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틀릴 수 있습니다.
우선 1번에서 말씀하신 것은 틀립니다. 영혼/육체 구분법은 서양 (특히 데카르트시절)에서 쓰이는 구분법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것을 데카르트의 이원론, 심신이원론 등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기이원론은
이 = 영혼
기 = 육체
라는 것이 아니라
이 = 법칙,당위
기 = 물질,현상
라는 말입니다.
현대 한국인은 서양식 사고방식을 받아서 사용하고 있기에 영혼과 육체로 나누는 구분법이 뭔가 더 쉽습니다.
반대로 동양에서 하였던 사고방식은 그 맥이 잘 이어지지 못하기에 이기이원론은 뭔가 와닿지를 않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천리의 성격을 파악해야 합니다.
천리의 성격을 현대적인 용어로 설명하면
[천리 = 자연법칙 + 도덕법칙]이라고 아주아주아주아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법칙은 무엇일까요? 법칙은 "이럴땐 이렇다"를 말합니다.
자연법칙은 무엇일까요? 자연현상에 대해 "이럴땐 이렇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중력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왜죠?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법칙은 자연현상이 나타나는 방식을 일정한 공식따위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법칙은 '~이다'로 사실판단이 쓰입니다.
그렇다면 도덕법칙은 무엇일까요? 도덕현상에 대해 "이럴땐 이래야한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선행입니다. 도움이 급한 사람이 있을 때엔 도와야합니다. 왜죠?
그것은 전체 고통의 최소화를 위해(공리주의), 그것이 옳은 행동이니까(칸트),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감정이 발생하니까(맹자) 등 여러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덕법칙은 어떤 현상에 도덕적 당위성을 더해 그것을 일정한 공식따위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덕법칙은 '~해야한다', '~하면 안된다' 따위가 쓰입니다.
주자가 성리학을 집대성한 시대에는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이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적 성질을 가지고 도덕적 당위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보편적 도덕법칙을 뜻하는 '천리'에도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이 혼재되어있습니다.
천리는 앞서 [자연법칙+도덕법칙]이라 하였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도 천리이고(천리 중 물리物理)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해야 하는 것도 천리입니다(천리 중 윤리倫理)
그래서 우리는 천리를 영혼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 드러나는 방식(법칙)이나 어떤 대상이 해야하는 방식(당위)'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또 기질은 육체로 이해해도 충분합니다만, 보다 올바른 것은 물질과 현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질은 '작용하는 것(물질)'이기도 하지만, '작용하는 것이 보여주는 모습(현상)'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번에서 존천리 거인욕은 유학의 수양 대명제입니다. 그래서 주자에게도, 양명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공통점입니다.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잘못된 욕구)을 제거한다'라는 말인데
이것은 모든 유학자라면 당연히 받아들이는 문장입니다.
특히 모든 성리학자, 송명이(理)학자는 받아들이는 문장입니다.
유학자는 대부분(정약용, 순자 제외) 사람에게는 본래 도덕성이 있지만(본성, 천명지위성, 본연지성)
잘못된 욕구가 이를 가려 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방심, 기질의 병폐, 교기질의 필요성)
그래서 대부분의 유학자는 '본래 지닌 도덕성을 확충'하는 것과 '잘못된 욕구 바로잡기'를 수양의 대명제로 제시합니다. 주자는 이를 존천리 거인욕으로 표현한 것이죠.
사실 주자는 기존 유학을 집대성한 사람입니다.
맹자는 존심양성이라 하였고 (마음을 잘 보존하고, 본래의 도덕성을 확충하라)
순자는 화성기위라고 하였습니다 (본래의 이기심을 예로 바꾸어 도덕성을 형성하라)
주자의 존천리 거인욕은
존천리가 존심양성을
거인욕이 화성기위를 계승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 의견이라 틀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맹자 자체도 올바른 욕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참고하시기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