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20년전) 프로축구에 대해..

1983년(20년전) 프로축구에 대해..

작성일 2003.04.24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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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있었던 프로축구는 어떻게 되었나요?
개막때 1호골은 누가 넣었나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개막 1호골은 유공 소속의 박윤기 선수가 기록했습니다..^^;;


1983년 한국축구 재건의 해


축구 중흥을 위한 '탈(脫)침체'의 몸부림
한국에서 가장 뿌리 깊은 전통과 저변을 자랑하는 축구가 팬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의 발로로, 대한축구협회는 산하에 프로연맹을 발족시키고 프로리그 출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83년을 '축구 재건의 해'로 정한 축구협회는 수퍼리그 창설로 활로를 뚫는다는 방침이었다.

수퍼리그는 프로와 아마추어부를 통합하는 성인축구 리그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공동 발전을 꾀하고 수준 높은 경기를 통해 붐을 조성하면서 본격 프로시대의 전진기지를 마련한다는 기획이었다. 축구협회의 당시 기획에 따르면 프로팀인 할렐루야와 유공 외, 코리안리그(실업) 1부의 포항제철, 국민은행, 대우 등 상위랭커 3개팀을 묶어 연고제에 의한 초청과 원정 경기를 통해 잃어버린 팬을 되찾고 실질적인 한국축구의 정상을 가린다는 취지였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수퍼리그의 창설이 의욕과잉으로 성급한 감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 되기도 했다. 프로팀을 만들어 놓고서도 정식 프로리그를 갖지 않는 아이러니와 80년부터 3년 동안의 산고 끝에 어렵게 정착시킨 코리안리그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이었다.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는 수퍼리그의 출범을 강행한다는 방침이었다. 국내 축구붐의 조성과 저변 확대를 위해 수퍼리그 운영이 급선무라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3월 5개 구단 감독 중심의 소운영위원회에서 의결된 기본 운영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되도록 한 팀을 추가, 6개팀이 본거지(本據地)제도에 의한 초청과 원정경기를 벌이고,
- D-데이는 4월 9일, 또는 5월 7일로 잡아 전·후기 리그를 갖되 다른 모든 경기에 우선하며,
- 선수 충원과 경비 조달 등에 탄력을 두기로 한다(혜택을 받는다).

수퍼리그 창설에 대한 축구협회의 의욕은 대단해서, '홈 앤드 어웨이' 경기 방식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짝수인 6개팀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구단별 본거지를 확정하는 한편 마스코트의 사용, 화려한 유니폼으로의 변화 등을 시도했다. 주목할만한 사항으로 코리안리그 등 국내경기는 물론이고 국제대회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우선적으로 수퍼리그에 시간과 장소를 배정하는 원칙을 두었다는 점이다. 대표팀 위주의 운영보다 수퍼리그에 주력한다는 의미였다. 또 총 상금 1억 6천만원의, 당시로는 파격적인 상금을 걸고 참가 팀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한국 프로축구시대의 개막
4월 12일, 당시 대한축구협회 최순영 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방송공사(KBS)와 공동주최하는 수퍼리그의 출범을 공식 발표했다. 5월 8일 프로팀인 할렐루야와 유공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5개팀이 전·후기로 나눠 더블리그로 9개 도시를 순회하며 총 40경기를 벌이는 일정이었다.

[수퍼리그 참가팀]
*프로팀 연고지 마스코트 비고
할렐루야축구단 강원, 충남북 독수리 프로 1호
유공축구단 서울, 인천, 경기 코끼리 프로 2호
*실업팀
포항제철축구단 대구, 경북 돌고래 실업통산전적 1위
국민은행축구팀 전남북 까치 실업통산전적 2위
대우축구팀 부산, 경남 왕관 실업통산전적 4위



[전후기 리그 주요 일정]

구분 일정 개최장소 경기 수
전기리그 5월 8일 ~ 7월 3일 서울, 부산, 대구, 전주, 대전(5개 도시) 20
후기리그 8월 25일 ~ 9월 25일 광주, 춘천, 마산, 안동(4개 도시) 20



지금처럼 라운드, 회전으로 칭하지 않고 '서울 시리즈', '부산 시리즈' 등으로 구분해 한 지역에서 팀별로 2연전을 치르게 되는 방식이 특징이다. 토요일 경기 이후 휴식 없이 일요일 경기에 나서야 하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경기 일정이었다.
리그 초반 판도는 각 팀이 국민은행을 상대로 1승씩을 챙겨 국민은행이 4연패 하는 동안 다른 4팀이 서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혼전을 거듭하는 양상이었다. 초반부터 선두를 유지한 대우가 3승4무1패(승점 10)로 전기리그 선두를 차지했고 2승5무1패를 기록한 할렐루야가 2위, 2승4무2패를 기록한 포항제철과 유공이 그 뒤를 추격했다.

8월 25일 재개된 후기리그는 9월 경기부터 주말 하루와 주중 하루에 경기를 갖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주말에 두 경기를 잇달아 가지며 체력적 부담을 느껴야 했던 선수들은 후기리그 들어 경기 후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최종덕, 박성화, 홍성호, 박상인, 김진옥, 박창선 등 노장 선수 위주로 구성된 할렐루야가 시즌 막판 위력을 발휘하며 줄곧 선두를 유지하던 대우와 포항제철을 연파하고 수퍼리그 원년 패권을 차지했다.


[83 수퍼리그 최종순위]
순위 팀명 승점 승 무 패 득점 실점 득실차
1 할렐루야 20 6 8 2 28 20 8
2 대우 19 6 7 3 21 14 7
3 유공 17 5 7 4 26 22 4
4 포항제철 16 6 4 6 21 21 0
5 국민은행 8 3 2 11 11 30 -19



수퍼리그는 경기 수준과 내용면에서도 실업축구 시절과 비교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각 팀은 '한 골을 실점하면 두 골을 넣는다'는 각오로 공격축구를 지향해 매 경기 명승부가 펼쳐졌고, 이는 곧 골 풍작으로 이어졌다.

전·후기 40게임에서 모두 107골, 하루 평균 5.33골(경기당 2.675골)이 터진 것은 당시의 뜨거웠던 그라운드 열기를 방증한다. 후기리그 첫날인 8월 25일은 가장 많은 골(9골)이 터진 날로 기록됐고, 8골이 터진 날은 5번이나 되었으며 하루에 두 경기씩 치른 탓에 한 골도 터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관중들은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골을 구경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프로 2팀, 아마추어 3팀이 참가, 다소 기형적인 모습으로 출발했던 수퍼리그는 9월 25일 마산에서 막을 내릴 때까지 한국 축구사상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며 축구 중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수퍼리그 원년은 팀 절대수의 부족, 인위적인 지역연고제 책정, 선수 부족,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스타 플레이어의 부재 등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으나, 시들어가던 한국 축구에 불을 당겼고 잃었던 팬을 되찾았으며 지도자, 선수를 비롯한 축구인들에게 축구 중흥의 자신감을 갖게 하며 한국 축구의 도약 가능성을 보여준 해로 기록되었다.


[부문별 수상자]
부문 수상자 소속팀
MVP 박성화 할렐루야
득점상 박윤기 유공
도움상 박창선 할렐루야
지도상 함흥철 할렐루야
감투상 이강조 유공
모범상 이춘석 대우
우수GK상 조병득 할렐루야

할렐루야가 수퍼리그 원년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공수에서 두루 맹활약을 펼친 우승의 주역 박성화가 MVP를 차지했다. 조병득은 팀의 16게임 중 15게임을 주전 수문장으로 출전, 팀의 안정을 이끌며 우수 GK에 선정됐다.
개인 기록에서는 유공의 박윤기가 9득점으로 1위, 대우의 이춘석, 포철의 이길용이 각각 8득점, 7득점으로 2, 3위를 차지했고 유공의 이장수가 8득점으로 할렐루야의 오석재와 함께 4위를 차지했다. 박윤기는 시즌 종반까지 이춘석에게 2골차로 뒤지고 있었으나 시즌 두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박윤기는 수퍼리그 1호골을 터뜨린 기록과 함께 2번째 해트트릭의 주인공으로 원년 득점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득점 순위]
순위 이름 소속 득점수
1 박윤기 유공 9
2 이춘석 대우 8
3 이길용 포항제철 7
4 이장수 유공 6
4 오석재 할렐루야 6

도움 부문에서는 박창선(할렐루야)이 6개로 1위, 김용세(유공), 최상국(포철)이 각각 4개로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조광래(대우)와 함께 '베스트 일레븐 - 미드필더'에 선정된 박창선은 3득점 6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수퍼리그 이전까지 포철에서 활약하다 프로 출범과 함께 할렐루야로 팀을 옮긴 박창선은 당시 29세의 노장이었지만 수퍼리그 원년 도움왕을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도움 순위]
순위 이름 소속 득점수
1 박창선 할렐루야 6
2 김용세 유공 4
최상국 포항제철 4
4 박상인 할렐루야 3
4 이강석 할렐루야 3
4 이강조 유공 3
4 김창호 유공 3
4 이태호 대우 3
4 현기호 대우 3
4 김민혜 대우 3
4 김희철 포항제철 3

베스트 일레븐은 기자단 투표를 통해 공격과 수비 각 4명, 링커 2명, 골키퍼 1명이 선발되었다. 베스트 일레븐 선정에서 4-2-4 포메이션이 주를 이루던 당시의 조류를 이해할 수 있다.

[베스트 일레븐]
GK 조병득(할렐루야)
DF 박성화(할렐루야) 김철수(포항제철) 장외룡(대우) 이강조(유공)
MF 박창선(할렐루야) 조광래(대우)
FW 이길용(포항제철) 박윤기(유공) 이춘석(대우) 김용세(대우)


[우승팀 리뷰]

80년 12월 프로축구 1호로 팀을 창단하며 한국 축구에 새 기원을 열었던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프로 1호팀으로 가장 노련한 선수들로 구성되었으면서도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노장이라는 한계 때문에 우승 후보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전기리그가 끝나고 휴식 기간동안 체력을 회복한 선수단은 후기리그에 저력을 발휘하며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정상으로 올라섰다.

당시 팀을 맡았던 함흥철 감독은 우승의 원동력을 '신앙이 바탕이 된 탄탄한 팀웍이 다른 팀을 압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대부분 대표선수까지 거친 역전 노장들었기에 팀 전술 훈련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도 주효했다. 개인 훈련은 주장을 중심으로 선수들 스스로에게 맡긴다는 방침이었다.

국가대표 12년 경력의 명수문장 출신인 함흥철 감독은 공격축구를 선호했다. 홍성호, 황정연, 최종덕 등 막강한 선수들로 구성된 수비라인이었음에도 전기 리그에 실점이 많았던 것은 팬들이 요구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으로, 공격에 치중하다보니 수비에 허점을 드러내며 실리를 챙기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후기 리그에는 공격축구를 계속 지향하는 한편 일부 포지션을 변경해 수비까지 강화, 이 작전이 적중하며 수퍼리그 원년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


[폭발적인 관중열기]

83년 수퍼리그는 한국 축구 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관중 동원에 성공하며 축구 붐 조성과 저변 확대에 전기를 마련했다. 할렐루야, 유공, 포항제철, 대우, 국민은행 5개팀이 축구 경기에 목 말라 있던 지방팬들을 위해 9개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벌인 것은 흥행의 기폭이 되었다.
수퍼리그가 진행되는 동안 축구장을 찾은 관중은 유료 입장객만 419,743명으로 하루 평균 20,924명이었다. 여기에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 등 무료 입장객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3만여명 이상이 수퍼리그를 관전한 셈이다. 82년 실업축구 코리안리그가 48일 동안 8천여명의 유료 입장객을 동원한 것에 비하면 폭발적인 관중동원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수퍼리그가 펼쳐진 운동장은 연일 만원이었고 미리 문을 닫는 바람에 입장하지 못하고 돌아간 관중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최종일인 9월 25일 마산의 경우, 운동장 수용 능력인 3만 5천명을 넘어선 4만여명이 입장, 트랙에까지 관중이 몰려드는 최대의 인파를 기록했다. 당시 부산을 연고로 했던 대우는 경기당 평균 21,743명의 관중을 불러 모아 최다 관중을 동원한 팀으로 기록됐다.


경기수 40
관중 838,950
경기당 관중수 20,973.75
*최다 관중 동원 팀
구단 대우
경기수 16
관중수 347,895


이처럼 수퍼리그가 관중 동원에 성공한 것은 노인, 부녀자, 어린이의 무료 입장 외도 특석 2천원, 일반석 1천원, 군경학생 5백원 등 '박리다매' 정책을 실시한데다 방송 주관사의 적극적인 협조와 홍보, 정책적으로 스포츠를 육성한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렸다는 평가다.


[83년 경품명세]
품목 수량 금액(만원)
승용차 14 6,300
경운기 6 900
오토바이 27 810
피아노 3 300
VTR 5 225
컬러TV 63 1,575
냉장고 21 588
세탁기 34 918
카세트 46 138
손목시계 54 108
벽시계 16 32
기타 24 48
전자레인지 12 420
축구화 350 350
축구공 1,360 680
자전거 12 72
계 2,047 13,464

관중 동원에는 수퍼급의 경품도 한 몫 했다. 축구협회는 1억원을 목표로 경품을 준비, 산더미 같은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당시로는 스포츠 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 대량, 고가의 상품들이었다.
당시 경품협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기업은 대우. 대우는 '맵시' 승용차를 비롯, VTR, 냉장고, 세탁기, 벽시계 등 5개 품목에 달하는 경품을 내놓으며 수퍼리그 소속인 축구팀의 이미지 제고와 자사 홍보를 확실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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