세계 최빈국에서 그가 죽을 때 아시아의 용으로 인정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중진국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틀과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게한 지도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권유린과 철권통치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말살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어두운 면이 있지만 그 당시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신흥 독립국가 중에 현재 경제적으로나 정치발전 문제에서 이만큼 성공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 나라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잔재를 말끔히 없앤 북한은 지금 더 심한 독재와 가난의 질곡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박정희 시대에서 인권이 어느 정도 유린이 되고 민주주의도 많은 부분에서 유보되었지만 남한은 정당정치가 외형적으로나마 운영되고, 언론도 통제를 받았지만 북한의 체제에 비하면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 있었던 친일청산의 미흡한 점은 그 보다 먼저 경제건설과 국가경영의 틀을 짜는 것이 선결과제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러한 박정희를 비판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마우쩌둥(毛

澤東)을 중심으로 그의 잘한 면과 못한 면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배워야할 것이다. 지난 과거사를 정리한다고 어두운 면만 밝히지 말고 이제는 세계로 나가 우리도 열강이 되는 길의 표지석으로 삼고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거리의 벚꽃을 사쿠라로 부르는 시대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역사는 다시 도도히 흐르고 지난 100 년 전에 고종(高宗)의 묘호(廟號)마저 일본인 관리가 추존하고, 아관파천까지하며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이 되고 황제가 된 한심한 역사는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 그리고 일본에 의해 민비(명성황후라는 말 자체가 쑥스럽다)시해를 당하고도 저항도 못하고 지낸 무능한 지도자가 다시는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 박정희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뿐 입니다. 누구는 욕하고 저주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직접서술]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docId=771255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960년 당시 우리나라는 자본도 기술도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부흥시킨 것입니다. 더우기,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며, 공비를 내려 보내고, 땅굴을 파 내려오던 북한이 있어서 안보적으로도 매우 불안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손엔 총을 한손엔 삽을 잡아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과 필리핀 보다 3배 정도 못살았고, 베트남이나 태국 보다도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나라가 되었습니까?


60년도는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만들어 팔아먹는다는 개념조차 세워져 있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인력들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여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할일없이 뒷골목이나 기웃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외국으로 일자리 찾아서 이민도 가고, 광부로 간호사로 외국으로 나가기도 했었지요.


이승만 정권당시 한국을 둘러본 어느 미국의 세계적인 유명언론인은 당시의 한국을 '오물더미의 나라'라고 경멸했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외관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의 통렬한 비판이었습니다.
세상에 ‘한국인처럼 어리석고 게으른 민족은 처음봤다’ 면서 현상황 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 이들의 타고난 '국민성'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국이 경제적인 번영을 누릴 가능성은 오물더미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60, 70년대 눈부신 산업화의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세계가 모두 인정하는 경제 성장이었습니다. 외국에서도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비약적인 경제부흥을 이루자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했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의 ‘한강의 기적’이 훨씬 더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비록 2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산업사회의 전통과 훈련된 국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한강의 기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라인강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입니다. 라인강은 자연의 수로로서 통일 전 서독의 물류를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화물 물동량은 거의 60%를 감당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건설비도, 유지비도 필요없는 천혜의 자연 수로인 라인강 덕분에 기적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은 라인강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때 한강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눈부신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낸 우리 ‘국민’ 또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상징합니다. 지도자의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투지와 불퇴전의 용기로서 목표지향적 리더십으로 ‘우리도 잘살아 보자’ ‘하면 된다’ 라는 비전하에 우리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한 끝에 기적같은 산업화의 성공이 가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우리 국민의 역량과 의지에 시동스위치를 누르는 지도력을 박정희 대통령이 발휘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폄하자들은 그의 위대한 공은 절대 말하지 않고, 과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을 괴롭혔습니까? 아니면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굶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면서 잘 살 수 있게 해 주었습니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박대통령의 공이 80%이고, 과가 20% 라고 평가하지 않습니까? 밥이 필요한 시절에 국민들에게 밥을 준 지도자 라고 국민들은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후진국에서 산업화가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어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현시점에서 모든 바람직한 목표를 모조리 달성할 수 있는 정부는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를 단시일 안에 달성하려면 적어도 당분간은 다른 가치나 목표들을 지연시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민주화를 왜 소홀히 했느냐의 물음이나 비난은 지나친 요구일 것입니다. 그는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이 먼저 이룩되면 그 위에서 우람하고 튼튼한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는 철학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그 토대위에서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도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란 논리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자유만큼은 부분적으로 제약을 가했지만, 북한과는 달리 대부분이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살던 시대였습니다.


사유재산제는 당연한 것이었고,
여행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학교선택의 자유, 그리고 무슨자유... 무슨자유 등이 보장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권위적이라고 비난받았던 것은
당시 자유진영의 선진민주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위적이었다는 것이지
북한과 비교하면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북한이 남침을 호시탐탐 노리던 그 때,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법에 의해서나 사고에 의해서나 죽은 사람은 30명도 안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루 평균 30명의 국민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삶의 희망을 버리고 자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를 하면서 했던 행동이 우리나라의 발전과 우리의 삶을 위한 행위였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자신의 자리의 위신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기에 그분의 업적을 인정하고 80%의 국민이 그의 공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위대한 공이 과를 덮고도 남는 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기간 중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 했음에도 불가사의하게 친인척 비리나 부정부패에 연루된 일이 한건도 없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거주이전의 자유, 사유재산제가 보장되지 않고, 시위도 허락되지 않죠. 그리고 정부에 반항하면 바로 총살시킨다고 합니다. 중국도 아직까지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완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60-70년대 당시, ‘인권’을 외치고 ‘민주’를 외치던 사람들 중에는 순수한 민주 인사들도 있었지만, 정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산업화에 반대하고, 위장된 민주화를 외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북한과 내통되고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미국 일본으로 다니면서 주한미군철수를 외친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분도 있었구요.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에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떻게 했습니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고, 철강산업에 반대, 조선산업 하자는데 반대한 사람들 아닙니까?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기에 한강의 기적은 가능했습니다.
당대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기에 외로웠던 것입니다.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이루어 낸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야당은 학생들을 선동해 온갖 중상모략 왜곡을 일삼았고..
개방화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해서는
굴욕외교라고 욕을 해 댔으며..


북과의 대치로 인해 안보상황이 불안해서, 안보상의 위기를 돌파하고
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결단한 월남파병에 대해서는
젊은이들 피를 팔아 먹는다고 했으며..


고속도로 건설한다고 했을때 재벌들을 위해 길 놓아주는 것이라고 매도 했으며..
포항제철과 조선소 건설을 한다고 했을 때도, 우리가 무슨 제철사업을 할 수 있으며 조선소 건설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반대했습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것 만큼 손쉽고 재미있고 편한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인기에 영합했더라면 지금의 조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토록 내외의 수많은 비판을 무릎쓰고 추진한 산업구조안에서 지금 먹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의 수출을 이끌고 있는 것이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 제품이란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만 부흥시킨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국민교육과 의식계몽에 힘썼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과 선현유적을 정비하는데 애쓰셨습니다.
충무공을 모신 이순신 사당, 유관순 유적, 윤봉길 의사 유적, 칠백의사 총, 율곡 이이 서원, 이퇴계 서원, 박물관, 신라, 백제 유적지 등 전국방방곡에 문화유산을 정비하셨습니다.


또한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주도 개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6.25때 폐허가 되었던 벌거숭이 산을 산림육성을 하여 푸른산으로 만들었고, 경제개발을 하면서도 환경보전을 위해서 그린벨트를 지정하고, 자연보호를 위해 자연보호헌장을 공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업적들과 국민에 대한 헌신 때문에 국민들의 80%가 공이 과보다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약간 다른 관점에서 주저리 하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문제는 많은 이야기들을 이끌고 다닌 주제입니다.

 

사견으론, 역사란 항상 돌고 도는관계라, 분열과, 다시 합치는, 끊임없는 연속이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는, 제가 말씀드릴 부분의 요점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한덩이의 역사기간을 가지다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분열기, 언제가 될 통일.

 

그 이전을 살펴보면, 이전에도 이런 사이클로 진행되어왔죠.

 

보통 전세계사를 봤을땐, 역사적인 혼란기에서 대중들이 원하는게 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는거

 

죠. 가까운예로, 프랑스대혁명 이후, 혁명전쟁기간동안 프랑스 국내사정은 극심한 혼란상태였습니다.

 

삼색기 높이 올리며 그당시 사람들이 이룰려하던 뜨거운 열정이 있었으나, 당장에 국민들은 당장 빵한조각

 

생각이 날정도의 혼란기였죠. 점점 국민들은 현재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강력한 지도자를 원해 갑니다.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 나의 권리를 조금 양보해도 좋다... 라는 생각.

 

아주 위험한 생각이죠. 그래서 나폴레옹이란 황제이자 독재자가 등장한겁니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들은 다르죠.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4.19혁명이후 극심한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오고, 정권은 봇물터지듯한 국민의

 

요구를 다 수용할수 없고, 제어할 힘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이후는 다들 아시는 이야기이니 생략하고,

 

박정희란 사람이 그렇게 장기집권할수 있었던건, 당장에 먹고 살기위한, 권리 양보를 통한 어느정도의

 

인정이 있었을꺼란 저의 생각입니다.

 

다시 질문자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다시 이슈가 되는이유....는.

 

국민들의 자신의 삶이 어렵다고 생각되는거에 대한, 예전 기억의 향수 인듯합니다.

 

계속 삶의 질이 떨어지고,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역사의 수레바퀴속의 이야기처럼 다시 되풀이 되겠죠.

 

사람들이 역사를 배우는것의 중요한 의미중에 한가지 인것 같습니다.

 

이상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너도 모르면 나도 몰라 니 엄마 한테물어봐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이슈화 되는 부분은 어찌 보면은 우리 내면에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린 그동안 진짜 속으론 더러운 정치꾼들 확~~ 몰아내고 싶은데 뭔가 이건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걸 차마 하지 못하는 2%의 용기 부족이 있어 왔었죠!

 

게다가 정치꾼들은 그런 서민들의 약점들을 교묘히 악용해서 입발림에 걸맞는 탁상공론만 해대니 나라는 외적으론 물론 강대해지고 비대해진 것은 맞기야 맞지만, 내적으론 비대하였나요? 튼실하였나요? 아니거든요! 오히려 골격만 남은 뼈대만 앙상한 모습의 마치 파지 줍는 어르신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눈물을 훔치게 만들곤 합니다.

 

그럼 왜 유독 하고 많은 분들 중에 유독 박정희 대통령 일까요? 이 분은 비록 역사적으론 앞으로 비판 아닌 비판을 좀 등에 엎으실 부분중 하나가 바로 군부 세력을 등에 엎어서 혁명을 일으킨 일은봐 5*16 군사 혁명이라고 당시에 불리운 혁명일진데, 그건 당시엔 혁명일런지 몰라도 지금은 쿠테타 입니다. 그래도 지금 다시금 박정희 대통령을 찾는 이유는 말이죠!

 

그래도 당시엔 뭔가 칼을 쥐어가 그것이 실패가 되었든 성공이 되었든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라는 그 의지가 확고히 보여주는 그 자세! 그 자세를 현장에서 보여줬던 사람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는데, 요새 의원님네들 정치 공세 하신답시고 그리고 현역 의원 업무 보시던 그 시절 동안에도 말이죠! 거의가 대부분이 출장이 많으셨죠!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대부분이 농민들과의 대화가 많으셨던 사람이란 말이죠~ 특히 깡소주 혹은 막걸리와 안주는 딸랑 고추가 전부지만 말이죠~ 요새 이런 정치 하시는 분들 계시나요? 요새 이런 대통령 계시나요?

 

젼 역사를 배운 사람으로써 이렇게 생각합니다. 평가는 항시 시대에 따라 바뀌죠! 그러나 사람 자체는 바뀌진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볼적엔 평가에 요연하지 말고 오히려 사람 자체에 더욱 관심을 갖고서 많이 배워 두심이 좋은건 배워 두시고 아니 좋은건 조금 덜 배우심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현재 다시 이슈가 되는이유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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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저를 도와주세요.. 내공 만땅 걸었어요... 정말..... 알려졌었지만, 임사체험을 연구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어떤 이유로 경험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마음과 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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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내공까지^-^ 그리고 치매 증상좀 알려주세요... 노화현상으로 현재로서는 예방만이 최선이다. 뇌세포의... 나이가 들면서 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너무 부드러운 음식만...

담배에 관해 알려주세요,, 내공만땅

... 꼬옥 제대로 해주세요!!!! 내공 크게 넘!! 담배의 발견... 그리고 이 유럽의 정복자를 도와 준 아즈텍인 들에게... 우려되는 바가 크지만 현재 흡연하는 학생들에게서 앞으로...

미니게임좀알려주세요...,(내공 만땅)...

제목과같이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로즈>입니다.... 허자장은 다시 나타나서 조조에게 조조전에 기본기에... 퇴각한다로 선택하면 조조를 피신시켜야 되 는데 별로 힘들지...

문제점좀 알려주세요 (내공) 만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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