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유래가 있는 사자성어 5개

역사적 유래가 있는 사자성어 5개

작성일 2021.12.14댓글 2건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역사적 유래가 들어간 사자성어 5개 알려주세요ㅠㅠ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결초보은 / 結草報恩 結 맺을 결 草 풀 초 報 갚을 보 恩 은혜 은

겉뜻 :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

속뜻 :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②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함

③남의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

유래 : 「진(晉)나라의 大夫(대부) 魏武(위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妾(첩)이 한 명 있었다.어느날 위무자가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魏顆(위과)에게 일러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 "내가 죽으면 저 여인은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이과가 말하되 "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아서 이를 개가를 시키리라." 그리하여 서모(庶母)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하였다. 후에 진(晉)나라와 진(秦)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위과(魏顆)가 전쟁에 나갔다. 진(秦)나라의 두회(杜回)와 싸우다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져 위과가 두회를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전공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날밤, 위과의 꿈 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을 하는데 그는 서모의 아버지의 망혼이었다. "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옳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라 내 딸을 출가시켜 주었소.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하였다.

각주구검 / 刻舟求劍 刻 새길 각 舟 배 주 求 구할 구 劍 칼 검

겉뜻 :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

속뜻 : 판단력이 둔하여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世上-)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뜻

유래 :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나라의 한 젊은이가 매우 소중히 여기는 칼을 가지고 양자강을 건너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강 한복판에서 그만 실수로 쥐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놀란 이 사람은 얼른 주머니칼을 꺼내서 칼을 빠뜨린 부분의 뱃전에 자국을 내어 표시를 해 놓았다. 그는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놓았으니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배가 언덕에 닿자 뱃전에서 표시를 해 놓은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칼을 찾았으나 칼은 없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었다.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낭중지추 / 囊中之錐 囊 주머니 낭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錐 송곳 추

겉뜻 :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

속뜻 :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

유래: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했다. 이 때에 모수라는 식객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하고 나섰다. 평원군은 어이없어 하며 "그대는 내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하고 물었다. 그가 "이제 3년이 됩니다."하고 대답하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하고 반문하였다. 모수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뿐이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하고 재치있는 답변을 하였다.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수 있었다고 함

새옹지마 / 塞翁之馬 塞 변방 새 翁 늙은이 옹 之 갈 지 馬 말 마

겉뜻 :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뜻

속뜻 : ①세상만사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재앙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②인생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어 변화가 많음을 이르는 말

유래 :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불안해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 젊은이들은 싸움터로 불려 나가 대부분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계란유골 / 鷄卵有骨 鷄 닭 계 卵 알 란(난) 有 있을 유 骨 뼈 골

겉뜻 :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

속뜻 :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

유래 : 조선(朝鮮) 초기에 대신 黃喜(황희)가 집이 가난하므로 임금의 명령으로 하루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상품은 모두 황희의 집으로 보내라 했으나, 이 날은 종일 비가 와서 아무 것도 들어오는 물건이 없다가 저녁 때 달걀 한 꾸러미가 들어왔는데, 달걀을 삶아 놓고 보니 모두 곯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는 데서 나온 말. 곯았다는 '곯'음과 骨(골)의 음이 비슷하므로 와전되어 계란유골이란 말로 바뀜

형설지공 / 螢雪之功 螢 반딧불 형 雪 눈 설 之 갈 지 功 공 공

겉뜻 :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

속뜻 :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工夫)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

유래 :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전한 노력가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켜는 데 사용하는 기름조차 없었다. 소년은 밤에도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엷은 명주 주머니를 벌레통처럼 만들어 그 속에 반디를 수십 마리 집어넣어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비추어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상서랑(尙書郞)이라는 중앙 정부의 고급 관리로 출세했다. 또 같은 시대에 손강(孫康)이라는 소년은 어릴 때부터 악한 무리들과 사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역시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켤 기름을 살 수가 없었다. 소년은 궁리 끝에, 겨울날 추위를 견디며 창으로 몸을 내밀고 쌓인 눈에 반사되는 달빛을 의지해 책을 읽었다. 그 결과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관원을 단속하는 관청의 장관이 되었다.

배반낭자 / 杯盤狼藉 杯 잔 배 盤 쟁반 반 狼 어지러울 낭 藉 어지러울 자

겉뜻 ;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속뜻 ; 한창 술을 흥겹게 마시고 노는 모양 또는 술자리가 끝난 이후의 난잡한 모습을 나타내는 말.

유래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유명한 해학가 순우곤은 언변이 뛰어나 여러 차례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비굴한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초(楚)나라의 침략을 불시에 받은 제나라 위왕(威王)은 조(趙)나라에게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순우곤을 파견하였다. 순우곤이 조나라 병사 10만 명과 전차 1,000승(乘)을 이끌고 제나라로 돌아오자 이를 본 초나라 병사는 밤에 철수해 버렸다. 위기를 모면한 위왕은 매우 기뻐하여 순우곤을 위해 축하연을 베풀었다. 이 술자리에서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가운데 순우곤이 “날이 저물어 술도 거의 떨어지게 되어 취흥이 돌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서로의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며[杯盤狼藉]”라고 대답한 데서 배반낭자가 나왔다.

또한 지혜롭고 상대편의 마음을 잘 읽는 순우곤은 주색을 겸비한 위왕에게 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간(諫)하였다.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지는데 만사가 모두 그와 같습니다[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 이 말은 곧 달도 차면 기울고 모든 사물이 그와 같으므로 나라의 운세도 같다는 뜻이다. 이후 위왕은 순우곤의 진솔하고 충직함을 깨닫고 철야로 주연을 베푸는 것을 삼갔다고 하며, 순우곤을 제후의 주객(主客:외국사신을 접대하는 관리의 우두머리)으로 삼아 왕실의 주연이 있을 때는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배반낭자는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도 나온다. 오늘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과도하게 술을 마셔 몸과 마음을 해치는, 나아가 사회 분위기가 혼탁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경계하는 의미에서 배반낭자라는 고사성어가 주는 의미는 크다.

만사일생 / 萬死一生 萬 일만 만 死 죽을 사 一 한 일 生 살 생

겉뜻 ;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

속뜻 ; 요행히 살아나거나 겨우 죽음을 모면하는 것을 뜻한다.

유래 : 수나라 말,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두건덕, 두복위, 맹해공, 곽자화 등을 필두로 하는 반란군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황제는 이연에게 이들을 진압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이때 18세의 나이였던 이세민도 참가하였다. 그런데 황제는 이연이 출정한 뒤, 사람을 시켜 그가 반란군에 동조하지 않는지 감시하도록 했다. 이세민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반란군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들을 전부 토벌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들을 토벌하지 못한다면, 황제는 아버님께 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직접 군대를 일으켜 자립할 것을 권하였다. 그래서 이연은 태원을 거점으로 하여 병사를 일으키고 다른 곳에서 일어난 반란군들을 회유하여 하나하나 자신의 세력 밑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수양제는 우문화에게 시해되고, 수나라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국 통일의 염원을 이세민이 이룬 것이다. 이세민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수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령 진숙보, 장량, 이정, 이훈, 방현령, 두여회 등이다. 이세민이 재능 있는 인사를 아꼇다는 것은 이정과의 인연에서 엿볼 수 있다. 일찌기 이연이 병사를 일으키려고 했을 때, 이 사실을 눈치 챈 관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정이다. 이정은 장안으로 가서 보고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이연은 자신의 거사를 망치려고한 이정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세민은 아버지를 만류하고 훗날 재상으로 삼았다. 이정은 평상시 자신보다 지혜와 능력이 월등한 사람을 보면 자기 자리를 서슴없이 내놓는 그런 사람이다. 이세민은 그의 이러한 면을 아꼈던 것이다. 이세민은 정관황제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방현령은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느라 고생을 하고,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오기도 하였다."

득어망전 / 得魚忘筌 得 얻을 득 魚 고기 어 忘 잊을 망 筌 가리 전

겉뜻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뜻

속뜻 :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

유래 :"전(筌)은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나 고기를 잡고 나면 전은 잊어버리게 된다. 제(蹄 : 덫)는 짐승 을 잡기 위한 것이나 짐승을 잡고 나면 제는 잊어버린다. 말(言)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나 뜻을 다 알게되면 그 말은 잊어버린다."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여기서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어느 것이나 시비와 선악 같은 것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상대를 초월하여 이 세상의 만물은 한몸이라 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경지에 서면,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한 것도 악함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는 그 당연한 일 면을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기회주의적인 모순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갈택이어 /竭澤而漁 竭 다할 갈 澤 못 택 而 말이을 이 漁 고기잡을 어

겉뜻 ;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는다는 뜻

속뜻 ;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함.

유래 ;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성복(城)이라는 곳에서 초(楚)나라와 일대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초나라 군사의 수가 진나라 군사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병력 또한 막강하였으므로 승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호언(狐偃)에게 물었다. "초나라의 병력은 많고 우리 병력은 적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겠소"라고 하자 호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예절을 중시하는 자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속임수를 써 보십시오." 문공은 다시 이옹(李雍)의 생각을 물었다. 이옹은 호언의 속임수 작전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焚藪而田 豈不獲得 而明年無獸).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 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 이옹의 비유는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화를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남가일몽 /南柯一夢 南 남녘 남 柯 가지 가 一 한 일 夢 꿈 몽

겉뜻 :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속뜻 : ① 덧없는 한때의 꿈.

②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③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부귀 영화.

유래 : 당(唐)나라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80-804)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 (淳于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어디서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 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南柯) 태수를 제수(除授) 받고 부임했다. 남가군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 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宰相)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사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 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 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 [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태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 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남귤북지 / 南橘北枳 南 남녘 남 橘 귤 귤 北 북녘 북 枳 탱자 지

겉뜻 : 남쪽 땅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 나무로 변한다는 뜻

속뜻 : 사람도 그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이르는 말

유래 : 옛날 제(齊)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宰相)이 있었다. 안영의 이름을 들은 초(楚)나라의 임금은 자기 나라에 그를 초청했다. 온 천하(天下) 사람이 칭찬(稱讚)하는 안영을 놀려 주겠다는 타고난 심술 때문이었다. 초나라의 임금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기가 바쁘게 한 죄인을 불러 놓고 말했다.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제나라 사람입니다""무슨 죄를 지었느냐?""절도죄를 지었습니다"임금은 안영을 보고 말했다."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는 모양이군요"그러자, 안영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對答)했다."강 남쪽의 귤을 강 북쪽으로 옮기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저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초나라로 와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면 초나라의 풍토가 좋지 않은가 하옵니다"

전거후공 / 前倨後恭 前 앞 전 倨 오만할 거 後 뒤 후 恭 공손할 공

겉뜻 ; 이전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

속뜻 ; 상대편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상반되는 것을 비유한다.

유래 ; 춘추전국시대에 종횡가(縱橫家)로 손꼽히는 소진(蘇秦)이 있었다. 그는 본래 낙양(洛陽) 사람으로 귀곡자(鬼谷子)를 스승으로 섬겼고, 수년 동안 제후들에게 유세하러 다니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하여 결국 실의에 빠진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낙향에 아내와 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형수는 노골적으로 경멸하며 비웃었다. 소진은 두문불출하고는 마침내 종횡의 이론을 생각했다. 소진은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로 가서 제(齊), 초(楚), 위(魏), 한(韓)등 6개 나라가 연합하여 막강한 진(秦)나라에 대항하자는 건의를 했다. 결국 그의 견해는 받아들여져 6국은 소진을 승상의 지위까지 맡겨 진나라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소진은 어느 날 북방에 있는 조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옛날 생각이 나서 고향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그가 집에 도착하자, 그의 형제와 아내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곁눈질하며 시중을 들었다. 특히 형수의 태도는 더욱 공손하였다. 소진은 그 모습을 보고 형수에게 물었다.

“옛날에는 무척 거만했는데, 지금은 이다지도 공손해지셨습니까?” “이제는 서방님의 지위가 높아 감히........”

이 말을 듣고 난 소진은 한탄하며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소진인데, 부귀할 때는 남들이 두려워하고 빈천할 때는 멸시하니, 부와 명예가 이렇게도 대단하던가!”

우리 주변에도 소진의 형수 같은 무리들이 적지 않음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추종자들의 그들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다.

이관규천 / 以管窺天 以 써 이 管 대롱 관 窺 엿볼 규 天 하늘 천

겉뜻 :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다.

속뜻 :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살펴 보았자 그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유래 : 춘추시대 말기의 일이다. 뒷날 동양 의학의 원조(元祖)이자 의성(醫聖)으로도 일컬어지는 편작(扁鵲)이 괵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였다. 마침 병을 앓던 이 나라의 태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작은 궁정의 의사를 찾아 갔다. 태자의 병이 무슨 병인가를 물어보고 현재의 상태를 알아낸 편작은 말했다. "그럼 내가 태자를 소생시켜 보겠습니다." 편작이 팔을 걷고 나서자 궁정의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무책임한 말씀은 삼가시오. 어린애도 그런 말은 곧이듣지 않을게요." 그러자 편작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듯 말했다. "당신의 의술 따위는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며(以管窺天)' 좁은 틈새로 무늬를 보는 것과 같소." 잠시 뜸을 들였다가 편작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말을 정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태자를 살펴보시오. 그의 귀가 울고 코가 벌름거리는 소리가 들려올게요. 그리고 양쪽 사타구니를 쓰다듬다가 음부에 손이 닿으면 그곳은 아직 따뜻할 것이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진찰해보니 편작이 말한 그대로이자, 궁정의사는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괵나라 임금은 편작에게 매달렸다. 편작이 침을 놓자 태자는 소생했고 치료를 더하자 20일 후에는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편작이 죽은 사람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자 편작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게 아니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이오'"

마부작침 / 磨斧作針 磨 갈 마 斧 도끼 부 作 만들 작 針 바늘 침

겉뜻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

속뜻 ;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

유래 ; 남송(南宋) 때 축목(祝穆)이 지은 지리서 《방여승람(方與勝覽)》과 《당서(唐書)》 문예전(文藝傳)에 보이는 말이다. 당(唐)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서역의 무역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촉(蜀)에서 보냈다. 젊은 시절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이백은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려 쓰촨성[泗川省] 각지의 산을 떠돌기도 하였다. 이때 학문을 위해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갔던 이백이 공부에 싫증이 나 산에서 내려와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백이 물었다.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한단다. " 노파의 대답을 들은 이백이 기가 막혀서"도끼로 바늘을 만든단 말씀입니까?" 하고 큰 소리로 웃자,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며 꾸짖듯 말하였다. "얘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가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이백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그 후로는 한눈 팔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그가 고금을 통하여 대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철저이성침(磨鐵杵而成針), 마철저(磨鐵杵), 철저성침(鐵杵成針), 우공이산(愚公移山)이나 수적석천(水滴石穿)과 같은 의미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노력하면 마침내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포역포 / 以暴易暴 以 써 이 暴 사나울 포 易 바꿀 역 暴 사나울 포

겉뜻 ;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뜻

속뜻 ; 정치를 하는데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비유한 말.

유래 ; 이포여포란 위정자가 정치를 함에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한 고사가 《사기(史記)》 〈백이숙제열전편(伯夷叔齊列傳篇)〉에 실려 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이다. 왕은 아우 숙제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왕이 사망하자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나라를 떠났으며, 숙제 또한 그 뒤를 따라갔다. 나라에서는 할 수 없이 둘째를 왕으로 삼았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의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백은 이미 죽어 문왕(文王)에 추존되었으며,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이렇게 간(諫)하였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라 할 수 있는가?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무왕의 호위 무사들이 그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태공이 이들을 의인이라고 하며 돌려보내게 하였다. 무왕이 은을 평정하여 천하가 주(周) 왕실을 종주로 섬겼으나, 백이와 숙제는 그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양식을 먹으려 하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비[薇]를 꺾어 배를 채웠다. 그들은 굶주려 죽기 전에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구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다스렸으니,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神農), 우(禹), 하(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고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역사 이전부터 백이와 숙제가 힘의 정치에 대한 부당성을 비판하였지만, 지금도 이런 정치 형태는 여전히 그 힘을 발한다.

독서망양 / 讀書亡羊 讀 읽을 독 書 책 서 亡 잊을 망 羊양 양

겉뜻 ; 책을 읽다가 양을 잃어버린다는 뜻

속뜻 : 다른 일에 정신이 뺏겨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비유.

유래 : 장(臧)과 곡(穀) 두 사람은 한 집에 살면서 서로 함께 양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장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양을 돌보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되었느냐고 추궁하자 장은 "댓가지를 옆에 끼고 책을 읽고 있다 양을 잃었다(讀書亡羊)." 고 대답했다. 그리고 곡은 "주사위 놀이를 하느라 양을 돌보지 못하고 잃어버렸노라." 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양을 돌보는 일을 하는 중 한 일은 서로 달랐지만 그 양을 잃어버림에 있어서는 똑같다는 것이다.

낙양지귀 / 洛陽紙貴 洛 물 이름 낙 陽 볕 양 紙 종이 지 貴 귀할 귀

겉뜻 :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다는 뜻

속뜻 : 저서(著書)가 호평(好評)을 받아 잘 팔리는 것을 비유한 말

유래 : 제(齊)나라의 좌사(左思)는 어려서는 글을 그리 잘하지 못하고, 또 인물(人物)도 변변치 못했으나 일단 붓을 들면 구구절절이 명문이었다. '제도부(齊都賦)'를 1년 만에 완성한 그는, 상(想)이 떠올라서 '삼도부(三都賦)'를 쓰고 다듬기를 거듭해 10년 만에 끝마쳤으나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는데, 어느날 장화(張華)라는 시인이 읽어 보고 "이는 반고(班固)와 장형(張衡)의 유(流)다."라고 칭찬(稱讚)했다. 이런 대문장가에게 비겼으니 '삼도부'는 하루 아침에 유명해져 당대의 고관대작들은 물론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배껴 가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뛰어 오르게 되었다 함.

문전작라 / 門前雀羅 門 문 문 前 앞 전 雀 참새 작 羅 벌일 라

겉뜻 :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속뜻 : 권세를 잃거나 빈천(貧賤)해지면 문 앞 (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말.

유래 : 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 면직 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 (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게 덧붙여 쓰고 있다.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또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 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

남원북철 / 南轅北轍 南 남녘 남 轅 끌채 원 北 북녘 북 轍 바퀴자국 철

겉뜻 ; 수레의 끌채는 남을 향하고 바퀴는 북으로 감.

속뜻 ; 마음과 행위가 모순되고 있음을 비유

유래 ;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而:자는 樂天)의 《신악부(新樂府)》〈입부기시(立部伎詩)〉 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왕이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鄲)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여행을 하고 있던 신하 계량(季梁)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 그는 왕에게, “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남방의 초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면서 북쪽을 향해 마차를 몰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이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잘 달려도 이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나는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고, 마부가 마차를 모는 기술은 훌륭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의 행동은 초나라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계랑은 말을 잠시 머추었다가 다시 말하였다.

“왕께서는 항상 패왕(覇王)이 되어 천하가 복속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왕께서는 나라가 조금 큰 것만을 믿고 한단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왕의 영토와 명성은 떨칠 수 있을지라도 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만난 사람처럼 마음은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몸은 마차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남원북철’은 위 글의 대의를 나타낸 말이며, 또한 ‘북원적초(北轅適楚:수레의 끌채는 북을 향하고 수레는 남의 초로 가려 함)’이라고도 한다. 계량은 무력이 아니고, 덕(德)으로 천하를 제패할 것을 진언(進言)한 것이다.

삼고초려 / 三顧草廬 三 석 삼 顧 돌아볼 고 草 풀 초 廬 농막집 려

겉뜻 : 세 번 초가집에 가보다

속뜻 : 인재를 맞이하기 위해 참을성있게 힘쓴다는 말

유래 : 후한 말엽, 유비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가 없어 늘 조조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인 사마 휘에게 군사를 천거(薦擧)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이나 봉추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對答)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 땅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 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魏)나라의 조조, 오나라의 손권과 더불어 천하(天下)를 삼분하고 한실의 맥을 잇는 촉한을 세워 황제(皇帝)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은 재상(宰相)이 되었다.

다다익선 / 多多益善 多 많을 다 多 많을 다 益 더할 익 善 착할 선

겉뜻 :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속뜻 : 많이 보태지면 힘이 더 난다.

유래 : 漢(한)나라 유방(劉邦)이 천하통일 후 한신(韓信)을 楚(초)왕으로 임명하고, 한신에게「임금이 묻기를 "나는 얼마쯤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느냐? " 한신이 대 답하기를 "폐하께서는 10만의 군사를 거느리는 데에 불과합니다." 임금이 가로되 "그대는 얼마쯤인가?" 한신이 대답하기를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上問曰(상문왈) 如我能將幾何(여아능장기하)오하니 信曰(신왈) 陛下不過能將十萬(폐하불과능장십만)이니다. 上曰(상왈) 於君何如(어군하여)오 曰(왈) 臣多多益善耳(신다다익선이)니이다.>」 유방이 웃으면서"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사람이 어째서 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느냐?"하니 한신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장군의 능력은 없지만 장군을 통솔하는 폐하의 능력은 하늘이 주신 것이므로 도저히 사람의 능력으로는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망운지정 / 望雲之情 望 바랄 망 雲 구름 운 之 갈 지 情 뜻 정

겉뜻 : 구름을 바라보는 뜻

속뜻 : 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

유래 : 당(唐)나라「적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참군(幷州法曹參軍)에 있을 때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 땅 별업(別業)에 계신데, 인걸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반복하여 돌아보면서 흰 구름이 외롭게 나는 먼 곳을 좌우 사람에게 일러 말하되 "내 어버이가 저 구름이 나는 아래에 계신데, 멀리 바라만 보고 가서 뵙지 못하여 슬퍼함이 오래되었다." 하고 구름이 옮겨 간 뒤에 이에 산에서 내려왔다.

개과천선 / 改過遷善 改 고칠 개 過 지날 과 遷 옮길 천 善 착할 선

겉뜻 : 지난 허물을 고치고 착하게 됨.

속뜻 : 지난 허물을 고처서 착한 인품을 기름.

진(晉) 혜제(惠帝) 때 주처(周處)라는 사람은 어릴 적에 방탕한 생활을 하다 철이 들어 새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이에 동오(東吳)에 가서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면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라고 하였다. 이후 10년간 학문에 정진한 주처는 마침내 학자로서 입신양명하였다.

관포지교 / 管鮑之交 管 대롱 관 鮑 절인 물고기 포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말,

속뜻: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교제

유래 :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재상(宰相)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성공한 후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 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포숙아다."

문경지교 / 刎頸之交 刎 목 벨 문 頸 목 경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

속뜻 :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유래 : 전국시대(戰國時代) 趙(조)의 혜문왕(惠文王) 때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공을 세웠지만 환관 무현(武賢)의 식객에 불과했던 인상여를 경대부(卿大夫)에 임명하자 염파는 불만이 대단하였다. 그래서 인상여를 만 나면 망신을 주리라 생각하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니 부하들이"왜 그렇게 염장군을 두려워합니까?"라고 물으니 인상여가"秦(진)나라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 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염파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염파가 옷을 벗어 살을 드러내고 곤장을 지고 인상 여의 집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기를"비천한 사람이 장군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인상여와 염파가 문경지우가 되었다. 廉頗(염파)가 肉袒負荊(육단부형)하고 至門(지문)하여 謝罪曰(사죄왈) 鄙賤之人(비천지인)이 不知將軍寬之如此(부지장군관지여차)라. 卒(졸) 相與驩(상여환)이 爲刎頸之友(위문경지우)하다.

수어지교 / 水魚之交 水물 수 魚물고기 어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겉뜻 : 물과 물고기의 사귐.

속뜻 : 임금과 신하 사이의 두터운 교분. 부부의 친밀함.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래 :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와 같은 용장이 있었지만, 천하의 계교를 세울 만한 지략이 뛰어난 모사(謀士)가 없었다. 이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과 같은 사람을 얻었으므로, 유비의 기쁨은 몹시 컸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금후에 취해야 할 방침으로,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눌러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할 것과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을 어루만져 뒤의 근심을 끊을 것과 내정을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실리를 올릴 것과, 손권과 결탁하여 조조를 고립시킨 후 시기를 보아 조조를 토벌할 것 등의 천하 평정의 계책을 말하자 유비는 그 계책에 전적으로 찬성하여 그 실현에 힘을 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비는 제갈공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어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그러자 관우나 장비는 불만을 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제갈공명(이 때 공명의 나이는 28세)만 중하게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 등은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죽마고우 / 竹馬故友 竹 대 죽 馬 말 마 故 연고 고 友 벗 우

겉뜻 :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친구라는 뜻

속뜻 :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내며 자란 친구를 이르는 말

유래 : 진(秦)나라 12대 황제(皇帝)인 간문제 때의 일이다. 촉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라는 은사를 건무장군 양주지사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했다. 왕희지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 중 하나인 후조의 왕석계룡이 죽고 호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秦)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 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막역지우 / 莫逆之友 莫 없을 막 逆 거스릴 역 之 갈 지 友 벗 우

겉뜻 : 서로 거스르지 않는 친구라는 뜻

속뜻 : 아무 허물없이 친한 친구를 가리키는 말

유래 :《장자(莊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의 우화가 나온다. 이 우화는 둘 다 바깥의 사물에 얽매이지 말고 천리(天理)를 좇아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그 도입부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도 물론 가공 인물이다.

‘어느 날 자사(子祀)·자여(子輿)·자려(子) ·자래(子來) 네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능히 없는 것으로써 머리를 삼고, 삶으로써 척추를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겠는가. 누가 생사존망(生死存亡)이 일체임을 알겠는가. 내 이런 사람과 벗이 되리라.” 네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四人 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그 뒤로 이들이 병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초연한 모습이 이어진다.

또다른 이야기를 보면, ‘어느 날 자상호(子桑戶)·맹자반(孟子反)·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이 서로 더불어 말하였다. “누가 능히 서로 사귀는 게 아니면서도 서로 사귀고, 서로 돕는 것이 아니면서도 서로 도울 수 있을까. 누가 능히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서 놀고 끝이 없는 곳(無極)에서 자유롭게 다니며, 서로 삶도 잊은 채 다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세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데가 없어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그 뒤는 자상호의 장례에 공자와 자공을 내세워 예로써 마음을 가두려는 것을 비웃고 있다.

이와 같이 막역지우란 본래 천지의 참된 도를 깨달아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간의 교류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서로 허물없는 친구 사이를 모두 가리키게 되었다.

가인박명 / 佳人薄命 佳 아름다울 가 人 사람 인 薄 엷을 박 命 목숨 명

겉뜻 :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

속뜻 :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하고 명이 짧다.

유래 : 미인은 불행한 일이 따르기 쉽고 요절(夭折)하기 쉽다는 말이다. 이 말은 소식이 양주 지방의 장관으로 있을 때 30세가 넘은 아름다운 여승의 파란만장한 삶을 유추하여 지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고로 아름다운 여인은 명이 짧은 경우가 많도다[自古佳人多薄命]”에서 유래한다. 양귀비가 안록산의 난 중 군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 그 예라고 하겠다. 그 이외에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요절했을 때도 이런 말을 사용하고는 한다.

경국지색 / 傾國之色 傾 기울 경 國 나라 국 之 갈 지 色 빛 색

겉뜻 :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

속뜻 :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유럐 :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협률도위(協律都尉)로 있던 이연년(李延年)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도다” 이는 절세가인인 자기 여동생을 자랑하려는 것이었고, 이에 입궁한 여동생은 한무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문정성시 / 門前成市 門 문 문 前 앞 전 成 이룰 성 市 저자 시

겉뜻 : 대문(大門)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

속뜻 : 세도가(勢道家)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訪問客)으로 저자(市)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

유래 : 漢(한)나라 애제(哀帝)는 약관(弱冠)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외척이 정권을 쥐고 있어 꼭두각시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정숭(鄭崇)이라는 어진 신하(臣下)가 있었다. 처음엔 정숭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외척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 지자 귀찮아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그 틈에 간신들이 기회를 잡고 그를 모함 하니,「임금이 정숭을 꾸짖기를 그대의 집은 시장과 같다고 하니 어찌하여 짐(朕)과의 관계(關係)를 금하여 깨려 하는가? 하니 정숭이 대답(對答)하여 말하기를 신의 집은 시장과 같으나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上責崇曰(상책숭왈) 君門如市(군문여시)이라하니 何(하) 以欲禁切主上(이욕금절주상)이리오하니 崇對曰(숭대왈) 臣門如市(신문여시)이나 臣心如水(신심여수)이니다.>」라고 대답(對答)했 다.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말을 믿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결국 옥사하고 말았다.

괄목상대 / 刮目相對 刮 긁을 괄 目 눈 목 相 서로 상 對 대할 대

겉뜻 :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對)한다는 뜻

속뜻 :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말함

유래 : 삼국(三國)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당시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 중에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졸병에서 전쟁의 공으로 장군까지 된 여몽이었으나 무식했다. 그러나 손권은 그가 이론적인 병법까지 알기를 원해서 학문(學問)을 깨우치도록 충고를 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장(戰場)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했다. 얼마 후 뛰어난 학식을 가진 노숙이 여몽과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갔다. 노숙은 여몽과 막역한 친구(親舊)여서 여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면서 "이 사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이제 오나라 있을 때 여몽이 아닐세..."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라고 했다.

군계일학 / 群鷄一鶴 君 무리 군 鷄 닭 계 一 한 일 鶴 학 학

겉뜻 :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

속뜻 : 여러 평범 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의 비유.

유래 :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瑞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 유령(劉伶), 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 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瑞康) 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되는 아들 혜소(瑞紹:? ∼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당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이부(吏部)에서 벼슬하던 산도(山濤)가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 司馬炎)에게 상주(常住)하였다. "폐하, 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미치지 않으며 아들의 죄는 그 아비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강은 도륙 당했음).

비록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나 그 슬기나 지혜는 춘추시대 진(晉) 나라의 대부 극결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 하시오소서." "그대가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면 승(丞)을 시켜도 좋을 듯하오." 이렇게 말하면서 무제는 비서랑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인 비서승(秘書丞)으로 혜소를 등용했다. 혜소가 처음으로 낙양(洛陽)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 (王戎)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저께 많은 혼잡한 군중 속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드높은 혈기와 기개는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群鷄一鶴]'과 같더군요." 이 말을 듣고 왕융은 대답했다. "그대는 혜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늠름했다네."

대기만성 / 大器晩成 大 큰 대 器 그릇 기 晩 늦을 만 成 이룰 성

겉뜻 ; 큰 그릇은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

속뜻 ;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유래 ;《노자(老子)》 41장에서 나온 말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하여 도(道)를 설명하였는데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 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또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大音希聲),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象無形). 왜냐하면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고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보듯 만성(晩成)이란 본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 강하다. 그런데 후일 이 말이 늦게 이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비롯된 듯하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이름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는 최림(崔林)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외모도 빈약하고 출세가 늦어 친척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였다. 하지만 최염만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큰 종이나 큰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형이다.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틀림없이 네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최림은 후일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나이 들어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백전백승 / 百戰百勝 百 일백 백 戰 싸울 전 百 일백 백 勝 이길 승

겉뜻 :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

속뜻 :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유래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 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 "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계명구도 / 鷄鳴狗盜 鷄 닭 계 鳴 울 명 狗 개 구 盜 도둑 도

겉뜻 :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하다.

속뜻 : 잔재주를 자랑함.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유래 :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갖가지 재주 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호백구(狐白裘)를 선물했다. 소왕은 맹상군(孟嘗君)을 임명하려 했지만 많은 신하(臣下)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한편 맹상군(孟嘗君)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소왕의 애첩 총희(寵嬉)를 달래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 "신이 능히 호백구(狐白裘)를 얻어 오겠습니다." 하고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秦)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바쳤던 호백구(狐白裘)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 곳을 빠져 나와 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소왕은 맹상군(孟嘗君)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

양상군자 / 梁上君子 梁 대들보 양 上 위 상 君 임금 군 子 아들 자

겉뜻 ;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

속뜻 ; 도둑을 가리키는 말.

유래 ;《후한서(後漢書)》〈진식전(陳寔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식은 학식이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있을 때 어느날 밤 도둑이 그의 방으로 들어와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진식은 곧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훈계를 시작하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들보 위에서 뛰어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 주십사하고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를 조용히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고을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한다.

내우외환 / 內憂外患 內 안 내 憂 근심 우 外 바깥 외 患 근심 환

겉뜻 : 안의 근심과 밖의 재난.

속뜻 ; 근심·걱정 속에 사는 것을 뜻함

유래 : 송(宋)나라에 환원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다. 그는 지성을 다해 진(晉)과 초(楚)를 설득하여 기원전 579년에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양국의 대표자가 맹약을 조인케 하였다. 그 맹약의 주된 내용은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환란이 있을 때엔 서로 도우며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있을 때에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공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남북을 대표하는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천하의 소란을 가라앉히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맹약이 깨어진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맹약은 깨어지고 이듬해인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낙서(樂書)라는 이는 진나라에 항거하는 정나라를 치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었다. 이때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자 범문자가 반대했다. "제후로 있는 자가 반란하면 이를 토벌하여야 함이 마땅한 것이지 그를 돕게 되면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이요." 낙서가 말했다. "성인이라면 밖으로의 재난을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밖으로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 우환이 있을 것이요. 그러니 그것을 어찌 견디겠소."

공자천주 / 孔子穿珠 孔 구멍 공 子 아들 자 穿 뚫을 천 珠 구슬 주

겉뜻 :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말.

속뜻 :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일깨우는 말

유래 : 공자(孔子)가 구멍이 아홉 구비나 되는 구슬을 얻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아낙에게 물으니, “찬찬히 꿀[蜜]을 두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였다. 공자는 잠시 후 그 의미를 깨닫고는 나무 아래에 왔다갔다하는 개미를 한 마리 붙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는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 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구슬을 실에 꿸 수 있게 되었다.

과유불급 / 過猶不及 過 지날 과 猶 오히려 유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겉뜻 :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속뜻 : 중용을 가리키는 말

유래 : 子貢(자공)이 공자(孔子)에게 "子張(자장)과 子夏(자하) 중, 누가 현명합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자장이 공자(孔子)에게 "士(사)로서 어떻게 하면 達(달)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孔子)는 도리어 자장에게 반문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達(달)이란 무엇인가?" "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의 신하(臣下)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聞(문)이지 達(달)이 아니다. 본성이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臣下)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達(달)이라 할 수 있다." 하고 공자(孔子)는 자장의 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한편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군자유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 "자장은 지나쳤고, 자하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過猶不及;과유불급)."

도원결의 / 桃園結義 桃 복숭아 도 園 동산 원 結 맺을 결 義 옳을 의

겉뜻 : 복숭아 밭에서 결의를 맺는다는 말

속뜻 :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 목적을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

유래 : 원(元)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생할고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새로운 살길을 찾게 되었다. 신흥 종교인 태평도(太平道)의 교주 장각(張角)은 이러한 틈을 이용해 세력을 넓히고 난을 일으켰다. 이것이 후한을 멸망시킨 황건적의 난이다. 조정에서는 하진을 대장군으로 삼아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미치지 못하자 각 지방에 병사를 모집하는 방을 붙이게 되었다. 유주(幽州) 탁현(縣)에 살던 유비(劉備)는 이 방문을 보자 가슴이 뛰었다. 그는 평소에 큰 일을 하고 싶어했으며, 일찍이 뤄양에 차를 사러 갔다가 황건적 무리의 횡포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거한이 유비 곁으로 다가와 한숨만 쉬는 것을 꾸짖었다. 장비(張飛)였다. 둘은 뜻이 같음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가까운 주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또 범상치 않은 얼굴의 거한이 있어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가 관우(關羽)였다. 서로 의기가 투합하자, 장비의 제안으로 다음날 장비의 집 후원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 결의를 맺고 피를 나누었다.

군맹무상 / 群盲撫象 群 무리 군 盲 소경 맹 撫 어루만질 무 象 코끼리 상

겉뜻 :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

속뜻 : 곧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의 비유

유래 : 어느 날, 임금이 대신들에게 명하여 코끼리를 끌어다가 소경들에게 보여주라 했다. 소경들은 코끼리라는 짐승이 앞에 있다는 말을 듣고서 신기해 제각기 어루만져 보았다. 그러자 임금님이 소경들을 불러 코끼리의 생김새를 물어 보았다. 이에 상아를 만져 본 소경이 "코끼리는 큰 무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다음에는 귀를 만져 본 소경이 "아니옵니다. 코끼리는 곡식을 까부르는 키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머리를 만진 소경이 "아니옵니다. 코끼리는 돌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다음에는 코를 만진 소경이 "코끼리는 틀림없이 절구공이처럼 생겼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다리를 어루만진 소경이 "코끼리는 틀림없이 절구통처럼 둥그렇게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또 등을 만졌던 소경이 "아니옵니다. 코끼리는 평상(平床)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배를 만진 소경이 "코끼리는 꼭 밧줄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이글을 소개한 불경에는 " 선남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를 제대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잘못 말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코끼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 나오는 코끼리는 불성(佛性)을, 소경은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한 말인데, 중생은 불성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고, 또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함시해 주고 있음.

삼인성호 / 三人成虎 三 석 삼 人 사람 인 成 이룰 성 虎 범 호

겉뜻 :세 사람이 짜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할 수 있다는 뜻

속뜻 :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듣는다는 말.

유래 : 전국 시대, 위(魏:梁)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이 볼모[人質]로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 "그땐 믿을 것이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구밀복검 / 口蜜腹劍 口 입 구 蜜 꿀 밀 腹 배 복 劍 칼 검

겉뜻 :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

속뜻 :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

유래 : 당나라 현종은 재위 초기에는 정치를 잘하여 칭송을 받았으나 점점 주색에 빠져들면서 정사를 멀리하였다. 당시 이임보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는 황제의 비위를 맞추면서 충신들의 간언이나 백성들의 탄원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며 조정을 떡 주무르듯 했다. 질투심도 강하여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면, 자기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나 아닌지 두려워하여 가차없이 제거하였다. 그것도 자신의 권위를 이용한 강인한 수법으로는 절대로 하지 않고, 황제 앞에서 충성스러운 얼굴로 상대를 한껏 추켜 천거하여 자리에 앉혀 놓은 다음 음모를 꾸며 떨어뜨리는 수법을 썼다. 이임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다음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주살되는 자가 반드시 생겼다. 따라서 꿈에라도 황제께 직언할 생각을 갖고 있는 선비들은 몸을 잔뜩 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행태를 보고 그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임보는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칼을 가지고 있으니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구우일모 / 九牛一毛 九 아홉 구 牛 소 우 一 한 일 毛 터럭 모

겉뜻 : 아홉 마리 소에 털 한가닥이 빠진 정도라는 뜻

속뜻 : ①아주 큰 물건 속에 있는 아주 작은 물건

②여러 마리의 소의 털 중에서 한 가닥의 털 ③대단히 많은 것 중의 아주 적은 것의 비유

유래: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 때, 흉노를 정벌하러 5,000의 군사를 이끌고 이릉이 출전하여 10여일간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난전중에 죽은 줄 알았던 이릉이 흉노에 투항하여 후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무제는 이릉 일족을 참형하라 하였으나 중신들은 이릉을 변호할 인재가 없었다. 이에 분개한 사마천이 무제에게 아뢰기를 "소수의 보병으로 수만의 오랑캐와 싸우다 흉노에게 투항한 것은 훗날 황은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진노한 무제는 사마천을 옥에 가두고 궁형(생식기를 잘라 없애는 형벌)을 내렸다. 세인들은 이때의 일을 '이릉의 화'라고 말한다. 이를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에게 참담한 심경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법에 의하여 사형을 받아도 아홉마리의 소 중,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을 뿐이니, 나와 같은 자가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이런 수치스런 일을 당하고도 죽지 않았으니 졸장부라고 여길걸세." 사마천이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가슴 아파하면서도 치욕을 무릅쓰고 살아가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당시 태사령(조정의 기록사서)이었던 아버지 사마담이 임종시 '통사'를 기록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 『사기』를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중국 최초의 역사서로서 불후의 명저로 손꼽히는 『사기』 130권이 완성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부화뇌동 / 附和雷同 附 붙을 부 和 화할 화 雷 우레 뇌 同 한가지 동

겉뜻 : 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 한다는 뜻

속뜻 :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함

유럐 :『예기(禮記)』 <곡례(曲禮)> 상(上)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말처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마라. 옛 성현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하라." 이것은 손윗사람에게 아랫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또 논어 <자로(子路)>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남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인은 이익을 좇으므로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끼리는 함께 행동하지만 남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우레가 한번 쳤다 하면 천지 만물은 이에 호응하듯이 연달아 덜컥 거린다. 이처럼 자신의 줏대와 기준을 망각한 채 이해관계에 따라서 혹은 무조건 남의 주장에 따르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함흥차사 / 咸興差使 咸 다 함 興 일 흥 差 다를 차 使 하여금 사

겉뜻 : 함흥으로 간 심부름꾼

속뜻 :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또는 회답(回答)이 더딜 때의 비유

유래 : 이조 초 함흥으로 간 태조를 모셔 오기 위해서 보낸 使臣(사신). 1398년 (태조 7) 세자 芳碩(방석)이 왕자의 亂(난)으로 죽은 뒤 태조는 정치에 뜻이 없어 王位(왕위)를 定宗(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갔다. 태종이 즉위하여 성석린(成石璘)을 보내어 일단 서울로 돌아왔으나, 1402년(태종 2)에 다시 北東(북동) 방면으로 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왕이 差使(차사)를 보냈으나 차사도 돌아오지 않아 이 때부터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함흥차사'라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차사를 모두 태조가 죽인 것이라 하나 문헌에는 朴淳(박순)의 희생만이 알려져 있고 그 후 여러 차례의 간청에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師父(사부) 無學大師(무학대사)가 가서 겨우 서울로 오게 하였다.

타산지석 / 他山之石 他 다를 타 山 뫼 산 之 갈 지 石 돌 석

겉뜻 : 다른 산의 돌이라는 뜻

속뜻 :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 수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自己)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이 말은 '『시경(詩經)』, 소아편 학명(鶴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의 한 구절이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 (樂彼之園 낙피지원)) 박달나무 심겨 있고(爰有樹檀 원유수단)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其下維穀 기하유곡) 다른 산의 돌이라도 (他山之石 타산지석)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 (可以攻玉 가이공옥) 돌을 소인에 비유하고 옥을 군자에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방약무인 / 傍若無人 傍 곁 방 若 같을 약 無 없을 무 人 사람 인

겉뜻 :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

속뜻 :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

유래 : 위(衛)나라 사람인 형가(荊軻)는 성격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으며, 문학과 무예에 능하였고, 애주가였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청운을 품고 위(魏)나라의 원군(元君)에게 국정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건의를 피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燕)나라 및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현인과 호걸과 사귀기를 즐겼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연나라에서 사귄, 비파(琵琶)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인데 이 두 사람은 호흡이 잘 맞아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술판을 일단 벌여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고성 방가하였다. 그러다가 신세가 처량함을 서로 느껴 감정이 복받치면 둘이 얼싸안고 울기도 웃기도 하였다. 이때 이 모습은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傍若無人> 보였다. 원래 방약무인은 아무 거리낌없이 당당한 태도를 말하였는데 변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무례하거나 교만한 태도를 표현할 때 인용된다. 이후 진(秦)나라의 정(政:훗날 시황제)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연나라의 태자 단(丹)이 형가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진시황제(秦始皇帝) 암살을 부탁하였다. 형가는 단의 부탁으로 진시황제(秦始皇帝) 암살을 기도하였지만 진시황제(秦始皇帝)의 관복만 뚫었을 뿐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진시황제(秦始皇帝)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암살하기 위해 진(秦)나라로 떠나기 전 그가 읊은 노래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찬데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不還>"라는 귀절은 유명하다. 이 노래를 들은 이는 모두 눈을 부라리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았다고 한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臥薪嘗膽(와신상담)

四面楚歌(사면초가)

三顧草廬(삼고초려)

苦肉之計(고육지계)

桃園結義(도원결의)

역사적 유래가 있는 사자성어 5개

역사적 유래가 들어간 사자성어 5개 알려주세요ㅠㅠ 결초보은 / 結草報恩 結 맺을 결 草...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 속뜻 :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사자성어 각각 5개좀 요~ 내용 유래도 .

... ㅎㅎ 각각 5개씩요 내용유래도요~ '열국지’는 읽어보지 못했기에 춘추 전국 시대를... 재주 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호백구(狐白 )...

사자성어 5개만 부탁드려요~

숙제에 사자성어가 필요해서.. 5개만 추천 부탁드려요!!!... 뜻에서 유래. ※ 보충) 伯牙絶鉉(백아절현)은 '친한...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농부가 주워서 이득을 봄 ③...

사자성어 3개의 유래(내공100)

... *# : 지식인에 있는거 모조리 다뺴낀 사람은 신고입니다, 욕설 신고 , 위의 ex)와 같은... 사자성어유래5개 올려드립니다. 1번麥秀之嘆 (맥수지탄) 뜻은 '조국이 멸망한...

대한 속담 사자성어와 그에따른유래들좀

학교숙제인데요 친구에대한 속담이랑 사자성어 그리고 그에따른 유래들좀 알려주세요 각각 5개이상씩 부탁드립니다... 널려 있는 것이다." 교칠지심( 膠漆之心 ). <=> [ 아교(膠)와...

유래가 없는 사자성어(한자성어) 40개정도.

질문 그대로 유래가 없거나, 유래가 있더라고 매우 간략하게 정리되있는(30자 이내로) 사자성어(한자성어) 40개 정도... 별그림이 5개 있어서 붙인 이름임” 어이아이(於異阿異)...

고사성어5개 겉뜻과 속뜻,유래

... 5개와 겉뜻과 속뜻,유래 고사성어, 그중 사자성어는... 쓰는 사자성어도 있고 조금 난이도가 있는 사자성어도... 성공한 역사적 사례를 본 것이다. 조선시대 말에 간신(奸臣)...

유래가있는고사성어5개좀 알려주세요

(유래가있는 고사성어 5개를 조사하여 고사성어를 한자로 쓰고 그 유래와 뜻을 쓴다)... 말에서유래사자성어 -큰 그릇(사람)은 늦게 성공하는것을 일컫는말 형설지공...

사자성어 만들기

학교수행평가가 사자성어 5개 만들긴데 넘어려워요 한자는... 수 있는 그릇이지만, 자신은 병사의 수가 많을수록 잘 지휘할 수 있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함. 많으면 많을수록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