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은 사계절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의 내용은 사계절이겠지요. 사계절이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가 이 시의 감상을 좌우할 겁니다.
2. 1행에서 4행까지는 각각 사계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로 묘사를 하고 있지요. 그런데 '볼이 불그스름해지는', '춤을 추는', '차가워진 목소리'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계절은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니까 계절을 직접 언급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그 '사계절'을 대신할 어떤 개체가 등장하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시를 읽는 동안 시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거든요. 여기에서 질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직접적인 개체, 예를 들어 소년이나 소녀를 등장시킨다면 '사계절'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채 의미가 좁아지는 게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볼이 불그스름해지는 건 소년이고, 춤을 추는 건 소녀이고, 차가워진 목소리를 내는 건 또 누군가이다―라고 해버리면 '사계절'이라는 제목과는 내용이 맞지 않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된 원인도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 시를 통해 무얼 말하려는가'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시를 쓸 때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씁니다. 그리고 그 말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미지를 가지고 와 '비유'나 '은유'를 통해 표현하지요. 그런 표현은 매우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은 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사계절을 의인화해서 뭘 말하려고? 뭘 하고 싶은데? 볼이 불그스름해지고 춤을 추고 그런 게 다 뭔데? 어쩌라는 건데?" 이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는 '묘사'에 비해서 주제가 삽입된 진술이 매우 적거든요. 이 시의 중요한 문장은 마지막 2행입니다.
4. 아마 마지막 두 행으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런 것일 겁니다. (추측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흐르고 또다시 봄이 오듯, 모든 것은 순환하며 갑자기 끝나는 순간 같은 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 그 자체로 우리는 계속 앞으로 향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진술이 단 두 줄로 끝나고 있습니다. 묘사의 비율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5. 또 하나의 문제는 화자입니다. 이 시에 화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한 잎만은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리라'라는 말로 화자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 화자가 누구인지, 이 화자가 어떤 속성인지를 알 수 없어 시를 마음 들여 읽기 곤란합니다. '다시 봄이 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을 다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하고자 한다면, 신선한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질문자님은 그 신선한 방식으로 묘사를 택하셨고 그건 매우 잘해냈지만, 시를 마무리하는 것까지는 아쉽게도 하지 못했습니다.
6. 저는 이 시에서 생명감이 느껴졌으면 합니다. 차가워진 목소리에 누군가 도망가버렸지만, 그 이후 눈이 쌓인 언덕에서 토끼 한 마리가 눈을 헤치고 눈을 반짝이며 뛰어다니는 겁니다. 토끼의 발은 눈과 흙이 뒤섞인 거무죽죽한 발자국을 남길 것이지만, 언젠가는 풀냄새가 묻어 사방에 또렷한 발자국을 남길 겁니다. 이런 생생한 이미지가 더해졌으면 좋아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